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6 21:59:19

아돌프 폰 율리히베르크

이름 아돌프 폰 율리히베르크
Adolf von Jülich-Berg
출생 1370년
베르크 공국
사망 1437년 7월 14일
신성 로마 제국 쾰른
아버지 빌헬름 1세 폰 베르크
어머니 팔츠의 안나
형제 베아트릭스, 마르가레테, 루프레히트, 게르하르트, 빌헬름
아내 바르의 욜랑드,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자녀 루프레히트
직위 율리히와 베르크 공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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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율리히와 베르크 공작. 헬러 공작위를 놓고 아놀드 폰 에그몬트와 전쟁을 벌였다.

2. 생애

1370년경 베르크 공작 빌헬름 1세 폰 베르크와 팔츠 선제후 루프레히트 2세의 딸이자 로마 왕 루프레히트의 누이인 안나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베아트릭스[1], 마르가레테[2], 루프레히트[3], 게르하르트[4], 빌헬름[5]이 있었다.

1395년 아버지로부터 베르크와 연결된 라벤스베르크 백국을 하사받았다. 1397년 아버지가 클레베르함 전투에서 율리히, 헬러 공작 빌헬름 7세 폰 율리히와 함께 마르크 백작 디트리히, 클레베 공작 아돌프와 맞붙었다가 패배하여 생포된 뒤 막대한 몸값을 내주는 대가로 석방되었다. 이 때문에 막대한 빚을 상속받게 생긴 데다, 나중에 클레베 공작 등에게 영지를 잃을 것을 두려워한 아돌프는 형제 빌헬름과 함께 아버지에게 베르크의 더 많은 부분을 양도하도록 강요했다. 아버지가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자, 아돌프는 1403년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체포한 뒤 1403년 8월부터 1404년 11월까지 부르크 성에 감금했다. 그러나 이웃 영주들이 그를 불효자라고 비난했고, 로마왕이자 삼촌인 루프레히트마저 제국금지령을 반포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복위시켰다.

1408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클레베 공작이 되었다. 이후 형제 빌헬름을 쾰른의 대주교로 삼기 위해 디트리히 폰 뫼르스를 상대로 1414년부터 1416년까지 전쟁을 벌였지만 로마 왕 지기스문트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1415년 아내 바르의 욜랑드의 오빠인 에두아르 3세 드 바르가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사망하자, 지기스문트는 1417년 아돌프를 퐁타무송 변경백에 선임한 뒤 아돌프의 외아들 루프레히트를 새로운 바르 공작에 선임시킴으로써, 바르 공작령을 신성 로마 제국에 편입시키려 했다. 그러나 오직 퐁타무송만 확보할 수있었고, 바르의 다른 지역은 로렌 공국의 영지로서 프랑스에 귀속되어 있었다. 앙주의 르네는 아내인 로렌의 이자벨의 상속권을 근거 삼아 바르 공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아돌프는 무력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로 하고 1421년부터 르네와 전쟁을 벌였지만 1422년 로렌에서 생포된 뒤 바르 계승권을 포기하고 몸값을 지불하는 대가로 풀려났다.

1423년, 헬러와 율리히 공작 레이날트 4세 폰 율리히가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사망했다. 아돌프는 레이날트 4세의 친척인 점을 근거로 삼아 율리히 공국을 손쉽게 공략한 뒤 헬러 공국마저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아놀드 폰 에그몬트가 자신이 레이날트 4세의 여동생인 요한나의 손자인 점을 근거로 삼아 헬러 공작위를 주장했다. 아놀드는 헬러 귀족 및 도시들의 특권을 보장하고 더 많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헬러 기사단과 도시 대표단은 1423년 7월 8일 니어메겐에서 그를 만장일치로 헬러 공작에 추대했다.

1424년 8월 15일, 아놀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지기스문트에게 14,000 길더를 제공하는 대가로 헬러 공작령과 율리히 공작령을 맡을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놀드가 그 돈을 지불하지 못하자, 지기스문트는 1425년 5월 24일 아돌프에게 헬러 공작위를 수여했다. 이후 두 사람은 헬러 공작위를 놓고 전쟁을 치렀다. 그는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저지대 국가 전역을 통제하는 것을 지지하는 대가로 지원을 받아냈고, 나중에 필리프의 조카인 클레베의 카타리나와 결혼해 부르고뉴 공국과의 동맹을 강화했다.

아놀드와 아돌프의 전쟁은 4년간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가 1429년 7월 임시 휴전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후 지기스문트는 부르고뉴 공작의 권세가 지나치게 강해져서 신성 로마 제국 서부 지역이 죄다 넘어갈 것을 우려한 끝에 1431년 아놀드를 제국 추방형에 처했다. 하지만 아놀드는 부르고뉴 공국의 지원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휴전이 만료된 후인 1433년부터 1436년까지 율리히 공작령을 확보하기 위해 아돌프와 전쟁을 치렀지만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선량공 필리프가 두 사람을 중재하면서 또다른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1433년 외아들 루프레히트가 사망한 뒤 직접적인 후계자를 두지 못하던 아돌프는 1437년 7월 14일 쾰른에서 사망했고, 알텐베르크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사후 조카 게르하르트가 율리히 및 베르크 공작에 취임했다.

3. 가족

  • 바르의 욜랑드(1378 ~ 1421): 바르 공작 로베르 1세와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딸 마리의 딸.
  •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1406 ~ 1468): 바이에른 공작 에른스트의 딸. 아돌프 폰 율리히베르크 사후인 1440년에 그라프 헤소 폰 라이닝겐과 재혼했다.


[1] 1364 ~ 1395, 팔츠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의 부인[2] 1364 ~ 1442, 브라운슈바이크-괴팅겐 공작 오토 1세의 부인[3] ? ~ 1394, 파사우와 파더보른의 주교[4] ? ~ 1435, 쾰른 대주교[5] 1382 ~ 1428, 라벤스베르크의 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