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7 13:52:06

알렉산드로스 4세

파일:베르기나의 태양.svg
마케도니아 국왕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아르게아스 왕조
카라노스 코이노스 티림마스 페르디카스 1세 아르가이오스 1세
아르게아스 왕조
필리포스 1세 아에로포스 1세 알케타스 1세 아민타스 1세 알렉산드로스 1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케타스 2세 페르디카스 2세 아르켈라오스 1세 크라테로스 오레스테스
아에로포스 2세
아르게아스 왕조
아르켈라오스 2세 아민타스 2세 파우사니아스 아민타스 3세 아르가이오스 2세
아르게아스 왕조
아민타스 3세 알렉산드로스 2세 페르디카스 3세 아민타스 4세 필리포스 2세
아르게아스 왕조 안티파트로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카산드로스 필리포스 4세
안티파트로스 왕조 안티고노스 왕조 아이아키다이 왕조-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5세 데메트리오스 1세 피로스 1세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
안티파트로스 2세
- 안티파트로스 왕조 안티고노스 왕조 아이아키다이 왕조
멜레아그로스 안티파트로스 에테시아스 소스테네스 안티고노스 2세 피로스 1세
안티고노스 왕조
안티고노스 2세 데메트리오스 2세 아이톨리코스 안티고노스 3세 필리포스 5세 페르세우스 }}}}}}}}}
알렉산드로스 4세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bd0e, #f9d537 20%, #f9d537 80%, #e6bd0e); color: #670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81818,#e5e5e5
<rowcolor=#670000> 초대 제2대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마케도니아 · 셀레우코스 · 안티고노스 · 프톨레마이오스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0522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하이집트 <colbgcolor=#fff,#1f2023>헤주호르 니호르 흐세큐 카유 티우 테시 네헵 와즈너 하트호르 니네이스 | 메크 더블팔콘 워시
상이집트 | 핑거 스네일 피시 엘리펀트 스톡 전갈왕 1세 크로커다일 아이리 호르 전갈왕 2세 나르메르 메네스
제1왕조 나르메르 메네스 호르아하 제르 제트 메르네이트 아네지브 세메르케트 카아 스네페르카 호루스 바
제2왕조 헤텝세켐위 네브라 니네체르 누브네페르 호루스 사 웨네그 와제네스 세네지 세트 페리브센 세케리브 페렌마아트 네페르카레 1세 네페르카소카르 후제파 카세켐위
제3왕조 조세르 세켐케트 사나크테 네브카 카바 세제스 카하제트 후니
제4왕조 스네프루 쿠푸 제데프레 카프레 비케리스 멘카우레 솁세스카프 탐프티스
제5왕조 우세르카프 사후레 네페리르카레 카카이 네페레프레 솁세스카레 니우세르레 멩카우호르 제드카레 우나스
제6왕조 테티 우세르카레 페피 1세 메렌레 1세 페피 2세 메렌레 2세 니토크리스 네체르카레 네페르카 네퍼
제7왕조 멩카레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3세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4세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5세 네페르카호르
제8왕조 네페르카레 6세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와지카레 쿠이케르 쿠이 이체누
제9왕조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 네브카우레 케티 세투트 임호텝
제10왕조 메리하토르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제11왕조 멘투호테프 1세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 멘투호테프 2세 멘투호테프 3세 멘투호테프 4세
누비아 왕조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이이브켄트레
제12왕조 아메넴헤트 1세 세누스레트 1세 아메넴헤트 2세 세누스레트 2세 세누스레트 3세 아메넴헤트 3세 아메넴헤트 4세 소베크네페루
제13왕조 소베크호테프 1세 손베프 네리카레 세켐카레 아메니 케마우 호테피브레 이푸니 아메넴헤트 6세 세멘카레 네브누니 세헤테피브레 세와지카레 네제미브레 소베크호테프 2세 렌세네브 호르 세켐레쿠타위 카바우 제드케페레우 세브카이 세제파카레 웨가프 켄제르 이미레메샤우 세헤테프카레 인테프 세트 메리브레 소베크호테프 3세 네페르호테프 1세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와히브레 이비아우 메르네페르레 아이 이니 1세 상켄레 세와지투 메르세켐레 이네드 세와지카레 호리 소베크호테프 7세 이니 2세 세와헨레 세네브미우 메르케페레 메르카레 세와자레 멘투호테프 세헤켄레 산크프타히
제14왕조 야크빔 세카엔레 야아무 누부세르레 카레흐 아아호테프레 셰시 네헤시 카케레우레 네베파우레 세헤브레 메르제파레 세와지카레 3세 네브제파레 웨벤레 아위브레 2세 헤리브레 네브센레 셰케페렌레 제드케레우레 산키브레 2세 카케무레 네페리브레 카카레 아카레 아나티 제드카레 베브눔 아페피 누야 와자드 셰네흐 셴셰크 카무레 야카레브 야쿠브-하르
제15왕조 샤렉 셈켐 아페라나트 살리티스 사키르-하르 키얀 야나시 아페피 카무디
제16왕조 제후티 소베크호테프 8세 네페르호테프 3세 멘투호테피 네비리라우 1세 네비리라우 2세 세멘레 베비앙크 세켐레 셰드와스트 데두모세 1세 데두모세 2세 몬투엠사프 메란크흐레 멘투호테프 세누스레트 4세 페피 3세
아비도스 왕조 세네브카이 웨프와웨템사프 판트제니 스나아이브
제17왕조 라호테프 네브마아트레 소베켐사프 1세 소베켐사프 2세 인테프 5세 인테프 6세 인테프 7세 세나크텐레 아모세 세케넨레 타오 카모세
제18왕조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아케나톤 스멘크카레 네페르티티 투탕카멘 아이 호렘헤브
제19왕조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르넵타 아멘메세스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
제20왕조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제21왕조 스멘데스 1세 아메넴니수 프수센네스 1세 아메네모페 대 오소르콘 시아문 프수센네스 2세
제22왕조 셰숑크 1세 오소르콘 1세 셰숑크 2세 타켈로트 1세 오소르콘 2세 셰숑크 3세 셰숑크 4세 파미 셰숑크 5세 오소르콘 4세
제23왕조 하르시에세 A 타켈로트 2세 페디바스테트 1세 셰숑크 6세 오소르콘 3세 타켈로트 3세 루다멘 이니
제24왕조 테프나크트 바켄레네프
제25왕조 피이 셰비쿠 샤바카 타하르카 타누타멘
제26왕조 네코 1세 프삼티크 1세 네코 2세 프삼티크 2세 와히브레 아흐모세 2세 프삼티크 3세
제27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
제28왕조 아미르타이오스
제29왕조 네파루드 1세 하코르 프삼무테스 네파루드 2세
제30왕조 넥타네보 1세 테오스 넥타네보 2세
제31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아르세스 카바쉬 | 다리우스 3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32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 아르시노에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 베레니케 2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 아르시노에 3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 클레오파트라 1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 클레오파트라 1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복위)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클레오파트라 2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9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클레오파트라 4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베레니케 3세 프톨레마이오스 9세 (복위) 베레니케 3세 · 프톨레마이오스 11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 클레오파트라 5세 베레니케 4세 · 클레오파트라 6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 클레오파트라 7세 · 아르시노에 4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 클레오파트라 7세
세소스트리스 · 아이깁투스 · 사산 · 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 아바스 · 파티마 · 아이유브
맘루크 · 오스만 · 무함마드 알리 · 대통령
}}}}}}}}}}}}}}}


파일:베르기나의 태양.svg
페르시아 샤한샤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마케도니아 제국
제1대 제2대 섭정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페르디카스
섭정 섭정 섭정
안티파트로스 폴리페르콘 카산드로스
아케메네스 샤한샤
}}}}}}}}} ||

마케도니아 아르게아스 왕조 제27대 국왕
알렉산드로스 4세
Ἀλέξανδρος Aἰγός
Alexander IV of Macedon
파일:Alexandros_IV_Aigos_Budge.png
이집트 아르게아스 왕조 2대 파라오
페르시아 샤한샤
<colbgcolor=#000><colcolor=#fff> 제호 알렉산드로스 4세
Alexander IV of Macedon|Ἀλέξανδρος Aἰγός
부황 알렉산드로스 3세
모후 록사나
출생 기원전 323년
사망 기원전 309년 (향년 14세)
재위 헬레니즘 황제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09년

1. 개요2. 생애3. 죽음과 아르게아스 왕조의 멸망4.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알렉산드로스 4세

[clearfix]

1. 개요

아르게아스 왕조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드로스 대왕)와 박트리아 공주 록사나의 아들. 삼촌인 필리포스 3세(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와 공동왕으로 있었으며, 뒤에 어머니와 함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인 디아도코이 중 한 사람인 카산드로스에 의해 독살되었다. 그가 죽고 이복형제인 헤라클레스마저 카산드로스에게 독살됨으로써 아르게아스 왕조의 대는 끊기게 되었다.

2. 생애

기원전 323년,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 바빌론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3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이 때 대왕의 후계자 후보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복동생인 필리포스 아리다이오스와 왕비 록산나(록사네)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있었다. 대왕의 휘하에 있던 장군들은 만약 뱃속의 아이가 남자아이일 경우 이 아이와 아리다이오스를 공동왕으로 삼기로 결정했으며, 이들은 여러 차례의 담합과 조정과정을 거쳐 제국의 지역을 나누고 사트라프 직을 나눴다. 그리고 얼마 뒤인 기원전 323년 8월, 록사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유복자 알렉산드로스 4세를 낳았다. 그러나 왕의 후계자가 정해지기 전까지 대왕의 유해는 방치되어 뒤늦게 장례가 치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왕위를 둘러싸고 휘하 장군들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정한 후계자'를 놓고 디아도코이들 간의 암투가 벌어졌다.

알렉산드로스 4세의 어머니인 록사나는 그리스 어에 따라 일반적으로 록사나(록사네)라고도 하는데,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나를 지배하던 옥시아르테스의 딸로 권세욕이 있는 여자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를 정복한 이후 그녀와 결혼했다. 또한 갓난아이인 조카와 공동왕이 된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 역시 결함[1]이 있었기에 성인이어도 큰 영향력을 미치기 힘들었다. 결국 페르디카스가 왕국 섭정이 되고 멜레아그로스가 그를 보좌하기로 결정되었는데,얼마 안가 페르디카스는 보좌를 맡은 멜레아그로스를 암살하고 전권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꼭두각시 왕들을 장악하면서 부인이었던 안티파트로스의 딸을 버리고 대왕의 누나 클레오파트라(Κλεοπάτρα)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페르디카스의 행동은 다른 디아도코이들의 불만을 일으켜 기원전 322년 프톨레마이오스가 대왕의 시신을 운구하는 페르디카스 군을 습격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2] 이후, 본격적인 디아도코이 간의 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페르디카스 암살 등으로 사건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지만, 새로이 트리파라데이소스(Τριπαράδεισος) 협정이 맺어져, 새 섭정으로 안티파트로스가 임명되고, 그에 의해 두 왕(필리포스 3세와 알렉산드로스 4세)는 바빌론에서 본국인 마케도니아로 이동하였다. 아울러 사트라프 자리도 재분배되어 리시마코스가 트라키아를 받고, 페르디카스 암살에 일조한 셀레우코스 1세가 바빌론을 받아 사건이 수습되었다.

3. 죽음과 아르게아스 왕조의 멸망

두 왕은 마케도니아로 옮겨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었고, 트리파라데이소스 협정을 통해 기원전 319년, 이들은 에우메네스를 공격한다. 그러나 카파도키아의 에우메네스를 공격하던 도중, 섭정 안티파트로스가 사망하였고, 새로운 섭정에는 안티파트로스의 아들인 카산드로스가 아닌, 폴리페르콘이 섭정으로 지명되었다. 그런데 새 섭정은 공격 중이었던 에우메네스와 손을 잡았고, 안티파트로스의 아들이던 카산드로스에게 더 큰 불만을 불러일으켜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때 카산드로스는 다른 디아도코이들[3]과 동맹을 맺어 내전에서 승리한다.

이때 폴리페르콘은 올림피아스 태후와 어린 왕과 록사나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이자 올림피아스 태후의 고향이며, 자신의 근거지인 에페루스로 탈출하여 군세를 정비했다. 한편 권력욕이 많았던 올림피아스 태후는 오직 자신의 피를 이은 대왕의 아들만이 마케도니아를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필리포스 2세의 아들이자 그의 여러 부인 중 한 명이 낳은 공동왕 필리포스 3세를 제거하기로 결심한 뒤, 폴리페르콘과 연합하여 기원전 317년, 마케도니아에 있는 필리포스 3세 진영을 공격했다. 병력이 약한 탓에 왕이 머무는 곳은 쉽게 점령당했고, 왕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와 왕비 에우리디케는 생포되어 쳐형되었다. 이때 카산드로스의 형제들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 역시 함께 처형당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4세는 단독왕이 되었고, 새 실권은 할머니인 올림피아스와 어머니 록사나, 섭정 폴리페르콘이 장악하였다.

하지만 올림피아스와 폴리페르콘의 이런 행위는 디아도코이들에게 명백한 반역행위로 간주되었고, 카산드로스에게 명분을 제공한 꼴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즉각 공격을 받았고, 카산드로스에게 또다시 패했다. 올림피아스는 피드나에서 항복하였고, 승리한 카산드로스는 재판을 통해 대왕의 정통후계자인 필리포스 3세 부부를 처형한 반역죄로 올림피아스 태후를 생포하여 기원전 316년, 처형하고 마케도니아를 장악하였다.

그 후, 제 3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발발했다. 원인은 안티고노스의 세력이 너무 강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BC 314년 프톨레마이오스,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가 손을 잡고 안티고노스와 맞섰고, 이에 맞서 안티고노스는 영토를 더욱 확장하는 한편 펠로폰네소스 지역에 잔존해 있던 폴리페르콘 세력과 연합했다.[4] 이에 카산드로스와 리시마코스가 아나톨리아를 공격했고, 안티고노스는 이를 격퇴하기 위해 북진했다. 하지만 BC 312년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가 가자 전투에서 프톨레마이오스에게 패배하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원을 받은 셀레우코스가 바빌론을 수복하자 안티고노스는 다시 남하해야 했다. 이쯤 되자 안티고노스와 프톨레마이오스 모두 휴전을 바라게 되었고, 결국 카산드로스-리시마코스-프톨레마이오스와 안티고노스는 휴전 협정을 맺었다.

이 휴전 협정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왜냐하면 이 협정은 마케도니아의 카산드로스, 트라키아의 리시마코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아나톨리아와 시리아의 안티고노스가 모두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정도로 독자적인 세력을 가졌음을 공인한 것이기 때문이다.[5] 동시에 이 평화조약(B.C 311)에 의거해서 알렉산드로스 4세의 단독 왕 인정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곧 왕과 아르게아스 왕조는 더 이상 섭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선언을 했고, 카산드로스 역시 더 이상 알렉산드로스 4세는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협정 이후, 알렉산드로스 4세는 더 이상 디아도코이들에게 실질적으로는 필요하지도 않았고, 디아도코이들이 이미 독자적인 왕국을 가지게 되었기에 걸림돌이 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기원전 310년 카산드로스는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 궁전 안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린 왕과 모후 록사나를 독살하여 모두 죽였다. 동시에 아르게아스 왕조의 유일한 남자 혈육인, 대왕의 또 다른 아들 헤라클레스 역시 폴리페르콘에게 뇌물을 먹여 죽였다.

4.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알렉산드로스 4세

로드 엘멜로이 2세의 모험의 등장인물 에르고의 정체.


[1] 간질을 앓고 있었다고 하는데, 정신박약자는 아니어도 지능만 일반인보다 떨어지는 우둔한 인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기록에 따르면 올림피아스가 독을 먹여서 머리지능이 떨어져버렸다고 한다.[2] 대왕의 시신이 이때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방부처리되어 그의 근거지인 알렉산드리아에 영구보관되었다.[3] 안티고노스 1세,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1세[4] 다만 폴리페르콘은 펠로폰네소스의 거점들에 틀어박혀 BC 303년 사망할 때까지 별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5] 사실상 독자적인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