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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능규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성오(星五) / 국포(菊圃)
출생 1850년 4월 7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하덕천동
(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1]
사망 1897년 12월 29일 (향년 47세)
경상북도 청송군
본관 청송 심씨[2]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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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심능찬의 부인 의성 김씨(1854 ~ 1926. 7. 15)[3]는 그의 외사촌 여동생이다.

2. 생애

1850년 4월 7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하덕천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에서 아버지 심면지(沈冕之, 1828 ~ 1886. 2. 6)와 어머니 함안 조씨(1830. 4. 9 ~ 1904. 10. 17) 조정우(趙定祐)의 딸 사이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집안에서 공부하다가 15촌 지간의 족숙(族叔)인 심성지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그 뒤 1896년 1월 스승 심성지가 안동부 청송군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스승의 의진에 입대하여 음력 3월 17일 조성로(趙性魯)·조성원(趙性源)·민동호·조광규(趙光奎) 등과 함께 참모에 임명되었다. 그해 4월 심성지 의진이 김하락 의진, 김상종(金象鍾) 의진과 연계 하에 의병 활동을 할 때 참전했다가, 현내면 감은동(현 안덕면 감은리) 뒷산 기슭에서 일본군과 마주쳐 교전 끝에 병사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

그 뒤 부동면 상평동(현 주왕산면 상평리) 마평(馬坪)과 경주군 등지에서 교전하였지만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고, 얼마 뒤에 좌익장 권성하 등과 함께 영덕의진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곧 해산되었다.

의진이 해산된 뒤에는 청송군에서 은거하다가 1897년 12월 29일 별세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1] #[2] 악은공파-석촌공 효상(孝尙)파 20세 능(能) 항렬.[3] 김영수(金永銖)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