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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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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CJ 회장 손경식 孫京植|Sohn Kyung-shi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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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출생 | 1939년 9월 15일 ([age(1939-09-15)]세) |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밀양 손씨 |
직업 | 기업인 |
현직 | CJ그룹 회장 CJ 대표이사 회장 CJ제일제당 대표이사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
학력 | 서울청운국민학교 (전학) → 밀성국민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석사) 우송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명예박사) |
부모 | 아버지 손영기[1] |
빙부모 | 장인어른 김봉환 |
형제자매 | 누나 손복남[2] |
배우자 | 김교숙 |
자녀 | 슬하 1남 1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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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경식(한국어: 손경식; 한자: 孫京植; 1939년 9월 15일 출생)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CJ그룹 및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다.2. 생애
2.1. 학창 시절
1939년 9월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청운초등학교 5학년 당시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1.4 후퇴 당시 서울에서 부친 손영기의 고향인 밀양으로 피란을 갔다. 밀양에 위치한 밀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피난교사를 부산 서대신동 설치하였던 경기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재학 당시 전쟁이 끝나며 서울로 복귀했고 경기중,고등학교 교사를 미군이 사용하고 있어 고2때까지 천막 가교에서 공부했다. 고2때 검정고시를 보러가는 친구들을 따라 시험을 같이 봤다가 9월에 합격하여 경기고에 자퇴 원서를 냈고[3], 3개월 뒤인 12월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1957학번)에 합격했다.법대를 입학하면 고시 공부에 전념하는 대다수 학생들과 달리 기업인의 꿈을 꾸었고 졸업 후 1961년 한일은행에 입사했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켄터키 웨슬리안 대학에서 수학하고 1968년에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2.2. 기업인
공부를 계속 하려던 그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불러들였다.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 설립에 참여했다. 1977년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았고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분리된 이후 1994년 CJ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1995년에는 CJ그룹 회장직을 맡아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2018~2020, 2020~2022, 2022~2024년 총 3번 맡았다.
3. 가족
미국에서 귀국하던 해인 1968년 경북 선산 출신의 김교숙 여사와 결혼했으며 딸 희영, 아들 주홍을 두고 있다.4. 경력
1993년 이후 손 회장이 CJ그룹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CJ그룹은 식품소재회사에서 엔터테인먼트, 물류, 뷰티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풍부한 경영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살려 CJ그룹의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2005년부터 8년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고, 2018년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자리에 올랐다. 경총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기업측의 시각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우송대학교와 세종대학교로부터 각기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미우호협회의 이사장으로서 한미우호에 기여하고 있다.
손 회장은 한국정부로부터 산업인으로서 최고훈장인 금탑산업훈장과 한국 최고의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또한 다양한 국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민간 외교관으로서 역할도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여러 주요국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우즈베키스탄 도스트릭 훈장(2011), 일본 욱일대수장(2017), 코리아소사이어티 밴플리트상(2018) 등을 수상했다.
5. 여담
- 재계의 손꼽히는 마당발이며 재계 뿐만 아니라 정계, 관계, 금융계, 외국인들과도 평소에 가깝게 지낸다.
- 겸손한 성격으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성격이다.
- 약속을 절대 어기지 않고 자신을 먼저 희생하는 대인관계 철학을 가지고 있다.
- 누나 손복남 여사의 의사로 이재현 회장의 후견인 노릇을 하기 위해 CJ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고교 2년 후배다. 김우중 회장 빈소에서 "개인적으로 고교 2년 선배셨다. 선배께서 당시 기율부장이라 완장을 차고 지각하면 야단도 치고 했었다"고 술회했다.
-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고교 4년 후배[4]이며 조석래 회장 빈소에서 "저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고 미국, 일본 등을 같이 다녔다. 재능이 높은 분이고 많이 아시고 친구도 많으시다. 아주 상당히 훌륭하신 분이며 우리나라 기업인 중에 제일 일어를 잘하는 분"이라고 술회했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에서 "삼성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라며 "고인이 생각이 많이 깊으신 분이라 그게 배경이 돼 그 동안 성공적인 의사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고 술회했다. 1994년 삼성의 계열분리 작업 당시 이건희 회장이 제일제당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고 측근인 당시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 겸 부사장으로 전격 임명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이재현 회장과 그의 외삼촌인 당시 손경식 부회장의 의자를 치워 이재현 회장은 이를 이건희 회장이 제일제당 경영권마저 빼앗아가는 것으로 판단, 삼촌인 이건희 회장과 전면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 이병철 삼성 창업주,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만약에 의대를 갔다면 지금의 경제강국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기업가정신이 확산되지 못하는 점을 꼬집었고 수많은 인재가 도전과 혁신보다 편안과 안정을 추구하며 의대와 로스쿨 입학을 선호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