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1 17:11:15

멘투호테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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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중왕국 제11왕조 5대 파라오
멘투호테프 2세 | 𓇳𓎟𓊤
Mentuhotep II
파일:statue-of-mentuhotep-ii-2040-bc-everett.jpg
멘투호테프 2세의 석상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네브헤페트레(Nebhepetre)[1]
부왕 인테프 3세
선대 인테프 3세
후대 멘투호테프 3세
묘지 데이르 엘 바하리의 장제전
왕비 템(Tem)
네페루 2세(Neferu II)
헨헤네트(Henhenet)
카위트(Kawit)
켐시트(Kemsit)
사데흐(Sadeh)
자녀 멘투호테프 3세(Mentuhotep III)♂
마예트(Mayet)♀[추정]
재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2060년 ~ 기원전 2009년
1. 개요2. 통치
2.1. 이집트 재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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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중왕국 제11왕조의 5대 파라오. 혼란스러웠던 제1중간기를 끝내고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중왕국 시대를 개막한 파라오였다. 51년 동안 재위하면서 상하로 분열된 고대 이집트를 통합하기 위해 애썼고, 멘투호테프 2세의 노력 덕분에 중왕국의 후대 파라오들은 안정적인 왕권을 누렸다.

멘투호테프 2세는 상이집트 유역의 테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인테프 3세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후 점차 힘을 키워나갔고, 북쪽 하이집트의 제10왕조의 파라오들이 아비도스를 모욕하자 이를 빌미로 군대를 몰아 하이집트를 정복했다. 재위한 지 약 39년 정도 되는 해에 전 이집트를 재통일한 멘투호테프 2세는 각지에 총독을 파견해 파라오의 통제력을 강화했으며, 정기적으로 감사를 파견해 관리들을 감시하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중왕국 번영의 기초를 놓았다. 멘투호테프 2세가 기원전 2009년에 사망하자 그의 시신은 데이르 엘 바하리의 장제전에 잠들었다.[3]

2. 통치

2.1. 이집트 재통일

멘투호테프 2세가 왕위에 오르기 직전, 이집트는 한창 제1중간기가 지속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번영을 누렸던 이집트 고왕국이 멸망하고 이집트가 남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 북부 나일 강 삼각주의 하이집트 일대는 헤라클레오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제10왕조가 다스리고 있었고, 남쪽 상이집트 유역에는 테베를 중심으로 한 제11왕조가 힘을 키우고 있었다. 제11왕조의 파라오들은 끊임없이 정벌과 팽창을 반복했고, 덕분에 멘투호테프 2세가 아버지 인테프 3세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을 시점에 제11왕조의 강역은 남쪽으로는 나일 제1폭포의 아비도스, 북쪽으로는 체부에 닿으며 상당히 거대했다. 멘투호테프 2세가 새로운 파라오에 즉위하고 난 이후에도 약 14년 간은 별다른 전투나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위 14년 동안은 신전의 기록이나 부조 따위에도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파라오가 너무 어려 딱히 부각되는 활동을 하지는 않았던 모양.

재위 14년부터 본격적으로 제10왕조와 멘투호테프 2세와 충돌이 격화된다. 헤라클레오폴리스의 제10왕조는 영향력 확대를 위해 티니스 일대를 공격했고, 이에 멘투호테프 2세가 신성한 아비도스의 무덤을 모욕한 제10왕조를 단죄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이끌고 북진하면서 대대적인 전투가 일어났다.[4] 당시 제10왕조의 파라오였던 메리카레는 무력했다.[5] 메리카레 치하의 제10왕조는 끝없이 저물어갔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멘투호테프 2세가 총공세를 펼치면서 결국 제10왕조를 무릎꿇리는 데에 성공했다. 정확한 통일 시기나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략 재위 39년 되는 해, 전쟁을 시작한 지 25년 만에 멘투호테프 2세는 하이집트를 정벌하고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다시 통일 이집트의 유일한 군주로 거듭났다. 이집트를 다시 통합했다는 멘투호테프 2세의 위엄은 수직상승하면서 그가 거의 반신(半神)처럼 숭배받았다는 말이 전해진다.[6]

이집트를 재통일한 멘투호테프 2세는 자신의 이름을 '셰마타위', 즉 '두 개의 땅을 통일한 자'라고 개명했다. 단순히 상이집트의 군주가 아니라 하이집트까지 아우르는 전 이집트의 왕이라는 것을 천명하기 위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제1중간기 시절 이집트 본국이 혼란스러웠던 틈을 타 반쯤 독립 상태를 유지했던 누비아 지방에 군대를 보내 재복속시켰고,[7] 그 외에도 리비아, 가나안, 수단, 차드 등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군사들을 보내어 정복하게 했다. 또한 고왕국 쇠락의 원인이었던 총독의 권한을 대대적으로 약화시키면서 권력 집중화에 노력했다. 지방의 총독들은 고왕국 시절 제6왕조의 페피 2세 시대부터 제 말을 듣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세하며 파라오의 힘을 갉아먹었는데, 이를 경계했던 멘투호테프 2세는 총독들을 찍어눌렀다. 그는 제10왕조가 임명한 총독들을 모조리 내친 다음 제 사람들을 그곳에 끼워넣었으며, 매년마다 정기적으로 감독관들을 파견해 관리들이 역심을 품지 않고 있는지, 아니면 축재하고 있지 않은지 등 철저한 감시를 붙였다.

[1] "의 방향타를 잡은 자"[추정] [3] 그의 장제전은 최초로 죽음의 신 오시리스와 파라오를 동일시하는 내용의 부조가 새겨진 신전이었다. 이후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등이 멘투호테프 2세가 세운 전통에 따라 유사한 장제전을 지었다.[4] 1920년대에 데이르 엘 바하리에서는 60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의 미라가 함께 발견되었다. 이 미라들에는 멘투호테프 2세의 이름이 적힌 인장이 찍혀있었는데, 학자들은 아마 이 전투에서 왕을 위해 싸우다 죽은 병사들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5] 이미 메리카레가 멘투호테프 2세가 침입하기 이전에 죽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6] 거의 200년이 흐른 뒤인 아메넴헤트 3세가 그를 기리는 뜻의 비석을 세워줬을 정도.[7] 엘레판틴 섬에 요새를 세워 병사들의 빠른 이동이 가능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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