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4대 파라오 메르넵타 Merneptah | ||
메르넵타의 모습[1]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메르넵타(Merneptah) | |
출생 | 기원전 1283년 | |
사망 | 기원전 1203년 (향년 80세)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1213년 ~ 기원전 1203년 (약 10년) | ||
전임자 | 람세스 2세 | |
후임자 | 세티 2세[2] | |
부모 | 아버지 : 람세스 2세 어머니 : 이제트 | |
배우자 | 이제트 2세, 타카트 | |
무덤 | 왕가의 계곡 KV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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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의 4대 파라오.그 유명한 람세스 2세의 후계자다. 아버지 람세스 2세가 90살까지 장수하면서 후계자들이 다 늙어 죽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었던 메르넵타가 겨우 왕위를 물려받았다. 메르넵타가 왕위에 오를 당시 그는 이미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이었다.
2. 통치
메르넵타는 람세스 2세와 그의 후실인 이세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13남이었다. 그는 자신의 친누이이자 공주였던 이세트 2세와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훗날 파라오가 된 세티 2세와 투스레트를 낳았다. 세티 2세는 또다시 누이인 투스레트와 결혼했다고 한다. 어째서 이런 막장 족보가 형성된 것이냐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가의 신성성을 보존하기 위해 근친혼이 대단히 유행했기 때문이다.[3]람세스 2세가 90살이 넘도록 대단히 오래 장수하면서 그의 아들들은 메르넵타를 제외하곤 전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래서 정상적이라면 파라오를 넘보지도 못했을 13번째 아들인 메르넵타가 어부지리로 파라오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메르넵타는 람세스 2세의 재위 40년 차에 군사령관으로 임명받았고, 후계 구도가 명확해진 재위 55년 차에는 마침내 공식적으로 왕세자에 임명되었다. 메르넵타는 이때부터 거의 공동으로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람세스 2세의 말년 12년 동안 국정을 도맡았다. 람세스 2세가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뒷선으로 물러난 것을 생각하면 이때는 거의 메르넵타의 통치기였다.
람세스 2세가 죽자 메르넵타는 마침내 유일한 파라오로 등극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이미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이었다. 게다가 메르넵타는 즉위 직후부터 점차 흔들리는 이집트 왕국을 다잡기 위해 분투해야만 했다. 아버지 람세스 2세 시절의 찬란한 최전성기가 지나가고, 지중해의 바다 민족들이 발흥하여 이집트 연안가를 약탈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다 민족의 사주를 받은 서쪽의 리비아 부족들이 이집트 서부 국경도시를 침공했고, 메르넵타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6시간에 걸친 대전투 끝에 이들을 몰아냈다. 특히 이 전투를 새긴 비석에는 메르넵타가 직접 전장에서 싸웠다고도 나와있다. 메르넵타는 6,000여 명을 죽이고 9,000여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이들의 포피(신체)와 손을 잘라 이집트로 개선했다.[4]
메르넵타의 재위기간에 만들어진 '메르넵타의 석비'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한다. 이때문에 '이스라엘 석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내용은 대강 메르넵타의 원정으로 인해 가나안 지방에 이스라엘인들의 씨가 말랐다는 내용이다.
3. 미라
왕가의 계곡 KV8 | 메르넵타의 미라 |
메르넵타의 미라를 조사해 분석해본 결과, 그는 10년 동안의 재위기간 동안 심각한 관절염과 동맥경화에 시달렸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메르넵타의 미라는 왕가의 계곡 KV8에 묻혔지만 그의 미라는 그곳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1898년에 빅토르 로렛이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을 발굴했고, 그곳에서 다른 신왕국의 파라오들과 함께 한꺼번에 안치되어 있었던 메르넵타의 미라를 발견했다. 1907년 7월 8일에 그의 미라를 공식적으로 부검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부검 결과, 메르넵타 미라의 키는 대략 171.4cm였고, 나이를 먹어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죽을 즈음에는 거의 완전한 대머리였다. 그나마 옆과 뒤쪽에 조금이나마 흰색 머리카락들이 있었지만 거의 대머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그의 입술 바로 위에 검은색 턱수염이 잘 다듬어진 채로 보존되어 있었고, 뺨에도 약간 수염이 있었다. 학자들이 메르넵타의 미라를 보고 남긴 기록에 따르면 얼굴의 생김새는 람세스 2세와 닮았지만 골격과 얼굴형은 조부인 세티 1세와 더 비슷했다고 한다.
메르넵타의 미라를 안치한 관 중 가장 바깥쪽 관은 엉뚱하게도 이집트 제3중간기의 파라오인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새로 관을 만들 여력이 없으니 무덤에서 몰래 꺼내 재활용했기 때문인데 혼란한 시기에는 후대 파라오들이 선대 파라오들의 무덤에서 부장품을 털어 재정에 보태쓰거나 자기 부장품으로 재활용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아예 다른 사람의 무덤 자체를 자기 무덤으로 쓰는 투장 사례도 흔했다.
2021년 4월, 메르넵타의 미라를 다른 신왕국의 미라들과 함께 카이로 박물관에서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옮겨 재안장했다.
4. 대중 매체에서
- 토탈 워: 파라오에서 캠페인 시작시 이집트 팩션의 파라오로 등장하며, 각 팩션 시작시 조언자로 등장한다. 플레이어블 팩션은 아니지만 세트나크테와 함께 논플레이어블 팩션 중 유이하게 이름으로 세력명칭이 붙었다. 토탈 워: 파라오 왕조에서는 플레이가 가능한 소규모 세력으로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시작할 때부터 나이가 많기 때문에 곧 사망한다.
[1] 메르넵타의 무덤에 그려진 그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이다.[2] 중간에 아멘메세스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4년 만에 세티 2세에게 진압되었다.[3] 심지어 메르넵타의 아버지인 람세스 2세는 자신의 큰딸과 결혼해서 아들 겸 외손주(...)를 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람세스 2세의 자식들이 전부 친자인지에 대한 논란도 생겼을 정도이다.[4] 특이하게도 바다 민족들 중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5] 참고로 이 왕궁은 1915년에 펜실베이니아 박물관 연구팀이 발굴했다.[6]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람세스 2세의 친아들이라는 설도 있다.[7] 본디 세티 2세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 결과 아멘메세스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