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8 21:10:37

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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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력3. 대표 작품4. 과거 인터뷰

1. 개요

한국의 음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 1966년 6월 9일 생으로 충청남도 출신이다.

한양대 작곡과[1]를 다니다가 1985년 유학을 떠나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립대학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했다. 1988년 유학 당시 가수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로 데뷔했다.

현재는 영국과 한국의 합작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엠트리 뮤직 리미티드의 대표이다.

2. 경력



굵직한 히트곡을 여럿 탄생시킨 팝 발라드 작곡의 귀재로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신디사이저 반주를 시작으로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시대를 앞서간 뛰어난 세련된 멜로디와 코드진행이 특징이다. 작곡가로 조정현 -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원미연 - 이별 여행, 신승훈 - 영원히 사랑할거야, 임재범 - 사랑보다 깊은 상처, 박효신 - 좋은 사람, 애즈원 - 원하고 원망하죠 등 여러 가수들과 작업해 히트한 곡들이 많은데, 활동 초기엔 본인이 직접 데뷔해 2집까지 음반을 낸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단적비연수, 동감 등 영화 OST와 문희, 가족의 탄생 등 드라마 음악 감독으로도 참여했다.

21세기 들어선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고 본인이 쓴 곡으로 창작뮤지컬을 제작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2020년 뮤지컬 썸씽 로튼 라이센스 공연을 수입해 공연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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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일 신재홍 작곡가의 아들이 직접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당시 2002년 22살이었던 박효신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신재홍 작곡가의 아들이다. 같이 작업하던 당시 찍은 것으로 보인다.

3. 대표 작품

조정현 -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슬픈 바다
원미연 - 이별 여행
김완선,알란탐 - 헤어질 수 없는 우리
임재범, 박정현 - 사랑보다 깊은 상처
임재범 - 너를 위해[2], 이 밤이 지나면[3]
박정현 - Eternal Memory
박효신 - 해줄 수 없는 일, 좋은 사람, 그곳에 서서
박미경 - 기억 속의 먼 그대에게[4]
노이즈 - 가치관의 차이
양파 - 다 알아요, 3집 프로듀서
오현란 - 조금만 사랑했다면
이현우 -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애즈원 - 원하고 원망하죠, 1~3집 프로듀서
더원 - 보낼 수 없는 너[5]
- 아프고 아픈 이름
드라마, 영화 OST - 단적비연수, 동감, 패자부활전, 흑심모녀, 불새, 불꽃놀이, 문희, 가족의 탄생 등
뮤지컬 - 썸씽 로튼
루 (Loup, 1995) - 한양대 음대 동기이자 가요계의 대표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심상원과 함깨 작편곡과 프로듀싱, 보컬로 참여한 프로젝트.
이동건 - 2집 Much More... 그게 언제라도

4. 과거 인터뷰

[music maker] 신재홍-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이별 여행', '너를 위해', '사랑보다 깊은 상처' 그리고 모 드라마에 삽입되어 리메이크된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등 누구나 한 번쯤 은 들어 봤을 만한 이 곡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곡이라는...신재홍. 작곡가로 그리고 프로듀서로 바쁜 그를 만나보았다.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 있다. 아니 실례라는 말로는 부족한 정말 실례인 일들이 있다. 아직 녹음이 진행중인 녹음실을 찾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막 방문한 녹음실에서는 박효신의 이번 앨범에 수록될 곡을 한 작곡가가 녹음 중이었다. 그럼에도 그들 즉, 신재홍과 박효신은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주었다.

신재홍. 선화 예고를 거쳐 한양대 작곡과에 입학하고 유학을 떠나기까지 그는 클래식을 전공하는, 하지만 라디오를 타고 들려오는 빌보드 차트와 아메리칸 톱 40에 귀를 기울이며 당시 유행하던 쿨 앤 더 갱,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엘튼 존 등의 팝송들에 심취해 있던 음악학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중 음악 작곡가가 된 것도 의외란 생각이 들었지만, 작곡가가 되기 위해 여러 기획사에 데모 테이프를 보내는 등의 흔히 생각하는 고초를 겪었으리라 예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가요계 입문의 계기는 그야 말로 우연이었다. 한양대 작곡과 재학 시절인 ''85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그의 처음 꿈은 좋은 음악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 귀국을 했던 '88년 우연한 기회로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메이저 음반사인 신세계 레코드의 기획실장을 알게 되었다. 당시 김명곤, 이호준, 왕중기, 변성용 등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오던 가요계에서 젊은 축이었던 그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듣고 싶었고, 신재홍의 곡은 그의 요구와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당시 그 기획실장이 기획하고 있던 가수가 바로 조정현이었다. 그렇게 조정현을 알게 되었고 그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면서 썼던 곡이 바로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였다. 그 후로 '슬픈 바다', 진미령의 '하나 그리고 둘',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이승철의 '아무런 느낌 받을 수 없어'등의 곡이 연달아 히트를 하면서 '89년, '90년 매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유학 중의 귀국 기간이 점점 길어지더니 급기야 1년 중 4개월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 유학 기간 중에 틈틈히 쓰고 발표 했던 곡들이 원미연의 '이별 여행', '조금은 깊은 사랑',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 신승훈의 '영원히 사랑할거야', 이덕진의 '너의 눈에 눈물이’ 등이었다. 그로 인해 5년 예정이었던 공부가 9년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이름 앞에 '작곡가'라는 수식을 달게 되었다. 물론 간혹 그가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는 기사들을 접하기도 하지만, 그의 데뷔는 가수가 아닌 작곡가가 먼저였다.

"제 앨범들이요? 그 앨범들에는 아쉬움이 많아요. 그 곡들을 제가 만들기는 했지만 저에게 맞게 쓰여진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에게 맞추어 쓴 곡이었는데 제가 부르려니 곡도 바꾸게 되고 그렇게 되니 달라지기도 하고 그리고 그 앨범을 충실하게 만들 시간도 부족했거든요. 그 곡들을 지금 들으면 당시 만들었던 일 그리고 그 때 생각이 나서 좋기는 해요. 그런데 오래 남을 것을 생각했다면,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죠."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귀국한 다음 해인 '95년 그는 그의 대학 동창이자 작곡가인 심상원과 함께 루(Loup)라는 프로젝트 듀오를 결성해 앨범을 만들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그 음반은 발매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간간이 라디오를 탔던 곡들을 기억하고 찾는 이들도 있다. 이를 계기로 이 음반이 발매될 무렵('95년 경)의 음반들을 살펴보면 작,편곡에 '루'로 표기된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이 둘(신재홍, 심상원)의 프로듀스 곡이다. 그리고 앞으로 솔로 앨범은 아니지만, 김형석의 [Ac+E] 앨범과 같은 프로젝트 앨범을 낼 계획이 있다고 한다.

그의이름을 들으며 떠올리게 되는 곡들은 주로 발라드 곡들이다. 하지만, 그가 발라드 곡만을 써온 것은 아니다. 제이의 1집에 수록된 '가리워진 사랑'이나 애즈 원의 '그녀의 게임', '보헤미안'과 같은 곡들, 혹은 이 곡들이 조금 멀다면 애즈 원의 '천만에요'만 떠올려 보아도 그의 음악은 확연히 구분된다.

"일렉트로닉적인 곡들을 상당히 좋아해요. 요즘 듣는 곡들도 그런 쪽이고요. 비요크(Bjork)나 에스테로(Estero) 등의 유럽 언더 그라운드 테크노를 주로 들어요."

따라서 '따로 국밥'처럼, 듣는 것 따로 만드는 것 따로일 때도 있다는 소리다. 그러기에 작곡가로서 어려운 점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과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작곡가가 A와 B라는 가수에게 곡을 준다고 가정할 때, 작곡가가 좋아하고 자신 있는 장르의 곡을 A에게 주고 트렌드에 맞춘 곡을 B에게 주었다. 이 때 B라는 가수의 곡이 히트를 하면 이 작곡가는 B라는 가수가 부른 곡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남게 되고 곧 그러한 스타일의 곡을 계속 써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이 맞아 좋아하는 스타일의 곡이 히트를 했다 해도 사람은 머물러 있지만은 않은 까닭에 이러한 경우에도 괴리감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프로듀서에게는 약간의 음악적 일탈과 자유가 허용되기에 작곡가들이 프로듀싱을 선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에는 프로듀서의 개념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음반 산업의 불황으로 앨범의 실수요가 줄어듦으로 인해 앨범 단위의 프로듀서보다는 자신의 곡을 책임지는 프로듀서로, 쉽게 이야기해서 작, 편곡자의 체제로 다시 돌아 갈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이미 MP3로 한 곡씩 판매를 하고 있으며 이에 반대하는 뮤지션들도 있지만, 업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찬성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활성화 될 경우 "어떤 가수와 어떤 제작자가 음반을 만들 것인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그는 녹음 스케줄이 있다며 바쁘게 자리를 옮겼다.

무엇이든 10년을 하면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10년이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계속하는 끈기도 그 사람의 능력이다. 더구나 우리 가요계 만큼 유행에 민감하고 조금의 공백만 생겨도 쉽게 잊어버리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소모적일 수 밖에 없는 가요계에서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 계획이라는 그의 말에 고마움과 함께 애잔함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 싶다.

신재홍 Talks About Producer

프로듀싱을 하는데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프로듀싱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비중을 두는 것은 바로 분배의 문제다. 가수의 음악적 방향을 바꾸더라도 기존의 색을 어느 정도 남겨 두고 새로운 변화를 어느 정도 넣느냐 하는 배분이다. 즉 너무 갑자기 선회를 할 경우 상업적인 면에서 실패를 할 수가 있다. 대중 음악이니까. 트렌드나 상업적인 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프로듀서들이 대부분 작곡가들에 편중되어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은?

프로듀싱을 한가지 방향으로만 생각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꼭 곡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음반을 만드는 것 그리고 상업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의 절충자로서의 역할로 본다면, 중간에서 노래를 잘하는 가수와 곡을 잘 만드는 작곡가 연주를 잘하는 연주자들을 연결시켜주는 프로듀서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나라에서 프로듀서 하면 주도적으로 곡을 만들어 가수를 키우는 그런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다양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프로듀서, 되고 싶은 프로듀서의 모습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프로듀서보다는 한 가지 음악을 제대로 하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 데이비드 포스터나 퀸시 존스는 들으면 누군지 알지 않나? 그런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 한가지 분야에 정통한 자신의 색을가진 사람 말이다. 그런 프로듀서가 되고 싶고 그런 프로듀서들이 많이 나와 줬으면 한다.

박효신 Talks About 신재홍

1999년, 고3이라는 나이가 믿기 지 않는 성숙한 보컬과 가창력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데뷔한 박효신(당시 27살은 된 줄 알았다). 그가 4년이라는 시간을 타고 새 앨범 발매를 앞둔 4집 가수가 되었다. 그에게 그의 데뷔곡인 해줄 수 없는 일에서 3집. 그리고 이번 4집 음반까지 프로듀싱을 맡은 신재홍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달라.

99년 1집 앨범을 작업하는 중간에 만났다. 만나기 전에는 워낙 좋은 곡들을 쓰신 유명한 분이기에 많이 떨고 걱정도 했다. 어떤 곡일지도 궁금했지만, 내가 그 곡을 잘 부를 수 있을 지가 더 걱정됐기 때문에...무서울 것도 같았고. 그런데, 직접 만나니 따뜻하고, 재미있는 편안한 분이셨다. 그때 받은 곡이 '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데뷔 곡도 신재홍씨 곡 그리고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 앨범까지, 신재홍씨만의 색이 강한 사람이라 어떻게 보면 박효신=신재홍이라고 정해 질 수도 있고 그러기에 도박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신재홍씨를 프로듀서를 정한 이유가 있나?

해 주신 거다(웃음). 해주셔서 감사한 거고. 그런데 내 생각에 노래는 3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곡과 좋은 가사 그리고 무엇보다 가수가 노래를 잘 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 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곡이 가수와 잘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재홍씨의 곡은 내가 쓴 곡처럼 편안하게 잘 어울린다. 그러니까 다른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정하게 된 것 같다.

프로듀서로서의 신재홍씨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

일에 있어서는 굉장히 냉정하다. 인간적인 관계에서 냉정하면 차갑겠지만, 일적으로 냉정한 것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고 열심히 하게 하는 계기를 준다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에 내 곡이 두 곡 실렸는데 나도 곡을 써보겠다 했고 신재홍씨도 그러라고 하셨다. 두 곡 중에 한 곡은 1년쯤 전에 작곡을 해뒀던 곡이었다. 그래서 데모를 준비했고 들려 드리기 직전에 신재홍씨가 그러더라. "나는 이 곡을 다른 작곡가들과 같은 귀로 들을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내 곡이 다른 작곡가들의 곡과 같은 수준의 좋은 곡이라면 싣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빠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다시 브리지부터 곡을 열심히 만들었다.(웃음) 단점이라면, 나는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다고 보는데...나는 신재홍씨를 작곡가보다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그건 나도 그런 면이 있는데 솔직히 백 번을 부르던 한번을 부르던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분명히 호흡이나 음이 딱 맞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건 자기 만족이다. 신재홍씨도 그런 스타일의 분이다. 시간의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 그만큼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한다는 거다. 신재홍씨가 일상 생활에서는 털털하고 편한 분이지만, 5년간 보아온 바로는 완벽하게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일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정말 강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면이 프로듀싱을 맡긴 분이나 다른 분들 입장에서는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말이다.

신재홍씨께 하고 싶은 말과 바라는 점이 있다면?

휩싸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처음에 생각했던 목적으로 가는 길을 그대로 가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죽을 때까지 선생님의 곡을 부르는 것이 소원이지만, 그 연이 다할 지라도 지금껏 너무나 잘 걸어온 그 길을 그대로 계속 가주셨으면 한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래 너무나 잘 걸어온 그 길을 보고 저도 따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지금처럼 모두에게 따뜻하게 대해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곡을 써주셨으면 좋겠다.

*발표 앨범*

[신재홍 1집](1989년)

비의 추억, 예감 등이 수록된 그의 1집 앨범이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과 수퍼밴드의 베이시스트, 그리고 후일 삐삐밴드유앤미블루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던 가요계의 거장, 송홍섭이 편곡을 맡은 앨범. 신재홍의 풋풋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앨범.

[루(Loup)With 심상원]

한양대 음대 동기인 작곡가 심상원(기악과 바이올린 전공)과 함께 낸 듀오 앨범으로 아쉽게도 정식 발매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몇 가요 마니아들에 의해 비공식 앨범이 고액의 가격으로 암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역시 시대를 앞서나간 획기적인 랩 피처링과 참신한 사운드 메이킹이 돋보인다. 저음의 신재홍과 고음의 심상원 둘의 목소리 어울림도 좋다. 후에 나오는 가요계 명 작곡가/프로듀서들이자 자신들의 객원 체제 앨범들에서 간간히 보컬을 겸하기도 했던 유희열이나 이승환(작곡가)등에게도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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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참여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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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5집](1996년)

96년에 발매된 김현철 5집. 이 앨범에서 김현철과의 듀엣 곡 내가 뭐랬니''를 선보였다.

[김현철 7집](1999년)

99년 발매된 김현철 7집의 수록곡 Rhythm Of Emotion''. 흥겨운 펑키 비트에 재미있는 가사. 그리고 5집보다 더욱 닮은 김현철과 신재홍의 보컬을 구분하려면 귀를 곤두 세워야 할 듯.

[마스터 피스] (2001년)

신재홍, 심상원, 유정연, 윤일상, 이경섭 등의 작곡가들이 곡뿐만 아니라 보컬까지 맡아 만든 음반이다. 이 앨범에서 신재홍은 99년 사진으로 데뷔한 박혜영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자꾸만''의 가사를 약간 바꿔서 실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달은...해가 꾸는 꿈](1992년)

나현희, 이승철 주연의 영화로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그리고 [올드 보이]를 감독한 박찬욱 감독의 처녀작으로 신재홍이 영화 음악의 작곡을 맡았었다.

[패자 부활전](1997년)

장동건, 김희선 주연의 로맨틱 영화의 주제곡으로 최원석과 김태영의 듀엣곡인 For You도 신재홍의 곡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곡은 오늘이라는 천성일 작곡의 곡으로 이 곡의 보컬을 신재홍이 맡고 있다. 이 곡은 영화 중 장동건이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 받는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그 여운을 깊게 남기고 있다.

[선물] 드라마 O.S.T (2002년)

2002년 초 MBC에서 방영된 송윤아, 박정철 주연의 입양을 주제로 다룬 따뜻한 드라마. 신재홍 자신이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음반으로 꼽기도 했다.


oimusic 2004년 01월호 정상임
[1] 선배로 유재하, 동기로 김형석(근데 정작 김형석은 2023년 방송에서 신재홍이 1살 위 형이자 1학년 위 선배라고 했다. 프로필상으론 동갑인데 착각이거나 아니면 실제 나이가 다르거나 둘 중 하나일듯.)과 심상원, 후배로 정재형이 있다.[2] 가수 에스더가 '송애'라는 이름으로 먼저 발표한 곡이지만 후에 가사를 바꿔서 나온 곡이 '너를 위해'다.[3] 임재범 1집 타이틀곡으로 '90년대 초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군사독재 문화에서 막 민주화되고 외국의 자유로운 문화와 세련된 팝음악에 대한 동경이 있던 시기 굉장히 히트한 곡이다. 하지만 Paul Young의 "Every Time You Go Away #"를 표절했다는 판정을 받아 앨범 판매 불가와 방송금지 조치를 당했다. 신재홍으로선 흑역사지만 여기에 이의 제기도 있다. 이 곡에서 멋들어진 트럼펫 연주를 담당한 미국 뮤지션, 데이빗 스펜서 (David Spencer)는 마이클 볼튼이나 나탈리 콜,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과 연주한 정상급 트럼페터로 윤상의 "한 걸음 더"에서도 연주를 담당했는데 표절 논란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이 밤이 지나면'을 늘 자신의 수업 시간에도 잘 쓰여진 팝 곡의 예제로 늘 쓰는데 이 곡이 표절 판정을 받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What !!!!???? That's ridiculous!" "I really don't see the problem, though. The music is not in anyway like the other. He should fight it." ("뭐라구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곡은 폴 영의 곡과 어느 부분과도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신재홍)는 맞서 싸워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후 금지가 풀렸고 나중에 임재범과 2집, 4집을 같이 작업했다.[4] 박효신의 리메이크 앨범에 수록 됐는데 젊은층에선 박효신 원곡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5] 박효신 4집에 리메이크 되어 수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