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08:47:37

알렉산드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colbgcolor=#E0FFFF><colcolor=#000000>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자비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Великая княгиня Александра Николаевна России
파일:Великая_княжна_Александра_Николаевна,_принцесса_Гессен-Кассельск.jpg
이름 알렉산드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Александра Николаевна Романова)
출생 1825년 6월 24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차르스코예 셀로
사망 1844년 8월 10일 (향년 19세)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배우자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자 (1844년 결혼)
자녀 빌헬름
아버지 니콜라이 1세
어머니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형제 알렉산드르 2세, 마리야, 올가, 콘스탄틴, 니콜라이, 미하일
종교 러시아 정교회
1. 개요2. 생애
2.1. 어린시절2.2. 결혼2.3. 안타까운 죽음
3. 가족관계
3.1.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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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콜라이 1세프로이센의 샤를로테의 4남 4녀 중 3녀이자 러시아 제국의 공주.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자의 첫번째 아내이며 알렉산드르 2세, 뷔르템베르크의 올가 왕비의 여동생이다.

아버지 니콜라이 1세는 자신의 형제자매들의 이름을 자녀들에게 지어줬는데 알렉산드라의 이름은 니콜라이 1세의 첫째 누나인 오스트리아의 알렉산드라 대공비의 이름에서 따왔다.

애칭은 '아디니(Адини)'.

2. 생애

2.1. 어린시절

1825년 6월 24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차르스코예 셀로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니콜라이 1세의 큰 누나이자 알렉산드라의 고모인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에게서 따왔다. 가족들 사이에선 '아디니(Адини)'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둘째 언니인 올가는 알렉산드라에 대해 '어머니에게서 프로이센의 외모를 물려받아 외할머니 루이제 왕비를 닮았다.'라고 회고했다.[1]했다. 아버지 니콜라이 1세는 셋째 딸을 크게 아껴 그녀에 대해 '작은 아이지만 매우 상냥하다.'라고 언급했다.[2] 알렉산드라는 어렸을 때부터 고독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알렉산드라는 재치와 활발한 성격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성악을 진지하게 공부한 알렉산드라는 유명한 소프라노 헨리에테 존탁에게 레슨을 받을 정도로 충분히 재능이 있었다. 아디니는 멋진 목소리를 가졌고 이탈리아인 솔리비의 지휘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수업을 받고 있던 중 여대공의 목소리가 달라지고, 호흡 리듬이 불완전한 상태를 보이기 시작해 의사들은 폐질환을 의심 하기도 했다. 이때 알렉산드라는 이미 결핵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허나 당대 의료기술의 시대적 한계 상, 증세가 심하지 않으면 발병 사실을 의사도 모를 수 있었다.

2.2. 결혼

알렉산드라가 혼기가 찼을 당시인 1843년에 어느 독일 왕족이 러시아로 초대되었는데 바로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자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어머니는 덴마크의 샤를로테 공주였다. 또한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누나 헤센카셀의 루이제크리스티안 9세과 결혼하여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 원래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알렉산드라의 언니 올가 여대공의 약혼자였으나 알렉산드라와 서로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안 러시아 황실에서 놀랐지만 알렉산드라는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결국 니콜라이 1세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였고 1844년 1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3]

2.3. 안타까운 죽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 신부 알렉산드라에게는 행복한 나날만이 이어졌지만 그녀의 건강은 이때부터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알렉산드라는 당시에 이미 결핵을 앓고 있었고 결혼 직후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4] 이로 인해 상태가 너무 나빠진 알렉산드라가 남편의 친정이자 신혼지인 헤센카셀로 떠날 수 없게 되자 친정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알렉산드라는 1844년 8월 10일 아들 빌헬름을 조산했고 "행복해지세요."라는 유언을 남긴 뒤 1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태어난 빌헬름도 출산 직후에 요절했다.

가장 사랑하는 딸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와 함께 죽은 걸 목격한 니콜라이 1세알렉산드라 황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성통곡을 할 정도로 한동안 엄청난 상실감에 빠졌다. 특히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후는 건강까지 나빠졌으며 아버지 니콜라이 1세는 알렉산드라의 죽음을 그녀가 태어난 해에 있었던 데카브리스트의 난의 진압에 대한 업보라고 여겼다고 한다. 남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또한 아내와 아이의 죽음으로 매우 상심하여 자기 가문의 실질적인 후계자로서, 아직 자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9년 동안 재혼을 거부하다가 1853년 결국 프로이센의 안나 공주와 재혼했다.

시누이헤센카셀의 루이제는 알렉산드라가 사망하고 4개월 뒤에 낳은 장녀에게 올케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이 조카딸은 훗날 대영제국의 왕비가 되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Alexandra Nikolaevna of Russia)
니콜라이 1세
(Nicholas I)
파벨 1세
(Paul I)
표트르 3세
(Peter III)
예카테리나 2세
(Catherine II)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공녀
(Duchess Sophie Dorothea of Württemberg)
뷔르템베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
(Frederick II Eugene, Duke of Württemberg)
브란덴부르크슈베트의 프리데리케[5]
(Margravine Friederike of Brandenburg-Schwedt)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Charlotte of Prussia)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ederick William III)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Frederick William II)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리데리케 루이자
(Landgravine Frederika Louisa of Hesse-Darmstadt)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Duchess Louise of Mecklenburg-Strelitz)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카를 2세
(Charles II, Grand Duke of Mecklenburg-Strelitz)
헤센다름슈다트의 프리데리케 공녀
(Princess Frederica of Hesse-Darmstadt)


[1] 정작 외할머니 루이제는 올가(1822)와 알렉산드라(1825)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1810년에 죽어서 서로 직접 본 적은 없다. 아마 남아있는 초상화들을 보고 닮았다고 여긴 듯 하다.[2] 니콜라이 1세는 장남 알렉산드르 2세 탄생 이후 둘째로 또 아들을 낳아서 후계를 더욱 탄탄히 하고자 하였지만 둘째로 큰딸 마리아가 태어나서 실망했었다. 그런 반면 알렉산드라는 태어날 때부터 예뻐했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알렉산드라는 러시아판 화평옹주에 가깝다.[3] 원래 약혼자였던 언니 올가는 결혼식 날 여동생에게 축복을 해줬다고 한다. 대인배[4] 당시에는 그냥 결핵만 앓아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는데 그 직후 임신까지 하니 그녀의 죽음은 예견된 일이긴 했다. 당시에는 출산할 때 위생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개념도 없어서 산모사망률이 굉장히 높았기에 왕족 여성들 중에서도 출산하다 사망한 적이 부지기수였다.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던 시대였는데 둘 다 걸렸으니...[5]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외손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