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17 13:35:33

필리포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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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기원전 359년
마케도니아 왕국 펠라
사망 기원전 317년
마케도니아 왕국 엠피폴리스
재위 기간
마케도니아
바실레우스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17년

1. 개요2. 생애
2.1. 즉위 전까지의 삶2.2.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되다2.3. 아내 에우리디케 2세와 섭정 안티파트로스2.4. 몰락과 죽음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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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케도니아 왕국 아르게아스 왕조의 27대 왕.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이복형. 본명은 그리스어로 아리다이오스(Αρριδαίος)로, 한국에서는 이쪽이 더 유명하다. 영어에서는 Arrhidaeus로 표기하며 발음은 '아리디어스'에 가깝다.

2. 생애

2.1. 즉위 전까지의 삶

어머니는 필리포스 2세의 여러 왕비 중 한 명인 라리사의 필리나로 외가는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3세와 거의 나이가 같은 이복형으로 서자였고, 잠시나마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드로스가 필리포스 2세와 사이가 험악해지면서 알렉산드로스의 대체 계승자로 지위가 올라갔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벼운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 지능도 모자란 탓에 아리다이오스가 후계자로 임명되거나 제왕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아리다이오스는 이복동생 알렉산드로스 3세로부터 심한 견제도 받지 않았고, 사이가 좋아 형으로 훌륭히 대접받았다. 왜냐하면 지능이 모자른데다 학습장애까지 겪고 있어 왕위 찬탈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왕 치세를 비롯해 이복동생 치세기인 기원전 336년부터 기원전 323년까지, 13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리다이오스는 왕의 형임에도 불구하고 군사권을 쥐거나 정치활동은 하지 않았다. 이는 상술했듯이 학습장애 등으로 인해 일찌감치 왕위 계승에서 밀린 것이 큰 요인으로 보이는데, 이런 이유 등으로 알렉산드로스는 왕실 내 다른 라이벌들을 제거할 때 그를 죽이지 않았다.

생전 알렉산드로스는 필리포스 3세를 각별히 아낀 탓에 전쟁 원정 당시 그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대왕이 이 사람을 데리고 함께 떠난 것은 인질 목적도 있기에 이를 문자 그대로 믿을 순 없고, 실제로 그는 인질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아무리 함량미달의 왕족이라고 해도 선왕의 아들이고, 왕족이라서 야심을 품은 반역자들에게는 허수아비 왕으로 좋은 패가 되었기 때문이다.

2.2.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되다

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323년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고 바빌론에서 사망했다. 이 당시 마케도니아에서 왕이란 '귀족 중 1인자'라는 의미도 있어 페르디카스, 멜레아그로스 등 여러 장군들이 회의 내내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를 누구로 삼을 지 논의했다. 그 결과, 여러 장군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이복형 아리다리오스를 '필리포스 3세'라는 왕호를 취하게 한 다음 왕으로 세웠다. 그런데 필리포스 3세는 정신지체가 있어서, 장군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후계자에 대해 필리포스 3세를 왕으로 세우면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이가 아들일 경우에는 그 아들과 공동왕으로 삼고, 딸이면 필리포스 3세가 단독 왕이 되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이때 알렉산드로스 3세의 서자 헤라클레스가 있긴 했는데, 그는 제외됐다. 이후 록사네가 낳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이가 아들이었기에 알렉산드로스 4세와 공동 왕이 되었다.

2.3. 아내 에우리디케 2세와 섭정 안티파트로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사망할 당시, 필리포스 2세가 첫번째 부인 아우다타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키나네(알렉산드로스 3세와 필리포스 3세의 이복누나)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리다이오스가 왕위를 차지하자 자신의 딸 에우리디케를 그와 결혼시키기 위해서, 함께 필리포스 3세가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키나네 공주는 기원전 323년 바빌론 회의를 통해 섭정이 된 페르디카스의 동생 아르케타스에게 피살되었다. 이 사건으로 마케도니아군이 상당히 분개했는데, 이를 심상치 않게 생각한 페르디카스의 중재와 주선으로 에우리디케가 필리포스 3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다.

바빌론 회의 이후, 알렉산드로스 후계자 문제와 지역 분할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이는 일시적이었고 바빌론에 머문 섭정(페르디카스)와 마케도니아에 있는 섭정(안티파트로스) 중 누가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섭정인지의 지위 해결 문제도 불분명한 상태였다. 당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살아있던 당시부터 본국인 마케도니아, 그리스 일대는 안티파트로스가 내정을 도맡아 처리했고 여러 장군들에게 인정받은 2인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페르디카스는 안티파트로스의 딸 니카이아와 정략결혼을 했다. 하지만 같은해, 대왕의 모후 올림피아스가 페르디카스에게 자신의 딸이자 대왕의 여자형제인 클레오파트라와의 결혼을 주선하면서 상황은 상당히 이상하게 흐르게 되었다. 올림피아스는 아들 알렉산드로스 생전부터 안티파트로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권력욕이 상당한 왕비였던 만큼 이 제안은 페르디카스에게 상당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이때 에우메네스는 페르디카스에게 사망한 대왕의 여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바빌론 외에는 아직 입지가 확실치 않은 그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는 페르디카스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는 니카이아와 이혼한 이후, 올림피아스의 딸 클레오파트라 공주와의 결혼을 추진했다. 그 결과, 페르디카스와 안티파트로스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안티파트로스가 마케도니아로 돌아가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 중 필리포스 3세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어 말 그대로 허수아비인 터라, 자연스레 왕실의 권력은 에우리디케 2세가 적극적으로 행사할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321년에 페르디카스가 여러 장군의 공격을 받고 살해되고 장군들이 서로 다투는 디아도코이 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트리파라디소스 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이집트에 있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페이톤과 자신의 부하 아리다이오스를 새 섭정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중 아리다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신을 이집트로 빼돌린 인물이었는데, 이런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속이 뻔히 보이는 요구에 필리포스 3세의 왕비 에우리디케 2세는 다른 장군들과 연합해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때 필리포스 3세의 아내이자 그 대변인 역할을 맡은 왕비 에우리디케 2세는
"새 섭정을 정하는 일에 있어 내 허락없이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는 발언을 하면서 페이톤과 아리다이오스가 나란히 사임하는 일련의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 후보로 안티파트로스가 거론되었는데, 여기서 에우리디케 2세는 섭정에게 넘어간 왕실 권력의 탈취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실패했고 여러 장군과 귀족들로 구성된 기병의 지지를 받은 안티파트로스가 새 섭정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안티파트로스는 필리포스 3세를 중심으로 제국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4. 몰락과 죽음

필리포스 3세는 기원전 321년 트리파라디소스 협약이 체결되자 바빌론에서 마케도니아로 옮겨져 펠라로 돌아왔다. 이런 가운데 안티고노스 1세가 에우메네스를 궁지로 몰아넣기 시작했고 기원전 319년 섭정 안티파트로스가 자연사했다. 따라서 다시 힘의 불균형이 생겨 디아도코이 간의 전쟁이 발생했다.(제2차 디아도코이 전쟁)

안티파트로스는 사망 전, 자신의 후임으로 폴리페르콘을 지명해 섭정 자리를 내줬다. 이는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을 기대한 아들 카산드로스를 실망케했고 그가 반기를 든 이유가 된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안티고노스 등 다른 디아도코이들도 폴리페르콘을 섭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이에 카산드로스는 안티고노스, 프톨레마이오스와 동맹을 맺었다. 이에 폴리페르콘은 수개월째 노라 요새에 칩거 중인 에우메네스와 동맹을 맺었고 카산드로스는 기원전 318년 폴리페르콘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둘의 대결은 폴리페르콘이 기원전 317년 마케도니아에서 완전히 축출되면서 카산드로스의 승리로 끝나는데 이때 폴리페르콘은 에페이로스로 피신하면서 록사네와 알렉산드로스 4세를 데리고 갔다.

반면 필리포스 3세와 에우리디케 2세는 여전히 수도 펠라에 남았는데, 그들은 카산드로스와 동맹을 맺었다. 이때 에우리디케 2세는 필리포스 3세를 설득해 카산드로스를 마케도니아의 섭정으로 삼았고, 그 대가로 카산드로스는 에우리디케 2세에게 마케도니아를 직접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후 카산드로스는 아테네로 원정을 갔는데, 기원전 317년 올림피아스가 자신의 조카인 에페이로스 왕 아이아키데스, 옛 섭정 폴리페르콘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마케도니아를 점령했다. 당시 카산드로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머물고 있어서, 마케도니아군은 필리포스 3세와 에우리디케 2세가 지휘했고 에우리디케 2세는 갑옷을 입고 군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전선 형성 후, 폴리페르콘과 올림피아스가 어린 알렉산드로스 4세를 마케도니아 병사들에게 공개하며 그 사기를 꺾었고 필리포스 3세 부부 휘하 병사들이 항복하면서 제대로 된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후 필리포스 3세는 에우리디케 2세, 카산드로스의 동생 니카토르와 함께 암피폴리스까지 도망가다가 붙잡혔다.

필리포스 3세는 2개월 동안 구금되었다가 12월에 처형되었으며, 아내 에우리디케 2세 역시 남편이 처형된 직후 올림피아스에게 자살을 강요당해 죽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카산드로스의 동생이자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니카토르 역시 처형되었다. 이에 카산드로스는 즉시 올림피아스를 공격했다. 그 결과, 올림피아스는 카산드로스에 의해 몰락하게 되었고, 생포되어 필리포스 3세 부부를 죽인 반역죄로 처형되었는데(기원전 316년), 이후 알렉산드로스 4세와 록사네까지 기원전 310(또는 기원전 309년) 카산드로스에 의해 독살되었다.[1]

카산드로스는 필리포스 3세 부부와 키나네를 마케도니아 왕과 왕비, 공주로서의 장례로 치러주었다. 따라서 필리포스 3세는 에우리디케 2세, 키나네와 함께 아이가이 무덤에 묻혔다.

3. 여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는 원래는 정상인이었으나 알렉산드로스의 모후 올림피아스가 독약을 먹여 정신이상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그의 행동이나 외모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 아마도 다운증후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 이후 카산드로스는 폴리페르콘에게 뇌물을 주며 대왕의 서자 헤라클레스까지 독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