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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 | |
The Football Association | |
정식 명칭 | The Football Association[1] |
약칭 | The FA |
설립 | 1863년 10월 26일 |
본부 |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
IFAB 가입 | 1886년 |
FIFA 가입 | 1905년[2] |
UEFA 가입 | 1954년 |
회장 | 웨일스 공 전하 (HRH The Prince of Wales) |
의장 | 데비 휴이트 (Debbie Hewitt) |
최고 경영자 | 마크 불링엄 (Mark Bullingham) |
사무총장 | 알렉스 혼 (Alex Horne) |
공식 웹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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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 행정을 총괄하는 경기 단체. 다른 국가의 축구협회와는 달리 축구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국가명을 따로 붙이지 않는다. UEFA와 FIFA의 회원이면서 IFAB의 회원이다.2. 역사
1863년 10월 26일 런던의 선술집 프리메이슨스 테이번(Freemasons' Tavern)에서 FA와 런던에 있는 12개 클럽 사이에서 규칙을 제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참가한 창립 클럽은 반즈(Barnes), 시빌 서비스 FC(Civil Service)[3], 크루세이더즈(Crusaders), 포레스트 오브 레이톤스톤(Forest of Leytonstone)[4], 노 네임스 클럽 (No Names Club), 크리스털 팰리스 FC(Crystal Palace FC)[5], 블랙히스 FC(Blackheath), 켄싱튼 스쿨(Kensington School), 퍼시발 하우스(Perceval House), 서비튼(Surbiton), 블랙히스 사립학교(Blackheath Proprietary School) 등이다. 이 중 블랙히스 등 일부 클럽들은 규칙 제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탈퇴하여 1871년에 럭비 풋볼 유니언를 창설하게 된다. 1863년 12월 8일까지 6번 모임을 가져 통일된 규칙을 제정하였다. 이렇게 제정한 14개 조항은 통일된 규칙으로 제정된 세계 최초의 축구 규칙이며, 이로써 현대 축구가 본격적으로 탄생되었다. 이 축구 규칙를 시험적으로 사용한 경기는 1863년 12월 19일 열린 리치몬드(Richmond)[6] 대 반즈(Barnes) 경기이며 경기 결과는 0-0 무승부였다. 1864년 1월 9일 FA 규칙을 이용하여 현대 축구가 공식적으로 처음 치러졌다. FA가 제정한 현대 축구는 이후 전세계에 보급되었고 잉글랜드가 축구의 종주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헌하였다. 이후 1882년 영국의 나머지 3개 축구협회와 국제축구평의회(IFAB)를 창설하여 새로운 축구 규칙 제정과 제반 사항에 대하여 의논하였고, 1886년 6월 런던에서 초대 IFAB 총회가 열렸다.그리고, 현대 축구가 탄생 된지 41년 후인 1904년에 FIFA가 창설되었다. FIFA는 처음 원칙은 1개 국가 1개 축구협회로 제한하였다. 하지만 이미 영국의 4개 축구협회가 각각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또한 현대 축구의 종주국으로의 우위를 주장한 영국은 FIFA에 참여하지 않았다. FIFA는 출범하면서 축구의 규칙은 IFAB의 규칙을 따르고 있었고, 세계 축구로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현대 축구의 종주국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 축구 초창기 최강국인 영국을 FIFA에 가입시키기 위해, 영국의 4개 축구협회를 모두 승인하였고, 잉글랜드도 이 때 FIFA에 가입한다.[7] 1913년 FIFA가 IFAB에 가입하면서 현재 축구 규칙을 제정하고 있다.
한편, 영국 올림픽위원회도 축구에 관해서는 국제 경기 단체로 통일 영국 대표 조직을 승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올림픽에서는 단일 국가(그레이트 브리튼, 영국)로 출전하는 것이 대원칙이기 때문에 예선 때부터 영국은 참여하지 않는다. 영국 대표팀은 2011년까지 과거 11차례 출전하였다. 올림픽 개최국으로서의 영국 대표팀의 올림픽 출전은 1908년 런던 올림픽과 1948년 런던 올림픽 2차례 있으며, 1908년 런던 올림픽은 대영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였다. 1948년 런던 올림픽은 영국 대표팀의 이름으로 참가한다. 그러나 모두 자세히 따져보면 잉글랜드 단독팀이었다. 영국 4개 축구협회는 각각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올림픽 유럽 예선을 겸하고 있는 UEFA U-21 유럽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이 준우승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규정상 우승을 해도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올림픽 출전은 없다[8].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개최국으로서 4개 축구협회가 하나가 된 영국 대표로 출전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잉글랜드 이외의 3개 축구협회가 협회의 독립성 손실을 우려하여 반대했기 때문에 통일팀 결성은 포기하였고, 잉글랜드 단독팀이 영국 올림픽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 올림픽위원회를 중심으로 끊임없는 조정을 한 결과, 남자는 잉글랜드와 웨일스로 구성된 팀으로 영국 남자 대표팀를 결성하였고 여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구성된 영국 여자 대표팀을 결성하여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3. 주관 대회
이 경기단체는 잉글랜드의 컵대회, 남자 및 여자 축구 경기를 주관하고 있다.- 컵대회: FA컵, FA 트로피, FA 베이스, FA 위민스컵, FA 위민스 프리미어 리그 컵, FA 유스컵, FA 선데이컵, FA 카운티 유스컵, FA 커뮤니티 실드, FA 내셔널 리그 시스템컵, FA 풋살컵
- 남자 경기: EFL 챔피언십, EFL 리그 1, EFL 리그 2, 내셔널리그 포함 20부리그까지.[9]
- 여자 경기: FA 여자 슈퍼 리그, FA 여자 챔피언십,FA 여자 리그컵, 여자 FA컵, FA 여자 커뮤니티 실드
그리고,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남자, 여자, 청소년)과 잉글랜드 풋살 국가대표팀을 산하에 두고 관리하고 있다.
4. 비판과 논란
2020년 전염병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교체카드를 다섯장으로 하는데, 프리미어리그만 중하위권이 불리하다고 세장으로 해서 비판대상이다. 중하위권 팀들은 보통 주전들까지는 그런대로 구색을 맞추지만 후보들은 좀 쳐지는 편이다. 그래서 교체카드가 늘어도 별다른 이득이 없다. 하지만 상위권팀은 후보들까지 두텁기 때문에 교체카드가 늘어나면 훨씬 유리하다. 결국 22/23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도 교체 카드가 5장이 허용되었다.4.1. 아스날 선수 대리퇴장 및 해당 주심 경기 재배정 논란
2014년 3월 22일 아스날이 첼시와 원정경기를 가졌다. 첼시 에덴 아자르의 슛을 아스날의 체임벌린이 골키퍼마냥 다이빙해서 손으로 쳐냈는데 외모가 비슷하게 생긴 같은 팀 동료 키어런 깁스에게 안드레 마리너 주심이 퇴장 명령을 내림으로써 점화된 논란이다. 이 사건으로 아스날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였고, 체임벌린은 오래 뛰지 못하고 교체됐다. 결국 아스날은 첼시에게 0:6으로 참패하며 아르센 벵거의 1000번째 경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이 되었다. 이후 FA 산하 프로심판위원회는 마리너 주심의 실수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마리너 심판이 곧장 다른 EPL 경기 주심을 다시 맡게 돼 논란이 재점화되었다.4.2. 리버풀 리그컵 일정 미조정 논란
2019년 12월에 리버풀은 2018-19 시즌 챔스 우승팀 자격으로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12월 17일 영국에서 아스톤 빌라 FC와 리그컵 경기를 치르고 바로 다음 날 카타르로 건너가 몬테레이와 클럽 월드컵 준결승전을 치러야 하는 불가능한 일정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리버풀은 리그컵 일정을 제발 조정해 달라고 간곡하게 빌었지만 FA는 쿨하게 씹었다. 결국 리버풀 주전 선수단과 위르겐 클롭 감독은 클럽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로 향하고, 네일 닐 크리츨리 U-23 감독이 영국에 남아 리버풀 유스 선수들을 이끌고 리그컵 경기를 치러야 했다. 결국 리버풀의 어린 선수들은 아스톤 빌라의 성인 선수들과의 전력 차이를 실감하며 0:5로 참패하고 리그컵에서 탈락했다.역사적으로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리버풀의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또한 FA컵 일정조정 실패로 인해 FA컵을 기권하고 클럽월드컵에 출전했었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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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 더 풋볼 어소시에이션[2] 2번의 탈퇴를 거듭한 후 1946년 재가입하였다.[3] 1863년에 창단됐으며 2019-20시즌 현재 서던아마추어풋볼리그 시니어 디비전 1에 속해 있으며 첼시 로버스 FC의 홈구장이기도 한 킹스 하우스 스포츠 그라운드를 홈구장으로 사용한다.[4] 후에 원더러스 FC가 됨[5] 1861년 창단되어서 1876년 해단된 팀이지만, 현재 존재하는 동명의 클럽은 창단 시의 소유주가 같음을 근거로 해서 자신들의 역사에 이 팀의 역사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6] FA 창설 클럽이 아님[7] 이 선례로 이후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 미국은 해외 영토인 괌, 아메리칸 사모아, 푸에르토 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네덜란드는 해외 영토인 퀴라소, 아루바 등 자치가 이루어지는 지역의 축구협회도 허용하게 된다.[8] 다만 이것은 '잉글랜드'의 올림픽 참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지 영국으로 출전하겠다면 각 지역 축구협회의 동의가 있는 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잉글랜드 여자 축구가 2020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얻자 이전의 남자팀과 달리, 단일 팀을 구성하여 영국으로 본선에 참가했다. 1950년대에서 60년대 초반의 독일도 마찬가지였는데 피파는 따로, 올림픽에서는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양독 축구협회와 올림픽위원회는 동독과 서독의 아마추어 대표팀이 대결하여 이기는 팀을 독일 올림픽 대표로 하기로 합의했던 것. 본래 잉글랜드 아마추어 대표팀이 영국 올림픽 대표였다. 그런데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분을 없앤 뒤로는 '잉글랜드 아마추어 대표팀'이라는 것이 결성될 수가 없어서 영국이 올림픽에 불참했던 것이다. 이후 올림픽 축구가 신분제한에서 나이제한으로 바뀌게 되면서 현재와 같은 체제로 21세 이하 대회가 올림픽 예선을 겸하게 된 것.[9] 프리미어 리그의 경우 FA 산하 자회사 형태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