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클럽 경력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1993-2012 | |
▲ 1993년 계약 당시 | |
소속팀 | <colbgcolor=#ffffff,#191919>유벤투스 FC (세리에 A) |
등번호 | 10 15(1993~1996) 16(1993~1996) 9(1993~1995) |
기록 | |
478경기 188득점 108도움 | |
35경기 20득점 14도움 | |
89경기 42득점 23도움 | |
28경기 4득점 9도움 | |
56경기 25골 9도움 | |
6경기 3득점 | |
2경기 2득점 2도움 | |
1경기 1득점 | |
3경기 1득점 4도움 | |
합산 성적 | |
705경기 290득점 172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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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베의 10번 |
2. 이적
1993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잠피에로 보니페르티에 의해 50억리라의 이적료로 델 피에로가 어릴 적부터 팬이었던 구단, 유벤투스로 이적했다.2.1. 1993-94 시즌
1994년 3월 20일, 당시 강팀이었던 파르마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파르마를 4-0으로 박살을 내 버린다. 이때 유벤투스는 바조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부상이 있어 부득이하게 델 피에로를 투입한 것인데, 최고의 결과로 돌아온 것. 참고로 이게 데뷔 첫 선발 출전이었다. 이후 유벤투스의 에이스였던 바조를 완벽하게 밀어내며 주전자리를 꿰찬다.[1] 제1기 리피의 아이들(Lippi's Children)의 시작이었다.2.2. 1995-96 시즌 ~ 2004-05 시즌
챔스 우승 당시 델피에로 |
그러나 델 피에로는 1998-99 시즌 우디네세 전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탓에 십자인대 부상을 회복한 이후였던 1999-00 시즌, 2000-01 시즌에는 이전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3] 하지만 이후 델 피에로는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었고, 2001-02 시즌에 지네딘 지단과 필리포 인자기가 팀을 떠난 뒤에 다비드 트레제게와 영혼의 투톱을 결성. 총 46경기 21골을 기록하며 부활한다.
선수로서의 재능도 최고급인데 더불어 멘탈까지 훌륭해 감히 멘탈甲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는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사람. 2001-02 시즌부터 안토니오 콘테의 뒤를 이어 주장 완장을 달기 시작했다.
2.3. 2005-06 시즌
다만, 2005-06 시즌에는 이브라히모비치는 전 시즌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 했음에도[4] 델 피에로가 후보로 있던 것을 생각하면 카펠로가 델 피에로를 중용할 생각이 없었는 듯. 그러나 칼초폴리 사태로 강등당하고 즐라탄이 인테르로 이적하자 델 피에로는 다시 트레제게와 주전 투톱으로 활약하게 된다.그리고 복귀 시즌에 곧바로 세리에 A 득점왕(21골)에 등극. 팀은 리그 2위로 곧바로 챔피언스 리그 직행 티켓을 따냈고, 그 때 그의 나이 33세.
2.4. 2006-07 시즌 ~ 2008-09 시즌
팀이 2006-07 시즌 칼초폴리로 인하여 세리에 B로 강등되었고, 알레 자신에게도 수많은 러브콜에 있었음에도[5] 의리 하나로 다비드 트레제게, 파벨 네드베드, 잔루이지 부폰, 마우로 카모라네시 등과 함께 끝까지 팀에 남았으며, 20골이나 득점하여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팀이 세리에 A로 복귀하는데 공헌했다. 이때 델 피에로는"신사는 숙녀가 필요로 할 때 떠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남겼다.[6]카펠로 체제에서는 카펠로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중요시하고 델 피에로도 부상과 슬럼프로 부진하여 후보로 내려갔다.
2.5. 2009-10 시즌
2009-10 시즌, 유벤투스는 페라라-자케로니-델 네리로 이어지는 막장 감독 3연타로 위기를 맞는다. 2연속 리그 7위로 인해, 칠벤투스라 조롱당하기까지 한 시기에도 홀로 고군분투하며 활약했다. 팀내 최다 경기 출장이면서도 1경기당 0.5 포인트씩은 올렸으며 노년 가장 이라는 호칭도 이 시기에 불렸다.2.6. 2010-11 시즌
2010-11 시즌에는 서포터 선정 팀내 MVP로 뽑혔다.[7]노년가장 대패로 씨
물론 당시 30대 중반까지 넘겼기에 노쇠화가 이루어지며 풀타임 출장에 난조를 보였으나, 여전히 팀에 공헌했던 모습을 보면 유명한 선수의 이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대 축구에서는 그야말로 충성심의 화신급의 선수로 볼 수 있다.
잘 살펴보면 이 사람도 은근히 선수생활에 굴곡이 많았다. 한창 커리어 하이를 찍던 때에 난데없는 금지약물 복용 혐의를 받지 않나,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견제로 부상을 달고 산 적도 있었으며, 부상에 잇따른 슬럼프로 한때는 주전경쟁에서 밀려난 적도 있었으며, 모두들 잘 아는 칼초폴리 사건에 휘말려 들었던 아픈 과거가 있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유벤투스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금 이탈리아의 제왕의 자리를 되찾는 그 순간까지였다.
2.7. 2011-12 시즌
2011-12 시즌에 들어서 노쇠화로 인한 체력부담으로 선발출장보다는 슈퍼서브로 활약했으며, 그럼에도 출장시간 대 공격포인트 부분에서 팀내 1, 2위를 다투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었다.2011년 겨울, 이번 시즌이 유벤투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다.라는 인터뷰를 하여 유벤티노들의 눈물을 뿌리게 만들었다. 시즌 종료 후 타 리그로 이적할 것이라 했으며, 유벤투스가 아닌 세리에 A에서는 더 이상 뛰지 않겠다고 한다. 팬들과 구단은 피눈물을 흘리며 재계약을 요청했으나 선수 본인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5월, 유벤투스는 37라운드 칼리아리 원정 경기에서 9년 만의 세리에 A 우승을 확정지었다. 칼치오폴리, 세리에 B 강등, 2연속 리그 7위의 아픔을 딛고 이뤄낸 우승이라 더욱 갚진 결과였으며, 델피에로 역시 마침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날 수 있게 된 셈이다.
2012년 5월 13일 이미 리그 우승이 확정된 이후, 아탈란타와의 리그 최종전에 선발출장하여 전반 28분 팀의 2번째 골을 작렬시켰다. 그야말로 마지막 경기에서까지 판타지스타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후반 들어 교체되는 순간 유벤투스 스타디움에 모인 모든 관중, 아탈란타 선수들 마저 열렬한 기립 박수를 보냈고, 경기가 약 3분간 중단되며 레전드의 마지막 모습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우승팀 입장식에도, 선수단은 물론 팀 스탭들까지 다 입장한 후 마지막으로 입장하며 스쿠데토와 우승컵을 치켜들었다. 이 날 경기를 마지막으로 델피에로는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무패 우승으로 장식하며 떠난다. 일주일 뒤, 나폴리와의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2.8. 퇴단
시즌 종료 후 그가 구단과 팬들에게 남긴 장문의 이별 편지로 인하여 유벤티노들은 그야말로 눈물의 도가니가 되었다. 구단의 라커룸을 정리하고 약 1개월 정도를 유유자적하며 지냈던 듯. 그리고 여름 이적시장 막바지에 호주의 시드니와 계약, 호주 A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2012-06-30
이제 끝입니다. 저와 유벤투스와의 계약은 오늘로서 막을 내립니다.
꽤 오래된 뉴스이긴 해도 공식적이란 말은 꽤 강하게 다가오는군요. 제게는 슬픈시간은 아닙니다. 전 어떤 후회도 회한도 없습니다. 요즘 전 제가 비안코네리로 지내왔던 지난 시즌들과 추억들 그리고 저의 꿈이 실현되고 있었던 그 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수많은 추억들과 기쁨과 환희,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해서 요 근래의 쓰라린 순간까지 오늘 확실하게 보여지고 있었고 토리노에서 가진 나의 마지막 경기후 나눈 포옹 속에서 어느 순간 떠올려진 순간들이 희미하고 거의 사라져가는 것 까지도 보여지더군요. 5월 13일에 찍힌 제 사진에는 제가 영원히 간직하고픈 모든 것들이 제 마음에 영원히 세겨져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말입니다.
얼마전 휴가를 떠나기 앞서 비노보에 있는 제 락커룸을 정리하고 훈련장을 떠날 때, 여러분이 저와 사진을 찍거나, 제 사인을 받기 위해, 또는 저와 악수를 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 낮이거나 절 기다리시는 걸 몇 개월 동안이나 해 오셨던 팬들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시던 그 장소에 멈춰 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제가 여러분에게 작별의 인사와 그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해 감사드린다는 차례가 되었군요.
선수들은 왔다 갈 뿐이지만 유벤투스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나의 팀동료들도 거기에 있을 것이며 아울러 전 그들에게 무운을 빕니다. 전 언제나 그들의 열렬한 팬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제 팬들 역시 계속 남아계실 것이고 바로 여러분들이 유벤투스입니다. 여기 남겨진 제 유니폼 역시 전 계속 가감없이 사랑할 것이고 존중할 겁니다. 넘버 10이 들어간 제 이름이 세겨졌던 제 유니폼이 내 후의 어떤 이가 입을 것을 생각하니 행복감이 넘칩니다. 아울러 전 그 유니폼을 입게 될 그 누군가 —그가 이탈리아인이든 다른 해외출신이든— 에게 기쁨을 느낍니다. 그 역시 이 유니폼을 그토록 입기를 희망했었을테니까 말이죠. 아울러 그 누군가가 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한다면 제가 저 이전의 레전드들과 챔피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했었던것과 같이 그러려고 한다면 제겐 더 없는 영광이 될 거구요.
내일부터 전 더 이상 유벤투스의 선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 언제나 여러분들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자 이제 새로운 모험을 할 차례로군요. 19년전의 그때의 여름과 같이 전 지금 굉장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들 고맙습니다.
알레산드로
떠나는 델 피에로에게 유벤투스는 델 피에로의 업적을 기려 그를 상징하는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하려고 했으나, 델 피에로는 "이 번호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10번은 2012-13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도 누구에게도 배정되어 있지 않다가, 빅네임 탑클래스 포워드를 원했던 유벤투스에 마침내 카를로스 테베스가 입성하면서 이를 물려받게 받게 되었다.이제 끝입니다. 저와 유벤투스와의 계약은 오늘로서 막을 내립니다.
꽤 오래된 뉴스이긴 해도 공식적이란 말은 꽤 강하게 다가오는군요. 제게는 슬픈시간은 아닙니다. 전 어떤 후회도 회한도 없습니다. 요즘 전 제가 비안코네리로 지내왔던 지난 시즌들과 추억들 그리고 저의 꿈이 실현되고 있었던 그 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수많은 추억들과 기쁨과 환희,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해서 요 근래의 쓰라린 순간까지 오늘 확실하게 보여지고 있었고 토리노에서 가진 나의 마지막 경기후 나눈 포옹 속에서 어느 순간 떠올려진 순간들이 희미하고 거의 사라져가는 것 까지도 보여지더군요. 5월 13일에 찍힌 제 사진에는 제가 영원히 간직하고픈 모든 것들이 제 마음에 영원히 세겨져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말입니다.
얼마전 휴가를 떠나기 앞서 비노보에 있는 제 락커룸을 정리하고 훈련장을 떠날 때, 여러분이 저와 사진을 찍거나, 제 사인을 받기 위해, 또는 저와 악수를 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 낮이거나 절 기다리시는 걸 몇 개월 동안이나 해 오셨던 팬들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시던 그 장소에 멈춰 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제가 여러분에게 작별의 인사와 그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해 감사드린다는 차례가 되었군요.
선수들은 왔다 갈 뿐이지만 유벤투스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나의 팀동료들도 거기에 있을 것이며 아울러 전 그들에게 무운을 빕니다. 전 언제나 그들의 열렬한 팬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제 팬들 역시 계속 남아계실 것이고 바로 여러분들이 유벤투스입니다. 여기 남겨진 제 유니폼 역시 전 계속 가감없이 사랑할 것이고 존중할 겁니다. 넘버 10이 들어간 제 이름이 세겨졌던 제 유니폼이 내 후의 어떤 이가 입을 것을 생각하니 행복감이 넘칩니다. 아울러 전 그 유니폼을 입게 될 그 누군가 —그가 이탈리아인이든 다른 해외출신이든— 에게 기쁨을 느낍니다. 그 역시 이 유니폼을 그토록 입기를 희망했었을테니까 말이죠. 아울러 그 누군가가 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한다면 제가 저 이전의 레전드들과 챔피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했었던것과 같이 그러려고 한다면 제겐 더 없는 영광이 될 거구요.
내일부터 전 더 이상 유벤투스의 선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 언제나 여러분들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자 이제 새로운 모험을 할 차례로군요. 19년전의 그때의 여름과 같이 전 지금 굉장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들 고맙습니다.
알레산드로
[1] 실상 절묘하게 바조의 슬럼프가 겹치며 바조의 부진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도 비슷한 데다 감독 말도 잘 듣는 유망주 델 피에로를 중용한 리피 감독의 용병까지 겹쳐 소속팀에서는 물론 국대에서까지 델 피에로에게 밀려버리게 된다. 등번호마저 뺏긴다.[2] 2004-05와 2005-06은 박탈당했다. 자세한 것은 칼초폴리 문서 참고.[3] 1999-00 시즌에는 총 45경기 12골, 2000-01 시즌에는 총 33경기 9골로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4] 아약스 시절엔 호리호리했지만 유베에 오면서 20kg 가량 벌크업을 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음 시즌에 체중 관리에 실패하면서 움직임이 둔해져 시즌 전반기에는 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5] 그동안 델 피에로를 눈여겨보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직접 영입의사를 타진했다.[6] 유벤투스 팬들의 애칭이 올드레이디인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 델 피에로가 말한 신사는 젊은이를 뜻하는 유벤투스 선수들이며 숙녀는 올드레이디, 팬들을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유벤투스 선수들은 팬들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7] 이미 96년도 시즌에 받은적이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 또 받다니 당시의 유벤투스의 상황을 말해주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