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2:58

아씨(동양방송)

TBC 일일연속극
아씨 (1970)
Madam
파일:아씨 메인 이미지.png
<colbgcolor=#b55753><colcolor=white> 방송 시간 월요일 ~ 금요일 9시 40분 ~ 10시
방송 기간 1970년 3월 2일 ~ 1971년 1월 9일
방송 횟수 253부작
장르 시대극
제작 TBC 자체제작
채널 TBC
제작진 <colbgcolor=#b55753><colcolor=white> 연출 고성원
극본 임희재, 이철향[일부]
기술감독 윤성현
미술감독 장종선
촬영 전한익
조명 민화식
카메라 최희원 外 다수
해설 유병희
출연 김희준, 김동훈, 여운계, 사미자, 김창세, 선우용여, 김용림, 복혜숙, 노주현, 김명순, 황정순, 김종결, 김성환, 남수연 外

1. 개요2. 특징3. 등장인물4. 주제가5.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20231216_220308.jpg
아씨의 오프닝
《아씨》는 1970년 3월 2일부터 1971년 1월 9일까지 방영한 동양방송 일일연속극이다.

1920년대부터 1950년까지를 배경으로 하며, 한 가정의 며느리들의 일생을 그렸다. 주인공인 아씨 역김희준이 맡았으며 김성환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이 시대 여느 드라마나 마찬가지로 필름이 워낙 귀하던 시절이다 보니, 방영분을 담은 테이프는 재활용되어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오직 마지막회만 동양방송을 흡수한 한국방송공사가 보관하고 있다.

리메이크판으로 1997년KBS2 주말 연속극 <아씨>가 있다.

2. 특징

파일:아씨 포스터.png
아씨 극장판 포스터.

1970년 3월 2일부터 1971년 1월 9일까지 동양방송(JTBC의 전신)에서 일일극으로 방송되어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였던 드라마. 연출은 고성원, 극본은 임희재[2], 해설은 성우 유병희였다.

1년 뒤에 KBS에서 방영한 여로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드라마로 시월드로 고통받음에도 그것을 견뎌서 해피엔딩을 맛보는 며느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교되지만 바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편단심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이 주역으로 나오고 코미디씬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여로보다 분위기가 어둡다. 애초에 남편이 기생과 대놓고 외도를 하고 다니고 며느리는 남편이 외도하는것을 참고 꿋꿋하게 자식을 키워나간다는 것이 주된 스토리이니 어느정도로 히트쳤냐면 드라마가 방영된 시간에 수도권PK 일대 지역[3]의 길거리가 조용해졌고, TV가 몹시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아씨가 방영되는 날에 TV가 있는 집안으로 몰려들려서 발디딜틈이 없었다는 증언이 나돌 정도였다.

이미자가 부른 드라마의 주제곡도 유명해서 1970년에 지구레코드에서 음반이 발매되기도 하였다.[4]

드라마가 한창 방영 중이던 1970년 여름 최인현 감독으로 영화화가 결정되었고, 종영 직전인 1971년 1월 7일 부산에서 영화로 개봉되었다. 문서 상단 포스터가 바로 여로 영화판 포스터. 다만 영화는 9일 동안 3만 명의 관객만 모으며 흥행에는 실패했고, 2부작 영화로써 2부 '서방님 따라서'도 1971년 개봉했지만 이 역시 흥행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 영화판에는 드라마 출연진은 물론 송해 등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았던 배우들도 출연했으며, 드라마와 달리 컬러로 촬영되었고, 필름이 현존하고 있다. 1편 아씨(1970), 2편 서방님 따라서(1971)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본 드라마가 거의 모두 소실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3. 등장인물

4. 주제가

동명 주제가는 극본을 맡은 임희재 작사, 유명 작곡가 백영호 작곡, 이미자가 불렀는데, 1970년에 부른 원곡. #

인터넷에 널리 퍼진 것은 이미자가 40대이던 1980년대에 부른 것이고, 멜로디가 전혀 다르다. 이것은 동일 가수의 <서울이여 안녕(1968)>도 마찬가지. # 이 곡도 1968년 TBC-TV 드라마 주제곡이지만 영상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5. 여담

  • 총 253화 중 1971년 1월 9일 방영한 마지막화만 보존되어 있는데, 해당 테이프는 본작 기술감독이던 윤성현(전 KBS 남양송신소 총감독)이 소장해왔다. 그리고 아씨 마지막회는 KBS에 보관된 드라마 영상물 가운데 가장 오래 보존된 드라마이기도 한데, 즉슨 아씨 마지막화는 현존하는 최초의 한국 TV 드라마 영상 자료이다.[9] 사실 이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테이프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까 죄다 돌려썼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볼 수 있다.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에서도 마지막회 일부가 나온 바가 있다고 하니 당대에도 특별 자료 취급을 받아 따로 보존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 1970년작과 1997년 리메이크작 모두 출연한 인물이 배우 김세윤여운계이다. 김세윤은 1970년작에서는 나쁜 남편으로 나왔는데, 27년 후에는 며느리를 아끼는 시아버지로 나온다는 점이 재미있다. 여운계는 1970년작에서는 아씨의 지극한 몸종으로 출연했는데, 리메이크작에서는 아씨를 괴롭히는 치매걸린 시할머니를 연기했다.
  • 1970년작 당시에는 배우와 배역을 따로 구분하지 못하던 사람들(특히 어르신들)이 워낙 많던 시기라 김세윤은 길을 가다가 괜히 억울하게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얻어맞은 적이 꽤나 있었다고 한다.[10]
  • 연출을 맡은 고성원은 1997년 리메이크작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지는 않았었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리메이크작의 대본을 쓴 이철향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작품을 망쳐놓았다고 쌍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11]
  • 폭발적인 흥행 와중에 숨겨진 문제점도 여럿 있었는데, 일각에선 일본 NHK 연속 TV 소설 <오하나항(おはなはん, 1966)>과 전개가 비슷해 표절시비를 일으킨 바 있었으며# 방송사고가 세 번 있었다. 1970년 3월 27일 방영분에서 여운계와 김희준이 연기 도중 자신의 대사에 웃는 장면이 방영되거나#[12] 30일에는 진달래 피는 봄이 배경임에도 효과음으로 뻐꾸기 소리가 나서 빈축을 샀고, 6월 17일엔 전날 방송된 필름을 다시 내보내서 시청자들이 당황한 바 있다.
  • 당시 시청률이 70%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1970년만 해도 TV가 있는 집이 드물어 TV 보유 가정으로 온 마을이 모여 드라마를 시청했던 탓에 빈 집을 노린 좀도둑 등이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방영 전에 ‘문단속을 반드시 하고 수도꼭지를 꼭 잠그시라’ 라는 내용의 안내 자막이 출력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TBC는 서울부산 지역에서만 송출되었기에 다른 지방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 2012년에 JTBC에서 TBC추억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마지막회를 방영하였다.


[일부] 이철향은 드라마의 중·후반부인 9월부터 11월까지 집필했다.[2] 1970년 9월부터 위암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2개월 동안 이철향 작가가 대필했다. 이후 병상에서 결말까지 집필했다. # 다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종영 약 2개월이 지난 1971년 3월 30일에 사망했다.[3] 참고로 동양방송은 이 두 곳에서만 TV 방송을 했다.[4] 아울러, 리메이크작에도 이 곡이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는데 같은 방송사 월화드라마 장녹수 주제가를 부른 전미경이 불렀다.[5] 리메이크 판에서는 박씨 역을 맡았다.[6] 이후 김세윤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며 연기자로서 이름을 남겼다.[7] 리메이크 판에서는 긍재의 아버지 이 참봉 역을 맡았다.[8] 이 드라마 작가인 임희재의 아들이었다.[9] 역으로 따진다면 아씨 이전에 제작된 1950~60년대 TV 드라마는 영상으로 남아있는 것이 한 편도 없다.[10] 비슷한 사례로 배우 윤여정이 장희빈 역을 연기했을 당시에 길거리에서 돌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다.[11] 이철향은 1970년작 집필을 맡았던 임희재가 위암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임희재를 대신하여 드라마 후반부의 각본을 집필하였다. 단 임희재는 마지막회 만큼은 자신이 마무리 하겠다고 병상에서 힘겹게 쓴 마지막회 각본을 이철향에게 주면서 마지막회 이전까지의 드라마를 잘 부탁한다며 간청하였다. 그만큼 임희재의 작품성은 뛰어난 것으로 보이며 임희재 작가 사후에도 고향에서 그의 이름을 딴 문학제까지 열 정도이기도 하다.[12] 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한 김동건 아나운서의 말에 의하면 저 당시 편집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고 한다. 아마도 다시 녹화하기가 그랬는지 그대로 내보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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