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9:41:00

노동당(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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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Labour Party[1]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e50038> 한국어 명칭 노동당
창당일 1900년 2월 27일 ([age(1900-02-27)]주년)
전신 노동대표위원회[2]
중앙당사
영국 잉글랜드 런던
빅토리아 거리 105105 Victoria Street, London
이념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친유럽주의[3] (다수)
군주국의 공화주의[4] (일부)
스펙트럼 중도좌파[5][6]
당수 키어 스타머
부당수 안젤라 레이너
의장 엘리 리브스
사무총장 홀리 리들리
귀족원 당수 배질던의 스미스 여남작
서민원 의원
402석 / 650석 (62.2%)
귀족원 의원
166석 / 786석 (22.4%)
당색
국제 조직


(옵저버)
유럽 정당 조직 유럽 사회당 (PES)
청년 조직 젊은 노동당 (Young Labour)
성소수자 조직 LGBT+ 노동당 (LGBT+ Labour)
당원 수 366,604명 (2024년 기준)
공식 사이트 전국 | 스코틀랜드 | 웨일스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지지 기반
2.1. 18세~49세2.2. 런던 도심, 북부 잉글랜드 공업 도시, 웨일스, 스코틀랜드2.3. 노동자 계급, 저소득층, 서비스직 종사자2.4. 무주택자와 흑인, 아일랜드계 및 소수 인종2.5. 왕실폐지론자2.6. 노동조합
3. 역사
3.1. 노동자의 정계 진출에서 창당까지3.2. 제1차 세계대전과 사회주의 노선 정립3.3. 연립 정부 수립과 제2차 세계 대전3.4.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의 건설3.5. 영국병3.6. 암흑기3.7.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13년의 집권 생활3.8. 에드 밀리밴드 대표 시절3.9. 제러미 코빈 대표 시절
3.9.1. 2017년 영국 총선3.9.2. 브렉시트 분쟁 정국3.9.3. 2019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3.9.4. 2019년 영국 총선 대패3.9.5. 2020년 대표 선거
3.10. 키어 스타머 대표 시절3.11. 키어 스타머 내각
4. 역대 대표5. 역대 선거 결과6. 관련 정당·조직7. 여담8. 대중매체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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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HANGE.
변화
2024년 총선 슬로건
영국정당. 2024년 기준 영국의 집권 여당으로서 국왕 폐하의 정부(His Majesty's Government)를 구성하고 있다. 오랫동안 보수는 토리 보수당, 진보는 휘그 자유당 양당체제였던 영국 정치지형에서 20세기 초중반 이후 자유당을 밀어내고 자리를 꿰찬 정당이다.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90년대엔 당시 글로벌 트렌드였던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에 의해 국유화 정강 폐지 등 '제3의 길' 노선[7][8]도 걸었으나 2010년대 노동당 대표에 제러미 코빈이 당선되며 다시 좌경화되었다. 하지만 코빈이 2019년 총선에서 패배 후 사퇴하며 키어 스타머가 2020년 신임대표로 선출, 다시 중도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2010년대 이후로는 시장선거에서는 그럭저럭 강세를 보이고 있고 총리 배출은 못하고 있었지, 2024년 영국 총선에서 재적 650석 중 411석을 석권하면서 제1당에 등극하여 총리를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서 19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했다.

영국 노동당의 로고는 전통적으로 붉은 깃발이었다가 1986년부터 붉은 장미 실루엣을 사용하고 있다. 장미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반전한 장미꽂잎 송이 실루엣 모양의 디자인으로 영국인들에게는 잘알려져 있어서 신문기사의 삽화 등 당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는 편이다.

2. 지지 기반

2.1. 18세~49세

우선 세대별로 보자면 18세~49세에서의 지지가 매우 높다. 노동당이 전국에서 쓸려나가던 2019년 총선 때에도 18세~24세들만을 대상으로 했을때의 결과는 무려 노동당이 600개 이상의 지역구에서 앞선 것으로 나왔다. 다만 여기도 1824에서 남녀 격차가 좀 크다. 1824 여성에선 65%가 나온 반면, 1824 남성에선 46% 정도로 무려 20%p 가까이 차이가 났다.

2549에서도 1824만큼은 아니지만 노동당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50대부터는 보수당이 앞선다. # ##

2.2. 런던 도심, 북부 잉글랜드 공업 도시, 웨일스, 스코틀랜드

지역별로는 런던 도심, 북부 잉글랜드 공업 도시[9]스코틀랜드, 웨일스에서의 지지세가 높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과거 노동당의 대표적인 강세 지역이었으나 2015년 총선을 기점으로 SNP에게 완벽하게 뺏겼었다. 그리고 2024년 총선에서 SNP를 몰락시키며 스코틀랜드의 지지세를 완벽하게 복구해냈다. 시골에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10]

2017년 총선에서는 런던에서 이전보다도 약진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2019년 총선에서는 노동당의 전국적인 참패와 맞물려 런던에서의 지지세 확장이 주춤한 양상을 보였다. 특히 2017년 총선에서 획득한 켄싱턴 지역구를 2019년 총선에서는 다시 한번 보수당에 내주게 되었다.

2021년 런던 시장선거에서도 노동당이 결선투표에서 60% 내외, 최대 66%까지의 득표율을 기록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대다수 여론조사들의 예측[11]과 달리, 55%의 득표율에 그쳐 다소 아쉬운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해당 득표율은 2016년 런던시장 선거에서의 노동당 최종 득표율인 56%보다 낮은 수치이다. 반면 보수당은 일찌감치 패배를 직감해 당 지도부 차원에서 별다른 지원도 하지 않음에도, 결선투표에서 2016년 때보다 높은 45%의 득표율을 기록해 크게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버풀, 맨체스터, 브래드포드, 뉴캐슬, 셰필드 등 북부 잉글랜드의 대규모 공업도시들은 여전히 노동당 지지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이 근교의 소도시들에서는 노동당의 지지율이 낮아지기도 했었다. 실제로 2019년 총선 당시 몇몇 의석은 보수당에게 빼앗겨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북부 잉글랜드 근교 소도시 지역구들의 대표격인 버틀리&스펜[12] 지역구 재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이러한 측면에 대한 우려는 상당히 해소되었다고 봐야한다.

특히 노동당 탈당파 출신인 노동자당 조지 갤러웨이 후보가 21.9%나 득표해 노동당 지지층의 표를 크게 분열시켰음에도 끝내 노동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그만큼 이러한 지역구들에서의 노동당 지지세가 다시금 강고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의 주류 언론들은 보리스 존슨 총리의 레드 월 공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으며, 노동당 입장에서는 전통적 텃밭인 레드 월을 복구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3]

그리고 2024년 총선에서 전국적인 대승 분위기에 힘입어 레드 월을 완벽하게 복구해내었고, 더 나아가 스코틀랜드의 지지도 되찾아왔다. 거기다 영국개혁당의 표 분산으로 교외와 농촌 지역에서도 상당한 의석 기반을 얻어내었다.[14]

2.3. 노동자 계급, 저소득층, 서비스직 종사자

공업도시들에서의 강고한 지지세와 맞물려, 영국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구도로 보자면 노동 계급에서의 지지율이 매우 높다. 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도시인 리버풀[15]에서는 노동당의 지지율이 80%를 손쉽게 넘나든다.[16]

맨체스터버밍엄 등 여러 노동자들이 다수인 도시들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노동당이 매우 높은 지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나마 맨체스터는 서비스업으로 개편하면서 보수당이 교외 지역을 확보하지만 그래도 노동당의 텃밭으로 분류된다.[17]

최근 들어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의 노동당 지지세가 약해졌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이는 상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노동당의 지지세가 상당히 약화되었다는 근거로 지역구별 노동자 계급의 비율과 노동당 득표율의 상관관계가 2010년, 2015년, 2017년, 2019년 총선을 거치면서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통계가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해당 통계는 10년마다 한번씩 실시된 2011년 영국 인구조사를 근거로 지역구별 노동자 계급 비율을 산출한 만큼 최신 인구 변동[18]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실제 단순한 지리 정보만 수박 겉핧기 식으로 파악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1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 인구조사를 근거로 하여 지역구별 노동자 계급 비율을 산출할 경우, 2010년, 2015년, 2017년, 2019년 총선동안 지역구별 노동자 계급 비율과 노동당 득표율의 상관관계가 유의미한 변화없이 꾸준히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

소득 수준 별로 따져볼 때는 저소득층 사이에서 노동당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다. 영국의 대표적인 여론조사 기관 중 하나인 서베이션이 2021년 6월 25일에서 26일까지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당과 보수당의 전체 지지율은 각각 35%와 41%로 나타났지만, 가구소득 20,000파운드 미만 저소득층 사이에서는 각각 52%와 24%을 기록해 노동당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

같은 조사기관이 2021년 6월 9일에서 10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도 노동당과 보수당의 전체 지지율은 각각 35%와 42%, 저소득층 사이에서는 50%와 28%로 나타났다.#

또 보수당이 주도하는 브렉시트에 반감을 가진 진보주의 엘리트들이 밀집한 런던 대학가나 일부 도심 지역구 역시 리버럴 성향을 지니는데, 홀본&세인트 판크라스[19]의 경우 진보 지식인들이 노동당을 지지하고 있고 켄싱턴도 이들로 인해 경합 지역이 되고 있다.[20]

다만 켄징턴과 같은 자유주의 엘리트 위주 지역구들의 인구구성이 본래 보수당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단에서도 언급하듯이, 주택소유 여부 측면에서 봤을 때, 본래 유주택자는 보수당, 무주택자는 노동당 지지성향이 강하며, 이러한 정치적 구도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

하지만 영국 의회의 공식 홈페이지에 수록된 자료에서 알 수 있듯, 켄싱턴은 주택소유 비율이 34%에 불과해 영국 전체 평균인 64%는 물론이고 런던 평균인 48%에도 훨씬 못 미친다. 홀본&세인트 판크라스는 이보다도 낮아 주택보유 비율 27.5%에 불과하다. #

또 시사주간지 Unherd와 여론조사기관 Focaldata의 심층 분석 여론조사에 따르면, 켄싱턴은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 지역구 632개 중 군주주의자 비율이 375등에 그쳐 군주제 유지에 대한 지지가 상당히 낮은 편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심지어 홀본&세인트 판크라스는 군주제 유지 비율이 587등에 불과해 군주제 유지에 대한 지지가 매우 낮은 편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 ##

"보수당 지지자는 모두 군주주의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군주제 유지에 반대하는 보수당 지지자를 찾기 매우 어려운만큼, 보수당 지지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지역구들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2.4. 무주택자와 흑인, 아일랜드계 및 소수 인종

주택소유 여부로 따졌을 때는 무주택자 사이에서 월등한 지지세를 보이고 있다. 참여정부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저서인 "부동산은 끝났다"에서도 유주택자는 보수당, 무주택자는 노동당을 선호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21]

영국 의회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획득한 지역구들 중 86%가 전국 평균 이상의 주택소유 비율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노동당은 이러한 지역구들의 비율이 26%에 그쳤다고 한다. #

또 영국의 주요 여론조사 기관 중 하나인 넘버 크런처 폴리틱스가 2021년 5월 27일부터 28일까지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주택자 사이에서는 25%의 지지율로 51%의 보수당 지지세에 크게 못 미쳤지만, 무주택자 사이에서는 48%와 25%로 노동당이 크게 압도했다.

파일:Screenshot_20221001-160525_Gallery.jpg

해당 여론조사에서는 백인흑인 및 소수인종[22]의 정당 지지율도 조사했는데, 백인 사이에서는 노동당이 30%에 그쳐 보수당의 45%에 상당한 격차로 밀렸지만, 흑인 및 소수인종 사이에서는 50%의 지지율로 보수당의 26%을 압도했다. 그 밖의 다른 조사들에서도 노동당의 흑인 및 소수인종 지지율은 50%대를 기록하는 반면, 보수당은 20%대에 그치고 있다.

영국 흑인, 파키스탄계 영국인, 인도계 영국인 모두 노동당을 더 높이 지지한다. 그리고 아일랜드계 영국인들 역시 보수당보다 노동당 지지자들이 많다. 단 인도계 영국인은 40% 정도가 보수당을 지지하며 흑인은 20% 파키스탄계는 10%도 안된다. 그리고 홍콩, 싱가포르 계열의 중국계 영국인들은 인도계 영국인과 같이 보수당을 더 지지한다.

2.5. 왕실폐지론자

왕실폐지론자들 또한 노동당의 핵심 지지층이다. 이전에도 노동당 지지층 내에서는 전체 평균에 비해 공화주의자들의 비율이 높았지만, 최근들어 그 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주요 여론조사 기관 중 하나인 유고브(YouGov)가 2019년 10월 2일에서 11월 22일까지 실시된 조사에서는 전체 인구 중 공화주의자의 비율은 19%, 노동당 지지층 내에서는 29%로 산출되었다. #

같은 기관이 2021년 3월 8일에서 9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는 전체 인구 중에 군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의 비율이 각각 63%와 25%로 나타나 여전히 유지론자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노동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각각 48%와 40%로 나와 유지론자와 폐지론자의 비율이 비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

같은 기관의 2021년 3월 12일부터 5월 7일까지의 조사에서도 전체 인구에서의 군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의 비율은 각각 61%와 24%, 노동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43%와 40%로 산출되어 전체 인구와 노동당 지지층 내에서의 군주제 유지 여부에 대한 여론의 괴리감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화주의자인 코빈이 당 대표일 때보다 유지론자인 스타머가 당대표가 되고나서 노동당 내 공화주의자의 비율이 더욱 증가했다는 것이 인상적인 부분이다. 대표적인 노동당 지지 신문들인 더 가디언인디펜던트 또한 왕실폐지를 지지하고 있다. 다만 2023년 기준 아직까지는 노동당 지지자들에서도 군주주의자가 더 많다.

2.6. 노동조합

파일:Screenshot_20221004-000613_Chrome.jpg

태생부터가 노동조합인 정당답게, 노동조합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2019년 영국 총선에서도 노조들은 주요 정당들 중 오직 노동당에게 정치후원금을 지원했고, 액수 또한 504만 파운드에 육박한다. 이는 노동당이 모금한 전체 정치후원금의 93.1%에 해당하는 액수다. #

3. 역사

해당 부분의 신노동당 이전 문단은 토니 클리프가 쓴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 희망과 배신의 100년라는 책을 참조하여 작성했다. 국내에 번역된 영국 노동당 관련 서적 가운데 노동당의 역사에 대해 가장 자세히 서술한 책으로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 번쯤 봐도 좋다.[23] 저자인 토니 클리프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활동가였고, 사회주의노동자당 자체가 영국 노동당에서 물의를 일으켜 퇴출된 인사들로 구성된 정당이라는 것을 유념에 두면 좋다. 노동당 역사에 보다 관심이 있다면 희망과 배신의 100년의 개정 증보판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 :창당부터 코빈의 부상과 좌절까지을 읽는 것을 권한다.

3.1. 노동자의 정계 진출에서 창당까지

1867년 차티스트 운동의 결과로 도시 거주 남성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지면서 노동자의 정치 참여가 보장되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보호와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활동하였고, 대개 자유당과 연대하여 자유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였다. 1874년, 광산 노동자 출신의 2명이 자유당-노동자 연대를 통해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것이 영국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의 시작이었다.

1889년 비숙련직, 단순노동자들이 주도한 제1차 노동자 대투쟁과 신노동조합운동 이후 기존 노동자들의 정치 활동을 정당으로 묶어내기 위해 1893년 독립노동당이 창당되어 영국 최초의 노동자 정당이 탄생하였고, 1900년에 독립노동당과 공상적 사회주의성향의 페이비언 협회,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사회민주연맹, 그리고 기존 노동조합이 연합, 노동대표위원회(Labour Representation Committee)라는 이름으로 발족하여 공식적으로 노동당이 시작되었다. 그 해의 첫 선거에서 얻은 의석은 고작 2석.[24] 물론 자유당과의 연대는 계속 유지, 사회주의 강령은 넣지 않고 기존의 노동조합 보호와 노동자 권리 보장들의 사안에만 집중하였다. 현재의 이름인 노동당으로는 1906년 총선에서 29석을 얻으며 의석수를 크게 늘린 후에 개칭하였다.

이듬해인 1907년 노동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노동당 의원단'을 구성, 이들이 당 대회에서 의결된 사안의 결정권을 쥐게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이는 이후 노동당의 오랜 전통인 원내 노동당(중앙당, 우파) vs 원외 노동당(지구당, 좌파) 갈등의 불씨가 된다.[25] 1900~1910년대 노동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통해 약진 의석수를 늘려갔으나 정책에서는 지나치게 우경화, 자유당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러한 성향은 1910~1914년 벌어진 제2차 노동자 대투쟁에서도 비슷했는데, 노동당은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 양비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며 파업 강경 진압에 찬성하였다. '노동'당 맞아?
다만 이때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폭격기'(진짜 육군 폭격기를 돈 주고 빌려왔다)로 폭격을 하고, 여성과 아이들이 있는 캠프엔 박격포를 쏴서 진압하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어느정도 구체제와 타협할 필요도 있었다.

3.2. 제1차 세계대전과 사회주의 노선 정립

노동당이 좌파 정당으로 거듭난 계기는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전쟁 초기 노동당은 1915년 거국내각에 참여, 기존의 국제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징병을 지지, 파업을 저지, 당내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반전 운동가들을 앞장서서 공격했다. 그러나 1917년 전쟁 중 벌어진 러시아 혁명으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고, 이에 영향을 받아 노동조합원 수와 노동운동도 증가, 노동자들의 요구에 의해 노동당은 사회주의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1917년 거국 내각에서 사퇴한 아서 헨더슨[26]은 혁명의 한 가운데에 있던 러시아를 방문한 후 유혈혁명 저지를 위한 노동당의 좌경화를 주장하였다. 한편 1918년 선거법 개정으로 여성들도 선거권을 가지면서 노조 소속 노동자만을 위한 정당에서 더 넓은 계층의 사람들을 포용할 필요도 생겼다. 이시기 노동당은 당명을 국민당으로 바꾸자는 의견까지 나왔을 정도.

논의 끝에 1918년 바뀐 당헌에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공정한 노동과 분배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강령(일명 당헌 4조)을 채택하였고, 지역당, 개인단위 가입제도를 도입해[27] 노조 소속이 아닌 노동자, 진보적 지식인, 주부 등을 포섭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다른 한 편으로는 의회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고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 대해 독립은 지지하지만 독립운동은 안된다라는 개드립을 치며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노동당의 주장은 '무장 투쟁에 반대할 뿐이다. 우리는 정부의 강경 진압에도 반대한다.'였으나 정작 실제로는 특수부대를 동원한 무력진압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고 침묵했다.

3.3. 연립 정부 수립과 제2차 세계 대전

대중정당화와 사회주의 강령 채택, 그리고 온건화 등 각고의 노력과 자유당의 몰락덕으로 1923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자유당과의 연정을 통한 첫 집권에 성공하며 대표 램지 맥도널드를 총리로 하는 내각을 세운다. 맥도널드 내각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보건부 장관 존 휘틀리의 노력으로 공공주택 52만 호를 건설하였고 런던 포플러구에서는 대대적인 복지 정책을 통해 사망률을 떨어트린 '포플러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당의 반대와 당내 지도부의 보수화로 사회주의 정책을 이행하기는 커녕 모호한 입장을 취해 지지를 잃기만 했다. 오죽하면 당시 재무부 장관이던 필립 스노든은 자기 입으로 '시티 오브 런던에 내 동상을 세워준다는 설이 있다'라고 했을까…. 결국 맥도널드 내각은 집권 9개월만에 내각 불신임으로 해산, 이어진 선거에서 40석을 잃으며 보수당에 정권을 넘겨준다.[28]

이후 강령의 일부 수정과 1926년 총파업을 계기로 1929년 첫 원내 1당에 등극, 자유당과의 연정으로 맥도널드 내각을 다시 수립한다. 그러나 대공황의 한가운데에서 노동당은 기존의 자유방임적 경제 체제에 대하여 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보수당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가며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1931년 실업급여 삭감안이 결정타가 되어 내각이 붕괴, 총리 램지 맥도널드가 국가노동당으로 분당해서 보수당 중심의 거국내각에 가담하면서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또한 그 해 재선거에서 노동당은 무려 235석을 털리며 추락했다.

노동당은 이 참패를 계기로 대안 세력으로 재편하기 위해 좌경화, 심지어 훗날 총리가 되는 클레멘트 애틀리는 혁명정당론까지 꺼냈을 정도이다. 이는 단지 선거 참패 때문만이 아니라 독일에서 나치의 집권하는 등 파시즘이 세력을 넓혀나가자 이에 맞서기 위한 것도 컸다. 그렇게 1932년 노동당 당 대회에서 은행 국유화 등을 결의하고 귀족원 폐지, 주요 산업시설 사회화 등을 발의하였으나, 블록 경제로 영국 경제가 다시 호전되자 보이자 발의된 개혁안은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반파시즘 운동에 있어서도 파시즘 반대 시위를 반대하는 등 삽질은 여전했다. 그나마 혁신에 열의를 보이던 당내 좌파 역시 활동과 사상에 있어 영국 공산당에 의존하는 등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반파시즘 연대 결의안, 당내 조직인 사회주의자동맹 해산안을 연달아 저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노동당은 이듬해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을 총리로 하는 거국내각에 참여한다. 이 시기 노동당은 노동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얻고 내치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시기 노동당은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 노동운동 탄압을 위한 노동쟁의법의 폐지에 소극적으로 대응, 인도의 불복종 운동을 탄압하는 등의 안건에 동의하기도 했다.

3.4.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의 건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이후, 소련동독에 시행한 계획 경제체제와 미국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행한 케인스주의적 정책인 뉴딜 정책의 성공을 보고 사회적 분위기가 '계획'을 신뢰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노동당은 대규모 지지를 얻었다. 그러한 무드 속에서 1945년 7월,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치러진 선거에서 노동당은 393석을 얻으며 첫 단독 과반 내각인 애틀리 내각이 집권한다. 노동당은 중앙은행, 탄광, 가스, 전력, 철도등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베버리지 보고서에 바탕한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불리는 대대적인 복지 정책을 펼친다. 이 당시 탄생한 것이 전국민에게 무상 의료를 보장하는 국민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약칭 NHS)이다.

그러나 1947년 2차세계대전 이후 쌓인 부채와 무역적자가 금융위기로 번지면서 긴축정책을 실시, 복지정책이 한풀 꺾이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 노동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펼쳤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정책 중 하나인 생산 수단의 국유화도 크게 진전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파업을 탄압하고 임금을 동결하는 등 노동자에 반하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외교 정책 역시 기존 정책을 유지, 아대륙과, 미얀마를 제외한 나머지 식민지를 유지했으며,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추진한 집권 국민당에 대한 유화책을 도왔으며, 핵무기를 개발했다. 결국 1951년 보수당에 정권을 다시 내주기는 하였지만, 보수당 또한 사실상 노동당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국정을 펼침으로써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신화를 창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노동당은 1964년까지 무려 13년동안 정권을 내주며 지리멸렬했다. 1955년에서 1963년까지 노동당 대표로 있던 휴 게이츠컬은 노동당의 사회주의 강령을 포기, 수정자본주의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어나이린 베번을 중심으로 한 '베번 좌파'가 등장, 지구당을 장악하고 노동당의 좌경화를 시도했으나 당내 우파와 다른 대안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며 흐지부지되었다. 한편 1951, 1955, 1959년 3번의 선거를 모두 패해 의석을 계속 갉아먹자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당헌 4조의 사회주의 강령 폐지를 시도했다. 물론 강력한 반대로 무산.

국방 정책에서는 핵무기 철폐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나름대로 활동을 하였으나, 대중의 반응은 냉랭하였다. 결국 핵무기 폐기안은 당 대회에서 압도적으로 부결, 물거품이 된다. 이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60년인데 반전·반핵 운동이 크게 일어나는 68운동이 일어나려면 조금 멀었다.

3.5. 영국병

노동당의 반전은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 영국병의 징조가 드러나던 1963년 영국 노동당 지도부 선거를 통해 해럴드 윌슨이 대표로 취임, 기존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수정자본주의로 개편하고, 경영 혁신과 과학 혁명을 내걸고 제조업 투자를 늘려 GDP를 올리려 하였다. 이를 통해 1964년 집권에 성공하나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 울며 겨자먹기로 디플레이션 정책을 추진하였다. 경제난을 타개할 방법으로 1963년에 이어 1967년 두번째로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을 신청하지만 프랑스의 샤를 드골의 반대로 무산된다. 또한 1966년 선원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 노동당의 특기인 '당이 안 주도한 파업 때려잡기'를 다시 한 번 선보인다. 또한 보수당의 압박으로 이민 허가에 제동을 걸면서 정작 영국계 백인은 입국을 자유화하는 인종차별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짐바브웨의 인종차별 정책에 솜방망이 제재를 가하고 남아공에 무기를 공급하는 등 외교에서도 비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 몬티 파이선죽은 앵무새로 풍자했던 것 역시 이 시기의 윌슨 정부이다(…).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전쟁 참전 요청도 윌슨에게는 위기로 작용했다. 노동당 내 강경 좌파들은 미국을 맹비난하면서 반미 정책을 선동하였고 친미와 베트남 전 불참 사이에서 어렵게 줄타기를 하던 윌슨을 대단히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윌슨은 저 인간들이 미국에 해대는 것 반만큼이라도 중국과 월맹에 해대는 꼴을 본 적이 없다고 분노를 터트릴 정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에 있어 전 총리인 흄을 비롯하여 보수당의 일각에서 윌슨을 도와서 결국 영국의 월남전 참전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실패와 고난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사형제의 사실상 폐지, 동성애 비범죄화, 극장 검열 폐지, 임신 중절 자유화, 선거권 연령 21세 하향 조정 등 여러 사회적 개혁 법안들이 의회를 통과했다. 윌슨은 이 법안들을 자유 투표에 부쳤지만 진보적 성향이 강한 노동당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한 의석 구성 상 부결이 될리 만무했다.

그 외에도 보수당 정권 시기 축소되었던 사회 복지를 위한 지출을 다시 대거 늘리고 군사비 지출을 대거 삭감했다. 그 외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술부와 경제부를 신설하고 연 3.8% 성장률을 목표로 한 국가 발전 계획을 새로 수립하여 69년을 즈음하여 국제수지가 다시 흑자로 돌아서며 재정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다. 또한 문화산업 발전에 공을 들였는데 상징적으로 비틀즈에게 1965년 영국 왕실 훈장을 수여하도록 추천한게 바로 윌슨 총리였다.관련된 내용의 블로그 글

또한 교육 예산을 크게 확장해 종합 대학을 44개까지 늘리고 오픈유니버시티 제도[29]를 도입해 국민들의 교육 접근성을 확대했다. 실제로 이 시기 정부 교육 예산이 처음으로 국방 예산을 추월하기도 했다.비틀스에 훈장 … 현대식 정치 도입한 ‘민중의 남자’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6년이 지난 후 열린 1970년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6월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을 상대로 7%p나 리드하는 등 노동당의 총선 3연승이 확실해 보였으나 정작 7월 본선에서 에드워드 히스가 이끄는 보수당에 다시 과반을 내주면서 실각하고 말았다. 당시에도 엄청난 이변으로 묘사되었으며, 미국 리처드 닉슨의 1968년 대선 승리, 프랑스 조르주 퐁피두의 1969년 대선 승리와 더불어 침묵하는 다수 이론이 정치계에 확산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스에게 정권을 내주고 노동당은 절치부심하였다. 보수당은 노조의 등록과 노사 조정기간을 의무화하는 등 노조의 통제에 나섰고, 이로 인해 파업이 급증하면서 보수당의 지지율이 추락하자 노동당은 여기에 급진적 정책으로 동조했다. 당시 토니 벤[30]을 중심으로 한 당내 좌파는 금융, 건설, 운수, 조선 등의 산업의 국유화, 핵무기 폐기 등을 내걸었고, 1973년에는 이를 종합한 대안경제전략(Alternative Economic Strategy, 약칭 AES)를 내놓았다. 이를 통해 노동당은 1974년 두 번의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 2차 윌슨 내각을 수립한다.

노동당은 집권 후 대안경제전략을 실행에 옮겼으나, 그것은 위기에 몰린 브리티시 레일랜드영국항공 정도에 그쳤다. 또한 대안경제전략은 국민기업위원회가 주도하는 계획 협약에 따른 계획 경제를 추구했으나,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의 규제망 피하기 앞에선 속수 무책이었다. 게다가, 신성장동력 투자와 기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경시한 결과, 결국 1976년 한계에 달한 영국병이 폭발하면서 IMF에 금융지원을 받고 대안경제전략을 철폐, 복지 예산마저 삭감하며 노동당의 이상적인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이에 따른 파장으로 1978~79년 파업으로 '불만의 겨울'이 도래, 노동당의 암흑기가 시작된다.

3.6. 암흑기

1979년 노동당은 '신보수주의'를 내건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에게 정권을 내주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당내 좌파였던 마이클 풋을 대표로 선출, 토니 벤을 중심으로 한 '벤 좌파'가 부상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당내 우파가 반발, 사회민주당으로 분당, 자유당과 연대하면서 한때 지지율 47%까지 찍으며 대처 정권을 위협하던 기세는 어디가고 지지율이 반토막, 1983년 선거에서 참패, 1918년 이후 최악의 득표수를 기록했다. 심지어 앞서 말한 토니 벤마저 보수당에게 패배했을 정도. 그나마 소선거구제여서 지역기반이 탄탄해서 이정도로 선방했지, 당시 득표율을 노동당 27%, 사민-자유당 연합 25%로 지지율 2위도 위태로웠고 비례대표제였으면 더 심하게 털렸을 것이다(…).

이 참패로 당내 우파인 닐 키녹이 대표에 취임, 노동당은 다시 우경화되었고 벤을 중심으로 한 지역당, 원외 기반의 당내 좌파와 중앙당, 원내 기반의 당내 우파 사이의 알력 다툼도 극심해져 내부 문제도 심각해졌다. 이 와중에 80년대 당내 좌파 켄 리빙스턴그레이터 런던 시장에 당선되고 지방선거에서 노동당, 특히 당내 좌파가 선전하여 런던 코뮌 시대가 열리면서 노동당에 빛이 보이는듯 했다. 그러나 보수당 정권의 예산 삭감에 지방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과 중앙당과의 갈등, 결정적으로 대처 정권의 런던 시의회 폐쇄에 속수무책이었다. 거기다 1987년 총선에서도 대표였던 닐 키녹의 삽질로 패배, 런던 코뮌은 실패로 끝났다.

1990년 인두세 문제로 대처가 정계를 은퇴하자 노동당은 92년 총선 승리의 기회를 잡는 듯 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지지율은 보수당을 앞질렀고, 총선 직후의 BBC 출구조사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초박빙을 예측했다. 그러나 막상 결과는 지지율 7%p차이로 보수당의 과반 확보, 노동당의 4연패로 나왔다.(…) 선거 막판의 뜬금없는 이슈 갈아치우기[31]와 주요 지지층인 노동자들이 인두세를 피하기 위해 선거인 등록을 거부한 것이 큰 패인이었다. 결국 2연패의 빛나는 업적을 거둔 닐 키넉 대표는 사임, 존 스미스를 새로운 대표로 선출한다.

3.7.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13년의 집권 생활

1979년에서 1997년까지 계속된 보수당의 장기 집권 시기가 지난 후, 제3의 길을 내세운 토니 블레어를 중심으로 다시 정권을 잡고 노동당의 장기 집권 시대가 시작된다. 블레어의 '신' 노동당이 20세기 노동당의 모습과 다른 점은 바로 사회주의 강령을 포기한 것이다. 주요 시설의 국유화를 지향하는 당헌 제4조를 개정해 버린 것이 대표적 사례이며 현재도 블레어 때 개정된 것이 유지되고 있다.[32]

비록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제3의 길을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마거릿 대처의 정책과 유사하다는 비판도 듣는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처주의"라는 말도. 차라리 스스로 중도 정당임을 자처하는 자유민주당이 더 좌파적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게다가 이 비난은 블레어가 두고 두고 진보 진영으로부터 전범이라고 욕을 먹게 만든 이라크 전쟁 참전으로 정점을 찍었다.

토니 블레어 이후의 노동당은 이름만 노동당이란 목소리가 노동당 당원들로부터 나왔으며, 특히 블레어가 실행하고 후임 총리였던 고든 브라운이 재무장관 시절 입안했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2009년 세계금융위기 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선거에서 지면서 데이비드 캐머런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3.8. 에드 밀리밴드 대표 시절

40대의 에드 밀리밴드가 대표로 선출되었다.[33] 유럽에서 90년대를 전후해 다시 정권을 잡았던 대다수의 중도좌파 정당들이 그렇지만, 강령을 "제3의 길"에서 다시 (물론 현실적인 수준의) 좌파로 수정하는 작업에 골치를 앓고 있는 점에서는 노동당도 예외는 아니다. 당권을 쥔 밀리밴드는 이 과정에서 신노동당이라는 슬로건을 폐기하였다.

2014년 들어서 스코틀랜드 독립투표가 가시화되면서 영국 노동당은 위기를 겪었다. 스코틀랜드 지역은 마거릿 대처 시절의 경제정책과 제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스코틀랜드가 큰 피해를 보면서 보수당이 지지를 잃게 되어 노동당의 지지기반이 되었는데[34] 2010년 총선 기준으로 하원의석 650석 가운데 스코틀랜드에 배정된 의석이 59석인데 이중에서 41석을 노동당이 차지했다. 이러니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게 되면 노동당으로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노동당에선 스코틀랜드 출신인 고든 브라운[35] 前 총리를 내세우면서 독립반대운동에 나서고 있었고, 결국 독립투표가 부결되면서 노동당에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은 2015년 총선에서 스코틀랜드의 지지를 완전히 잃었음을 확인하고 말았다. 독립투표를 계기로 스코틀랜드에서 SNP의 지지세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투표에서는 보수당이 SNP 버프로 보수층이 결집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많은 의석수를 얻어[36] 단독정부를 구성하였고 스코틀랜드에서 SNP가 59석 중 56석이 SNP의 손에 떨어지면서[37] 결국 232석을 얻는데 그쳤다. 심지어 1997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스코틀랜드 노동당(영국 노동당의 스코틀랜드 지부)의 대표 짐 머피(Jim Murphy)조차 SNP 돌풍을 이기지 못해 낙선하고 말았다.(정치인생 첫 낙선)

이 대패는 큰 충격을 안겨줬는데, 우선 에드 밀리밴드는 처참한 총선 결과(영국 전체)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이에 해리엇 하먼(Harriet Harman) 부대표가 대표 대행을 맡게 됐는데 하먼은 차기 대표나 부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차기 지도부가 확정되면 본인 역시 부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중앙당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노동당에서도 소동이 일어났는데 스코틀랜드 노동당의 대표인 짐 머피(Jim Murphy)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러나 그는 당 안팎에서 빗발치는 사퇴 요구를 일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2016년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선거에도 출마해 설욕할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자 당연히 논란이 계속되었고 스코틀랜드 노동당 지도부는 짐 머피를 계속 신임할 수 있는지 지도부 멤버들끼리 표결을 했는데 근소하게 신임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머피는 끊이지 않는 사퇴 압력에 굴복, 지도부의 신임 결과와 상관 없이 한 달 내에 사퇴할 것이며 2016년 자치의회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게 되었다. 참고로 머피가 스코틀랜드 노동당 대표가 된 건 2014년 12월 13일이었으니 반 년 정도만 대표직을 역임했다가 엄청난 굴욕을 당하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하필 왜 SNP가 급상승 중일 때 대표가 돼서 이 고생인가

3.9. 제러미 코빈 대표 시절

총선 대패 이후 다시 제3의 길로 돌아가야 집권할 수 있다고 믿는 계파(블레어파)와 확실한 좌파 노선을 추구해야 등 돌린 유권자들이 돌아온다고 믿는 계파가 중앙당과 스코틀랜드 지역당의 차기 당권을 놓고 겨루게 되었다. 중앙당의 경우 차기 대표 · 부대표 경선 날짜가 9월 12일로 확정됐다.

2015년 9월 12일 경선에서 좌파계열인 제러미 코빈이 승리하였다. 이 경선 결과는 어떻게 보면 충격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것이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코빈의 경선 승리확률은 1 대 100이라고 예측한 도박 사이트들도 있었기 때문.[38] 제러미 코빈은 데이비드 캐머런의 긴축 재정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정치인[39]으로 노동당의 노선보다 좌파성향을 많이 띄는 사람이다. 민영화 되었던 영국 철도 시스템과 에너지 회사들은 다시 국유화하고 대학 등록금을 폐지하는것을 공약으로 걸었다. 또한 양적 완화를 통해 영국의 노후화된 인프라를 다시 건설하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영국판 버니 샌더스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블레어를 위시한 노동당의 90년대부터 시작한 '중도화'와 정반대의 노선을 걷게 될것으로 예상된다.

이 결과를 두고 블레어는 정치적 재앙이라고 평가하면서 마거릿 대처에게 밀리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던 노동당의 흑역사인 80년대로 돌아가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오히려 비판을 받았다. 코빈의 정책은 80년대에 실패한 것이라는 드립은 젊은 유권자층에게 특히 악영향을 끼쳤다. 자신들의 불만점을 정확히 집어주는 코빈에게 열광하는 이들에게 있어 블레어의 경고는 그냥 꼰대질 취급만 받았고, 더 심할 경우에는 블레어가 반대하는 정책이니 좋은 것이다라는 반응까지 튀어나왔다. 젊은 층의 대부분은 80년대 상황을 모르기도 하고 말이다.

코빈의 외교정책 또한 논란이 되었다. 그는 영국이 나토에서 탈퇴하고 이라크 전쟁 때문에 토니 블레어를 전쟁 범죄 재판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러시아의 주장과 비슷하게 서방과 나토의 공격적인 외교정책이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를 불러왔다고 믿고 있다. 중동문제에서도 이스라엘보다는 팔레스타인편을 더 들어주는 편이며 2009년에는 영국 의회에 자신이 초대한 헤즈볼라 대표단을 친구라고 지칭했다.

이렇게 노동당의 노선에 비해 많이 좌파적인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당선된 이유는 젊은층의 열렬한 지지도 있지만 무엇보다 보수당의 중도화에 따른 노동당의 정체성 혼란에 있다. 캐머런을 위시한 보수당 정부는 동성결혼에 찬성하고 지구 온난화를 인정하며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을 갖고 있을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고 국가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금 감면을 반대한다. 이렇게 되면서 중도화된 노동당과 정치적 노선에서 거의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책 차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에드 밀리밴드가 패배한 이유는 그냥 밀리밴드가 이상하게 생겨서[40] (...)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코빈에 대항하는 블레어주의자 캠프의 선거전략이 정말 끔찍하게 지리멸렬했던 것도 한 몫 했다. 반 블레어주의자 캠프는 코빈 하나로 통일했는데, 블레어주의자들은 앤디 버넘, 이베트 쿠퍼, 리즈 켄덜 셋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그나마 선거전략이라고 채택한 것들이 코빈을 이길 사람은 나 뿐+다른 사람에게 표 던져봤자 결선투표에서 사표 됨 뿐이고, 실제 정책 관련은 사실상 전무. 이러니 뭐가 될 리가 없다(...)[41] 결국 투표 결과 60%를 득표한 코빈에 비해 버넘은 19%, 쿠퍼는 17%, 켄덜은 4% 득표에 그쳤다. 블레어주의자들이 지리멸렬한 이 상황에서 노동당은 좌파적인 인물인 제러미 코빈을 당선시키면서 90년대 중도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코빈은 영국 여왕을 찬양하는 영국 국가의 제창을 거부할 정도로 군주제를 반대하는 극렬 공화주의자인데, 그가 과연 오랜 전통인 영국 여왕에 무릎을 꿇는 충성맹세를 할 것인가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코빈은 추밀원 위원 취임식에 정당 대표로는 이례적으로 불참하면서 여왕에 대한 충성맹세를 끝끝내 거부하였다. 이에 대해서 영국 내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으며, 특히 보수 계열에서는 여왕을 무시하는 것이냐면서 강력히 반발하였다.

2016년 지방선거런던 시장선거에서는 노동당 출신이자 최초의 무슬림 시장인 사디크 칸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에서는 보수당에게 제 2당의 지위를 내주고, 웨일즈 자치의회에서도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 보수당과는 무승부에 가까운 결과를 내었다. 사디크 칸은 선거운동 기간동안 강경 이미지를 가진 대표 코빈을 멀리하고 '제3의 길'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레미 코빈이 장기적으로 노동당을 이끌 수 있을지 시험에 올랐다.

3.9.1. 2017년 영국 총선

그러나 테레사 메이 총리의 하원해산권 발동으로 치러진 2017년 6.8 총선에서 반전의 실마리가 보일 듯 싶다. 하원 해산 전까지만 해도 전국 지지율에서 10% 이상의 차이가 나 보수당의 단독 과반수가 무난해보였지만, 보수당이 선거운동 시작과 동시에 치매 등 중증질환 환자를 가정에서 간병할 경우 보조금을 삭감하겠다는 정책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감세정책에 대한 메이 총리와 마이클 팰런 국방부 장관 간의 의견 불일치, 메이 총리의 TV 토론회 무단불참 등 보수당에 대한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 그 결과 5월 31일 유고브[42]사의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과반수에 미달하는 310석, 노동당이 28석 늘어난 257석, SNP가 4석 늘어난 50석이 나오며 산술적으로 SNP와 연대 시 정권교체가 가능한 것으로 나왔고, 6월 2일 Survation사의 여론조사에서는 전국 지지율 39%로, 보수당과의 격차를 1% 차까지 좁혔다.

그리고 제57회 영국 총선에서 총 262석, 득표율 40%를 기록하면서 득표율은 2001년 총선 이래 최대치, 의석수도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하는 수치를 보이면서 확실한 약진을 하게 되었다. 향후 테레사 메이 총리가 추진하던 하드 브렉시트는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소프트 브렉시트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당의 브렉시트 협상에서의 입김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3.9.2. 브렉시트 분쟁 정국

그리고 2018년 들어서서 브렉시트의 부작용과 브렉시트의 현실화가 다가오면서 브렉시트 재투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는 총선을 통한 심판이라는 것이 입장이다.# 그리고 조기 총선 실패시 제2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에 치러진 여론조사에서 당원 10명 중 7명은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65%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33%는 코빈 대표가 잘 못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다가 제러미 코빈이 테레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조건부로 받아들이자 당원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2월 17일 노동당 소속 폴 플린(Paul Flynn) 하원의원이 노환(老患)으로 의원 임기 중에 사망하였다. 이틀 뒤 2월 19일, 코빈 체제하에서 노동당의 좌경화, 브렉시트 반대에 소극적인 태도, 당내 반유대주의 확산[43] 등을 이유로 소속 하원의원 7명이 전격 탈당하여 무소속 그룹을 결성하였다. 노동당-사민당 분당의 반복처럼 보여서 주목을 받고 있다. 19일 노동당에서 한 명이 더 탈당해 무소속 그룹에 합류했고, 20일 이번엔 보수당에서 3명이 탈당해 무소속 그룹에 합류했다.

같은 날 이 와중에 노동당에서 소동이 더 있었다. 닐 키녹 대표 시기 트로츠키주의 무장 정파 활동으로 당에서 축출됐던 데릭 해턴(Derek Hatton) 전 리버풀 시의회 의장(1983~1986 재임)이 수십 년 만에 복당을 허가 받았는데, 당내 중도파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에 부딪쳐 이틀만인 20일 당원권이 정지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 게다가 토니 블레어 시절 이라크 전쟁 참전에 거세게 반발하다가 당에서 축출되고 리스펙트당(Respect Party)[44]을 창당해 12년 간 이끌었던 조지 갤러웨이(George Galloway)가 노동당에 복당 신청을 내자, 블레어파 모임인 프로그레스(Progress)에서 그의 복당을 거세게 반대하며 #NoWayGalloway라는 운동을 개시하고 라임 보소 같은 이름의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내홍이 일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22일에는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드 주 더들리 북부(Dudley North) 지역구 하원의원인 이언 오스틴(Ian Austin·男)[45]이 반유대주의[46]를 비판하며 탈당했다. 다만 그는 무소속 그룹에 합류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BBC 속보 기사 BBC 뉴스나이트 발언 영상 원래 오스틴 의원은 브렉시트파였고 지역구도 탈퇴표가 과반 이상 나와서 무소속 그룹에 합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스카이뉴스 영상.

2019년 2월 25일 제러미 코빈이 브렉시트 재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입장에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기류가 많이 변하고 있다. 집단 탈당 사태를 비롯한 당내 친유럽파들의 압박에 결국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사

일단은 브렉시트 재투표를 전제로 한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지지할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총리의 최종안을 거부하였다.

2019년 5월 시점으로, 2년 전 총선 득표율에 비해 10% 가까이 빠진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으나 보수당이 워낙 처참하게 추락한 덕분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향후 총선에서 득표율의 큰 하락에도 불구하고 단독 집권 혹은 연정을 통한 집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9.3. 2019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예상보다 지지율이 지키지 못해 자유민주당에게 패하게 된다. 사실상 친EU 지지층들이 자유민주당으로 쏠렸던 것이 가장 컸다.

보리스 존슨 총리 취임 이후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겸 SNP 대표는 집권 보수당 정부를 몰아내기 위해 노동당과 협약(pact)을 맺을 수도 있다고 밝혔고, 노동당 내 일부는 분리독립 제2 주민투표 허용 여부와 관련해 반대는 하지 않았다.# 반(反) 존슨 연대를 구상하고 있다.#

게다가 브렉시트를 두고 당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

3.9.4. 2019년 영국 총선 대패

존 버코 의장의 사임으로 열린 선거에서 새 하원의장으로 노동당의 린지 호일 경이 선출됐다.# 노동당 출신 하원의장이 나온 건 이전 마이클 마틴 이후 10년만.

최근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 지역에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코빈 대표가 1년 넘게 이어지는 당내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브렉시트 관련으로도 애매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

한편 총선을 앞두고 국민보건서비스(NHS)에 약 39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걸었으며, 기간 산업 국유화 등이 담긴 공약을 11월 21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2017년 총선 당시의 매니페스토와 비슷하다.

본격적인 선거 유세가 진행되며 코빈 대표의 장기가 발휘되어 2017년 총선 당시와 비슷하게 지지율이 점차 올라 30%를 회복했다.# 하지만 보수당 지지층 역시 결집하여 선거 이전에 40% 지지율을 돌파해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번과 달리 비극적인 결과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구조사 결과 보수당은 368석, 노동당은 191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결과 정말로 비극적인 성적을 받았다. 출구조사 결과 191석이 예상되었는데, 이는 154석을 얻었던 1935년 이래 최악의 성적이다. 전통적 지지 지역인 북부 잉글랜드 지역에서 대거 의석을 잃었으며 전국 득표율 또한 8% 가량 감소했다. 코빈 대표는 “미래의 어떤 선거에서도 노동당을 이끌지 않겠다”#며 사퇴를 선언하였다.

파일:2017 영국 총선.png

위 사진은 2017년에 진행된 제57회 영국 총선 결과이다. 이때는 잉글랜드내에 있는 도시들의 상당 수 의석을 확보한 것이 보인다. 하지만...

파일:2019 영국 총선.png

이번 총선에서는 위 사진과는 다르게 북동 잉글랜드에서 상당수 의석을 잃었으며, 그 밖에도 많은 도시들의 자잘한 의석들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 애초에 노동당이 패한 이유 중 하나가 이미 보리스 존슨 총리가 취임한 이후부터 두 당의 지지율 차이가 꽤 났었다. 보수당이 지지율을 30% 안밖으로 얻어내면서 선전을 한것. 반면 노동당은 20%대 중반 안밖으로 지지율이 부진했다.

개표 결과 202석을 얻어 출구조사 보다는 나은 결과를 받았지만 여전히 1935년 이래 최악의 성적이다. 가디언 지는 이번 노동당의 실패 원인을 다섯 가지로 꼽았다.

첫째, 무상복지 공약이 지나치게 급진적이었다. 둘째, 기존 노동당 텃밭인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경계에 위치해 탄광산업 및 제조업이 발달했던 레드 월(Red Wall)에서 대거 표를 빼앗겼다. 셋째, 브렉시트에 관한 구체적 전략이 없었다. 넷째, 코빈 개인의 비호감 이미지가 악영향을 끼쳤다. 다섯째, 선거 전략에 실수가 있었다. 요약기사

선거패배의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유민주당, 녹색당, 스코틀랜드 국민당, 웨일스당 등의 친유럽주의-범좌파 정당들과의 선거연합을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코빈 대표를 비롯한 전통적 노동당을 대표하는 강경좌파 그룹은 유럽회의주의 성향이 상당했고 이에 다른 친유럽주의 정당들과의 연합을 무시했다. 결과적으로는 범우파(보수당, 브렉시트당, 민주연합당)의 득표율((약 47%)보다 범좌파(노동당, 자유민주당, 녹색당들, 스코틀랜드 국민당, 웨일스당, 신페인)의 득표율(약 53%)이 더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소선거구제의 특성상 보수당이 압승했다.

3.9.5. 2020년 대표 선거

대표 선거 입후보 자격은 다음의 두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 22인의 하원 의원 혹은 유럽 의회 의원의 지명
  • 33개 이상의 노동당 지역당의 지명 혹은 최소 2개 이상의 노조가 포함된 3개 가맹단체 회원의 5% 이상의 지지를 확보

그림자 내각 외무장관인 에밀리 손베리 의원이 첫번째로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그림자 재무 장관[47]인 클라이브 루이스 의원이 선언했다.# 한편, 대표 당선이 유력한 키어 스타머 경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출마 선언했는데 아직까지는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

2019년 12월 30일. 코빈의 최측근 그룹이 지지하는 예비내각 기업부 장관인 레베카 롱-베일리 의원이 대표직에 사실상의 출사표를 던졌다.#

여론조사에서 예비내각 브렉시트부 장관인 키어 스타머 의원이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닐 코일 의원은 이슬링턴 출신의 백인[48]으로는 노동당 심장부를 탈환할 수 없다며 북부 버밍엄 출신 3선 의원인 제스 필립스 의원을 지지했다. #

2020년 1월 13일 후보 등록 마감 결과 키어 스타머, 레베카 롱 베일리, 리사 낸디, 제스 필립스, 에밀리 손베리 등 5명의 하원의원이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클라이브 루이스 의원은 하원의원 22인의 지명을 받지 못해 출마를 포기했다.

21일, 제스 필립스 의원이 사퇴했다.[49] 첫번째 입후보 조건은 23인 하원 의원의 지명으로 충족시켰지만, 단 한 곳의 가맹단체의 지지도 확보하지 못해서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2월 10일, 도박사 선호도 조사 기준으로 89%가 키어 스타머 의원의 당선을 점쳤다.[50]

15일, 에밀리 손베리 의원이 탈락했다.[51] 첫번째 조건은 23인 하원 의원의 지명으로 충족시켰지만, 33개 지역당 중 31개 지역당의 지명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4월 4일, 결국 스타머 의원이 전체 유효표의 56.2%인 27만5천780표를 얻어 27.6%(13만5천218표)에 그친 롱 베일리 의원, 16.2%(7만9천597표)를 획득한 낸디 의원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후임 대표 선출 직후 코빈 대표가 사임하고 스타머가 대표 직을 승계했다.

부대표 선거에는 안젤라 레이너, 로제나 앨린-칸, 리차드 버건, 던 버틀러, 이안 머리 등 5인이 입후보에 성공했다.

1월 13일-15일 진행된 YouGov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림자 내각 교육부 장관인 안젤라 레이너의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52] 결국 레이너가 당선되었다.

3.10. 키어 스타머 대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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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키어 스타머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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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명단
총리 및 부총리
<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총리 <colbgcolor=#ffffff,#1f2024> 키어 스타머
부총리 겸 주택부 장관 안젤라 레이너
총리 외 중대국무공직
재무부 장관 레이첼 리브스
외무영연방개발부 장관 데이비드 래미
내무부 장관 이벳 쿠퍼
각내장관
랭커스터 공국상 팻 맥패든
국방부 장관 존 힐리
법무부 장관 샤바나 마흐무드
보건사회부 장관 웨스 스트리팅
교육부 장관 브리짓 필립스
자원안보탄소중립부 장관 에드 밀리밴드
노동부 장관 리즈 켄달
상무부 장관 조나단 레이놀즈
과학기술부 장관 피터 카일
운수부 장관 루이스 헤이그
농림부 장관 스티브 리드
문화체육부 장관 리사 낸디
북아일랜드부 장관 힐러리 벤
스코틀랜드부 장관 이안 머리
웨일스부 장관 조 스티븐스
각외장관 (비내각구성원)
서민원 여당 대표추밀원 의장 루시 파월
서민원 여당 원내총무 앨런 캠벨
귀족원 여당 대표국새상서 안젤라 스미스
재무부 정무수석차관 대런 존스
잉글랜드 웨일스 법무관장 리차드 허머
과학,연구,혁신 부장관 패트릭 밸런스
형무,가석방,보호관찰 담당 부장관 제임스 팀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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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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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2대*
키어 하디 아서 헨더슨 조지 반스 램지 맥도널드 아서 헨더슨
<rowcolor=#ffffff> 제5대 제6대 제4대* 제2대** 제7대
윌리엄 애덤슨 존 클라인즈 램지 맥도널드 아서 헨더슨 조지 랜스버리
<rowcolor=#ffffff> 제8대 임시 제9대 임시 제10대
클레멘트 애틀리 허버트 모리슨 휴 게이츠컬 조지 브라운 해럴드 윌슨
<rowcolor=#ffffff>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대행
제임스 캘러헌 마이클 풋 닐 키녹 존 스미스 마거릿 베케트
<rowcolor=#ffffff> 제15대 제16대 대행 제17대 대행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해리엇 하먼 에드 밀리밴드 해리엇 하먼
<rowcolor=#ffffff> 제18대 제19대
제러미 코빈 키어 스타머
(스타머 체제)
*표시는 대수를 건너뛰어 중임한 횟수를 의미한다.
보수당 당수 · 자유민주당 당수 · 스코틀랜드 국민당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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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대 선거 결과

  • 굵은 글씨는 총리 역임자
연도 대표 의석수 순위 득표율 득표율 증감 비고 집권 여부
1900 키어 하디 2석/670석 5위 1.8% +1.8 창당 비집권
1906 29석/670석 4위 5.7% +3.9 '노동당' 당명 이래 첫 선거 비집권
1910.01 아서 헨더슨[53] 40석/670석 4위 7.6% +1.9 비집권
1910.12 니콜 반스 42석/670석 4위 7.1% -0.5 비집권
1918 윌리엄 아담스 57석/707석 4위 21.5% +14.4 원내 제2당 진입 비집권
1922 로버트 클린스 142석/615석 2위 29.7% +8.2 비집권
1923 램지 맥도널드 191석/625석 2위 30.7% +1.0 첫 집권 맥도널드 내각 소수 여당
1924 151석/615석 2위 33.3% +2.6 비집권
1929 287석/615석 1위 37.1% +3.8 맥도널드 내각 소수 여당
1931 아서 헨더슨 52석/615석 2위 30.8% -7.7 분당[54]대공황에 의한 실각 비집권
1935 클레멘트 애틀리 154석/615석 2위 38.0% +7.4 비집권
1945 393석/640석 1위 49.7% +11.7 역대 최대 득표 애틀리 내각 다수 여당
1950 315석/625석 1위 46.1% -3.6
1951 295석/625석 1위 48.8% +2.7 역대 2번째 최대 득표[55] 비집권
1955 277석/630석 2위 46.4% -2.4 비집권
1959 휴 게이츠컬 258석/630석 2위 43.8% -2.6 비집권
1964 해럴드 윌슨 317석/630석 1위 43.8% 0.0 윌슨 내각 다수 여당
1966 364석/630석 1위 48.0% +4.0 역대 3번째 최대 득표
1970 288석/630석 2위 43.1% -4.9 비집권
1974.02 301석/635석 1위 37.2% -5.9 윌슨 내각 소수 여당
1974.10 319석/635석 1위 39.2% +2.0 득표 1위 회복 윌슨 내각 다수 여당
1979 제임스 캘러헌 269석/635석 2위 36.9% -2.3 실각 비집권
1983 마이클 풋 209석/650석 2위 27.6% -9.3 비집권
1987 닐 키녹 229석/650석 2위 30.8% +3.2 비집권
1992 271석/651석 2위 34.4% +3.6 비집권
1997 토니 블레어 418석/659석 1위 43.2% +9.8 역대 최대의석 블레어 내각 다수 여당
2001 413석/659석 1위 40.7% -2.5
2005 356석/646석 1위 35.3% -5.4
2010 고든 브라운 258석/650석 2위 29.1% -6.2 실각 비집권
2015 에드 밀리밴드 232석/650석 2위 30.4% +1.4 비집권
2017 제레미 코빈 262석/650석 2위 40.0% +9.5 비집권
2019 202석/650석 2위 32.1% -7.9 전후 최소 의석[56] 비집권
2024 키어 스타머 411석/650석 1위 33.8% +1.7 스타머 내각 다수 여당

6. 관련 정당·조직

1990년대 말에 스코틀랜드·웨일스 자치가 시작되면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내 지역 조직을 통솔하는 강력한 지부를 두게 되었다. 명칭도 스코틀랜드 노동당, 웨일스 노동당이라고 하며 자체적인 대표를 뽑고 지도부를 갖추고 있다. 이 점은 보수당·자민당도 마찬가지이다.[57]

노동당과 연계된 외부 조직으로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가 유명하다. 고대 로마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한니발을 상대로 지구전을 펼쳐 승리한 것처럼 사회주의를 유혈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방법이 아닌 점진적인 방법(사회민주주의)으로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Fabian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다만 페이비언 협회는 힘이 많이 약화된 상태고, 현재 노동당의 가장 핵심 외부조직은 제레미 코빈 계열의 모멘텀(Momentum)이다. 코빈의 대표 출마를 계기로 결집한 젊은 풀뿌리 좌파들과 아직 잔존해있던 강경 좌파 조직등이 광범위하게 하나로 뭉치면서 단일화된 조직. 코빈의 대표 당선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노동당 당원의 상당수가 모멘텀 계열 조직들을 통해 넘어왔다.[58]

과거에 노동당의 우파가 탈당하여 사회민주당을 조직했다가 결국 현재의 자민당에 합류하였다. 해당 항목 참고.

본래 영국 노동당은 그레이트브리튼, 즉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만 커버했다. 창당 당시 아일랜드 섬 전체가 영국의 일부였는데, 여기는 아일랜드 노동당의 관할 지역으로 쳤기 때문. 아일랜드가 분할돼 북아일랜드만 영국에 남은 이후에도 이때의 방침이 오랫 동안 남아서 2000년대까지 북아일랜드 사람들의 입당을 막았다. 어차피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 주요 정당들이 활동을 안 하거나 해도 미미한 상황인 데다가, 영국 노동당은 1990년대 초까지 북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벗어나 현재의 독립국 아일랜드와 통일 아일랜드를 이루는 걸 지지했었다.[59] 영국 노동당 입장에서는 북아일랜드 현안은 현지 주요 정당 중 하나인 사회민주노동당(Social Democratic and Labour Party, SDLP)[60]과 연계해 처리하면 된다고 봤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의 연합주의(북아일랜드가 영국에 남는 걸 지지) 성향의 진보주의자들이 영국 노동당에 입당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쭉 있어왔고, 결국 노동당은 법적 분쟁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2000년대에 북아일랜드인들의 입당을 허용했다. 하지만 입당은 허용했으나 아직도 북아일랜드 선거에 후보를 공천하지도 않고 있고 선관위에도 북아일랜드를 활동 지역으로 등록해놓고 있지 않다.[61] 입당은 받되 방치 중 당연히 현지 노동당원들이 중앙당에 지속적으로 북아일랜드 내 선거에 공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현지 노동당은 스스로를 통칭 Labour Party in Northern Ireland로 적고 있는데, 선관위에 Labour Party of Northern Ireland라는 별도의 군소 정당이 등록돼 있기 때문에 회피한 것. 그러나 Labour Party in Northern Ireland는 선관위에 정식으로 당 조직이 등록돼 있진 않다. 어차피 현재로서는 노동당의 중앙당에서 직접 북아일랜드 내 선거에 후보를 낼 의사가 없기 때문. 북아일랜드의 노동당원 8명이 2016년 북아일랜드 자치의회 선거에서 북아일랜드 노동대표위원회(Northern Ireland Labour Representation Committee)[62] 명의로 출마하였으나 노동당에서는 끝내 이들을 노동당 후보로 공천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시원하게 낙선

한편 노동당의 전통적인 자매 정당으로 1917년에 창당한 협동당(Co-operative Party)이라는 정당이 있는데, 협동조합주의에 초점을 맞춘 정당이다. 협동당의 당원들 중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은 노동당에도 동시 입당하여 출마한다. 이게 가능한 것은 영국에서는 복수 당적을 보유하는 것이 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동당의 당규에서 자매정당인 영국 노동당이나 북아일랜드의 사회민주노동당(SDLP)에만 입당할 수 있게 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사람이 선거에 출마했을 경우 대개 투표 용지에 소속 정당을 "Labour Co-operative Party"로 표기한다.[63] 2015년 총선의 경우 노동당 당선자 232명 중 21명이 협동당 당원이기도 하다.# 현재 노동당, 사회민주노동당, 협동당끼리는 서로 복수 당적 보유를 허용하고 있다.

노동당은 유럽 정당인 유럽사회당(Party of European Socialists, PES)의 일원이며, 유럽의회에서는 PES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섭단체인 사회민주진보동맹(Progressive Alliance of Socialists and Democrats, S&D)에 소속돼 있다. 또한 2013년에 창설된 국제 조직인 진보동맹(Progressive Alliance)의 정회원이다.[64] 2013년까지는 사민주의 성향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의 정회원이었으나 현재는 옵저버로 변경됐다. 애초에 진보동맹 자체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대한 회원 정당들의 반발[65] 끝에 별도로 창설된 조직이라 영국 노동당도 이에 발맞춘 것.

역사적으로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자유민주당(또는 그 전신인 자유당)과 노동당(또는 창당 이전의 다양한 노동 운동 계열)은 수시로 연합을 하거나 연합이 제안되기도 했었는데 이걸 Lib-Lab pact라고 부른다.

노동당이 영국의 양대 정당이 된 이래 전통의 맞수는 단연 보수당이다. 노동당이나 다른 진보, 중도 정당에서 보수당을 비난하는 전통의 멸칭이 Nasty Tories[66]이다. 그런데 노동당이 보수당과 다를 바 없다며 Red Tories(색깔만 노동당의 상징인 빨간색으로 칠한 보수당이라는 뜻)[67]라는 멸칭이 쓰이기도 하는데, 노동당 내외의 좌파 블록이 노동당 내 중도파[68]를 공격할 때 사용하거나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노동당을 싸잡아 비난할 때 애용(...)한다. 반면 노동당에서는 SNP가 사실상 보수당과 적대적 공생을 한다며 Tartan Tories[69]라고 맞받아치기도 하는데 결국 이래저래 보수당을 멸칭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이러더니 결국 스코틀랜드 노동당은 SNP와 보수당에 밀려 3등으로 추락했다.

7. 여담

  • 노동당의 사실상의 당가가 적기가다. 놀랄 일이 아닌게 적기가 자체가 1889년 런던 항만 파업이 동기부여가 되어 아일랜드 작가 짐 코넬(Jim Connell)이 작사한 노래이기 때문. [70] 적기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응원곡이기도 하다.[71]
  • 2014년부터 노동당 내 반유대주의가 끊임없이 논란 중이다.노동당 내 반유대주의 정리 문서, 법률 문서 제러미 코빈과 그의 측근인 레베카 롱베일리가 핵심 인물이며 둘은 키어 스타머 대표로부터 반유대주의 관련한 경고를 받았던 바 있다. 다만 일부 진보적인 성향의 유대인들은 제러미 코빈이 이스라엘을 비판한 것이지 반유대주의를 선동한것은 아니라며 코빈을 옹호하기도 한다.
  • 보수당에 비하면 기독교 색체가 적고 무종교인들이 많은편이며 불교, 이슬람교등 신자당원들도 많은 편이다.
  • 미국의 연예계 인사들, 특히 할리우드 관련자들이 대부분 민주당과 진보주의를 지지하듯이 영국의 대다수의 연예계 종사자들은 노동당을 지지한다. 특히나 영국은 계급투표가 워낙 강한 나라인데, 영국 음악가의 상당수가 노동 계급 출신이기 때문이다.[72]
이 당을 지지하는 연예계 인사가 매우 많은 만큼, 성향도 천차만별이다. 주로 제러미 코빈에 관해서 의견이 다르다.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였던 로저 워터스데이비드 길모어[73], 켄 로치, 엘비스 코스텔로, 피터 가브리엘[74], 데이먼 알반, 마틴 프리먼, 두아 리파제러미 코빈을 지지한다고 밝힌 좌파 성향이다.
반면 노엘 갤러거, 패트릭 스튜어트, 조앤 롤링, 오지 오스본, 배리 깁 등은 제러미 코빈을 비판하거나 토니 블레어를 지지한 적이 있는 리버럴 인사들이다. 이 외에도 톰 요크[75], 브라이언 메이[76], 콜린 퍼스, 엠마 톰슨, 리처드 애튼버러 등 수많은 연예계 인사들이 노동당을 지지한다.[77]
특히나 음악계에서 이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져[78] 전 멤버가 노동계급 출신인 비틀즈[79], 블랙 사바스는 공식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인적도 있고, 지식인 계층의 자녀들로 구성된 밴드인 핑크 플로이드도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며 노동당을 지지했다.
이에 반해 보수당을 지지하는 연예계 인사들은 손에 꼽는다. 크리스토퍼 리, 마이클 케인[80], 앤드루 로이드 웨버, 믹 재거, 필 콜린스, 에릭 클랩튼 정도가 유명하다.[81]
축구계 역시 대체로 노동당에 우호적이다. 대표적으로 알렉스 퍼거슨, 라이언 긱스, 데이비드 베컴 부부가 그렇다. 이는 축구 선수들이 서민층에서 배출되는 비율이 높고, 축구 자체가 상대적으로 상류층에서는 인기가 적어서 그렇다. 반대로 럭비, 크리켓, 경마승마, 조정 선수들은 본인 종목의 지지층들인 미들 잉글랜드와 비슷하게 보수당을 지지한다.
  • 2003년까지 해당 정당 소속이었던 정치인 조지 갤러웨이가 "걸어다니는 폭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이후 2003년 내란 선동 혐의로 출당당했는데, 자세한 건 문서 참조.

8.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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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로고는 1983년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며, 복지 정책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까지는 횃불, 삽, 깃털펜이 교차한 로고를 사용했다.(옛 로고)[2] 1900년 독립노동당, 페이비언협회, 사회민주연맹 등 노동조합 중심의 조직들이 연합하여 결성되었고 1906년 총선 이후 노동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3] 당 내에 친유럽주의 성향의 연성좌파(중도 ~ 중도좌파)와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강성좌파(좌익) 세력이 공존하지만 중도좌파인 키어 스타머가 당권을 잡은 현재로서는 친유럽주의에 가깝다.[4] 군주제 폐지를 의미한다.[5]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언급하는 인사들이 많기에 강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재 정책은 다른 나라들의 중도좌파 정당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영국이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덜할 뿐이다.[6] 블레어주의자 등 중도파도 있으나 현재는 키어 스타머 등 중도좌파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코빈주의를 비롯한 강성좌파가 득세해 노동당 성향 자체가 상당히 왼쪽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반유대주의 의혹이 제기되고, 결정적으로 제러미 코빈이 대표직을 맡았던 제58회 영국 총선이 노동당의 참패로 마무리되며 이들이 대거 몰락하거나 당에서 밀려난 후 다시 중도좌파가 자리잡았다.[7] 원래 영국의 노동조합 자체가 19세기부터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적 지향보다는 조합주의적인 노동자의 권익 추구를 목표로 삼았고, 성립 당시에 다른 한 축을 담당한 것은 온건한 페이비언주의자들이었다.[8] 공산주의자들에게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받았던 바로 그 사상이다.[9] 맨체스터, 리버풀, 셰필드[10] 물론 에드 밀리밴드동커스터 노스는 농촌 지역도 포함하고 있다.[11] 각 여론조사 기관들의 최종 예측을 보자면, 유고브(YouGov)는 59%, 사반타 콤레스(Savanta ComRes)는 60%, 오피니엄(Opinium)은 63%로 예측했다. 오피니엄은 66%로 예측하기도 했다.[12] Batley and Spen[13] 반론으로는 잉글랜드 북부 내 보수당 지지자들의 사회문화적인 특성 역시 중산층 위주인지라 잉글랜드 남부 지역의 미들 잉글랜드와 같다.[14] 대표적인 경우가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지역구였던, 사우스웨스트 노퍽인데, 노동당의 지지율도 올랐으나, 영국개혁당과 무소속 보수 후보의 범보수 득표율 분산으로 얻어냈다.[15] 광주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에 필적한다. 블랙풀, 브라이튼, 런던과 함께 노동당의 연례 전당대회가 가장 자주 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나마 보수당 당선자가 드물게나마 나오는 맨체스터와 달리 리버풀에서는 가끔 자민당과 나눠먹는 적은 있을지언정 보수당 당선자가 나온 적은 거의 없다.[16] 전원이 가난한 노동 계급 출신인 비틀즈의 멤버들과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형제가 상당히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졌던 이유가 이 것 때문이다.[17] 데이비드 캐머런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조지 오스본의 선거구가 맨체스터 교외 지역이다.[18] 노동자나 서민층이 모여살던 동네에서 재개발이 이뤄져 중산층들이 대거 유입된 경우.[19] 키어 스타머의 지역구[20] 빌리 엘리어트에서 노조 파업을 지지한 로열 발레학교의 면접관들이 자유주의 엘리트로 분류된다.[21] "짐작하시다시피 자가 소유자는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진보적인 성향이 있다. 영국에서는 관련 연구가 많은데, 보수당과 노동당의 투표 성향이 뚜렷이 갈라진다. 보수당이 자가 소유 촉진책을 편 것은 정치적으로 계산된 것이라는 뜻이다."[22] Black and Minority Ethnics, BME[23] 노동당 관련인사도 아닌 클리프가 쓴 노동당 관련 서적이 국내에 번역 출판된 계기에는 저자인 토니 클리프가 국내에서 노동자 연대의 무비판적 지지를 받고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출간된 도서출판 책갈피는 노동자 연대 유관 기업이다.[24]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된 노동자를 합하면 11명이다.[25] 물론 100% 이렇게 양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당의 갈등은 대체로 이런 경향을 띄었다.[26] 노동당 우파로서 사회주의를 반대했던 인물, 노동당 소속의 첫 장관이었다.[27] 이전까지는 노동조합, 단체 단위의 가입만 가능했다.[28] 그러나 노동당은 그나마 나았다. 자유당은 그 선거에서 118석을 털렸다….[29] 한국으로 치면 방통대, 사이버대학 등과 유사하다.[30] 2014년 사망 전까지 노동당 좌파의 좌장이었다. 특이하게도 귀족 출신인데, 1960년 아버지의 스탄스게이트 자작위를 물려받아 하원 의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Peerage Act of 1963을 통과시켜 그때까지는 불허되던 작위 포기를 합법화시켰고, 본인이 법안의 1호 수혜자가 되어 돌아온 경력이 있다. 제레미 코빈이 바로 이 사람의 직계 제자다. 정작 아들 힐러리 벤은 골수 블레어주의자라서 코빈이랑 앙숙인게 함정이지만[31] 국민의료서비스 개편을 반대한 광고가 성공하여 지지율을 10%p 가까이 끌어올렸으나, 계급 선동 아니냐는 비판 하나에 당 지도부가 선거 마지막 주에 이슈를 선거제도 개편으로 바꾼다(…)[32] 제레미 코빈은 4조의 원상 복구를 원하겠지만 노동당 내에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일단 강행하진 않고 있다.[33] 마르크스경제학자인 아버지를 두었고,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와 대표 선출 경선에서 맞붙어서 화제가 되었다. 데이비드는 동생에게 패배하고 몇 년 뒤 의원직을 사퇴했다. 아무래도 당을 이끄는 동생을 계속 보기가 껄끄러웠던 모양. 이후 선더랜드 AFC의 임원을 역임했지만, 파시스트 의혹을 받는 파올로 디카니오의 감독 임명에 반발해서 여기서도 사퇴한 뒤 미국에 본부가 위치한 국제구호위원회(IRC) 의장 겸 CEO로 취임해 버렸다. 정치적 성향은 동생인 에드보다 온건한 성향으로 여겨진다. 애초에 형제의 당내 계파가 다르다. 데이비드는 블레어파이고 에드는 브라운파로 분류된다. 흔히 블레어와 브라운을 노동당의 중도 노선을 대표하는 정치인들로 취급하지만 브라운이 블레어보다는 약간 더 좌측에 있다고 평가된다. 브라운 밑에서 전략가로 일했던 에드 밀리밴드는 그보다도 더 좌측으로 여겨지는 듯.[34] 그러나 당시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와 스코틀랜드 산하 각 지방의회 선거로 간다면 얘기가 또 달라지는데 스코틀랜드 의회선거에선 100% 소선구제가 아니고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투표제라 의석이 압도적이지는 않았고(노동당의 득표율이 40%대 초반 수준) 2007년부터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원내 1당을 차지하고있고 노동당은 2당 신세가 됐다.[35]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스코틀랜드 출신이지만 스코틀랜드 밖에서 살아온 기간이 길고 지역구도 잉글랜드 북부인 더럼의 세지필드(Sedgefield)였다. 반면 고든 브라운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평생 스코틀랜드에 지역구를 두고 정치를 했다.[36] 사실 보수당의 득표율 자체는 2010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 표가 노동당쪽으로 많이 안 돌아가면서 노동당은 시망...[37] 나머지 3석은 보수, 노동, 자민 3당이 나눠가졌다. 즉 노동당은 스코틀랜드에서 고작 1석(...)[38] 에드 밀리밴드 시절 개정된 투표 룰을 대부분이 아직도 이해를 못 하고 있던 탓도 컸다. 원래는 진성당원과 노동당 지지 노조원들만을 투표권을 얻어서 경선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밀리밴드 시절에 들어서면서 3파운드만 내면 "등록 지지자" 자격을 받고 대표 경선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리고 그 등록 지지자층에게 어필을 한 게 코빈 뿐이었다. 원내 노동당 의원들의 전통적인 원외세력 공포증이 여기서 치명적 오판을 낸 것.[39] 사실 노동당 의원 중에서 가장 당 중앙 방침에 많이 개겨본 의원 중 하나다.(...) 당론에 반대하는 투표를 500번 이상을 했다고 한다.[40] 에드 밀리밴드가 유독 사진발을 못 받는 얼굴이라 생긴것 부터가 총리감이 아니라는 악담을 수없이 듣고 다녔다. 궁금한 사람은 Ed miliband sandwich로 구글링해 보자[41] 그나마 앤디 버넘은 당선자가 누가 되건 하나로 모여야 한다면서 퇴로를 열기라도 했지, 이베트 쿠퍼와 리즈 켄덜은 둘 다 여성 후보를 뽑아야 좀 더 여성 친화적 정당을 만들 수 있다면서 정작 둘이서 더 크게 치고 박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블레어주의자들은 코빈이 승리할 시 어떠한 당내 직함도 맡지 않겠다는 강경 자세를 취했고, 결국 앤디 번햄 계열을 제외한 모두가 백벤치로 물러났다. 물론 백벤치에서 프론트로 돌아오기가 정말 힘들다는 건 제쳐두자[42]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유일하게 브렉시트를 적중시킨 여론조사 기관.[43] 코빈은 이스라엘에 비판적인데 이게 지나쳐 반유대주의를 조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공격 받고 있다.[44] 당명의 Respect역두문자어이자 재귀 약어로 respect(존중), equality(평등), socialism(사회주의), peace(평화), environmentalism(환경주의), community(공동체), trade unionism(노동조합주의)의 첫 글자를 짜맞춘 이름이다. 강경 좌파~극좌 정당이었다. 리스펙트당은 소수 정당이라 당원이 너무 적었고(2014년 당시 640명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정당법대로라면 시도당조차 창당하지 못할 인원이다) 마침 친정인 노동당이 코빈 체제에서 좌경화됨에 따라 2016년에 자진 해산하고 2019년 2월 들어 갤로웨이가 복당 신청을 한 것. 조지 갤로웨이는 리스펙트당을 이끌면서 반전 운동, 반제국주의 운동, 이스라엘 비판(그 결과 코빈을 능가하는 반유대주의자로 찍혔다), 무슬림 옹호(당원 중에 무슬림 좌파들이 많았고 갤로웨이의 전처들도 이민자 출신 무슬림들이 여럿 있었다), 스코틀랜드 독립 반대(갤로웨이 본인부터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브렉시트 찬성(그래서 브렉시트 문서에 들어가면 보이는 합성 사진에 갤로웨이의 모습이 포함됐다. 맨 오른쪽 중절모를 쓴 인물이 갤로웨이이다) 등의 활동을 했으며, 노동당 하원의원 시절의 지역구를 지키지 못하여 여러 선거를 떠돌았다. 갤로웨이는 그의 반대자들에게 반유대주의자, 성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45] 고든 브라운 내각에서 웨스트 미들랜드 담당 부장관(Minister for the West Midlands)과 지방정부 담당 정무차관(Parliamentary Under-Secretary of State for Communities and Local Government) 등을 역임한 바 있다.[46] 이 사람의 드라마틱한 가족사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이언 오스틴 본인도 입양아였고, 이언의 양아버지 프레드 오스틴도 입양아였다. 프레드는 체코계 유대인이었는데 나치 독일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 침공 당시 잉글랜드 출신 양부모한테 입양돼 영국으로 이주한 것. 이언 오스틴은 탈당하면서 노동당에 남아 있다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I don't think I could look at my dad in the eye if I stayed in the Labour Party)고 말했다.[47] 그림자 내각 재무서기관(Chief Secretary to the Treasury)의 하위직. 서기관과 달리 내각 구성원에 속하지 않는다. 재무부(HM Treasury)의 내각 구성원은 총리, 재무상(Chancellor of the Exchequer Second Lord of the Treasury), 재무서기관(Chief Secretary to the Treasury)으로 한정된다.[48] 제러미 코빈 대표, 에밀리 손버리 예비내각 제1장관, 키어 스타머 경 등 노동당 지도부가 모두 런던 이슬링턴 지역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백인 의원들이라 코빈 지도부 출신 인물들을 돌려서 언급한 것이다[49]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20/jan/21/speculation-mounts-that-jess-phillips-will-quit-labour-leadership-race[50] https://www.bbc.com/news/uk-politics-50781341[51] https://www.bbc.com/news/uk-politics-51505547[52] https://d25d2506sfb94s.cloudfront.net/cumulus_uploads/document/bpvaml3meh/TimesResults_200115_LabMembers_w2.pdf[53] 1934년 노벨상 수상자.[54] 맥도날드 세력이 '국가노동당'으로 분당하여 보수당의 거국내각에 참여했다.[55] 애틀리 정권이 의석을 늘리기 위해 승부수를 걸었는데, 소선거구제의 문제로 역대 최대 득표에도 불구하고 정작 보수당의 처칠에게 패하면서 실각했다. 원인은 국가노동당이 보수당과 합당하면서 보수당 후보들이 단일화 효과를 톡톡하게 본 것.[56] 이전 최소 의석 기록을 36년만에 경신했다.[57] 보수당의 경우 북아일랜드에도 마찬가지 조직을 공식적으로 두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노동당과 자민당은 북아일랜드에 당원들이 있고 그 현지 당원들이 자체적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활동을 하긴 하지만 현지에 자체적으로 후보를 내지도 않고 선관위에 등록돼 있지도 않다.[58] 다만 현재 모멘텀 계열들은 철천지 웬수가 된 블레어계 의원들을 쓸어낼 작정으로 경선 도입을 주창하고 있어서 의원들과 사이는 최악이다. 영국 노동당은 지역구 경선을 치르는 대신 사실상 형식적인 현임 의원 신임투표를 진행하고 거기에서 탈락할 경우에만 경선을 여는 방식이기 때문. 이 방식은 현임 의원들의 안정적 재선을 도와 경력있는 고참 의원들을 다수 배출할 수 있지만 지구당 레벨에서의 견제가 사라지면서 당원들과 의원들이 괴리되는 상황이 발생된다는 단점이 있는데, 중도파 의원들이 장기집권하지만 이미 지구당 레벨은 노동당 좌파가 모조리 장악한 지금이 딱 그렇다.[59]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그레이트브리튼에서는 내부 분규로 골치 아픈 북아일랜드에서 손 떼라는 여론이 더 높았기 때문에 노동당이 이런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 영국 주요 정당들은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해 확정적인 당론을 없애고 현지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지만 그중에서 보수당은 2017년 총선 후 다시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되돌아갔다. 과반 확보에 실패한 상황에서 북아일랜드의 친영국 정당인 민주통일당의 지지를 얻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60] 북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평화적 수단에 의한 아일랜드 통일을 지지하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이다.[61] 자민당도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북아일랜드인들의 입당을 받아들이긴 해도 북아일랜드에 공천하진 않으며, 공식적인 자매 정당인 북아일랜드 동맹당을 통해 북아일랜드 관련 정책을 처리한다. 자유민주당(영국) 문서 참고. 반면 보수당의 경우는 노동당이나 자민당과 상황이 다르다. 본래 얼스터 통일당(UUP)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관계가 틀어져, 1980년대 말부터 북아일랜드 현지에 당 조직이 들어서서 선거에 자기 당 후보를 공천하고 있다. 당선을 못 시켜서 문제지만... 보수당 문서 참고.[62] 노동당의 전신인 그 노동대표위원회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63] 영국 선관위에는 각 정당이 자기 당을 서술하는 문구(description)들을 등록해놨다가 선거 때 투표 용지에 당명 대신 그 문구를 쓰는 경우들이 있다. 이렇게 복수의 정당이 동일한 사람을 후보로 공천하는 경우 이 정당들이 공동으로 쓸 문구를 선관위에 등록한 뒤 이것을 투표 용지에 후보 이름 옆에 당명 대신 인쇄되게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출처: 영국 선관위 홈페이지의 노동당 등록 정보, 협동당 등록 정보.[64] 대한민국더불어민주당미국 민주당 등이 진보동맹의 정회원으로 가입돼 있다.[65] 예를 들어 독일 사회민주당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계속 반민주적인 정당들을 포함시키고 있다며 반발해 회비 납부를 끊었다.[66] 보수당의 옛 이름과 별명이 Tory Party이다.[67]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멸칭은 꽤 많다. 보수당도 영국독립당(UKIP)과 다를 바 없다며 블루킵(Blukip: 색깔만 보수당 상징인 파란색으로 칠한 영국독립당이라는 뜻)으로 매도당하기도 한다.[68] 당연히 이들의 보스 취급을 받는 사람은 토니 블레어이다. 토니 블레어 본인부터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애매하고 흐릿하다며 토니 블러(Tony Blur)라고 까이기도 하며, 사실상 보수당원이라고 공격당해 토리 블레어(Tory Blair)라고 까이기도 했고, 둘이 합쳐져 최종판인 토리 블러(Tory Blur)(...)라고 까이기도 한다.[69] 타탄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면직물이다.[70] 사실 한국어 번안곡도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이 부르던 것이다.[71] 여담이지만, 맨체스터 지역 자체가 노동당이 우세한 지역이고,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 중 다수가 노동당 지지자이기도 하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 역시 유명한 노동당계 인사.[72] 반대로 배우들 중에서는 상류층, 중산층이 상당히 많지만 이들의 지지기반이 노동 계급이기 때문에 이들조차 노동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엠마 톰슨, 콜린 퍼스, 리처드 애튼버러 모두 노동당 지지자들이며 이들은 중산층 이상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73] 로저 워터스에게 우파 몰이를 당한적도 있고, 대처주의자라고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길모어는 로저 워터스와는 달리 정치 성향을 음악에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앨범 Animals로 보수주의자들과 자본가들을 통렬히 비판했을정도로 철저한 정치적 음악가인 로저 워터스의 눈에는 길모어의 이런 행보가 아니꼽게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74] 상술한 세명은 제러미 코빈이 무명이던 시절때부터 이스라엘 관련하여 코빈과 뜻을 함께해왔다. 이 때문에 켄 로치는 노동당에서 출당당하였다.[75] 성향 자체는 OK Computer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진보적인 성향이지만, 라디오 헤드가 무명이던 시절 그들의 명곡 creep을 처음으로 알아주고 라디오 등지에서 틀어줬던 곳이 이스라엘이었기에 유독 이스라엘 관련 문제에서만큼은 로저 워터스, 엘비스 코스텔로 등과 달리 이스라엘에 친화적인 성향 때문에 강성 좌파들에게 비판받기도 한다.[76] 2010년까지는 보수당 지지자였으나 환경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노동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꿨다. 리버럴 인사로서는 드물게 코빈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의 취임을 축하하는 트윗을 남기기도 한 것으로 보아 딱히 한 사람의 정치 성향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77] 연예계는 아니지만 리처드 로저스건축가들도 노동당 지지자였다.[78] 영국 배우 중에서는 상류층 출신이 많은 반면 음악계에서는 노동자 계층 출신이 많은 것이 한몫 하는 듯하다.[79] 특히 해럴드 윌슨 전 총리는 비틀즈가 무명이었던 시절부터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비틀즈도 1964년 해럴드 윌슨과 공식적인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다.[80] 6.25 전쟁 전에는 다른 노동자 계급 출신인지라 노동당을 지지했으나 6.25 전쟁참전하고 나서 보수당 지지로 바꿨다.[81] 믹 재거는 지지 정당만 보수당이지 실제 성향은 진보라는 말도 많다. 코로나 19 방역을 처음부터 지지하며 TV까지 출연해 홍보했고,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는 노래를 만든 것이나 68혁명에도 참가한 것 등이 그 예시이다. 다만 브렉시트에 찬성했던 것처럼 보수적인 행보를 아예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반면 에릭 클랩튼은 록다운 반대, 백신 음모론 주장, 농촌 친화적 정책 선호, 노동당 비판, 사냥 제한 반대 등을 미루어 봤을때 확실한 우파~극우 성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