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4:43:36

쌍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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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금으로 연주한 쌍화점

1. 개요2. 전문3. 당시 사회 배경 추측

1. 개요

雙花店

고려가요 중 하나.

기본적으로 작자 미상이나, 《고려사충렬왕 25년(1299년) 5월 기록에 '남장(男粧)에게 가르친 새로운 노래'라면서 삼장(三藏)이라는 한역시로 2절이 나온 것이 쌍화점과 내용이 같다.[1] 이 때문에 삼장을 지었다는 오잠(吳潛)의 창작물로 보는 설, 당시 원나라 풍속에 익숙했던 충렬왕의 취향에 맞춰서 연극 형태로 만들어진 각본의 일부라는 설, 원래는 고려속요로 민간에 돌았던 것이고 오잠은 채록한 다음에 이를 약간 편곡만 했을 뿐이라는 설로 나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쌍화점 문서는 마지막 설을 취하고 있다. #

《대악후보》와 《시용향악보》에 악보가 남아 있기 때문에 선율은 어느 정도 복원해서 연주할 수 있으며 복원도 되어 있지만, 고려가요 원곡은 시조창에 가까울 정도로 무척 느려서 현대인 취향에는 안 맞는지라 원곡을 재현해 연주한 음원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영화 쌍화점 OST에 실린 창작국악 버전만 뜨는 경우가 많다. 음원 사이트에 검색하면 복원본이 가끔 뜨기도 한다. #

'쌍화점'은 고려시대 당시 쌍화를 파는 가게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만두의 모양이 쌍화(인동초)로 보여 쌍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쌍화가 무엇인지는 해당 항목 참고.

2. 전문

원문 현대어역
에 雙 사라 가고신ᄃᆡᆫ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ᆷ미 이 店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ᄃᆡ가티 더ᇝ거츠니 업다

ᄉᆞ애 블 혀라 가고신ᄃᆡᆫ
그 뎔 社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뎔 밧긔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上ㅣ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ᄃᆡᆫ
우믓 龍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우물 밧ᄭᅴ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드레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숨 ᄑᆞᆯ 지븨 수를 사라 가고신ᄃᆡᆫ
그 짓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ᄉᆞ미 이 집 밧ᄭᅴ 나명 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싀구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ᄃᆡᄀᆞ티 더ᇝ거츠니 업다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인[2]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가게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

삼장사에 불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사주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우물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바가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같이 답답한 곳이 없다

전문 보기, 해석
〈쌍화〉에 대한 다른 해석을 다룬 기사, 아라비아 상인의 세공품

전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 노래는 고려 여인이 간 곳, 손목을 잡은 남자, 소문을 퍼뜨린 대상 셋만 바뀌면서 변주되는 노래이다. 이 여인은 1절에서 만두가게 서역인부터 시작해서 스님, 술집 아저씨, 심지어 우물가에 갔다가 환상종에게도 손목을 잡힌다. 이때 용은 왕족의 은유라는 설이 있다.

3. 당시 사회 배경 추측

고려 역사를 웬만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쌍화점〉을 통해 당시 사회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쌍화점은 국문학으로서의 작품성도 있지만 고려 후기의 사회상을 담고 있다는 가치도 있다. 그렇다고 쌍화점의 묘사를 당대 사회상의 객관적인 반영이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풍자 문학은 사회의 단편을 투영할 수는 있어도 사료로서의 객관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 첫 번째의 '회회 아비'는 이슬람을 믿는 '위구르족'이다. 위구르족은 색목인에 속하는 계층으로 보인다. 당시 위구르족은 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 2번째의 '삼장사의 주지'는 당시 타락한 불교를 상징한다. 고려는 국교가 불교였고 그에 따라 엄청난 수의 들이 창건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불교가 여러 세월을 거치며 점점 타락하기 시작했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는 절에서 을 빚어 마시며 놀고 세금도 면제 받으며 노비까지 하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고려 초기부터 불교의 권력이 막강하긴 했지만, 청렴의 상징인 불교도까지 타락했다는 가사의 내용은 고려시대 사회의 타락함을 더욱 부각한다. 참고로 삼장사는 개경에 실제로 있었던 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3번째의 '우물가의 용'은 당시 고려의 왕과 왕족을 뜻한다. 어째서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우물인지 의아할 수도 있으나, 작제건 전설에서 우물이 용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묘사된 것을 보면 이상하지 않다.


[1] 삼장사에 등불 켜러 갔더니만(三藏寺裏點燈去) / 사주가 내 손을 쥐더이다(有社主兮執吾手) / 만일 이 말이 절 밖으로 나간다면(倘此言兮出寺外) / 상좌여, 네 말이라 하리라(謂上座兮是汝語)[2] 이슬람교를 믿는 색목인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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