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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맨해튼 계획 Manhattan Project | ||
시기 | <colbgcolor=#fff,#1f2023> 1942년 8월 13일 ~ 1947년 8월 15일 | |
위치 | 미국 전역 | |
예산 | 약 20억 달러[1] | |
책임자 |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레슬리 그로브스 | |
투입 인원 | 약 13만 명 |
맨해튼 계획의 일부인 시카고 파일(Chicago Pile)[2] 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들[3] |
세계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Trin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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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 맨해튼 프로젝트)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 캐나다 자치령이 참여한 핵무기 개발 계획이다. 계획은 극비로 진행되었으며, 미국은 세계 최초로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계획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4]을 포함한 미국 과학자 아카데미의 제안으로 시작하여 당대 유럽에서 망명해 온 저명한 물리학자인 닐스 보어[5], 엔리코 페르미[6], 레오 실라르드, 존 폰 노이만, 스타니스와프 울람, 한스 베테, 볼프강 파울리, 펠릭스 블로흐, 에드워드 텔러, 유진 위그너, 오토 슈테른, 기타 주요 과학자 등이 포함되었다.미국측 주요 과학자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1927 솔베이 회의에 미국인으로서 참여한[7] 어빙 랭뮤어, 아서 홀리 콤프턴 외에도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한 어니스트 로런스, 버니바 부시, 코넌트, 에드워드 밀스 퍼셀,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 해럴드 클라이턴 유리, 칼 데이비드 앤더슨,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8], 윌러드 리비, 글렌 T. 시보그, 해롤드 애그뉴, 존 아치볼드 휠러, 로버트 서버, 케인스 베넨브리지, 그 외 유능한 과학자들이 차출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영문위키에 더 잘 저술되어있다.
단순한 과학 실험이 아닌, 미국 전쟁부(현 국방부)가 실전에 사용할 대량살상무기를 제작하는 군사 작전이었다.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는 미 육군 소장 레슬리 그로브스.[9] 프로젝트 시작 시점에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고 이후 프로젝트 중에 소장을 달았다. 이 때문에 많은 문헌에는 그로브스 소장으로 등장한다.
안타깝게도 1930년대부터 전기음성도와 화학결합 연구로 유명해진 20세기 최고의 화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라이너스 폴링은 오펜하이머에게 화학부분 담당을 요청받았으나 참여하지 않았다.[10]
2. 위치
프로젝트 이름은 뉴욕의 맨해튼에서 따 왔으나, 실제로는 미국 전역에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목록에 맨해튼 자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이름의 유래에는 2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미군 공병부가 맨해튼 거리에 있었다는 것, 더불어 맨해튼 기술국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연구진들이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 과학관에서 연구를 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엔리코 페르미가 주도한 원자로 실험은 대학의 라켓볼 코트에서 이루어졌다.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위장하기 좋았다고.맨해튼 프로젝트는 모든 것이 기밀이었으며 약 30군데의 시설에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 대학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중추적인 곳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다.[참고]
- 오크리지 - 테네시 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맨해튼 계획의 본부였다.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었고, 현재는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 (ORNL)가 자리해 있다. 현재 이곳에 있는 ORNL은 로스 앨러모스와 더불어 도시의 중대한 밥줄이다.
- 리치랜드 핸포드 - 워싱턴 주에 위치. 현재 근방에 퍼시픽 노스웨스트 국립 연구소 (PNNL)이 있다. 최초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 현재는 폐로 중.
- 로스 앨러모스 - 핵무기 설계 및 연구시설로 뉴멕시코 주에 있다. 현재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LANL)가 후신으로서 핵 연구를 진행한다. 좀 유명하다 싶은 과학자들이 꽤 많이 몰려서 대중에 많이 알려졌다. 대표적으론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같은 사람들. 리처드 파인만의 경우엔 이론팀에서 근무했다.
- 버클리 - 핵개발을 실질화 하기 위한 이론적 장소. 1939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UC 버클리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한 어니스트 로렌스 주도하에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곳에서 로렌스는 "입자 가속기" , "핵에너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나이" 라고 불리었다. 로렌스가 개발한 입자 가속기인 사이클로트론은 우라늄 동위원소 분리 및 핵분열에 필요한 새로운 입자 발견에 사용되었다. 덧붙여 UC 버클리에서 플루토늄, 버클륨, 로렌슘, 캘리포늄 등, 원소 주기율표의 92번째인 우라늄부터 106번째인 시보귬까지 발견되었다.
2.1. 캐나다 자치령
캐나다 또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은 지역들이 있었다.- 트레일 -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미국 국경 근처 소도시, 텍 에너지사가 위치해 있다. 이곳에선 원자로 건설에 필수적인 중수를 생산했다.
- 초크 리버 연구소(Chalk River Laboratories) - 캐나다의 과학자들이 모여서 연구를 진행한 곳. 몬트리올 연구소에서 할 수 없는 실험들을 하는 곳이었다. 전후 미국 다음으로 Zero Energy Experimental Pile 이란 중수로를 개발했으며, 이 중수로가 발전된게 월성의 CANDU. 한때 의료용 동위원소를 생산했다.
- 엘도라도 광산 (Port Radium) - 노스웨스트 준주에 위치한 광산이다. 이곳에서 라듐, 우라늄, 은을 채취해 계획에 사용했다. 즉 실험에 쓰인 광물들의 산지. 1982년 모든 시설을 폐쇄하고 그 근방에 사는 사투족에게 170만톤에 달하는 방사성 물질을 처리할것을 캐나다 정부는 약속했다.
3. 과정
1939년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Szilárd Leó, 1898~1964)[12]가 주장하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에 의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자그마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맨해튼 프로젝트는 13만 명 규모[13]까지 성장했고,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비용은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14][15], 2023년 기준으로 따지면 330억 달러, 즉 대한민국 원으로 환산하면 약 39조 9,600억 원으로 2023년 한국 총 국방 예산(약 57조 원)의 70% 정도의 거액이 들어간 거대 공학 프로젝트이다. 특히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장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시작으로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등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당대 최고의 두뇌들을 모두 여기에 동원했다.[16] 비록 아인슈타인 본인은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을 설득하는 편지(실라르드가 쓴 내용)에 서명해 자신의 권위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공헌했다.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우라늄의 유통을 중단하면서, 미국은 독일이 핵무기의 개발을 시작하였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이 작전을 허가했고,[17] 루스벨트 사망 후 대통령이 된 해리 S. 트루먼은 이 프로젝트를 알자마자[18] 최대한 빨리 핵폭탄 개발을 완료할 것을 촉구했으며 '나치 독일로부터 미국과 유럽을 지키기 위해'라는 목적으로 예산이 무한정 지원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엄청난 힘을 가진 핵분열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루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고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일류 학자들 수천 명이 수년간 함께 연구한 결과, 그 가능성은 점점 실체화되었다. 결국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의 폭격연습장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이 성공리에 종료되었는데, 이 역사상 최초의 핵실험의 이름은 트리니티 실험이었으며, 사용된 폭탄의 이름은 가젯(gadget)이었다.
맨해튼 계획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군사작전이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명목상 총 책임자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아닌 레슬리 그로브스 미 육군 소장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총 책임자가 아니라 로스 앨러모스의 연구소 소장 신분이었다. 물론 핵폭탄 자체를 개발하는 이론-기술 분야 전반에 대해선 과학자들이 전적으로 끌어갔고 그 과학자들을 이끌어 핵폭탄을 개발한건 오펜하이머가 맞지만, 프로젝트 전체의 총괄 지휘, 즉 인력 확충이나 예산 반영, 보안 유지, 부지 및 원료의 계약 부분 등은 그로브스가 맡았다. 사실 그로브스도 군 생활 전에는 한때 MIT에서도 공부했을 정도로 이공계 분야의 지식이 제법 있던 군인이었고 이게 프로젝트에 손해는 아니었지만, 이론 물리학은 그의 전공이 아니었고 양자역학 분야는 더더욱 몰랐다. 그래도 다른 군 장성들이 아예 알아먹지도 못할 과학자들의 발언과 주장을 최소한 감으로 알아들을 수는 있는 이공계 경험이 과학자들을 끌고 가는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그로브스는 미 육군 공병단 소속으로, 대령 시절 미국 전쟁부의 새로운 청사인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를 6개월이라는 가공할 속도로 완벽하게 건설해냄으로써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 공로로 준장에 진급하고, "펜타곤 잘 만드는 솜씨를 보니 원자폭탄도 잘 만들겠군?"이라는 상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 책임을 맡았다. 저 기대가 무슨 드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로브스 임명에 저 부분이 작용했다. 그로브스가 펜타곤 건설 과정에서 보여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엄청난 추진력과 실제 성과 때문에 그를 임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상부의 기대에 걸맞게 말 안듣는 물리학자들을 닥달하고 다독이는 등 추진력을 보여주어 맨해튼 계획을 성공시킨다.[19]
4. 영향
4.1. 일본 제국의 항복
2차 대전 당시 압도적인 연합군의 전력과 그로 인한 연이은 패배, 경제 및 플랜트의 붕괴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1%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은 1억 총옥쇄, 반자이 어택, 카미카제 등 발악에 가까운 무의미한 항전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려 2번이나 실시된 원자폭탄 투하를 통해 힘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낀 일본 제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일본의 항복이라는 미국의 선전에만 가려졌으나 후대에 관련 기밀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당시 미국 정부가 큰 비판을 받게되었다.결론은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으로 사실상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을 결정하게 된다. 다만 무조건 항복을 두고 일본 정부 내에 이견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당시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급해진 미국 정부는 자신들이 전쟁을 끝내고자[20] 나가사키에 2차 원폭을 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맨해튼 계획 책임자인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상당수 과학자들은 2차 원폭에는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21]
이로 인해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히로시마 원폭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과학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 현장 조사 결과가 알려지고 2차 원폭이 감행되고는 파티도 일부 소수만 조촐하게 가졌다고 한다. 반대 입장이던 과학자들은 이 위험한 폭탄에 대해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정부에 강력히 건의했다.
이렇게 핵개발에 관여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 중에는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들도 있으나, 존 폰 노이만, 한스 베테,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은 원폭투하에 대해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한 일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는 당시 미국의 여론이 자신들을 직접적으로 침략하지는 않아서 어느 정도는 불구경하듯 봤던 독일과 달리 민간인도 있는 진주만을 기습 침공한 일본에 대한 분노가 매우 컸던 원인도 있다. 그래서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는 반인륜적인 행위라며 여론의 맹비난을 받았지만 도쿄 대공습이나 맨해튼 같은 일본을 향한 공격에서는 국민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4.2. 공포 위의 평화
가장 강력한 전쟁 무기인 핵무기가 등장한 이후, 역설적으로 강대국끼리의 전면전은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적국을 공격하게 되면 자신도 멸망하게 되는, 전쟁을 시작하면 누구도 이득을 볼 수 없는 상호확증파괴가 대두되었다. 그렇게 인류는 인류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됐지만 그 힘의 공포로 인해 세계 대전과 같은 거대한 전쟁이 종식되고 계산된 평화가 도래했다.5. 이후
이 프로젝트가 끝난 후 미국 에너지부(당시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에서는 이 시설들 중 3곳을 국립 연구소로 지정[22]하였으며, 현재는 핵무기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관은 에너지부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국립 연구소로는 아르곤 국립 연구소[23],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등이 있다.지도에 나와 있는 캐나다 초크 리버(Chalk River) 연구소에서도 맨해튼 계획에 대한 연구가 벌어졌는데, 이런 연구로 인하여 캐나다는 1945년 11월에 세계 2번째로 원자로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으며, 여기서의 삽질인 ZEEP(Zero Energy Experimental Pile)이 발전하게 된 것이 CANDU이다. 캐나다가 중수로를 삽질한 것도 맨해튼 계획 당시 중수를 생산하던 공장이 캐나다에 있어서였다.
6. 기타
- 우라늄을 분리하는 원심분리기 건설에 전선용으로 대량의 구리가 필요했는데, 전시 상황이라 탄피의 재료인 황동이 지속적으로 필요했던지라 황동의 주재료인 구리 수급이 쉽지 않았다. 현대에는 이런 방식을 쓰지 않으나 당시 기술력상 추출 방식이 복잡했기 때문에 생긴 일. 미 정부는 구리를 구할 수 없자, 대범하게도 Y-12 프로젝트[24]를 출범시켜 미국 재무부 창고에 보관[25]은 증서(silver certificate)라는 것이 있었다. 금본위제가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전, 은도 금 못지않은 기초자산이어서, 재무부에 보관된 은을 담보로 지폐를 발행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재무부 금고에 쌓여 있던 은은 어마어마했을 터. 이후 이 은은 40년 넘게 전략물자로 계속 보관해 오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들어서 은 기념주화 제작·판매가 99대 미국 의회에 의해 허용(Public Law 99-61)됨에 따라 기념주화의 재료로 소진되었다. 이 법에 따른 기념주화는 1986년에 처음 생산되어 지금까지도 매년 생산 중이나,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보관되어 있던 은은 이미 다 썼다.] 중이던 1만 3천 톤의 은을 가공하여 대신 사용했다.[26] 물론 개발이 끝나고 나서는 시설을 꼼꼼하게 다 뜯어내고 은을 모두 찾아내어 회수했는데 고작 0.036% 미만의 손실밖에(?!)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Y-12 프로젝트에 맨해튼 계획 예산[27]의 절반이 들어갔다.
이 은을 조달할 당시 재무부와 프로젝트 팀 사이에서 있었던 대화가 유명하다.
재무부: 은이 얼마 정도 필요합니까?
맨해튼 프로젝트 팀: 대충 1만 톤 정도요?[28]
- 미국은 맨해튼 계획 완수 이후 '앞으로 장기간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다'라는 전제 위에 모든 전후 처리를 결정하였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어차피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국의 핵무기 때문에 소련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대인배의 풍모를 보인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런데 4년 만에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전제가 깨지게 되었다.
소련도 핵무기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기에 2차대전 동안 이론 연구는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핵분열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문과 기사가 사라진 것을 이상하게 여긴 소련 과학자가 미국이 핵분열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도 했다. 결국 맨해튼 계획에 간첩을 투입하여 미국의 연구개발 자료를 빼돌렸다. 자신들의 이론 연구와 엄청난 돈과 인력을 퍼부어서 실험한 미국 쪽 자료를 바탕으로 단시간 안에 핵무기를 만들었다. 1949년 8월, 첫 원폭실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쪽도 미국의 맨해튼 계획과 비슷하게 거의 60만 정도의 인력들을 쏟아부어서 성공시킨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미국 과학자들은 대부분 소련 따위가 어떻게 핵무기를 만드냐고 생각했지만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특히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퇴임 이후에도 "난 소련이 핵무기를 가지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2차대전 말 미국은 낙후한 과학기술과 폐허가 된 국토의 재건 때문에 소련의 핵무기 개발은 최소 20년 이상 걸린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은 이후에도 소련의 과학기술 개발을 깔보았고 이로 인해 나중에 뒤통수를 한 번 더 맞게 된다.[30]
-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국 흑인 과학자가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근거없는 루머이다. 처음에 어디서 전파되었는 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맨해튼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Chicago pile 1의 기념 사진 중 흑인이 없다는 이유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1941년부터 1946년까지 약 130,000여명의 과학자가 동원되었고 수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시카고 파일1 저 사진 한 장 만으로는 일반화할 수 없다. 애초에 미국이란 나라의 구성원은 흑인을 포함해 여러 인종이 섞여 있다보니 당연히 다른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흑인, 다른 인종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다른 인종 특히 백인에 비해서 흑인 과학자의 수가 적다는 논리로 공격하는 사람들은 당시 시대상을 모를 확률이 높다. 1940년대는 흑인이 린치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인종차별을 미연방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여건상 비교적 적을 수 밖에 없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편견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행정명령 8802호도 존재한다. 즉, 인종 차별 같은 것으로 국가 안보에 반드시 필요한 연구에 해악을 끼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It is the policy of the United States to encourage full participation in the national defense program by all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regardless of race, creed, color, or national origin, in the firm belief that the democratic way of life within the Nation can be defended successfully only with the help and support of all groups within its borders."
"인종, 신념, 피부색, 출신지에 관계없이 미국 국민 모두가 국방 프로그램에 완전히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으로, 국경 내 모든 집단의 도움과 지원이 있어야만 국가의 민주적인 삶의 방식이 성공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다."
"인종, 신념, 피부색, 출신지에 관계없이 미국 국민 모두가 국방 프로그램에 완전히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으로, 국경 내 모든 집단의 도움과 지원이 있어야만 국가의 민주적인 삶의 방식이 성공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다."
흑인 과학자 중에 가장 유명한 과학자는 윌리엄 제이콥 녹스 주니어(William Jacob Knox Jr.)이다. 녹스는 흑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all-white Corrosion Section에서 전례없는 직책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녹스팀은 우라늄 동위원소를 분리하는 연구에 참여했으며, 우라늄 헥사플루오라이드를 활용한 복잡한 과정을 통해 1945년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사용된 원자폭탄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업적은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며 사망할 때까지 계속 인종차별을 당해야만 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컬럼비아 대학교, MIT, 맨해튼 프로젝트 국립 역사 공원에서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웃기게도 보안상의 이유로 아무 잘못없는 청소부들이 한번 들어갔다 전쟁이 끝난 6개월 뒤에 풀어줬다.
- 맨해튼 계획의 자료를 빼돌린 간첩으로는 클라우스 푹스가 유명하다. 독일 태생의 영국 국적 물리학자이고, 1932년에 공산당에 입당했었다. 영국 내에서 핵 연구를 주도하던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래서 영국의 자료가 미국으로 넘겨졌을 때 영국측 과학자로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선임 과학자였던 만큼 소련이 원하던 핵 개발 핵심 자료 대부분(또는 전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 푹스는 플루토늄 폭탄에는 포신형 타입이 아니라 내파형이어야 한다는 설계를 넘기는 등 소련이 미국에 비해 시행착오를 덜 겪고 미국보다 적은 자원으로 빠르게 핵 개발을 성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수소폭탄을 52년에 성공시켰는데 소련은 53년에 바로 따라잡았다.
푹스 외에 해리 골드, 데이비드 그린글라스, 테오도르 할, 줄리우스 로젠버그와 에텔 로젠버그 부부, 모리스 코헨, 조지 코발, 멜리타 노우드 등등이 주요 간첩으로 꼽힌다. (그 외의 알려진 인물은 위키피디아 Atomic spies 항목을 참고하라.)
이러한 간첩 적발은 베노나 프로젝트로 소련 정보망의 암호를 해독하면서 클라우스 푹스가 첩자였다는 걸 적발하면서 관련자를 줄줄이 엮어 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중에 소련 측에서 흘러나온 정보로 뒤늦게 알아낸 인물이나, 법정 밖에서 공개할 수 없는 자료라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 그리고 정황상 관련자가 더 있을텐데 적발된 자들이 입을 다물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첩자가 더 있다.
7. 관련 발언
if I had foreseen Hiroshima and Nagasaki, I would have torn up my formula in 1905.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었을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었을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We knew the world would not be the same. Few people laughed, few people cried, most people were silent. I remembered the line from the Hindu scripture, the Bhagavad-Gita. Vishnu is trying to persuade the Prince that he should do his duty and to impress him takes on his multi-armed form and says,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31] I suppose we all thought that, one way or another."
"우리는 세상이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웃는 사람도, 우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다수는 침묵에 잠겼습니다. 저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비슈누는 왕자가 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그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여러 팔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는 말했지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원문][33] 아마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며. 녹화 영상
"우리는 세상이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웃는 사람도, 우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다수는 침묵에 잠겼습니다. 저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비슈누는 왕자가 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그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여러 팔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는 말했지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원문][33] 아마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며. 녹화 영상
8. 관련 문서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핵개발
- 스웨덴의 핵개발
- 니고연구
- 소련의 핵개발
- 양탄일성(중국의 핵개발 프로젝트)
- 영국의 핵개발
- 프랑스의 핵개발
- 북한의 핵개발
- 인도의 핵개발
- 핵실험/미국
- 우란프로옉트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9. 참고 자료
- 원자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THE ATOMIC BOMB) - 저자는 리처드 로즈. 핵무기의 탄생을 다룬 논픽션 서적. 넓게는 핵분열과 원자력에 대한 개념부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이르기까지 당시 핵개발 전체를 소설 형태로 다루고 있으며, 이 맨해튼 계획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98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10. 창작물에서의 등장
- 2023년 7월[34] 맨해튼 계획을 지휘했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대기 중후반부를 다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개봉했다. 최초의 핵무기 실험과정인 트리니티 실험을 비롯하여 어니스트 로렌스, 엔리코 페르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을 등장시키며 역사적 사건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 문명 시리즈에서는 문명 1부터 최신작 문명 6에 이르기까지 개근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문명 1부터 문명 4까지는 전 세계에서 하나만 지어질 수 있는 불가사의로 나오며, 문명 5와 문명 6에서는 각 문명마다 시행하는 프로젝트로 등장한다. 효과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내내 똑같으며, 문명 4까지는 한 문명이 건설하면 모든 문명이 핵을 만들 수 있게 되고
모든 문명이 소련처럼 첩보질을 많이 해서 그런가?문명 5부터는 개발한 문명에서만 만들 수 있다. 문명 6에서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이 분리되었고, 수소폭탄은 아이비 작전을 추가로 개발해야 된다. - 슈퍼파워 2에서는 외교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국가를 핵 공격 시, 다른 모든 핵보유국들에게 핵 보복 공격을 받게 된다.
- 캐나다의 락밴드 러시는 이 계획과 더불어 이 계획의 결과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다룬 동명의 노래 Manhattan Project를 발표하기도 했다.
- Braid는 워낙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게임이지만 가장 메이저한 해석은 이 맨해튼 계획을 다룬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 왓치맨의 등장인물인 닥터 맨하탄은 이 계획에서 따 붙여진 이름이다. 작중에서 나오는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히어로명은 '미국의 적들이 두려워할 만한 호칭'이라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다.
- 남북 전쟁이 남부연합의 승리로 끝나 미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세계를 그린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2차대전 시기에 독일 제국과 북부에서 독자적으로 자신들만의 맨해튼 계획을 발동시킨다. 문제는 북부의 경우, 남부연합의 게릴라 부대와 남부연합군이 개시한 연구소 편도 폭격으로 인해서 자체적인 핵개발이 무산되고 만다. 결국 북부의 핵개발은 독일이 제공한 연구결과를 통해서 핵을 완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 메탈기어 시리즈의 등장인물 오타콘의 조부가 맨해튼 계획의 참가자였다고 한다. 참고로 오타콘의 조부가 맨해튼 계획에 참가하면서 생긴 방사능 피폭 때문에 그 아들인 휴이는 선천적인 지체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 빅뱅 이론의 셸든 쿠퍼가 여자친구인 에이미와 잠시 헤어진 에피소드에서 셸든은 이별의 충격으로 이 계획에 참가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딴 고양이들을 키웠던 적이 있다.
- 아이언맨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는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이 계획에 참여했다고 나온다. 군수물자를 생산/개발하는 미국의 천재 과학자이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여담으로 아들인 토니 스타크는 어벤져스에서 세계안전보장이사회가 치타우리의 지구 침공을 막고자 맨해튼에 발사한 핵미사일을 막아내게 된다.
- 팀 포트리스 2에서는 데모맨의 핼러윈 모자로 핵폭발 버섯구름을 머리에(...) 쓰고 다닐 수 있는 만(Mann)해튼 작전을 얻을 수 있다. 드랍이 되지 않으므로 거래를 통해 구하자. 사실 맥주거품 같다는 의견도 있다.
-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는 나치 독일이 다트 이슈드의 우월한 기술력을 훔쳐서 전쟁에 승기를 잡고, 현실 역사와는 반대로 1948년 12월 21일에 뉴욕에 핵을 투하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후속작에서 핵으로 폐허가 된 뉴욕시를 뒤지다 보면 나오는 신문 기사를 읽으면 미국도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참여한 9명의 과학자가 갑자기 모두 살해되는 바람에 끝내 핵폭탄 개발에 실패하고 만다.
- 나치가 사라져 소련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는 대체역사물 게임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에서는 독소전쟁과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아 전 인류의 기술력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되고 원래 역사라면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어야 할 과학자들이 유럽에 남아있다가 소련이 유럽 국가들을 점령해서 남아있던 과학자들을 납치 혹은 포섭하여 소련이 세계 최초로 핵개발을 성공한다.[35] 1편에선 연합군도 쓸 수 있지만 이건 멀티플레이용 밸런스 조정을 위한 게임적 허용이다.
- 하츠 오브 아이언에서는 핵 관련 기술 연구 속도를 가속화하는 미국의 국가중점으로 나온다.
- 로맹 위고의 만화 엔젤 윙스에서 트리니티 실험과 히로시마 장면이 나온다.[36][37]
10.1. 듀크 뉴켐 시리즈
듀크 뉴켐 3D의 후속작들 중 하나. 듀크 뉴켐 3D에 비해 좀 더 본격적인 3D화해서 나온 작품이다. 하필 발매시기가 듀크 뉴켐 포에버 전이라서, 이 게임을 듀크 뉴켐 포에버로 알고 있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3D이지만 진행 방식은 횡스크롤식. 즉 록맨 X8 같다고 보면 된다.
원래 이 작품의 최종 보스는 Dr. 프로톤이 될 예정이였다. 실제로도 로봇 과학자라는게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고. 하지만 무슨 사정으로 인해 메크 모르픽스(Mech Morphix)라는 이름으로 변경. 대신 듀크 뉴켐 포에버에서 등장할 예정...이였으나 다시 짤렸다가 DLC에서야 보스로 등장!...했으나 최종 보스가 아닌 중간 보스로 나왔다... 프로톤 입장에서는 현실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충격과 공포였을지도.
10.2. 만화책
Manhattan Project2012년 3월부터 미국 이미지 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만화. 글 조나단 힉맨(Jonathan Hickman), 그림 닉 피타라(Nick Pitarra). 11화까지 출판되었다.
일단은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한 당대 로스 앨러모스의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맨해탄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한 대체역사물로 보이나, 실상은 약을 거하게 들이마신 판타지물. 실존 인물을 따서 만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도덕과 윤리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지 오래이며, 하나같이 사격과 격투술에 능하며, 이미 인간을 초월하거나 인간이 아닌 인물도 있다.
2017년 시공사를 통해 한국에도 정발 예정이다. 한국 정발 제목은 맨해튼 계획이 아니라 맨해튼 프로젝트.
10.2.1. 시놉시스
Jonathan Hickman의 『맨해튼 프로젝트』 제1권. 1940년대 미국. 나치 독일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대통령 루스벨트의 주도하에 비밀스런 조직이 결성된다.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 파인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과학자들을 한데 모은 이 모임은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 연구를 시작한다. 연구 주제는 전쟁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인류 최악의 발명품, 바로 핵무기 개발이다. 실제 ‘맨해튼 프로젝트’는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여 2차 세계 대전에 종지부를 찍은 바 있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끝이 아니었다면? 인공지능 개발, 우주 비행 등 인류 역사에 남은 커다란 발견이 모두 이들의 몫이었다면? 철저히 베일에 싸인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 안에 벌어진 일은 그저 상상밖에 할 수 없다. 조나단 힉맨은 자신만의 상상으로 이 부분을 채운다. 오로지 과학만이 중요하기에, 이들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연구한다. 금기나 성역 따윈 없다. 멈출 생각도 없다. 그리하여 이들이 도달한 곳은… 지금껏 인류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이다. ‘죽이는’ 과학자들의 광기 어린 비밀.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인류 역사의 뒷면이 드디어 공개된다. |
10.2.2. 출판사 서평
과학자들이 세상을 주무른다?! 원하는 모든 것을 연구하기 위한 비밀 모임 ‘맨해튼 프로젝트’ 1940년대 미국. 나치 독일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대통령 루스벨트의 주도하에 비밀스런 조직이 결성된다.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 파인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과학자들을 한데 모은 이 모임은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 연구를 시작한다. 연구 주제는 전쟁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인류 최악의 발명품, 바로 핵무기 개발이다. 실제 ‘맨해튼 프로젝트’는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여 2차 세계 대전에 종지부를 찍은 바 있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끝이 아니었다면? 인공지능 개발, 우주 비행 등 인류 역사에 남은 커다란 발견이 모두 이들의 몫이었다면? 철저히 베일에 싸인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 안에 벌어진 일은 그저 상상밖에 할 수 없다. 조나단 힉맨은 자신만의 상상으로 이 부분을 채운다. 오로지 과학만이 중요하기에, 이들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연구한다. 금기나 성역 따윈 없다. 멈출 생각도 없다. 그리하여 이들이 도달한 곳은… 지금껏 인류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이다. ‘죽이는’ 과학자들의 광기 어린 비밀.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인류 역사의 뒷면이 드디어 공개된다. 아이즈너상 ‘최우수 연재 만화상’ 노미네이트 (2013년) 괴짜 작가 조나단 힉맨이 그리는 대체 역사 조나단 힉맨은 미국 만화계에서 다소 특이한 지점에 자리한 작가이다. 그가 늘 골몰하는 한 가지 화두는 바로 과학. 마블 코믹스의 오랜 시리즈인 [판타스틱 포]와 [어벤저스]도 그의 손을 거쳤을 땐 과학 전문서에 버금가는 난해한 전개를 선보인 바 있다.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커다란 밑그림을 그려 놓은 후 각기 다른 부분을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힉맨 특유의 스타일은 그래서 혹자에겐 난해함으로,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런 그가 실존 인물과 실제 역사, 그리고 실제 비밀 조직이었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20세기 물리학 올스타팀’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면면의 과학자들이 총출동하지만, 이들은 모두 정상이 아니다. 다중인격 오펜하이머, 알코올 중독 아인슈타인, 자아도취 파인만, 거기에 A.I.로 탈바꿈한 루스벨트 대통령까지…. 미국, 그리고 세계 역사가 요동쳤던 2차 세계 대전 및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한한 상상력. 자타공인 과학 덕후(?)답게 조나단 힉맨은 자신이 가장 잘 풀어 낼 수 있는 실제 사건에서 출발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대체 역사를 창조했다. ※이미지 코믹스(Image Comics) 이미지 코믹스는 마블, DC 코믹스에 이어 현재 미국 만화 시장의 3위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는 비교적 신생 브랜드이다. 1992년, 당시 마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몇몇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한 이미지 코믹스. 이 배경을 이해하려면 미국 만화 시장의 특수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슈퍼 히어로로 대표되는 마블과 DC 코믹스는 모든 캐릭터 및 이야기의 소유권을 회사가 갖는다. 자연히 작가와 화가들은 작품의 온전한 주인이 되지 못하며 창작에도 제약이 생긴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창작자에게 소유권과 자유로운 창작권을 인정하는 시스템의 이미지 코믹스가 탄생했다. 잠깐의 부흥기와 긴 침체기를 겪은 이미지는 2010년, TV 드라마로 제작된 [워킹 데드]의 대성공에 힘입어 반등에 성공했고 그 후 연이은 인기작을 선보이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시공사는 이미지 코믹스의 간판 [사가]를 시작으로, 꿈꾸는 인공지능 로봇 이야기 [디센더], 미치광이 과학자들의 비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차례로 선보였으며, 추후 더욱 다양한 작품의 출간이 계획되어 있다. |
10.2.3. 등장 국가
- 미국: 가장 현실의 미국과 비슷해 보이나 프리메이슨이 권력을 잡고 있는 등 여러 차이점이 보이는 편이다.
- 소련: 퉁구스카에 떨어진 외계 기술을 이용하여 비밀 우주기지 '스타시티'를 운용하고 있으며, 해파리 같은 정체불명의 생물을 배양하는 로봇의 인공지능으로 사용하는 등 실제 소련과 비교해봤을 때 상당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 일본: 작중 시작시점에서는 실제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전쟁 중. 하지만 승려의 생명을 이용한 순간이동장치인 '토리이'와 자율전투로봇인 '카미카제'를 운용하는 등 실제 일본 제국보다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순식간에 핵 병기를 맞고 항복한 후 기술 셔틀로 전락한다.
10.2.4. 등장인물
10.2.4.1. 미국
- 레슬리 그로브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해리 S. 트루먼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조셉 오펜하이머: 이 만화의 주인공격 인물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에서 모티브를 딴 인물이다. 하지만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아닌 이유는 이 만화에선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쌍둥이 형제인 조셉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싶어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살해하고 자신이 그를 대신한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리처드 파인만
- 엔리코 페르미
- 해리 K. 더그힐란 2세
10.2.4.2. 독일
- 베르너 폰 브라운
- 헬무트 그뢰트훕
10.2.4.3. 소련
- 유리 가가린
- 라이카
- 세르게이 코롤료프: 작품 중 잠깐 나오고 끔살당하나 로켓기술의 핵심인 점과 가가린과의 관계를 볼 때 코롤료프로 추정된다.
- 드미트리 우스티노프
10.2.4.4. 일본
[1] 현재가치로 약 330억 달러, 한화 약 40조 원[2] 최초의 원자로를 만드는 실험이었다.[3] 맨 왼쪽 하단에 있는 인물이 시카고 파일을 지휘한 엔리코 페르미다. 사진에 있는 다른 과학자들 성명은 다음 링크 참조. #.[4] 실제적으로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헝가리계 물리학자인 레오 실라르드가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핵개발을 건의할 때 당시 유명한 아인슈타인에게 허락을 받아 그를 대표자로 하여 건의하였다.편지[5] 막스 보른, 에르빈 슈뢰딩거, 리제 마이트너, 슈트라스만, 클라우스 푹스 등과 영국으로 망명해 튜브 앨로이스에 합류하지만 미국과 계획이 합쳐지면서 넘어왔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참여하진 않았다.[6] 유럽 망명 과학자중 가장 유명하고 계획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학자[7] 참고로 소련(러시아)측에선 참여한 사람이 없다. 유럽, 20세기 초반 중요한 학자들은 독일과 영국 과학자들이 대부분이였다. 물론 마리 퀴리나 드 브로이, 페르미 같은 사람도 있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독일이고 다음으로 영국 출신, 혹은 그곳에서 유학하거나 연구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케임브리지 러더퍼드 밑에서 공부한 닐스 보어가 대표적. 그외 에드워드 텔러나 유진 위그너, 폰 노이만 등 이런 헝가리(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 과학자들도 베를린대, 괴팅겐, 취리히 공대 등 어떻게든 독어권, 독일이랑 연관이 되어있던 학자들이다.[8] 이사람은 망명과학자가 아니라 2살때 부모님따라 미국으로 이주하고 오펜하이머, 라이너스 폴링 등과 같이 1920년대에 독일 등 유럽에 유학간 미국인이다. (오토 한, 슈트라스만, 마이트너, 프리슈, 리하르트 쿤 등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도 당대 과학, 양자역학, 핵물리학, 화학 최선진국은 독일이였고 미국에게 독일 유학은 자랑거리였다.)[9] 야전지휘관은 아니어서 동시기의 명장들(예: 맥아더, 패튼, 니미츠, 아이젠하워)에 비해서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못했지만, 2차대전사를 언급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주요 인물이다. 펜타곤 건축, 그리고 원자폭탄 개발이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10] 브리태니커 참고[참고] Feasibility, Bomb design concepts, 영문위키.[12] 헝가리인이라 '실라르드'가 성이다. 책마다 실라드, 질라르드 표기가 따로 논다.[13] 이는 연구, 실험 장소를 건설한 공병, 경비 병력, 연구 시설의 잡역 종사자들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다. 실제 직접적인 연구를 수행한 인력은 5,000명 가량이며, 이 중 2,000명 정도가 자연과학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서구 대학에선 박사 학위 소지자가 그리 많지 않아 석사 학위 소지자나 박사 과정 재학생이면 전임 교원으로 임용될 수 있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북미 지역의 자연과학 분야 전문가들을 총동원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14] 당시 M4 셔먼 전차의 평균 가격이 $47,000으로 약 43,000대 생산이 가능한 금액이다. 당시 이 엄청난 비용은 군사비밀로 숨기고 있었는데 만일 핵폭탄이 실패하거나 성공하더라도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의회에 알려지게되어 추궁당할 사안이었다.[15] 1945년 미국의 GDP가 총 2280억 달러였다. 단일 프로젝트에 GDP의 0.88% 가량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거액을 쓴 셈.[16] 공교롭게도 참여한 과학자들의 상당수가 유태인이었다.(페르미의 경우는 아내가 유태인) 이들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거나, 나치가 2차대전에서 승리할 경우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입장이었고, 때문에 더욱 열성적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동참했던 것이다.[17] 처음에 루스벨트와 독대하여 핵무기 개발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닐스 보어는 중언부언 늘어놓는 대신에 로버트 풀턴의 증기선 개발 지원을 거부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야기를 하였다. 기술에 대한 무지가 결국 전쟁의 패배로 이어진다고 암시했던 것. 이에 루스벨트는 아무 말 없이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바로 맨해튼 계획을 허가해준다. 단, 여기선 닐스 보어가 설득을 위해 꺼낸 이야기이지만 역사학의 관점으로 보면 이런 비유는 정확하진 않은게, 나폴레옹에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문서 참조.[18] 다시 말해 부통령도 모르던 기밀 프로젝트였다. 출처 사실 트루먼은 대통령 이전 국방사문위원회 위원장 시절에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 뻔한 적이 있었다. #[19] 훗날 맨해튼 프로젝트 참가과학자들의 회고록들을 보면 까라면 까라는 그로브스의 불도저식 프로젝트 진행에 수많은 과학자들이 학을 뗐다고 한다.[20] 이는 미국이 독일 점령 때 소련한테 베를린 입성을 뺏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21] 다만 이 부분은 미합중국 정부에 대한 부당한 비판이라 할 수 있는데 다 끝난 뒤에야 일본이 전의를 잃었느니 마느니 하지만 당시 미국이 일본 수뇌부의 생각을 알고 있을 리가 없으므로 일본이 아직 핵이고 뭐고 몇 번을 맞아도 항복할 생각이 없었는지 아니면 패닉에 빠져 항복을 논의하고 있었는지를 알 방법 자체가 없었다. 게다가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는 다름아닌 미국과 소련이 정상회담을 통해 세부 날짜까지 상호 합의한 사항으로, 소련의 선전포고가 미국을 급박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일부의 주장일 뿐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22] 로스 앨러모스, 오크리지, 버클리 방사선 연구소(현재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23]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은 체인 리액션에서 싱크로트론이라든가 중수소 실험실이 있는 연구소가 아르곤 국립 연구소다.[24] 영문위키의 Y-12 프로젝트.[25] 당시 미국에서 발행되던 지폐 중에[26] 전기 전도도는 구리보다 은이 좋다. 구리가 더 저렴하고 평시에는 대량으로 구할 수 있기에 전선 등 전기를 이용하는 것에 구리가 더 많이 쓰인다. 문제는 그만큼 구리가 여기저기 안 쓰이는 데가 없다보니 전시에는 구리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놋그릇도 징발해다가 녹여 쓸 정도였다. 반도체 배선에는 전기 전도도가 은의 약 70% 수준이지만 연성과 전성이 매우 뛰어난 금을 쓰며, 송전선에는 송전탑간 거리를 감안한 장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훨씬 가벼운 알루미늄 소재를 쓴다.[27] US$ 2 billion in 1939(equivalent to about $23 billion in 2020).[28] 1만 톤이면 탈조약형 경순양함 한 척 정도의 질량이다.[29] 31.1그램이다. 환산하면 약 4188만7706 온스[30] 의외로 소련의 기초과학 수준은 매우 높았는데, 소련이 붕괴한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러시아가 그 수혜를 보고 있을 정도이다.[31] "am become"은 현재완료시제의 고어적 표현이다(have + pp에서 have 대신 be가 들어감).[원문] कालोऽस्मि लोकक्षयकृत्प्रवृ द्धोलोकान्समाहर्तुमिह प्रवृत्तः ।(BG 11:32); 다양한 번역이 존재한다. 다만 '죽음'보다는 '시간'으로 번역하는 편이 주류이다.[33] 시드 마이어의 문명시리즈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면 나오는 대사이기도 하다.[34] 한국은 8월 15일 개봉[35] 심지어 개발단계에서는 미국도 정식 참전국이라는 설정도 있었고 이로 인해 소련군 엔딩은 워싱턴 DC에 핵이 투하된다는 내용이었다.[36] [37] 파일:engel_wings_nuk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