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11:09:54

송골매 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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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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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송골매 신곡모음
(1979)
2집 송골매 II
(1982)
3집 송골매 III
(1983)
4집 송골매 4
(1984)
5집 송골매 5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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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 송골매 6
(1986)
7집 송골매 7
(1987)
8집 Song Gol Mae 8
(1988)
9집 송골매 9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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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밴드 맴버들의 도전과 새로운 시도2. 요약
2.1. 맴버들의 도전과 평범하지만 실력과 다채로움
3. 평균적인 밴드의 뱡향과 실험적 시도4. "자니윤쇼" 그리고 송골매 고정출연5. 총평

1. 밴드 맴버들의 도전과 새로운 시도

아마도 우리 송골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주를 잘하는 밴드였다.{{{#!wiki style="text-align:right"
배철수 인터뷰}}}
음악이라는게 "연주"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었다. 중요한건 음악에 대한 "정신"이고 곡의 대한 "애정"이 필요한건데 그걸 80년대 후반에 되어서야 완전히 느꼈다.{{{#!wiki style="text-align:right"
배철수 인터뷰}}}
나는 음악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 회의적이였다.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의 재능으로 팀 분위기를 바꿔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감도 잃어서 다른 사람의 곡을 많이 쓰려고 했다. 지쳐있던 시기였다.{{{#!wiki style="text-align:right"
배철수 인터뷰}}}
월, 화, 수, 목, 금, 토, 일 그리고 1년에 현충일 그 하루만 쉬었어. 그 드러운 곳 에서 땀 많은 내가 땀 뻘뻘흘리고 연주하고, 노래하고, 그러다 웬 잡균한테 걸려서 "아폴로 눈병"이 걸린거지 {{{#!wiki style="text-align:right"
베이직 베이스 tv 이태윤 인터뷰}}}
1980년대 후반에 송골매 8집 앨범을 발표하였다. 내가 부르고 내가 작사, 작곡한 곡이 타이틀곡이었다. 그것이 바로 "외로운 들꽃"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발라드곡이다. 그러니까 철수 형 깐에는 굉장히 나한테 많은 것을 양보한 것이다. 밴드의 리더이자 리드 보컬이 이제 막 들어온지 얼마안된 베이스 연주자인 나에게 보컬 자리를 양보해주시고, 또 내가 만든 곡으로 타이틀로 활동하였으니깐 말이다. 나는 항상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자리의 기회를 주신 거에 대해 평생동안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한마디로 "철수 형은 굉장히 높은 곳에서 멀리 넓직하게 내다볼 수 있는 해안을 가지고 계신 형이다." 보통 그렇게 못 한다. 그래서 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철수 형밖에는 없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wiki style="text-align:right"
베이직 베이스 tv 이태윤 인터뷰 중}}}

2. 요약

2.1. 맴버들의 도전과 평범하지만 실력과 다채로움

1.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주를 잘하는 밴드가 됨.

2. 기존의 배철수라는 보컬을 뒤로하고 새로바뀐 맴버들의 곡 구성과 도전함.

3. 베이스 이태윤을 보컬로 내세워 타이틀곡으로 활동을 재개함.

4. 다채롭고 다양한 연주를 하기 시작함, 그로인해 평범하기 시작함.

5. 연주력과 대중인기의 한계점을 느끼고, 클럽이나 업소에서 생음악으로 승부를 봄.

6. 타이틀곡 외로운 들꽃이 준히트함. 그리고 베이스 이태윤을 보컬로써 제2의 구창모로 키워볼 시도함.

7. 연주력과 인기의 건재함이 검증되어 자니윤에게 섭외됨.

8. 자니윤쇼의 1년간 백밴드로 고정출연함.

9. 자니윤쇼를 통해 배철수의 캐릭터, 밴드의 연주실력, 대중들의 인기를 다시한번 검증됨.

10. 이태윤, 이건태, 이종욱의 곡과 음악의 영향력의 활약성이 커짐.

3. 평균적인 밴드의 뱡향과 실험적 시도

송골매 8집은 맴버들이 대거 참여하여 분위기를 구상하고 곡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한 음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를 두 가지 측면에서 보면, 하나는 이전 앨범들과 달리 8집에서는 배철수의 비중은 낮아지고, 다른 맴버들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파격적인 실험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즉, 송골매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원년 맴버들이 아닌, 새로 교체된 베이시스트 이태윤, 드러머 이건태와 새로 영입된 키보디스트 이종욱 등 새로운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곡을 구상하면서 여러 장르를 시도하여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송골매의 원초적인 색깔과는 전혀 다른, 그저 평범한 색깔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점을 이용하여 비교적 넓음 음역을 부드럽게 구사하고 현란한 연주를 하는 베이시스트 ‘이태윤’을 보컬로 전면에 내세워 “외로운 들꽃”을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아마도 배철수의 또다른 계획의 비책이었을 수도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비록 가요 순위 차트에서 20위권에 머무르긴 했으나, 전형적인 발라드 곡은 굳이 송골매가 아니더라도 다른 가수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던 무언가 특별한 스타일의 곡은 아니었기에 거기서 그쳤다. 이외에도 "어이하나 그대여", "나의모습" 처럼 나름대로 대중적인 느낌의 곡들이 있지만, 연주의 비해 노래가 다소 묻히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탈"은 활주로 시절의 버전은 10분이 넘는 대곡인데다 특유의 날것의 느낌이 있었던 반면, 8집의 "탈"은 수준 높은 연주력이 오히려 원곡의 날 것의 느낌이 사라지게 했다.
8집은 배철수 외에 이태윤, 이봉환도 보컬로 참여했는데, 보컬이 턱없이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고추잠자리”는 송골매의 기타리스트 ‘김정선’이 활동했던 그룹 ‘4막 5장’이 1980년에 발표한 곡을 새롭게 메탈 사운드로 편곡하여 키보디스트 ‘이봉환’이 불렀다.
“떠나버린 사랑의 노래”는 드러머 ‘이건태’가 작곡하고 ‘이태윤’이 불렀지만, 그저 평범하다.
“날 좀 내버려둬”는 송골매의 음악적 스타일을 잘 표현하는 동시에 후기 라인업의 세련된 연주가 돋보이는 곡으로, LP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CD나 테이프 버전에 수록되었다.
이렇듯 마땅한 히트곡 없이, “외로운 들꽃”이 소소하게 대중들의 반응을 얻으면서 송골매는 어느 정도 체면을 세울 수 있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골매는 라이브 무대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대중들은 송골매에게 유로댄스 음악을, 즉 가요보단 외국의 팝이나 댄스 음악을 들려주길 원했다. 대중들의 음악적 수준이 점점 높아져 가면서 변화한 시대가 송골매를 냉정하게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송골매는 과거에 한때 화려했던 밴드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클럽에서 매일같이 자신들과 음악을 소비하는 방법으로 살 길을 모색했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송골매의 연주력은 향상되어 가는 반면,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로 인해서 송골매가 다시 재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러기에는 곡이 너무 약했다. "잔잔"하기만하고 뭔가 곡의 임팩이 없어, 그래서 그 정도 선에서 멈춘거야. 그래도 선방한 거지. {{{#!wiki style="text-align:right"
베이직 베이스 tv 이태윤 인터뷰}}}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했지만 난 노래를 너무 못부른다. 귀는 모차르트가 됐는데 내가 하는 음악은 그냥 동네에서 하는 수준이고 노래도 동네 아저씨니까, 난 남들에 비해 음악의 재능이 부족하다고 내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하였다. 회의감이 들고 내 스스로 자신이 없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wiki style="text-align:right"
배철수 인터뷰}}}
"쟈니쟈니, 예티, 터치 바이 터치, 매일매일 클럽에 가면 이런 유로피한 댄스 노래 연주하고 노래하는데 우리가 무슨 창작의 열정이 생겨 나겠나, 우리가 방송에서 나오면 얼굴이 차갑고 화나 있어 보인다는데 그럴수 밖에없다 사람들은 우리가 들려주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우리는 정말 하기 싫었다. 하기 싫어서 무대에 올라가기 싫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난 이러려고 음악을 시작한게 아닌데....내가 진짜 우리집이 잘만 살았어도 당장 음악을 그만 뒀을것이다. 음악을 그만 안두더라도 내가 진짜 하고싶은 음악을 하고 살거같다. " 김정선 인터뷰"
"1988년 봄에 무등산에 위치한 팔라디움 나이트클럽 호텔에서 송골매 팀이 뭉쳐 3개월 먹고자고 일하고 그랬엇는데, 그때 내가 배철수 형하고 단둘이 로비에 있엇는데, 그때 갑자기 호텔 일식집 주방장이 급하게 뛰어나오면서 철수 형 한테 " 철수 형, 나 광주 송씨 인데 우리 골매 형님은 어디 송씨여?" 라고 정말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물어보셨다. 그러니까 철수 형은 방송에서 얼굴이 나오면 팀 이름인 송골매로 나오니까 그 사람은 철수 형 이름이 송골매인 줄 알았던거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자면, 철수 형은 tv 방송에 나오면 송골매라고 뜨니까 사람들은 철수형 이름을 송골매로 알고있는거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다른 멤버들도 그렇고 사람들은 뮤지션 배철수 혹은 송골매 팀의 일원 중 한 명으로 생각했으면 하는데 우리 팀을 모르는 대중들이나, 시청자는 이름을 송골매로 알고있더라. 참 웃기면서도 그때 그게 쬐끔 슬펐어. {{{#!wiki style="text-align:right"
이태윤 인터뷰}}}

4. "자니윤쇼" 그리고 송골매 고정출연

"항상 저희쇼의 즐거운 음악을 보내주시는 "배철수 씨 와 송골매". {{{#!wiki style="text-align:right"
자니윤의 진행 멘트}}}
'자니윤쇼를 보고 음악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 그때 엄청 감동을 많이 받았어, 내가 아이디어 맨토 였지. 배철수도 내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면 굉장히 호응했어. {{{#!wiki style="text-align:right"
이건태 인터뷰}}}
'자니윤쇼 앞에 그 로고송이 건태형님이 만드신건데 굉장히 허드앵커 음악 같고 완성도가 깊은 작품이다. 지금들어봐도 예술이야. {{{#!wiki style="text-align:right"
이태윤 인터뷰}}}
'자니윤쇼를 통해 고정출연하며 연주하면서 나는 MC에 대한걸 자니윤을 통해 많은걸 경험하였다. 나도 훗날 MC 진행자로 빠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내심 존경하였고 그의 농담 섞인 어투는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wiki style="text-align:right"
배철수 인터뷰}}}
"저희쇼에서 1년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우리쇼에서 즐거운 음악 들려주신 "배철수 씨와 송골매", 개근상이라도 줘야되는 거 아니냐, 그뿐만 아니라 "조영남" 씨 빠졌을 때 보조 MC 자리까지 맡긴 사람이다. 개근상이라도 주고싶을 정도로 1년동안 수고 많이해주셨는데 배철수씨...송골매.... 노래 한곡 부탁해도 돼요? . {{{#!wiki style="text-align:right"
"자니윤" , "조영남" 인터뷰}}}

1988 서울 프레 올림픽쇼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이벤트 매치에서 자니윤과 처음 보게 된다. 이때 송골매가 팝송을 불렀는데 이때 자니윤이 보고 반하여 나중에 자기가 프로그램을 하게되면 음악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하였고 훗날 자니윤쇼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이 출연으로 통해 다시 한 번 송골매의 인기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고, 연주력 만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하는 밴드로 각인이 된다. 특히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배철수가 MC, 라디오 DJ로 어쩌면 가게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배철수 효과" 와 "밴드의 연주실력"이 제대로 먹혀 1년간 인기 아닌 인기를 누리게 된다. 팀이 안되어 팀을 위해 TV 예능 프로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리는 "첫케이스" 라고 평가된다.
" 제가 그래도 대중가요에 한가지 이바지한게 있다면, 다른 그룹사운드 들은 모르겠는데 저희 팀만은 한국적인 리듬과 가락을 대중가요의 한 번 전목시킬려고 노력하였다. "배철수 인터뷰"
"머리를 보통 며칠에 한번씩 감아요? 글쎄 제가 머리를 기르고 방송에 나오면, "지저분하다", "퇴폐적이다", "방송의 적합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혐오감을 준다" 이렇게 많이 들었는데, 근데 어느날 유명한 축구선수가 머리를 기르고 나오니까, 무슨 "삼손" 이다 무슨 "야생마" 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 할수가 있나? 라고 생각했다. (웃음) {{{#!wiki style="text-align:right"
"자니윤쇼"에서 배철수 인터뷰}}}
"단란히 삼형제 보다 못난이 삼형제가 대박났잔아요. 한 사람 맨날 흐느적대죠 웃죠(조영남), 한 사람은 매일 말더듬죠.(자니윤쇼), 저기 계신 분이 제일 하나님한테 축복받은거같아요. 매일 전기에 감전된다.(배철수)", (웃음) {{{#!wiki style="text-align:right"
" 자니윤쇼" 에서 }}}
"제가 자니윤쇼에 나와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우리 조영남씨 잘 알고, 자니윤씨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그리고 저기계신(배철수) 저분이 어우 너무 반갑게도 우리 신랑보다 못생긴거!! (웃음) {{{#!wiki style="text-align:right"
"자니윤쇼" 에서 }}}
"뭐 저야 처음시작할때 "축하 전화" 별로 없었다.(웃음) 뭐 몇명은 있었는데... 한명은 기억난다. "자니윤 아저씨" 가 축하 전화 왔었다. {{{#!wiki style="text-align:right"
"90년대 초창기 배철수 음악캠프" 중 배철수 멘트}}}

5. 총평

송골매 8집은 대체적으로 흥행과 흥마의 여부와 관계없이 굉장히 세련된 느낌이 앨범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앨범이다. 이태윤가 부른 "외로운 들꽃" "어이하나 그대여" 같은 구창모나 배철수 말고도 마치 이둘을 합친듯한 묘한 말랑말랑한 느낌은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의모습"처럼 배철수 특유의 불안정한 음정을 잡아주기위해 이태윤이 백보컬을 어울리는 것처럼 나름대로 구창모의 빈자리를 대신하려는 느낌은 강하게 느껴진다. 물론 "고추잠자리"라는 이봉환이 부른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한 곡이 있지만 그것은 6집의 "해변으로 가요" 와 비슷한 흐름이었고, "탈" 같은 경우는 매끄럽지만 맛이 안나는 느낌이 강하다. 그외에 "떠나버린 사랑의 노래 가 있지만 그저 평범하고 여기서 주목할건 " 날 좀 내버려둬" 라는 명곡이 있다.강렬하지만 절제된 프레이즈 타임으로 7집의 "인생이란 이름의 열차"와 비슷한 느낌이니 나중에 한번 들어보자. 여튼 연주력의 비해 평범함이 꼬리표로 붙여 다녀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다양한 연주를 통해 보다 새롭게 느낄수있는 앨범이다.

타이틀곡: 어이하나 그대여, 외로운 들꽃
추천곡: 외로운 들꽃, 어이하나 그대여, 나의모습, 고추잠자리, 날좀 내버려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