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10:36:21

운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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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가사키현 현기.svg 나가사키현의 시(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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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젠시 | Unzen City
파일:Unzen.gif 파일:Unzen.gif
시기(市旗) 문장(紋章)
<colbgcolor=#00a0c6><colcolor=#fff> 국가 일본
지방 규슈
도도부현 나가사키현
면적 214.31km²
인구 40,729명[1]
시장(市長)
[[무소속(정치)|
무소속
]] 카나자와 히데사부로(金澤 秀三郎)
상징
시화 운젠진달래(雲仙つつじ)
시목 산딸나무(ヤマボウシ)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운젠시 홍보영상

1. 개요2. 역사3. 지리4. 산업5. 관광6. 교통
6.1. 철도 교통6.2. 도로 교통6.3. 해상 교통
7. 기타8. 자매도시

[clearfix]

1. 개요

일본 나가사키현 시마바라 반도에 위치한 일본의 도시. 운젠 지옥, 온천, 운젠아마쿠사 국립공원운젠산으로 유명하다.

2. 역사

본래 시마바라번 타카키군 지역에 속하였는데 17세기 초, 영주였던 아리마 나오즈미의 전봉[2] 이후 새로 들어온 마츠쿠라 가문의 마츠쿠라 시게마사는 지역 규모 및 생산력에 맞지 않는 거성을 지어버렸다.[3] 이후 이어받은 마츠쿠라 카츠이에는 아버지보다 영민을 가혹하게 착취, 고문했는데 이는 기독교 탄압과 함께 시마바라의 난의 주 원인이 되었다. 결국 시마바라의 난으로 인해, 반란에 동참한 다수의 영민들이 죽었으며[4] 이후 잔존 신자들을 소탕하고 포교를 막기 위해 후미에를 실시하고 개종한 사람들의 후손들을 수 대에 걸쳐 감시하며 연좌제를 적용해 주민들 스스로도 서로를 감시하게 하였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한 사례 중에는 온천을 이용한 방법도 있는데, 펄펄 끓는 온천 물에 신자들을 넣어서 고문하고 죽이는 끔찍한 방법이었다. 이를 '지고쿠 세메'(地獄責)라고 부른다.

한편, 마츠쿠라 카츠이에는 잘못된 통치로 반란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1638년에 가이에키 당한다.[5] 이후 새로 부임한 고리키 다다후사는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문제[6]를 해결하기 위해 타지의 농민들을 대거 이주시킨다.[7] 그러나 그 뒤를 이은 고리키 다카나가는 실정을 저지르다가 그 또한 1668년에 가이에키 당한다.

이후 마츠다이라 가문이 1669년부터 1749년까지 5대 동안 통치하며, 도다 가문이 1749년~1774년까지 잠깐 맡았다가 다시 마츠다이라 가문이 돌아와 1774년부터 1871년까지 8대 동안 통치한다. 도쿠가와 방계 가문이 이런 변방 소영지를 맡게 된 이유는, 워낙 큰 걸 저지른 지역이고 카쿠레키리시탄의 완전 소탕에 실패했다 보니 불안한 막부에서 마츠다이라 가문에게 맡기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8] 게다가 전 영주의 실정 때문에 농민들이 들고 일어선 곳에서 새 영주가 또 실정을 하니 도저히 봐줄 수 없었을 것이다.

폐번치현 이후 잠시 시마바라현에 속하였으나 곧 나가사키현으로 합병되었다. 그 뒤 2005년 오바마초, 쿠니미초를 비롯한 7개의 정촌이 합병하여 운젠시가 되었다. 도시 이름은 운젠산(雲仙岳, 운젠다케)에서 따왔는데 이 운젠이 운젠시를 포함한 시마바라 반도 전체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연 환경이다. 1792년 대분화로 인해 15,000여 명이 사망한 이후 한동안 조용하였는데, 20세기 말 다시 대분화가 일어났다. 1990년부터 분화를 시작해 1996년까지 계속됐던 화산활동으로 인해 지역 일대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보다 이전인 17세기에는 운젠의 끓는 물을 키리시탄 고문에 쓰다가 정말 큰 난리가 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운젠 지옥과 오바마 온천 등 화산의 산물들이 지역 관광 산업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화산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묘하지 않을 수 없다(...).

3. 지리

시마바라 반도에 위치하며, 시 동남부는 운젠산 구역이다. 바다의 가까운 부분은 평야 지대이며 시가지가 발달되었다.

북서쪽으로 이사하야시 남쪽으로 시마바라시, 미나미시마바라시와 접하고 있다.

4. 산업

어업, 농업 등 1차 산업이 발달했으며, 그 외로는 운젠 온천, 운젠아마쿠사 국립공원 등 관광업이 발달했다.

5. 관광

크게 운젠다케 일대, 오바마 일대, 북부 해안가 일대로 나뉜다.
  • 오바마[9]
    오바마 온천[10]과 105m에 달하는 족욕탕이 인기있으며 온천거리 뒤쪽으로는 오바마 역사자료관, 혼다 유다유 저택, 코우센지, 탄산천 등이 있다. 먹거리로는 오바마 짬뽕[11]이 지역 명물로, NHK에서 <우리 아빠는 짬뽕맨>이라는 드라마가 이 지역을 배경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 밖에는 나름 이름 알려진 오래된 온천 지역답게 온천 센베, 온천찜요리도 있다.

6. 교통

6.1. 철도 교통

시마바라 철도시마바라 철도선이 지나며, 아이노역부터 타이라역까지 운젠시에 속한다.

운젠 철도운젠 철도선라는 노선이 아이노역에서 오바마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1938년 폐선되었다.

6.2. 도로 교통

57번 국도, 251번 국도, 389번 국도가 지난다.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나들목이사하야IC이다.

나가사키 현영버스에서 나가사키시~오바마~운젠다케까지 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 시마바라 철도에서는 이사하야시에서부터 운젠시를 경유해 미나미시마바라시나 시마바라시까지 가는 버는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6.3. 해상 교통

아리아케 페리가 운젠시 타이라 항과 구마모토 나가스 항을 오가고 있다. 타이라 항은 역에서 가깝지만, 나가스 항이 나가스역으로부터 애매한 위치에 있으며 둘 다 지역 중심지와는 멀기 때문에 시마바라항~구마모토항 노선보다는 좀 불편하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나가사키현의 타 지역이나 나가사키시에서 여기까지 오가는 배편이 있을 법도 한데 실제로는 없다.[12]

7. 기타

규슈 어디가 안 그렇겠냐마는 화산뿐만 아니라 태풍, 폭우 또한 자주 겪는 지역 중 하나다. 2021년 8월, 운젠다케의 72시간 강수량이 788.5mm로 기상 관측 이래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시마바라 반도의 세 행정구역 중 인구는 가장 적지만 근소한 차이라 사실상 도토리 키재기다.[13]

8. 자매도시



[1] 추계인구 2021년 8월 1일 기준[2] 쫒겨난 것이 아니라 본인 요청에 의한 것이다. 전 영주이자 아버지였던 아리마 하루노부가 키리시탄 및 서양 세력과 얽혀 처형된 이후, 영지 대부분을 차지한 키리시탄 영민,가신들에 대한 악감정이 크게 작용했다.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예수회 사료에 1613년 나오즈미가 세례명을 받은 자신의 두 이복동생들을 8세와 6세일 때 살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시마바라의 난에서는 토벌군으로 참전, 과거 자신의 영민과 가신이었던 반군들을 마음껏 썰고 다닌다(...).[3] 당시 시마바라 번은 4만 석이었는데 이조차도 현실 상황보다 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마바라 성의 규모는 최소 10만 석(...)[4] 대다수의 주민들이 반란에 가담한 미나미시마바라시나 격전지였던 시마바라시 지역보다는 피해를 덜 입었을 것으로 여겨진다.[5] 에도 시대 다이묘들 중 유일하게 할복이 아닌 참수로 가이에키당했다. 이게 일어나기 전까지는 최대 규모의 반란이었으니 화가 난 막부가 그럴 만 하다.[6] 작은 영지에서 주민 다수가 반란군, 일부는 진압군으로서 참가해, 반란군 쪽에서만 3만 여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왔고 이후 키리시탄의 색출과 처분까지 이루어졌다. 물론 이는 아마쿠사에서 봉기한 이들을 합친 숫자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변두리 도서 지역에게 있어서는 궤멸적인 피해이다. 특히 미나미시마바라 쪽은 거의 다 반란에 가담했고 최후의 농성지였으니 반란 후의 상황은...[7] 실제로, 시마바라의 명물인 시마바라 소면은 이 당시 히로시마에서 온 이주민들이 만들었다고 한다.[8] 실제로 같이 봉기한 아마쿠사 지역은 이후 폐번치현 때까지 막부 직할령으로 바뀌었다.[9] 오바마시와 다른 곳이다.[10]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이름이 같아 홍보효과를 좀 누렸다. 관광안내소에 아예 동상을 세워놓았다(...)[11] 나가사키 짬뽕이 베이스지만, 돈코츠가 메인이 되는 나가사키 짬뽕과 달리 닭뼈 중심의 육수와 다량의 해산물 건더기가 들어간다.[12] 이는 나가사키 반도가 나가사키항의 오른쪽과 아래쪽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사키항에서 시마바라 반도 까지는 한참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지리적 불편함 때문에 나가사키 반도 쪽에도 터미널이 만들어져 있는데 정작 여기서는 아마쿠사 레이호쿠마치의 토미오카 항까지 가는 배만 운항한다. 그런데 아마쿠사와 시마바라를 이어주는 항구는 토미오카 항이 아니라, 토미오카와 아마쿠사 시가지 모두로부터 꽤 떨어져 있는 오니이케 항이다. 게다가 토미오카 항은 이 항구보다도 시가지와 더 멀기도 하다. 때문에 페리는 고려 대상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13] 추계인구 2021년 7월 기준 시마바라시 42,449명 / 미나미시마바라시 41,423명 / 운젠시 40,751명. 일단 처음으로 4만 붕괴는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