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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고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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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고왕국
Old Kingdom of Egypt
파일:oldkingdomofegyptmap.gif
이집트 고왕국의 영토
기원전 2686년 ~ 기원전 2181년
위치 이집트
수도 멤피스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제정일치
국가 원수 파라오
주요 파라오 조세르[1]
쿠푸[2]
페피 2세[3]
인구 160만 명 (기원전 2500년)
언어 고대 이집트어
종교 고대 이집트 종교
주요 사건 기원전 2686년 이집트 제3왕조 시작
기원전 2613년 이집트 제4왕조 시작
기원전 2589년 쿠푸 즉위
기원전 2494년 이집트 제5왕조 시작
기원전 2345년 이집트 제6왕조 시작
기원전 2181년 고왕국 시대 종료
성립 이전 이집트 초기 왕조
종료 이후 제1중간기

1. 개요2. 역사

[clearfix]

1. 개요

기원전 2686년부터 기원전 2181년까지 지속된 고대 이집트의 시대 구분. 제3왕조부터 제6왕조까지가 고왕국에 해당한다.

문명의 기틀이 잡힌 초기 왕조 시대가 끝나고 들어선 고왕국 시대에는 본격적인 문화 발전과 함께 대대적인 건축 돌풍이 일어났다. 특히 고왕국 시대는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의 황금기라 불리는데, 이집트의 랜드마크인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지은 쿠푸 왕이 바로 고왕국에 해당하는 제4왕조의 파라오이다. 쿠푸 이후에도 카프레, 멘카우레가 기자에 피라미드들을 각자 하나 더 지으면서 현재 기자에서 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등 제4왕조의 파라오들은 활발한 교역과 정복 전쟁을 통해 고왕국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오랜 번영을 누린 이집트 고왕국은 제6왕조 시기의 페피 1세 시절까지 번영을 누렸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재위한 페피 1세는 탁월한 내치와 외교 능력을 가지고 고왕국의 성세를 유지했으며, 덕분에 이집트는 제4왕조 이래 기나긴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고왕국 역시 페피 1세 사후 시름시름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즉위한 페피 2세는 페피 1세와 이름은 같았으나 그 능력은 선대에 비해 훨씬 못한 인물이었다. 곳곳에서 총독과 관리들이 할거하며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각지의 신전들이 막대한 토지와 노예들을 기반으로 힘을 불리며 파라오의 명령을 무시했다. 더욱 문제였던 것은 무능한 페피 2세가 무려 94년이라는 어마어마하게 오랜 세월 동안 왕좌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파라오가 지나치게 오래 장수하자 후계 구도가 흔들렸고, 왕가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결국 페피 2세가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8왕조가 설립됨과 동시에 이집트에 혼란의 시대인 제1중간기가 도래했다.

2. 역사

파일:_dsc8617.jpg파일:egypt-cairo-pyramids-of-giza-and-camels-2.jpg
제3왕조의 시조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제4왕조 시대에 건설된 기자의 대피라미드[4]
최초의 파라오 나르메르가 상•하이집트를 통일하고 이집트 초기 왕조를 세웠다. 초기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카세켐위 이후 새롭게 즉위한 파라오인 조세르 시기 이래 고대 이집트에서는 본격적으로 피라미드들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그 이래로 이집트 문화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거대한 문명권을 형성하였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조세르 이후의 이집트를 고왕국 시대라고 부른다. 제2왕조 최후의 파라오인 카세켐위의 아들로 제3왕조를 개창한 조세르는 대략 29년 정도 재위하면서[5] 사카라에 계단식 피라미드들을 건설하고 시나이 반도로 군대를 보내 해당 일대를 정복하며 구리터키석 등 귀중한 광물들이 나는 광산들을 획득했다. 또한 여러 대도시들에 대대적인 건설 작업을 실시하는 업적을 남겼으며, 명재상 임호텝[6] 도움을 받아 나라를 크게 진흥시켰다. 특히 마스타바 형식[7]의 무덤에서 벗어나 피라미드라는 건축물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등 이집트 건축학적으로도 나름의 전환점을 일군 파라오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세르 사후 아들 세켐케트가 제2대 파라오가 되었으나 6년 만에 사망했고, 세나케트, 카바. 후니 등이 연달아 왕좌를 거쳐갔다. 이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제3왕조 마지막 파라오 후니가 24년 간의 재위기를 마치고 사망하자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고, 스네프루가 새로운 파라오가 되었다.

파라오 스네프루는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의 황금기로 불리는 제4왕조를 열었다. 스네프루는 몇 십여년 동안 재위하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많은 피라미드들을 건축했다는 점이다. 특히 아래쪽과 위쪽의 경사가 달라 '굴절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독특한 모양의 피라미드가 유명하며,[8] 그 외에도 마이둠 피라미드, 다슈르의 붉은 피라미드 등 여러 피라미드들이 스네프루의 재위기에 건설되었다. 스네프루는 이와 같은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에 갈아넣을 인부들을 구하기 위해 타국들을 활발히 침공했고, 수많은 노예들을 포로로 잡아 끌어와 이집트에 살도록 만들었다고도 한다.[9] 스네프루 사후 파라오가 된 인물이 바로 쿠푸이다. 유명한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주인공인 바로 그 쿠푸 왕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등재될 정도로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무지막지한 규모의 피라미드들을 세우며 파라오의 권위를 만방에 떨쳤다. 쿠푸는 피라미드 건설 외에도 귀중한 광물들을 찾기 위해 팔방으로 탐험대와 병사들을 보내 개척 작업을 실시했고, 주변의 수많은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집트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고 한다.[10]

쿠푸가 기원전 2566년에 사망하자 제데프레가 새로운 파라오가 되었다. 제데프레가 8년간 재위한 뒤 세상을 떠나자 쿠푸의 또다른 아들 카프레가 왕위에 올랐다. 카프레는 아버지 쿠푸의 선례를 따라 거대한 피라미드를 짓고 싶어했다. 그는 즉위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쿠푸의 대피라미드 옆에 그에 필적할 만한 장대한 규모의 피라미드를 지으니, 이곳이 바로 기자에서 2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카프레의 피라미드이다.[11] 카프레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자 쿠푸의 손자인 멘카우레가 등장했다. 멘카우레 역시 아버지 카프레와 할아버지 쿠푸처럼 자신만의 피라미드를 지었다. 멘카우레가 지은 피라미드는 기자의 피라미드 3개 중 가장 규모가 작았지만[12] 멘카우레 사후 그의 피라미드를 능가할 만한 피라미드는 더이상 지어지지 않았다. 멘카우레가 사망하자 제4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였던 솁세스카프가 즉위했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으며, 고작해야 멘카우레의 장례신전을 완공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이렇게 제4왕조는 대피라미드 등을 포함한 수많은 대작들을 남기고 파라오들은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기에 보통 제4왕조 시대를 고왕국의 황금기로 본다.

솁세스카프 사후 우세르카프가 새로운 파라오가 되니 이를 제5왕조의 시작으로 친다.[13] 우세르카프는 대략 7~8년 정도 재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세르카프 시기 이집트에서는 에 대한 숭배가 굉장히 강해짐이 특징이다. 이전까지 라가 꽤 강력한 만신전의 신들 중 하나에 머물렀다면, 제5왕조 시대부터는 유일한 태양신이자 최고신으로서 숭배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세르카프는 그 외에도 에게 해 너머의 그리스 지방과도 서서히 교류를 텄고, 남쪽으로는 누비아를 정벌하는 등 여러 업적들을 남겼다. 우세르카레가 죽자 사후레가 새로운 파라오에 올라 제5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사후레는 레바논 지방으로 해상 원정대를 보내어 백향목을 찾아오게 하는 등 확장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으며 심지어는 저 멀리 푼트 지방까지 손길을 뻗치기까지 했다. 그의 통치 내내 제5왕조는 국력의 절정을 달렸다. 수많은 외교사절단이 찾아와 파라오 앞에 무릎을 꿇었으며, 바다에 관심이 많았던 파라오 덕에 해군이 강화되는 등 이집트에서는 본격적인 국력 성장이 이루어졌다. 또한 능력주의를 중시하여 비왕족인 사람을 수상에 앉히기도 했고, 곳곳에 태양신전을 짓는 한편 아부시르 지방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세웠다.[14]

사후레가 죽은 후 제3대 파라오로 즉위한 인물은 사후레의 장자였던 네페리르카레 카카이였다. 네페리르카레는 8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재위했으나, 특유의 자비로운 성격과 관용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이집트는 사후레 시절의 영광을 네페리르카레의 재위기에도 그대로 누릴 수 있었다. 네페리르카레 이후 네페레프레, 솁세스카레가 연이어 즉위했으나 둘다 10여 년 정도 밖에 재위하지 못하고 별다른 업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나마 솁세스카레의 후계자인 니우세르레에게 특기할 만한 기록이 있는데, 니우세르레는 레반트, 누비아,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한편 이집트 역사상 처음으로 각지에 파라오의 대리인들을 파견하는 등 체계적인 행정 제도를 갖추고, 아부시르의 왕실 묘지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립하는 등 여러 업적들을 남겼다.[15] 니우세르레 재위기 이집트에서는 점차 관료제가 정착되어 갔으며, 이전보다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고 전해진다. 니우세르레가 죽자 멘카우호르, 제드카레가 연달아 즉위했다. 멘카우호르와 제드카레 역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시나이 반도누비아 지방에 광산들을 찾기 위해 탐사대를 파견했다는 것 정도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드카레는 넓은 땅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중앙집권 체제에서 지방분권 체제로 일부 변경했는데, 이는 제1중간기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제드카레가 죽자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가 즉위했고, 우나스는 대략 15~30여 년 정도를 재위하다가 사망했다.

제6왕조의 초대 파라오인 테티는 약 12년 정도를 재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테티가 친위부대에 의하여 살해당한 직후, 직계 후계자였던 페피 1세가 지나치게 어렸던 탓에 왕좌는 우세르카레에게 일시적으로 넘어갔고, 우세르카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페피 1세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페피 1세의 즉위 직후 이집트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왕권이 흔들렸고, 각지에서는 반군들이 할거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페피 1세는 궁정 쿠데타를 진압하는 한편 행정구역 개편을 통하여 왕권의 재정립에 성공했고, 재위 중후반기부터는 오히려 누비아 일대에 굉장히 공격적인 군사 원정을 펼칠 정도로 이집트의 국력을 회복시켰다. 페피 1세는 누비아 외에도 시나이 반도, 레반트 일대까지 멀리 원정군을 파견했다. 페피 1세는 비블로스를 포함해 레바논의 도시들과 무역을 전개해 귀중한 광물과 백향목 등을 수입했고, 내정에서는 세제 개혁과 동시에 사원에 바치는 세금은 면제해 주는 등 꽤나 안정적인 국정 수행을 이루어나갔다. 참고로 페피 1세는 무려 40여 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왕좌를 차지하는 등 굉장히 장수한 파라오였다고 전해진다. 현군이자 명군이었던 페피 1세가 이렇게 오랫동안 왕위를 틀어쥐고 있었던 덕분에 페피 1세 치하의 이집트는 제4왕조 이래 시작된 전성기를 계속 누릴 수 있었고, 수많은 인근 국가 및 부족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교역하면서 경제 역시 빠르게 발전했다.

페피 1세가 죽자 아들 메렌레 1세가 왕위에 올랐다. 메렌레 1세는 얼마가지 못해 6년 만에 사망했고, 메렌레 1세의 뒤를 이어 페피 2세가 새로운 파라오가 되었다. 페피 2세는 아버지 페피 1세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군주였지만 정작 치세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페피 2세 시기 이집트 고왕국은 급속도로 쇠락하기 시작했는데, 지방의 총독들이 점차 파라오에게 반기를 들고 독립적으로 행세했으며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귀족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왕권이 지나치게 약화된 것이다. 게다가 옛날부터 이미 면세 혜택을 얻은 신전들이 막대한 노예와 황금을 거머쥐고 빠르게 성장하면서 왕권의 약화를 부채질했다. 페피 2세는 재위 말년에 남부 상이집트를 총괄하는 재상, 북부 하이집트를 총괄하는 재상 이렇게 2명의 재상을 두었고, 이는 결국 수도 멤피스의 중앙정부가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을 크게 감소시키는 결과를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더더욱 심각했던 것은 무능한 페피 2세가 무려 94년이라는[16]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장수했기에[17] 이집트가 끝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페피 2세가 죽자 메렌레 2세, 네체르카레가 연달아 즉위했으나[18] 이미 망조가 든 제6왕조를 일으켜세우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기원전 2181년에 멘카레가 새로운 파라오가 되어 제8왕조를 개창했다.[19] 이와 함께 약 500여 년 간 지속된 이집트 고왕국 역시 그 종결을 고하고 극심한 난세인 제1중간기에 돌입했다.
[1] 제3왕조의 초대 파라오. 본격적인 피라미드 건설을 시작했다.[2]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건설자인 제4왕조의 파라오.[3] 무려 94년 동안 재위한 무력했던 제6왕조의 파라오.[4] 왼쪽부터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실제로는 쿠푸의 피라미드가 제일 높으나 카프레의 피라미드가 조금 더 높은 지반 위에 세워져 있어 조금 더 높아 보인다. 외벽의 대리석이 윗부분에 약간 남아있는 것이 바로 카프레의 피라미드.[5] 19년이라는 설도 있다.[6] 영화 <미이라 시리즈>에 나오는 그 이모텝의 모델이 맞다. 물론 영화 내부의 흉물스러운 모습과는 다르게 역사적으로는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 후대에 건축과 공학의 신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의술, 천문학, 철학 등에 조예가 깊었다.[7] 피라미드가 등장하기 이전 단계의 무덤 형태. 건물 지하에 무덤을 파고 관을 안장하는 형식이었다.[8] 처음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는 경사가 급하게 지어졌으며, 공사 진행 도중 지나친 하중 때문에 지반이 침하되자 어쩔 수 없이 상부의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경사를 낮게 만들어 높이를 줄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9] 특히 리비아 지방에서는 포로 약 1만 1천여 명과 소 1만 3100여 마리를 끌고 왔다는 기록이 있다.[10] 이집트의 후대 파라오들은 대피라미드를 세운 쿠푸를 엄격한 명군 정도로 평가했다. 다만 그리스의 헤로도토스 등 일부 고대 사학자들은 쿠푸에 대해 좋게 기록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는 쿠푸를 피라미드 건설에 수많은 노예들을 강제 동원한 폭군으로 묘사했다.[11] 현재 위쪽에 대리석 마감재 외벽이 약간 남아있는 피라미드가 바로 카프레의 피라미드이다. 더 높은 지반 위에 지어져있다보니 부왕 쿠푸의 대피라미드보다 더 높아 보인다.[12] 헤로도토스는 멘카우레가 쿠푸 이래 벌어진 지나친 토목 공사 때문에 국력이 상당히 약해진 이집트 왕국을 물려받았다고 적었다. 이 때문에 멘카우레의 재위기 이집트는 이전보다 훨씬 사회가 위축된 상황이었다고 했다.[13] 참고로 이집트의 왕조 분류는 팔레르모 석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신관 마네토가 쓴 왕조 《연대기》를 기준으로 한다.[14] 사후레의 피라미드는 아직도 남아있다. 그 크기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의 것에 비하면 훨씬 작으나 그 내부의 정교함은 더욱 뛰어나다.[15] 한편 니우세르레는 파라오가 죽었을 때 진행하는 장례 절차와 예식들의 세부 사항을 확실하게 정립해 놓았다고 한다.[16] 비판적인 학자들은 65년 정도로 낮게 잡기도 한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기나긴 재위기간이다.[17] 이 때문에 역사상 제일 오랫동안 재위한 군주라고 칭하기도 한다.[18] 헤로도토스는 메렌레 2세가 암살당한 직후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인 니토크리스가 즉위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고, 니토크리스가 네체르카레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 등 존재 여부가 확실치는 않다.[19] 제6왕조와 제8왕조 사이에 있는 제7왕조의 경우, 대신관 마네토의 《연대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역사적 사료도 존재하지 않기에 보통 고고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제7왕조가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제6왕조와 제8왕조 사이의 과도기 정도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