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중왕국 누비아왕조 파라오 이이브켄트레 Iyibkhentre | ||
이이브켄트레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이이브켄트레(Iyibkhentre) | |
부왕 | 불명 | |
선대 | 불명 | |
후대 | 불명 | |
묘지 | 불명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20세기 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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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이브켄트레는 고대 이집트 혹은 누비아 지역에서 활동한 통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11왕조 말기에서 12왕조 초기에 걸쳐 재위했을 가능성이 거론되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독자적인 왕위 계승을 주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의 정확한 치세 시기와 신분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으며, 역사적 사료 또한 제한적이다.한편 일부 학자는 그가 중왕국 시대 이후, 즉 제13왕조 말 혹은 그보다 더 후대에 등장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이브켄트레의 재위 시점과 역할은 이집트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생애
이이브켄트레는 11왕조 말 멘투호테프 4세 치세에서부터 12왕조 초 아메넴헤트 1세 재위기에 걸친 과도기에 등장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시 양쪽 왕조 모두 정통성을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이이브켄트레 역시 이러한 혼란 속에서 하부 누비아 일대[1]에 근거지를 두고 독자적인 정통성을 주장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그러나 헝가리 출신의 이집트학자 라슬로 토뢰크(László Török)는 이이브켄트레와 유사한 시기에 거론되는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등 다른 누비아 기반 통치자들과 함께 그를 더 후대인 제13왕조 이후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는 중왕국 후기와 제2중간기 사이에 누비아 지역에 출현했던 소규모 세력들이 해당 시기의 군웅할거 양상과 연결될 수도 있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현존하는 사료로는 이이브켄트레의 호루스 이름과 즉위명이 암시되는 바위에 새겨진 글귀가 발견되었으나, 그 수가 적고 해석도 제한적이다. 누비아 하부 지역에서 발견된 이러한 기록 외에는 그의 활동이나 치적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무덤, 건축물, 추가 문헌 자료 등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와 동시대 혹은 근접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등 다른 인물들과 정확히 어떤 관계였는지도 불확실하다.
이처럼 이이브켄트레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적인 탓에, 실제로 독자적인 파라오로 인정될 수 있는 지위에 올랐는지 혹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지역 세력 수장에 그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의 이름이 이집트 파라오식 칭호 체계로 기록되어 있고, 중왕국 전후의 혼란스러운 권력 지형 속에서 언급되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어느 정도 왕위 계승에 대한 주장을 펼쳤던 것으로 보인다.
[1] 아부 호르(Abu Hor), 메디크(Mediq), 토슈카(Toshka)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