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 <rowcolor=#cd9f51> 1901 | 1902 | 1903 | |
빌헬름 뢴트겐 | 헨드릭 로런츠 | 피터르 제이만 | 앙투안 베크렐 | |
<rowcolor=#cd9f51> 1903 | 1904 | 1905 | ||
피에르 퀴리 | 마리 퀴리 | 존 라일리 | 필리프 레나르트 | |
<rowcolor=#cd9f51> 1906 | 1907 | 1908 | 1909 | |
조지프 톰슨 | 앨버트 마이컬슨 | 가브리엘 리프만 | 굴리엘모 마르코니 | |
<rowcolor=#cd9f51> 1909 | 1910 | 1911 | 1912 | |
카를 브라운 | 요하너스 판데르발스 | 빌헬름 빈 | 닐스 달렌 | |
<rowcolor=#cd9f51> 1913 | 1914 | 1915 | ||
헤이커 오너스 | 막스 폰 라우에 | 헨리 브래그 | 윌리엄 브래그 | |
<rowcolor=#cd9f51> 1917 | 1918 | 1919 | 1920 | |
찰스 바클라 | 막스 플랑크 | 요하네스 슈타르크 | 샤를 기욤 | |
<rowcolor=#cd9f51> 1921 | 1922 | 1923 | 1924 |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닐스 보어 | 로버트 밀리컨 | 만네 시그반 | |
<rowcolor=#cd9f51> 1925 | 1926 | 1927 | ||
제임스 프랑크 | 구스타프 헤르츠 | 장 페랭 | 아서 콤프턴 | |
<rowcolor=#cd9f51> 1927 | 1928 | 1929 | 1930 | |
찰스 윌슨 | 오언 리처드슨 | 루이 드 브로이 | 찬드라세카라 라만 | |
<rowcolor=#cd9f51> 1932 | 1933 | 1935 |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폴 디랙 | 에르빈 슈뢰딩거 | 제임스 채드윅 | |
<rowcolor=#cd9f51> 1936 | 1937 | |||
빅터 헤스 | 칼 앤더슨 | 클린턴 데이비슨 | 조지 톰슨 | |
<rowcolor=#cd9f51> 1938 | 1939 | 1943 | 1944 | |
엔리코 페르미 | 어니스트 로런스 | 오토 슈테른 | 이지도어 라비 | |
<rowcolor=#cd9f51> 1945 | 1946 | 1947 | 1948 | |
볼프강 파울리 | 퍼시 브리지먼 | 에드워드 애플턴 | 패트릭 블래킷 | |
<rowcolor=#cd9f51> 1949 | 1950 | 1951 | ||
유카와 히데키 | 세실 파월 | 존 콕크로프트 | 어니스트 월턴 | |
<rowcolor=#cd9f51> 1952 | 1953 | 1954 | ||
펠릭스 블로흐 | 에드워드 퍼셀 | 프리츠 제르니케 | 막스 보른 | |
<rowcolor=#cd9f51> 1954 | 1955 | 1956 | ||
발터 보테 | 윌리스 램 | 폴리카프 쿠시 | 윌리엄 쇼클리 | |
<rowcolor=#cd9f51> 1956 | 1957 | |||
존 바딘 | 월터 브래튼 | 리정다오 | 양전닝 | |
<rowcolor=#cd9f51> 1958 | 1959 | |||
파벨 체렌코프 | 일리야 프란크 | 이고르 탐 | 오언 체임벌린 | |
<rowcolor=#cd9f51> 1959 | 1960 | 1961 | ||
에밀리오 지노 세그레 | 도널드 글레이저 | 로버트 호프스태터 | 루돌프 뫼스바우어 | |
<rowcolor=#cd9f51> 1962 | 1963 | |||
레프 란다우 | 유진 위그너 | 마리아 메이어 | 한스 옌젠 | |
<rowcolor=#cd9f51> 1964 | 1965 | |||
찰스 타운스 | 니콜라이 바소프 |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 | 리처드 파인만 | |
<rowcolor=#cd9f51> 1965 | 1966 | 1967 | ||
줄리언 슈윙거 | 도모나가 신이치로 | 알프레드 카스틀레르 | 한스 베테 | |
<rowcolor=#cd9f51> 1968 | 1969 | 1970 | ||
루이스 앨버레즈 | 머리 겔만 | 한네스 알벤 | 루이 네엘 | |
<rowcolor=#cd9f51> 1971 | 1972 | |||
데니스 가보르 | 존 바딘 | 리언 쿠퍼 | 존 슈리퍼 | |
<rowcolor=#cd9f51> 1973 | 1974 | |||
에사키 레오나 | 이바르 예베르 | 브라이언 조지프슨 | 마틴 라일 | |
<rowcolor=#cd9f51> 1974 | 1975 | |||
앤서니 휴이시 | 오게 보어 | 벤 모텔손 | 제임스 레인워터 | |
<rowcolor=#cd9f51> 1976 | 1977 | |||
버턴 릭터 | 새뮤얼 팅 | 필립 앤더슨 | 존 밴블랙 | |
<rowcolor=#cd9f51> 1977 | 1978 | |||
네빌 모트 | 표트르 카피차 | 아노 펜지어스 | 로버트 윌슨 | |
<rowcolor=#cd9f51> 1979 | 1980 | |||
스티븐 와인버그 | 무함마드 살람 | 셸든 글래쇼 | 제임스 크로닌 | |
<rowcolor=#cd9f51> 1980 | 1981 | |||
벨 피치 | 니콜라스 블룸베르헌 | 아서 숄로 | 카이 시그반 | |
<rowcolor=#cd9f51> 1982 | 1983 | 1984 | ||
케네스 윌슨 |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 | 윌리엄 A. 파울러 | 카를로 루비아 | |
<rowcolor=#cd9f51> 1984 | 1985 | 1986 | ||
시몬 판 데르 메이르 | 클라우스 폰 클리칭 | 에른스트 루스카 | 게르트 비니히 | |
<rowcolor=#cd9f51> 1986 | 1987 | 1988 | ||
하인리히 로러 | 요하네스 베드노르츠 | 카를 뮐러 | 리언 레더먼 | |
<rowcolor=#cd9f51> 1988 | 1989 | |||
멜빈 슈워츠 | 잭 스타인버거 | 한스 데멜트 | 볼프강 파울 | |
<rowcolor=#cd9f51> 1990 | 1991 | |||
제롬 프리드먼 | 헨리 켄들 | 리처드 테일러 | 피에르질 드 젠 | |
<rowcolor=#cd9f51> 1992 | 1993 | 1994 | ||
조르주 샤르파크 | 러셀 헐스 | 조지프 테일러 | 버트럼 브록하우스 | |
<rowcolor=#cd9f51> 1994 | 1995 | 1996 | ||
클리퍼드 슐 | 프레더릭 라이네스 | 마틴 펄 | 데이비드 리 | |
<rowcolor=#cd9f51> 1996 | 1997 | |||
더글러스 오셔로프 | 로버트 리처드슨 | 윌리엄 필립스 | 스티븐 추 | |
<rowcolor=#cd9f51> 1997 | 1998 | |||
클로드 코엔타누지 | 대니얼 추이 | 로버트 러플린 | 호르스트 슈퇴르머 | |
<rowcolor=#cd9f51> 1999 | 2000 | |||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 마르티뉘스 펠트만 | 조레스 알표로프 | 허버트 크뢰머 | |
<rowcolor=#cd9f51> 2000 | ||||
잭 킬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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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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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bgcolor=#663334><rowcolor=#cd9f51><-3> 2001 ||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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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상 수상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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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괴델 | 줄리언 슈윙거 | 리처드 파인만 | 에드워드 텔러 | ||||
<rowcolor=#cd9f51> 1959 | 1960 | 1961 | 1965 | ||||
윌러드 리비 | 레오 실라르드 | 루이스 앨버레즈 | 존 휠러 | ||||
<rowcolor=#cd9f51> 1967 | 1970 | 1972 | 1978 | ||||
마셜 로젠블루흐 | 유발 네이만 | 유진 위그너 | 스티븐 호킹 | ||||
<rowcolor=#cd9f51> 1979 | |||||||
툴리오 레게 |
<colbgcolor=#000><colcolor=#fff> 유진 폴 위그너 Eugene Paul Wigner | |||
본명 | 비그네르 예뇌 팔 Wigner Jenő Pál | ||
출생 | 1902년 11월 17일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 |||
사망 | 1995년 1월 1일 (향년 92세) | ||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 |||
직업 | 이론물리학자 | ||
국적 | [[헝가리|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colcolor=#fff> 분야 | 현대물리학 (양자역학) 원자물리학 핵물리학 고체물리학 | |
소속 | 괴팅겐 대학교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프린스턴 대학교 맨해튼 계획 | ||
주요 업적 | 바르그만–위그너 방정식 반전성보존법칙 위그너 D-행렬 위그너-에카르트 정리 위그너의 친구 위그너 반원 분포 위그너 분류 위그너 분포 함수 위그너 함수 위그너 결정 위그너 효과 위그너 에너지 상대론적 브라이트–위그너 분포 수정된 위그너 분포 함수 위그너–데스파냐 부등성 가보르-위그너 변환 위그너 정리 요르단–위그너 변환 뉴턴–위그너 국소화 위그너–이뇌뉘 수축 위그너–자이츠 cell 위그너–자이츠 반경 토마스–위그너 회전 위그너–바일 변환 위그너–윌킨스 스펙트럼 6-j 심볼 9-j 심볼 | ||
수상 | 공로 훈장 (1946) 플랭클린 메달 (1950) 엔리코 페르미 상 (1958) 평화를 위한 원자 상 (1959) 플랑크 메달 (1961) 노벨물리학상 (1963) 미국 과학 훈장 (1969)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상 (1972) 위그너 메달 (1978) | ||
배우자 | 아멜리아 프랭크 (결혼 1936, 사망 1937) | ||
메리 아네트 휠러 (결혼 1941, 사망 1977) | |||
에일린 클레어패턴 해밀턴 (결혼 1979) | |||
자녀 | 3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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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리물리학에 기여한 헝가리의 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1937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특히 "기본 대칭 원리의 발견과 적용을 통해 원자핵과 기본 입자 이론에 기여한 공로"로 196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2. 생애
헝가리의 유대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공과대학교를 졸업한 위그너는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The Kaiser Wilhelm Institute)에서 카를 바이센베르크Karl Weissenberg와 리차드 베커Richard Becker의 조수로, 괴팅겐 대학교에서 다비드 힐베르트의 조수로 일했다. 위그너와 헤르만 바일은 군론, 특히 물리학의 대칭 이론을 물리학에 도입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순수 수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 분야에서 여러 수학적 정리를 저술했다. 특히 위그너 정리는 양자역학의 수학적 공식화의 초석이다. 그는 또한 원자핵의 구조에 대한 연구로도 유명하다. 1930년 프린스턴 대학교는 존 폰 노이만[1]과 함께 위그너를 영입하여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위그너는 실라르드 레오 및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의 회의에 참여하여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를 작성했으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위그너는 독일의 핵무기 프로젝트가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 것을 두려워했다. 맨해튼 프로젝트 동안 그는 우라늄을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전환하기 위한 원자로를 설계하는 임무를 맡은 팀을 이끌었다. 당시 원자로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했고, 아직 결정적인 원자로는 없었다. 위그너는 듀폰이 원자로의 건설뿐만 아니라 설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는 1946년 초에 클린턴 연구소(현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연구 개발의 책임자가 되었지만 미국 원자력 위원회의 관료적 간섭에 좌절하고 프린스턴으로 돌아왔다.
전후 기간에 그는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1951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수학 패널, 국립과학재단의 물리학 패널, 1952년부터 1957년까지 미국 원자력 위원회의 일반 자문 위원회를, 1959년부터 1964년까지 재직했다. 말년에 그는 더 철학적이 되어 기술 수학 및 물리학 이외의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자연과학에서 수학의 불합리한 효과(The Unreasonable Effectiveness of Mathematics in Natural Science)》를 출판했다.
참고로 위그너의 여동생 마르짓 위그너(Margit Wigner, 1904~2002)는 폴 디랙과 결혼하였다. 폴 디랙은 위그너의 동료 물리학자로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1] 위그너는 13살 때, 자기보다 한 살 어린 폰 노이만에게서 정수론과 집합론을 배웠다. 둘 다 대단한데 위그너가 왠지 진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