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458><colcolor=#fff> 숀 티모시 넬슨 Shawn Timothy Nelson | |
출생 | 1959년 8월 21일 |
미국 유타주 버즈아이 | |
사망 | 1995년 5월 17일 (향년 35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린다 비스타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졸업) |
병력 | 미합중국 육군 기갑사단(1978-81) |
최종 계급 | 이등병 |
가족 | 아버지 프레드 넬슨 어머니 베티 넬슨 |
배우자 | 수지 헬먼(1984년 결혼, 1991년 이혼) |
[clearfix]
1. 개요
1995년 샌디에이고 탱크 탈취 사건의 범인.2. 생애
1959년 8월 21일 유타주 버즈아이에서 3형제 중 둘째로 출생[1]했으며,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미합중국 육군 병으로 복무한 적이 있다. 군 복무 이후에는 배관공으로 일하며 1984년 결혼도 했다.1990년, 병원에 입원해 있던 도중 병원 경비원과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였으며 병원이 과실, 폭행을 저질렀다고 고소해 16만 달러라는 금액을 배상할 것을 요구했지만 법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병원 측에서 역으로 치료비와 이자 명목으로 6,640달러를 청구했다.
1991년에는 아내와 이혼을 했고, 다음 해인 1992년에는 2년 전 고소한 병원에서 어머니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넬슨은 이 병원을 의료사고 명목으로 또다시 고발했으나 1993년 기각되었다. 이후에는 메스암페타민에 중독되어 밤에 룸메이트에게 소리지르는 것 때문에 옆집 이웃에게 불평을 들은 뒤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황금을 찾겠다며 뒷마당에 4.6m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그 곳이 사유지임에도 나라에서 기반암 광산을 팔 계획을 세웠다고 믿기도 했다.
1994년에는 배관공 일을 하며 타고 다니던 밴에 실어 놓은 장비들을 도둑맞았으며,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목과 허리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장비를 도난당하고 부상까지 입었던 터라 일을 하며 수입을 얻을 수 없었고 집세를 내지 못해 이내 자택이 압류되었으며, 가스와 수도가 끊기고 퇴거 통지서가 날아오기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기까지 했다.
사건을 일으키기 전주에는 친구에게 자살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고 같은 주 주말에는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는 멋진 일이었지." 라고 말하며 뭔가 수상한 낌새를 보이기도 했다.
3. 전차 탈취 사건
"저 놈을 멈출 방법이 보이는가? (Can't you see any way we can stop this thing?)"
"음, 글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없다. (Uh, well... No I don't, to be honest with)"
- 추격전 당시 경찰의 무전
"음, 글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없다. (Uh, well... No I don't, to be honest with)"
- 추격전 당시 경찰의 무전
1995년 5월 17일 해질녘 넬슨은 자신의 밴을 몰고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육군 기지[2]로 가서 때마침 사람들도 안 보이고 하자 크로우바로 전차의 해치를 하나 하나 뜯어서 열어 보며 시동을 걸었다. 첫 번째 전차와 두 번째 전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으나 세 번째로 선택한 M60A3는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넬슨은 전차를 타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하필이면 육군 복무 당시 M60 전차의 조종수였던 그는 능숙하게 전차를 운전했으며 넬슨을 막아서는 데 실패한 기지 경비원이 곧바로 911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들은 현장에 도착했으나 그 누구도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넬슨은 전차를 끌고 나온 다음 주택가로 향한 뒤 주변에 보이는 전화선과 캠핑카, 자동차, 신호등, 소화전 등 눈에 보이는 건 마구잡이로 짓밟고 다녔는데 40톤이 넘는 전차가 깔아뭉개니 남아나는 게 없었고 소화전도 그대로 날아가 물이 세게 솟구쳤다. 범인을 빠르게 제압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일단 전차 탈취범이 한 명인지, 아니면 여러 명의 공범이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포격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전차를 도둑맞은 무기고에 연락해 전차에 포탄이 실려 있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해당 전차에는 포탄은 적재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설령 있다고 해도 혼자서 장전과 발사, 운전을 같이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육중한 전차가 마을을 휘젓기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므로 경찰들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추격전을 생중계하고 안내방송을 내보내 시민들에게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알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경찰차 35대가 전차를 쫓는 가운데 전차는 최대 속도인 시속 48km에 다다랐고 이후 고속도로 앞의 표지판 하나를 부수며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넬슨은 경찰들을 막으려고 중간에 있던 다리의 기둥을 들이받아 무너뜨리려 했지만 제아무리 전차라도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리라는 걸 판단한 넬슨은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넬슨이 역주행을 시도하기 위해 고속도로 분리대를 부수고 가려다가 분리대에 걸려서 전차가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경찰관들은 재빨리 전차로 달려가 해치를 열고 넬슨을 총으로 위협해 끌어내리려고 하지만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넬슨에게 실탄을 발사하여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후 넬슨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이 와중에 총을 맞고 사망한 넬슨의 모습을 KGTV에서 생중계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건 이 난장판이 벌어지던 와중에 민간인 부상자나 사망자는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최후의 수단으로 가까운 군부대인 미합중국 해병대 항공대에 코브라 공격헬기 지원을 요청해서 전차를 파괴할 생각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4. 사건 이후
이 사건 이후 군 무기고의 경비상태가 엄청나게 지적받았다. 겨우 한 사람이 다른 차량도 아니고 무려 전차를 아주 쉽게 훔쳐 나왔는데 만에 하나 포탄이나 총탄이 장전된 전차나 장갑차 또는 공격헬기를 여러 사람이 손잡고 탈취할 경우 한 대만으로도 정말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언론에서도 이를 두고 깠다. 거기다 철조망도 떨어져 나간 곳이 많아서 문이 열리지 않아도 철조망이 떨어진 곳으로 타고 올라가서 무기고에 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물론 전차라는 게 조작이 복잡해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몰기도 어렵지만 전차병 출신 중에 이런 범죄자가 나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결국 군 당국은 잘못을 인정하고 경비를 강화했다.이 사건을 접한 락 가수 모조 닉슨 (Mojo Nixon, 1957~2024)은 해당 사건을 기반으로 'Tankman blues'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2002년에는 Cul de Sac: A Suburban War Story란 이름으로 이 사건을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다큐멘터리가 나오기도 했다.
2004년에 이와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 중장갑 차량이 원한 풀이를 위해 시내를 질주하고 파괴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킬도저의 히메이어는 넬슨과 달리 최소한 원한의 대상만 공격하고 공격 전 시민들에게 연락을 해 대피시킨 점에서 명분을 지켰으며 자신이 갑질에 피해호소를 묵살 당한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 숀 넬슨은 투항을 거부하다 경찰에 의해 사살당했지만 히메이어는 아직 경찰이 킬도저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상황에[3] 자살로 삶을 끝맺었다.
메가데스(밴드)의 Endgame의 마지막 트랙 The Right To Go Insane의 뮤직비디오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심슨 가족 시즌 11 에피소드 2에서 바트가 탱크를 훔치는 장면 역시 숀 넬슨에 대한 오마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