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6 14:24:54

시루

1. 그릇의 일종

파일:external/www.fooddesk.com/344_702_835.jpg

한국 고유의 찜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그릇 바닥에 구멍을 뚫어놓고, 이 구멍을 통해 수증기가 들어와 그릇에 담은 내용물을 찐다.
파일:안악3호분 부엌.png
안악 3호분 무덤 벽화의 일부.

시루의 역사는 삼국시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황해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 3호분 무덤 벽화에는 고구려 여인들이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는 부뚜막에 놓인 큰 시루와 함께 오른손에는 주걱을, 왼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있는 한 여인이 그려져 있다. 시루에 물을 축여가며 긴 젓가락으로 음식이 익었는지 찔러보는 모습으로 추정.

실제로 평안남도 평성시 지경동 1호 무덤에서 출토된 시루 유물의 경우 4세기 말∼5세기 초 고구려 시대에서 제작 된 것으로 추정 되며, 안악 3호 무덤 벽화에 나오는 시루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 참고로 백제의 시루는 좁고 긴 형태에 쇠뿔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지만, 시루 밑바닥의 구멍 형태는 고구려 후기의 것과 비슷하다. 링크

그릇에 직접 열을 가해 조리 하는 것이 아니라 수증기를 이용 하기 때문에 당연히 물 끓이는 그릇은 따로 필요한데, 이것은 시루솥이라고 한다. 시루떡이나 콩나물 시루 같은 표현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느끼겠지만, 의식 하지 못할 뿐이지 어지간한 가정집이라면 하나쯤은 있다.

파일:external/gdimg1.gmarket.co.kr/525241557.jpg

삼국시대이래 디자인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구조와 원리는 같다. 단지 이름을 찜기, 찜통, 찜솥, 찜냄비 등으로 다르게 부를 뿐.

이처럼 시루는 한국의 음식 문화의 발달사에서 빠질 수 없는 조리 용기로 초기 철기시대 부터 사용 되기 시작 했다. 시루가 생김으로서 곡식 농사가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징표로 볼 수 있겠다.

한국 외부에서는 쓰이지 않는 조리기구이다만[1] 특이하게 일본 황실에서는 사용한다. 히로히토는 자신이 기마민족정복왕조설[2]을 믿은 이유 몇가지를 일본 황실 음식 관련 관습에서 꼽았는데 시루가 그 중 하나였다.[3][4]

2. 눈물을 마시는 새의 등장인물

시루 문서 참조.

3. 경기도 시흥시지역사랑상품권

경기지역화폐 문서 참조.

4. 시루(코스어)

시루(코스어) 문서 참조.


[1]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을 할 때 대나무로 만든 정룽을 쓴다.[2] 천황가가 일본 출신이 아니라 조선반도에서 온 가문이라는 설. 히로히토 뿐만 아니라 아키히토도 이를 긍정했다.[3] 나머지는 마늘, 숭늉, 숟가락이다. 4가지 모두 일본 전통 민간 식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시루는 떡메, 마늘은 생강, 숭늉은 차(茶)가 그 위치를 대신한다. 숟가락의 경우 당나라에서 들어온 이후 헤이안 시대 초기까지는 귀족들에 의해 사용되었지만 나라의 풍조가 당을 따라가던 '당풍'에서 일본 고유의 문화를 강조하는 '국풍'으로 바뀌자 사장되기 시작했고 이후 막부의 등장과 함께 지배 계층의 문화에 군사 문화가 추가되면서 상류층 문화에서 퇴출된 후 아이들이나 승려들이 죽을 먹을 때 사용하거나 개항 이후 외국에 기원을 둔 음식(카레라이스, 라멘)을 먹을 때 정도나 사용하게 되었다. 라멘이 외국 음식이라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본 내에서 라멘은 마치 한국의 짜장면처럼 중식을 기반으로 변형한 음식으로 취급된다.[4] 식문화 외에도 양반다리나 어머니를 '오모'라고 부르는 점도 이유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