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00:08:59

얀 쾰레만스

얀 쾰레만스의 역임 직책
{{{#!folding ▼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에릭 헤러츠
(1980~1984)
얀 쾰레만스
(1984~1991)
조르주 그륀
(1991~1995)
}}} ||
얀 쾰레만스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7px-UEFA_Euro_1980.svg.png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1981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파울 브라이트너 얀 쾰레만스
}}} ||
벨기에의 축구감독
파일:Ceulemans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얀 쾰레만스
Jan Ceulemans
본명 얀 안나 휘마르 쾰레만스
Jan Anna Gumaar Ceulemans
출생 1957년 2월 28일 ([age(1957-02-28)]세)
벨기에 플란데런지방 안트베르펜주 리르
국적
[[벨기에|]][[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리르서 SK (1964~1974 / 유스)
리르서 SK (1974~1978)
클뤼프 브뤼허 (1978~1992)
감독 KSC 에인드라흐트 알스트 (1992~1996)
인헬뮌스터르 (1997~1999)
KVC 베스테를로 (1999~2005)
클뤼프 브뤼허 (2005~2006)
KVC 베스테를로 (2007~2012)
로얄 카펠렌 (2013~2014)
KMSK 데인즈 (2015)
국가대표 96경기 23골 (벨기에 / 1977~1991)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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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Ceulemans_Brugge.jpg

벨기에축구선수 출신 감독. 별명은 용감한 주장 (Captain Courageous)이다.

80년대 벨기에의 황금세대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붉은악마의 캡틴이였으며, 커리어 기간 중 대부분을 자국 리그의 클뤼프 브뤼허 KV에서 보내며 수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공헌한 명실상부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리르에서 태어난 쾰레만스는 지역팀 리르서 SK의 유스팀에 입단하면서부터 그의 축구생활은 시작되었다. 10년간 유스팀에서 활약하던 그는 1974년에 1군으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4년동안 3시즌 연속 리그 두자릿 수 득점을 기록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A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거듭난 그는 자국의 명문팀인 클뤼프 브뤼허로 이적하였다.

브뤼허로 이적하고 나서도 쾰레만스의 활약을 여전했고, 1979-80 시즌에는 리그 34경기 29골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며 리그 득점왕에 등극했을 뿐만 아니라 브뤼허의 리그 우승까지 이끌었다. 또한 자국 리그에서의 연이은 완벽한 퍼포먼스로 1981년 칼 하인츠 루메니게, 파울 브라이트너에 이어 옹즈도르 3위에 오르는 위엄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브뤼허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였다.

당연히 그의 활약에 수많은 빅리그의 팀들이 군침을 흘렸지만 쾰레만스는 팀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이탈리아의 명문 AC 밀란이 그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고 소속팀도 긍정적이었으나 이번에도 쾰레만스는 거절하였다. 그의 놀라운 충성심을 알 수 있는 대목. 사실 그가 활약하던 당시에는 벨기에 리그가 유럽 랭킹 4위안에 꾸준히 오를 정도로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는 위상이긴 했다. 그러나 그의 실력 정도면 충분히 빅리그 구단에서 뛸 욕심이 날 법도 했는데 끝까지 잔류했다는 사실은 분명 대단한 것이 틀림없다.

여튼 그는 클뤼프 브뤼허에서 1992년 무릎 부상으로 은퇴를 결정하기까지 13년간 단 한번 리그 두 자릿 수 득점을 놓치지 않았으며 클럽 통산 501경기 출전 240골을 기록하였다.[1] 그의 활약으로 팀은 리그 3회 우승과 벨기에 컵 2회 우승 그리고 4번의 슈퍼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벨기에 올해의 선수를 3회나 거머쥐며 현재까지 이견없는 클뤼프 브뤼허의 레전드이자 벨기에 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3. 국가대표 경력

1977년에 대표팀에 데뷔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건 UEFA 유로 1980에서 부터였다.

당시 벨기에는 예선부터 케니 달글리시, 앨런 한센이 포진된 스코틀랜드와 당대 최고의 골잡이인 한스 크란클의 나라인 오스트리아 그리고 복병 포르투갈과 한조에 속해있었지만 벨기에는 저력을 발휘하며 4승 4무를 기록하며 1위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벨기에는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과 한 조에 편성되면서 많은 전문가들과 팬들은 벨기에가 조 꼴지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를 비웃듯 벨기에는 대회기간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이는데 그 중심에는 쾰레만스가 있었다. 그는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귀중한 승점 1점을 얻어내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탄력을 받은 팀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강호들을 따돌리고 1승 2무로 결승 진출에 성공하였다. 결승에서 서독을 만나 큰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선전했으나 호르스트 흐루베슈를 막지 못하면서 아쉽게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쾰레만스는 대회기간 인상적인 활약으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1980년 발롱도르에서도 5위를 기록하였다.

그는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지역예선에서도 맹활약하며 벨기에가 프랑스를 따돌리고 조 1위로 본선에 진출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2] 본선에 진출한 벨기에는 1차전부터 강호 아르헨티나를 만났으나 조직력으로 승부한 벨기에가 승리를 거며 첫 날부터 이변을 일으켰다. 이후 12년만에 출전한 북중미의 엘살바도르도 꺾었으며[3], 헝가리와는 무승부를 거두며 2승 1무, 조 1위로 2차 조별 리그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2차 조별리그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소련폴란드에게 연이어 패하면서 최하위로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4]

UEFA 유로 1984를 앞두고 에릭 헤러츠에게 주장 완장을 물려받은 그는 1차전 유고슬라비아전에 선발출전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하며 순조로운 시작을 하였다. 그러나 마법의 사각편대[5]가 이끄는 프랑스에게 5:0 대패를 당한 뒤 반드시 이겨야만 했던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쾰레만스는 전반 26분,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2:0에서 3골을 내주며 역전패를 당했고 허무하게 짐을 싸고 말았다.

3.1. 1986 FIFA 월드컵

파일:Ceulemans_National_1.jpg

1986 FIFA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쾰레만스는 두번째 월드컵을 맞이하였다. 본선 조편성도 아주 괜찮았는데 개최국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처녀 출전이자 변방이었던 이라크, 파라과이와 한 조 였던 것. 그러나 우고 산체스를 필두로 한 멕시코와의 개막전에서 1:2로 패배한 팀은 2차전 이라크전에서는 대승을 예상했으나 정작 2:1로 간신히 승리한다. 쾰레만스는 전반 15분, 엔조 시포의 득점을 어시스트했으나 졸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3차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그는 프랑키 페르카우테런의 선제골을 도왔지만, 팀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1승 1무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경기내용으로 볼 때 썩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16강의 상대는 소련이었는데 팀의 졸전에 자국민들도 회의적으로 봤을 정도였다.

16강전이 시작됐고, 소련이 자랑하는 발롱도르 위너 이고리 벨라노프에게 제대로 당하며 2:1로 끌려가면서 그들의 도전은 16강에서 마무리 되는듯 했으나 후반 32분, 센터하프에서 스테픈 데몰이 길게 찬 감각적인 롱패스를 쾰레만스가 박스 안에서 침착하게 받아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는 원점이 되었다. 그의 골로 분위기는 순식간에 벨기에쪽으로 넘어갔고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연장전에서 두 골을 만들어내며 짜릿한 역전을 일궈냈고 팀은 8강으로 진출한다. 역전승의 중심에는 쾰레만스가 있었고 그는 4경기동안 1골 2어시를 기록하며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6]

8강 상대는 덴마크를 5:1로 대파한 스페인. 그러나 벨기에에게는 호재이자 스페인에게는 악재가 생겼는데 경기를 앞두고 스페인 선수단이 전원 식중독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전반 35분, 쾰레만스는 헤딩골로 팀의 리드를 이끌었다. 그러나 종료 5분을 앞두고 후안 세뇨르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경기는 또 다시 연장전으로 흘러가고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서 승부차기로 향하지만, 장마리 파프의 선방에 힘입어 팀은 역사적인 4강 진출을 이룩한다.

준결승의 상대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였다. 이미 이전 대회에서 맞대결을 펼치며 승리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 당시의 아르헨티나와는 완전히 다른 전력으로 탈 바꿈 됐다. 4년전, 에릭 헤러츠에게 꽁꽁 묶인 마라도나였으나 그 때보다 훨씬 더 완숙해졌고, 마라도나를 위시한 아르헨티나에게 0:2로 패하며 벨기에의 도전은 4강에서 마무리 되었다.

프랑스와의 3위 결정전에서 쾰레만스는 전반 11분,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대회 3번째 골을 기록했으나 프랑스는 강했고, 결국 2:4로 역전패하면서 월드컵 4위로 대회를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팀은 역대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고, 쾰레만스는 7경기동안 3골 2어시를 기록하며 팀의 4강 진출을 견인함과 동시에 1986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3.2. 이후

UEFA 유로 1988은 예선에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본선 참가가 무산되었지만, 1990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한다.

어느 덧 33살의 노장이 된 쾰레만스는 첫 경기인 대한민국전에서는 벤치에서 시작했으나 팀이 예상외로 고전하면서 쾰레만스는 후반 시작과 교체 투입되었다. 그리고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팀의 흐름을 바꿨고 대한민국을 2:0으로 제압하는데 공헌했다. 우루과이와의 2차전에서는 공격수로 선발 출전, 전반 47분에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어 우루과이를 3:1로 꺾고 조기에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데 도움을 주었다. 3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선발출전 했지만, 팀은 패하면서 조 2위를 기록한다. 이후 16강에서 잉글랜드를 만나 쾰레만스는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팀은 승부차기를 예상하던 연장 후반 14분, 프리킥 상황에서 폴 개스코인의 패스를 받은 데이비드 플랫이 기가막힌 터닝슛으로 미셸 프뢰돔 골키퍼을 통과하며 골문으로 들어가면서 통한의 실점을 허용하였고 결국 쾰레만스의 마지막 월드컵은 이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월드컵 이후 그는 1991년 2월 27일, 득점을 기록한 룩셈부르크와의 유로예선을 끝으로 더 이상 차출되지 않았고, 1992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 지도자 경력

파일:Ceulemans_Oldman.jpg

은퇴 후 그는 1992년 KSC 에인드라흐트 알스트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팀을 벨기에 1부 리그로의 승격과 UEFA 컵 출전권까지 획득하며 성공적인 감독 경력을 보냈다. 이후 1998년에 KVC 베스테를로로 팀을 옮겼으며 여기서도 UEFA컵 진출권도 얻었다. 2005년, 그는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 클뤼프 브뤼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좋지 못한 결과를 내며 2006년 4월 경질되고 말았다. 2007-08 시즌을 앞두고 베스테를로로 다시 돌아온 그는 현재 베스테를로에 살고 있으며, 지금도 브뤼허의 경기를 관람하러 종종 오신다고 한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80
  • 벨기에 리그 올해의 선수: 1979-80, 1982-83, 1985-86
  • 벨기에 골든슈: 1980, 1985, 1986
  • 벨기에 올해의 프로 축구 선수: 1984, 1985, 1986
  • 벨기에 페어플레이 상: 1986
  • 벨기에 국민 스포츠 공로상(개인): 1990
  • 플라티나 일레븐: 2003
  • FIFA 100: 2004
  • 옹즈 드 옹즈: 1980, 1981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90
  • 디스 풋볼 타임스 TOP 50 레전드: 2017


[1] 출전 횟수는 역대 4위, 득점은 팀의 전설적인 공격수 라울 램버트의 270골에 이은 2위 기록으로 남아있다.[2] 프랑스 역시 벨기에에 이어 조 2위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3] 두 팀은 12년전인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붙었다.[4] 참고로 장마리 파프는 2차 조별리그 경기 모두 결장하였다.[5] 미셸 플라티니, 알랭 지레스, 장 티가나, 루이스 페르난데스[6] 일본과의 월드컵 16강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이 경기에서 벨기에는 연장전까지 간 접전 속에서 4골을 퍼부으며 3골을 넣은채 턱밑까지 추격해오던 소련을 겨우 따돌렸다. 특히, 16강전에 나섰던 '에이스' 벨라노프는 혼자서 팀의 3득점을 모두 책임진 모습을 선보이며 간신히 앞서가고 있던 벨기에를 잔뜩 긴장 시켰다, 하지만 더이상의 추가 득점 없이 경기가 끝이 나 벨라노프는 헤트트릭을 하고도 대회에서 탈락하는 비운의 선수가 되었다. 여담으로 벨라노프는 이 경기를 통해 소련 출신 선수들 중 유일하게 월드컵 한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7] 클뤼프 브뤼허가 주최하는 친선 토너먼트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