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피드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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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피드족 2대 군주 Fastida | 아르다리크 | ||
제호 | 한국어 | 파스티다 |
라틴어 | Ardaric | |
생몰 년도 | 미상 | |
재위 기간 | 454년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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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 기록에 전해지는 게피드족 2번째 군주. 훈족 제국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게피드 왕국의 탄생을 주도한 인물이다.2. 행적
요르다네스의 《게티카》(Getica)에 따르면, 게피드족의 왕 아르다리크는 충성심과 지혜로 유명했으며, 훈족의 왕 아틸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아틸라는 다른 모든 족장보다 그를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451년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아르다리크가 이끄는 게피드군은 아틸라군의 우익을 맡아,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의 좌익을 맡은 프랑크족과 격돌했다. 요르다네스에 따르면, 양자는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 서로 격렬하게 맞붙어 쌍방 15,000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452년 아틸라의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해 아퀼레이아, 파비아, 밀라노를 공략했지만, 전염병이 창궐하자 아틸라와 함께 철수했다.453년 아틸라가 급사한 뒤, 장남 엘라크가 권력을 잡았다. 엘라크는 아버지가 지배했던 모든 영토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를 원했지만, 그의 형제 뎅기지크, 에르나크가 이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454년, 아르다리크는 훈족이 내전에 휘말린 틈을 타 반기를 들어 헤룰리, 루기, 스키리, 수에비족과 연합했다. 엘라크는 이를 진압하러 출진했고, 양군은 네다오 강변[1]에서 온종일 맞붙었다. 그 결과 훈족과 게르만 연합군 3만 명이 전사했고, 엘라크도 사살되었다. 이리하여 게피드족은 훈족의 지배에서 독립하고 게피드 왕국을 건국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으며, 기스무스가 그의 뒤를 이어 게피드족의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