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5 22:29:38

쓰쓰이 다케오

파일:육상막료장기.png
육상자위대 육상막료장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경찰예비대 중앙본부장 겸 총감
하야시 게이조
보안대 제1막료장
하야시 게이조
초대
쓰쓰이 다케오
제2대
스기야마 시게루
제3대
스기타 이치지
제4대
오모리 간
제5대
아마노 요시후사
제6대
요시에 세이이치
제7대
야마다 마사오
제8대
기누가사 하야오
제9대
나카무라 류헤이
제10대
마가리 도시로
제11대
미요시 히데오
제12대
구리스 히로오미
제13대
다카시나 다케히코
제14대
나가노 시게토
제15대
스즈키 도시미치
제16대
무라이 스미오
제17대
와타나베 게이타로
제18대
나카무라 모리오
제19대
이시이 마사오
제20대
데라시마 다이조
제21대
시마 아쓰시
제22대
니시모토 데쓰야
제23대
도미자와 히카루
제24대
와타나베 노부토시
제25대
후지나와 유지
제26대
이소지마 쓰네오
제27대
나카타니 마사히로
제28대
맛사키 하지메
제29대
모리 쓰토무
제30대
오리키 료이치
제31대
히바코 요시후미
제32대
기미쓰카 에이지
제33대
이와타 기요후미
제34대
오카베 도시야
제35대
야마자키 코우지
제36대
유아사 고로
제37대
요시다 요시히데
제38대
모리시타 야스노리
}}}}}}}}}

일본국 초대 육상막료장
[ruby(筒井, ruby=つつい)][ruby(竹雄, ruby=たけお)][1]
쓰쓰이 다케오 | Takeo Tsutsui
파일:external/www.geocities.co.jp/02tutui.jpg
<colbgcolor=#c0a73f><colcolor=#FFF> 출생 1902년 5월 20일
일본 제국 와카야마현
사망 1968년 9월 15일 (향년 66세)
학력 와카야마중학교
구마모토제5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재임기간 초대 육상막료장
1954년 7월 1일 ~ 1957년 8월 1일
군사 경력
임관 없음
복무 육상자위대
1954년 ~ 1957년
최종 계급 육상막료장 (육상자위대)
최종 보직 육상막료장
주요 보직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의 관료, 군인이다. 초대 육상막료장을 지냈다.

2. 생애

1902년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났다. 원적지는 히가시나가미치(東長町)이다. 와카야마중학교, 구마모토제5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25년에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고위 공무원이 되었다. 1927년에 조선총독부에 배치되어 특허국, 함경남도 지방과장, 경기도 학무과장, 함경북도 경찰부장 등을 거쳐 황해도지사로 근무하던 중에 종전을 맞았다.

1945년 8월에 소련군에 의해 억류되었다. 이후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1950년 4월에 일본으로 귀국했고, 같은 해 12월에 경찰예비대에 입대했다. 내무성 관료 출신들이 대거 고위직에 등용되었는데, 쓰쓰이 역시 중장 계급에 상당하는 경찰감 계급을 받았다. 시베리아에 4년 이상 억류되었음에도 빠르게 공직에 복귀한 걸 보면 유능했거나 뒷배가 있었던 모양.

1951년 10월에 태풍 루스가 일본에 왔을 때 자위대의 재해파견을 최초로 실시했다. 1954년에 하야시 게이조통합막료회의의장으로 영전하자 육상막료장이 되었다. 1957년 퇴임했고 후임자는 스기야마 시게루이다.

1968년 9월 15일에 별세했다. 훈2등 서보장을 추서받았다.

3. 여담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인물자료

해당 사이트에서 가족 관계도 확인할 수 있다.
  • 장남 이치로(一郞, 1928년 2월생)
  • 차남 마코토(誠,1929년 6월생)
  • 장녀 기코(紀子, 1931년생)
  • 3남 히로시(宏, 1933년생)


정진석 공저의 <극비 조선 총독부의 언론 검열과 탄압: 일본의 침략과 열강세력의 언론통제>에 따르면, 1940년에 쓰쓰이는 경성에서 총독부의 도서과장으로 근무했다. 해당 책자에서는 쓰쓰이를 조선일보동아일보의 폐간을 주도했던 실무자로 보고 있다. 해당 자료


[1] 한국 한자음으로는 통정죽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