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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kepticalleft.com, 통칭 스켑티컬레프트, 혹은 스켑렙이라고도 부르는 인터넷 토론 사이트이다. 2015년 잠정 폐쇄되었다.폐쇄공지우리모두(www.urimodu.com)에서 skyang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양신규 교수[1] 의 추모 게시판( # )에서 시작했다. (양 교수는 창립진의 지인&친구이자, 운영자 mahlerian이 존경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전히 그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회의주의적 좌파 토론 사이트를 표방했었다.
한국형 회의주의자들 모임의 분파를 표방하며 한의학과 대체의학, 미신들을 타깃으로 한 적도 있고 안티조선과 같은, 정치적으로 반우파적 관심사들을 드러내며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때도 있었는데 운영자가 개인사이트라는 이유로 입맛에 맞는 글만 공지에 띄우고 의견이 맞지 않는 이들은 강퇴시키는 등 독단적인 행동을 하다가 2011년 5월 변희재가 대표로 있는 우파계열 미디어 비평매체인 미디어워치와 통합하였다.
창립 당시 사이트 개설자인 '말러리안'은 당시 인터넷 상에서 알려진 논객을 직간접적으로 찾아 (어떤 논객에게는 멀리 떨어진 곳에 열차나 시외버스를 타고가 직접 부탁을 하기도 하였다) 글을 올려 줄것을 직접 부탁할 정도로 열성적이었고, 초기에는 이름 그대로 회의주의 및 좌파적인 시각의 사이트였다. 그러나 분열 이후에는 변희재의 미디어워치에도 관여하였다. 한마디로 좌파 회의주의에서 우파로 돌아선 사람이며 스켑티컬레프트 역시 좌파에서 우파 사이트로 변하게 된다.
급격한 성향 변화 이후 글을 쓰고 토론을 하던 상당수의 멤버들이 2008~2009년 당시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어서 빠져나갔고 이후로도 이용자가 계속 감소하고, 올라오는 글이라고는 변희재의 미디어워치에서 생산하는 표절 관련 이슈와 몇몇 극우적 유저의 동어반복적 게시물 뿐이다가 결국 2015년 2월 28일 폐쇄를 결정했다. 이용자 감소의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 '분열'항목을 참조.
회의주의 모임이라는 사이트 성격 때문인지 대중들의 흐름을 따르는 일은 거의 없고 대중과 상충하는 의견을 가질때가 많았다. 일례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티아라 화영 왕따 논란 때도 티아라를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올라오곤 했으며 싸이가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를 때도 과거 미선이 효순이 사건 당시 싸이가 미국을 비판한 사실을 거론하며 싸이를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알려졌으니 싸이의 미국 입국이 불허될 것이고 싸이가 2012년 10월에 귀국한것 또한 이 사건 때문에 미국 활동을 접은것이라는 등의 의견이 오갔다. 회의주의자 모임이라는 곳이 음모론자들과 같은 수준의 의견을 내는 (더군다나 운영자가 중심이 돼서) 아이러니한 상황. 회의주의적인 고찰보다는 대중의 여론 흐름에 무조건 반대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사례이다. 이 정도면 쿨게이 집단이란 폄하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 또한 5.18 민주화운동운동이나 위안부 등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에서 좌우파 양쪽의 의견을 모두 다 비판하는 스탠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맥락으로 박정희와 그의 업적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적 회의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좌파 성향을 보였던 자유사상가 커뮤니티와는 한때 좋은 비교가 되기도 했다. 자유사상가는 2015년에 폐쇄되었지만 둘 다 회의주의 커뮤니티이면서도 정치적 성향에서 극명하게 차이가 났고, 커뮤니티 내 분쟁으로 인해 사이트가 분열하게 된 것이 몰락의 원인이 되었던 것도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 비해 자유사상가 쪽은 비교할 수 없이 영세한 규모였다는 것이다.
2. 분열
커뮤니티로서의 스켑티컬레프트는 분열된 상태이다.skepticalleft.com 에서 분열된 사이트로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커뮤니티들은 아크로 닷컴#과 스카이넷(#)이 있다. 두 사이트 다 창립자 혹은 운영진, 주요 멤버가 skepticalleft에서 활동하던 주요 멤버 혹은 그 창립진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갈라져 나올 때 사이트 분위기나 멤버들 간 관계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스켑티컬레프트에서는 아크로&스카이넷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으며,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 분열 현상은 결과적으로 skepticalleft에게 다양성을 저하시키고 서서히 고사되어 갔으며, 또한 분열되어 간 사이트들 역시 skepticalleft에 일부 남겨놓은 다양성 때문에 최초의 skepticalleft와 비교해서 다양성이 떨어진다.
일단 이렇게 한 사이트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새 사이트를 만들어서 분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당시 과열되었던 사이트 내 키보드 배틀 분위기 탓이 크다.
최대한 중립적으로 양편의 입장을 서술해보자면 분열되어 나온 사람들 쪽에서는 당시 운영자였던 말러리안이 상당히 극단적이고 편중된 행보와 과격한 언사를 보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입장이고, 운영자 말러리안 쪽에서는 어디까지나 악플러에 대한 대응이었을 뿐 문제가 없으며 도리어 떨어져 나간 사람들 쪽에서 자신과 자신의 사이트를 음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하튼 이 때문에 갈라선 뒤로, 각 사이트의 운영자&주요 멤버들 사이에서 고소 이야기까지 오가기도 했으나, 양쪽이 고소의지를 거두고 더이상 싸우지마라는 내용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조정안을 받은 후 스켑렙의 운영자 말러리안만 자신의 사이트에 사과문을 게재했으며 실제로 법정싸움까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감정의 앙금은 크게 남은 듯, 각 사이트에는 서로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애당초 사이트를 창립하게 된 사람들이 맺어지게 된 계기가 고 양신규 교수의 추모였는데, 양신규 교수의 절친한 친구였던 사람들조차도 skepticalleft와 그 운영자 말러리안에 대해 감정이 크게 상해 독자적으로 위에 언급되었던 스카이넷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성향 맞는 사람들끼리의 분화가 되고, 그 규모도 아주 작아졌기 때문에 각각의 커뮤니티에서는 자정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고인 물이 썩어가는 것처럼 꼴통스럽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스켑렙은 거의 극우 사이트가 되고, 아크로는 극렬 반노 성향이 되었다. 이제 각각의 단위들은 소수 갈라파고스식의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부작용[2]을 감상할 수 있는 현장이 되었다.
그나마 아크로의 경우엔 지역차별 반대 운동을 벌이는 등의 긍정적인 면모가 있긴 한데, 과연 사이트 내의 다양성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3. 바깥 고리&관련 사이트
- 한국의사과학문제연구소
국내의 네임드 회의론자인 숙명여대 약학 전공 강건일 교수의 유사과학 비판 사이트.
3.1. 창립진 및 주요 멤버간의 다툼으로 인해 분열된 곳
[1] MIT대 경영학 박사로 뉴욕 대학교에 재직하였으며, 우울증 질환을 겪다 2005년 자살하였다. 향년 45세. 학문적으로 성공한 이후로도 학문보다도 키배질이란 진흙탕에 직접 뛰어들었던 인물이다 (그의 유명한 논쟁으로는 서울대 홍모 교수와의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논쟁이 있다.). (추모글)[2] 이상한 자부심과 어설픈 엘리티즘, 자정작용의 불가능 등.[3] 극렬 반노 닝구 사이트로, 호남 차별과 관련해서는 일베를 반대하지만 반노와 관련해서는 일베 용어도 곧잘 사용하며 일베 및 정규재 등이 만들어낸 자료들도 자주 동원하는 곳이 되었다. 모 네임드 유저의 경우 호남 차별 반대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동성애 차별 언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등, 아무튼 들어가 보면 아스트랄함을 좀 느낄 수 있을 것이다.[4] 활동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