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00:35:58

손경식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width=50%><tablebordercolor=#fff,#1f2023>
파일:CJ 로고.svg파일:CJ 로고 화이트.svg
CJ
회장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6ecd 20%, #ff9700 50%, #ee151e 80%)"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초대
손경식
(1996~2002)
제2대
손경식 · 이재현
(2002~ )
[[틀:CJ 총수|
CJ 총수
]]
}}}}}}}}}}}} ||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colcolor=#ffffff>
CJ 초대 회장
손경식
孫京植 | Sohn Kyung-shik
<colbgcolor=#000> 출생 1939년 9월 15일 ([age(1939-09-15)]세)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밀양 손씨
직업 기업인
현직 CJ그룹 회장
CJ 대표이사 회장
CJ제일제당 대표이사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학력 서울청운국민학교 (전학) → 밀성국민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석사)
우송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명예박사)
부모 아버지 손영기[1]
빙부모 장인어른 김봉환
형제자매 누나 손복남[2]
배우자 김교숙
자녀 슬하 1남 1녀

1. 개요2. 생애
2.1. 기업 활동
3.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CJ그룹 회장.

2. 생애

1939년 9월 15일 경기도 경성부(現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손영기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청운국민학교 5학년 때 6.25 전쟁 발발을 지켜봤고, 1.4 후퇴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교리(現 밀양시 교동)으로 피란을 갔다. 이후 밀성국민학교로 전학해 졸업하고 부산시 서대신동3가(現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3가) 구덕운동장 인근에 피난 와 임시교사를 개설한 경기중학교로 입학했는데 당시 천막을 치고 공부했다고 한다. 경기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수험생인 친구를 따라 검정고시를 치렀다가 합격해버려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이후 3개월만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합격해 수재로 떠오르기도 했다. 비록 경기고를 중퇴했지만 54회 졸업생으로 인정하고 있다.[3]

서울대학교 졸업 후 1961년 한일은행에 입사해 사회 첫 발을 내디뎠다.[4]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2.1. 기업 활동

1968년 귀국해 삼성 회장 비서실에서 삼성전자 설립에 기여했다. 1973년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이사로 옮긴 뒤 부친을 보좌하다 1976년에 부친 손영기 사장이 사망하자 1977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제일제당의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삼성그룹과의 분리 과정에서 제일제당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해결사로 활약했다. 삼성이라는 초거대 기업의 우산 아래서 떨어져 나온 제일제당이 큰 위기 없이 현재의 CJ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그의 역할이 컸다.[5] 이재현 CJ그룹 회장 또한 외삼촌이면서 자신의 경영 스승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그룹의 주요 결정이 있을 때마다 허심탄회하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CJ에서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한다. 1995년 제일제당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고 1996년 그룹 출범과 동시에 그룹 총수가 됐다. 2005년 11월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중도 사퇴하자 대신 회장직을 맡았다.

2008년, 3년 임기의 대한상의 회장에 재선임 되었다.

한국능률협회, 산업기술진흥협회, 식품공업연합회 등을 맡으며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온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재계와 정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6] 한국경제 홍보대사 역할도 잘 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7] 상공회의소 회장 재임 시 CJ그룹 회장직은 유지했지만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외조카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실형 및 수감, 유전병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회장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사임하고 그룹 경영에 복귀해 비상경영 체제를 이끌었다.

2018년 3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되었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4대그룹의 전경련 복귀 의사가 없음에 따라 사실상 경총이 순수 민간 경제단체 대표역할을 하였다.

3. 기타

  • 재계의 원로로 인맥이 엄청나기로 유명하다. 대외 직위만 70여 개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주한미군을 비롯해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두텁다. 주한미국대사관 또는 미국 관련 단체가 개최하는 행사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초청받고 있다. 2018년 들어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1]경기도지사, 농림부 국장, 안국화재 사장.[2] CJ그룹 고문. 이재현 회장의 어머니로 2022년 11월 5일 별세했다.[3] 54회 동기생들의 면면을 보면 박찬종, 유흥수, 이상배, 이태섭, 김영구(이상 국회의원), 오명, 한승주, 윤여준, 로버트 김(이상 관료), 최순영, 김기병, 윤영석, 김종진(이상 기업인) 등이 있다.[4] 첫 사회 생활을 은행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꼼꼼한 업무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총동창회에 고작 CJ 상품권 10만원권 5매 50만원을 협찬했다.[5] 반면 멘토가 없었던 숙부 이창희 집안이 경영하는 새한그룹은 결국 망했다.[6] 이명박 정부 후반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 자리는 강만수, 사공일 등이 맡았던 자리이기도 하다.[7] 다만 대한상의 직원들로부터의 평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