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3 20:23:20

양이전쟁

양이전쟁
[ruby(攘夷戦争, ruby=じょういせんそう)] | Joui War
기간 약 10년[1]
장소 에도
원인 천인의 에도 도처 포격, 네오 암스트롱 사이클론 제트 암스트롱 포의 포격으로 에도성 천수각 파괴
막부의 항복 및 매국 행위
불평등 조약 체결, 강제 개국됨에 따라 사무라이의 양이(壤夷) 사상 확산
{{{#!wiki style="margin: -16px -11px" 교전 세력
천인

막부
사무라이
주요 인물
천도중
오보로

도쿠가와 사다사다

별파괴자
사이고 토쿠모리
도로미즈 지로쵸
테라다 타츠고로

사카타 긴토키
카츠라 코타로
다카스기 신스케
사카모토 다츠마
병력
막부군
천인 부대
천조원 나락
수많은 양이(壤夷) 사상의
사무라이, 다이묘, 귀족, 지식인
결과
천인의 승리
천도중의 에도 지배
피해규모
- 막부의 사무라이 대숙청으로 사무라이 대거 사망 및 세력 약화
영향
생존 양이 사무라이의 양이지사 활동
양이지사 전담 무장경찰 진선조 설립
폐도령(廃刀令) 실시로 사무라이 몰락
}}}

1. 개요2. 상세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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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혼 세계관에서 과거에 사무라이 세력과 천인·막부 세력이 충돌했던 전쟁이다.

2. 상세

그 유명한 네오 암스트롱 사이클론 제트 암스트롱 포가 에도성 천수각을 날려버리자 막부는 도쿠가와 사다사다의 주도 하에 당장 항복해버렸고, 이에 반발한 사무라이들이 양이(壤夷)를 모토로 내걸고 천인들을 살해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작된 연도는 본편 기준으로 약 20년 전으로 양이즈가 참가한 때는 긴토키 가랑이에 털이 날락말락할 무렵이다.[2][3] 이 때는 각지의 사무라이들이 대규모로 봉기해 싸움을 벌였다. 긴토키의 말에 의하면 양이지사들도 꽤 세게 나온 모양. 사이고 토쿠모리가 하얀 훈도시만 입은 단신으로 천인들의 전함에 쳐들어가 다 부숴버리는 등 대활약했었고, 도로미즈 지로쵸테라다 타츠고로도 이 무렵에 전장을 아예 휩쓸고 다녔다고 한다.[4]

그 후 전쟁이 장기화 되자 반란 진압 협력이라는 명목으로 천인들의 내정 간섭이 점점 심화되었고 천도중은 사무라이들의 전의를 꺾기 위해 도쿠가와 사다사다의 막부를 이용해 세기의 대숙청, '칸세이 대옥사'[5]를 벌인다. 양이지사에게 협력한 다이묘, 귀족, 무사, 사상가를 모조리 숙청하여 구심점을 잃은 사무라이들이 산발적으로 게릴라전을 벌였는데, 이 때가 바로 긴토키를 비롯한 젊은 양이지사들이 활약했던 시기다. 요시다 쇼요도 이 때 불순한 사상가라는 이유로 나락에게 잡혀 투옥되었고, 그 제자였던 사카타 긴토키, 가츠라 고타로, 다카스기 신스케와 토사에서 올라온 사카모토 다츠마 등이 모여[6][7] 최후로 대항했던 것이 양이전쟁의 말로이다.

그 중에서도 백야차, 광란의 귀공자, 귀병대 총독, 목소리 큰 놈 카츠라하마의 용이 전쟁 후반부에 활약했는데, 이들은 소위 기적의 세대 최후의 무사, 양이지사 사천왕이라 불렸다고 한다.[8]

그러나 결국 사무라이들은 패배하여 사회적으로 멸시받게 되고 대부분의 양이 세력들은 일족이 말살될 정도의 대숙청을 당해[9] 소수의 잔존 세력들이 테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노부노부의 말에 의하면 양이지사들은 나라에 버림받은 자들이라 한다.

3. 기타

빔 피스톨도 만드는 천인들이 원시적인 무기 들고 갑옷입고 나와서 싸워서 뭔가 설정오류같다고 알려져 있지만,건담 30주년 기념 패러디이지만 189화에서 현대식 전투복을 입고 자동소총으로 보이는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 나온다. 당장 본편의 잡 천인들을 포함해서 신라족, 야토족, 다키니족은 화병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즉, 천인들이 약한 게 아니고 긴토키 일행이 너무 강한 것.

[1] 20여년 전에 전쟁이 시작되었고, 양이 사천왕이 활약했던 시기가 약 10년 전이라고 나온다. 더불어 이들의 참전 시기는 전쟁 후반이다.[2] 은혼답게 묘사가 이래서 그렇지 가랑이에 털이 날락말락할 무렵(...)은 많게 잡아봐야 겨우 십대 중반이다.[3] 현재 사천왕들의 나이는 20대 후반이기에 참전 당시 10대 후반이다.[4] 지로쵸 왈 "양이전쟁 초기의 우리 세대에는 너 정도 되는 녀석은 널려있었어."[5] 안세이의 대옥사가 모티브이다.[6] 스승을 구하기위해 참전한 셋과 다르게 사카모토는 주변의 권유로 참전했다.[7] 긴토키의 회상을 보아 긴토키, 카츠라, 타카스기 뿐만 아니라 서당의 다른 제자들도 참전한 듯하다. 다만 이들의 활약과 생사는 불명.[8] 카츠라와 타카스기의 모델이 된 카츠라 코고로타카스기 신사쿠는 스승 요시다 쇼인의 제자 사천왕으로 불리었는데, 여기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9] 키지마 마타코의 경우 아버지가 양이지사였기에 전란 이후 목숨을 잃었으며 어머니도 죄인의 아내라는 이유로 박해받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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