|   이집트 제2중간기 28대 혹은 29대 혹은 30대 파라오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Merhotepre Sobekhotep  | ||
|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의 좌상  |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Merhotepre Sobekhotep)[1]  | |
| 부왕 | 소베크호테프 4세로 추정 | |
| 선대 | 소베크호테프 4세 | |
| 후대 |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 |
| 묘지 | 불명 |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 재위기간 3년으로 추정 | ||
1. 개요
이집트 제2중간기 13왕조의 29대 파라오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28, 30대 파라오로 주장하고 있다.2. 증명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의 유물은 주로 상이집트에서 발견된다. 유물에 써져있는 이름은 “메르호테프레(Merhotepre)”, “메르호테프레 이니”,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Merhotepre Sobekhotep)”로 구분되며, 메르호테프레라는 즉위명의 철자 표기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메르호테프레 이니와 그의 선왕 메르네페르레 아이는 멤피스–파이윰 지역과 연결되는 반면,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는 테바이드(Thebaid) 지역과 더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 박물관 소장의 좌상에 그의 카르투슈가 새겨져 있다.
 - 카르나크에서 출토된 동상에는 '소베크호테프 5세 메르호테프레'라고 표기되어 있다.
 -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비석에는 메르호테프레의 즉위명이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와 동일한 방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테베에서 발견된 법적 비석이라고 불리는 비석의 글귀는 네비리아우(Nebiriau) 즉위년 1년에 작성된 것으로, '메르호테프레' 즉위 1년에 내려진 칙령을 언급한다. 이 비석은 흔히 메르호테프레 이니로 연결되었으나,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견해가 있다.
3. 비동시대 증명
투트모세 3세 시대에 만들어진 카르나크 파라오 목록 항목 50에는 메르호테프레가 세와헨라(Sewahenra)와 웨가프(Wegaf) 사이에 기재되어 있다. 이 항목은 메르호테프레 이니 또는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가운데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정하기 어렵지만, 순서만 보면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에 더 가깝다. 또한 인접한 군주의 배열은 더 이른 시기에 집권한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일 것이라는 해석을 지지한다.초기 람세스 시대에 편찬된 토리노 파피루스에는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의 이름이 보존되어 있지 않다. 킴 라이홀트(Kim Ryholt)는 소베크호테프 4세 이후 부분이 소실되었으며,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가 소실된 부분에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랑케(Detlef Franke)와 폰 베케라트(Jürgen von Beckerath)는 즉위명이 같다는 이유로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를 메르호테프레 이니와 동일 인물로 보았으나, 라이홀트는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가 소베크호테프 4세 바로 뒤의 소실된 부분에 따로 기재된 별개의 군주라고 제시하였고, 그의 재위를 대략 3년으로 추정하였다.
4. 학설
라이홀트(Kim Ryholt)는 그를 13왕조의 서른 번째 파라오로 보며, 대럴 베이커(Darrell Baker)는 스물아홉 번째로 봤다. 또한 폰 베케라트(Jürgen von Beckerath)와 프랑케(Detlef Franke)는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를 메르호테프레 이니와 동일시하여, 그를 소베크호테프 6세(Sobekhotep VI)이자 제13왕조의 스물여덟 번째 파라오로 보았다.제13왕조에서 부모 이름을 함께 새긴 계보 인장으로 확실히 알려진 파라오는 다섯 명이며, 이 가운데 네 명은 소베크호테프 3세, 네페르호테프 1세와 그의 형제들인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인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두 개의 계보 인장에는 '파라오의 어머니'로 표기된 인물이 '누브호텝티(Nubhotepti)'로, 파라오는 '소베크호테프'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소베크호테프 3세의 어머니는 유헤티베우(Jewhetibew)였고, 네페르호테프 1세와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의 어머니는 '케미(Kemi)'였다. 따라서 생전에 계보 인장을 사용한 또 다른 소베크호테프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투크(Tukh)에서 발견된 또 다른 인장 자국에는 이 알 수 없는 군주의 아버지를 언급하는데, 파손으로 이름은 판독되지 않지만 흔적상 몬투호테프(Monthhotep)[2]도, 하앙케프(Haankhef)[3]도 아니다. 이 인장 자국은 누브호텝티를 어머니로 적은 인장의 부친측 유물로 보이며, 인장 자국에 보이는 즉위명은 “메르[...]레”로 판독될 가능성이 있어, 라이홀트는 출생명이 소베크호테프이고 즉위명이 메르호테프레 혹은 메르카우레같은 메르[...]레 형식인 파라오와 부합한다고 주장하였다.
라이홀트는 또한 제13왕조에서 이러한 계보 인장은 소베크호테프 3세–네페르호테프 1세–시하토르–소베크호테프 4세로 이어지는 짧은 연속 시기에만 쓰였고, 그 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와히브레 이비아우, 메르네페르레 아이 등의 치세에는 더 이상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소베크호테프 4세의 한참 뒤의 후계자인 메르카우레 소베크호테프가 이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낮다. 이 30년의 간극은 또한 세와지카레 호리 같은 중간의 다른 군주들을 배제한다.
어쨌거나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중인 좌상으로도 증명되는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가 소베크호테프 4세의 후계자이자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의 선왕으로 남는 유력 후보가 된다.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는 생전에 계보 인장을 사용했으며, 그의 이름은 토리노 파피루스의 소실된 부분에 있어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후계자로 보이는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의 즉위명 역시 [...]호테프레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어, 두 군주의 근접한 계승을 추가로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