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02 13:40:22

앨런 J. 퍼쿨러

<colbgcolor=#999><colcolor=#fff> 앨런 J. 퍼쿨러
Alan J. Pakula
파일:Alan J. Pakula.jpg
출생 1928년 4월 7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브롱스
사망 1998년 11월 19일(향년 70세)
미국 뉴욕주 멜빌
직업 영화 감독, 각본가, 프로듀서
배우자 호프 랭[1]
해나 콘 부어스틴[2]

1. 개요2. 생애 및 작품 활동3. 작품 스타일4. 필모그래피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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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 피터 보그다노비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할 애슈비 등과 함께 1970년대 뉴 할리우드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영화 감독으로, '망상증 3부작'으로 불리는 《콜걸》, 《암살단》,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소피의 선택》, 《의혹》 같은 대표작이 있다.

2. 생애 및 작품 활동

1928년 뉴욕시 브롱스에서 폴란드계 유대인인 자넷 골드스틴과 폴 퍼쿨러 사이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는 펜실베니아에 있는 더 힐 스쿨을 다녔으며 예일 대학교를 연극 전공으로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에는 할리우드로 건너와 1949년 워너 브라더스의 만화 제작부 사원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곧 능력을 인정받아 MGM에서 제작부원, 보조 프로듀서 등의 승진을 거듭하며 제작 실무를 배워나갔다. 1957년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실존 인물 지미 피어셀을 안소니 퍼킨스가 연기한 야구 영화 《피어 스트라이크 아웃》을 제작하면서 제작자로서 처음으로 이름을 크레딧에 올렸다.

이때 만난 《피어 스트라이크 아웃》의 감독 로버트 멀리건과는 호흡이 잘 맞았는지 둘이서 공동으로 퍼쿨러/멀리건 프로덕션을 설립해 약 10년간 일련의 작품들을 만들었으며, 1962년 멀리건이 감독하고 퍼쿨러가 제작한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입지를 공고히 다지게 된다.

1969년 라이자 미넬리를 주연으로 기용한 《푸키》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그해 만들어진 영화 중 흥행 13위를 차지하고 미넬리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만드는 등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1970년대부터 퍼쿨러는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의 집단성이 빚어내는 갈등관계를 스릴러적으로 묘사한 '망상증 3부작'으로 널리 명성을 알리게 된다. 1971년작 《콜걸》은 맨해튼의 콜걸을 주인공으로 해 그의 현실참여적 성향을 처음으로 드러냈으며 주연을 맡은 제인 폰다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다. 1974년작 《암살단》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사건을 혼합해 모티브로 한 정치 스릴러 영화로 퍼쿨러의 시각적 표현법과 그의 시야가 담겨 호평을 받았으며, 1976년작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밝혀진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해당 사건을 취재한 기자였던 칼 번스타인밥 우드워드의 이야기를 영화화해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홈런을 날리고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르는 등 퍼쿨러의 대표작이 되었다.

전성기였던 1970년대 이후로는 더 이상 비평 면에서 획기적인 평가를 듣지는 못하였으나,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며 대표작들을 만들었다. 윌리엄 스타이런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소피의 선택》으로 명배우 메릴 스트립에게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겼으며,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1990년작 법정 스릴러 영화 《의혹》은 당해 흥행 순위 8위에 오르며 본인의 저력을 과시했다. 해리슨 포드와는 이후 퍼쿨러의 유작인 된 《데블스 오운》에서도 협업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부부의 삶을 담은 영화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1998년 11월 19일 맨해튼 근처의 롱아일랜드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던 도중 앞서 가던 차량에서 떨어진 금속 파이프가 떨어져 머리에 직격하는 사고를 당했고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 판정을 받았다. 향년 70세.

3. 작품 스타일

그는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을 만들었으며 전부 다 하나같이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영화였지만, 그 작품들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실이란 캐릭터들의 심리와 동기를 강조하고 또 탐구한 그만의 스타일이었다.("different kinds of movies, all of them intended to entertain, but the thread connecting many of them was a style that emphasized and explored the psychology and motivations of his characters.")

뉴욕 타임스 부고기사. 출처

심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주제를 자주 다룬 감독으로,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와 날카로운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스릴러를 자주 연출한 감독이었다. 뉴 할리우드 대표 감독 답게 어두우면서도 깊은 시각으로 미국 사회를 묘사하는 데 능했다는 평가를 받은 감독.

이렇게 캐릭터의 성격을 깊게 묘사하는 성향 때문인지 배우들의 연기력을 이끌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을 얻기도 했으며, 실제로 라이자 미넬리, 제인 폰다, 메릴 스트립, 제이슨 로바즈 같은 배우들은 전부 퍼쿨러의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4. 필모그래피

<rowcolor=#fff> 년도 제목 연출 각본 제작 비고
1957 피어 스트라이크 아웃
Fear Strikes Out
1962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1963 러브 위드 더 프로퍼 스트레인저
Love with the Proper Stranger
1965 베이비
Baby the Rain Must Fall
1965 인사이드 데이지 클로버
Inside Daisy Clover
1967 업 더 다운 스테어케이스
Up the Down Staircase
1968 추적의 밤
The Stalking Moon
1969 푸키
The Sterile Cuckoo
장편 연출 데뷔작
1971 콜걸
Klute
1973 사랑과 고통
Love and Pain and the Whole Damn Thing
1974 암살단
The Parallax View
1976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
1978 컴스 호스맨
Comes a Horseman
1979 사랑의 새출발
Starting Over
1981 화려한 음모
Rollover
1982 소피의 선택
Sophie's Choice
1986 드림 러버
Dream Lover
1987 오펀스
Orphans
1989 이별 없는 아침
See You in the Morning
1990 의혹
Presumed Innocent
1992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
Consenting Adults
1993 펠리칸 브리프
The Pelican Brief
1997 데블스 오운
The Devil's Own
유작

5. 기타

  • 데이비드 핀처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자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 실제로 핀처처럼 주 장기가 스릴러 장르였다는 점이 겹치기도 한다.
  • 페르소나 관계의 인물로는 촬영 감독 고든 윌리스가 있었다. 고든 윌리스는 퍼쿨러의 전성기인 70년대 부터 그의 경력 말기인 90년대까지 꾸준히 함께 작업했다.


[1] 1963년-1971년 이혼[2] 1973년-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