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18:33:28

시구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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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웨이 왕국 하르드라다 왕조의 5대 공동 국왕이며 유럽 최초 국왕급 십자군 참여자이다.

이복형인 외위스테인 1세와 함께 중세 노르웨이 왕국 전성기를 이끌었다.

2. 상세

1089년에 망누스 3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인 1099년 부터 아버지 망누스 3세를 따라 잉글랜드, 아일랜드 원정을 따라 다녔다. 1103년 아버지 망누스 3세를 따라 아일랜드 원정에 나섰지만 전투에서 패배하 망누스 3세가 전사하고 패배한 노르웨이군을 14살에 나이에 다시 노르웨이로 이끌어 귀국한다.

1103년에 아버지가 죽자 형 외위스테인 1세, 동생 올라프 망누손과 함께 노르웨이 왕국의 공동 국왕이 되었다.

노르웨이 국왕 즉위 후 제1차 십자군 원정의 성공으로 예루살렘 왕국이 개국하고 그 이후인 1107년 예루살렘 성지 방문과 예루살렘 왕국을 돕기위해 북유럽 최초 및 당시 국왕으로서는 유럽에서 최초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 이 원정은 당시 후세 역사가들에게 중세시대 최고의 낭만적인 원정으로 평가받는 노르웨이 십자군을 이끌고 경유지인 잉글랜드,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레콩키스타 활동으로 당시 이슬람 지역이던 리스본 점령과 지중해 해적 등을 무찌른다. 그 후 같은 바이킹 문화를 가진 노르만족이 세운 시칠리아 왕국을 거쳐 예루살렘에 도착해 요단강 방문 및 성지 순례를 하고 예루살렘 왕국군과 연합하여 이슬람 지역이던 시돈을 점령한다. 이를 통해 Sigurd the Crusader(십자군 시구르), Jórsalafari(예루살렘을 여행한 자)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음으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의 영웅적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한 동로마 제국 및 유럽의 주요 국가(신성로마제국, 시칠리아, 덴마크 등)를 방문하여 황제, 국왕들을 접견하였고 이를 통해 노르웨이 왕국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위상을 높인다. 귀국 이후 결혼을 한다.

1115년에 동생 올라프 망누손이, 1123년에 형 외위스테인 1세가 죽자 노르웨이에 단독 국왕이 되었다. 그 후 바로 스웨덴으로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원정하였다.

1130년 죽었으며 아들 망누스 4세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