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13:15:00

은완코 카누

은완코 카누의 역임 직책
{{{#!folding ▼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제이제이 오코차
(2002~2006)
은완코 카누
(2006~2010)
조지프 요보
(2010~2014)
}}} ||
은완코 카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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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프리카 축구 연맹 로고.svg
1996 · 1999
개인 수상
베스트팀
}}} ||
나이지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external/www.allnigeriasoccer.com/1608kanu.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은완코 카누
Nwankwo Kanu
본명 은완코 크리스천 은오수 카누
Nwankwo Christian Nwosu Kanu
출생 1976년 8월 1일([age(1976-08-01)]세)
나이지리아 오웨리
국적
[[나이지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97cm
포지션 공격수
소속팀 이와냐누 내셔날레 (1992~1993)
AFC 아약스 (1993~1996)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6~1999)
아스날 FC (1999~2004)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04~2006)
포츠머스 FC (2006~2012)
국가대표 86경기 12골 (나이지리아 / 1994~2011)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수상
4.1. 우승4.2.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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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이지리아의 前 축구선수. 뛰어난 실력과 함께 심장병을 이겨낸 장본인으로 제이제이 오코차와 함께 나이지리아 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로 언급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16년동안 지낸 대표적인 선수이다.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메달과 UEFA컵 우승메달, 프리미어 리그 우승메달, FA컵 우승메달,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을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이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118번이나 교체 출전을 했다는 것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고향의 나이지리아 프로축구팀에서 뛰던 카누는 U17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1993년 AFC 아약스로 이적한다. 아약스에서 54경기 25골이라는 순도 높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특히 1995년엔 19살의 나이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1]

1996년에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였으나, 인터 밀란 입단 후 실시된 메디컬테스트에서 대동맥 판막 질환 판정을 받았다. 선수복귀 가능성이 희미했지만, 카누는 세 차례의 대수술을 이겨내어 2년 후인 1998년 비로소 그라운드에 복귀한다. 하지만 팀에는 호나우두라는 전설적인 공격수가 존재했기 때문이 기회가 매우 적었고, 활약도 좋지 못했다.

1999년 2월, 그는 아스날 FC로 이적한다. 그리고 이적한 뒤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FA컵 5라운드에서 첫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당시 셰필드 웬즈데이의 리 모리스가 부상이 있어 사이드 라인 밖으로 빠지고, 셰필드 골키퍼도 공을 밖으로 걷어내면서 잠시 경기를 중단시키려 했다. 하지만 아스날은 이를 틈타서 스로인을 했고 이 공은 은완코 카누에게 연결되어 카누는 마크 오베르마스에게 크로스를 한다. 그리고 오베르마스는 그대로 골을 넣어서 아스날은 2-1로 불명예스러운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규칙에 위배되는 행동은 아니었으나, 상대팀인 셰필드에게는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던 비신사적 플레이.

그러나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데뷔를 했음에도 카누의 폼은 점점 올라갔다. 이어진 더비 카운티와의 6라운드에서 선취골을 뽑아내기도 했고, 리그에서 셰필드, 토트넘, 아스톤 빌라,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도 교체 출전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인 1999년에 올해의 아프리카 축구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9-2000시즌에서는 첼시를 상대로 0-2의 경기를 50분만에 3-2로바꾸는 해트트릭을 성공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2001년 여름에는 풀럼이 £7m를 제시했으나, 아스날이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아스날의 전설인 티에리 앙리가 급성장하면서[2], 1군으로 자주 출장했던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조커같은 교체출전으로 많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운명의 03-04시즌에도 카누는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003년에는 FA컵 우승을, 그리고 03-04시즌에 무패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약이 끝나는 해인 2004년에 자유계약으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에 이적을 하게 된다. WBA에서 맞이한 첫 해에서는 지고 있던 상황에서 블랙번과 풀럼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며 질 경기를 비겨버렸다.



2004년 11월 14일 미들즈브러 전에서 2-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고 그 당시 감독이었던 브라이언 롭슨마저 "어떻게 카누가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죠?"라고 기자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실수는 04-05시즌 올해 최악의 실수에도 선정된다. 하지만 05-06시즌에서 친정팀 아스날에게 직접 득점을 하며 경기를 이겨 WBA의 73년만에 아스날전 승리를 품에 안기기도 했다. 그러나 아스날때만큼의 폼은 나오진 않았고, 다시 자유계약을 통해 포츠머스 FC로 이적한다.

그리고 포츠머스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뛰면서 은퇴한다.

2.2. 국가대표 경력

카누는 1996년 여름에 열린 1996 애틀랜타 올림픽[3]에서 나이지리아 축구 대표팀 주장을 맡아 금메달을 따는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준결승전이었던 브라질 전에서는 추가시간에 동점 골을 넣어 2대3의 스코어를 3대3으로 맞추고 이윽고 연장전 전반 4분만에 역전 골든골을 넣으며 나이지리아의 결승행을 이끌었고,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며 금메달 우승을 차지했다. 카누는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팀에서 6경기 출장 3골을 넣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이를 토대로 1996년 올해의 아프리카 선수상을 수상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에서 1994년부터 2011년까지 87경기 12골을 기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197cm에 육박하는 초장신에 좋은 몸싸움을 가져 전형적인 타겟맨의 피지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지리아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빠르고 발재간과 기술이 뛰어나며 좋은 패스 능력을 가진 기술적인 타입이었다. 디디에 드로그바보다는 키 큰 제이제이 오코차에 가까운 스타일로, 특히 볼 컨트롤과 정교한 드리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화려한 개인기와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패싱 스킬을 지녔다. 장신 공격수로서는 마치 김신욱처럼 헤더보다는 발을 사용한 득점을 선호하는 특이한 유형의 선수였는데, 이 습관은 속력을 거진 모두 잃어버리고 피지컬과 골문앞 위치선정으로만 먹고살아야했던 카누의 선수생활 후반기까지 계속되었고 말년이 되어서야 그나마 헤더골의 비중이 좀 높아졌다. 그래도 헤더보다는 슈팅에 자신있는 선수였던 만큼 위치선정과 침투 타이밍 선정에 능한 모습을 보여 골문앞 마무리 정도는 무리없이 해냈고, 헤더만 좀 덜 선호했다 뿐이지 미친 피지컬은 어디 안가서 박스안 등딱 밎 연계에도 일가견을 보였다. 이 덕분에 타겟맨 역할은 물론이고 서포트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플레이메이커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라이벌팀의 올레 군나르 솔샤르를 방불케 하는발군의 슈퍼서브였다는 점으로, 큰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 벤치에서 출발하면 중요한 경기에서 꼭 골을 넣었다.

물론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다소 존재했던 선수였다. 카누는 결정적으로 선천적 심장 문제를 갖고 있어 스태미너를 포함하여 지구력이 크게 떨어지는 등 스포츠 선수로서의 그의 생활습관에 전반적으로 큰 악영향을 끼쳤다. 또한 일반인보다 키가 큰 만큼 속력은 그만큼 떨어지는 편이었고, 수술받은 이후에도 상기한 심장문제 때문인지 '어슬렁' 기질이 좀 있어 당시 언론에서는 저조한 활동량과 기복으로 자주 비판받곤 했다. 또한 쉬운 찬스를 어이없이 놓치는 경우가 다수 있는 등 집중력이 부족한 모습도 자주 보였다.

총평하면 부수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기술적 능력과 축구센스가 출중했기 때문에 다양한 유럽 빅클럽을 전전할 수 있었고 여전히 역대 최고의 아프리카계 EPL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아스날에선 그 특유의 기술을 살리기 위해 베르캄프처럼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주로 기용되는 등 쏠쏠히 써먹혔으며, 득점 기록이 높진 않았으나 그분야 넘사벽인 베르캄프에 비교되었을 뿐 엄연히 최고 수준의 클래스를 자랑했던 선수였다. 기량이 뛰어났음에도 묵묵히 서브로 든든히 오랜 세월 뛰어준 덕분에 벵거가 아끼던 선수 중 하나였으며 아스날을 떠나서도 고령의 나이까지 꽤 오래도록 EPL에 머물렀다.

4. 수상

4.1. 우승

  • 이완야누 네시오날레 (1992~1993)
    • 나이지리아 프리미어리그: 1992-93
  • 나이지리아 U-23 축구 국가대표팀

4.2. 개인 수상

  •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1996, 1999
  • BBC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1997, 1999
  • FA컵 결승전 MOM: 2008
  • 아약스 올해의 재능: 1994-95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아프리카 드림팀: 2021


[1] 두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 교체 95년 AC 밀란전과 선발로 96년 유벤투스전.[2] 앙리는 이미 1999년부터 아스날 소속으로 뛰고 있었으며 이적 첫해부터 훌륭한 기량을 선보였다.[3] 16개국 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