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15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4세 Ptolemy XIV Philopator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프톨레마이오스 14세 Πτολεμαῖος | Ptolemy | |
출생 | 기원전 59년 |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
사망 | 기원전 44년 7월 16일 (향년 15세) |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47년 ~ 기원전 44년 (약 3년) | ||
전임자 | 프톨레마이오스 13세 | |
후임자 | 프톨레마이오스 15세 | |
부모 |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 |
배우자 | 클레오파트라 7세 | |
종교 | 이집트 다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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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15대 파라오. 명목상 클레오파트라 7세의 공동 파라오였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사망했다.2. 생애
기원전 59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며, 이복형제로 베레니케 4세, 클레오파트라 7세를 두었고, 동복형제로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아르시노에 4세를 두었다. 기원전 51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사망했다. 이때 그는 유언으로 로마 공화국이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클레오파트라 7세의 공동 통치를 보장해줄 걸 부탁하는 한편,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가 키프로스에서 공동 통치자를 맡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당시 키프로스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어 있었기에, 아르시노에 4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는 별다른 영지를 가지지 못했다.기원전 47년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승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익사시키고 클레오파트라 7세의 집권을 이룬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의 결혼 및 공동 파라오 등극을 주선하였으며, 키프로스를 이집트에 돌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인데다 신하들이 전부 클레오파트라 7세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꼭두각시 군주에 불과했다. 그러던 기원전 44년 3월 15일, 그를 파라오로 옹립시켜줬던 카이사르가 암살당했다. 그 후 그는 얼마 안 가서 사망했는데, 클레오파트라 7세가 아들 카이사리온을 파라오로 세우기 위해 독살했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증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