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19:15:14

앨리스 페러즈

<colbgcolor=#E57373><colcolor=#000000> 앨리스 패러즈
Alice Perrers
파일:Alice_Perrers_and_Edward_III.jpg
이름 앨리스 패러즈
Alice Perrers
별칭 윈저의 앨리스 (Alice of Windsor)
태양의 여인 (Lady of the Sun)
출생 1348년
잉글랜드 왕국 하트퍼드셔
사망 1400년 (향년 51-52세)
잉글랜드 왕국 업민스터
배우자 윈저의 윌리엄 (1375년 결혼)
자녀 존, 제인, 조앤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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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정부.

중세 유럽의 가장 유명한 로얄 미스트리스 중 하나이다.

2. 생애

출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앨리스의 성은 솔즈베리이며 금세공인의 딸이고, 재닌 페러즈라는 보석상과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현대의 몇몇 학자들은 앨리스를 하트퍼드셔의 지주인 리처드 페러즈의 딸이라고 보고있다. 대부분의 전승에서는 천한 출신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앨리스 페러즈는 에드워드 3세의 왕비인 에노의 필리파의 시녀였는데, 천한 신분의 여성은 왕비의 시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대의 나이에 말년에 접어들고 있는 에드워드 3세의 정부가 되었다. 당시 정부(情婦)라는 것은 죄악시 되는 존재였으며 두 사람의 나이 차가 컸기 때문에 이 관계는 비밀에 부쳐졌었다. 이 시기에 앨리스는 에드워드 3세의 아이를 세명이나 낳았다. 그러나 1369년에 왕비 에노의 필리파가 사망하면서 앨리스의 존재감은 공공연해졌다. 에드워드 3세가 앨리스에게 의존하면서 앨리스는 왕비와 같은 권력을 쥐었고 사익을 위해 왕을 조종했다. 당시 국정을 농단하고 있던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도 앨리스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에드워드 3세는 필리파 왕비의 보석을 포함해 어마어마한 선물을 앨리스에게 퍼부었다. 앨리스는 이를 통해 얻은 재산을 다시 한번 권력을 이용해 불리면서 굉장한 부자가 되었다. 황금빛 의복을 입고 온 몸을 보석으로 장식한 채로 수도를 행진하면서 태양의 여인(Lady of the Sun)이라는 이명을 얻기도 했다. 권력이 절정일 시기에 앨리스는 56개의 장원과 성을 소유했다.

1375년에 비밀리에 웨스트모어랜드의 기사 윈저의 윌리엄과 결혼했다. 이 결혼은 고령의 에드워드 3세가 사망한 뒤 자신을 보호해 줄 남자가 필요할 때를 대비한 앨리스의 보험으로 볼 수 있다. 윌리엄은 아일랜드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은 왕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1376년에 에드워드 3세의 병세가 깊어지면서 앨리스는 권력을 상실했다.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던 앨리스는 재판에 세워졌고, 부정부패로 토지를 몰수당한 뒤 잉글랜드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377년에 죽어가던 에드워드 3세의 요청으로 잉글랜드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토지의 일부를 되찾았다.

1400년에 사망하여 세인트 로렌스 교회에 안장되었다.

3. 여담

캔터베리 이야기의 저자 제프리 초서의 후원자 중 한명이다. 캔터베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쓰의 여장부는 앨리스를 모델로 한 인물로 여겨진다.

미모와 빠른 두뇌회전으로 왕을 농락하며 부를 축적한 여인으로, 전승에서는 마녀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신학자 존 위클리프는 앨리스를 '악마의 도구(devil's tool)'라고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