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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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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사 마애불입상 성공회 서울성당 천도교 중앙대교당
성공회 서울성당
聖公會 서울聖堂
분류 <colbgcolor=#fff,#191919>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개신교 / 교회
수량 / 면적 건물 1棟(증축부분포함), 토지 1,254.9㎡
지정연도 1978년 12월 18일
관리자
(관리단체)
대한성공회유지재단 }}}

<colbgcolor=#871B4D><colcolor=#fff> 성공회 서울교구의 주교좌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 대성당
서울大聖堂 | 서울대성당
서울主敎座聖堂 | 서울주교좌성당
Sts Mary & Nicholas' Cathedral, Seoul
종교 성공회
교구 서울교구
지위 주교좌성당 (Cathedral)
주보성인 성모 마리아성 니콜라
교구장[1] 김장환 엘리야 주교
사목단 주임 박성순 야고보 신부
보좌 박종훈 요셉 신부[2]
임종호 프란시스 신부[3]
강하니 루시아 신부 [4]
송하경 아모스 신부[5]
이종민 바우로 신부[6]
정창진 요한 부제[7]
협동 양권석 예레미야 신부[외국인교회]
차보람 요한 신부[9]
건축정보 건축자 아서 딕슨[10][11]
양식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
착공 1922년 9월 4일
축성 1926년 5월 2일
완공 및 재축성 1996년 5월 2일[12]
위치

서울대성당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정동)
파일:대한성공회 문양.svg[13] 파일:서울교구문장.png[14]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5]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6]
파일: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외부 전경.jpg
외부 전경
파일: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내부.jpg
내부 전경
TBS에서 제작한 서울주교좌성당 영상
1. 개요2. 역사3. 감사성찬례(미사/예배)4. 새교우 영접5. 부속 건물
5.1. 사목관5.2. 카페 그레이스5.3. 경운궁 양이재
6. 신자 구역7. 성공회 서울교구8. 여담9. 대중매체에서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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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republic-of-korea-435324_960_720.jpg
서울주교좌성당 외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정동)에 자리한 성공회 서울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주보성인성모 마리아성 니콜라.

이 대성당의 전신은 현 대성당 위치에 있던 한옥성당인 장림성당이다. 강화도, 충청도에 있는 한옥성당 양식은 옛 장림성당에서 파생되었다.

성당의 정식 명칭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聖公會 서울主敎座聖堂)이고, 주교좌성당을 보통 대성당이라고 하기 때문에 줄여서 '성공회 서울대성당' 또는 그냥 '서울대성당'[17][18]으로 부르기도 한다. 성당의 위치가 중구 정동이기 때문에 성공회 정동교회·정동성당으로 부르기도 한다.[19]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본으로, 기와지붕이나 한옥 창살, 오방색 등과 같은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절충한 성당이다.[20]

향린교회와 함께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 중 하나이다. 명동성당에 가려진 성당과 교회

1978년 성공회 서울성당(聖公會 서울聖堂)이라는 명칭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됐다.[21] 문화재[22]로 지정된 만큼 방문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성당이 개방되어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안내 봉사자가 근무하고 있어 봉사자의 가이드 아래 대성당을 둘러볼 수 있다. 때론 담당 부제(Deacon)의 설명하에 성공회의 전반적인 것들도 들을 수 있다. 다만 월요일에는 사무실 직원이 휴무이니 성당과 관련한 행정적인 업무를 위해서는 월요일 방문을 피할 것.

시청역 3번 출구에선 도보로 3분, 광화문역 6번 출구 기점으론 걸어서 7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가급적이면 시청역 3번 출구(1호선)로 나오는 것을 권장한다.

2. 역사

"이미 남대문으로부터 경복궁까지 대로가 준공되었으매
이제 건축하고자 하는 새 성전이 미려한 위치를 점령하겠고
성내 4면이 보이기 쉽겠도다"
《조선성공회월보》69호(1914년 3월)
1890년 12월 21일, 당시 조선에 성공회 선교를 위해 영국으로부터 파송된 찰스 존 코프 주교[23]와 신자들이 현재 성당이 위치해 있는 곳의 한옥을 매입하면서부터 서울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성당의 이름은 “장림성당(The Church of Advent)”이었다. 이후 1892년 11월 17일 같은 자리에 새 한옥을 짓고 축성식을 거행했다. 이후, 1909년 성당 주변의 땅을 매입해 부지를 확장하고, 1910년 열린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하게 된다.

이후, 1911년 영국왕립건축협회 소속의 아서 딕슨에 의해 성당의 설계도 및 모형이 완성되었고, 1922년 9월 24일, 성당 건축을 시작한다.[24]
파일:external/www.laurelcottagegenealogy.com/Seoul-Anglican-Cathedral-pc1-194x300.jpg
1950년대 발행된 듯한 엽서에 인쇄된 서울주교좌성당의 모습.
현재 성당과 비교했을 때 건물의 길이가 짧다.
맨 위의 성당 전체사진 오른쪽 긴 지붕의 색깔이 짙어지는 지점이 있는데, 실제로 다른 시기에 공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붕 색깔이 짙은 오른쪽 부분이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증축되었는데, 1926년 당시 재정 문제로 애초 설계와 달리 밝은 주황색 부분만으로 완공되었으며, 그 앞에는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있었다. 대성당 측은 1991년에 본 성당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원안대로 증축을 하기 위해, 건축가 김원을 총감독으로 선임하여 논의를 진행했다.[25] 원 설계도를 찾을 수 없어서 김원이 현대적인 스타일의 증축설계안을 내놓았는데, 문화재 당국은 물론이고 대성당 측도 당연히 반대하며 논의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93년, 영국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던 원 설계도가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발견[26]되면서 문화재의 가치를 살리면서도 성당의 기능도 확장하는 증축을 할 수 있었다. 김원이 직접 해당 도서관까지 가서 딕슨의 원 설계도를 복사해 국내로 들여왔고, 그 설계도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직접 보완설계하여, 딕슨이 의도했던 바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증축 시공은 대우건설이 맡았다.[27] 기왓장은 전통 방식으로 제작되었으며, 원 건물은 강화도산 화강암을 썼으나 증축 당시에는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강화도산과 제일 비슷한 중국 칭다오산 화강암을 수입해서 써야했다.

2015년 이전에는 서울지방국세청 남대문별관이 세종대로와 성당 사이에 있었으나 2015년 5월에 철거되었다. 이에 따라, 세종대로(서울시청)에서 바로 성당이 보이게 되었다.(오마이뉴스 기사) 이후 잇따라 관공서 건물이 낮은 저층 건물로 대체되어 이제는 대로변에서도 성당의 전경이 거의 다 보인다. 이전에도 정동의 명소 중 하나였으나 인지도가 더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성공회의 '어머니 성당'[28]으로 인식되고는 하지만 꽤 좁은 부지에 지어졌다.[29] 주차장 규모도 협소하여 성당에서 감사성찬례가 끝나고 광고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광고를 늘 할 정도로 부지가 좁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대축일 때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신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주차장에 빼곡히 차가 들어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감사성찬례(미사/예배)

감사성찬례(Eucharist)는 월요일-목요일과 토요일은 오전 7시에, 금요일은 정오에, 주일에는 오전 8, 10시 및 오후 12, 3, 6시에 있다. [30] 어린이와 청소년 감사성찬례는 매 주일 정오 12시에 드린다.[31] 또한 토요일 저녁 5시에는 노래로 저녁기도(만도)를 드린다.

이 중에서 소위 교중미사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주일 10시와 12시 감사성찬례로,[32] 전례곡에 맞춰 노래로 드리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교구장 주교[33]가 머물러 있는 경우, 오전 10시 감사성찬례는 집전과 설교 둘다, 정오 12시 감사성찬례는 집전만 한다. 다만 서울교구장 주교는 연중 내내 서울교구 내 교회들을 순방하기 때문에 서울대성당 주일 성찬례를 집전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꼴이다. 따라서 주교가 집전하는 경우보다 주임사제가 집전하는 경우가 더 많다.[34]

세례자 요한 성당(소성당, 지하성당)에서도 감사성찬례를 드린다. 특히 9시 30분에는 주한 영어권 신자들을 중심으로 드린다. 영어 성찬례 형식은 10시에 비해서는 간소화된 편이라 향을 피우진 않는다. 이 영어 성찬례의 형식은 10시 한국어 성찬례에 비하면 고교회파보다는 광교회파쪽에 가깝다. 15시, 18시 성찬례도 마찬가지.

성탄절, 부활대축일 감사성찬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대성당에서 치른다. 이 때에는 영성체 참여자 수가 900명을 넘어서기도 한다.

2006년부터 매년 성령강림대축일을 기념해 1번씩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인 경동교회와 교환예배를 한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사제, 부제, 복사, 성가대는 경동교회로 가서 성공회 식의 성찬례를 집전하고, 장로교 경동교회의 목사, 예배위원, 성가대는 서울주교좌성당으로 가서 장로교 식의 예배를 집전하는 식이다. 서울주교좌성당에 출석하는 성공회 신자 중 장로교 출신인 교인은 교환예배 때 잠시 신앙적 옛 고향에 온 기분이 들 것이다(...). 사실 그러기에는 경동교회의 주일예배 스타일도 보통 한국의 장로교회와는 많이 다르게 상당히 말씀 전례 - 성찬의 전례로 이뤄지는 전례적인 형식을 띈다. 이는 경동교회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예배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6월이 아닌 12월에, 그것도 예배가 아닌 설교만 서로 바꾸어 비대면 온라인 예배로 진행되었다.

2021년도 2020년처럼 설교만 바꾸어서 예배가 진행되었다가 2022년부터 정상적인 교환예배가 재개되었다.
파일:에큐메니컬 교환예배 1.jpg
파일:에큐메니컬 교환예배 2.jpg
경동교회에서 드리는 성공회 감사성찬례 [35]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드리는 경동교회 예배 [36]

4. 새교우 영접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제작한 새교우 안내 영상[37]
성공회에 입교 혹은 체험할 생각이 있다면, 가급적이면 주일 오전 10시 감사성찬례에 참석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새교우를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당일 안내 봉사자들과 새교우환대위원회 봉사자들이 새교우를 이곳으로 안내해 준다. 영성체하는 방법[38]과 십자성호 긋는 법 등 성공회 전례 참여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또한 새교우를 위한 인쇄물이 비치되어 있어서, 성공회 전례에 익숙하지 않은 새교우들이 감사성찬례를 제대로 따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감사성찬례가 끝난 후 성당 건물 2층 오르간 오른편 방에서 새교우/타교파 신자[39]를 위한 안내 및 신앙상담이 열리며, 세례 및 타교파 전입을 위한 절차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천주교, 장로회, 감리회 등 타 교파에서 세례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신자 영접식을 진행한다. [40] 새교우 등록을 하면 바로 영접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10주 동안 신앙교육을 받은 뒤, 7주 이상 출석하고 교육을 받은 타교파 신자에게 담당 사제 또는 새교우환대위원회 담당자가 연락하여 신자 영접식을 할 지 안 할지 물어본다. 이 때 영접식에 참여하겠다고 하는 신자들만 신자 영접식에 참여해 교적을 둔다. 이것은 신자 개인의 신앙생활을 틀에 맞춰 강요하지 않는 성공회 특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개신교 혹은 천주교 신자(해당 종파의 나이롱 신자, 냉담자 포함)로서 성공회 신자로 등록하고 싶으면 참조하자.

5. 부속 건물

5.1. 사목관

파일:external/scontent.cdninstagram.com/18512951_698602840311790_892023763455967232_n.jpg
사목관
말 그대로 서울대성당에서 사목하는 사제들의 주 업무공간이다.[41] 단층 한옥으로 건물의 양 끝이 성당을 향해 꺾여 있어 흡사 괄호를 생각하게 하는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사목관 옆에는 1987년 6월 항쟁이 이 성당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서울대성당이 아닌 서울교구청 소속의 사제들은 대성당 남쪽의 성공회 빌딩에서 근무한다.

5.2. 카페 그레이스

파일:external/www.newsingm.co.kr/art_1426485587.jpg
카페 그레이스
성당 주차장 출입구(세실극장 옆 출입구)에서 성당방향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부지 한 켠에 조그맣게 있는 카페다. 겉으로만 보면 그저 흔한 카페처럼 보일 수 있으나, 2010년 3월 '사단법인 GFS우물가'에서 설립한 카페로, 북한이탈주민 여성을 바리스타로 고용하여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을 돕는 의미있는 카페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와 신부가 직접 일일 바리스타로 일하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당일 모금된 금액은 어려운 곳에 후원하고 있다.
서울대성당 신자들이 모임 목적으로 주로 이용하는[42] 모 호텔 건물 내 모 카페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5.3. 경운궁 양이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경운궁 양이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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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seoultimes.net/20818_16089_4524.jpg
파일:경운궁 양이재.jpg
경운궁 양이재

6. 신자 구역

서울주교좌성당에 출석하는 신자들의 거주지의 대부분이 아래 목록에 나와있는 곳이다. 하나 같이 다 서울 도심 통근권이다 굵은 글씨 처리한 지역은 해당 성공회 지역교회 또한 존재하는 곳.

아래는 2024년 기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동됨)
(서울권: 1~11지역, 경기권: 12~19지역)
  • 제1지역: 종로구, 중구, 서대문구
  • 제2지역: 은평구 (은평1, 2: 2개 구역)
  • 제3지역: 용산구, 마포구 (마포1, 2: 2개 구역)
  • 제4지역: 성북구, 노원구·도봉구
  • 제5지역: 성동구·광진구, 중랑구, 동대문구
  • 제6지역: 강서구, 양천구 (양천1, 2, 3: 3개 구역)
  • 제7지역 (강남구): 역삼동·논현동·삼성동, 압구정동·신사동, 수서동·일원동, 도곡동·개포동·대치동
  • 제8지역 (서초구): 반포동·잠원동, 방배동, 서초동·양재동
  • 제9지역: 송파구 (송파1, 2: 2개 구역), 구리시·남양주시, 강동구1, 강동구2·하남시, 위례
  • 제10지역: 관악구, 동작구 (동작1, 2: 2개 구역)
  • 제11지역: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광명시
  • 제12지역 (고양시): 일산, 덕양·행신, 고양
  • 제13지역: 성남 분당구
  • 제14지역: 용인 수지구
  • 제15지역 (안양권): 안양시·과천시
  • 제16지역: 김포시
  • 제17지역 (수원권): 수원시·동탄
  • 제18지역: 파주시
  • 제19지역 (인천권): 인천광역시·부천시

이들 지/구역에는 지/구역장이 있으며 주로 평일에 지/구역 소속 교우들이 모여 구역 기도 및 친교 활동을 한다. 또한 추수감사주일 등 교회 행사가 있을 때에 각 지역별 장기자랑을 하기도 한다.

성공회가톨릭 교회만큼 속지주의가 아주 엄격한 것은 아니지만, 이 서울대성당은 서울교구의 모교회로, 관할 구역이 매우 넓어 서울광역권의 사실상 속인적 성당 역할을 하고 있다. 천주교의 주교좌 명동성당은 명동성당 신규 영세자 및 명동 부근 거주자만 교적 전입을 허락하고 있지만, 서울주교좌성당과 서울교구 내 다른 지역 성당 간 교적 전출입이 비교적 자유롭다. 교적 전입을 하기 위해 명동 근처 거주를 요구하는 명동성당과 다르게 서울대성당은 정동ㆍ서울시청 근처 거주를 요구하지 않는다.[43] 일례로, 인천, 수원, 남양주 등지에서 출석하러 오는 신자들이 있다. 사실 이게, 한국에서 성공회 교세가 워낙 약하다보니 이렇게라도 신자를 유치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대한성공회 교인 수가 100만 명 정도였어도 천주교마냥 속지주의가 엄격히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7. 성공회 서울교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성공회 서울교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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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영동고속도로 이북)[44]의 성공회 교회들이 대한성공회 서울교구를 구성하고 있으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서울교구의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고 있다.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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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성당에는 성막[46]이 없고 지하 성당에는 성막이 있다.
  • 성 세례자 요한 성당[47] 바닥에는 마크 트롤로프, 이천환, 김재헌, 세 주교의 유해와 여러 사제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이 독신을 유지하며 대한성공회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대성당에는 2개의 부속 채플이 있다. 북쪽 수랑의 '성모 마리아 채플'과 남쪽 수랑의 '성 십자가 채플'이 그것이다. 대성당 남측 수랑의 성 십자가 채플에 있는 십자고상은 원래 가운데 위치에 매달려 있었으나, 원래 설계도에 따라 완공된 후 성 십자가 제대 위로 이동했다.
  • 대성당 대제대 앞 오른쪽에 태극기가 놓여져있다.[48] 이는 천주교에 비해 교회의 지방자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 명동성당과 더불어 서울 도심에서 성당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중에 하나다. 특히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무렵 광화문서울시청 일대를 지나치면서 종소리를 들었다면 바로 이 곳이다. 평일에는 정오와 오후 6시에[49] 18번씩[50] 울리며, 주일에는 10시와 정오 감사성찬례 시작 15분 전에 예비종을, 성찬례가 시작되는 10시와 정오에 감사성찬례 시작종을 타종하고 저녁 6시에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타종을한다.[이] 10시 및 정오 감사성찬례의 경우 33번 울리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33년 간의 삶을 상징한다. 장례성찬례에서는 나이만큼 종을 친다. 직접 종을 치는[52] 사람의 말로는 몇 십번을 쳐도 좋으니 20번도 안 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 6월 항쟁 당시 이 성당에서 울린 종소리는 본격적인 시민 참여 시위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위원이던 유시춘[53] 지선 스님이 이 성당 종루에 올라 42번의 종을 쳤다고 한다. 이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시민들은 경적 시위와 손수건 흔들기로 전두환 정부의 독재를 타도하자는 메시지를 전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퍼지는 계기가 된다. 참고로 타종 횟수로 42번이 결정된 것은 1945년 분단 이후 42년이 흐른 만큼 남북 분단의 역사를 종식하고 통일의 새 시대로 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 파이프오르간이 총 3대 있다. 한대는 영국산, 나머지 2대는 한국의 오르간 마이스터인 홍성훈이 제작한 오르간이다. 그중 가장큰 오르간은 영국의 저명한 오르간 제작사인, Harrison & Harrisons 사에서 1985년 파이프오르간을 들여왔다. 2단의 손건반, 1단의 발건반으로 이루어진 오르간이며, 총 20스탑이고, 4개의 커플러가 있다. 크기는 작지만, 파이프 소리가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해리슨사의 오르간은 원래 제대 왼쪽 익랑에 위치 했었으나, 이후에 뒤쪽으로 옮겼다. 현재 제대 왼쪽 익랑에는 홍성훈이 처음으로 만든 포지티브 오르간(5스탑 짜리)이 위치해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방송 감사성찬례때 해당 오르간이 대부분의 성가반주를 맡았고, 2021년 사순절 특별 '성가로 하는 성무일도'때도 해당 악기로 대부분의 반주가 이루어졌다.
  • 2007년부터 지역주민과 성당 근처 직장인들을 위한 '성공회 정오음악회' 및 '성공회 퇴근길음악회'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정오음악회에서는 솔로, 듀오 등 소규모 연주회가 진행되고, 퇴근길음악회에서는 서울시향 등의 오케스트라가 초청되어 유명한 클래식 곡들을 연주하고, 진행자가 각 곡에 대한 해설을 해준다. 대성당 사이트에서 음악회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 2021년 말부터 2022년 4월까지,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 중 오미크론이 국내에 상륙하고 위드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위증증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함으로 인해 코로나 백신 2차접종까지 한 교우들만 감사성찬례에 참여하고, 성가대만 성가를 부르게 하는 등, 감염우려가 있는 활동을 자제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현재는 대면활동을 재개한 상태이다. 2022년 성탄절 예배가 대축일로서는 처음으로 인원제한 없는 대면활동이 재개된 것이다.

9. 대중매체에서

10. 관련 문서


[1] 주교좌성당의 관할사제는 해당 교구 교구장이 명목상 겸임한다. 단, 교구장의 주교좌성당 관할사제 업무는 주임사제가 대리한다.[2] 전례,돌봄,선교 담당[3] 환대,정착,양육 담당[4] 환대,정착,양육 담당[5] 청년,교회학교 담당[6] 청년,교회학교 담당[7] 종신부제[외국인교회] 외국인교회 담당[9] 영국에서 신학을 전공한 신부로, 전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10] Arthur Stansfield Dixon, 1856~1929. 영국 버밍엄 출신의 금속공예가이자 건축가. 그 역시 성공회 신자여서 영국의 몇몇 성공회 성당을 설계했고, 로마네스크 양식을 다루는 데 능했다고 알려져 있다.[11] 일각에서는 증축과정을 총감독한 건축가 김원과 '건축연구소 광장'을 공동건축자로 보기도 한다. 그 근거는 "역사" 문단에 서술되어 있다.[12] 후술하겠지만, 74년간 지은게 아니라 중간에 좌,우측 익랑이 잘리고 신랑과 측랑이 잘린 일부만 완성을 했다가, 1994년부터 성전완성을 위해 증축했다.[13] 관구[14] 교구[15] 성당 홈페이지[16] 성당 공식 유튜브 채널[17] 천주교 성당 중에는 서울대성당이라고 불릴 만한 성당이 명동성당이나, 천주교인들은 명동성당을 명동대성당이라고 부를지언정 서울대성당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18] 대부분 서울대성당이라고 부른다. 주보에도 그렇게 써있고.[19] 이렇게는 거의 불리지 않는다. 정동성당이라고 검색하면 전동성당이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로마네스크 양식이거나 로마네스크 양식이 섞여있고, 현재 주교좌성당이거나 과거에 주교좌성당이었다. 이 표기는 《대한성공회백년사:1890-1990》(이재정 대표편저, 대한성공회출판부, 1990)에서 쓰인다.[20] 해당 설명에 대한 반론도 일각에서 제기되는데, 서울교구 이정구 어거스틴 은퇴사제(전 성공회대 총장)는 자신의 논고 <영국의 낭만주의 건축운동과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월간 건축인 Poar 2001년 5월호)에서, 아서 딕슨이 방한 이전에 설계한 버밍엄의 성 바질 성당(1911년 완공)에 기와지붕과 처마 장식처럼 보이는 부분이 이미 존재하고, 대성당에 들어있는 성물마저도 전부 영국에서 기증받고 건축가 아서 딕슨이 일일이 감수한 것이라 한국적인 요소를 찾을 수 없으며, 마크 트롤로프 주교와 아서 딕슨 사이에 있었던 논의에서도 한국적인 모티프를 넣자는 내용이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하여, "서울대성당은 전혀 한국적이지 않고, 오히려 영국 선교사들이 이 대성당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한국 땅에서 시각적으로 과시하며, 한국 성공회가 토착화될 기회를 오랜 기간 놓치게 했다."고 결론지었다.[21] 보수공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거나 시설을 손괴하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형사처벌된다. 1996년에 완성된 증축도 영국의 그 당초 설계도를 가지고 당국의 허가를 어렵게 받아낸 것이라고 한다.[22]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23] 조선에서 사용한 이름은 '고요한'이었다.[24] 1911년 설계도 완성부터 1922년 건축 시작까지 무려 1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대한성공회와 서울주교좌대성당 홈페이지에는 성당건축과 관련하여 별다른 소개가 없다.[25] 김원이 바로 3년 전인 1988년에 성가수도회 본원의 재건축 설계를 맡아, 그 인연으로 대성당 측이 섭외해왔다.[26] 설계자였던 아서 딕슨이 사망하기 직전 자신의 설계도면과 유품을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그것이 우연치 않게 발견된 것이다.[27] 오너 일가대한성공회 신자라는 이유로 시공사가 덕산토건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우건설이 맞다.[28] 어머니 성당이라기 보다는 그냥 상징적인 성당이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은 인천의 내동성당이다.[29] 처음엔 많이 좁진 않았지만, 성공회 빌딩도 들어서고 성당을 원설계대로 증축하면서 더 좁아졌다.[30] 일부 대축일 또는 교회 행사로 인하여 성찬례 시간이 변경되거나 오후 3시 성찬례를 드리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사전에 성당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것을 권장한다.[31] 어린이는 지하 어린이예배실에서, 청소년은 성 세례자 요한 성당에서 드린다.[32] 코로나 이전 주일에는 오전 9시와 11시 감사성찬례를 대성당에서 드렸으나, 현재는 오전 10시와 정오 12시로 시간이 변경됐다.[33] 2024년 9월 현재 김장환 엘리야 주교[34] 그러나 주요축일, 대축일에는 교구장이 주교좌성당에서 성찬례를 집전하니 타 본당 신자들보다 대성당 신자들이 주교를 볼 기회가 많은것이 사실이다.[35] 집전하는 이는 2023년 기준 온수리성당 관할사제이자 강화교무구 총사제인 주성식 모세 신부.[36] 집전하는 목사는 2022년 기준으로 은퇴한, 당시 경동교회 담임목사였던 채수일 목사.[37] 2021년 9월 9일 서울주교좌성당 유튜브 채널에 새로 업로드된 새교우 안내 영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성찬례가 계속되고 있어 성당 홈페이지에서 새교우 교육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을 간단히 안내하고 있다. 영상에 나오는 이는 차보람 요한 보좌신부로 당시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새교우 사목을 담당하고 있었다.[38] 천주교와 다르게 성공회는 타 교파의 세례를 받은 적 있다면 단순 참석자 내지 예비신자 신분으로도 영성체할 수 있다.[39] 의외로 다른 개신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성공회로 오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40] 통상 1년에 3~4회 진행하며,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41] 이전에는 사제들이 숙식하는 공간이었는데, 상당수의 성공회 사제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생활공간이 필요 없어졌다.[42] 카페 그레이스는 좁아서 모임하기에는 좋은 편은 아니다.[43] 이에 대해 대한성공회 내부 일각에서는 지역교회를 더 폐쇄적인 공동체로 만들어 교세 증진에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44] 영동고속도로 이남의 강원도 소재 교회들은 대전교구 소속이다.[45] 국가등록문화재 제 676호[46] 감실이라고도 부른다. 병환 등에 의하여 성찬례에 함께 하지 못 한 신자들을 위하여 축성된 성체를 보관해 놓는 곳이다.[47] 지하성당, 소성전[48] 그러나 코로나 시국 이후로는 치워진 것으로 보인다.[49]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타종을 한다. 명동성당에서도 같은 시간에 종소리가 나지만 실제로 종을 치는 건 아니고 과거에 녹음해 둔 명동성당 종소리를 방송하고 있다. 명동성당은 종의 수명 보전을 위해 부활대축일 등 특별할 때만 친다. 참고로 첫 번째 삼종기도 시간인 새벽 6시에는 종을 치지 않는다. 성당 바로 맞은 편에 롯데호텔 서울, 플라자호텔, 프레지던트호텔 등 특급 호텔이 있는 만큼 투숙객들의 취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50] 3번, 3번, 3번, 9번에 나누어 친다.[이] 시간에도 감사성찬례가 있으나 삼종기도에 해당하는 18회를 타종한 후 감사성찬례를 시작한다.[52] 예복실에 긴 밧줄이 하나 있는데 그걸 직접 잡아 당긴다. 새신자들이 새신자 프로그램을 하면서 지나갈 때마다 잡아 당겨보고 싶다고 한다...[53]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작가 유시민의 친누나다.[54] 맨 처음에 배경으로 잠깐 등장한다.[55] 검은사제들은 가톨릭 영화이다.[56] 1화,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