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20:10:29

아랍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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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반란
الثورة العربية
Arab Revolt
제1차 세계 대전 중 근동 전선의 일부
날짜
1916년 6월 10일 ~ 1918년 10월 25일
장소
히자즈, 트란스요르단, 시리아, 아라비아 반도 남부, 오스만 제국
원인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아라비아 독립
교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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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틀:국기|]][[틀:국기|]]
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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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3공화국|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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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틀:국기|]][[틀:국기|]]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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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앨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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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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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트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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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제말 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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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파크리 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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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무히딘 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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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사우드 빈 압둘아지즈 알 라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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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2세|]]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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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3만 명 (1916년 6월)
5만 명 이상 (19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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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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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 5백 ~ 7천 명(1916년 5월)
2만 5천 명(1918년 9월)
인명 피해
불명 [[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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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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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군|]]
[[자발 샴마르 토후국|]][[틀:국기|]][[틀:국기|]]
5천 명 전사
2만 2천 명 포로/부상
1만 명 병사
재산 피해
미상 미상
결과
무드로스 휴전 협정
세브르 조약
영향
헤자즈 왕국 독립
오스만 제국 분열
영국의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트란스요르단 지역 점령
프랑스의 시리아, 레바논 지역 점령

1. 개요2. 전개3. 종전과 결과4. 기념5.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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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에 대해 샤리프 후세인 휘하의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

2. 전개

파일:아랍 이슬람 봉기.jpg
아랍 봉기군

영국의 외교관 헨리 맥마흔과 샤리프 후세인이 서한을 통해 메카에서 반란을 일으키기로 합의하고 1916년 6월 10일부터 반란을 시작했다. 비록 직전에 메디나에서 벌어진 봉기는 파흐리 파샤에게 진압되었지만, 메카에선 한 달의 격전 끝에 봉기군이 승리했다. 타이프 역시 3개월의 포위 끝에 점령되었다. 다만 제다는 영국군의 해상, 항공 지원으로 쉽게 점령되었고, 이라크 주둔 오스만 군 포로 및 서아프리카 무슬림 병력 등이 봉기군에 가세하였다.

이후 약 1년여간 메디나 및 헤자즈 철도에서 국지전을 벌이던 봉기군은 1917년 7월, 아카바를 점령하며 레반트로 진출한다. 다만 친오스만 세가 강하던 케라크 공격은 격퇴되었고[1], 이후 봉기군은 헤자즈 철도 파괴에 일관하며 메디나의 파흐리 파샤를 고립시켰다. 이러한 보급 방해 덕에 영국군은 고전하던 가자 방어선을 돌파하고 1917년 말엽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었다. 1918년 여름까지 요르단 지역을 평정한 봉기군은 시리아로 진입, 타파스 학살 후 철수하던 오스만-독일군을 습격해 몰살시켰다.

봉기군은 9월의 메기도 전투부터는 영국군과 함께 전투에 임했고, 10월 들어 패색이 짙어진 오스만 군은 전의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마스쿠스에선 살아남은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봉기군의 입성 전부터 헤자즈 왕국기를 게양했고, 10월 초엽 파이살 왕자가 무혈 점령한다. 그후 봉기군은 후퇴하는 오스만 군을 추격하며 파죽지세로 진격, 하루 간의 시가전 끝에 알레포를 점령한다. 다만 후퇴하는 오스만 정예군인 을드름 부대를 추격했다가 격퇴되는데, 이때의 오스만 지휘관이 바로 무스타파 케말이었다.

3. 종전과 결과

파일:FeisalPartyAtVersaillesCopy.jpg
파리 강화 회의 당시 파이살 1세 대표단[2]

며칠 후 무드로스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이 항복하며 레반트에서의 총성은 멈췄고, 우주방어를 시전하며 2년 넘게 버티건 메디나의 파흐리 파샤는 성유물을 챙겨 떠났다. 이로써 정확히 5백년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레반트-히자즈 지배는 끝이 났다. 하지만 샤리프 후세인 및 아랍인들의 기대와 달리 봉기를 촉발한 후세인 맥마흔 서한은 지켜지지 않았으니,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막후에서 사이크스-피코 밀약으로 기존에 약속했던 '이집트와 이란 사이'의 땅을 각각 절반씩 분할하기로 한 것이다.

아랍인들은 분노했지만, 힘의 차이 앞에서 어쩔 수 없었고 파이살을 왕으로 추대한 시리아 아랍 왕국은 프랑스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또한 팔레스타인이 영국령이 되며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의 이주가 이어져 이스라엘 건국의 토대가 마련되었고, 이라크 역시 석유 이권을 위해 영국이 장악했다가 1932년에서야 하심 왕가가 형식상으로 집권한다.

4. 기념

파일:1280px-Flage_of_the_Great_Arab_Revolt.jpg
아카바의 헤자즈 왕국기

헤자즈 왕국의 직계후손인 요르단에서는[3] 2016년 6월에 아랍 반란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했다.#

5. 창작물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배틀필드 1 캠페인의 배경 중 하나이다.

화약고 제국의 천재 대공에선 무스타파 케말의 말[4]을 통해 짧게 등장한다. 영국,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으나 1차 대전이 동맹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진압을 당한걸로 보인다.



[1] 현지 부족들은 오스만 측의 보조금을 선호, 또한 오스만측 보복을 우려해 저항[2]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루스탐 하이다르 이라크 왕국 경제 장관, 누리 알 사이드, 파이살 1세,
로사리오 피사니 프랑스군 대위(파이살 1세 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영국군 대령, 미확인 (파이살 1세의 노예로 추정), 타신 카드리 대위.)
[3] 샤리프 후세인의 고손자가 압둘라 2세이다.[4] 그들의 피로 대지를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