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0:38:12

원비(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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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4. 기록5. 창작물에서

1. 개요

元妃
생몰년도 미상

고구려 제3대 국왕인 대무신왕의 첫째 왕비. 모본왕의 어머니다.

원비(元妃)는 첫째 왕비라는 의미의 호칭으로, 성씨나 이름은 알 수 없다.

2. 생애

32년 11월, 차비 해씨 소생인 호동왕자가 대를 이을 자리를 빼앗고 태자가 될 것을 두려워했다. 원비는 남편 대무신왕에게 "호동이 저를 예로써 대하지 않으니 아마 음란한 짓을 하려는 것 같다."고 참소했다. 대무신왕은 처음에 호동이 다른 사람의 아이라 미워하는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원비가 눈물을 흘리면서 “청컨대 대왕께서 몰래 살펴보시고, 만일 이런 일이 없다면 제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겠습니다.”고 말하자 대무신왕도 호동을 의심하여 장차 벌을 주려고 했다. 어떤 이가 호동에게 “당신께서는 어찌 스스로 해명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하자 호동은
“내가 만일 해명하면 이는 어머니의 그릇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
“我若釋之, 是顯母之惡, 貽王之憂, 可謂孝乎!”
삼국사기 권14 고구려본기 제2 대무신왕 (32년 11월 기사)

라고 말하곤 곧 칼 위에 엎어져 죽었다.

3. 기타

호동왕자낙랑공주를 꼬셔 최씨낙랑국을 멸망시키는 공적을 세우기는 했지만, 아무리 차비 해씨갈사국 왕의 손녀고 왕후라지만 원비의 명칭을 가진 이상 원비의 서열이 더 높았을 텐데도 대무신왕에게 끈질기게 참소해서 호동을 죽인 걸 보아 원비의 아들인 모본왕은 호동보다 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모본왕은 32년 12월 이전에 태어났는데, 대무신왕이 44년 사망했을 당시 모본왕이 어리다는 이유로 동생인 민중왕이 대신 즉위한 것으로 보아 모본왕은 30~32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뒤늦게 아들이 태어나자 초조해져서 호동을 죽인 듯. 호동이 죽은 뒤에야 모본왕이 태자가 된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4. 기록

겨울 11월에 왕자 호동이 자결하였다. 호동은 왕의 둘째 왕비인 갈사왕(曷思王)의 손녀에게서 태어났다. 얼굴이 아름답고 고와 왕이 그를 매우 아꼈던 까닭에 호동이라 이름하였다. 첫째 왕비는 [호동이] 대를 이을 자리를 빼앗아 태자가 될까 두려워하여, 이에 왕에게 참소하여 말하기를, “호동이 저[妾]를 예로써 대하지 않으니 아마 [저에게] 음란한 짓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당신은 [호동이] 다른 사람의 아이라고 미워하는 것이오?”라고 하니, 왕비는 왕이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을 알고, 장차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아뢰어 말하기를, “청컨대 대왕께서 몰래 살펴보시고, 만일 이런 일이 없다면 제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왕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장차 죄를 주려고 하였다. 어떤 이가 호동에게 일러 말하기를, “당신께서는 어찌 스스로 해명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다. [호동이] 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만일 해명하면 이는 어머니의 그릇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곧 칼 위에 엎어져 죽었다.
冬十一月, 王子好童自殺. 好童王之次妃曷思王孫女所生也. 顔容羙麗, 王甚愛之, 故名好童. 元妃恐奪嫡爲大子, 乃讒於王曰, “好童不以禮待妾, 殆欲乱乎.” 王曰, “若以他兒憎疾乎.” 妃知王不信, 恐禍將及, 乃涕泣而告曰, “請大王密候, 若無此事, 妾自伏罪.” 於是, 大王不能不疑, 將罪之. 或謂好童曰, “子何不自釋乎.” 荅曰, “我若釋之, 是顯母之惡, 貽王之憂, 可謂孝乎.” 乃伏劒而死.
삼국사기 권14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5. 창작물에서

바람의 나라에서 이지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이지(바람의 나라)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