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2 19:54:00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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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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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11대 군주
Alexander I Balas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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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출생 미상
페르가몬 왕국 스미르나(현재 터키 이즈미르)
사망 기원전 145년 8월
아라비아
재위 <colbgcolor=#000> 셀레우코스 군주
기원전 150년 ~ 기원전 14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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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제호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
Alexander I Balas
가족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아버지)?
라오디케 4세(어머니)?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형)?
라오디케 6세(누이)
클레오파트라 테아(부인)
안티오코스 6세 디오니소스(장남)
참전 셀레우코스 내전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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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레우코스 왕조의 11대 군주. 데메트리오스 1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지만, 내우외환에 시달리다 데메트리오스 2세와의 내전에서 패배해 폐위되었다.

2. 생애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안티오코스 4세와 라오디케 4세의 차남이라고 한다. 그러나 폴리비오스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이 주장이 거짓이며, 그와 그의 누이 라오디케 6세는 스미르나 출신의 비천한 가문의 자제였다고 했다. 폴리비오스는 데메트리오스 1세의 친구였으며, 데메트리오스 1세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를 몰아낸 그에게 악감정을 가졌을 소지가 높다. 하지만 안티오코스 4세 치세 때에도 그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기 때문에, 그가 정녕 안티오코스 4세의 아들인지, 아니면 가짜인지는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기원전 160년, 데메트리오스 1세는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메디아의 사트라프 티마르코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티마르코스는 붙잡힌 뒤 처형되었다. 티마르코스의 동생 헤라클레이데스는 이에 복수심을 품고 기원전 153년경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와 누이 라오디케 6세를 로마 원로원에 출두시키고, 이들을 안티오코스 4세의 자녀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왕위 계승권자이니, 찬탈자 데메트리오스 1세를 몰아내달라고 요청했다. 원로원은 그에게 자신의 왕국의 지배권을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세나투스 콘술툼>(Senatus Consultum)을 제공했지만, 그 외에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의 일당은 사비로 용병을 고용한 뒤, 페니키아 해안의 프톨레마이스-아케에 상륙했다. 그는 페르가몬의 왕 아탈로스 2세와 카파도키아의 왕 아리아라테스 5세, 유대 지도자 요나단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도움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6세로부터 왔다. 그는 군사적 지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테아를 그의 반려자로 삼게 했다. 이후 3년간의 내전을 치른 끝에, 기원전 150년 데메트리오스 1세를 붙잡아 처형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단독 군주가 되었다.

셀레우코스 왕조가 내전을 치르느라 혼란스러운 틈을 타, 파르티아는 명군 미트리다테스 1세의 지휘하에 메디아를 침공하여 기원전 148년경 공략에 성공했으며, 뒤이어 엘리마이스(이란 남서부)와 페르시스 일대도 평정했다. 또한 기원전 147년경 엘리마이스의 왕 캄나스키레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옛 수도인 수사를 점령했다.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는 동방 영토가 모조리 뜯기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그는 향락에 빠져 지내느라 나라가 망해가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를 적대시하는 폴리비오스 등 역사가들의 악의적인 기록일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는 국내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동방에 군대를 파견해 막는 것이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기원전 147년, 처형당한 데메트리오스 1세의 장남이며, 가족이 피살될 때 가까스로 빠져나왔던 데메트리오스 2세가 라스테네스가 이끄는 크레타 용병대와 함께 시리아로 돌아와 여러 영토를 장악했다. 여기에 유다 마카베오의 동생 요나단이 야파와 아슈도드를 공략했고,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지원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원전 145년 시리아로 진군해 셀레우키아 피에리아를 포함한 해안가의 모든 셀레우코스 도시들을 장악했다. 그런데 그는 돌연 편을 바꾸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분명하지 않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의 재상 암모니우스가 자신을 암살할 음모를 꾸몄다는 걸 알고 암모니우스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지만,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가 거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에게 등을 돌렸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딸 클레오파트라 테아를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로부터 떼어낸 뒤 데메트리오스 2세와 재혼시켰고, 북쪽으로 진군하여 안티오키아에 접근했다. 안티오키아 수비대 지휘관 디오도토스 트리폰과 히에락스는 프톨레마이오스 6세에게 도시를 넘겨주었다. 당시 킬리키아에서 반란군과 맞서고 있었던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는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안티오키아로 돌아왔지만, 프톨레마이오스 6세와 데메트리오스 2세는 오이노파루스 강 전투에서 그를 격파했다.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는 아라비아로 도망쳤지만, 곧 암살당했다. 이후 데메트리오스 2세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새 국왕으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