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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덴데라에 소재한 고대 이집트의 신전. 에드푸 신전과 함께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이집트 신전 유적지들 중 하나로 꼽힌다. 모시는 신은 사랑의 여신 하토르다.원래부터 하토르 여신의 성지로 유명했고, 중왕국 시대와 신왕국 시대에도 하토르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건물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망하고 들어선 로마 제국 시절에도 여전히 중요한 신전들 중 하나였기에 티베리우스나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에 개축 공사를 하기도 했다. 다만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며 고대 신전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났고, 결국 하토르 신전도 버려지고야 말았다. 이후 1800년대 들어 재발굴되었고 현재는 덴데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들 중 하나다.
2. 구조
덴데라 신전군의 전체 구조도.
덴데라 신전 자체는 나일 강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지형에 지어졌다. 일단 덴데라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고대 로마 시대에 깔린 석조 보도와 열주들이 서있다. 트라야누스 황제와 도미티아누스 황제 등의 재위기에 지어졌으며, 이 보도를 따라 쭉 올라가면 신전군이 나온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 옆에 버티고 선 탑문 2개는 현재 대부분 파괴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
탑문 바로 뒤에는 로마인들이 지은 '생명의 집'이 있다. 이름은 거창한 생명의 집이지만 사실상 그냥 부속 사원이다. 네로 황제 시대에 처음 지어졌고 트라야누스 황제가 개축했다. 생명의 집 자체는 덴데라 신전 본건물과 높이를 맞추기 위해 기단 위에 지어졌고, 전형적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건축 방식을 따랐다. 건물 내부에는 총 3개의 방이 있고 중앙의 방이 가장 거대하다. 세 방은 2개의 낮은 복도로 나뉘는데, 실제로 통행하기에는 지나치게 낮고 불편해서 아마 시각적인 장식 용도로 쓰였을 것이라고. 성소의 맨 뒷벽에는 가느다란 기둥들이 이중으로 열을 지어 둘러친 모습이며, 벽 한가운데에는 우라에우스가 장식된 거대한 가짜 문이 있다. 이 가짜 문은 곧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영혼들이 드나드는 문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소의 벽 주위에는 상당히 아름다운 부조들이 가득 새겨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트라야누스가 어린 호루스이자 파라오로 묘사된 부조다. 하토르 여신이 어린 호루스, 곧 신격화된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직접 젖을 먹이고 있는 장면이 유명한 편이다. 로마인들이 새로 지었던 생명의 집 뒤에는 원래 이집트인들이 쓰던 '생명의 집'이 따로 있다. 로마인들이 새 건물을 짓기 전에는 이 건물을 주로 사용했는데, 모습은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로마인들이 지은 게 조금 더 크다. 난쟁이 신 베스의 형상이 곳곳에 새겨져 있으나, 현재는 상당 부분이 허물어진 상태다. 내부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들이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건물 자체는 겉은 거대한 사암 암석으로, 내부는 진흙 벽돌으로 채워넣었다.
로마인들이 지은 생명의 집과 원래 이집트인들이 쓰던 생명의 집 사이에는 기원후 5세기 경에 지어진 콥트 교회 건물이 하나 있다. 덴데라 신전의 암석들을 채석해서 지은 건물인데, 보존 상태는 상당히 훌륭한 편. 이 건물조차도 1,500년이 넘은 건물인데다가 당시 콥트 교회 건물의 전형적인 예시이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
이집트인들의 생명의 집 뒷편, 즉 생명의 집과 덴데라 신전 본건물 사이에는 '사나토리움'이라는 건물군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 사원에서는 신전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몸을 씻고 정결히 하는 게 필수였는데, 사나토리움은 신자들을 위한 목욕탕 겸 숙소 비슷한 역할을 했다. 내부에는 물이 채워진 목욕탕이 있었고, 그 옆에는 벤치가 있어 누워있을 수 있었다. 신자들이 몸을 씻고 벤치에 누워 있으면 사제들이 축복을 내리거나 치료를 해주었다. 특히 이 곳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상이 있었는데, 이 신상 위에 물을 부은 뒤 신상 위로 흘러내린 물을 받아서 썼다. 신상의 신성한 기운을 받아 물이 정화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부 모습. 푸른 채색이 그대로 남아있다. | 지하 2층의 지하실. |
하토르 신전 자체는 기원전 54년에서 기원전 20년까지 대략 34년에 걸쳐서 지어졌다. 아마 클레오파트라가 살아있었을 당시에도 쭉 공사를 하고 있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신전 건물은 높이 12.5m, 가로 59m에 세로 35m이며 고전적인 이집트 신전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가장 독특한 점이라면 기둥주에 하토르 여신의 머리 장식이 새겨졌다는 것이다. 여신의 얼굴이 한 면에 하나씩 기둥당 총 4개가 새겨져 있는데, 원래는 가발 부분은 푸른색 염료로 칠해져 있었다. 얼굴은 우상숭배를 금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영향 탓에 모조리 훼손됐다. 실제로 신전을 돌아다녀봐도 얼굴이 멀쩡히 남아있는 장식이 없다.
여신의 얼굴 부분은 많이 훼손됐지만 의외로 내부 벽화는 대부분이 채색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로마 시대에 도입된 황도와 천궁도, 별자리와 누트 여신의 모습이 유명한 축에 속한다. 하늘을 표현한 푸른색 염료가 그대로 남아있어 사료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두터운 기둥들이 연달아 서있는 거대한 다열주홀을 통과하면 내부 홀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내부 홀에도 역시 하토르의 얼굴이 새겨진 6개의 기둥들이 세워졌고, 기둥 받침대와 하부는 화강암으로, 내부와 천장은 사암으로 지었다. 홀의 벽에는 파라오가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양쪽에는 제사를 준비할 때 쓰던 작은 방들이 줄줄이 딸려있다. 예를 들어 한 방은 신상에 바를 연고와 향유를 제조하는 데 사용했고, 한 방은 제사에 쓸 성수를 떠올 우물로 연결되는 방이다.
6개의 기둥들이 세워진 방마저 통과하면 엔네아드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던 방이 나온다. 신전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하토르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들의 동상이 서있었기에 '엔네아드의 홀'이라고도 부른다. 이 홀 한가운데에는 따로 높은 벽을 둘러쳐 5.7m x 11.22m 정도의 성소를 구분해놨다. 우라에우스로 장식된 사원이 올라간 방주 모형이 성소 한가운데에 남아있다. 고대 이집트 시절에는 이 방주 모형 한가운데에 금으로 만든 하토르 여신의 신상이 자리했을 거라고. 성소의 벽에는 파라오가 여신에게 신성한 구리 거울을 바치는 모습, 그리고 여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 따위가 정교히 새겨졌다.
성소 아래에는 총 14개나 되는 지하실이 있다. 14개 지하실들 중 11개에 빽빽하게 부조가 새겨져 있고 이름도 붙어있다. 신전에 지하실을 짓는 건 제18왕조 시대부터 이어져온 풍습이지만, 이정도로 많은 수의 지하실을 지은 경우는 상당히 희귀하다. 신전의 보물을 보관하기도 했으며, 파피루스 문서를 보관하거나 제사품들을 쌓아놓는 등 다양한 용도로 썼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뒤로 갈수록 지반이 낮아지는 것이 전통이었는데, 이때문에 가장 낮은 지하실은 심지어 지하4층까지 내려간다.
덴데라 신전 본건물 뒷쪽에도 볼거리들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인 카이사리온의 부조다. 카이사리온을 묘사하는 부조들이 거의 없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희귀한 부조다. 이 부조가 새겨진 맨 뒷쪽 벽은 역으로 성소와 가장 가까운 벽이라는 특징 때문에 순례자들이 수백년에 걸쳐서 긁어가는 바람에 상당 부분 사라지고야 말았다. 그 외에도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작게 지어진 이시스 여신의 신전, 그리고 순례자들이 몸을 씻고 물을 뜨던 성스러운 호수가 아직도 남아있다.
3. 천궁도
천궁도의 실제 모습. | 채색복원한 고대의 추정 모습. | 천궁도로 복원한 당시의 하늘 모습. |
덴데라 천궁도는 당대 고대 로마 시기의 밤하늘 모습을 그대로 새겨놓았다. 중심에는 북극성이 자칼의 모습으로 새겨졌고, 내부에는 황도와 천궁이 새겨졌다. 양자리, 황소자리, 전갈자리, 염소자리처럼 유명한 일부 별자리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기호로 표시되어 있으며 나머지 별자리들은 상당수 고대 이집트식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물병자리는 고대 이집트식으로 범람의 신 하피가 물이 터져나오는 2개의 물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천궁도의 바깥쪽에는 4명의 여인들과 4쌍의 매머리 남자들이 45도마다 배치된 채로 손을 들어올려 천궁도를 떠받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바로 위에는 총 36명의 인물들이 고대 이집트식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이건 고대 이집트인들이 하루를 40분씩 총 36등분하여 시간을 재던 걸 형상화한 것이다. 그 외에 1년 365일을 10일씩 총 36등분한 것과도 상관이 있다고 한다.[2] 이렇게 하늘을 원형으로 새긴건 당대 고대 이집트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표현 방식이었는데, 당시에는 하늘을 직사각형의 틀 안에 넣어 그렸다. 즉 원형으로 둥글게 별들을 배치하는 모습은 굉장히 획기적인 표현방식이었다는 뜻이다.
참고로 이 천궁도 자체는 덴데라 신전이 아니라 프랑스에 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 이 천궁도를 발견하고 흥분한 프랑스인들이 탁본을 떠서 유럽으로 보냈고, 이 탁본은 유럽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천궁도가 점성술과 관련이 있는지 천문술과 관련이 있는지 논란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결국 부르봉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이후인 1821년에 프랑스 골동품상이 다이너마이트와 끌로 천궁도 조각 전체를 떼어갔다. 1822년에는 루이 18세의 명으로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었으며 1922년에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까지도 거기서 전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