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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랍어 : صان الحجر (산 엘-하가르)
1. 개요
이집트 제3중간기에 속하는 제21, 22왕조의 수도였다. 이집트 북부 델타(Delta)주의 북동쪽을 흐르는 나일강의 타니 지류(Tanitic)에 있는 도시로 오랜 시간에 걸친 침적으로 이루어진 지형이자 삼각주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고대 이집트 유적지 중 하나이다. 만수라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져 있다. 고대 이집트 시기 지명은 자네트였다. 본래 신왕국 시절 이집트의 수도는 람세스 2세가 건설한 피-람세스였으나 나일 강의 물줄기가 세월이 흐르며 바뀌어서 피-람세스가 항구 기능을 상실하자 대체 수도로 선정되었고, 건설을 위한 자재는 피-람세스에 있던 것들을 재활용했다.참고로 현재 있는 타니스 유적지는 원래의 타니스가 아니다. 발견된 건축물과 기념비들은 타니스였지만, 발견된 위치와 유적 규모 및 구조 등에서 기록에 있던 타니스와 여러 모로 딴판이었던 것.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았었는데, 한참 뒤에 전혀 다른, 기록에 남아있던 타니스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서 기록된 모양대로 땅 속에 묻힌 타니스의 터전이 발견됐다. 왜 이렇게 됐냐면, 처음 타니스가 지어진 후 수백년이 지난 후에 타니스를 흐르던 강의 위치가 변하면서 도시를 옮겼는데 원래 타니스에 있던 석재 집/건축물을 몽땅 새 도시로 옮겼고 그 이후에 새 타니스에 있던 강이 다시 변하면서 이번에는 그대로 버리고 간 결과였던 것.
이곳을 수도로 삼은 제21왕조와 제22왕조의 파라오들은 이곳에 왕실 묘지를 조성했고, 이집트학자들은 이를 NRT라 하는데, 파라오들의 무덤 중 유일하게 도굴을 한번도 당한 적이 없는 무덤인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이 NRT-3에서 발굴되었다. 하지만 발굴 시기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었던 1939~1940년이었고,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부장품과 비교하면 부장품의 양이나 질도 많이 떨어지고 무덤의 위치가 나일강 삼각주 유역이다보니 오랜 세월에 걸쳐 물에 잠겼다가 빠지기를 반복해서 목재로 만든 유물이 다 썩어 없어지고 벽화의 색도 빠저버리는 등 손상이 심각해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