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3 18:16:38

타누타멘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0522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하이집트 <colbgcolor=#fff,#1f2023>헤주호르 니호르 흐세큐 카유 티우 테시 네헵 와즈너 하트호르 니네이스 | 메크 더블팔콘 워시
상이집트 | 핑거 스네일 피시 엘리펀트 스톡 전갈왕 1세 크로커다일 아이리 호르 전갈왕 2세 나르메르 메네스
제1왕조 나르메르 메네스 호르아하 제르 제트 메르네이트 아네지브 세메르케트 카아 스네페르카 호루스 바
제2왕조 헤텝세켐위 네브라 니네체르 누브네페르 호루스 사 웨네그 와제네스 세네지 세트 페리브센 세케리브 페렌마아트 네페르카레 1세 네페르카소카르 후제파 카세켐위
제3왕조 조세르 세켐케트 사나크테 네브카 카바 세제스 카하제트 후니
제4왕조 스네프루 쿠푸 제데프레 카프레 비케리스 멘카우레 솁세스카프 탐프티스
제5왕조 우세르카프 사후레 네페리르카레 카카이 네페레프레 솁세스카레 니우세르레 멩카우호르 제드카레 우나스
제6왕조 테티 우세르카레 페피 1세 메렌레 1세 페피 2세 메렌레 2세 니토크리스 네체르카레 네페르카 네퍼
제7왕조 멩카레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3세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4세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5세 네페르카호르
제8왕조 네페르카레 6세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와지카레 쿠이케르 쿠이 이체누
제9왕조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 네브카우레 케티 세투트 임호텝
제10왕조 메리하토르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제11왕조 멘투호테프 1세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 멘투호테프 2세 멘투호테프 3세 멘투호테프 4세
누비아 왕조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이이브켄트레
제12왕조 아메넴헤트 1세 세누스레트 1세 아메넴헤트 2세 세누스레트 2세 세누스레트 3세 아메넴헤트 3세 아메넴헤트 4세 소베크네페루
제13왕조 소베크호테프 1세 손베프 네리카레 세켐카레 아메니 케마우 호테피브레 이푸니 아메넴헤트 6세 세멘카레 네브누니 세헤테피브레 세와지카레 네제미브레 소베크호테프 2세 렌세네브 호르 세켐레쿠타위 카바우 제드케페레우 세브카이 세제파카레 웨가프 켄제르 이미레메샤우 세헤테프카레 인테프 세트 메리브레 소베크호테프 3세 네페르호테프 1세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와히브레 이비아우 메르네페르레 아이 이니 1세 상켄레 세와지투 메르세켐레 이네드 세와지카레 호리 소베크호테프 7세 이니 2세 세와헨레 세네브미우 메르케페레 메르카레 세와자레 멘투호테프 세헤켄레 산크프타히
제14왕조 야크빔 세카엔레 야아무 누부세르레 카레흐 아아호테프레 셰시 네헤시 카케레우레 네베파우레 세헤브레 메르제파레 세와지카레 3세 네브제파레 웨벤레 아위브레 2세 헤리브레 네브센레 셰케페렌레 제드케레우레 산키브레 2세 카케무레 네페리브레 카카레 아카레 아나티 제드카레 베브눔 아페피 누야 와자드 셰네흐 셴셰크 카무레 야카레브 야쿠브-하르
제15왕조 샤렉 셈켐 아페라나트 살리티스 사키르-하르 키얀 야나시 아페피 카무디
제16왕조 제후티 소베크호테프 8세 네페르호테프 3세 멘투호테피 네비리라우 1세 네비리라우 2세 세멘레 베비앙크 세켐레 셰드와스트 데두모세 1세 데두모세 2세 몬투엠사프 메란크흐레 멘투호테프 세누스레트 4세 페피 3세
아비도스 왕조 세네브카이 웨프와웨템사프 판트제니 스나아이브
제17왕조 라호테프 네브마아트레 소베켐사프 1세 소베켐사프 2세 인테프 5세 인테프 6세 인테프 7세 세나크텐레 아모세 세케넨레 타오 카모세
제18왕조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아케나톤 스멘크카레 네페르티티 투탕카멘 아이 호렘헤브
제19왕조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르넵타 아멘메세스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
제20왕조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제21왕조 스멘데스 1세 아메넴니수 프수센네스 1세 아메네모페 대 오소르콘 시아문 프수센네스 2세
제22왕조 셰숑크 1세 오소르콘 1세 셰숑크 2세 타켈로트 1세 오소르콘 2세 셰숑크 3세 셰숑크 4세 파미 셰숑크 5세 오소르콘 4세
제23왕조 하르시에세 A 타켈로트 2세 페디바스테트 1세 셰숑크 6세 오소르콘 3세 타켈로트 3세 루다멘 이니
제24왕조 테프나크트 바켄레네프
제25왕조 피이 셰비쿠 샤바카 타하르카 타누타멘
제26왕조 네코 1세 프삼티크 1세 네코 2세 프삼티크 2세 와히브레 아흐모세 2세 프삼티크 3세
제27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
제28왕조 아미르타이오스
제29왕조 네파루드 1세 하코르 프삼무테스 네파루드 2세
제30왕조 넥타네보 1세 테오스 넥타네보 2세
제31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아르세스 카바쉬 | 다리우스 3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32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 아르시노에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 베레니케 2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 아르시노에 3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 클레오파트라 1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 클레오파트라 1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복위)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클레오파트라 2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9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클레오파트라 4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베레니케 3세 프톨레마이오스 9세 (복위) 베레니케 3세 · 프톨레마이오스 11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 클레오파트라 5세 베레니케 4세 · 클레오파트라 6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 클레오파트라 7세 · 아르시노에 4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 클레오파트라 7세
세소스트리스 · 아이깁투스 · 사산 · 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 아바스 · 파티마 · 아이유브
맘루크 · 오스만 · 무함마드 알리 · 대통령
}}}}}}}}}}}}}}}


고대 이집트 제25왕조 제5대 파라오
타누타멘
Tanutamen
파일:Granite_Statue_of_King_Tantamani,_Sudan_National_Museum,_Khartoum_(3).jpg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타누타멘(Tanutamen)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653년경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664년경 ~ 기원전 653년경
(약 9년)
전임자 타하르카
후임자 아틀라네사[1]
부모 아버지 : 샤바카
어머니 : 칼하타
배우자 말라카예
무덤 엘-쿠루 16번 피라미드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쿠시 왕국 나파타 시대 7대 왕이자 고대 이집트 제25대 왕조 5대이며 마지막 파라오. 아시리아로부터 이집트를 되찾고자 시도했지만 끝내 패하고 누비아로 돌아갔다.

2. 행적

샤바카와 칼히타 왕비의 아들이다. 누이로 하레마케트, 피앙카티, 이세렘헤브가 있었는데, 이중 피앙카티를 첫번째 아내로 맞이했고 두번째 아내로 '(...)salka'[2]가 있었다. 세번째 아내로 말라카예를 들였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그는 아내들 사이에서 아들 아틀라네사, 딸 예투로, 칼리세트를 낳았다.

그는 즉위 첫해에 세운 석상에서 자신이 오른 손에 한 마리, 왼 손에 한 마리씩 두 마리의 뱀을 꽉 쥔 꿈을 꾸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하들이 "남쪽 땅은 이미 여위었으니 북쪽 땅을 제압하라"는 의미라고 해몽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로 볼 때, 그는 선대 파라오 타하르카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빼앗긴 이집트를 탈환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664년, 타누타멘은 군대를 소집한 뒤 나파타에서 출정해 북쪽으로 진군하여 엘레판티네 섬에 들러서 크눔 신의 축제 행렬에 참가했다. 이후 북쪽으로 진군헤 테베에 도착하여 다시 축제를 즐겼고, 뒤이어 멤피스로 쳐들어갔다. 아시리아가 파라오로 세웠던 네코 1세가 이에 맞서 항전했지만 끝내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고, 네코 1세의 아들 프삼테크 1세는 아시아로 도주했다. 그는 승리를 거둔 뒤 멤피스의 대신전에서 프타-소카르 신과 그의 아내인 사흐메트 여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나파타에 아문에게 헌정된 예배당을 짓도록 명령했다.

이후 나일강 삼각주로 진군한 타누타멘은 각 지역의 지배자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내고 그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프삼티크 1세와 함께 이집트로 쳐들어온 것이다. 그는 아시리아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 멤피스를 버리고 테베로 후퇴했고, 나일강 삼각주의 모든 통치자들이 아슈르바니팔의 발에 입을 맞추며 충성을 서약했다. 그 후 아시리아군은 테베로 진군해 타누타멘을 누비아로 쫓아냈다. 아슈르바니팔은 테베를 반 아시리아 운동의 중심지로 간주하고 철저한 파괴를 명령했다. 그가 세운 기념비에는 테베 약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아수르와 이스타르의 도움으로 테베 전체를 점령했다. 은과 금과 보석과 궁전의 모든 소유물과 여러 가지 색깔의 옷과, 아마포와, 큰 말과, 호박으로 도금한 2개의 오벨리스크와, 사원의 문 기둥을 그들의 근거지에서 가져다가 아시리아로 이송했다. 나는 테베를 파괴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전리품을 취했다. 이집트와 쿠시를 상대로 내 병사들이 분노하도록 내버려두었고, 나의 힘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성경 이사야 20장 3~6절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타누타멘은 이렇게 이집트에서 허망하게 쫓겨나 누비아로 돌아갔지만, 테베의 룩소르 신전은 여전히 쿠시 왕을 파라오로 받들고 그들의 딸을 여사제로 모셨다. 쿠시 왕국 초대 파라오 피이의 딸 셰펜베페트 2세는 아문의 신의 아내로 추앙되었고, 타하르카의 딸 아메니르디스 2세가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아메니르디스는 타누타멘이 축출된 후에도 8년간 룩소르 신전 여사제로 활동하면서 여러 비문을 남겼다. 그러나 프삼티크 1세가 대대적으로 쿠시 왕국의 흔적을 지우는 사업을 개시할 때 축출되어 조국으로 돌아갔다.

타누타멘은 누비아에서 통치를 이어가다가 기원전 653년에 사망했고 엘 쿠루-16 피라미드에 안장되었다. 오늘날에는 피라미드가 사라졌고 터만 남았지만, 그 밑에는 벽화로 장식된 입구와 방들이 남아있다. 쿠시 왕들은 이후로도 백여년간 파라오를 자처했지만, 다시는 이집트에 발을 들이지 못 했다.


[1] 다만 아틀라네사는 이집트 파라오의 직을 이은 것이 아니라 누비아 쿠시 왕국의 자리를 이은 것이다.[2] 이름이 적힌 석판의 앞글자가 훼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