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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2e59><colcolor=#fff> 대한민국 초대 국정홍보처장 | |||
국민의 정부 제3대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 오홍근 吳弘根 | Oh Hong-keun | |||
출생 | 1942년 11월 24일 | ||
전라북도 김제군 (現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 |||
사망 | 2022년 3월 9일 (향년 79세) | ||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
재임기간 | 초대 국정홍보처장 (차관급) | ||
1999년 5월 24일 ~ 2001년 9월 11일 | |||
국민의 정부 제3대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 | |||
2001년 9월 11일 ~ 2002년 1월 29일 | |||
제10대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 |||
2002년 2월 20일 ~ 2003년 6월 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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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송명견 | ||
자녀 | 슬하 2남 | ||
경력 | TBC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중앙일보 판매담당 이사 중앙일보 논설위원 광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초대 국정홍보처장 (국민의 정부) 제3대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 (국민의 정부) 제10대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국민의 정부) 새천년민주당 홍보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 새천년민주당 기획조정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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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2. 생애
1942년 11월 24일, 전라북도 김제군(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전주풍남초등학교(35회), 전주북중학교(35회), 전주고등학교(38회),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61학번)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군 복무 과정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도쿄대학 사회정보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했다.1968년 TBC 보도국 기자(중앙매스컴 5기)로 입사했다. 1976년 ‘비무장지대 르포’로 한국방송대상 기자상, 1979년 ‘농촌특집’으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강제 통폐합되자 중앙일보로 이적해 사회부장, 부국장, 판매본부장 등을 거쳤다.[1]
1988년 중앙일보의 자매지 중앙경제신문의 사회부장을 지내면서 중앙일보의 월간지인 '월간중앙'에 '오홍근이 본 세상'이라는 칼럼을 연재하였는데 8월호에 투고한 칼럼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에 불만을 품은 육군정보사령부 요원들에게 구타당하고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1988년 서울외신기자클럽 언론자유상, 1989년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
1999년 3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처분을 받기 전 자진 사퇴한 홍준표 의원의 정치보복 주장을 비판한 칼럼이 사측에 의해 게재 거부되자 이에 항의해 사표를 냈다.
1999년 5월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홍보처장으로 임명되며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2]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김제시·완주군에 출마했으나 열린우리당 최규성 후보(당선), 무소속 이건식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3]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후 일선에서 물러났고 원광대학교 초빙교수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광운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이무영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공석이 된 전주시 완산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같이 무소속으로 나온 신건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사퇴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안철수 진심캠프 국정자문단에 참여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안철수계 몫 최고위원을 역임했고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때도 안철수 의원을 따라 탈당하고 국민의당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안철수계로 활동했다. 그러나 2018년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4]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안철수와 결별했고 이후 당적을 두지 않았다.
2022년 3월 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3. 가족
부인 송명견 여사(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와 슬하 2남[5]이 있다.4. 저서
- 각하전상서[6] (1989)
- 칼의 힘 펜의 힘[7] (2004)
- 그레샴 법칙의 나라[8] (2012)
- 민주주의의 배신[9] (2014)
- 대통령 복도 지지리 없는 나라 (2017)
- 펜의 자리, 칼의 자리[10][11] (2018)
5.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c1d1f><tablewidth=100%><rowcolor=#fff><rowbgcolor=#808080>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전북 김제·완주 | [[새천년민주당|]] | 9,747 (10.60%) | 낙선 (3위) |
[1] 당시에는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조동중'으로 불렸는데 지금의 '조중동'으로 정착된 것이 오홍근의 중앙일보 판매부장 시절 업적이라고 한다.[2] 2002년 '언론탄압 공로로 가스안전공사 사장 임명'이라는 조선일보 기사에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다.[3]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의 영향으로 여당 열린우리당에게 매우 유리한 선거였다. 특히 탄핵소추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새천년민주당은 진보진영 지지자들에게 한나라당 이상의 비토를 받았다.[4]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까지만 해도 범진보 정치인으로 분류되던 안철수가 우경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5] 장남 오광훈 씨는 스카이TV 콘텐츠사업본부장, 차남 오명훈 씨는 유티 CFO를 역임하고 있다.[6] 웃어른에게 올리는 글을 이르는 말.[7] <월간중앙>,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들을 엮은 책이다.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도 실려 있다.[8] 이명박 정부 5년간 프레시안에 연재한 동명의 칼럼 시리즈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9] 출간 직후인 2014년 5월 3주 경향신문, 5월 4주 한겨레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10] 오홍근 기자의 칼럼들을 시대별로 4부로 나눠 엮은 책.[11] 2024년 3월 14일 황상무가 오홍근 테러사건을 언급하며 MBC 기자들을 협박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후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가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칼럼을 쓰면서 이 책과 관련해 이런 글을 남겼다.
"언론인 오홍근은 작고하기 전 <펜의 자리, 칼의 자리>라는 책을 썼다. 탁월한 제목이다. 칼은 군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검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칼은 칼집에 꽂혀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허벅지에 꽂혀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펜도 마찬가지다. 기자 출신 정치인이 기자들 앞에서 칼을 운운하고 있다면 그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일이다. 검사의 자리, 언론인의 자리, 대통령의 자리, 참모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이탈하면 그건 더 이상 펜도, 칼도 아니다."
"언론인 오홍근은 작고하기 전 <펜의 자리, 칼의 자리>라는 책을 썼다. 탁월한 제목이다. 칼은 군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검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칼은 칼집에 꽂혀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허벅지에 꽂혀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펜도 마찬가지다. 기자 출신 정치인이 기자들 앞에서 칼을 운운하고 있다면 그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일이다. 검사의 자리, 언론인의 자리, 대통령의 자리, 참모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이탈하면 그건 더 이상 펜도, 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