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21:39:33

프톨레마이오스 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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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14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3세
Ptolemy XIII Theos Philopator
파일:Portrait_of_Ptolemy_XIII_Theos_Philopator.jpg
기원전 1세기에 주조된 메달을 바탕으로 1736년에 그려진 삽화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Πτολεμαῖος | Ptolemy[1]
출생 기원전 62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사망 기원전 47년 1월 13일 (향년 1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나일 강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51년 ~ 기원전 47년[2] (약 4년)
전임자 프톨레마이오스 12세
후임자 프톨레마이오스 14세
부모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배우자 클레오파트라 7세
종교 이집트 다신교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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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14대 파라오. 이복누나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치열한 정쟁을 벌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개입하자 이에 맞섰으나 끝내 패배를 면치 못하고 나일 강에 빠져 익사했다.

2. 생애

기원전 62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이복 누나로 베레니케 4세클레오파트라 7세를 두었고, 동복형제로 아르시노에 4세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두었다. 기원전 51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붕어했다. 그는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딸 클레오파트라 7세가 이집트를 공동으로 통치해야 하며, 로마가 이를 보증해달라고 부탁했다. 폼페이우스는 이 유언장을 승인하여 두 사람이 서로 결혼하여 공동 파라오로 집권할 수 있게 해줬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섭정을 맡은 환관 포티노스는 무척 총명한 클레오파트라가 계속 집권한다면 자신의 권력이 제한될 거라 여겼고, 그녀를 축출할 음모를 꾸몄다. 클레오파트라 7세 역시 이복동생을 배제하고 전권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이리하여 양자는 첨예한 갈등을 벌이다가 기원전 48년부터 내전을 벌였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곧 알렉산드리아에서 쫓겨난 뒤 사막 지대에서 병력을 규합하여 할거했다. 비슷한 시기 아르시노에 4세도 별도로 세력을 끌어모아 반란을 일으키면서, 이집트에 파라오가 3명인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던 기원전 48년 말,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참패한 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던 폼페이우스가 알렉산드리아에 망명 의사를 밝혔다. 폼페이우스는 이전에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딸 베레니케 4세의 반란으로 축출되었을 때 파라오에 복위할 수 있도록 힘써 준 적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전적이 있으니 이집트가 자신을 도울 거라 믿었다. 그런데 폼페이우스가 파견한 사절들이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복위에 기여한 뒤 이집트의 정예병으로 남아있던 옛 폼페이우스파 장병과 장교들을 찾아가 폼페이우스 밑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요청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조언자들은 이 사실을 전해듣고, 폼페이우스의 망명 목적이 이집트를 자신의 손에 넣고 카이사르와 다시 대결을 벌이려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었다. 그들은 폼페이우스를 암살하고 그의 수급을 카이사르에 바쳐서 승리자의 호의를 얻기로 작당하고, 아킬라스와 폼페이우스의 옛 부하인 루키우스 셉티미우스를 파견해 폼페이우스를 반갑게 맞이하는 척하다가 죽이게 했다. 음모는 성공했고, 암살자들은 폼페이우스의 수급을 취하고 몸은 바다 속으로 떨어뜨렸다. 이후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자, 그들은 폼페이우스의 수급을 전달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전직 집정관이며 일찍이 이집트 왕실에 은혜를 베풀었던 폼페이우스를 이런 식으로 죽인 것에 분노하면서, 승리자의 호의를 얻으려던 그들의 계획은 틀어졌다.

한편 클레오파트라 7세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카이사르에게 몰래 찾아가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카이사르는 그녀의 매력에 반했고,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공동 통치를 로마가 보장해달라는 유언을 한 것도 있기에, 두 사람이 이전처럼 공동 통치를 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여동생 아르시노에 4세는 키프로스에서 통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측은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다고 여겨 불만을 품었다. 여기에 폼페이우스 살해를 주도한 혐의로 환관 포티노스를 처형하자, 그들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조언자들은 아르시노에 4세와 동맹을 맺고,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이끌고 온 병력이 얼마 되지 않은 점을 이용해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7세 모두 죽여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을 선동하여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 카이사르군을 상대로 시가전을 벌였다. 이리하여 벌어진 알렉산드리아 전쟁은 기원전 48년 12월 중순에 발발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포함한 시가지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클레오파르타 7세와 함께 카이사르군에 억류되어 있었는데, 카이사르는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그에게 반란군을 찾아가서 잘 타일러 반란을 멈추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카이사르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며 울음을 터트렸지만, 카이사르가 거듭 부탁하자 그 말대로 하겠다고 맹세하며 떠났다. 그러나 정작 반란군에 가담한 뒤에는 태도를 싹 바꾸고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7세를 향한 공세를 강화시켰다. 하지만 온갖 곤경을 헤쳐온 카이사르와 장병들은 끝까지 버텼고, 기원전 47년 1월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가 파견한 구원군이 도착하면서 숨통을 돌릴 수 있었다.

로마군이 추가로 도착하자,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도시에서 철수한 뒤 병력을 재편성하여 나일 강변의 높은 언덕에 진을 치고 로마군과 맞붙었다. 그러나 나일 강 전투는 이집트군의 참패로 끝났고, 그는 로마군을 피해 달아나다가 강에 빠져 익사했다. 아르시노에 4세는 체포된 뒤 로마로 끌려갔고, 후에 카이사르의 개선식에 전시되었다. 카이사르는 전투에서 승리한 뒤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공동 파라오로 추대했다.

3. 대중매체

  • HBO의 드라마 ROME에 등장한다. 배우는 1993년생 영국의 아역배우 Scott Chisholm. 고증에 맞게 초등학생 수준의 어린 나이로 나오며 나이에 걸맞게 세상물정도 모르고 정치력도 없어 통치는 주변 측근들이 다 하는 무능한 파라오로 나온다. 이미 재위 한참 이전부터 이집트의 지배국이었던 로마에서 카이사르가 찾아와 누나랑 그만 싸우고 로마에 곡물이나 얌전히 바치라고 점잖게 말하자 카이사르의 말투가 무엄하다고 쫑알대더니, 신하들의 싸바싸바에 신이 나서 카이사르에게 폼페이우스의 잘린 목을 보여주면서 조롱하는데, 격노한 카이사르가 "조용하시오!"라고 일갈하면서[3]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에서 이러한 야만적인 일이 있다니 참으로 수치스럽군. 그는 로마의 집정관이었소!"라고 꾸짖자 겁에 질린다.
카이사르: 그대와 그대의 누이 사이의 분쟁은 반드시 종식되어야 하오. 로마는 이집트가 평화롭길 바라오. 이집트의 곡물 수송선들은 반드시 로마에 곡물을 공급해야 하오. This dispute between you both must end. Rome desires Egypt to be at peace. Your grain ships must keep sailing.
아킬리아스: 우린 이집트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에서부터 나일강 상류의 폭포들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We are in absolute control of the country, from the lighthouse to the cataracts.
카이사르: 훌륭하군. 그렇다면 나에게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인도하는 것에 문제가 없겠구려. Good. In that case, you should have no trouble in handing over Pompey Magnus.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저놈의 말투가 무엄하다. 나가라고 하라. I do NOT like his tone. He can go.
테오도투스: 주인님. 전에 아뢰었던 말씀이 기억나십니까? 악어와 여우에 관한 얘기 말입니다. 저자에게 우리의 깜짝선물을 보여주는게 어떨까요? Master, do you remember what we spoke of before? Of crocodile and fox? Let us show him our surprise.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좋아, 그렇게 하자. 보여주거라. Right, go on. Show him.
폰티누스: 가장 영광스러운 각하께 우리가 드리는 선물이 있습니다. 아마도 보시면 굉장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We have a gift for you, Glorious Excellency, that we think you will be very pleased with.
(노예가 잘린 폼페이우스의 목을 항아리에 담고 오더니 쟁반으로 옮겨 담음. 이를 카이사르의 얼굴이 일그러짐.)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이놈의 목에 몸뚱이를 만들어줄 것이야. 움직이는 팔다리가 달린 것으로 말이지. 그리고 진짜 동물들과 다른 소품들을 다 준비해서 인형극을... We were going to make him a body, with moving arms and legs, and do a mime show with real animals and everything...
카이사르: 조용하시오! Silence!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놀라서 물러섬)
카이사르: 이런 야만적인 일이 벌어지다니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의 수치로구려. 실로 수치요. Shame on the house of Ptolemies for such barbarity, shame.
폰티누스: 하지만 저자는 각하의 적이 아닙니까? But - you are enemies!
카이사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벽력같이) 그는 로마의 집정관이었느니라! HE WAS A CONSUL OF ROME!
(놀란 아킬리아스와 경비병들이 칼자루에 손을 댐)
카이사르: 로마의 집정관이었단 말이다... 이런 추악한 방식으로 죽고, 무슨 비천한 좀도둑처럼 참해지다니.... 수치스럽군! 그의 남은 유해는 어디에 있나? A consul of Rome. To die in this sordid way, quartered like some low thief... shame! Where is the rest of him?
폰티누스: 그...그게 남은 유해는 화장했습니다. 물론 모든 격식을 갖춰서 합당한 장례를 치렀고요. It - uh, he has been cremated. With all proper funeral rites, of course. With all decorum.
카이사르: 나는 내일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에는 너희는 폼페이우스의 목숨을 앗아간 자를 넘겨야할 것이다. I shall return tomorrow, at which time, you will give me the man that took Pompey's life.
하지만 다음날 다시 나타난 카이사르에게 범인은 달아났다고 둘러댄다. 카이사르는 그럼 찾아내라면서 동시에 공화국의 이름으로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빌린 돈을 받아내러 왔다고 하는데, 무려 1만 7천 드라크마의 상환을 요구하자 놀란 이집트 측은 4천이면 몰라도 1만 7천은 말도 안된다고 반발한다. 이에 로마 측은 이집트가 폼페이우스와 그 밖에 로마인들에게 빌린 돈들도 모두 갚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이집트는 그건 부당하며 로마법에나 있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카이사르의 대답이 압권이다.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법도 있느냐, 이 끔찍한 계집아?
그 꼴을 지켜보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빚문서를 카이사르에게 집어던지면서 "여기 받아가라"라고 반항하자, 카이사르는 "폐하께오서는 폐하께서 로마의 신하이심을 잊으셨군."이라고 팩폭을 날리는데 "난 왕이지 신하가 아니야!(Vassal? I'm no vassal! I am King!)"라고 소리치다 카이사르가 앉으라고 고압적으로 타이르자 쫄아붙는 장면이 압권. 권력 투쟁에서 패해 쫓겨난 누나 클레오파트라에게 심한 적개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누나가 카이사르의 명령으로 복귀하자 면전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얼어붙는 추태도 보여준다. 신하들의 도움으로 권력투쟁에서 이겼을 뿐 개인적 자질 면에서나 인간관계 측면에서나 클레오파트라에게 눌려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

결국 역사대로 카이사르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지만 패하고 강에 빠져 익사한 모습을 끝으로 퇴장한다.


[1] 별칭은 '테오스 필로파토르(Theos Philopator: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신)'.[2] 기원전 51년부터 기원전 48년까지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협치, 기원전 48년부터 기원전 47년까지는 클레오파트라 7세 및 아르시노에 4세와 협치.[3] 이때 키어런 하인즈가 스캇 키숄름에게 자신이 고함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기습하여 스캇 키숄름이 정말로 겁에 질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