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에티오피아 본토의 유대인 공동체들(예멘계 유대인들과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1] 1949년부터 2022년까지 이스라엘 정부가 치밀하게 구상한 일련의 탈출 작전에 연속으로 참가하여 귀순이민(알리야)을 실행했다.한국인들의 관점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실행한 1949년의 중화민국 탈출과 1975년의 남베트남 탈출 및 1991년의 소말리아 탈출과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 탈출을 연상할 법한데 이런 사례들은 재외교민의 긴급피난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즉 본국의 영토에 도착하면 그것으로 작전이 종료된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 여비의 지급이 있었을 뿐이다.
반면 예멘계 유대인들과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탈출 작전은 이스라엘의 민방위체계와 사회복지정책을 거국적으로 총동원하는 대규모의 귀순이민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2] 그들의 행적은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 또는 동독 탈출 주민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고, 당연히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다양한 사회복지 혜택(아파트 제공, 보건의료, 산업기술훈련)을 누릴 수 있다.
2. 영국령 팔레스타인 시절
3. 마법의 양탄자 작전
4. 음지의 협력자
5. 형제 작전
6. 모세 작전
7. 여호수아 작전
8. 솔로몬 작전
솔로몬 작전 מבצע שלמה |
1991년 5월 24일 에티오피아에서 살고 있던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15,000여명+α을 피난시킨 탈출 작전.
1단계 탈출작전, 2단계 탈출작전, 3단계 탈출작전이 있었는데 2단계 탈출작전이 가장 유명하다. 1단계 작전은 멩기스투 정권과 거래하는 대신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내세워서 성사시켰다. 3단계 작전은 새로운 정부를 세운 멜레스 제나위와 담판하여 아디스아바바와 곤다르와 쿠아라 지방의 소위 '길 잃은 어린 양'[3]들을 싹쓸이로 모셔온 뒤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태워서 모조리 귀국시킨 것이다.[4]
8.1. 배경
1974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쿠데타 집권 이후,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은 내전과 잇따른 정책 실패로 혼란에 빠져 1991년 5월에는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티그라이 반군와 에리트레아 반군의 공격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1년 3월 7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정부는 에티오피아 내의 유대인들을 구출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이스라엘 외무부는 가장 먼저 에티오피아 내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소집하는 한편, 유대인들의 구출을 대가로 에티오피아 공산정권에 3500만 달러를 지불했다(해당 금액은 미국의 유대계 자선단체가 모금했으며 불과 3일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또 반군들과도 교섭해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밀약을 받아냈다.
8.2. 작전 개시
1991년 5월 24일 이스라엘 정예군 200여명을 태운 이스라엘 공군 소속의 보잉 707 6기와 C-130 18기가 아디스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들 병력은 대사관에서 공항까지 피난민들의 호위를 맡았다. 이후 36시간 동안 엘알 항공 소속 보잉 747과 이스라엘 공군 C-130 34기가 14,325명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의 벤 구리온 국제공항까지 실어 날랐다. 작전에 참가한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좌석들을 추가로 탈거했으며 비행기에 타려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기내에 탑승했기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 덕분에 48시간으로 예상됐던 작전 시간은 36시간까지 단축되었다.벤 구리온 국제공항에 착륙한 이스라엘 공군 소속의 C-130 | 벤 구리온 국제공항에 착륙한 이스라엘 공군 소속의 보잉 707 |
8.2.1.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탑승시킨 비행기
Guinness World Records | |||
Most passengers on an aircraft 가장 많은 승객이 탑승한 항공기 | |||
대상 | 기록 | 장소 | 등재 시일 |
엘알 보잉 747 | 1088명 | 에티오피아(아디스아바바) | 1991년 5월 24일 |
기네스 등재 기록 링크 |
1995년 10월 5일, 취리히 국제공항에서 찍힌 4X-AXD |
엘알 카고 소속의 보잉 747-258C(등록기호 4X-AXD)는 당초 760명의 사람들을 태울 예정이었다. 이미 보잉 747-200의 최대 탑승인원인 480명을 훨씬 초과한 상태였으나 대부분의 탑승객들은 영양실조로 저체중이었다. 이에 1086명의 승객들이 747기에 탑승했으며 이스라엘로 비행 도중 2명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총 1,088명이 747기에 탑승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들은 무사히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승객들을 태우는 4X-AXD |
8.3. 여담
1,088명을 실어 나른 진기록을 세웠던 4X-AXD는 2000년 남아공의 하이드로 에어로 팔려나가 ZS-OOS로 운항되다 2003년 11월 29일 나이지리아 라고스 공항에서 활주로를 이탈하며 파괴되었다.9. 베타 이스라엘들의 이스라엘 정착 이후
이스라엘에 도착한 직후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삶은 에티오피아에서보다는 물론 나았지만 순탄치 못했다. 가장 먼저 이들은 히브리어를 할 줄 몰랐으며 이주 초기에는 인종차별 문제로 고생하기도 하였다. 2006년에는 이들의 80%가 무직자라는 조사가 나온 적도 있었다. 다행히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개선되어 2016년 기준으로 남성은 20%, 여성은 26%까지 실업률이 낮아졌고, 이후 고위직이나 전문직종에도 많이 진출하면서 소득 수준이 많이 향상되어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중산층 지위까지 올라왔다고 한다.10. 기타
11. 같이 보기
[1] 이탈리아계 유대인 공동체도 있는데 평소에 언급을 생략할 정도로 인구가 매우 적다. 즉 에티오피아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은 3개의 각기 다른 유대인 공동체들에 관한 공관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2] 러시아계 유대인, 이라크계 유대인, 모로코계 유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재정착을 뒷받침하는 맞춤형 귀순이민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3] 실제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탈출에 깊이 관여한 이스라엘 외교관들의 회고록과 이스라엘 본토에서 출세한 흑인 유대인 지식인들의 자서전에는 구약성서의 글귀에 비유한 낱말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1990년대 이전의 이스라엘 정계도 구약성서의 글귀에 비유한 낱말들을 정책 선전 수단으로 자주 활용했다.[4] 아셰르 나임(1929~2016; 주에티오피아 이스라엘 대사 역임)의 회고록(잃어버린 부족 구하기)에 따르면, 그 전의 탈출 작전에서 이스라엘 외교관들이 깜빡 잊고 데려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대표가 아디스아바바까지 상경하여 대사관에 호소하였고, 이에 새로운 탈출작전을 전개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