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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미자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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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대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2] | |||||||||||||||||||||||||||||||||||||||||||||||||||||||||||||||||||||||||||||||||||||||||||||||||||||||||||||||||||||||||||||||||||||||||||||||||||||||||||||||||||||||||||||||||||||||||||||||||||||||||||||||||||||||||||||||||||||||||||||||||||||||||||||||||||||||||||||||||||||||||||||||||||||||||||||||||||||||||||||||
안인숙 (1974년) | → | 사미자 (1975년) | → | 허진 (197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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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72CF9><colcolor=#fff> 사미자 史美子|Sa Mi-ja | |
출생 | 1940년 5월 9일[3] ([age(1940-05-09)]세) |
경기도 경성부 냉천정 (現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냉천동) | |
본적 | 경기도 파주시[4] |
본관 | 청주 사씨[5] |
신체 | 160cm, 63kg, 240mm |
배우자 | 김관수(金寬洙)[6] |
자녀 | 슬하 2남 1녀 장녀 김희주(金喜珠)(1962년 9월 30일) 장남 김용하(金容夏)(1964년 3월 14일) 차남 김용훈(金容勳)(1975년 7월 24일) |
학력 | 서울미동국민학교 (44회 / 졸업) 이화여자중학교 (졸업)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
종교 | 성공회 (신명: 헬레나) |
데뷔 | 19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 (데뷔 [age(1963-01-01)]년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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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드라마 '당신뿐이야' 中 |
▲ JTBC '인생토크쇼 터닝포인트' 中 |
▲ 채널A '웰컴 투 시월드' 中 |
2. 생애
1940년 5월 9일 경기도 경성부 냉천정(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아버지 사종순(史宗淳, 1894. 6. 13 ~ 1953. 9. 28)과 어머니 청주 한씨(1894. 4. 2 ~ 1954. 1. 22) 한인삼(韓仁三)의 딸 사이의 4남 1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10살 되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이후 아버지가 별세하셔서 줄곧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이후 서울미동국민학교와 이화여자중학교·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 활동
1963년 DBS 1기 성우로 데뷔해 이후 배우로 전향, 중견 탤런트로서 국민적 스타가 되었으며, 노년기에는 각종 예능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고 있다.젊은 시절에는 대한민국 여배우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미인이었다. 특히 TV 탤런트 중에는 독보적이었다. 초반에 유부녀임을 숨기고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밝혀졌다. 그래서인지 타고난 미모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 역할은 들어오지 않았고, 초반부터 아줌마나 할머니 역할을 많이 맡았다.[7][8]
지금과 달리 가족극과 통속극이 주류였던 시절이라 사미자와 같은 중노년역 전문배우의 입지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컸다. 1986년 배우 출연료 1위일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 코카콜라 첫번째 여성 CF 모델로 코카콜라 125주년 행사에 초대 받을 정도로 광고에서도 깊은 족적을 남겼다.#
특히나 깐깐한 시어머니나 깍쟁이 장모 역으로 잘 등장했는데, 동갑인 여운계와 함께 이런 역의 달인이라 할만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춘향전의 월매 역할을 이보다 더 어울리게 소화한 배우는 없었다.
아래 김태희와의 비교 사진은 아주 유명하며 참고로 이 사진을 찍을 당시 사미자는 출산한 후였다.
최은희, 신상옥의 수기, 김정일 왕국에 따르면, 김정일이 "사미자 참 연기 잘해요" 라고 연기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를 두고 KBS의 반공 드라마 지금 평양에선에서 김정일과 사이 좋지 않던 계모 김성애 역할을 표독스럽게 잘 했다고 칭찬한 것으로 와전되어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당시에 방영되던 MBC 일일 연속극에 나오는 연기를 보고 지나가는 식으로 한마디 한 것이다.
4. 출연 작품
- 미녀 홍낭자 (1969)
- 떠나도 마음만은 (1969)
- 맹수[9] (1969)
- 산에 가야 범을 잡지 (1969)
- 마의 침실 (1970)
- 굿바이 동경 (1970)
- 아씨 (1970)
- 돌아온 팔도사나이 (1970)
- 떠나야할 사람은 (1970)
- 알뜰부인 덜렁부인 (1971)
- 며느리의 한 (1972)
- 난파선 (1973)
- 말띠 며느리 (1979)
- 로맨스 그레이 (1979)
- 야 곰례야 (1979~1980) - 홍마담
- 사랑하는 사람아 3 (1984)
- 성춘향 (1987)
- 보통 사람들 (1982)
- 하늘은 알고 있다(1983)
- 백조부인(1983~1984)
- 함정(1984)
- 방랑자(1985)
- 꽃반지(1985~1986)
- 나타리아 (1986)
- 아리수별곡(1986)
- 산유화(1987)
- 토지(1987) - 봉순네
- 바라밀(1988)
- 찻잔속의 달(1989)
- 사랑의 굴레(1989)
- 열녀, 지옥에 떨어지다(1991)
- 도둑의 아내(1991)
- 우리는 중산층 (1991)
- 사랑이 뭐길래 (1991)
- 교토 25시 (1991)
- 황혼에 피는 꽃(1991)
- 해뜰날 (1992)
- 백번 선 본 여자 (1992)
- 시간과 눈물 (1992)
- 모래 위의 욕망 (1992)
- 겨울 무지개(1992)
- 위스키와 돼지갈비 (1993)
- 들국화 (1993)
- 기쁨이면서 슬픔인 채로 (1993)
- 합이 셋이오 (1993)
- 왕십리 (1993) - 춘천댁
- 겨울 도화리 (1994)
- 아들의 여자 (1994)
- 장희빈 (1995) - 천 상궁
- 행복
- LA아리랑
- 개성시대
- 아파트 (1995)
- 엄마는 못말려(1996)
- 원지동블루스(1996)
- 때로는 타인처럼 (1996)
- 욕망 (1997)
- 여자 (1997)
- 상사와 아내(1997)
- 모정의 강(1997)
- 사랑(1998)
- 보고 또 보고 (1998) - 이 여사
- 맏이 (1998)
- 종이학 (1998) - 나현 할머니
- 사랑해 당신을 (1999) - 윤 여사
- 사랑의 전설 (2000)
- 눈으로 말해요 (2000) - 영자
- 사랑은 아무나 하나 (2000)
- 요정 컴미 (2000) - 소옥경의 외할머니
- 꽃밭에서 (2001)
- 순자 (2001) - 장 여사
- 동서는 좋겠네 (2001) - 조성자
- 우리집(2001~2002)
- 엄마의 노래 (2002)
- 인어 아가씨 (2002) - 금옥선
- 결혼하고 싶은 여자 (2004)
- 왕꽃 선녀님 (2004) - 한미녀
- 행복한 여자 (2007) - 변영자
- 신현모양처 (2007) - 이정자 여사
- 착한여자 백일홍 (2007) - 허문자
- 너는 내 운명 (2008) - 손풍금
- 천만번 사랑해 (2009) - 지옥선
- 부자의 탄생 (2010) - 왕회장 모친
- 내사랑 내곁에 (2011) - 사라정
- 당신뿐이야 (2011) - 안소녀
- 총각네 야채가게 (2011) - 박순금
- 스탠바이 (2012)[10]
- 힘내요, 미스터 김! (2012) - 오쌍심
- 두 여자의 방 (2013) - 나해금
- 당신만이 내 사랑 (2014) - 강부남
- 당신은 선물 (2016) - 최강자
5. 여담
- 셋째 오빠 사상익(史相益, 1934. 9. 18 ~ 1963. 3. 28)은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를 6기로 졸업하여 대한민국 공군 대위[11]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대구 공군기지 제5공수비행전대 작전과 소속 조종사로 복무 중이던 1963년 3월 28일, C-46 수송기 조종사로 김포 공군기지로 향하던 중에 경기도 부천군 계양면 목상리(현 인천광역시 계양구 목상동)에 추락하여 3명의 승무원과 미합중국 공군 소속 병사 2명을 포함한 7명의 탑승자와 함께 순직했다. 이 때문에 그해 3월 30일 유해가 국립서울현충원 17묘역에 안장되었고, 소령으로 1계급 특진되었다.
- 넷째 오빠 사상완(史相完, 1937. 9. 16 ~ 1991. 10. 29)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방송 PD, KBS 교양국장·심의실장·뉴미디어 위원회 전문위원·편성부본부장 등을 역임했는데, 1991년 10월 21일 과로로 쓰러져 치료를 받던 중 1991년 10월 29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순직했다. 사상완의 장녀 사화경(史和璟, 1969. 2. 17 ~ )도 MBC PD로 근무했고,[12] 사상완의 셋째 딸 사유진(史裕珍, 1973. 2. 1 ~ )도 KBS PD로 근무했다.
- 성우 출신이라 원래 발음 등 국어 실력이 뛰어나다. 평소에도 젊은 후배 배우들에게 연기력을 키우려면 발음을 정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국어 파괴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등 우리말에 관심이 크다고 한다. 국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40대까지도 일주일에 한두권씩 소설을 꾸준히 읽었고, 지금도 손녀의 국어사전을 자주 이용하는가 하면 KBS1의 우리말 겨루기를 매주 챙겨볼 정도의 국어를 사랑한다. "황혼에도… 눈만 뜨면 공부할 생각에 신나" 그러더니 마침내 우리말 겨루기 641회에 출연해서 연예인 최초 명예 달인이 되었으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감탄과 찬양 일색이었다.전체 영상 / 관련 기사[13] 그 뒤 839회에서 김학도와 같이 최강자전에 출연했다.
- 1980년대 수입 많은 배우 TOP5로 "당시 계약금만 1000만원을 받았고, 회당 출연료를 현찰로 300만원을 받았다”고 TV방영 프로에서 털어놔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 백일섭과 사미자는 오랜 기간 연기 호흡을 맞춰온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미자의 남편이자 KBS 공채 탤런트 선배[14]인 김관수와는 무려 40여년 만에 해후한 바 있다. TV프로에서 백일섭은 두 부부의 집으로 향하며, "(김)관수 형님과 정말 오랜만이다. 과거 배우로 활동하셨을 때, 2~3년간 콤비처럼 붙어 다녔다"라고 회상했다.
- 1 대 100 482회에서 1인으로 참가해 7단계 1:17까지 생존했다. (9단계에서 남은 100인 전멸)
- 어릴 때부터 성공회 서울대성당을 다니는 그리스도교인이다. 이화여고 재학 당시 성당에서 하는 연극에 여주인공으로 출연을 했는데, 그 연극의 남주인공이었던 학생이 이 후 남편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연극에만 몰두하느라 다른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 대학생이 된 후 길거리에서 우연히 재회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단 음식을 싫어한다고 한다.
- 장손이 대한민국 해병대를 전역했다고 한다.
- 강부자의 회고(최근에 전원주 본인도 직접 밝힘)에 의하면 당시 흔치 않은 혼전 임신이라 많이 놀렸다고 한다. 당시엔 미혼이 모집 요건이라 미혼으로 속이고, 성우 시절 화장실에서 모유를 먹이다가 전원주에게 걸려 짜장면으로 입 막음을 하였으나 전원주가 두 사람에게 말한 것이 방송국 전체로 퍼졌다고 한다. 전원주에게 짜장면 값 내놓으라고 하면서 머리채를 잡아 싸웠다고. 그래서 가정부 역을 할 때 사미자 집(...) 가정부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고.[15]
6. 관련 문서
[1] 1971년에는 대상 없이 남자·여자 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2]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최우수 남자·여자 연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3] 청주사씨대동보 권상 190쪽에는 3월 29일 생으로 등재되어 있다.[4] 과거엔 본적이 자기 출신지로 잘못 기재되어 있었으나, 파주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본인은 서울특별시 출신임을 밝혔다.[5] 20세 상(相)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큰오빠 사상직(史相稷, 1920. 4. 7 ~ 1985. 8. 25), 둘째 오빠 사상필(史相弼, 1921. 3. 28 ~ ), 셋째 오빠 사상익(史相益, 1934. 9. 18 ~ 1963. 3. 28), 넷째 오빠 사상완(史相完, 1937. 9. 16 ~ 1991. 10. 29) 등 오빠들은 모두 항렬자를 사용했다.[6] 광산 김씨 김영식(金永植, 1899. 8. 3 ~ 1984. 12. 11)의 셋째 아들로, 1937년 7월 11일생이다. 한국 성공회 2대 주교인 김성수(주교)의 사촌 동생이다 KBS와 MBC에서 탤런트로 활동했으나 1973년에 은퇴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7] 여기에는 결혼한 여배우를 한물갔다는 식으로 취급한 시대 분위기 뿐 아니라, 사미자가 성우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1960년대 TV방송국 개국으로 탤런트 수요가 갑자기 늘면서 원래 성우였던 사람들 상당수가 탤런트가 됐는데, 처음부터 방송국 탤런트 공채로 들어온 사람들과 성우 출신으로 탤런트가 된 사람들 사이에 묘한 경쟁의식이 피어났고, 방송국에서도 탤런트 공채 출신을 집중적으로 밀어주며 성우 출신들이 차별 받았다. KBS쪽이 더했는데 사미자는 KBS.[8] TV 방송국이 새로 생기던 당시엔 공채 탤런트는 죄다 젊은 사람으로 뽑고, 모자란 인원을 기존 라디오 방송국 전속 성우와 영화, 연극 쪽에서 끌어다 썼다. 그래서 나이 든 탤런트가 적었다. 당시엔 분장 기술이 떨어져서 젊은 배우가 노역을 할 때엔 꾸민 티가 많이 났는데(그나마 흑백 TV라 꽤 가려졌는데도 티가 났다.), 나이 든 역할도 충분히 해낼 만큼 목소리 연기가 되니 분장의 미흡함을 커버하고 노역에 더 잘 맞았던 덕이기도 하다.[9] 사미자가 맹인 여검객 역할로 주연을 맡은 무협영화[10] 90회부터 출연.[11] 군번 53830[12] 2015년 무한도전의 불만제로 특집에 출연해 정준하의 마이크를 채워준 예능국 국장이 바로 이 분이다. #[13] 연예인 공식 달인은 6대 우리말 달인인 최원정, 김기만 팀이 유일하며 그 뒤 704회에서 유병재가 연예인 2번째 명예 달인이 되었다.[14] 김관수는 1기, 백일섭은 5기이다.[15] 사미자의 주장이란 친정에서 결혼을 반대해서 혼전 임신이라고 속여 결혼했다는 것. 결혼 전 해에 약혼한 사진이 있어서 어느 쪽이어도 사실 좀 애매한 경우라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