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5 21:34:41

우고 산체스

우고 산체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파일: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1대, 45대
클럽
}}} ||
우고 산체스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라리가 심볼(2016~2023).svg
1984-85 · 1985-86 · 1986-87 · 1987-88 · 1989-90
파일:European_Golden_shoe_Trophy.png
[1]
베스트팀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 ||
멕시코의 축구인
파일:Hugo Sánchez.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우고 산체스
Hugo Sánchez
본명 우고 산체스 마르케스
Hugo Sánchez Márquez
출생 1958년 7월 11일 ([age(1958-07-11)]세)
멕시코 멕시코 시티
국적
[[멕시코|]][[틀:국기|]][[틀:국기|]]
신체 174cm | 체중 68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UNAM 푸마스 (1972~1975 / 유스)
UNAM 푸마스 (1976~1981)
샌디에이고 소커즈 (1979~1980 / 임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81~1985)
레알 마드리드 CF (1985~1992)

클루브 아메리카 (1992~1993)
라요 바예카노 (1993~1994)
아틀란테 FC (1994~1995)
FC 린츠 (1995~1996)
댈러스 번 (1996)
클루브 셀라야 (1997)
감독 UNAM 푸마스 (2000)
멕시코 대표팀 (2000)
UNAM 푸마스 (2001~2005)
클루브 네카사 (2006)
멕시코 대표팀 (2006~2008)
UD 알메리아 (2009~2010)
CF 파추카 (2012)
국가대표 58경기 29골 (멕시코 / 1977~1994)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6. 기타

[clearfix]

1. 개요

한 아이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빛나는 9번이 되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시저스 킥을 할 거예요.”
멕시코 국적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단일 시즌 최다 골 기록(38골)을 세우는 등[2] 최전성기를 보냈고,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함께 팀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공격수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75년 푸마스 데 라 UNAM에 데뷔한 산체스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뽐냈으며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의 샌디에이고 소커즈에 1년 임대되어 30골 가까이 득점하는 등 팀에게 리그 우승과 CONCACAF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안겨주고 스페인 라리가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첫 시즌에 산체스는 8골을 넣었고, 두 번째 시즌부터는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라리가에서 훌륭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84/85 시즌에는 33경기 19골,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는 6골을 넣었는데,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결승전에서 2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파일:15227107368182.jpg
이후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한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에밀리오 부트라게뇨-마르틴 바스케스-마놀로 산치스-미겔 파르데사-미첼의 독수리 5형제가 있었는데 산체스는 4년 연속 리그 득점왕[3]이라는 과거 디스테파노만이 세웠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고,[4] 레알 마드리드에서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함께 1985-86 시즌부터 1989-90 시즌까지 리그 5연패를 이끌어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 되었다. 스페인 라리가에서 열두 시즌을 뛰면서 이 기간에 347경기 234골로 라리가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은 골을 기록하였고,[5] 또한 라리가의 득점왕인 피치치를 총 다섯 번 수상했는데 이는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이 수상한 기록이다.[6] 이토록 강력한 전력을 자랑한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당시 유러피언컵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는데[7] 1988-89 시즌에는 AC 밀란에 5:0으로 대패한 적도 있다. 하지만 1985-86 시즌 UEFA컵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차전에서 5:1 패배로 위기에 빠졌으나 2차전에서 4:0 승리를 이끌어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간신히 위기를 넘겼고 산체스는 4강 2차전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페널티 킥으로만 2골을 넣으며 연장 혈투 끝에 결승에 진출했고 1. FC 쾰른과의 결승전에서 1차전 5:1 승리, 2차전 0:2 패배로 우승을 차지한다. 그 후 바르셀로나에게 패권을 넘겨줬으며 1992년에 산체스는 클루브 아메리카로 이적했고, 라요 바예카노, FC 린츠, 댈러스 번에 뛰다가 1996년에 클루브 셀라야로 이적해 1998년에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산체스는 1977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해 북중미 챔피언십[8]에서 4골을 득점하여 득점 2위에 올랐고 이러한 활약으로 멕시코는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고 자국에서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하였다. 이후 홈 어드벤티지에 힘입어 8강에 진출했으나 서독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산체스는 35세의 나이로 1993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하여, 조별리그에서는 부진했지만, 토너먼트에서 페루, 에콰도르를 꺾으며 결승 진출에 공헌하는데 에콰도르전에서 득점을 올리기도 하였다. 결승전 상대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였고 결국 패해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조국의 16강으로 이끈 후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감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위상에 비해 국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멕시코를 넘어 북중미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8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선수이다. 1999년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26위, 라리가 통산 득점 5위[9],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다 득점자 7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중앙 공격수로서 산체스의 첫번째 장기는 순도 높은 골 결정력이었다. 호날두와 메시 이전까지 라리가와 유럽대항전의 주요 득점기록은 대부분 산체스가 갖고있거나 최상위권일정도로 높은 득점력을 과시했다. 라리가 득점왕상인 피치치 5회 수상자답게 정확하고 효율적인 슈팅능력을 자랑했는데, 박스 안에서 한두번의 터치만 가져가고도 쉽게 득점했다. 단적인 예로 1989-90 시즌에는 한해 38골을 득점하여 텔모 사라가 30년전에 세운 한시즌 리그 최다득점 동률과 더불어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는데, 놀랍게도 38골이 전부 원터치 득점이었다. 이외에도 중거리 슛, 페널티박스 내외를 가리지 않고 골문으로 날아오는 발리 슛, 파워와 정확성을 겸비한 프리킥 등 슛 자체에 일가견이 있었다. 페널티킥 성공률도 높아 2017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라리가 통산 57번째 PK골을 기록하기 전까지는 리그 페널티킥 득점 수 1위였다.

산체스의 두번째 장기는 타고난 운동신경을 기반으로 한 유연성이었다. 무려 어렸을때 기계체조 연습생이었을 정도로 몸이 유연하고 탄력적이었기 때문에 170cm대의 단신이지만 제공권도 좋았고, 특히 득점 하이라이트만 보면 눈이 즐거운 골만 대부분일 정도 아크로바틱하고 화려한 골을 정말 많이 넣었다. 특히 바이시클 킥 장인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 유명한 전갈킥을 최초로 시도한 선수로 FIFA에서 공인되어 있다.[10] 이외에도 빠르고 민첩한 주력, 수준급의 볼 간수 능력, 높은 축구지능과 골 냄새를 맡고 박스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위치선정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니 그저 공격수로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유연성의 대가이자 체조인 출신답게 세리머니도 아크로바틱하고 화려한 것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많이 보이는 덤블링 세리머니를 최초로 선보인 사람으로 유명하며, 특히 덤블링 후 어퍼컷이라는 전매특허 세리머니로 유명한데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도 참가한 당시 멕시코 국가대표 체조선수였던 여동생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4.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멕시코에서 주로 감독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6. 기타

  • 축구 선수로는 굉장히 특이하게도 치의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축구와 공부를 병행했다고 한다. 멕시코 UNAM 대학은 축구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데, 멕시코 1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다. 우고 산체스는 여기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학위까지 마쳤다. 브라질소크라치스와 비슷한 사례이다.
  • FIFA 20에 신규 아이콘으로 출시됐다.
파일:골닷컴 선정 시대별 공격수 5인.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80년대 공격수들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와 공동 수상.[2] 이후 2010-11 시즌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40골로 기록을 경신했으며 다시 2011-12 시즌에 리오넬 메시가 50골로 기록을 경신했다.[3] 84/85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 33경기 출전, 19골 → 득점왕 | 85/86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33경기 출전, 22골 → 득점왕 | 86/87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41경기 출전, 34골 → 득점왕 | 87/88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35경기 출전, 29골 → 득점왕 | 88/89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35경기 출전, 27골 → 득점 2위 | 89/90 시즌: 레알 마드리드 소속, 36경기 출전, 38골 → 득점왕[4] 이후 리오넬 메시가 5연속 득점왕으로 갱신했다.[5] 2016년 기준 1위는 리오넬 메시, 2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위는 텔모 사라, 5위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6] 1위는 7회의 리오넬 메시, 2위는 6회의 텔모 사라, 공동 3위는 마찬가지로 5회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7] 86-87 시즌부터 88-89 시즌까지 3년 연속 4강에 올랐으나 우승까진 달성하지 못했다.[8] 골드컵의 전신[9] 그 위 4명은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텔모 사라, 카림 벤제마이다.[10] 괴짜 골키퍼 호세 레네 이기타의 상징으로 유명하고 먼 훗날 올리비에 지루가 아스날에서 시도하여 득점한 바로 그 스콜피온 킥이다. 다만 훈련장에서는 곧잘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산체스가 실제 경기에서 전갈킥으로 득점한 적은 없었다.[11] 돈 발롱 어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