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화 암살의 등장인물. 배우는 이정재.2. 행적
1887년생.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1] 대장.김구의 신임을 받고 있으며 1911년에는 손탁호텔에서 혼자 데라우치를 암살하려 했으나[2] 강인국에 의해 실패하고, 탈출 과정에서 총에 맞아 무명지를 잃는다. 종로경찰서로 잡혀가서 고문당하는 신세가 되고, 그곳에서 탈출한 후[3] 만주로 도망쳐 다시 독립운동에 합류한다. 이후 1933년에 안옥윤, 속사포, 황덕삼을 모집해 경성으로 보낸다. 주로 사용하는 화기는 학생 때부터 사용해온 마우저 C96 자동권총이다.
전화 좀 씁시다. 헌병대에 전할 말이 있어서.
하지만 진짜 정체는 일본 제국 경찰의 스파이며 내통자로, 본작의 메인 빌런이자 최종 보스이다.3. 어록
내 몸 속에 일본놈들의 총알이 여섯 개나 박혀있습니다.
1911년 경성에서 테라우치 총독 암살 때 총 맞은 자립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여긴 22년 상해 황포탄에서,
27년 하바로프스크에서
32년 이쯔고호 폭파 사건 때
그리고 이 심장 옆은 33년에.
내가 동지 셋을 팔았다고 하셨는데,
그 친구들 제가 직접 뽑았습니다.
그 젊은 청춘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그들을 보냈는지!
그건 죽음을 불사하는 항전의 걸음이었습니다,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1911년 경성에서 테라우치 총독 암살 때 총 맞은 자립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여긴 22년 상해 황포탄에서,
27년 하바로프스크에서
32년 이쯔고호 폭파 사건 때
그리고 이 심장 옆은 33년에.
내가 동지 셋을 팔았다고 하셨는데,
그 친구들 제가 직접 뽑았습니다.
그 젊은 청춘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그들을 보냈는지!
그건 죽음을 불사하는 항전의 걸음이었습니다,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안옥윤: 왜 동지를 팔았나?
염석진: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염석진: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4. 유사 인물
중공에서 배신자의 대명사로 통하는 군벌 염석산과[5][6] 밀정[7] 출신으로 나중에 백색테러집단인 백의사에 가담한 염동진의 이름을 섞은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가였지만 배신자이면서 전후 경찰이 되어 사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이름.악질 친일 밀정 이종형[8] 또한 모티브로 추정된다.
체코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다가 두려움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에 참가한 동지들의 이름을 게슈타포에 팔아먹고 출세했다가 전후에 사형당한 카렐 추르다하고도 행적이 비슷하다.
원래 독립운동가였다가 친일파로 대한민국을 배신한 이완용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아마도 독립운동가였다가 친일파로 변한 설정은 이완용이 모티브일거라 추정된다. 하지만 과거 씬에서 이완용이 한번 등장했었기 때문에 아닐수도 있다만, 이완용의 한 가지,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변한 것만 모티브 한 걸 수도 있다
[1] 현대 대한민국 경찰청에 해당된다. 임시정부 경무국은 임정 인사의 경호 및 청사의 경비뿐만 아니라 일본 스파이의 침투를 막고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기관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경무국의 경자가 경찰외에도 경계,경호,경비라는 뜻도 다 가능하므로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또한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도 현재 경찰청과 같은 업무를 맞은 동명의 경무국이라는 관청이 존재했다.[2] 폭탄을 준비해서 폭발시킨 후 총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사살하려 했지만 일본 육군의 총에 맞고, 설상가상 강인국이 데라우치를 데리고 도망간다.[3] 총에 맞은 두 상처를 손가락으로 지혈해가며 도망쳤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실상은...[4] 황덕삼, 추상옥, 안옥윤.[5]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중국공산당의 기준이고, 대만 입장에서는 공산당에 붙지 않고 국부천대까지 따라간 거의 유일한 군벌이다. 그렇지만 국공내전 이전에도 배신 경력이 꽤 화려해서 배신자라고 불려도 이상할 건 없다. 먼저 통수치는 놈이 살아남는 난세였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줄을 자주 갈아탄 편. 대표적인 예로 옌시산은 중일전쟁 기간에도 일본과 협상하고 공산당을 손보려고 한 적이 있다. 허나 이것도 옌시산 입장에서는 이유는 있었다. 옌시산도 처음에는 일본에 맞섰고 정규전으로는 상대가 안 되니까 게릴라전으로 전환하면서까지 싸웠는데 문제는 이때 국공합작으로 연합하고 있던 공산당은 하라는 항일은 안 하고 세력을 넓히려 옌시산을 비롯한 국민당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었다. 다만 이런 줄타기 행적과는 반대로 산시성의 군벌로서 산시성 통치는 꽤 잘했다고.[6] 물론 공산당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는 게, 따지고 보면 먼저 통수친 건 장제스의 국민당이 일으킨 4.12 상하이 쿠데타였고, 반장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중국은 완장만 국민당으로 갈아끼웠지, 여전히 반동적이고 여차하면 일제의 회유에도 호응할 수 있는 군벌이 즐비했다. 심지어 중일전쟁 도중에도.[7] 염동진은 중화민국 국민정부에서 남의사 일원으로 활동 중 1937년 일제 관동군에 체포되었다. 1940년 풀려났고, 이후 전향했다는 설이 파다했으나 본인은 끝까지 극구부인하였다. 김구와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였다는 점도 극중 염석진과 유사하다.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이후 2021년 6월 9일, 그가 밀정이었다는 유력한 증거가 발견되었지만 여전히 확실하진 않다. 자세한 내용은 염동진 항목 참조.[8] 해방 후 극우 언론 활동가로 신분을 세탁, 반민특위에 체포된 후 온갖 난동을 피워놓고는 고향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가 1954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