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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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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Mafia)
1. 개요2. 단어
2.1. 어원2.2. 일반명사로서의 마피아
3. 역사
3.1. 세계 대전 이전3.2. 미국3.3. 세계 대전 이후 시칠리아3.4. 본토 범죄조직 세력의 대두3.5. 현재의 이탈리아 범죄조직3.6. 현재의 미국 마피아
4. '정통' 마피아의 조직양상
4.1. 이탈리아-시칠리아식 가부장적 대가족문화
4.1.1. 다른 이론들
4.2. 파트론-클라이언트 관계4.3. 미약한 중앙권력과 부패한 민주주의4.4. 자본주의와 국제금융4.5. 오늘날의 '정통' 마피아
5. 주요 단어
5.1. 직책5.2. 용어
6. 마피아 조직 강령과 상징7. 마피아 조직 특징 및 기타 사항8. 이탈리아의 마피아
8.1. 시칠리아 마피아 주요 인물과 파벌8.2. 마피아 형태를 한 다른 지방의 범죄조직
9. 미국의 마피아
9.1. 뉴욕 5대 패밀리9.2. 뉴욕 마피아 주요 인물9.3. 다른 도시의 마피아9.4. 다른 도시의 마피아 주요 인물9.5. 미국 마피아의 동업자들
10. 마피아 형태를 한 다른 나라의 이탈리아계 범죄조직11. 파생12.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12.1. 마피아를 비중 있게 다룬 작품12.2.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마피아 조직12.3. 마피아 관련 설정의 캐릭터

* 나무위키의 마피아 문서는 '마피아'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시칠리아 마피아(코사 노스트라)와 이탈리아계 미국 마피아(라 코사 노스트라)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본토에 위치한 마피아 형태의 다른 범죄조직들과 캐나다와 호주에 위치한 마피아 형태의 이탈리아계 범죄조직까지를 포함한 개념으로 서술되어 있다.[1]

1. 개요

마피아(Mafia)는 보호세[2] 갈취, 범죄자 간의 분쟁 중재, 불법적 합의 및 불법 거래의 조직과 감독을 주요 사업[3] 으로 하는 시칠리아미국신디케이트범죄조직이다. 상술한 활동 외에도 암금융(고리대금), 도박, 마약 밀매, 사기 등도 부차적 사업으로 삼는다.

2. 단어

'마피아'라는 단어는 원래 시칠리아의 비밀결사와 조직폭력배, 더 나아가 시칠리아 마피아가 개척한 미국의 범죄조직을 일컫는 단어였지만, 후에 영미권에서 '기업형 범죄조직'을 부르는 일반명사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2.1. 어원

마피아의 어원이자 첫 발상지는 이탈리아로, 그중에서도 주로 시칠리아 지역의 비밀 결사를 근원으로 하는 조직이며 이들이 미국에서 금주법을 타고 거대화되면서 지금도 좁은 의미로는 (라) 코사 노스트라 계열인 시칠리아의 범죄조직과 미국의 이탈리아계 범죄조직만을 마피아라 칭한다.[4] 좀 더 넓게는 이탈리아계 범죄조직 전반을 마피아라 칭하기도 하고[5] 더 넓게는 일반명사로 쓰여 국적 불문 범죄조직 그 자체를 칭하기도 한다.

기원이나 명칭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단 근원지는 시칠리아가 거의 확실하다. 시칠리아는 여러 번 외세의 침략을 받아 외세에 대항하고 그 과 질서를 따르지 않는 은둔 세력들이 매우 많았고, 이들이 정의로운 집단으로 취급되었다.[6]
  • 한편 상술했듯 시칠리아 마피아 외에도 나폴리를 거점으로 하는 카모라, 칼라브리아의 은드랑게타(Ndrangheta), 풀리아의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Sacra Corona Unita), 베네토의 말라 델 브란타(Mala del Brenta) 등을 마피아로 칭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코르시카 제도를 거점으로 하는 조폭 유니온 코르스(Unione Corse)등도 마피아로 분류하기도 한다.[7]

어원에 있어 가장 유명한 것은 1282년 시칠리아의 만종 사건을 둘러싼 시칠리아 기사들의 구호였던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이탈리아는 열망한다. 프랑스인의 죽음을)의 이니셜을 취한 것이라고 하나, 이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라 후대의 창작, 즉 미드 등에서 효과적인 연출을 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소리가 많다.
  • 시칠리아의 만종사건은 13세기의 교황의 인가를 얻어 성왕 루이 9세의 동생인 샤를 앙주가 남부 이탈리아와 함께 시칠리아를 무력으로 병합했는데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던 시칠리아인들이 그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아라곤의 페드루 3세를 초빙해 프랑스계 왕국과 맞서 싸운걸 말한다. 교황과 프랑스가 손을 잡고 아라곤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으나 아라곤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고, 시칠리아는 아라곤의 지배에 들어가고 나머지 본토는 나폴리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하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인 변동의 본질적 이유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보유하고 있는 폰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북쪽으로는 독일과, 남쪽으로는 이탈리아를 경계로 하여 교황령을 압박하고 있는 형세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호엔슈타우펜 세력의 확장을 저지함과 동시에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이념을 가진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사람보다 좀 더 교황령에 우호적인 사람에게 남부 이탈리아를 넘기고 싶었던 교황의 술책이 만든 작품이었다.

현재로서는 도적들에게서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부재 지주들이 만든 소규모 사병 조직 'mafie(채석장)'가 어원이라는 설, 'Mafioso(기세등등하다)'라는 단어에서 왔다는 설 등이 있다.

어원과는 별개로 원래 이탈리아인들에게 통용되던 'Mafia', 'Cosa Nostra'라는 말의 용법은 각각 한국어의 '건달', '조직'과 상당히 유사하다. 다만 코사 노스트라의 경우 조직 하나가 아닌 "연합체"이기 때문에 약간 괴리가 있다.
  •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의 2세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마피아의 경우 '라 코사 노스트라(La Cosa Nostra, "This Thing of Ours", "우리들의 것")'라고 부른다.[8] 비슷한 말장난으로 유대계 미국 조직폭력배들을 '코셔 노스트라(Kosher Nostra)'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코셔는 유대인들의 율법에 맞게 생산된 식품을 일컫는 말이다.

2.2. 일반명사로서의 마피아

위에서 설명한 대로 마피아(Mafia)라는 단어는 원조인 시칠리아-미국 범죄조직의 유명세로 인해 현재는 기업형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는데[9] 대표적인 예로 야쿠자는 Japanese Mafia, 삼합회는 Chinese Mafia라 부르는 식이다. 보다 정확한 명칭은 조직범죄/범죄조직(Organized Crime/Criminal Organization)이지만, 너무 딱딱하거나 길어서 그런지 '국적+마피아'로 퉁쳐서 부르는 편이다. 영미권에서 러시아군을 붉은 군대(Red Army)라고 부르듯이 러시아의 범죄조직을 편의상 레드 마피아 혹은 러시아계 마피아(Russian Mafia)라 부르는 것도 그 이유, 미국에서는 단순 갱스터라고 부르기에는 체계화, 기업화되었지만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혈통으로 이루어진 범죄조직을 아일랜드계 마피아(Irish Mob), 유대계 마피아(Jewish Mafia), 멕시코계 마피아(Mexican Mafia)라고 부르는 식이다.[10]

즉, 아무런 수식 없이 단독으로 마피아라 함은 보통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을 칭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마피아의 개념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을 근거로 하는 강력한 범죄조직. 자국에서 정치적 폭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20세기 들어 미국 등의 대도시에서 마약과 도박, 금융 따위에 관련된 거대한 범죄조직을 형성하고 있다.'라고 정의했다.

3. 역사

3.1. 세계 대전 이전

이탈리아의 범죄조직들은 약 3000년 동안 이탈리아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 군대의 침략과 착취 기간을 지나며 진화했다. 지하 비밀 사회는 처음에 침략자들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서 형성되었고 억압에 대항하는 자경단원들의 정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형성되었다. 이탈리아 전역에 고유한 범죄조직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특기할만한 조직인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가 형성된 시칠리아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수 천년 침략의 역사를 거치면서 더욱 검소해졌고 안전, 보호, 정의, 생존을 위해 가족의 유대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토착 무력집단으로 출발한 이들 무리는 더욱더 폐쇄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나아가 19세기 중반을 경계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 집단으로 변하게 된다. 즉 현대적인 마피아의 최초 등장은 보통 1800년대로 보고 있다.

덧붙여 마피아들은 이탈리아인으로서 국교 가톨릭을 믿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들이 서로 종교적 혈연을 맺는 경우가 생겼고 거기에 더해 가톨릭 용어가 마피아 사회로 유입되는 경우가 생겼다. 예로 "영성체", "견진성사" 등이 있다. 후술할 이 단어들은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당장 대부에서 사람들이 비토 콜레오네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행위를 보자.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장면과 흡사하다.

당시 마피아 조직은 이탈리아 왕국이 국력을 확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여 정치, 경제, 사법에 걸쳐 세력을 확장했고, 결국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탈리아인들의 이민 붐을 틈타 마피아가 미국에 진출하게 된 것도 이 시기이다.

1920년대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를 통치하던 시절, 파시스트 정권은 시칠리아에서의 정부 세력을 강고히 하기 위해 1925년부터 검찰과 경찰, 군대까지 동원하여 철저한 마피아 탄압을 시작한다. 이에 마피아는 미국으로부터 자객과 무기까지 수입하며 저항했으나, 강대한 정부의 힘 앞에서는 무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는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 대부분이 수감되거나 정부의 단속을 피해서 더 지하로 파고들어가 숨어지냈고 나머지 조직원은 '친척'들이 사는 미국으로 달아나게 된다. 때문에 이를 전쟁 전 세대의 몰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파시스트 정권의 서슬이 얼마나 퍼랬던지 시칠리아의 범죄율은 1/10 이하로 떨어졌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시칠리아가 가장 살기 좋았던 시절이 무솔리니 통치 시절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다.

3.2. 미국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시칠리아와 다른 이탈리아 지역에서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으로 이주하거나 파시스트 정권을 피해 도주한 조직폭력배들이 그 나라에서 과거의 범죄 수법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그중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기존의 미국인들이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을 박대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단체를 원했다. 어느 정도로 이탈리아 이민자의 차별이 심했냐하면 뉴올리언스의 시장 조지프 셰익스피어는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출신의 이탈리아 사람들을 가리켜 공공연히 "우리 중 가장 게으르고 사악하며 무가치한 인간들이며, 이 극악무도한 자들을 끝장내자, 설령 지구상의 모든 이탈리아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 할지라도."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런 환경은 이탈리아 사회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범죄적인 요소를 사용하게끔 하는데 기름을 붓는 셈이 되었다. 이에 수백 년 이탈리아 역사를 통해 이미 구축되어 있던 범죄조직 구조와 충성심을 적절하게 이용한 미국 마피아가 동포 사회를 보호하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그 사회를 착취해 나갔다. 또한 이탈리아계 이민자 공제회, 상업 조직 같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이 단체들은 곧 마피아들의 힘의 원천이 된다.[11]

초창기 미국 마피아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검은 손' 갈취가 있다. 이는 막 미국으로 이주하여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원시적인 조직 범죄라 할 수 있는데 내용은 돈 많은 부자의 집에 검은 손바닥이 그려진 종이를 배달하고 그 밑에 '언제까지 얼마를 내지 않으면 목숨을 가져가겠다.' 라는 내용을 덧붙인다. 그리고 글자에 씌어진 대로 실제로 행했다.[12][13]

미국 마피아의 태동기인 1890년대부터 1928년에 이르기까지 약 30년에 걸쳐 뉴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주요 도시들에 마피아 패밀리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시칠리아 출신의 마피아는 유대계나 아일랜드계 등의 다른 경쟁자들을 제압했다.[14] 이 과정을 거치면서 마피아는 확고한 암흑가에서의 입지를 다졌으며 때마침 닥쳐온 금주법으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축적하게 되었다. 만약 이 시기에 금주법이 시행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마피아 세력은 한낱 삼류 불량배 수준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1930년에 이르러 5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최대 규모의 마피아 항쟁인 '카스텔람마레 항쟁'이 벌어진다. 당시에 미국 마피아를 일종의 식민지로 삼고 싶었던 시칠리아 마피아 최고 두목 비토 카시오 페로가 자신의 부하인 살바토레 마란자노를 선봉장으로 세워 미국의 마피아를 규합하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였으나, 뉴욕 마피아 최고 두목 주세페 마세리아가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두 파벌 사이에 항쟁이 시작됐다.

항쟁은 주세페 마세리아의 부두목인 찰스 루치아노가 마세리아를 배신할 것을 마란자노와 결탁하고, 유대계 갱단들을 포섭하여 마세리아를 제거하면서 끝났다.[15][16] 이후 살바토레 마란자노는 그동안 정체성이 모호한 채로 활동하던 미국 전역의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에 공식적으로 라 코사 노스트라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조직화하여 본인이 총 두목이 되었다.[17] 루치아노는 마란자노로부터 마세리아의 조직을 물려받고 서열 2위가 되었다. 하지만 마란자노는 루치아노가 점점 더 실세가 되고, 루치아노가 시칠리아 마피아의 전통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제거하기로 결심했으나, 역으로 루치아노가 먼저 행동하여 마란자노가 자리에 오른지 4개월 만에 살해당한다.[18] 이 시기 마피아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로 보드워크 엠파이어가 있다.

찰스 루치아노는 유대계 조직이나 아일랜드계 조직들과 사이가 좋았다. 일단 루치아노의 최측근 마이어 랜스키부터 유대인이었다. 루치아노는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는 마란자노가 추구했던 이탈리아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 갈 거라고 보고, 혈통에 연연하지 않는 철저하게 기업화된 범죄조직을 원했다.

결국 찰스 루치아노가 주도권을 장악한 뒤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로부터 사실상의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이때 '두목 중의 두목'이라는 뜻을 가진 최고 두목의 칭호인 "Capo Di Tutti i Capi"를 아예 폐지하고 민주적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미국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패밀리는 인종이나 혈통에 상관없이 사업 관계를 맺거나 조직원으로 받아주게 되었다.[19] 가장 강력한 패밀리의 우두머리들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서는 사법적 기능을 수행했다.[20] 각 패밀리의 우두머리는 '보스' 또는 '돈'(Don)이라고 불렸으며, 그들의 권위에 대해서는 오직 위원회만이 문제 삼을 수 있었다. 나아가 다른 인종으로 구성된 유력 범죄조직들과 함께 전미 범죄신디케이트를 결성했다. 찰스 루치아노의 멘토인 아널드 로스스틴이 꿈꾸었던 민족적 분열을 넘어 협력하는 갱단의 새로운 조직구조는 루치아노와 랜스키에 의해 실현됐다. 이들이 만든 기본 구조와 위원회가 아직도 존재하며 오늘날 미국 마피아 상당수를 감독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창안자들이 얼마나 뛰어났으며 그 구상 자체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증명한다.

항쟁이 종결되고 느슨한 연합 구조가 된 마피아 패밀리는 전국에 25개의 패밀리가 움직이게 되었다.[21] 찰스 루치아노의 지도력을 바탕으로 마피아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규모가 큰 범죄단으로 성장했으며, 범죄를 통해 획득한 이윤을 호텔·식당·유흥업 같은 합법적인 기업 소유에 재투자했다.

이때부터 이탈리아 본토로까지 세력을 역으로 확장,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많은 자산을 독과점한다. 당시 본토 두목들은 이 하극상에 격분했으나 파시스트 정부의 탄압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발만 구를 뿐이었다. 이 '격차' 때문에 본토 마피아와 미국 마피아 사이는 한동안 어정쩡했다.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면서 마피아는 밀주 제조•유통을 중단하고, 도박·파업조종·고리대금업·마약밀매·매춘 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미국 내에 마피아들이 활개치는 상태라, FBI는 창설 초창기부터 범죄조직을 주적으로 삼게 된다. 다만 초기에는 제대로 잡지 못하고 삽질만 반복했다. 당장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 마저 "마피아라는 범죄조직은 없다!"라고 헛소리를 하는 걸 넘어 많은 마피아들을 "완벽한 반공주의자에다가 진실로 애국적인 훌륭한 미국의 사업가."라고 묘사했다. 더 자세한 내막은 해당 문서 참고.

1946년에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정부와 협력한 대가로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이탈리아로 추방된 찰스 루치아노는 본토 범죄조직의 재건을 도우며 본격적으로 양국 간 마피아 사업의 다리 역할을 맡았고, 국제 공조를 강화했다. 이로써 미국 마피아는 전국구 조직을 넘어 국제적 조직으로 발돋움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마피아는 쿠바에서 마피아 전국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거점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라스베이거스 짓듯이 여러 카지노호텔을 지었다.[22] 그러나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무능력과 피델 카스트로체 게바라쿠바 혁명 때문에 마피아는 자신들이 투자했던 금액의 원금도 못 받고 철수하고 말았다.[23] 덧붙여 카스트로를 지지했던 시민들은 주인 없는 카지노에 있던 슬롯머신을 깨부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1951년에는 미국 상원의회에서 키포버 청문회가 열려 전국의 마피아 인사들이 TV 카메라 앞에 섰다. 그중에는 찰스 루치아노의 후계자이자 당대 최고의 미국 마피아 두목이었던 프랭크 코스텔로도 있었다. 다만 이 시기까지만 해도 라 코사 노스트라의 실체가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전이었고, 시민들은 청문회에 출석한 인물들을 '이탈리아 혈통의 거물 조직폭력배 두목' 정도로 생각했다.

1957년에 뉴욕 주 애팔러친에서 미국 전체의 마피아 두목들이 모인 "애팔러친 회합"이 열렸는데, 동네 여관이 모두 예약되고 다른 지방의 자동차들이 너무 많자 이상하게 여긴 한 순경에 의해 대외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당국은 필사적으로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60년대 초반에는 참석자와 회의 내용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입수된다.[24] 이때를 기점으로 비로소 미국 마피아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드러났으며, 존 에드거 후버는 어쩔 수 없이 "마피아는 없다... 가 아니라 있었네요."라고 말을 바꾼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떨떠름한 것은 여전했다.

1960년 8월, 미국 CIA 안보국장인 셰필드 에드워즈 대령은 마피아 암살자들에 의한 피델 카스트로의 암살을 제안했다. 1960년 8월부터 1961년 4월 사이에 CIA는 마피아의 도움을 받아 카스트로를 독살하거나 사살하려는 음모를 연달아 추구했다. 동시기에 마피아는 쿠바에 무력 공격을 감행해서 카스트로 정권을 축출해 카지노를 돌려주겠다는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을 돕게 된다. 하지만 피그스만 침공 작전은 실패했고 그밖에 여러 요인으로 케네디는 마피아와 척을 지게 된다.

1960년대부터는 미국 마피아가 시칠리아 마피아와 공조해 프랑스의 프렌치 커넥션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헤로인을 밀수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초창기 마약장사를 싫어했던 전통적인(Old-School) 마피아들은 점점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일부 두목들이 마약장사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 이것은 영화 대부, 프렌치 커넥션 등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단, 프렌치 커넥션이 성행하던 시절에도 마피아 '정규 조직원'이 마약을 직접 거래하는 건 금기사항이었다.[25]

1963년에는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는 미국 마피아가 대통령 암살에 개입했다는 음모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것만 집중적으로 다루려면 책 한 권이 나올 정도인데, 암살 사건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케네디 암살에 관한 공인된 '사실'은 리 하비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암살했고 그 오스왈드를 암살한 것은 잭 루비라는 댈러스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던 마피아 준 조직원(하급 단원)이라는 것이다.[26] 두 사건 모두 당시 조사기관에 의해 우발적인 살인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그 외에 암살의 배후세력이라든가 하는 것은 법원 판결 등 공인된 사실로 드러난 것은 하나도 없기에 추측의 영역이고 일종의 음모론이다. 그렇지만 21세기에 미국인 대상으로 진행된 케네디 암살의 배후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에서 마피아가 1위를 차지하고[27][28][29] 여러 정황증거가 암살의 배후로 마피아를 가리키고 있는 것 또한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암살에 제일 적극적으로 가담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인물은 3명의 두목인데, 시카고 두목 샘 잔카나[30][31] 뉴올리언스 두목 카를로스 마셀로[32], 플로리다 주 두목 산토 트리피칸테 주니어[33]가 있다. 마피아가 암살에 가담한 게 맞다면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뉴욕을 포함한 당대의 두목들이 위원회에서 다 같이 합의를 보았을 것이다.

1963년에 매클러런 상원 위원회에 출석한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조셉 발라키가 "마피아는 존재합니다."라고 증언하며 미국인들에게 다시 한번 마피아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20세기에 미국 마피아는 여러 차례 연방 정부와 협력했는데, 파시스트 정권이나 카스트로 정권에 대항할 때뿐만 아니고 흑인 척살을 목표로 하는 인종차별 집단인 KKK단을 수사하는 FBI를 돕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34] 이는 원래 KKK단은 단순히 흑인만 싫어한게 아니라 유대인을 비롯해서 이탈리아인이나 아일랜드인, 폴란드인 같은 가톨릭 계열 이민자도 싫어했고 금주법 시절에는 사회정화를 한답시고 마피아가 운영하는 술집이나 사창가를 습격하기도 했기 때문에 마피아와 좋은 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술하였듯, 금주법이 폐지된 이후 미국 마피아의 핵심사업은 밀주 유통에서 노조 장악과 도박 사업으로 옮겨갔다. 회사를 형성하는 세 다리 중 하나[35]인 노동자들이 "일 안 해!"라고 버티면 회사로서는 답이 없다. 마피아는 이 상황을 이용해 회사를 협박 및 갈취하는 수단으로 노조를 장악한 것. FBI에서는 노동조합을 가리켜 "LCN(라 코사 노스트라)이 얻는 금전적 이득, 국가적 권력, 영향력의 근본적인 원천."으로 설명한다. 마피아의 노조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 1975년에 일어나는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 사건 중 하나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이 그것이다.

그렇게 전성기를 누리던 미국 마피아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었다.[36] 1960년대 중반에 FBI와 법무부, 재무부는 마피아를 공공의 적(Public Enemy)으로 규정하고 1970년에는 의회에서 마피아를 겨냥한 RICO법이 통과, 1972년에는 마피아와 사실상의 결탁관계에 있던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사망하고 이후 FBI 측에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하여 1980~1990년대에 절정을 맞이한다. 특히 마피아는 197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소비되는 마약 제조와 밀수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생기는 막대한 이윤은 마피아 내부의 여러 계파 간에 강한 경쟁의 불씨가 되었으며, 그결과 살인이 빈발하자 정부에서 다시 마피아 지도자들을 재판·투옥하게 되었다. 그 밖에 조직원에 대한 감시와 도청, 이권 사업의 세무 사찰, 조직 내에 잠입수사원 투입 등을 통해 팔다리를 자르기 시작했고, 처벌도 강화되어 형량이 심하면 수십 년까지 올라가면서 타격을 많이 입게된다. 1980년대부터는 마피아 내부 규율을 무시한 채 오직 자기 이익에만 관심을 가진 조직원들이 꽤 생기면서 기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37]

1980년대에는 미국 법무부 서열 3위인 사법 차관 자리에 있다가 뉴욕 남부 검찰청으로 온 연방 검사 루돌프 줄리아니월 가의 거물급 재계 인사들에게 법의 심판을 내린 뒤 마피아 수사에 착수했는데, 1985년에 뉴욕 5대 패밀리의 두목과 부두목들을 겨냥해 일명 세기의 재판(Case of Cases)이라고 불린 마피아 위원회 재판(Mafia Commission Trial)이 진행된다. 1986년 말에는 위원회 구성원들이 줄리아니의 암살을 논의했다. 강경파인 콜롬보 패밀리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와 줄리아니의 기소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은 신임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는 암살을 찬성했지만 나머지 구성원들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38] 결국 위원회 재판은 연방 정부가 승소하고 피고인들은 깔끔하게 유죄판결을 받는다.[39]

일부 조직원들은 수십 년간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는 데는 도리가 없었던 듯 재판에서 정부 측 증인이 되어 협조했고, FBI의 끈질긴 수사로 인해 1990년대에는 세력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1993년에는 변절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가 미국 상원의회에 출석해 국회의원들에게 미국 내 조직범죄에 대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40]

기존에는 마피아 생활에 회의를 느껴 조직을 탈퇴하면 오메르타(Omertà), 즉 침묵의 계율을 어겼다는 배신자의 낙인과 함께 돌아오는 죽음뿐이었지만, 이제는 FBI 및 연방검사와 협조해서 낮은 형량 혹은 불기소처분을 보장받고 법정에서 Pentito라 불리는 증언자가 되어 증언을 하면, 증인보호법으로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현상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보통 이탈리아인 조직원 보다 자본주의에 물든 미국인 조직원들이 오메르타를 더 잘 어긴다는 시각이 있다.

불법사업 및 조직범죄법과 FBI의 도청 등이 활발하게 사용되면서, 마피아들은 입 한 번 잘못 놀리면 조직 수뇌부도 타격을 입는 상황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의 경우 말단 조직원이 누구의 지시를 받는지, 같이 일하는 동료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다른 마피아 패밀리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FBI 요원들도 최대한 범죄 혐의를 입증하려 수사에 달라붙는다. 현대 마피아들은 도청기가 수사에 도입된 이래 여러 차례 당해온 과거의 경험으로 전자기기를 찾아내는 전문가를 초빙하는 등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수시로 아지트에 도청기 설치 유무를 검사하는 건 기본 덕목이 되었다.

3.3. 세계 대전 이후 시칠리아

다시 시칠리아로 돌아가서,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재직기간 동안 '철의 장관' 체사르 모리를 시칠리아 주지사로 임명해 마피아를 강하게 탄압했다. 모리는 수천 명의 마피아를 체포하고 고문해 이들의 세력을 약화시켰지만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를 원천적으로 근절시키지는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고 무솔리니가 총살되어 측근들과 함께 피아잘레 로레토 광장에 전시되었을 때, 숨죽이고 있던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는 때맞춰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이탈리아로 추방된 전설의 찰스 루치아노를 위시로 한 미국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부활한다.

시칠리아 마피아는 곧 이탈리아 본토까지 장악하여 과거의 세력을 회복하게 되는데, 전후 이탈리아 정치를 가장 좌지우지한 대 정치가이자 7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낸 줄리오 안드레오티와 관계를 맺어 전무후무한 월권을 행사했다.

1962년, 마피아의 폭탄 테러로 국가 헌병대원(Carabinieri) 7명이 죽는 참사를 계기로 1차 마피아 항쟁(Prima Guerra di Mafia)이 시작되었으나 잔챙이들만 잡았을 뿐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1970년대 말부터 헤로인 무역의 지배권을 두고 발생한 조직 간의 내부 항쟁으로 시작된 2차 마피아 항쟁(Seconda Guerra di Mafia)이 발발, 이것이 1980년대를 관통하는 마피아 대전(The Great Mafia War)으로 번져 항쟁으로만 연간 200여 명이 죽어 나가는 참사를 빚었다. 심지어 1982년에는 치안 확보를 위해 출동한 이탈리아 국가 헌병대의 지휘관 키에르자 장군조차 암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기 이탈리아에 파견 지원을 간 한 FBI 수사관은 "미국 마피아 간 항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극을 시칠리아에서는 볼 수 있었다."라고 밝힐 정도였다. 2차 마피아 대전은 코를레오네시 조직의 완승으로 끝나고 이 전쟁을 주도한 살바토레 리나는 두목중의 두목이 되었다.

아무리 태평한 이탈리아인들도 이것만은 참지 못했다. 결국 의회가 나서서 '반마피아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힘을 얻은 사법당국도 용기 있는 젊은 검사들을 주축으로 대규모 검거 작전을 시행한다. 이 과정에서 피비린내 나는 내부 투쟁을 겪으며 마피아에 환멸을 느낀 시칠리아 마피아 간부 토마소 부셰타가 간부급 중에는 최초로 오메르타를 어기고 정부 증인으로 나선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이어진 대재판(Maxiprocesso)은 조직으로서의 마피아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 당시 마피아와의 전면전에 나섰던 검사들은 암살 위협을 피하기 위해 경호가 용이한 교도소에서 생활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제소자들과 같이 산 것은 아니고, 격리 구역에서 지냈다.

1992년, 마피아 검거의 선봉에 섰던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 판사 부부와 3명의 경찰관이 자동차 폭탄으로 암살되었다.[41] 이는 건슬링거 걸의 모티프가 되었으며,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미국 FBI의 지원으로 DNA 분석을 하여 법정 증거로 제출되기도 하였다. 2019년에는 팔코네 판사 암살에 미국 마피아 조직인 감비노 패밀리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42]

조반니 팔코네 판사가 암살당한 후, 뒤이어 동료 파올로 보르셀리노(Paolo Borsellino) 판사까지 살해된다. 시칠리아 마피아 수뇌부는 음지에서의 압도적인 무력으로 국가와 시민들을 통제하려 했지만 이 만행은 그들의 터전이던 시칠리아 시민들까지도 격분하게 만들었다. 두 판사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시민 차원의 제보와 하부 조직원의 자수가 잇따랐다. 결국 살바토레 리나가 포함된 다수의 최고위급 두목들이 검거, 투옥되었고, 마피아는 폭탄 테러까지 불사하며 격렬히 저항했으나 이탈리아 군•검•경의 총공격을 받고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현재까지 꾸준히 '반마피아 운동'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들 두 명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현재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공항 이름은 팔코네-보르셀리노 공항으로 되어 있다.

1993년, 고향인 시칠리아 브란카치오(Branccacio)에서 반 마피아 운동을 하던 주세페 풀리지(Giuseppe Pino Puglisi) 신부가 56번째 생일이던 9월 15일에 마피아에게 총을 맞아 순교하는 일이 벌어졌다. 풀리지 신부는 뭍에 있는 교구를 돌아다니다 1990년에 고향 교구로 돌아온 이후로 지속적으로 마피아에 대항할 것을 설교하고, 아이들이 탈선하여 마피아에 가입하는 일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자기 성당 앞에서 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43] 풀리지 신부가 사망한 사건은 다시 한 번 이탈리아에 충격을 주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풀리지 신부의 고향 교구인 팔레르모 대교구의 전임 교구장 주교였던 살바테로 데 조르지 추기경을 대리인으로 삼아 시복식을 허가하였으며, 삼종기도 시간에 풀리지 신부를 언급하며 마피아의 악행을 규탄하였다.

줄리오 안드레오티 또한 정치 은퇴 이후 마피아와 관련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치열한 재판 끝에 1심에선 무죄를 받았고, 이후의 항소심에선 공소시효 만료로 무죄를 받았다. 마피아의 내부 고발자이자 살바토레 리나의 전 운전기사였던 발두치오 디 마지오는 안드레오티가 일국의 총리로써 시칠리아 마피아 고위 간부들과 직접 대면해가면서 일을 논의했으며, 지명수배자였던 시칠리아 마피아 최고 두목 살바토레 리나의 손등에 존경의 입맞춤을 했다고 증언했으나 안드레오티 측은 코미디 영화라며 일축했고 베테랑 기자인 인드로 몬타넬리는 안드레오티는 자기 자식한테도 키스를 안 한다며 이 주장을 의심했다. 이후 재판에서 내부고발자의 범죄행각과 모순적 발언이 드러나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44] 또한 2014년 교도소 안의 살바토레 리나와 푸글리아의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 두목 알베르토 로루소의 대화를 몰래카메라로 도청한 바에 의하면 살바토레 리나와 안드레오티 총리는 서로 만났으나 키스를 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또 안드레오티는 1980년대부터 반마피아 법안을 여러 개 통과시켰기에 이점은 재판에서 그에게 매우 유리한 정황이 되었다. 실제로 재판부는 1980년 봄까지 마피아와 안드레오티 사이의 관계를 입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법의 처벌을 가할 순 없었다. 여담으로 줄리오 안드레오티는 1986년 막시 재판 당시 배심원 평결을 뒤집기로 유명한 판사를 임명해 수많은 마피아들이 받은 유죄 판결을 번복 시키기도 했다. 그는 총리 시절인 1991년에 반 마피아 법안을 여러 개 통과시키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배신당했다고 생각해 화가 난 살바토레 리나의 암살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리나는 곧 고위 인사 죽이기 운동으로 안드레오티의 최측근 살바토레 리마를 죽이게 된다.[45] 하지만 당시 안드레오티가 법안을 통과시킨 건 정의감이 아닌 당대 '깨끗한 손 운동'이 힘을 얻으면서 시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추진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안드레오티는 이후 재기를 시도했지만 마피아와의 관계가 명확했기에 결국 정계에서 퇴출되었고 그의 퇴출과 함께 부정부패와 마피아 관련 수사로 당 지도부가 대거 입건되면서 기독교민주당도 같이 몰락하여 결국 해체되고 당내 좌파가 권력을 잡아 한때 반목하던 이탈리아 민주당에 최종적으로 합당되었다. (우파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합류한다) 기민당과 마피아들의 관계는 마피아들이 기민당에 암묵적으로 투표하는 게 관행이었을 정도로 가까웠는데 안드레오티는 이들을 일종의 정치깡패로 부리면서 서로 이용하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시칠리아 마피아의 지나친 살육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지도부들이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되거나 궐석재판에서 종신형이 선고되어 지명 수배자 신세가 된다. 수감된 두목급 인사들은 자신의 대리인을 대행 두목으로 내세워 복역 중에도 조직을 이끌었고 지명 수배자가 된 두목급 인물들은 정부의 수사망을 피하면서 조직을 이끌었다. 하지만 과거처럼 안정된 상태에서 조직을 운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991년경 이탈리아는 그동안의 마피아와의 전쟁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끌고 앞으로도 마피아와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Direzione Investigativa Antimafia (DIA - 반마피아 조사국)이라는 수사기관을 신설했다. DIA는 대 마피아 전문기관으로 이탈리아 국가 헌병대, 이탈리아 경찰, 이탈리아 재무경찰 (Guardia di Finanza)를 모두 통솔해서 마피아 범죄를 뿌리뽑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의회에 반마피아 위원회를 열었으며[46] 강력한 증인보호프로그램과 범죄조직에 대한 도청도 도입하였다. 또한 FBI를 비롯한 국제수사기구와도 적극적으로 공조해서 마피아와 싸우고 있다.

살바토레 리나의 뒤를 이은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는 '반마피아 운동'에 열심히 매진하는 공무원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세간에서 정계와의 유착 의혹이 끊이질 않았고, 리나 수감 이후 13년동안 이탈리아 검경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다 2006년에 검거되었다.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그의 검거를 끝으로 코를레오네시 조직은 코사 노스트라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다.# 프로벤자노의 후계자로 여겨지는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47]는 2020년 새해가 밝을 때까지 검거되지 않는 등, 여전히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는 국제적인 범죄 제국으로서 그 위상을 지키고 있다.[48] 시칠리아에서는 얼마 전에도 군대까지 동원하여 거의 내전을 방불케하는 대규모 체포 작전이 벌어지기도 했고, 1980년대 큐폴라(위원회)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항쟁에서 패배해 밀려났던 세력들이 반대 파벌에 대한 무관용으로 일관하며 그들을 탄압했던 살바토레 리나의 수감 이후 미국 마피아의 지원하에 시칠리아로 돌아와 조직을 재건하는 등 21세기 들어 새로운 양상들이 관측되기도 했다.

하지만 1980~1990년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이탈리아-미국 양국 정부의 대대적인 수사와 재판으로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 세력과 미국의 라 코사 노스트라 세력은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약화됐다. 다만 여기서 이탈리아는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3.4. 본토 범죄조직 세력의 대두

1992년 '깨끗한 손'이라는 기치 아래 시작된 반부패 운동과 정부의 반 마피아 단속 조치는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만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 전역의 다른 범죄조직들도 대상으로 했지만, 이들 본토 세력들은 수사망이 집중된 시칠리아 마피아에 비하면 훨씬 작은 타격을 받았다.[49] 대표적인 본토 범죄조직들로, 1800년대 중반 나폴리의 교도소에서 시작된 '카모라'와 1860년대에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시칠리아인 집단이 칼라브리아 지방으로 추방되면서 형성된 '은드랑게타'가 있다. 이들이 시칠리아 마피아의 세력권에 침투했고 이탈리아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10년 칼라브리아 지방의 은드랑게타는 정부 상대로 선전포고도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대전차 화기를 동원해 고속도로 확장공사를 방해하려는 은드랑게타 조직원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군 병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FBI에 의하면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거대한 범죄조직은 나폴리의 카모라고, 2번째가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라고 한다.#

본토 세력들은 해외 범죄조직들과 연계하면서 초국가적인 조직이 되었다. 미국 FBI에서는 시칠리아 마피아(코사 노스트라)와 미국 마피아(라 코사 노스트라) 간의 전통적인 국제 공조에는 '오래된 다리(Old Bridge)'라는 이름을 붙였고, 칼라브리아의 은드랑게타와 미국 마피아(라 코사 노스트라) 간의 신흥 국제 공조에는 '새로운 다리(New Bridge)'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0년대 배경의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를 보면, 미국 뉴저지 주의 마피아 부두목인 주인공이 국제 범죄 공조를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하는데, 시칠리아 마피아가 아닌 나폴리의 카모라를 찾아간다. 이것은 (비록 픽션이긴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탈리아 본토의 범죄조직들과 교류가 많아진 현대 미국 마피아를 나타낸 것으로, 나름의 현실 고증인 셈이다.

본토 범죄조직들은 여전히 주요 사업영역을 장악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구역을 동유럽 알바니아계 범죄조직 같은 외국 세력들에게 기꺼이 빌려주고 있는데 이것은 후환거리를 만드는 짓일지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미래에는 이탈리아 세력이 아닌 외국계 도전자 세력들이 이탈리아의 조직범죄를 책임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

2004년경 나폴리 카모라의 강력한 조직인 디 라우로 클랜간에 마약이권을 두고 분열이 생겨나 분리파가 스페인쪽에 근거지를 두고 나폴리를 오가면서 디 라우로 패밀리와 한바탕 전쟁을 치뤘다. 2004~2005년에 전쟁으로 60명이 죽었다. 이는 드라마 고모라에 많은 모티브를 주었다. 디 라우로 클랜의 두목 파올로 디 라우로 같은 경우 고모라의 저자 로베르토 사비아노가 직접 나폴리 범죄계의 왕이었다고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이 있다.# 파올로 디 라우로는 체포돼서 징역 30년형을 받고 그 아들들인 마르코와 코시모도 체포됐으나 빈첸조와 치로가 여전히 디 라우로 클랜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3.5. 현재의 이탈리아 범죄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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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모든 범죄조직의 총수익 예상치는 한화 약 240조 원에 달한다. 거기다 장기간의 경제 불황으로 18만 명의 자영업자들이 추가로 이들이 운영하는 고리대금을 빌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으며, 마찬가지로 경제 불황으로 인한 마약류의 수요 증가, 불법 외국 이민자의 유입(당연히 브로커는 범죄조직) 등으로 이들의 자금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범죄조직들이 풍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합법 사업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모든 범죄조직이 자금 세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약 220조 원인데, 어디까지나 추산 가능한 수준이며, 지하에 감춘 검은 돈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불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건설, 소매업, 운송과 숙박 등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사업을 노린다고 한다.

2012년 기사에 따르면 주요 이탈리아 마피아의 수익은 연 매출 1400억 유로(약 180조 원), 순이익은 1000억 유로(약 129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기사

다만 2015년, 경제전문지 포춘지에서 카모라와 은드랑게타의 1년 수익을 합친 액수가 94억 달러(약 11조 1,766억 원)로 비교적 다른 조사 결과들에 비해서 작게 집계했는데, 범죄조직의 매출은 정확한 조사가 어렵다는 그 특성상 통계 작성 주체와 기준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이탈리아 범죄조직의 수익을 집계한 다른 조사에서는 이들이 애플 매출을 능가한다거나, 맥도날드도이체방크 매출의 합을 능가한다거나 하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반면 로이터 통신은 이탈리아 정부 출연 연구 단체의 보고서를 인용해서 생각보다 그들의 수입이 낮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즉 이는 각 연구단체의 조사결과나 통계방식에 따라 그 규모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간의 마피아 수입 통계에 대해 Sos impresa 같은 경우 13차 보고서에서 1,140 억 유로의 매출과 연간 1,100 억 유로의 이익을 준다고 했지만 이 연구는 출처와 연구 방법론에 대해 투명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되었다.[50] 그간 마피아의 수입에 대한 통계는 이탈리아 내무부의 국가통계청과 이탈리아 범죄 연구 단체 TransCrime[51] 의 분석에 의하면 지나치게 과장됐으며 이는 모든 범죄수익과 마피아의 연관된 수입에 대해 제대로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되었다.여러 공개된 자료를 연구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을시 그 수치는 크게 떨어진다고 파악되었다. TransCrime 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불법 활동으로 인한 수익은 GDP 1.7%이며 최소 180억에서 340억유로까지의 수익이 발생한다. 2012년 이탈리아 국가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그 수익은 257억 유로에 달했다. 그 모든 수익이 마피아의 수익이 아니며 그 중 마피아의 수입은 총 불법수익의 32%~51%인 8억유로~130억 유로 정도라고 한다.출처1, 출처2

1990년대에 줄리오 안드레오티가 실각되고 기독교민주당이 해체되었다고 해서 이탈리아 정계와 범죄조직 간의 검은 커넥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안드레오티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정계를 풍미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경우 2019년까지도 많은 의혹이 있기 때문.

2018년엔 토토 리이나의 후계자급 중 한명으로 불리며 거물급 두목으로 불렸던 세티미노 미네오가 체포되었다.# 또 다른 강력한 두목인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는 계속 도망중이지만 이탈리아 군검경의 추적은 계속되고 있는 걸로 보인다.

3.6. 현재의 미국 마피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미국의 조직범죄에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는 여러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1980년대부터 여러 마피아 활동의 기반을 와해시킨 FBI의 성공적인 단속과 더불어 또 다른 요인으로, 고립되어 있던 이탈리아-시칠리아계 사회가 차츰 해체되고 이들이 전체 미국 사회로 흡수됨에 따라 마피아 단원을 기르기 위한 전통적 양육의 기초가 실제적으로 줄어든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피아 전문가 셀윈 랍(Selwyn Raab)의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를 보면, 오늘날의 미국 마피아는 조직원들을 주로 나폴리, 칼라브리아 같은 남부 이탈리아나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 코를레오네, 트리파니 등지에서 많이 채용해온다고 한다.

그러나 상술한 일련의 사건들을 거친 후에도 불구하고, 2006년에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사우스웰(David Southwell)이 발간한 조폭연대기(원제: The History of Organized Crime)의 본문을 보면 '언론에서는 관심을 끌기 위해 미국 범죄의 지배세력인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를 대신할 새로운 조직이 나타났다는 소재를 즐겨 쓰지만 대부분 지나친 억지 추측이나 거짓으로 판명 난다.'라고 적어 놓았다. 사우스웰에 따르면 마피아를 제외할 경우 미국 암흑가의 지배적인 세력은 바이커 갱단이라고 한다. 또 FBI 홈페이지에서도 여전히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를 가리켜 '미국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조직범죄(one of the foremost organized criminal threats to American society)'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 마피아의 주요 인사들은 특별히 지명수배자가 되어 당국에 쫓기는 이는 잘 없고, 대부분 본인 혹은 가족 명의로 된 고정된 집에 거주하며 비밀리에 각종 마피아 사업을 관장하다가 수사기관에 의해 혐의가 제기되어 정식으로 기소가 되면 재판 과정을 통해 유•무죄를 가리는 식이다.[52][53] 반면 시칠리아 마피아의 주요 인사들은 진작에 궐석재판이 이루어져 신병 확보가 되기만 하면 곧바로 교도소로 구금되는 지명수배자 신분을 가진 이들이 많고, 그만큼 수시로 은신처를 바꿔가며 생활하는 인물이 많다.[54] 그 이유로 미국 마피아는 20세기를 관통하는 항쟁 과정에서 시칠리아 마피아와는 달리 수백 명씩 죽어나간 살육전을 치른 바 없고, 정부와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2002년 FBI는 미국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돈을 500억 달러~900억 달러(약 55조 원~100조 원) 사이로 추산했다.#[55]

FBI 보고서에 따르면 미 북동부•중서부•남부 지방과 캘리포니아 주의 주요 도시들에 총 3000명이 넘는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정규 조직원들과 준 구성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해외 조직들과 공조해 초국가적인 범죄활동을 펼친다고 한다.#[56]

2019년 US 해럴드 기사에 의하면 뉴욕에서만도 마피아와 크고 작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수를 6천~7천 명으로 추산했다.

2011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왜 21세기에도 여전히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이 세계의 중심이자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암흑가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남아있으며, 왜 미국 내 다른 범죄조직들은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가 누리고 있는 광범위한 영향력에 근접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특집 기사를 썼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의 유구한 역사와 강력한 조직구조, 원활한 조직원 수급 능력도 한몫하지만 이들의 도전자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계 레드 마피아 세력의 경우 특정한 범죄 공모를 위해 잠시 뭉친 후 해체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이 수사망을 피하는 데는 유리할지 모르나 이들을 많은 조직원의 수를 갖춘 체계적인 집단으로는 성장하지 못하게 했다.[57] 한편 대부분의 아시아계 갱단들은 그들 자신의 이민자 집단 구성원들만을 희생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뉴욕 시 차이나타운을 거점으로 많은 아시아계 조직들이 형성되었지만, 당시 연방 정부에서 성공적으로 주도한 일련의 기소는 이들 집단들을 효과적으로 해체시켰고 여러 중국계와 베트남계 갱단들을 방황하는 늑대 무리에 가까운 소규모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존 길브라이드 DEA 뉴욕 사무국 특수 요원은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을 가리켜 잘하는 게 한 가지뿐인 집단(One-Trick Pony)이라고 묘사하며 미국 내에서는 마약거래 지배권에만 집중하여 다른 수지맞는 범죄에는 가담하지 않는 약점이 있다고 했다.

2019년 GQ 매거진이 뉴욕 동부지검 조직범죄 수사부장 크리스틴 메이스(Kristin Mace)와 부부장 알론 리프시츠(Allon Lifshitz)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러시아 마피아, 알바니아인들,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는 잊어버려라. 이탈리아계 마피아가 여전히 뉴욕을 지배한다.(Forget the Russian mafia, the Albanians, the Japanese Yakuza or Chinese Triads: the Italian-American mafia still rules the roost in New York.)’라고 쓴 뒤 “과거와 다름없이 마피아는 중요한 존재다. 뉴욕 내에 그들을 능가하는 다른 조직화된 범죄 집단은 없는 것 같다.(It’s a significant presence and no less than in the past,” Mace told me. “I don’t think there’s any other organised crime group that has surpassed it in influence in New York City.)”라는 미 연방검사의 의견을 전했다. 같은 기사에서 ‘오늘날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사업은 궁극적으로 뉴욕으로 귀결되고, 로스앤젤레스의 MS-13 같은 거리의 갱범죄자들은 자신들의 범죄(총기•마약•돈)에 대한 증거를 스스로 페이스북에 올릴 수도 있지만 그건 마피아 스타일이 아니다. 침묵의 계율 오메르타로 무장된 마피아 범죄는 수사와 기소를 어렵게 만든다.’라고 전했다.

2001년 9.11 테러는 FBI 내 조직범죄 부서가 대폭 축소되고 많은 인력이 대테러 부서 쪽으로 옮겨가게 만든 사건으로써, 미국 마피아 입장에서는 큰 호재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약 3년간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조직원으로 잠입수사를 했던 전 FBI 특수 요원 호아킨 가르시아(Joaquín García)가 2014년 인터뷰에서 말하길 "마피아들은 조용하고 원활한 사업을 원한다. 그들은 더 이상 야생의 서부가 아니라는 배움을 과거로부터 얻었다. 1950~1970년대와 달리 마피아는 이일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 하고만 일한다. 마피아는 약해지지 않았다. FBI가 라 코사 노스트라를 진압하는 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당시는 마피아들이 그들의 최우선 과제였다. 이제 테러다. 그들은 한 번에 너무 많은 핵심 목표에 집중할 인력이 부족하다. 그 결과 마피아의 세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과거의 마피아들은 수사기관에서 항상 자신들을 미행한다는 걸 알았고, 본인이 실내에 있을 때면 수사관들이 밖의 차량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제 FBI에서는 더 이상 그들을 미행하지 않고 마피아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마피아는 지하로 들어갔고 이제 누구도 그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른다."라고 꼬집었다.[58][59][60]

위의 서술대로 21세기의 미국 마피아는 자기네 조직의 원류인 시칠리아 비밀결사 시절의 저자세를 취한 채 더욱 지하로 파고들어갔다.[61] 현대에는 미국의 일반 시민이 마피아들이 개입하는 이권사업의 관련자이거나 음지에 손을 댔을 경우를 제외하면 과거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이들의 존재를 느낄 일은 잘 없다.[62] 주요 미국 마피아 패밀리는 여전히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있으며, 비밀리에 두목을 선출한다. 이에 FBI는 조직 수뇌부의 변화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63]

미국의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조직 중 최고로 꼽히는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의 경우 통상 오고 가는 불법 거래액만 연간 5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64][65] 특히 제노비스 패밀리는 다른 미국 마피아 패밀리들과 비교했을 때 오메르타 계율을 깨고 정부 증인으로 돌아서는 조직원 숫자가 적어 (2019년 기준) 역사상 단 8명의 정규 조직원만 계율을 어긴 것으로 유명하다.[66] 특히 조직 내 두목급 간부의 변절은 타격이 큰데, 1990년대에 감비노 패밀리와 루케시 패밀리는 상술한 새미 그라바노[67]와 앤서니 카소[68]라는 부두목의 배신을, 1998년에 필라델피아 패밀리는 랄프 나탈레, 2004년에 보난노 패밀리는 조셉 마시노라는 두목의 배신을 겪은 데 비해 대조된다.

2011년 하워드 아바딘스키 세인트 존스 대학교수에 따르면 현대 미국 마피아는 부분적인 아웃소싱(기업 업무를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방식) 형태로 발달했으며, 수사기관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일부 범죄 활동을 바이커 갱단으로 대표되는 다른 조직범죄 집단에 맡긴다고 한다.[69] 아바딘스키 교수에 의하면 아웃로 MC는 최근 몇 년간 시카고 아웃핏과 많은 일을 해왔고, 헬스 엔젤스 MC는 뉴욕의 마피아 패밀리들에 이용되고 있으며, 필라델피아 마피아는 파간스 MC라는 조직을 사용한다. 비록 마피아는 백인 위주로 구성된 바이커 갱단을 제일 선호하긴 하지만, 유색 인종 폭력배들과도 관계를 맺는다. 2013년 뉴욕 브롱스에서 벌어진 퍼플 갱 두목 살인사건에서는 흑인을 암살자로 고용했고, 2019년 마피아 기소 내용을 보면 뉴욕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원 빈센트 피오레가 자신의 아들을 폭행한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히스패닉 갱단 라틴 킹즈 조직원들을 보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또한 마피아는 조직원이 수감되었을 때를 대비해 교도소 갱단 아리안 형제단과도 동맹을 맺었다.[70]

물론 FBI로 대표되는 수사기관들도 여전히 미국 마피아에 대한 감시를 하고 있으며 조직범죄 부서에 속한 수사관들은 매 순간 유죄를 입증할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2011년에는 FBI에서 마피아 조직원 100여 명을 구속해서 타격을 입혔다.[*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다.(영상)] 기사 속 2011년도 작전은 기소 인원으로 봤을 때 FBI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마피아 작전이라고 평가받는다. 뉴욕의 5대 패밀리와 뉴저지 주의 데카발칸테 패밀리, 뉴잉글랜드 지방의 페트리아카 패밀리를 대상으로 진행된 수사의 결실로, 뉴욕 콜롬보 패밀리 대행 두목 앤드루 루소가 포함된 100여 명의 마피아와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기소해 타격을 입혔지만, 역설적으로 뉴욕 항 주변은 물론이고 수많은 노동조합들이 여전히 마피아의 영향력 하에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당시 영화 대부에서 산티노 콜레오네를 연기했던 배우 제임스 칸이 앤드루 루소를 위해 탄원서를 제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71]

전 감비노 패밀리 준 구성원 살 로마노는 “오늘날의 미국 마피아가 1990년대의 미국 마피아보다 더욱 강력할 수도 있다.(In a way, the mob may be more powerful than they were in the Nineties.)”라고 밝혔다. 동시에 2010년대 미국 경제의 호황은 범죄조직의 지갑도 채워준다고 덧붙였다.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TV를 틀기만 하면 뉴스에 마피아가 나오던 그 시절이 오늘날보다 더욱 강력했다고 믿기 쉽지만 실상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높다.[72]

2019년에 치러진 한 마피아 재판에서 피고 측 변호인은 “마피아는 지나간 역사입니다.(The mafia is history)”라고 주장했다. 그는 곧이어 무고한 시민을 미국 땅에서 더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 집단의 구성원으로 지목하여 공소를 제기한 검찰을 비판했다. 그 재판에서 뉴욕 보난노 패밀리의 고위 간부로 알려진 피고인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오늘날 미국 마피아의 부활은 과거 범죄와의 전쟁 시기에 라 코사 노스트라 없는 미국, 더 나아가 조직범죄 없는 미국을 자신 있게 주장한 정치 지도자들과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낙관론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 것일 수도 있다.

요약하면 오늘날의 미국 마피아는 수사기관의 옅어진 감시망, 약 100년 넘게 자신들이 쥐어온 미국 암흑가의 패권, 여전히 단단한 이탈리아 본토 조직들과의 연계, 1980~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시기 수감되었던 베테랑 조직원들의 석방[73], 기존 조직원들의 인도하에 뉴욕의 뒷골목과 남부 이탈리아의 거리에서 차출된 신입 조직원들, 2000년대를 덮친 경기 불황으로 고리대를 빌리는 시민들의 증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욱 다양해진 범죄 수법, 과거 마피아 조직원들이 실크 양복을 입고 수십 대의 언론 카메라 앞에서 연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던 존 고티 시대의 교훈을 발판 삼아 현재는 더욱 강해진 비밀주의 등 다양한 내•외부적 요인으로 21세기에도 여전히 미 북동부와 중서부의 암흑가에서 가장 강력한 범죄조직으로 남아있다.[74]

미국 내 마피아의 세력이 너무 강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탈리아계 라 코사 노스트라가 자국 조직범죄계의 도전받지 않는 지배자라고 생각한다. 마피아와 애증 관계에 있는 할리우드 연예산업이 보통 대부, 좋은 친구들, 카지노, 소프라노스, 아이리시맨 등의 잘 알려진 작품들을 통해 마피아를 모든 범죄 사업 분야의 정점으로 묘사하고, 다른 범죄조직에 비해 호의적이고 낭만적으로 그려놓기에 그런 생각은 더 강화됐다.[75] 엄청난 권력과 규모를 자랑하지만 라 코사 노스트라가 미국 범죄사에 유일한 선수였던 적은 없었다. 마피아가 미국에 진출하기 50년도 훨씬 전부터 미국은 늘 갱들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엔 동유럽 이민자, 러시아 정부의 토벌에 의해 국외로 향한 레드 마피아 세력들이 가세하고 있다. 미국의 이탈리아계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조직과 미국의 러시아계 오르가니자치야 레드 마피아 조직은 양측 다 고향 국가에 강력한 조직 기반을 두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글로벌 범죄조직으로, 사업하는 데 있어 대결하고 반목하기보다는 서로 협력하는 입장에 있다.

2010년대 뉴욕 감비노 패밀리 두목 도메니코 체팔루와 부두목 프랭크 칼리를 보면, 체팔루는 시칠리아 출생의 이탈리아인이고 칼리는 미국인이지만 유명 시칠리아 마피아 가문의 여인과 혼인한 인물로, 둘 다 시칠리아와 깊은 유대를 가지고 있다. 이는 21세기 들어 미국 마피아 (특히 감비노 패밀리) 내에서 신규 조직원으로 미국인보다 시칠리아 출신 조직원들을 더 선호하는 추세가 조직 수뇌부 인사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한 관련자는 NBC 방송에 출연해 연방 정부를 향해 "테러 조직 IS에 대항할 때만큼은 같이 싸우자. 마피아는 세간으로부터 나쁜 평판을 받고 있지만 그중 상당 부분은 부당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 특히 이슬람 국가라고 부르는 잔인하고 정신병적인 조직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해야 한다. 우리 마피아는 정부의 뛰어난 최신 기술로도 포착할 수 없는 개인의 움직임과 행동에 대한 정보, 즉 인간 정보(Human Intelligence)를 얻기 쉬운 위치에 있다."라고 얘기했다. 이 같은 감비노 패밀리의 제안은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직후, 남부 이탈리아 경찰 당국이 "마피아가 이슬람 테러 음모와 싸우기 위한 정부의 핵심 동맹이 되었다."라는 사실을 인정한 후에 나온 것이다. 한 이탈리아 경찰관은 "IS가 마피아 두목들에게 끌려갈 것을 우려해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풀리아, 나폴리 등지에 진입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2019년 3월 14일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대행 두목(Acting Boss)을 맡고 있던 조직의 부두목 프랭크 칼리가 암살당했다.#[76]

34년 만의 뉴욕 마피아 두목급 간부의 피살사건에 전미가 뉴스속보로 다루고 있는 중에 범인이 검거된 후 초기에는 마피아 조직의 파벌다툼이라고 생각했던것이 알고보니 사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살인사건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공식적인 동기는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마피아 사업과 연관 없다는것 정도가 정설.

경찰이 검거한 용의자 앤서니 코멜로(24)라는 평범한 청년이 미국 전역에서 가장 악명높은 마피아 중 한 명을 살해한것에 많은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77][78][79] 일단 CCTV에 찍힌 사건 전말은 이렇다. 코멜로는 자신의 픽업트럭을 몰고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의 토트 힐(Todt Hill)에 위치한 프랭크 칼리의 자택 앞까지 가서[80] 칼리의 은색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들이받았다. 그 후 칼리가 나오자 몇분간 대화를 이어갔고 악수까지 나눈 뒤 집으로 들어가려는 마피아 부두목의 등 뒤에다 총을 난사한 것[81][82] 지문도 검출되고 범행에 이용된 차량도 발견되는 등 허술한 뒷처리끝에 붙잡힌 코멜로는 기자들이 방청한 범죄인 인도 심리에서 손바닥에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구호인 MAGA Forever[83]를 볼펜으로 적어 방청석에 보여주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84] 코멜로의 변호인 로버트 고틀리브는 자신의 고객이 범죄인 인도를 거부했으나 다음주에 뉴저지 주에서 인도된 뉴욕 주의 공판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을 예정이며, 매우 ‘심각한 위협’을 받은 뒤 보호수용 되어있고 현재 마피아 암살자(Mafia hitman)들이 복수를 위해 군침을 흘리고 있는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85][86][87]

2019년 3월 19일 프랭크 칼리의 장례식이 열렸다. 묫자리의 가격이 4만 5천 달러(약 5100만원)라고 미국에서 기사화가 되었다. 장례식을 취재하던 한 기자는 조문객으로부터 머리를 뜯어버린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코멜로의 보석 심리에서 총격 이후 코멜로가 '나는 도주 중이다. 우리 가족은 이제 (마피아의) 표적이 되었다. (I'm on the run, my family is marked)' 라는 문자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4월 3일 코멜로가 기소되었다. 정확한 범행동기는 여전히 밝혀지지않았고, 당국은 코멜로가 어느 교정시설에 구속되어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변호인은 다시 한 번 피고인의 안전 보장을 강조했다.#

프랭크 칼리 사망 이후, 미 사법당국은 프랭크 칼리의 빈자리를 로렌조 만니노가 대체했다고 보고 있다.[88]

2019년 7월 21일 사건 발생 초기에 몇몇 언론 보도로 피고인이 프랭크 칼리의 조카와 연애를 하려 했지만 53세의 마피아 부두목이 허락하지 않아서 살해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재판 과정에서 코멜로의 진짜 범행 동기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연합뉴스 보도 변호인에 의하면 피고인 앤서니 코멜로는 chan계열 이미지보드를 시작으로 미국 웹상에서 떠돌고 있는 대안우파 음모론 QAnon에 심취해있었고 범행 자체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돕기 위한 의도였다고 한다.[89] 이 음모론에 따르면 미국 정부를 배후조종하는 범죄자들로 구성된 도당인 딥 스테이트라는 게 있는데[90] 피고인은 프랭크 칼리가 미국 최대 범죄조직 중 하나인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이라고 확신했고[91] 나아가 프랭크 칼리를 Deep State의 핵심 구성원으로 여겼다고 한다. 피고인은 Deep State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에 의한 체포(Citizen's Arrest)를 추구했고 프랭크 칼리를 체포한 후 군대에 신변을 넘기려고 했다. 즉, 최초에는 칼리를 살해할 의도가 아니라 체포할 의도였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이 수갑을 지참하고 칼리의 집을 찾아갔지만, 막상 칼리와 대면하자 그가 체포를 거부하고 총을 꺼내는 듯한 동작으로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뻗자 공포를 느낀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총을 꺼내 살해했다는 것이 변호인의 변론이다.[92] 그리고 프랭크 칼리 사건 두 달 전인 2019년 1월에는 피고인이 또 하나의 Deep State 관계자라고 생각한 미국 민주당 소속의 뉴욕 시장 빌 드 블라시오(Bill de Blasio)를 목표로 2번 체포를 시도했지만 경찰에 막혀 접근에 실패했다고 한다.[93] 정치인의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범죄자를 암살하는 내용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현실판이 아닌가 생각나는 이야기다.[94]

2019년 7월에는 FBI와 이탈리아 경찰의 약 1년에 걸친 공조 수사로 시칠리아 마피아의 인제릴로 파벌과 뉴욕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 19명을 체포했다.[95] 한 마피아 전문가는 시칠리아와 뉴욕의 범죄조직 지도부가 대서양 양안 마피아 조직의 세를 규합하고 있으며, 양국의 마피아 조직이 여전히 강력한 유대를 갖고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BBC에서는 양측 조직원들이 특히 일전에 사망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프랭크 칼리가 생전에 소유했던 부동산의 판매를 논의하기도 했으며, 시칠리아에서의 이번 작전은 감비노 패밀리의 근거지인 뉴욕 브루클린 18번가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전했다.[96]

4. '정통' 마피아의 조직양상

'마피아'라는 용어 자체가 범죄조직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기에 요즘에는 으레 '차이니즈 마피아', '러시안 마피아' 같은 식으로 차용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마피아'의 원조에 해당되는 이탈리아 마피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고유한 범죄적 조직유형으로, 그 뒤에는 고유의 시대적 조건 및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오늘날 마피아 연구자들은 이탈리아식 '마피아' 유형의 조직 범죄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로 1. 이탈리아-시칠리아식 가부장적 가족문화, 2. 파트론-클라이언트 관계, 3. 미약한 중앙권력과 민주주의, 4. 자본주의의 네 가지 정도를 꼽는다. 이 요소들이 특이하게 결합된 형태가 마피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네 가지 요소들이 갖춰지지 않거나 부족한 결격 사유가 생기는 경우 그에 기반한 마피아식 조직유형은 쇠퇴할 수 밖에 없다는 것.

4.1. 이탈리아-시칠리아식 가부장적 대가족문화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은 마피아의 기원을 19세기 중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시칠리아로 꼽고 있다. 당시 시칠리아는 여느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급속한 자본주의화를 겪고 있었으며, 고도의 산업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영국, 프랑스, 독일과는 달리, 산업화가 미약하여 산업-금융자본의 형성 보다는 우선 농지의 집적을 통한 농업자본의 형성이 이루어지는 아일랜드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며, 이는 그러한 자본주의화 모델에서 흔히 발생하는 것처럼 대지주들과 소작민, 자영농 사이의 격한 대립이 상존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지주들은 토지를 수취하려는 목적으로 대지주들은 자영농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는데, 이에 대해 시칠리아의 자영농들이 가족단위로 뭉쳐 대지주들에게 대항을 했다. 이탈리아의 공적인 행정 및 치안권력이 미약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97] 사실상 왕초노릇을 하던 대지주들이 땅을 빼앗을 목적으로 자영농에게 폭력과 살인을 벌였고, 가족 단위의 자영농들은 그에 맞서 그 이상의 폭력과 살인으로 되갚음을 해주는 복수극이 끝없이 되풀이되었으니, 이것이 곧 그 유명한 "벤데타(vendetta)"이다.

이탈리아-시칠리아는 매우 강한 대가족 문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지주들 역시 그 자신의 가문 단위로 활동을 했고, 그에 맞서는 자영농들 또한 가문 단위로 뭉쳤으며, 대지주들 가문 사이의 동맹이 자영농들 사이의 동맹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으며, 그러한 대립은 사회적으로는 '지주 vs. 자영농' 관계였으며 동시에 사적으로는 '우리 가문 vs. 쟤네 가문' 의 양상을 띄게 되었으니, 가문의 이해관계와 명예를 위하여 당한 폭력은 반드시 더한 폭력으로 앙갚음을 하는 '가문 단위의 복수극'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

이후 미국 땅에서 조직범죄화 한 후에는 확장경향으로 인해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조직원들도 받아들이게 되었으나, 그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뭔가 매우 중요한 공통된 연고가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출신동네를 통한 연고관계라든지,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누군가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를 받는 등, 반드시 인연과 연고의 관계를 취한다. 애초에 특정 마피아 조직을 "~~패밀리"라고 하는 것 부터가 기본 조직모델이 가부장적 확장가족의 형태를 모사한 것이다.

4.1.1. 다른 이론들

위 항목에서도 나오듯, 시칠리 마피아의 출현과 성장 배경을 두고 당시의 치안 공백, 그리고 신변보호를 원하는 주민들의 요구가 주된 요인인 것으로 분석하던 2003년 연구가 있었으며 이는 그 구조적인 특성상 꽤나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 나온 최근 연구의 경우 이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 19세기 들어 오렌지와 레몬의 수요가 급증했는데, 시칠리는 해당 품종들에게 있어 최적의 재배지였고 이 덕분에 폭력조직이 착취할 자본 역시 증가하여 마피아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관련 논문
  • 사회주의 탄압을 위해 폭력조직 동원이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마피아로 성장했다는 것. 관련 논문

4.2. 파트론-클라이언트 관계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에서 줄곧 등장하는 내용 중 하나가 고대 로마의 "파트로누스(patronus)-클리엔테스(clientes)" 관계에 대한 것인데, 여기서 마피아의 한 요소로 언급되는 '파트론(후원자)-클라이언트(피후원자)'관계와 완전히 동일하다. 로마시대로부터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이래로 주욱 내려오는 이탈리아 지역 특유의 사회관계 중 하나로, 로마의 멸망 후 오랜 시간 동안 통일국가 없이 도시국가 단위로 쪼개져 지내오면서 이탈리아 지역의 사람들은 근대 이탈리아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어떤 통합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행정권력에 귀속된 경험이 전혀 없다. 따라서 모든 인간관계는 도시, 마을, 영지 단위에서의 유력자들과 그 영향력 아래에 있던 귀속인들 사이의 것이었으며, 이러한 소단위 내에서는 명확한 성문법과 강력한 행정권력이 공적인 권력으로 발휘된 것이 아니라, 관습법과 풍습, 후견인의 취향과 변덕, 그리고 서로 간의 유대와 호의, 배려와 같은 사적인 형태를 띄었다.

즉, 공식적으로 법률이나 원칙이 뭐라고 떠들던간에 그 법은 멀고 희미한데 주먹은 또렷하고 가까우니, 기왕이면 그 '주먹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모든 일을 딱딱하게 하기 보다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주먹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대신, 내가 필요한 경우에는 주먹에게 청탁하는 식의 사적 인맥과 충성관계가 로마의 파트로누스-클리엔테스 관계이자 마피아의 파트론-클라이언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로마는 법의 민족'이니 뭐니 하면서 마치 고대 로마가 오늘날 근대국가 수준의 공적이고 객관적인 통치를 행했다며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데 시오노 할매처럼, 실상은 유명한 미드 "ROME" 시리즈에서 묘사된 것이 사실은 고대국가 로마의 현실이자 한계에 보다 근접한 것이다.

미드 "ROME" 시리즈에서 충성스럽고 근면한 군인인 루키우스 보레누스가 퇴역한 후 로마로 들어와서 겪게 되는 일을 보면, 순진한(?) 보레누스의 생각과는 달리 어떤 대단히 민주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공적 권위를 얻는게 아니라 마치 전국구 조폭 똘마니가 나와바리 배정받고 두목의 후견 아래 급격히 권력이 불어나는 모습을 방불케 하는데 이게 공화정 후기-제정 초기까지의 로마 귀족사회의 모습이다.

현대사회처럼 법의 권위가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하고 있는 환경이라면 기득권을 쥐고 있는 대귀족들이 작당하여 개혁을 외치는 그라쿠스 형제를 대놓고 살해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즉, 실질적으로 로마 사회는 가부장을 대표로 하는 강력한 가문단위 세력들 사이의 합의제 사회였으며, 이 가문의 수장들이 지닌 막대한 권력은 일족의 권위에 귀속되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생사여탈을 관장할 수준이었으며, 그러한 대가문의 수장들이 세력을 키우고 자기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은 성문법적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관습법을 가장한 가부장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로마의 대가문의 수장과 그 휘하 세력은 딱 조폭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게 맞는 말이라는게 흠좀무다. 고대 로마의 그 조폭-똘마니-나와바리 등 요소들이 2,000년 시대를 이동하여 현대로 들어온게 마피아 조직이론 그 자체라는 것. 마피아의 활동원칙은 이와 완전히 동일하다.

마피아는 자신의 하수인, 자기 영향력 아래의 주민들과 기본적으로 1:1의 후견인-하수인 관계를 맺으며, 그 하수인들 사이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마피아가 장악한 지역에서 밀주업자 A와 경찰 B가 있다면, 마피아는 A, B와 각각 별개의 후견인-하수인 관계를 맺으며, 밀주를 만드는 A가 경찰인 B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A의 탄원을 받아 B의 행동을 제약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못하는 B가 곤란해하니 A가 밀주로 얻는 수입의 일부를 B에게 양도하여 B에게 '보상'을 해준다. 이로 인해 B의 상관인 경찰서장 B'가 B를 곤란하게 만들면 B' 또한 회유하거나, 그게 안되면 B'를 사라지게 만든다.

이런 식의 일들이 벌어지면 마피아가 장악한 지역에서 일부 사람들은 마피아에 대해 "공권력은 아무 것도 못하지만 저 패밀리는 이런 식으로 지역 내 분쟁을 해결해주는 훌륭한 사람들이다"라는 식의 착각을 하게 되면서 유착은 가속화된다. 그러나 실상은 마피아야말로 애초에 모든 문제의 흑막이자, 이런 식의 사적인 후견인-하수인 유착관계에서 법과 원칙 따위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간지가 오래다.

즉, 이런 후견인-하수인 모델 아래 상호유착 및 의존관계를 형성한 지역장악형 조직모델이 '진짜 마피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로마의 정치는 스파르타 같은 본격 군사정권들보다 마피아 같은 조폭들 정치[98]와 유사하다.

4.3. 미약한 중앙권력과 부패한 민주주의

위의 조건1과 조건2에서 언급된 내용을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범죄조직이 활동 근거지 내에서 거의 모든 주요 대상에 대해 문어발과 같은 유착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착관계의 정점을 찍는 것은 중앙집중적 체계보다는 지방분권적 체계 아래에 있는 지역들의 정치인들과의 유착이었다.

실제로 이탈리아계 마피아가 융성했던 이탈리아-시칠리아 본토나 미국의 경우, 시대적 상황에 의해 모두 지방분권적 색채가 강한 곳들이다. 원조 마피아가 발생한 이탈리아의 경우 애초에 고대 이래로 거의 1,500년 동안 통일국가 없이 사람들이 살아온 지역이고 신생 이탈리아 정부의 행정권력이 미약한 곳이었으며, 심지어는 제2차 세계 대전까지도 이탈리아군의 국가단위 귀속의식이 희박하다는 말이 나온다. 아니, 오늘날까지도 이탈리아의 국가적 통합은 약한 편이어서 남부와 북부 갈등이 잘 해소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미국은 애초에 땅덩이부터가 20세기 초반의 기술 및 행정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곳이라 각 주정부에 이양된 권한이 상당하며 (법률마저 주 마다 다를 정도), 오늘날에도 한 주에 완벽한 행정력을 투사하기가 힘들어서 동네에서 보안관 뽑아서 경찰노릇하도록 맡길 정도.

즉, 상대적으로 중앙통제가 미약한 곳에 자리 잡은 마피아는 각계에 후견인-하수인 관계를 통해 유착한 결과, 해당 지방 단위의 선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즉, 마피아는 해당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인을 후견인으로 두고 스스로 하수인이 되는 형태로, 지역적 유착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수준의 곤란이나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예컨대, 연방정부가 개입한다든지...) 그 해결을 '후견인'에게 부탁하는 대신, 선거마다 몰표를 거둬들이는 일을 하게 된 것. 이 과정을 수행하는 단체가 유니언(union)인데, 갱스터 영화에서 노조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고 상당 부분 겹치기는 하지만 유니언=노조는 아니다.

즉, 마피아라는 조직범죄형태가 20세기 초중반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일방적으로 임명되는 총독이나 지방관과는 달리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예측가능한 형태로 선거가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었다. 민주주의의 선거제도가 부패하고 타락하여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최고의 이용물이 될 수 있었던 것. 한국에서도 혼란한 정국에서 정치깡패들이 선거에 개입하고 조작하려는 등 행패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4. 자본주의와 국제금융

현대사회에서 범죄조직이 과거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막강해지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로 이것은 비단 마피아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에 법치를 벗어나있는 범죄조직이 기껏해야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기본적으로 현물거래로 감당할 수 있는 물량에 수렴한다. 중앙권력에서 벗어난 거대한 범죄단체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모은 자산은 현물이든, 증서나 신용장의 형태든 결국에는 한정되어 있으며 쉽게 추적이 가능하다.

반면, 신용경제의 등장은 '자본세탁'이라는 범죄조직의 신기원을 세상에 등장시켰다. 앞선 조건들이 '정통' 마피아들에게 시대적 한정을 붙여놓은 제약이기도 하다면, 자본주의의 국제금융시스템을 통한 자본세탁 및 이윤증식은 앞선 조건들을 모두 뒤엎어 놓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조직범죄가 살아남아 성공적으로 국제화 및 기업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셈.

이탈리아 사회 문제인 남부의 경제적 격차는 지금도 개선되는 여지가 없을정도로 심각한 편인데 어렸을때부터 불우한 가정에서 살아왔던 이탈리아 청소년들이 자꾸만 마피아에 가담하는것도 큰 문제라 부각되고 있다. 가뜩이나 마피아를 명예로운 남자라는둥 왠지 멋있는 협객처럼 보는 시각에 더해 어려운 경제 사정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마피아에 조직원이 자꾸만 수급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나폴리 카모라를 다룬 영화 고모라를 보면 이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데 어린 조직원이 방탄조끼를 입고 마피아 총알에 맞아보는 시험을 견디고 성인 조직원의 끄나풀이 돼서 조직원 노릇을 하는 문제가 묘사되고 있다. 최근에는 10대들이 갱단을 조직해 카모라의 하수인이 되거나 독자적으로 날뛴다고 한다. #

4.5. 오늘날의 '정통' 마피아

앞선 조건들 중 마지막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대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정통' 이탈리아 마피아의 표면적 쇠락에 영향을 미쳤다. 가부장제적 가족주의 조직형태가 오늘날 거대화한 기업형 범죄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은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소규모 가족경영의 기업이 결국 언젠가는 전문경영인과 전문적 이사회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과 같으며, 그러한 가족제적 경영의 끝판왕 취급을 받고 있는 한국식 재벌시스템도 오늘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로 지적 된 파트론-클라이언트 관계 또한 이탈리아의 지역적특색이 너무 강한 감이 있으며, 특히 세 번째로 지적 된 조건과 합쳐서, 잘 해봐야 과도기적 근대사회에서나 통할 수 있는 조직요소로 평가를 받는다. 즉, 오늘날처럼 막강한 행정력과 '제민지배'를 현실화한 현대국가로 이행하기 이전, 근대국가의 수립이 이루어지던 시절 중앙행정력이 모든 시민에게 미치지 못했던 시절에나 특정 연고지에서 '왕초' 노릇을 할 수 있었던 지방적 조직범죄가 성행할 수 있었다.

결국 최신기술로 무장한 현대국가의 등장, 막강한 경찰력 및 치안관리능력, 그리고 그에 걸맞춘 건전한 시민사회의 등장은 과거와 같은 단순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기에 어렵게 만들며, 애초에 너무나 조직이 세분화되고 고도화 되어 과거처럼 몇몇 유지나 행정관, 경찰을 매수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장악력을 유지할 수 없다.

결국, 오늘날에는 기업화, 국제화의 추세를 받아들인 마피아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5. 주요 단어

5.1. 직책

  • 대부
    마피아 두목을 가리키는 별칭 중 하나. 이것이 정식 명칭은 아니다. 해당 문서 참조.[99]
  • 두목(Official Boss)
    말 그대로 마피아 패밀리의 TOP. 원래는 '카포(capo, 대장 - 이탈리아어)'라고 불렸으나 아래의 카포레짐과 헷갈리게 되어 보스로 불렀다. 돈(Do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두목은 위원회나 전임 두목이 지명하는 방법과, 조직 내 지부장 이상 간부급들이 투표로 뽑는 일반적인 경우에 더해 전통적인 쿠데타(무력)으로 뒤엎어버리는 3가지 경우가 있다. 전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에 의하면 존 고티가 쿠데타를 성공하고 영화 신세계처럼 조직의 전 간부들을 지하실에 모두 소집한 뒤, 간부들 뒤에 자신의 부하를 하나씩 세워놓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투표를 했다고 한다.
  • 언더보스(Underboss)

    • 부두목, 즉 조직의 No.2이다. 이탈리아어로는 '소토카포(sottocapo)'라고 불리는데 현지화의 경향인지 언더보스라고 불리는 일이 더 많다. 어느 집단을 가든 수장이 모든 일을 해결하기는 힘들기에 일손을 거드는 역할이지만 두목이 얼마나 막강한지와 얼마나 바보같이 일을 처리하는지에 따라 위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데, 두목이 막강할 경우 아래의 두 가지 케이스로 흘러간다.
    • 대행 두목(Acting Boss)
      두목이 수감되거나 병으로 인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 실질적으로 두목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 다만 현 두목은 수감되더라도 직위를 박탈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밖에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두목 '대행'에 불과하다. 대행 두목의 권력은 그때그때 다른데, 감옥에 있는 두목이 존경받고 영향력이 있는 경우에는 수감 중에도 자신의 대행 두목을 통해 패밀리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주요 의사결정을 하며 사업으로 얻는 수익은 두목의 가족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인망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아주 드문 경우지만 패밀리에서 두목 자리를 박탈하기도 하고 직위 박탈까진 아니어도 이름뿐인 두목으로 남아 실질적인 권한은 교도소 밖의 대행 두목이 다 행사한다. 대행 두목이 누가 되는지도 그때그때 다른데 서열순으로 부두목이나 콘실리에리가 맡는 경우도 있고, 마피아 조직에 몸담고있는 두목의 아들이 직위가 떡상해서 맡는 경우도 있다.
    • 일선 두목(Front Boss, Street Boss)
      마피아 조직의 얼굴 마담. 다른 패밀리에서도 활용하지만 특히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에서 활용하는 직책이다. 실상은 두목으로 집중되는 사법 당국의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만든 직책으로 주로 조직 내에서 존경받는 원로나 떠오르는 젊은 마피아에게 씌워주는 감투같은 직책이다. 실권은 둘째치고 일단 명칭은 두목이니까. 실제로 1985년 위원회 재판 때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으로 지명되어 기소된 인물은 조직의 실제 두목이었던 빈센트 지간테가 아닌, 일선 두목인 앤서니 살레르노였다.
  • 콘실리에리(Consigliere)
    두목이 회장이라면, 콘실리에리는 이사 정도 되며 야쿠자로 치환하면 샤테이가시라(舎弟頭)에 해당한다. 보통 패밀리 내의 연장자나 지식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영화를 보면 일반인들이 "A는 나의 콘실리에리"라고 하는 식으로 사용하기도 한다.[100] 따라서 패밀리 고참들의 대표나 고문참모의 성격이 강하다. 보통 명예직이거나 실권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두목의 부재시 두목직을 대행하는 경우도 있는 등 패밀리 내부의 정세에 따라 위상이 달라진다.
  • 카포레지메(Caporegime) / 지부장(Crew Boss)
    중간 보스. 줄여서 카포라고도 부른다. 사단장마냥 자신만의 '부대'를 둘 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현지화하여 캡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패밀리 내에서는 이 직책부터 간부급이다.
  • 솔다토(Soldato)
    이탈리아어로 '병사', 즉 행동대원이다. 사실상 처음으로 정규 조직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직책이라고 볼 수 있다.[101] 직책상으로 큰 의미는 없어서인지 우리 사람(one of ours), 우리 친구(friend of ours), 좋은 친구(good fella)[102] 등 여러 별명으로 불리는데, 그 중 유명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메이드 맨(Made man)
      과거엔 누군가가 가입을 원하면 조직에서 특정 인물[103]을 지시하고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 행위를 "뼈를 만든다(Make one's Bone)"라고 불렀고, 여기에 성공하면 "(뼈를) 만든 사람"이란 뜻으로 메이드 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104] 그렇다보니 반드시 살인을 한 인물만 정규 조직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으나, 존 고티의 아들 주니어 고티에 의하면 굳이 살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패밀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는 충성심만 인정되면("You don't have to kill somebody. You do have to have a history of loyalty, of doing whatever it takes for the family.") 입단할 수 있다고 한다.[105][106] 메이드 가이(Made Guy)라 부르기도 한다. 드라마 소프라노스에서는 메이드가이라고 주로 부른다.
    • 와이즈 가이(Wise guy)
      미국 마피아 조직원들이 주로 자기네를 지칭할 때 쓰는 말. 우리나라의 ‘건달’과 비슷한 단어. 메이드 맨은 정규 조직원에게만 사용하지만, 와이즈 가이와 상술한 좋은 친구(Good fella)는 정규 조직원은 물론 마피아에게 협력하는 외부인에게도 쓸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107]
    • 존경받는 사람(A man of honor / A man of respect)
      둘 다 같은 의미를 지닌 이탈리아어(uomo d'onore, uomo di rispetto)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사나이로서) 존경받을 만하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존경받는 일(주로 벤데타)을 해낸 사람을 가리켰지만, 마피아 세계로 유입되면서 의미가 약간 바뀌어 길거리의 앙아치보다 귀중한 인물이라는 속뜻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평가가 의미없는(?) 간부급 인물에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 준 구성원(Associate)
    정규 조직원이 아닌 준 조직원이나 협력관계의 준 구성원.[108] 정규 조직원과 연계해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대부분 말단 행동대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중엔 마이어 랜스키, 벅시 시겔 같은 이탈리아 혈통이 아니어서 정규 조직원이 못되었을 뿐인 어마어마한 거물도 있다.

5.2. 용어

  • 우리의 친구(Friend of Ours) / 내 친구 (Friend of Mine)
    마피아 세계에서 특정 인물의 '소속'을 암시하는 표현. 도니 브래스코 등 미국 마피아 영화나 드라마에서 서술되듯이 두 표현 간에는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정규 마피아 멤버인 메이드가이임을, 후자는 그냥 동료나 준구성원임을 나타낸다. 전자인 ‘Friend of Ours’는 이탈리아어로 ‘Amico Nostra’라고 한다. 보통 정규 조직원끼리 처음 만나는 상황에는 둘을 모두 아는 제3의 인물이 “Amico Nostra, Friend of Ours. 이쪽은 A입니다.” 하는 식. 반대로 후자인 ‘Friend of Mine’에는 조직 내부의 사정이나 '사업'의 실상을 알려주면 안 된다는 의미가 있다. 창작물에서는 이 단어 사용의 변화를 통해 주인공 등의 등장인물이 가입했음을 묘사하기도 한다.
  • 벤데타
    '복수'를 나타내는 이탈리아어 단어. 해당 문서 참고.
  • 카포 디 툿티 카피(Capo Di Tutti i Capi)
    영어로 옮기면 boss of all bosses, 즉 "두목 중의 두목"이라는 뜻. 중간의 툿티는 생략하고 '카포 디 카피'라고 쓰기도 한다. 평의회가 생기기 전에는 이 명성을 얻기 위해 다들 죽고 죽이며 싸웠고, 아래에 나오는 마세리아와 마란자노도 대항쟁을 일으키며 싸웠으나 결과적으론 둘 다 암살당했다. 이렇듯 과거엔 전제군주제에 가까웠으나 현대에는 평의회가 생기면서 약소 조직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민주주의적으로 흘러갔다...는 당연히 눈가림이고, 명칭만 사라졌을 뿐 강자가 날뛰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 평의회(Commission)[109]
    찰스 루치아노가 만든 미국 마피아의 전국적인 논의 집단으로, 미국에서는 이 기구로 위의 카포 디 카피를 대체했다. 평의회 표결권은 변동이 있어왔지만 현재는 뉴욕의 5대 패밀리+시카고 아웃핏이 중심이 되고 그 외 지방의 패밀리들이 참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건 알 수 없다. 주로 조직의 후계자 문제, 분쟁 해결, 사업정보 공유 등을 다룬다. 이 기구는 시칠리아 마피아가 큐폴라(Cupola)라는 기구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 정부 증인이 된 보난노 패밀리 두목 조셉 마시노에 의하면 수사기관의 감시가 강화됨에 따라 1985년 11월의 회합을 끝으로 각 패밀리의 두목들이 정기적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전통적인 위원회 회합은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기 회담은 5년에 한번, 비정기 회담은 안건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여러 사정상 모든 두목들이 한자리에 모여 직접 대면하는 방식이 아닌, 비정기적으로 조직원 간 소규모 회합을 가진 뒤 각각의 두목들에게 보고되는 형식이거나, 의제에 관해서 두목이 다른 패밀리에 전령을 파견해 의사소통과 표결을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2000년에는 마시노 본인이 당대 5대 패밀리의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소집해 회합을 가졌다고 증언했지만, 일시적인 회합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형태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110]
  • 전미 범죄 연합체(National Crime Syndicate)
    역시 찰스 루치아노가 동료인 유대인 폭력배 마이어 랜스키와 함께 창설한 집단으로, 민족주의에 연연하기보다 이탈리아계인 라 코사 노스트라를 중심으로 유대계나 아일랜드계 등 다른 인종으로 구성된 범죄조직들까지 포섭하여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개념이다. 그러면서 내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아래의 살인 회사도 만들었다. 1960년대를 끝으로 해산된 걸로 보고 있다.[111]
  • 살인 회사(Murder, Inc.)

    • 초창기 라 코사 노스트라에 방해되는 인물들을 죽이는 데 사용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 방해 인물이란 마피아 포함. 단, 마피아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최종 징계"였다. 앨버트 아나스타시아(일명 "매드 해터")처럼 바보짓이나 깨방정을 떨어 모두의 이미지를 깎는다든가, 사업을 벗겨 지 배만 채운다든가 하는 인물들이 목표물. 조사에 의하면 400명~1000명을 죽였다고 한다. 아래에서 서술하는 대로 각자 역할이 철저하게 짜여 있었기 때문에 처리가 신속했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이 회사가 한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 의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결국엔 해산되었다.
  • 핑거맨(Fingerman)
    살인회사 팀에서 목표물의 정보 등을 알아내는 사람.
  • 히트맨(Hitman)
    살인회사 팀에서 목표물의 실질적 살해를 맡는 사람. 우리가 흔히 아는 히트맨의 어원이 바로 이것이다. 오래 전엔 버튼 맨(button man)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역시 살인청부업자를 가리킨다. 대부2에서 관련 은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 휠맨(Wheelman)
    살인회사 팀에서 히트맨 등을 자동차를 이용해 재빨리 피신시키는 사람. 게임 "드라이버" 시리즈나 빈 디젤의 휠맨 등등은 모두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 영성체
    살인을 하고 그 시체를 감쪽같이 숨기는 것. 아래의 견진성사와 마찬가지로 둘 다 본래 가톨릭 용어였으나, 마피아 사회에 가톨릭이 결합되며 수입되었다. 영성체사제의 축성으로 예수님의 몸(성체)과 피(성혈)가 된 빵과 포도주를 받아먹음으로서 예수님과 일치하는 의식이다. 이를 '자연과 하나가 된다'고 하여 시체를 묻는 등 감쪽같이 숨긴다. 오죽하면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이 사라졌다"라고 할 정도. 대부에서 자주 묘사되었다. 역사상 유명한 예시로 지미 호파 실종사건이 있다.[112] 이탈리아에서는 기자들의 은어로 루파라 비앙카(Lupara bianca)라 하는데 감쪽 같이 시체를 없애는 걸 말한다. 주로 시신을 토막쳐서 파묻거나 코를레오네시가 했던 강산으로 시신을 녹여서 지중해에 유기하는 수법을 말한다.
  • 견진성사
    살인을 하고 그 시체를 '의도적으로' 현장에 남겨 놓는 것. 경고의 의미가 강하다.

6. 마피아 조직 강령과 상징

입단식
패밀리의 두목이 누군가를 정규 조직원으로 입단시키기로 결정하면 입단식을 거친다.[113] 입단하는 조직원은 호출을 받고 비밀 장소로 안내된다. 그곳에서 그는 흰색 가운을 입은 뒤 입단식의 주재자인 패밀리의 두목과 대면한다. 이내 곧 양측은 오래된 대본을 재현하는데, 의식 주재자인 두목이 “여기 왜 왔는지 알겠나?”라고 물으면 입단자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곧이어 주재자가 “우리는 비밀스러운 사회의 일원이다. 영광스럽고 독점적인 사회지, 네가 오늘 여기 온 이유는 자네가 우리 형제의 일원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참여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네.”라고 대답한 입단자에게 주재자는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패밀리의 두목이 호출하면 즉시 아이를 침대 곁에 두고 오겠는가?”라고 물은 뒤 입단자의 긍정의 대답이 이어지면 주재자는 탁자에 놓인 38구경 권총과 6인치짜리 칼을 가리키며 “만약 패밀리의 두목이 지시하면 이 칼로 누군가를 죽일 건가? 만약 네 친형제가 우리 패밀리 일원을 해치려고 했을 때, 우리가 이 총을 가지고 네 형제를 죽이라고 지시한다면 너는 그렇게 하겠나?"라고 묻는다.[114] 입단자가 “네.”라는 긍정의 대답을 하면 주재자는 바늘로 입단자가 방아쇠를 쥘 때 쓰는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고 그 피를 천주교 성화 위에 떨어트린다. 입단자는 피가 묻은 성화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재가 될 때까지 태우며 만약 패밀리를 배신한다면 자신의 영혼이 이 카드처럼 지옥에서 영원히 불탈 것이라고 오메르타를 맹세한다.[115] 이러한 행위는 조직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을 강조하는 것이다. 만약 조직의 규칙을 하나라도 어기면 다른 조직원에 의해 처형당할 수 있으며, 그러한 처형은 주로 대상자와 가장 가까웠던 인물에게 지시한다.[116][입단식에관해]

마피아 조직 강령
  • 1. 오메르타 - 조직원은 절대 정부 기관에 조직의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 그 유명한 침묵의 계율. 문서 참고.
  • 2. 인종 - 이탈리아 혈통이어야지 정규 조직원(Made Memeber)이 될 수 있다. 조직의 준 구성원•동업관계•동맹관계에는 인종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118]
  • 3. 조직의 비밀 - 조직원은 조직원이 아닌 타인에게 조직 사업에 관해 얘기할 수 없다.
  • 4. 피는 피로 - 만약 조직원이 다른 조직원에게 살해당했다면 두목의 승인이 있어야지 복수가 허용된다.
  • 5. 조직원 간 싸움 금지 - 주먹다짐에서 칼싸움에 이르기까지 금지된다.
  • 6. 상납 - 반드시 조직원은 매달 두목에게 상납하여야 한다. 또한 정기 상납금 외의 부가 수익에 있어서도 수익의 일부를 내야 한다.[119]
  • 7. 간통 - 조직원은 다른 조직원의 아내와 간통하면 안 된다.
  • 8. 수염 - 조직원은 콧수염을 기를 수 없다.[120]
  • 미국 마피아 내부에서 엄격히 준수되는 강령으로 마약 거래 금지에 관한 규정이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마피아는 마약을 거래하다 적발된 조직원은 죽음으로 처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 거래는 미국 마피아에게 빼놓을 수 없는 막대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이게 무슨 모순인가 싶겠지만, 예로부터 미국 마피아는 법적 부담이 큰 위험한 마약 사업을 패밀리 내 일부 시칠리아 출신 조직원들로 하여금 주관하게 했다.[121] 미국 마피아는 주로 이탈리아 본토의 친척 조직들과 연계해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항구(예컨대 뉴욕항)을 통해 마약을 들여오거나 내보낸다. 들여온 마약은 수하의 전문 마약상이나 준 구성원으로 하여금 팔게 하거나, 소매업자인 거리의 갱단들에 대금을 받고 물건을 대주는 식이다. 과거 전설적인 헤로인 밀수 루트로 프렌치 커넥션이 유명했다.[122] 29년 경력의 FBI 수사관 출신 사립탐정은 2019년 GQ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아마도 미국 마피아의 모든 사업 중 가장 비밀스러운 영역이 마약 거래일 것이다. 시칠리아인들은 패밀리 내 극소수 조직원들에게만 자신들이 어떤 사업을 맡았는지 알려준다. 만약 FBI가 마약 거래와 라 코사 노스트라 사이의 어떤 연관성을 발견한다면 관련자들은 6개월~1년간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이다. 그들은 해안이 안전해지면 다시 사업을 재개한다. 매우 정교하다."라고 전했다. 또 마피아가 마약 수입을 돈세탁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새로운 지역에 새로운 회사를 만들거나 그들이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 피자 가게 같은 여러 사업체들을 통해 돈을 흘려보낸다. 1만 달러나 2만 달러를 세탁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같은 기사에서 오늘날 미국 마피아는 보통 유럽으로 코카인을 내보내고, 미국으로 헤로인을 들여온다고 한다.
  • 정식 강령은 아니지만 동성애도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1992년에 수감 중인 두목을 대신해 뉴저지 데카발칸테 패밀리의 대행 두목을 맡고 있던 존 다마토(John D'Amato)가 동성애 행각을 벌였다는 의심을 받고 조직에서 처형된 사례가 있다.[123]

상징들
  • 항문에 300 달러가 꽂혀 있는 시체 - 위원회의 허가 없이 두목을 살해한 경우 해당한다. 탐욕스럽다는 의미.[124]
  • 손이 잘린 시체 - 살해된 조직원이 FBI 요원을 조직에 들였을 때 해당한다. 프락치와 악수하였다는 의미.[125]
  • 카나리아 새를 물고 있는 시체 - 살해된 조직원이 FBI의 정보원으로 의심될 때 해당한다. 마치 새가 지저귀듯 연방 정부에 정보를 넘겼다는 의미.[126]
  • 물고기가 든 가죽 지갑 혹은 방탄조끼 - 대부(소설) 한정. 해당 물건의 소유자가 이미 죽어 바다에 시신이 유기되었음을 뜻하는 조롱이다.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 십계명
2007년에 이탈리아 경찰이 체포한 시칠리아 마피아 두목 살바토레 로 피콜로(Salvatore Lo Piccolo)에 의해 밝혀낸 내용.
  • 1. 누구도 다른 정규 조직원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없다. 반드시 제3자가 하여야 한다.(No one can present himself directly to another of our friends. There must be a third person to do it.)
  • 2. 친구의 아내를 생각하지 마라.(Never look at the wives of friends.)
  • 3. 경찰을 만나지 마라.(Never be seen with cops.)
  • 4. 술집과 클럽에 가지 마라.(Don't go to pubs and clubs.)
  • 5. 항상 코사 노스트라의 의무에 충실할 준비가 되어있어라. - 비록 아내가 출산하더라도.(Always being available for Cosa Nostra is a duty - even if your wife is about to give birth.)
  • 6. 직급은 반드시 존중해라.(Appointments must absolutely be respected.)
  • 7. 아내를 반드시 존중해라.(Wives must be treated with respect.)
  • 8. 정보를 물을 땐, 반드시 진실을 얘기해라.(When asked for any information, the answer must be the truth.)
  • 9. 타인이나 다른 패밀리에 속한 돈을 도용하지 마라.(Money cannot be appropriated if it belongs to others or to other families.)
  • 10. 코사 노스트라에 속할 수 없는 사람들: 경찰과 사촌인 사람, 친척 중에 배신자가 있는 사람, 나쁘게 행동하고 도덕적 가치관이 없는 사람.(People who can't be part of Cosa Nostra: anyone who has a close relative in the police, anyone with a two-timing relative in the family, anyone who behaves badly and doesn't hold to moral values.)

7. 마피아 조직 특징 및 기타 사항

  •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의 특징으로 견고한 서열구조와 조직 방법을 들 수 있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은 피라미드형의 중앙 집권적인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127] 직계 또한 체계적이다. 또한 다른 범죄조직들은 명멸해도 마피아만은 끈질기게 살아남는 또 다른 이유로 라 코사 노스트라의 일부 인사들이 본인의 아들, 조카와 같은 친족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주길 원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128][129] 많은 마피아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패밀리 사업'으로 번 돈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이러한 생각이 기성세대의 전유물만이 아니라 일부 신세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도 자기네 마피아 사업의 유산과 역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 중 일부는 실제로 조직에 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130]
  • 또 다른 특징으로 이들은 대부분이 살인을 금하는 가톨릭교회의 신자들이고 가톨릭 전통을 따른다는 점이다. 자신들(마피아 조직원)은 일종의 이탈리아인의 전통과 권리를 지키는 군인들이고 군인들은 언제든지 국가의 명을받아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고 본인도 적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듯이 자기네 마피아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상체계를 가지고 있다.[131] 그래서 자신들은 마피아 관련 비즈니스로 살인을 해도 지옥에 갈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후에 천국까진 아니어도 연옥에 가는 정도로 합리화하는듯하다.[132] 이러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마피아가 가톨릭 관련 지역 축제를 돕고[133] 각종 자선사업도 하는 것인데 프란치스코 교황칼라브리아은드랑게타를 (비록 교회법에 따른 정식파문은 아니지만) 구두로 파문한 것은 파급력이 있는 사건이다.
  • 돈 되는 건 합법•불법 가리지 않고 다하는 마피아 조직이지만 그들의 핵심 사업은 노조(Union) 개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찍이 감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는 '우리의 일은 노조를 경영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조 장악을 통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노조의 자금을 횡령•유용하는 등의 목적도 있지만, 더욱이 미국은 주요 선거때마다 노조에서 특정 지지 후보를 발표하고 그에 따라 노조원들의 표가 특정 후보로 몰리게 되는데, 표심에 민감한 민주국가의 정치인들은 노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마피아 입장에서 정계와의 유착을 강화하는 데는 노조만 한 게 없다. 괜히 대부소프라노스를 보면 노조(Union)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게 아니다.
  • 대부비토 콜레오네가 작중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젠코 올리브기름’ 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써 수입•유통업자로 알려져 있듯, 유통업은 실제로 마피아가 선호하는 직종이다. 최근까지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이었던 프랭크 칼리는 ‘Bontel USA’라는 이탈리아 식재료와 와인을 수입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 정치인, 검사, 육군 대장 등 가리지 않고 정부 인사를 암살하는 이탈리아의 마피아와 달리 미국 마피아의 경우 찰스 루치아노가 자신을 기소한 토머스 듀이 연방 검사를 암살하려는 부하들을 만류하고 순순히 재판을 받고 교도소로 갔고, 그 밖에도 미국 마피아는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정부를 도와 전쟁에 협력한 점, CIA와 연계하여 카스트로 암살 작전을 시행한 점, 21세기에 IS가 기승을 부리자 연방 정부에게 연합해서 함께 싸우자는 제안을 하는 등 정부와의 마찰을 최대한 지양하는 특징을 보인다. 전 감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는 '우리는 경찰과 정부 요원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서로 죽일 뿐이다.(we don't kill cops, we don't kill agents, we kill each other.)'라고 얘기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미국 마피아 또한 잔혹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범죄조직이므로 예외 사례 또한 있는데, 마피아가 관여했다고 음모론이 있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134], 공식적으로 마피아에 의해 암살당한 시카고 시장 앤턴 서맥, 2004년 두목의 배신으로 드러난 보난노 패밀리 대행 두목의 연방 검사 암살 모의 등의 사례가 존재한다.
  • 미국 마피아의 전성기 시절 정치인과의 유착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니 넘어가고 현대의 정치인들 중, 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마피아의 관계가 흥미로운데, 과거 '에디 가로팔로'라는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이 체포되었을 때 소지품 중 트럼프가 운영하는 리조트의 무료 이용권이 나왔고 그는 과거 트럼프 타워 건축 때 석면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고용된 인물이었다. 또 트럼프가 1984년 애틀랜틱 시티에 플라자 호텔을 지을 당시, 1981년에 암살 당한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 '필립 테스타'의 아들인 '살바토레 테스타'라는 인물에게 굳이 당시 시가의 2배인 110만 달러를 주고 호텔 부지를 구입한 적이 있다. 또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재정을 관리하던 '케네스 샤피로'라는 재정 전문가도 트럼프의 여러 프로젝트에 관련되었다. 또한 플라자 호텔은 철강으로 짓는 게 더 저렴하고 트렌디함에도 콘크리트로 지어졌는데 당시 콘크리트를 납품한 S&A 콘크리트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일선 두목 앤서니 살레르노의 회사였고, 당대의 감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도 콘크리트 사업을 하고 있었다. 1990년대 FBI의 도청 자료에 의하면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와 트럼프가 카지노 사업과 관련된 결탁 관계라는 것이 드러났다. 또한 2010년에 완공된 '트럼프 소호'를 지을 때 관련 업체 중 하나였던 '사피르'의 부회장 '프레드릭 콘티니'는 2004년에 감비노 패밀리와 결탁한 범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적이 있는 마피아 쪽 사업가(동업자)다. 트럼프 말고도 이탈리아계 혈통의 현 55대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도 마피아 연관설이 있는데, 2010년에 사망한 '티노 피우마라'라는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고위 간부의 조카가 바로 크리스티다. 2000년에는 뉴저지 주 캠든 시의 시장이 필라델피아 마피아와 연관된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 대부 2편의 톰 헤이건의 대사 중 콜레오네 패밀리가 고대 로마 제국을 본떠서 조직되었다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미국 마피아의 기반을 세운 두목 중의 두목 살바토레 마란자노가 라 코사 노스트라를 로마 제국의 체계를 본떠서 조직했다. 한 마디로 두목은 황제고 지부장들은 군단장이 되는 셈인데, 때로는 두목의 수감 같은 내부 사정에 따라서 두목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대행 두목(Acting Boss)을 필두로, 다수로 구성된 지도부가 집단지도체제로 조직을 운영하며 수감 중인 두목을 대리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로마의 삼두정치를 연상시킨다.[135]
  • 감비노 패밀리 산하의 마권업자 아버지를 둔 조셉 볼라로(Joseph Vollaro)는 어린 시절에는 건설업 인부일을 하며 여러 체육관에서 코치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1990년대에 감비노 패밀리와 관계를 맺어 이내 마약 거래와 고리대금 혐의로 교도소에 가게 된다.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런 잡범이었던 그의 인생은 수감 중에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인 니콜라스 코로조와 같은 방에 살게 되면서 바뀌게 되었는데, 건설 업계에 마피아가 미치는 영향력을 잘 알고 있던 그는 출소하자마자 코로조 형제를 찾아가 상납금을 바치며 자신의 회사 앤드루스 트럭(Andrews Trucking)을 뉴욕 시에서 가장 주도적인 건설회사로 만든다. 그는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원 조셉 스피나토(Joseph Spinnato)와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업의 공동 소유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했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수익은 패밀리에 상납하면서 다른 경쟁자들의 돈을 갈취하기도 했다. 이 시기 볼레로는 감비노 패밀리가 세계적인 레이싱 경주 NASCAR 대회에 개입하는데도 관여했다. 거대한 3대의 요트를 소유하며 승승장구하던 볼레로는 2004년에 2kg의 코카인을 소유하고 있다가 체포되어 마약 거래 혐의로 최대 종신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위기에 빠지는데, 이때 정부의 정보원이 되기로 협력해 약 4년간 수사를 돕는다. 이를 통해 2008년 감비노 패밀리와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 62명을 기소한 FBI의 올드 브리지 작전(Operation Old Bridge)이 실현될 수 있었다. 시칠리아와 미국 마피아의 오랜 커넥션을 상징하는 작전명에서 알 수 있듯 대서양을 잇는 마약거래 루트를 적발하며 당시 감비노 패밀리의 대행 두목 재키 디미코와 니콜라스 코로조, 부두목 도메니코 체팔루, 콘실리에리 조셉 코로조 등 조직 지도부 전원을 기소하는데 성공한 의미 있는 작전이지만, 코로조 형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피고인이 3년 이하의 단기형을 선고받는데 그쳐 조직원들이 금세 복역을 마치고 거리로 복귀했다는 점과[136] 1명의 시칠리아 조직원을 제외하고는 61명의 피고인 중 어느 누구도 오메르타를 깨고 내부 증언자가 된 인물이 없는 점이 이 작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작전 개시 직후 감비노 패밀리 수뇌부의 권력 공백기를 메운 인물이 시칠리아 파벌의 존 감비노이다. 이후에도 기소 명단에 있었지만 1년 만에 석방된 도메니코 체팔루와 프랭크 칼리, 애초에 기소 명단에서 빠져있던 로렌조 만니노 같은 시칠리아 파벌 인물들이 꾸준히 감비노 패밀리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FBI 내 인력 부족으로 1980~1990년대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마피아와 싸우는 수사기관의 헌신은 2009년 감비노•루케시 패밀리 대상의 퓨어 럭 작전(Operation Pure Luck), 2014년 감비노•보난노 패밀리와 이탈리아 본토 은드랑게타 대상의 뉴 브리지 작전(Operation New Bridge) 등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국가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의 경우 2번이나 수감 중인 교도소 밑에 땅굴을 뚫어 탈옥하는 등, 정부를 대놓고 기만하고 결국 멕시코 차원에서 감당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3번째 검거 때는 미국으로 송환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미국 교정 시설에 구금된 상태다, 반면 국가 안정성이 높은 미국의 마피아의 경우 니콜라스 코로조(Nicholas Corozzo)라는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는 2008년에 FBI에서 수년간 진행해온 마피아 수사(일명 'Operation Old Bridge' 작전)의 결실인 체포 소식을 미리 접하고 도주한다.[137] 코로조는 구스만처럼 영원히 잠적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4개월의 도피 생활 끝에[138] 물밑에서 정부 당국과 협상을 거친 뒤 자수했다.[139]
  • 미국 마피아와 연예인과의 관계를 말하자면 프랭크 시나트라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고[140] 그 이외에 어떤 형태가 되었건 일단 관계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경우마릴린 먼로[141], 로버트 드 니로[142], 토니 베넷[143], 배우 제임스 칸[144], 배우 지아니 루소[145], 미키 루크[146], 배우 안소니 퀸[147], 여배우 엘리자베스 헐리[148], 스티븐 시걸[149], 존 트라볼타[150]NFL 선수 조 나마스[151], 라스베이거스 연예인 웨인 뉴턴[152], 배우 리처드. S. 카스텔라노[153], 퍼프 대디[154], 우탱 클랜[155], 믹 밀[156], 50 센트[157], 알 마르티노[158] 정도가 있다.
  • 마피아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 중 실제 마피아 출신들도 있는데, 대부에서 콜레오네 패밀리의 해결사 루카 브라시 역을 맡은 배우 레니 몬타나는 실제 콜롬보 패밀리의 준 구성원 출신이었다.[159] 소프라노스에서 마피아 폴리 역을 맡은 토니 시리코 또한 콜롬보 패밀리의 준 구성원 출신으로 수감 경력까지 있는 인물이고, 마찬가지 소프라노스에서 마피아 래리 바레시 역을 맡은 토니 대로우는 2009년의 갈취죄 재판 과정에서 감비노 패밀리의 준 구성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160]
  • 2000년에 뉴욕브루클린에 위치한 한 레스토랑의 VIP 룸에서 배우 스티븐 시걸과 초창기 시걸의 동업자였던 영화 프로듀서 줄리어스 나소(Julius Nasso)라는 인물이 만남을 가졌는데, 줄리어스 나소는 이 자리에 20년 넘게 뉴욕 시 스태튼 아일랜드브루클린의 항구를 지배해온 악명 높은 66세의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앤서니 시코네(Anthony Ciccone)와 시코네 휘하의 마피아 조직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앤서니 시코네는 그 자리에서 영화 한편 당 15만 달러(약 1억 7천만 원)를 줄리어스 나소에게 제공하고 그와 계속 동업할 것을 스티븐 시걸에게 강요했다. 회동이 끝난 후 줄리어스 나소는 스티븐 시걸에게 "한마디라도 잘못했었다면 당신은 그들(마피아)의 손에 죽었을 것(If you would have said the wrong thing, they would have killed you)"이라고 했다. 후에 FBI 도청에 의해 앤서니 시코네의 부하 조직원들이 스티븐 시걸이 얼마나 공포에 질렸었는지 묘사하는 내용의 대화를 포착하면서 수사가 공론화되었다. 이후 2003년에 앤서니 시코네는 스티븐 시걸 갈취 미수 혐의와 국제 항만 노동자 조합(ILA) 갈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된 후 2013년에 출소했다.
  • 갱스터 랩을 표방하는 미국 힙합 가수들의 가사 중 마피아를 언급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는데 대표적으로 JAY-Z[161], 나스(래퍼)[162], 릴 웨인[163], 블러즈 갱 출신 래퍼 YG[164], 릭 로스[165], 드레이크[166], 크립스 갱 출신 래퍼 스쿨보이 큐[167] 정도가 있다.
  • 전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앤서니 가지(Anthony Gaggi)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데, 1979년에 가지와 부하 조직원은 두목 폴 카스텔라노의 지시를 받고 다른 감비노 지부장 제임스 에폴리토(James Eppolito)를 살해하기 위해 차에 태우고 이동하는 중에 에폴리토가 낌새를 눈치채자 가지는 그 즉시 차 안에서 방아쇠를 당겨 에폴리토를 살해한다. 결국 가지의 온몸에 피가 묻게 되었고 차량과 시체를 정리하고 거리를 걷다가 온몸에 피가 묻은 가지를 수상하게 여긴 한 경찰관이 가지를 불렀는데 가지는 이때도 망설임 없이 총을 빼들어 경찰관을 겨냥해 사격을 개시했다. 근거리에서 총을 쏘는데만 익숙했던 가지의 총알이 모두 빗나가고 가지가 오히려 경찰관이 쏜 총을 목에 맞고 쓰러진다. 그로 인해 에폴리토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폭행죄만 인정되어 단기 5년 장기 15년의 징역형을 받고 2년 뒤인 1981년에 가석방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로 첫째, 배심원 중 하나가 가지의 고리대금 고객이었는데 그 사람을 매수했고 둘째로 가지의 부하들이 구치소에 접견을 가서 총알을 건넸고, 가지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그때까지 목에 박혀있던 총알을 제거하고 변기에 흘려보낸 뒤, 부하에게 받은 총알을 재판정에서 증거로 내밀었다.[168] 한편 1986년에 장물 자동차 판매 공모죄로 5년형을 받고 수감된 가지는 1988년 두 번째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하루는 교도소에서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이를 교도관에게 말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 교도관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다음 날 심각한 심장마비가 온 가지는 몇 시간이 지체돼서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튿날 숨졌다. 가지의 아내는 교정당국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고소를 진행했고 동료 재소자들이 증언했다. 결과적으로 가지의 죽음은 뉴욕 주 교정 시설의 의료 환경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 정관계, 특히 수사기관과 거대 범죄조직이 결탁하는 경우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상당히 흔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선을 넘어버린 사례가 있는데, 1980~1990년대에 뉴욕 마피아 패밀리에 매수되어 최소 8건의 살인에 관여한 2명의 NYPD 소속 형사가 있다.[169] 루이스 에폴리토(Louis Eppolito)와 스티븐 카라카파(Stephen Caracappa)가 그 주인공인데, 에폴리토는 아버지와 삼촌이 감비노 패밀리의 조직원인 마피아 집안에서 자랐고[170] 카라카파는 마피아 배경은 없지만 파트너의 영향을 받아 암흑가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에폴리토는 여러 사건을 해결하여 NYPD 역사상 11번째로 훈장을 받는 등 전설적인 형사로 이름이 높았고, 카라카파의 경우 NYPD 조직범죄 전담반의 창립멤버 중 하나였다. 이들은 각종 비밀 정보들을 마피아 측에 흘렸고, 때로는 마피아 조직을 이용해 범죄와 관련된 내부 정보를 얻은 뒤[171] 이 정보를 수사에 이용함으로써 여러 사건을 해결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루케시 패밀리로부터 매달 4000달러를 받으면서[172] 살인을 포함한 수많은 범죄행위에 개입했다.[173] 둘의 우정은 에폴리토가 1990년, 카라카파가 1992년에 경찰관을 은퇴한 뒤에도 지속되었는데 은퇴 이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이웃으로 살았다. 둘은 2005년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에는 에폴리토와 카라카파가 잘못 흘린 정보로 마피아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 26세 청년의 유족에게 뉴욕 시가 28년 만에 과실을 인정해 500만 달러를 배상했다.[174]
  • 미국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마피아는 환영받는 소재인데, 존 고티의 딸 빅토리아 고티와 세 아들의 호화로운 삶을 다룬 'Growing Up Gotti'[175]가 2004~2005년 사이 방영되었고 2011~2016년에는 전 보난노 패밀리 콘실리에리 앤서니 그라지아노의 딸인 제니퍼 그라지아노가 제작하고[176] 또 다른 딸인 르네 그라지아노가 출연하는 'Mob Wives(마피아 부인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2012년에는 외전 격으로 시카고 마피아 관련자들의 조카와 딸들이 출연하는 Mob Wives 시카고 편이 방영되었다.[177]
  • 2018년 10월, 71세의 실베스터 조톨라(Sylvester Zottola)라는 인물이 뉴욕 맥도날드 드라이빙 스루에서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3달 전에는 그의 아들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다. 조톨라는 보난노 패밀리의 동업자로, 마피아들이 관리하는 클럽과 술집에 포커 기계를 공급하던 사업가이면서 DAZ Entertainment라는 이벤트 플래너 회사의 사장이었다. 조톨라 살해의 용의자는 흑인 갱단 블러즈의 고위 조직원 부숀 셸턴(Bushawn Shelton)인데, 그는 도박 기계 사업을 노리는 알바니아계 범죄조직의 지시를 받고 범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셸턴의 체포 과정에서 총과 현금 4만 5천 달러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조톨라의 딸은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를 마피아로 묘사하는 언론들에 반박하며 "아버지는 좋은 사람(Good man)이었지만 좋은 친구들(Goodfella)은 아니었고, 현명한 사람(Wise man)이었지만 마피아(Wiseguy)는 아니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FBI 가 수사를 진행하면서 놀라운 점이 발견되었는데 처음엔 갱단이나 알바니아 마피아의 항쟁 시도가 아닌가 했으나 이상한 점이 발견되어 계속 수사한 결과 놀랍게도 실베스터 조톨라의 작은 아들 앤서니 조톨라 시니어가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앤서니는 아버지를 죽이고 형의 살해를 시도해서 재산을 빼앗으려 했으며 마치 그것이 알바니아 조직의 범죄로 은폐하려고 했던 것. 결국 가족 간 존속살인 극이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 계속 수사 중이니 정확한 건 재판을 봐야 할듯싶다. 그 외에도 같은 시기 뉴욕에 거주하는 77세의 고리대금업자 빈센트 지토(Vincent Zito)가 자택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는데, 그는 루케시 패밀리의 동업자였다. 수사기관에서는 침입의 흔적이 없고 뒤에서 총을 맞은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전형적인 마피아식 처형으로 보고 있었다. 범인은 DNA 흔적을 남기는 등 프로답지 못한 뒤처리를 했는데, 그로 인해 사건 발생 5개월 후 감비노 패밀리 소속 준 구성원인 용의자가 검거되었다. 이처럼 마피아 조직에 연관된 주위 사람들도 위협의 주체가 마피아 조직이 되었건, 반대 파벌이 되었건 항상 살해의 위험 속에 살아간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들이다.
  •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야쿠자, 레드 마피아, 대다수의 미국 바이커•스트리트 갱단들이 가지고 있는, 조직을 상징하는 문신 체계가 없는데, 그 이유는 예로부터 시칠리아에 문신 풍습이 없었고, 비밀결사로 시작한 마피아 조직의 특성상 조직이 최대한 노출되지 않아야 하는데, 문신만큼 그 정체를 드러내는 수단이 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조직 차원에서 조직원들이 개별적으로 하는 문신은 따로 금지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보인다.문신을 한 루케시 패밀리 지부장 유진 카스텔(Eugene Castelle), 문신을 한 보난노 패밀리 조직원들.
  • 2019년 극우 음모론 사상(상기한 Qanon 사상)에 경도된 평범한 24세 청년이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프랭크 칼리를 살해한 일이 있듯, 이외에도 마피아와 일반인이 얽힌 자칫 황당한 일화들이 있는데 1986년에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가 주차시비 끝에 37세의 냉장고 수리공인 로뮤알 피시크(Romual Piecyk)를 일행과 함께[178] 때려눕히고 지갑에서 300달러를 강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후에 상대방의 신분을 알게 된 피해자가 재판정에서의 증언을 피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재판정에 출석해서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을 함으로써 존 고티가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한편 1996년에는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의 94세 노모가 산책을 하던 중[179] 윌리엄 킹(Willie King)이라는 할렘 사람에게 강도를 당했으나, 강도는 몇 구역을 못 벗어나 경찰에 붙잡혔고, 뉴욕 시 타블로이드 신문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강도(The World’s Dumbest Mugger)'로 꼬집었다.[180] 1년 6개월에서 3년의 부정기형을 선고받은 강도는 재판정에서 지간테 가문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걸로 끝났다.
  • 뉴욕 타임 스퀘어에 위치한 유명 나이트클럽 코파카바나(Copacabana)에도 유흥업소 아니랄까 봐 당연히 마피아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본래 1940년에 최초로 문을 열 당시 클럽의 주인은 몬테 프로서(Monte Proser)였지만, 이내 마피아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에 의해 심어진 줄스 포델(Jules Podell)이 프로서의 파트너로 경영진에 들어왔고 1950년 즈음에는 포델이 클럽의 완전한 주인이 되었다. 코파카바나는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지로 쓰였고[181] 이후로도 수차례 주인과 위치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타임 스퀘어의 나이트클럽 중에서 가장 전통 있는 클럽으로 남아있다.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그린 북의 주인공 '토니 발레롱가'가 코파카바나의 웨이터다.[182]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1963년 배경의 이 작품은 코파카바나의 사장 줄스 포델도 몇 차례 언급되고, 클럽에서 마피아와 연줄을 가진 진상 손님을 폭행한 발레롱가가 마피아들에게 호출되는 장면도 잠깐 나오는 등 작품 초반부에서 뉴욕의 암흑가를 약간 엿볼 수 있다.
  • 도니 브래스코로 영화화된 FBI 요원 조 피스톤의 보난노 패밀리 잠입수사가 유명한데, 극 중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레프티' 벤자민 루지에로(Benjamin Ruggiero)는 사실 조직으로부터 처형당하기 전, 미리 첩보를 입수한 FBI에 의해 체포되어 정부로부터 증인이 되기를 권유받지만 단호하게 거절하고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끝까지 조 피스톤이 FBI 요원이 아니라고 믿었고 변호사에게 "그 녀석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He'll never go against us)"라고 얘기했지만 법정에 나타나 증언하는 그를 본 후 "할 수만 있다면 마지막으로 그 개자식을 제거하고 싶다.(I'll get that motherfucker Donnie if it's the last thing I do.)"라고 했다. 루지에로는 1992년에 11년 복역 후 출소했고 1994년에 사망했다.
  • 우리나라에서 조폭들이 타고 다니는 차라는 인식이 있는 스타렉스에쿠스와 같이, 미국 마피아들은 왜건, 그중에서도 컨츄리 커스텀을 한 왜건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만약 혹시 몰라 단속에 걸린다 해도 미국 횡단 중인 여행객이라며 이빨 털고 지나가면 되기 때문.
  • 많은 사람들이 미국 마피아에 이탈리아 혈통 조직원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페이지 상단의 서술처럼 일찍이 찰스 루치아노가 살바토레 마란자노를 제거하고 암흑가의 패권을 잡았을 때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순혈주의만 고집하면 안된다는 걸 깨닫고 인종 상관없이 조직원으로 받아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한계는 associate라고 부르는 '준 구성원 혹은 준 조직원' 신분이고 made member 라고 부르는 정규 조직원은 이탈리아 혈통 이어야 한다. 링크 속 조직도(2010년에 수사기관에서 공개한 22억 달러 규모의 루케시 패밀리의 불법 도박 자료)를 참고하면 상층부에는 이탈리아 혈통의 남성 조직원만이 위치하지만 맨 아래 말단에는 백인 뿐 아니라 흑인, 히스패닉, 심지어 여성 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마약 거래 혐의로 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캘리포니아 LSD 계의 거물 세스 페란티(Seth Ferranti)가 출소 후 작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교도소 내 마피아들의 생활에 대한 글을 썼는데, 그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신은 수감생활 중 수많은 동부 출신 마피아 타입(East coast mafia types) 수형자들을 봤다. 그들 중엔 진짜(Real genuine thing)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머지는 가짜(Fake)이거나 단순히 마피아를 동경하는(Wanna-be) 수형자들이다.[183]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마피아들이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을 마시며 호화로운 수감생활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교도소 내에서 수형자들의 파티가 벌어진다. 그러한 파티가 마피아들만의 전유물은 아니고 흑인이나 히스패닉 무리들도 자신들의 파티를 즐긴다. 그러나 교도소 내에서는 어느 집단도 마피아들이 하는 정도의 파티를 열 수 없다.(In prison nobody can throw a party like the wiseguys.) 대부분의 평범한 신출내기 수형자들은 파티에 끼지 못하고 괴롭게 식탁을 떠나야 한다. 마피아 파티의 준비는 대개 콜롬비아인 이나 멕시코인 수형자들이 도맡아 했다. 마피아들은 교도소 내에서 자기네들끼리 카드게임을 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이탈리아인 아니랄까 봐 파스타는 반드시 포함한다고 한다. 동부 출신 대부분의 백인 수형자들은 마피아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주위를 설득하거나, 그런 그들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만류하려 한다고 한다. 자신이 볼 때는 그리 복잡할 게 생각할 건 없는데 그들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편 교도소 수형자들은 마피아 영화의 대사를 곧잘 인용하곤 하는데 심지어 실제 마피아 조직원들도 인용한다고 한다. 그중 제일 인기 있는 대사는 좋은 친구들에서 조 페시레이 리오타에게 하는 "내가 어떻게 웃겨? 어릿광대처럼? 자넬 즐겁게 해주나?(What are you laughing at me? What am I a clown? I'm here to amuse you?)"라는 대사이다. 페란티 자신의 경우 이탈리아 혈통 덕에 여러 마피아 조직원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184] 처음으로 만난 마피아는 전설적인 국제 헤로인 밀수망 프렌치 커넥션의 일부로 지목되어 수감된 시칠리아 출신 감비노 패밀리 소속의 늙은 조직원이었다고 한다. 교도소 내 수많은 깡패, 마약상, 밀수꾼들이 신체적으로는 충분히 그 노인을 때려눕힐 수 있었겠지만, 동료 수형자들은 어릴 적 보고 자란 영화 속의 실제 인물인 노인을 존경했으며 모든 마약상, 은행 강도, 가석방 위반자들은 일종의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1996년에 이감된 FCI 베클리 감옥에서는 감비노 패밀리 총잡이 조 왓츠를 만났는데[185] 그는 엄청난 재력으로 돈을 뿌려대는 걸로 유명했고 동료 수형자 중에서 뽑은 개인 요리사, 청소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왓츠의 눈에 들려고 노력하는 다른 수형자들은 마치 그와 사귀기 위해 구애하는 것 같아 보였다. 페란티는 1999년에 FCI 포트 딕스로 이감되는데, 그곳에서 8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인 니콜라스 코로조(Nicholas Corozzo)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다고 한다.[186] 교도소 내 가장 존경받는 마피아 인사였던 코로조는 많은 불량배들을 거느렸는데, 항상 보스턴 출신 수형자 무리들이 그의 옆을 지켰다. 교도소 내 모두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였다. 뉴욕과 뉴저지 주, 필라델피아의 마피아 조직원들로 가득한 교도소에서 자기네들끼리 불화가 생기면 코로조가 그들을 중재했다. 그가 원하면 교도소의 다목적실이 마피아 사교 클럽이 되었다. 2002년에 이감된 FCI 페어튼에서는 자신이 만난 가장 멋진 마피아인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원 마이키 페르나를 만났다. 그는 마치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고 한다.[187] 교도소에서 페르나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전설적이었다. 페르나에 의하면 페란티가 오기 직전에 자신과 함께 있던 ‘뚱보 잭’ 지아코모 디노르시오란 마피아가 교도소장의 허가를 받아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의 임종을 지켜보러 스프링필드 수형자 병원으로 이감되었다고 한다.[188] 또한 마피아 조직원끼리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유럽식 인사인 비쥬를 하는데, 자신은 마피아 구성원이 아니라 결코 거기에 낄 수 없었지만 교도소에서는 매일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 중요했던 규칙 중 하나로 "여자와 아이는 여간해선 죽이지 않는다."였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마피아를 로맨티시스트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 아무리 원수 같은 놈이라도 그의 아내와 자식의 목숨은 상관없다고 이해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아이들과 아내를 살려 두어 마음만 먹으면 그들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고, 그들을 본보기로 삼음으로써 더욱더 공포를 퍼뜨리려는 행동에서 비롯된 규율이다.
  • 마피아는 복싱 미들급 세계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를 다룬 영화 레이징 불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프로 복싱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60년대에 미 상원 의원 에스테스 케포버는 프로 복싱을 가리켜 “갈취자와 깡패들로 들끓는 곳(Infested by racketeers and hoodlums)”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특히 헤비급 세계 챔피언 ‘소니 리스턴’의 마피아 연관설은 사실상 정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960년에는 당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 플로이드 패터슨이 소니 리스턴의 범죄조직 연관성을 이유로 타이틀전을 피하기도 했다. 패터슨의 자서전에 의하면 케네디 대통령 역시 리스턴의 조직범죄 연관성을 거론하며 경기를 만류했고, 미국 연방 법무부 또한 리스턴의 범죄조직 연줄을 우려하기도 했다. 2014년 FBI는 무하마드 알리와 소니 리스턴이 벌인 2번의 시합에 마피아가 승부조작했다는 의혹을 정식으로 조사하기도 했다. 알리가 조작에 가담했다는 내용은 아니고, 압도적인 탑독이었던 리스턴이 마피아의 사주를 받고 일부러 져주었다는 의혹을 파헤친 것. 훗날 소니 리스턴의 석연치 않은 사망에도 도박빚을 갚지 못한 리스턴을 마피아가 제거했다는 음모론이 존재한다. 또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가 1993년 미 상원의회에 출석해 밝힌 얘기로, 감비노 패밀리는 1960년대를 끝으로 복싱 비즈니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 다시금 진출했다고 한다.[189] 그라바노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마피아와의 관계가 거론된 복싱계 인물로는 바비 치즈(Bobby Czyz)[190], 버디 맥거트(Buddy McGirt)[191], 로날도 스나입스(Renaldo Snipes)[192] 프란시스코 다미아니(Francesco Damiani)[193] 아이런 바클리(Iran Barkley)[194], 마빈 해글러[195], 비토 안투오페르모(Vito Antuofermo)[196], 복싱 프로모터 돈 킹[197], 복싱 트레이너 루 두바(Lou Duva)[198]가 있다. 그라바노는 자신과 패밀리 간부 조셉 코로조(Joseph Corozzo)가 조직이 하는 복싱 사업의 주요 인물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199]
  • 무하마드 알리마이크 타이슨프로모터로 유명한 복싱계의 대부 돈 킹은 복싱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는 클리블랜드의 흑인 조직폭력배였다. 1992년에는 돈 킹과 마피아 사이의 연줄이 지적되어 당시 유죄판결을 받은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와의 관계에 대해 미국 상원의회에 출석해 증언하라는 통지를 받기도 했는데, 돈 킹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불리한 증언의 거부를 주장하며 증언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돈 킹은 과거 2건의 살인으로 기소된 바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200] 전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인터뷰에 따르면 하루는 감비노 패밀리 측에서 한 뒷골목 폭력배를 돈 킹에게 보내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마이크 타이슨과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선수 간의 경기를 주선해 큰돈을 벌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계약 내용이 터무니없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돈 킹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덧붙인 말이 "나도 터프가이고 교도소도 갔다 왔다, 보고 엿이나 먹으라고 해라! 나는 그 헛소리를 따를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전령으로 갔던 인물이 부두목인 새미 그라바노에게 보고했고 그라바노가 존 고티에게 보고했는데 다음은 그라바노가 기억하는 고티와의 대화 내용이다.
새미 그라바노: 존, 돈 킹이 우리가 원하는 걸 하지 않겠다는군.
존 고티: 그놈이 내 이름을 들었는데도 그래?
새미 그라바노: 그가 자신이 터프가이고 교도소도 갔다 왔다는데.
존 고티: 정말 그랬다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존 고티: 돈 킹을 죽여버려.
새미 그라바노: 내가 돈 킹을 죽이라고?
존 고티: 자네 말고 (전령으로 갔던) 그 꼬마가.
그 후 그라바노는 전령으로 갔던 그 폭력배에게 지시를 하달했고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라바노는 웃으며 "그 친구는 나라를 떠났을거다(He must've left the country)"라고 말했는데, 말의 의미가 그 폭력배가 돈 킹 암살 임무가 감당이 안 돼서 스스로 뉴욕을 떠났다는 말인지, 혹은 암살을 거부해 조직으로부터 처형을 당했다는 말인지, 암살을 시도했으나 돈 킹 측에 역으로 당했다는 말인지는 불분명하다. 공개 인터뷰에서 자세히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의 전 회장 프랭크 퍼티타 3세와 로렌조 퍼티타는 성씨에서 보듯 이탈리아 혈통이다.[201] 퍼티타 형제가 설립한 UFC 모회사의 이름은 'Zuffa'인데, 이는 이탈리아어로 '격투'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퍼티타 가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마피아가 나온다. 샘 마세오(Sam Maceo)와 로사리오 마세오(Rosario Maceo) 형제는 1901년에 시칠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텍사스 주의 항구도시 갤버스턴을 기반으로 하는 범죄조직의 두목이 된다. 비록 형제가 이끌던 범죄조직이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에 정식으로 속한 패밀리가 아닌 독립된 조직이긴 했지만[202] 이들은 뉴올리언스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두목 카를로스 마셀로와도 연줄이 닿는 암흑가의 거물이었다.[203] 한편 퍼티타 가문의 조셉 퍼티타(Joseph Fertitta)란 인물이 마세오 형제의 여동생인 올리비아 마세오(Olivia Maceo)와 혼인하며 두 가문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윽고 마세오 형제가 자신들의 사업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로 확장하기에 이르고 1950년대에 사망하며 퍼티타 가문에 자신들의 사업을 물려주는데, 그 퍼티타 가문의 후손이 UFC의 회장인 프랭크•로렌조 형제다. 2001년에 복싱 트레이너 데이나 화이트가 어린시절 친구인 카지노 재벌 퍼티타 형제를 설득하여 UFC를 헐값에 인수한 뒤, 퍼티타 형제는 회장을 맡고 자신은 사장을 맡아 라스베이거스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해 세계 최고의 종합 격투기 단체로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 탓에 해외 네티즌들도 UFC의 마피아 연관설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204] 2016년 UFC가 4개 그룹 연합체에 매각되었지만 인수 이후에도 로렌조 퍼티타가 일정 지분과 수익을 가져가고 데이나 화이트는 여전히 UFC 사장으로 남아있는 등, 영향력은 여전하다. 공교롭게도 경쟁 단체이자 결국 파산하여 Zuffa에 인수당한 일본의 PRIDE야쿠자 조직에서 실질적인 운영을 했다는 게 밝혀져 도산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데이나 화이트가 보스턴에서 복싱 체육관의 트레이너로 일하던 당시, 악명 높은 범죄조직 윈터 힐 갱단의 상납 요구를 받은 후[205] 생명의 위협을 느껴 라스베이거스로 도피성 이사를 갔는데 그게 그의 인생을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 19명을 살해했다고 알려진 전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는 일명 히트맨 중의 히트맨(Hitman of Hitman)이자 1960년대부터 복싱을 수련한 아마추어 복서이기도 했다. 그는 테디 아틀라스라는 복싱 트레이너에게 훈련받기도 했는데 아틀라스는 과거 15세의 마이크 타이슨이 목숨을 구걸할 정도로 손봐주기도했으며[206] 훗날 마이클 무어러라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을 길러내기도 한 세계적인 트레이너다. 그라바노는 1990년대부터 미디어에 등장할 때면 자신은 “누구도 두렵지 않다(I'm not afraid)”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아틀라스는 인터뷰에서 “모든 복서는 링 위에 올라갈 때 두려움을 가진다(every boxer is afraid)”라고 얘기하며 그라바노의 말을 돌려서 반박한 바 있다. 이것에 대해 그라바노에게 질문한 2019년의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그라바노는 그야말로 대노하며 테디 아틀라스를 향해 각종 욕설을 퍼부었는데 아틀라스가 뛰어난 트레이너임은 인정하지만 싸움꾼은 아니라고 함과 동시에 "나는 74~75세의 나이다 너 당장 망할 글러브를 가지고 와라 내가 너를 두렵게 해주겠다(I’m 74 pushing 75 Teddy, Come down Put the fucking gloves on with me I'll show you how scared I am of you)"라며 일갈했다.[207] 이에 유튜브 댓글 창의 반응은 '그라바노가 저 나이를 먹었는데도 분노하는 게 저 정도라면, 그의 전성기 시절의 분노는 상상조차 안된다(if sammy is this angry at this age, I can't imagine this guy when he was in his prime.)'는 코멘트가 달려있다.
  • 뉴욕의 무시무시한 마피아 패밀리의 아지트를 습격해서 강도 짓을 한 용감한 부부가 있는데 거리의 보니 앤 클라이드라고 불리는 토마스 우바(Thomas Uva)와 로즈마리 우바(Rosemarie Uva) 부부가 그 주인공들이다. 1992년에 교도소에서 출소한 28세의 토마스 우바는 마피아들이 현금이 많고 주로 명품을 착용한다는 점과 의외로 마피아 아지트의 보안이 허술하다는 점[208]을 노리고 자신이 복면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아지트 안의 마피아들을 상대로 강도를 하고 빠져나오면,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내 로즈마리 우바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해 빠르게 범행 현장을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감비노 패밀리와 보난노 패밀리가 소유하고 있던 아지트들을 털며 큰돈을 벌게 되었다. 이에 뉴욕 5대 패밀리 전체에서 그들에게 현상금을 걸었고 결국 199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부가 차량 안에서 총상을 입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후에 정부 증인이 된 보난노 패밀리 부두목 살바토레 비탈레에 의하면, 당시 감비노 패밀리의 대행 두목 존 고티 주니어가 자신에게 "(둘을) 우리가 처리했다."라고 얘기한 적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직접 총을 들고 부부를 살해했다고 알려진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도미니크 피조니아가 2005년에 우바 부부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살인 공모 혐의만 인정되어 15년 형을 선고받았고[209] 사건 당시 패밀리를 이끌었던 존 고티 주니어는 증거 불충분으로 법망을 피했다. 우바 부부의 이야기는 2014년 롭 더 몹(Rob The Mob), 2015년 더 워너비(The Wannabe)로 두 차례 영화화되었다.
  • 2013년에 뉴욕브롱스할렘의 마약 밀매를 관리하는 퍼플 갱(Purple Gang)이란 범죄조직의 두목인 62세의 마이클 멜디시(Michael Meldish)가 브롱스에서 총상을 입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2019년 정부의 기소 내용에 따르면, 멜디시는 당시 루케시 패밀리 대행 두목 매튜 마돈나에게 10만 달러(약 1억 원)를 빌렸고 마돈나가 상환을 독촉하자 그에게 "엿이나 먹어라(fuck off)"라고 한 뒤 얼마 안 있어 살해됐다고 한다. 연방 검사 실리아 코헨(Celia Cohen)은 "(마피아) 두목에게 돈을 갚지 않는 건 위험한 게임이다.(Not repaying a boss is a dangerous game.)"라며 배심원단에 말했다.
  • 1970년대 후반 조셉 피스톤의 도니 브래스코 작전 외에도 뉴욕 마피아 패밀리에 깊숙이 침투한 또 다른 FBI 요원이 있는데,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잭 팔코네(Jack Falcone)란 가명으로 약 3년간 감비노 패밀리에 잠입한 호아킨 가르시아(Joaquín García)가 그 주인공이다. 가르시아는 시칠리아인 보석 도둑과 마이애미에서 온 마약상이라는 신분으로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 그레고리 데팔마(Gregory DePalma) 산하 조직원으로 입단했는데 데팔마가 가르시아를 정규 조직원(made member)으로 승격시키는 논의를 했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210] 이후 2005년에 가르시아가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데팔마를 포함한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 32명이 기소되었고 주범격이었던 데팔마는 12년형을 선고받는다. 데팔마는 복역 중인 2009년에 수형자 병원에서 77세로 사망했다.
  • 1970년, 뉴욕 시의 이스트 할렘에서 디시데리오 카반(Desiderio Caban)이라는 재단사가 5발의 총격을 받고 살해된다. 근처에서 총격 소리를 들은 NYPD 소속 경찰관 2명이 범인을 추격하여 6 블록만에 범인이 순순히 차에서 내리는데, 그는 훗날 감비노 패밀리의 대행 두목까지 되는 34세의 아널드 스퀴티에리(Arnold Squitieri)였다. 스퀴티에리는 경관들에게 "걱정 마시오, 그는 단지 팔에 총을 맞았을 뿐이니까 나를 보내주시오. 친구들이 당신들을 보살펴 줄 거요.(Don't worry about it, he's only shot in the arm. Let me go; the boys will take care of you.)"라고 얘기했는데, 이탈리아 억양으로 말하는 히트맨의 얘기를 듣고 마피아와 연관된 살인임을 감지한 부패한 경관들은 스퀴티에리를 보내줬다. 일주일 후 알폰스 시스카(Alphonse Sisca)라는 마피아 조직원이 경관 중 하나를 만나 5천 달러를 전달했고, 경관들은 보고서에서 스퀴티에리의 이름을 지웠다. 하지만 이내 매수 사실이 밝혀져 경관들은 모두 기소되고 스퀴티에리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는 1973년에 카반 살인 혐의와 20만 달러의 수입을 차명을 이용해 탈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도합 1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약 8년간 복역한 후 1981년에 가석방된다. 석방 이후 당시 감비노 패밀리에서 지부장을 맡고 있던 존 고티의 지부에 소속되어 마약 관련 사업을 하다가 존 고티가 패밀리의 두목이 된 1986년에 정규 조직원으로 승격된다. 그는 1988년에 헤로인 유통 공모 혐의로 11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후 1999년에 가석방된다. 석방 이후에는 2차례에 걸쳐 오메르타를 증명했고, 두목 존 고티의 측근으로써 어느덧 조직의 중역이 된 스퀴티에리가 패밀리의 부두목이 되었고, 2002년에는 패밀리의 대행 두목이 되어 조직을 이끌었다. 2000년대 중반 감비노 패밀리는 퀸스의 도박 사업 이권을 노리는 루다이 조직(Rudaj Organization)이라는 알바니아계 범죄조직의 도전을 받는데, 초기에는 지부장 그레고리 데팔마(Gregory DePalma)가 사소한 분쟁을 해결할 수준이 되었지만 점차 루다이 쪽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오게 되면서 69세의 패밀리 두목 아널드 스퀴티에리가 직접 37세의 알렉스 루다이(Alex Rudaj)에게 뉴저지 주의 한 주유소에서 담판을 하자고 제시했다. 6명의 루다이 패거리가 차에서 내리자 20명의 무장한 감비노 조직원들과 직면했는데 그 시기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으로 잠입해 현장에 직접 있었던 FBI 요원 호아킨 가르시아가 증언하기를, 스퀴티에리가 루다이 패거리를 향해 "너희가 가진 건 너희가 가졌다. 그걸로 끝이야, 만일 그러지 않겠다면 그땐 문제가 생길 거다.(You took what you took and that's it or there's gonna be a problem.)"라고 위협을 했고 20 대 6으로 수적 열세 상황이었던 루다이는 부하 중 한 명에게 만약 총격전이 벌어지면 가스탱크를 쏴버리라고까지 지시했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 스퀴티에리와 합의했고 그 후로 다시는 감비노 패밀리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알렉스 루다이는 2006년에 공갈과 갈취, 도박 혐의로 2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211] 한편 앤서니 스퀴티에리도 2006년에 불법 도박 사업과 탈세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2012년에 출소한 뒤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로 FBI 요원 호아킨 가르시아가 잠입 수사를 하던 2004년에 두목에게 TV를 선물했는데, 어느 날 스퀴티에리가 선물 받은 TV로 마피아 드라마 소프라노스를 시청한 직후 그 TV를 버리고 새로 구매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극 중 토니 소프라노가 문제를 일으키는 부하 조직원에게 장물 TV를 선물하는 방법으로 가석방 규정을 어기게 만들어 다시 교도소로 보내버리는 에피소드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마피아는 합법•불법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지만 가장 전통적인 범죄조직 수법 중 하나인 갈취도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노조 연금에 손을 댈 수 있는 노동조합의 간부나 중견기업 이상의 큰 사업을 하는 관련자들을 상대로 마피아가 공갈•협박•회유•공모를 통해 수억~수십억 원을 갈취•횡령하는 경우를 언론 보도를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반면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소상공인 대상으로는 미국 마피아가 얼마의 보호세를 갈취하는지 2018년의 기소 내용을 통해 밝혀졌는데, 겨우 연간 400달러(약 50만 원)다. 어느 익명의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에게 매해 400달러를 상납한 뉴욕 시의 한 피자 가게 사장이 2015년 경에는 상납을 하지 않고 피해 다녔다. 결국 3명의 말단 조직원들이 자영업자의 차인 2014년식 벤츠 승용차를 불태워버렸고 자영업자는 그제서야 지부장에 상납을 했다. 그 방화 장면이 자영업자의 집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찍혔고 2018년에 그 화면을 증거로 3명의 조직원들이 방화죄와 갈취죄로 기소되면서 언론에 알려졌다.
  • 콜롬보 패밀리 조직원 그레고리 스카르파는 1962년에 무장 강도죄로 체포되었다. 그는 당시 기소를 피하기 위해 FBI의 정보원이 되기로 했다. 2년 후 FBI 현장 요원들은 실종된 민권 운동가 앤드루 굿맨, 제임스 차니, 마이클 슈워너를 찾기 위해 스카르파를 불렀다. FBI는 이 세 남자가 살해되었다고 확신했지만, 그들의 시체를 찾을 수는 없었다. 요원들은 스카르파가 자신들은 이용할 수 없는 불법 심문 기법(고문과 협박)을 사용하여 용의자로부터 정보를 얻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카르파와 요원은 로렐에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TV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는 인종차별 조직 KKK단의 일원 로렌스 버드를 납치한 뒤, 현지 육군기지인 캠프 셸비로 데려갔다. 셸비에서 스카르파는 버드를 심하게 때리고 그의 목구멍에 총구를 꽂았다. 버드는 마침내 세 사람의 시체의 위치를 스카르파에게 밝혔다. 스카르파는 1966년 1월에 미시시피 주에서 KKK단이 지른 화재로 사망한 버논 다머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FBI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마피아와 협력해 불법 심문을 통해 이 사건들을 해결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FBI에서는 그 사실을 부인했다. 이 일화는 2007년에 스카르파의 오랜 애인이었던 린다 스키로가 자신이 스카르파에게 들은 내용을 폭로해 알려졌다. 한편 스카르파는 1966년 이후부터는 십수 년간 정보원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1980년에 FBI 요원 린들리 데베키오가 그에게 접촉해오면서 다시 시작했다. 데베키오와 스카르파는 시간이 갈수록 인간적으로 서로에 매료되어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스카르파는 FBI 측에 마피아 조직에 대해서는 중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여러 암흑가의 정보를 제공했고 신용 카드 사기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아 마땅할 때에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특권을 누린다. 패밀리의 지부장이 된 스카르파는 1990년대의 내부 권력 다툼이었던 3차 콜롬보 항쟁 당시 페르시코 파벌의 편에 섰다. 그는 항쟁의 중심에 있었고 이 시기에 알려진 것만 4명의 상대 마피아를 살해했다.[212] 또한 이시기에 총격전 과정에서 한쪽 눈을 잃기도 한다. 그는 1993년에 10년형을 선고받지만 얼마 안 있어 수형자 병원에서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한편 데베키오는 1996년에 FBI를 은퇴하는데 2006년에 여러 수사정보를 스카르파 측에 흘린 혐의와 3차 콜롬보 항쟁 당시 경쟁 파벌의 소재를 스카르파에게 제공했다는 등 불법적으로 마피아를 지원한 혐의로 기소된다.[213] 이 기소는 스카르파의 여자친구였던 린다 스키로가 데베키오의 결백을 입증해 주어 취하된다. 한편 스카르파의 아들 스카르파 주니어도 전면전이었던 3차 콜롬보 항쟁 당시의 살인 공모와 공갈 혐의로 4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데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의 주범인 알 카에다 테러범 람지 유세프와 교도소에서 나눈 대화로 얻은 정보와[214] 1995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로 수감된 테러범 테리 니컬스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니컬스의 집에 숨겨진 잔여 폭발물에 대한 정보를 당국에 제공했다. 스카르파 주니어는 아마도 가석방 심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아 조기 출소하려는 의도의 정보 제공이었겠지만[215] 진작에 동료 마피아들을 밀고하고 사법거래를 해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테러범들의 정보만 제공한 사실을 보면 부자가 모두 오메르타로 똘똘 뭉쳐있는 마피아임에도 나름의 공적인 정의감도 있는 듯 보인다.
  • 1976년에 3명의 무장강도로부터 총격을 당한 후 역으로 총을 빼앗아 1명을 살해한 뒤 그 시체를 차에 싣고 경찰서로 갖다 준 전적이 있는 인물이 2003년에 4건의 살인사건과 강탈 및 불법 도박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당시 콜롬보 패밀리의 대행 두목으로 여겨지던 조엘 카카스(Joel Cacace)다. 카카스는 재판 끝에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20년 형을 선고받는다. 4건의 살인 중 특기할만한 살인은 1987년에 마피아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NYPD 경찰관 카를로 안토니오 살인사건과 같은 해에 살해당한 뉴욕 시 주차 위반국 행정법률 판사(Administrative-law judge for the city’s Parking Violations Bureau) 조지 아론왈드 살인사건이다. 경찰관 카를로 안토니오는 당시 패밀리의 행동대원이던 카카스를 경찰 측 정보원이라고 의심하다 살해되었고, 판사 조지 아론왈드는 1970년대에 마피아를 수사하는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자신의 아들 윌리엄 아론왈드 대신 살해되었다. 당시 종신형을 선고받은 콜롬보 패밀리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는 윌리엄 아론왈드가 마피아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문질러 없애(rubbed out)" 살해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카카스가 이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러나 일선 히트맨이었던 카리니 형제가 아들이 아닌 아버지를 잘못 살해하여 마피아 두목들을 격분하게 했고 얼마 못가 에디 카리니와 빈센트 카리니 형제 모두 살해된 채 발견된다. 16년이 지난 2003년에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기소가 이루어지자 윌리엄 아론왈드 전 연방 검사는 "달콤 씁쓸하다(bittersweet)"라고 표현했다.[216] 그렇게 수감 생활을 이어가던 카카스는 2008년에 또 다른 살인죄로 추가 기소되는데, 1997년에 집 앞에서 총상을 입고 살해된 NPYD 경찰관 랄프 돌스를 살해한 혐의가 그것이다. 당시 랄프 돌스 경관은 카카스의 전 부인과 결혼했었는데, 마피아의 전 부인이 히스패닉 인종을 가진 경찰관과 재혼한 것에 수치심을 느긴 카카스가 돌스의 살해를 지시했다고 검찰 측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재판은 검찰 측이 유력 증언자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카카스는 2020년 하반기에 출소예정이다.
  •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네덜란드의 도박 클럽들은 그림자 속에서 운영되었다. 그 클럽들은 경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 보안 대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보안 조치들 때문에 "적절한 사람"을 알고 있는 고객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이 처음 진출한 때는 1974년에 미국 마피아가 암스테르담의 도박 사업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조사하러 온 때였다.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소속의 빈센트 알로와 마이어 랜스키의 부하인 디노 첼리니가 그 무리를 이끌었다. 당시 네덜란드 도박계의 거물인 마우리츠 드 브리스(Maurits de Vries)는 이들과 접촉했고 결국 마피아와 파트너십을 맺게 되었다. 미국 마피아의 첫 번째 투자는 1976년에 문을 연 도박장 '클럽 카발라(club Cabala)'에 출연한 100만 달러였다. 네덜란드의 범죄 기자 바트 미들버그는 "그 100만 달러는 여러 마피아 패밀리들로부터 왔다. 물론 마피아에게는 푼돈이긴 하지만, 어쨌든 카발라는 암스테르담 최초의 프로 카지노였다."라고 암스테르담 지하세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했다. 마피아는 영국이나 라스베이거스, 쿠바, 바하마의 카지노에서 일했던 숙련된 직원들을 공급했다. 이내 곧 카발라는 1년에 40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이 돈은 마피아와 네덜란드의 파트너들 사이에서 50 대 50으로 나누어졌다. 1980년대에 마피아는 새로운 도박장인 '클럽 26'에 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클럽 26은 드 브리스의 아이디어였고 마피아는 주저하며 투자했다. 클럽 26은 카발라보다 더 고급스럽고 훨씬 컸다. 마피아 측에서는 그게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그들이 옳았다. 너무 많은 주의를 끈 나머지 법 집행기관에서 그 클럽을 자주 단속했고, 1983년에는 13명이 사망한 화재로 카발라와 클럽 26이 모두 전소되었다. 그 화재는 드 브리스를 타깃으로 하는 단독 범죄에서 시작되었고 그에게 타격을 입혔다.[217] 네덜란드는 여전히 여러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의 중요한 마약 루트로 남아있다. 로테르담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로, 서유럽의 중심적 위치 때문에 유럽으로 마약을 수송할 수 있는 완벽한 기지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2000년대에 여러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의 주요 인사들이 네덜란드를 안전한 피난처로 여겼다. 2003년에는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 파벌의 두목 필리포 세르페다가, 2005년에는 은드랑게타 파벌의 두목인 세바스티아노 스트란지오가 네덜란드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 2009년에 약 648억 달러(약 76조 7,232억 원) 규모의 미국 역사상 최대의 폰지사기를 일으킨 버나드 메이도프가 150년의 형량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갔을 때, TV 채널을 바꾸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어겨 동료 수형자로부터 뺨을 맞았다. 그 교도소에는 1987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 때 10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임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을 통해 실질적으로 뉴욕 콜롬보 패밀리를 관리해온 종신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가 있었는데 그가 자신의 부하들을 보내어 뺨을 때린 수형자에게 "매우 엄중한 경고"를 한 후 비로소 메이도프는 자신이 보고 싶은 채널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두 노인의 우정이 시작되었고 페르시코는 샤워 슬리퍼 등을 챙겨주며 교도소에 익숙하지 않을 메이도프를 도왔다. 메이도프는 페르시코를 "매우 착한 남자"라고 묘사했는데 페르시코의 손자들이 할아버지를 면회 온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부드러운 장면이었는지, 그리고 가족 간에 얼마나 온화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한편 메이도프는 본인 가족들의 방문 부족을 한탄했다.[218] 시간이 흐른 뒤 2019년에 페르시코는 민간병원인 듀크 대학 병원에서 생을 마쳤고[219] 메이도프는 2020년에 변호사를 통해 그가 만성 신부전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앞으로 18개월도 못 산다고 주장하며 연민 가석방(compassionate release)을 신청했다.
  • 2008년 뉴욕 시의 보석상 루이스 안토넬리(Louis Antonelli)가 제노비스 패밀리에 지불하던 보호세 상납을 중단했다. 그 후 안토넬리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전직 경찰관 제이슨 아이엘로를 경호원으로 고용했음에도 얼마 못 가 살해되었다. 법 집행기관에서는 마피아 상부에서 상납을 거부한 안토넬리로부터 돈과 보석을 강탈할 것을 지시했고 하급자들이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의 우발적인 충돌로 살인사건이 났다고 평가했다. 또한 법 집행기관에서는 안토넬리가 총격을 받아 살해될 당시 경호원으로 고용된 아이엘로가 비무장 상태로 레스토랑에 앉아있었던 점 등을 이유로 그가 '살인으로 끝난 강탈 음모'에 가담했다고 여겨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했지만 아이엘로는 체포 과정에서 총을 쏘며 저항했고 경찰에 사살되었다. 검찰은 살인사건의 실행자와 감시자 등 몇몇 관련자들을 기소했는데, 그 정점에는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앤서니 앤티코가 있었다. 내부 증언자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앤티코는 살인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함께 기소된 공갈죄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9년을 복역하고 2018년에 석방되었다. 나머지 피고인들은 살인에 가담한 경중에 따라 10년~30년에 걸쳐 다양한 형량을 선고받았다. 2009년에는 윌리엄 로마노(William Romano)라는 71세의 제노비스 패밀리 준 구성원이 보난노 패밀리로부터 20만 달러를 빌리고 갚지 않던 중 자신의 37살 여자친구와 함께 살해되었다. 하지만 2020년까지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없다.
  • 2003년에 발생한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아돌프 브루노 살인사건은 7년이 지난 2010년에 이르러 사건의 배후와 실행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기소가 이루어졌다. 브루노는 내부 권력투쟁 중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고, 피의자 중 일부가 정부 측 증인으로 선회하며 3명의 피고인들이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 재판에서 마리오 임베시(Mario Imbesi)라는 남자가 정부 측 증인으로 대배심 증언대에 섰던 바 있다. 비극적으로 임베시는 재판 3년 후인 2013년에 코네티컷 주 댄버리에 위치한 자신의 집 앞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뉴욕 주 출신의 임베시가 2010년부터 약 3년 동안 거주했던 그 동네 18개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을 인터뷰한 결과 어느 누구도 그를 잘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언론에서는 마피아 측의 보복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특히 살해 시점이 브루노 살인사건의 4번째 피고인인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에밀리오 푸스코(Emilio Fusco)가 이탈리아로 약 3년간 도피했다가 현지에서 체포된 뒤 미국으로 인도되어 재판을 1달 남겨둔 시점이었던 탓에 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220] 결론적으로 임베시를 살해한 범인을 검거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아 마피아의 보복 살상인지, 제3자에 의한 단순 살인사건인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 마약과 신용카드 등 각종 불법거래가 이루어지는 인터넷 다크 웹을 소개받은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견해를 묻는 질문에, 자신이 현역이던 1980년대까지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이 시스템을 본 적이 없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거리의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사용할 것이다.(No doubt, guys on the street would be using this.)”라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그리 효율적인 범죄 시스템은 아니라고 보았는지 “그들(다크 웹을 이용하는 범죄자들)은 일정 시점에 반드시 잡히게 될 것.(They’d probably get caught at some point.)“이라고 예상했다.
  • 버락 오바마의 2013년 연설에 언급되는 미국 마피아 조직원이 있다. 그는 2019년에 감비노 패밀리의 대행 두목이 되는 ‘로렌조 만니노’다. 오바마는 FBI 국장 취임 연설에서 자신이 임명한 신임 국장 제임스 코미가 1993년에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들을 기소했을 때 피고인 중에 조직의 행동대원이었던 만니노가 있었으며 재판 도중 코미는 뉴욕 변호사 협회로부터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후에 벌어진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아침 법정이 소집되었을 때, 갑자기 피고의 테이블에서 통로를 가로질러 검사 테이블로 메모가 전달되었습니다. 그것은 코미에게 건네졌고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임스에게, 상을 받으신 걸 축하합니다. 당신보다 더 자격 있는 사람은 없어요. 당신은 진정한 프로예요. 진심으로요, 로렌조." 곧이어 대통령은 "자, 우리는 그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이 베일에 싸인 협박인지, 아니면 관용을 베풀어 달라는 간청인지, 솔직한 칭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임스가 마피아 히트맨인 로렌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얘기했고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꽃이 피었다.[221] 하지만 만니노의 당시 변호사 찰스 카네시는 편지를 쓴 일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이에 관한 논평을 거절했지만 FBI 대변인은 이 일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여담으로 당시 진행된 재판은 피고 측이 승소했지만, 1년 후 진행된 재심에서 패소하여 15년 형을 선고받았고 만니노는 2004년에 출소했다.
  • 특정 패밀리에 속한 마피아 정규 조직원이 조직을 갈아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드문 경우지만 가능하다. 1980년대에 당시 자신의 두목과 사업상 마찰이 있었던 콜롬보 패밀리 소속 마이클 프란지스는 절대 사람을 쉽게 만나지 않는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로부터 직접 만나자는 제안을 받아 만남이 성사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지간테가 뒤처리는 모두 자신이 할 테니 패밀리를 옮기라는 이적 제안을 해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 마이클 프란지스는 정규 조직원으로 입단하기 전인 1970년대에 롱아일랜드에서 청과물 사업을 했다. 당시 기준으로 거액인 2만 5천 달러를 투입한 그 가게에 닭고기를 납품하던 인물은 전설적인 감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의 친척 피터 카스텔라노였다.[222] 어느 날 한 여성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타나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닭고기를 내밀었다. 그녀가 당일 납품된 고기를 사갔기 때문에 가정에서 상할 리 없었다. 프란지스는 보상을 해준 뒤 피터에게 전화를 걸어 아주 공손하게 사태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프란지스는 썩은 닭고기는 다른 데다 갖다 주라고 언성을 높인 뒤 전화를 끊었다. 이후 수뇌부에 사태를 알리기 위해 조직의 아지트로 차를 몰았고 그곳에서 당시 콜롬보 패밀리의 지도자였던 토마스 디벨라(Thomas "Old Man" DiBella)[223]와 자신의 지부장 앤드루 루소[224]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미 감비노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미국을 주름잡는 마피아 두목이 고작 몇백 달러 닭고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닭고기가 마피아의 사업이었고 그건 곧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에 충분히 살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프란지스는 30분간 두목의 엄한 심문을 받았고 두목은 준 조직원 신분으로 감비노 패밀리 두목에게 도전장을 낸 상황이라고 이해시켰다. 곧이어 프란지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침묵하던 둘은 폭소를 터트렸다. 알고 보니 카스텔라노의 닭고기는 악명이 자자했고 피해 사례가 많았다. 프란지스는 그때 비로소 두 사람이 자신을 지켜줄 같은 패밀리 소속이라는 실감이 들어 안도감이 밀려왔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감비노 측과 담판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앞서 디벨라는 ‘항상 카스텔라노를 존중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줄 것, 누군가 말하라고 하기 전에는 입을 다물 것, 자신의 질문에는 단호하고 명확하게 대답할 것, 폴 카스텔라노의 질문에는 절대 반응하지 말 것, 그들의 거짓말이 지나치게 뻔뻔하더라도 거짓말쟁이(Liar)라고 하지 말 것,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일일이 대응하지 말 것, 그 전화 통화 중 네가 피터를 모욕한 사실을 끝까지 부인할 것, 이번 담판에서 내려진 결론은 군말 없이 수용할 것.’ 등의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담판이 시작되자 예상대로 감비노 측에서 거칠게 몰아붙였고 프란지스가 함정에 빠져 감정적 대응을 하거나 피터를 모욕한 사실을 인정하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각본대로 성실히 수행했고 두목 디벨라와 지부장 루소가 프란지스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해주면서 피터가 썩은 닭고기값을 변상해 주는 대신 양측 모두 예전처럼 거래를 계속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프란지스는 그 후에도 폴 카스텔라노가 자신을 노리지 않을까 한참을 주의 깊게 처신했다.
  • 대한민국 국민 중 미국 마피아와 만남을 가진 뒤 그 경험을 기록한 사람이 있다. 바로 후암미래연구소장 차길진 대표이다. 2019년 타계한 그는 생전 '구명시식'이라고 이름 붙인 '초혼위령제'로 명성이 높았다. 영혼을 불러내어서 달래는 '천도재' 의식인데, 최면이나 영매 같은 보조 수단 없이 바로 ‘영'과 통하는 능력자로 꼽혔다. 그는 대한민국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뉴욕에 기거할 당시 마피아와 만났다고 한다. 어느 날 교포사회에서 마당발로 소문이 난 지인이 연락도 없이 찾아와 마피아를 만나고 싶지 않느냐며 물었고 처음에는 영화 대부 생각이 나 거절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고 마피아 때문에 한인 교포들의 장사에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기에 이 기회에 협조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승낙 했다고 한다. 맨해튼의 한 건물에서 만남이 이루어졌고 마피아 두목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225] “당신 친구에게서 당신이 매우 특별한 영적 능력을 가졌다고 말을 들었소. 그러니 부탁 하나만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차길진 씨는 영능력과 마피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어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옆방에 자신들의 친구가 누워 있는데, 사인을 정확하게 밝혀 줄 수 없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교통사고로 판명되었지만 자신들의 친구는 결코 사고로 죽을 사람이 아니며, 분명 누군가에 의해 폭행을 당해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됐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달라는 것은 아니니 살해의 동기나 방법만 알려달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마피아를 위한 구명시식을 해달라는 것이었고 만약 거절한다면 이곳을 쉽게 나가지 못할 거라며 은근히 협박까지 하는 마피아의 위협에 순간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피아와 한인상인 간의 갈등을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그들의 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차길진 씨가 본 사인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었고, 그 자신이 영적으로 본 사실을 마피아에게 말해주고 그곳을 나왔다. 그 후 마피아와 한인상인들 간의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다. 소득은 있었지만 영화 ‘대부’를 떠오르게 하는 정말 잊지 못할 구명시식이었다고 한다. 출처
  • 전직 마피아를 인터뷰한 기사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에 2019년 GQ 매거진에서는 미국 마피아에 관한 특집기사를 작성하는 취재 과정에서 뉴욕 5대 패밀리 중 한 조직의 현직 지부장과의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그 마피아는 만남 장소를 비밀로 할 것과 질문을 받지 않고 인터뷰를 간단하게 끝낼 것을 요구했다. 기사를 보면 그 마피아의 옷차림만을 기록했고 당연히 그의 이름이나 어느 패밀리 소속인지는 기재하지 않았다.[226] 약속의 날에 그 마피아는 기자와 악수를 하고 이탈리아 팝 음악이 재생되고 있는 조용한 건물로 안내한 뒤 커피를 대접했다. 그는 ‘지하실에서 시체를 보여 주는 것’에 대한 농담을 한 직후 "우리 세계에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밀고자가 되는 것, 감옥에 가는 것, 죽는 것. 그게 유일한 탈출구이고 그만둘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대화 도중 근육질의 부하 조직원이 들어와 “그놈들이 빌어먹을 가방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They didn’t have the fucking bags.)”라고 얘기했고 그 마피아는 “내가 그놈들을 두드려 팼어야 했는데.(I should have beaten ’em.)”라고 대답했다. 짧은 만남이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자 그 마피아는 기자에게 “언제든 환영한다.”라고 환하게 배웅했다.
  •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의 아들이자 한때의 후계자였던 존 고티 주니어는 21세기 들어 4번의 재판을 모두 승소한다. 현재 마피아 세계를 떠났다고 주장하는 그는 2015년에 집필한 자서전을 통해 2009년에 치러진 재판에서 스티비 뉴웰(Stevie Newell)이라는 아일랜드 혈통의 패밀리 준 구성원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서술했다. 사실 뉴웰은 고티 주니어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한 인물임에도 책을 통해 밀고자로 알려졌고 그 바람에 당시 지역 건달들과 3~4차례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한다. 특히 한 번은 자신이 차를 타고 가는 도중 한 괴한이 차를 나란히 세우고 “내가 네놈을 죽여버려야겠어.(I should fucking kill you.)”라고 협박하는 사건이 있었다. 뉴웰은 그 일이 있고부터 신변을 지키기 위해 여러 총기들을 샀는데 중범죄 전과자인 뉴웰은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 있었다. 결국 그는 불법무기소지죄로 약 4개월간 수감되게 된다. 그는 수감되기 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낮에는 거리의 인파 속에 섞여있으면 안전하지만 혼자 있는 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총기를 장만했으며, 고티 주니어가 자신이 밀고자가 아니라고 내용을 정정해 주길 2년 넘게 기다려왔다고 밝혔다. 기자는 마피아 측의 복수를 우려해 불법 총기를 소지하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일이 21세기 미국 땅에서 벌어지는 걸로 보아 여전히 마피아 관례(Mafia Code)가 살아있다고 전했다.
  • 이탈리아의 견종 카네 코르소는 실제 마피아들이 즐겨기른다 하여 국내에서 ‘마피아개’라는 별명이 있다.[227] 이런 대중적 이미지에 걸맞게 2007년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이탈리아계 뉴욕 마피아 두목 캐릭터가 카네 코르소를 경비견으로 기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8. 이탈리아의 마피아

8.1. 시칠리아 마피아 주요 인물과 파벌

비토 카시오 페로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시칠리아 마피아의 두목 중의 두목(Capo Di Tutti i Capi)이다. 자신의 부하인 살바토레 마란자노로 하여금 미국 마피아의 패권을 잡게 하여 미국을 시칠리아 마피아의 식민지로 삼으려 하였으나 찰스 루치아노에 의해 실패했다. 한평생 69번 체포되어 모두 무죄 석방된 카시오 페로였지만 파시즘베니토 무솔리니의 등장으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고 1930년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동료 수형자들은 카시오 페로가 썼던 방을 사용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고 한다. 카시오 페로의 최후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 정확히 알 수 없다.
칼로제로 비지니시칠리아의 빌랄바 마을을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의 두목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시칠리아 마피아 두목으로 여겨지는 인물.[228] 그는 전후 연합군의 마피아 지원에서 핵심이었던 인물로 미국 마피아와 특히 가까웠다. 파시스트 정권이 한창이던 1937년에도 미국 출신 비토 제노비스와 함께 남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암시장 사업을 벌였고, 파시스트 정권이 끝난 1949년에는 이탈리아로 추방된 러키 루치아노가 세운 (사탕공장으로 위장한) 마약공장에 관여했으며, 1950년에는 옛 팔레르모 중심가에 있는 솔레 호텔 앞에서, 그 러키 루치아노가 비지니의 경호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사진을 찍히기도 했다.[229] 또한 비지니는 빌랄바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 안젤로 브루노와도 줄이 닿았다. 그는 1954년 7월 10일 76세의 나이로 팔레르모의 한 병원에서 집으로 이송하던 구급차에 타고 빌랄바에 들어가던 중 사망했다. 당시 사망 소식을 바다 건너 미국 언론사인 뉴욕 타임스가 보도하기도 했다. 빌랄바의 관공서와 기독교민주당 본부는 애도 기간으로 1주일 동안 문을 닫았다.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농민들이 검은 옷을 입고 애도를 표했으며, 수많은 고위층 마피아와 정치인들 및 성직자들이 참가했다. 묘비석엔 "그의 마피아는 범죄가 아니라 법의 존중, 모든 권리의 방어, 인성의 위대함을 상징한다 그것은 사랑이었다."라고 쓰였다.
미켈레 나바라시칠리아의 코를레오네 마을을 기반으로 한 조직인 코를레오네시 패밀리의 두목. 의사 출신의 엘리트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뉴욕의 루치아노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찰스 루치아노가 미국 정부와 결탁해 마피아가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을 돕게 함으로써 무솔리니에 의해 탄압받은 시칠리아 마피아가 각종 이권을 보장받아 전후에 재도약하게 되는데, 나바라는 이 시기에 맞춰 조직의 영향력을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본토로 확장했다. 1957년에는 찰스 루치아노가 주선한 시칠리아 마피아와 미국 마피아 간 회동에 참여해 시칠리아 마피아를 세계 마약거래의 주도세력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이듬해 나바라는 자신의 부하인 루치아노 레지오의 쿠데타로 인해 살바토레 리나와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루치아노 레지오일명 피의 꽃으로 불린 시칠리아 마피아 코를레오네시 패밀리의 두목. 그는 1958년에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패밀리 두목 미켈레 나바라가 보낸 15명의 암살자들을 상대로 신기의 총 솜씨를 발휘해 약간의 찰과상만 입고 위기를 모면했다. 이내 쿠데타를 일으켜 나바라를 제거해 조직을 장악한 후 자신을 노렸던 15명의 암살자들이 포함된 29명의 나바라 부하를 모조리 살해한다. 16년 후인 1974년에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아 전에 탈옥했던 교도소에 재수감되지만 부하인 살바토레 리나와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를 통해 패밀리를 지휘하며 1980년대에는 약 400명이 죽어나간 2차 마피아 항쟁에도 관여한다. 1993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이탈리아 전역에 전무후무한 영향력과 부, 공포를 행사했다. 1973년에 당시 세계 최고의 부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미국의 사업가 존 폴 게티의 손자가 납치되어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사건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건 관련자가 체포되지 않았지만 이 범죄를 레지오가 배후조종했다고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사우스웰이 주장했다.
토마소 부셰타라 바르베라 코스카 파벌 소속 조직원으로써 코를레오네시 패밀리 측 총잡이에 의해 부하 둘을 잃은데 앙심을 품고 시칠리아 마피아 고위급 인사 중 최초로 오메르타를 깨고 밀고자가 된 인물. 1984년에 최대의 마피아 재판이자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재판이라 불리는 막시 재판(Maxi-Trials)을 이끌었다.[230] 미국에서는 피자 커넥션이라 불리는 마피아 재판의 증인으로 나왔다. 부셰타의 증언으로 수사당국은 시칠리아 마피아와 미국 마피아 사이의 자세한 연결고리를 알게 되었다. 미국 연방 검사 루돌프 줄리아니는 부셰타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증언을 하는 남자."라고 묘사했다. 재판 이후 부셰타의 몇몇 친지가 마피아의 벤데타로 살해되기도 했다. 부셰타는 가족들과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여생을 보냈다. 넷플릭스에서 부셰타를 다룬 다큐멘터리 '대부로 불린 남자(Our Godfather)'를 시청할 수 있다.
살바토레 리나일명 야수(Beast)로 불린 코를레오네시 패밀리 두목. 1980년대에는 400여 명이 희생된 2차 마피아 항쟁을 일으켜 승리한다. 1993년에 체포될 때까지 시칠리아 마피아의 "두목 중의 두목(Capo Di Tutti i Capi)"으로 있었다. 1993년에 체포되어 9건의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복역 중에도 대리인을 내세워 조직에 관여하며 살인이 포함된 각종 범죄의 배후에 있었다. 1998년에는 또 다른 재판에 회부되어 토마소 부셰타와 재판정에서 대면한 일이 있었다. 리나가 주장하기를 "부셰타는 아내를 여러 명 두고 있는 부도덕한 사람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도덕적으로 산다."라는 이유로 대화 나누기를 거부했다.[231] 리나는 2017년에 수형자 병원에서 사망했다.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
일명 코를레오네의 유령. 그의 선임자였던 루치아노 레지오는 프로벤자노를 가리켜 "멍청한 닭들(마피아) 사이에서 두뇌가 되었고, 총을 쏠 때는 천사 같았다."라고 묘사한 바 있다. 1993년에 수감된 살바토레 리나의 뒤를 이어 코를레오네시 패밀리의 두목이 된 후 시칠리아 마피아 큐폴라의 최고위급 인사가 된다. 이후 감시를 피하기 위해 피지니(pizzini)라는 작은 종이 조각에 지령 내용을 타이핑해 전달하는 식으로 국제적인 범죄 조직망을 운영했다. 그는 '폭탄을 쓰지 말 것, 살해하지 말 것, 다른 파벌과 화합할 것.'을 3대 원칙으로 세우며 고위 인사 죽이기 등 호전적인 태도를 보인 전임자 리나와는 정반대의 처세를 보였다.[232] 그는 1963년 이래로 약 43년간 지명수배를 피해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2006년 4월 11일에 체포되었다. 당시 총리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총선 패배가 확정되자마자 체포되어 '정부 차원에서 프로벤자노를 비호하고 있었다.'라는 수석 검사와 시민들이 제기한 음모론이 일기도 했다. 그 역시 종신형을 복역하는 중에도 대리인을 통해 조직에 관여했지만 방광암에 시달렸고 2012년에 자살을 기도했으나 교도관에 의해 발견되었다.[233] 결국 2014년에 건강 상태를 고려해 형 집행을 정지한 뒤 밀라노에 위치한 민간병원인 산 파올로 병원에 입원했다.[234] 2015년에는 마피아의 뿌리를 만난다는 컨셉으로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의 아들인 안젤로 프로벤자노와 만남을 가지는 미국인 대상의 시칠리아 관광 상품이 출시되어 운영되기도 했다.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는 2016년에 민간병원에서 사망했다.
지오바니 브루스카조반니 팔코네 판사의 죽음에 연루된 두목. 마피아 역사상 가장 잔인했다고 추정된다. 100~200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으며 정부 증인이 된 조직원 산티노 디 마테오의 아들을 납치해 교살하고 시신을 강산에 녹여 유기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습게도 1996년 체포되고 그 역시 정부 증인인 펜티토가 됐다. 수많은 악행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정부에 협조하는 대가로 26년형으로 감형되었다.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시칠리아 마피아 내 유명 파벌인 데나로 패밀리 출신의 인물로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현재 시칠리아 마피아의 두목 중의 두목(Capo Di Tutti i Capi)이라고 추정되는 인물.[235] 1993년부터 지명수배를 받아왔고 과거의 범죄로 2002년에 궐석재판이 진행되어 종신형이 선고되었으나 아직까지 체포하지 못했다. 2008년, 2011년 FBI 세계 10대 지명수배자.
인제릴로 파벌뉴욕 감비노 패밀리 두목 카를로 감비노의 사촌인 살바토레 인제릴로(Salvatore Inzerillo)가 1950년대부터 이끌던 시칠리아 마피아 파벌. 1980년대의 2차 마피아 항쟁 중 코를레오네시 패밀리에 의해 두목 살바토레 인제릴로가 살해되고 상대측 암살자가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인제릴로 측 간부마저 살해하는 등 항쟁에서 패배해 주요 구성원들이 미국으로 도피한다. 코를레오네시 패밀리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2000년대에 살바토레의 아들 지오바니 인제릴로(Giovanni Inzerillo)가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미국에서 시칠리아로 돌아와 조직을 재건했다.

8.2. 마피아 형태를 한 다른 지방의 범죄조직

카모라나폴리 지방의 범죄조직. 시칠리아 마피아 세력이 위축된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범죄조직으로 평가받는다. 이 카모라 조직을 다룬 잠입 르포소설 고모라가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은드랑게타칼라브리아 지방의 범죄조직. 21세기 들어 미국 마피아와 공조하는 경향을 보인다.[236] 2006년 이탈리아 반 마피아 조사반에 따르면 약 200개의 은드리나[237]와 6000명 이상의 조직원이 있다고 한다. 2014년 6월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 지역을 방문해 은드랑게타 조직을 '악의 길을 따르는 자'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파문을 선언했다.[238]
말라 델 브렌타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베네토 지방의 범죄조직.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풀리아 지방의 범죄조직.
스티다시칠리아의 젤라를 비롯한 각지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 주로 시골에서 활동하며 이탈리아 본토로도 진출했다. 2차 마피아 대전쟁 시기 코를레오네시 패밀리에 의해 숙청된 라 바르베라 코스카 파벌의 잔존 세력들이 성장해 세운 조직으로써 시칠리아 마피아가 정부와의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크게 성장했다.

9. 미국의 마피아

9.1. 뉴욕 5대 패밀리

미국 전역의 마피아 패밀리들은 별개의 조직이면서도 라 코사 노스트라로 봤을 때는 하나의 조직이기도 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의 총 두목(Capo Di Tutti Capi)이었던 살바토레 마란자노 이후 그런 직책은 없어졌고, 위원회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뉴욕의 다섯 마피아 패밀리는 영화 대부 속 뉴욕 5대 패밀리, GTA HD 세계관 속 리버티 시티 5대 마피아 패밀리 등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 영향을 줬다. 189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 마피아 130여 년의 역사 동안 각각의 패밀리 내에 하나로 이어지는 조직 계보가 존재하기 때문에 x 대 두목이란 표현이 가능하다.[239][240][표기에관해][참고]
감비노 패밀리1963년 이전 명칭은 망가노 패밀리. (2004년 기준 추정치) 정규 조직원: 150~200명, 준 구성원: 1500~2000명. 주 구역: 브루클린, 퀸스, 맨해튼, 스태튼 아일랜드, 롱아일랜드[243] 1910년에 살바토레 다퀼라가 패밀리의 모태가 되는 조직을 결성했다. 다퀼라는 1928년에 마세리아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주세페 마세리아에 의해 살해된다. 이후 여러 차례 두목이 바뀌어오다 카스텔람마레 항쟁이 끝나고 라 코사 노스트라가 정식으로 창설되는 1931년에 빈센트 망가노가 패밀리의 두목이 된다. 망가노는 1951년에 찰스 루치아노와 결탁한 자신의 부두목 앨버트 아나스타시아에게 살해된다. 1957년에 그 아나스타시아를 제거하고 두목이 된 카를로 감비노가 1976년에 사망할 때까지 19년간 군림하며 본인의 조직을 당대의 미국 마피아 패밀리 중 가장 강력한 파벌로 만들었다.[244] 감비노는 애틀랜틱 시티 카지노의 배당금을 올리고, 뉴욕 시의 건설산업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여 노조 갈취 사업을 확장했다. 돈 세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합법적인 사업도 다각화했으며, 조직을 마약시장에서 큰손으로 성장시켰다. 1985년에 폴 카스텔라노를 제거하는 쿠데타로 두목이 된 존 고티 시대를 지나면서 세력이 약화되었지만[245] 시칠리아 마피아와 유대가 깊고[246] 현재에도 전 시대를 걸쳐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미국 마피아 패밀리로 남아있다. 막대한 거액이 움직이기 때문에 감비노 주식회사(Gambino Corporation)로도 불린다.[247][248][249] 2015년에는 미국 NBC 방송에 조직 간부의 아들이 나와서 마피아가 뉴욕 시민들을 IS로부터 지켜주겠다고 했다.[250] 현 지도부는 11대 두목 도메니코 체팔루(Domenico Cefalù)[251]
루케시 패밀리1963년 이전 명칭은 갈리아노 패밀리. (2004년 기준 추정치) 정규 조직원: 110~140명, 준 구성원: 1100명 이상. 주 구역: 브롱스, 맨해튼, 브루클린, 뉴저지 주[252] 1922년에 가에타노 레이나가 마세리아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의 브루클린 지부로 패밀리의 모태가 되는 조직을 결성했다. 마세리아는 카스텔람마레 항쟁 중인 1930년에 토마소 갈리아노를 새 두목으로 지명한다. 갈리아노는 마세리아가 살해된 후에도 찰스 루치아노와 결탁한 뒤에 라 코사 노스트라 창설에 함께한다. 그는 자신이 은퇴하는 1951년까지 조직을 이끌었다. 그 후 갈리아노의 부두목으로 있던 토마스 루케시가 본인이 사망하는 1967년까지 패밀리의 주도권을 쥔다. 전성기 시절엔 루케시의 영향력으로 특히 정치권과 연계가 좋았다. 그 후 앤서니 코랄로가 두목이 되어 1987년에 마피아 위원회 재판으로 유죄판결을 받기 전까지 도시의 운송노조와 건설노조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253] 1980~1990년대에는 코랄로의 뒤를이은 두목 빅터 아무소와 부두목 앤서니 카소가 지나친 학살극으로 인해 둘 다 법의 심판을 받는다.[254] 영화 좋은 친구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이 속해있던 조직. 루케시 패밀리는 FBI로부터 2007년에 뉴저지와 코스타리카에서 자행한 22억 달러(약 2조 5,003억 원) 규모의 불법 도박•돈 세탁•공갈 혐의로, 2009년엔 4억 달러(약 4636억 원) 규모의 불법 도박•고리대금•총기 밀매•뇌물 수수•갈취 혐의로 적발되었다. 이 혐의들의 정점에는 당시 조직의 대행 두목이었던 매튜 마돈나(Matthew Madonna)가 있었다. 현 지도부는 1992년부터 종신형 수감 중인 7대 두목 빅터 아무소(Victor Amuso), 두목 대행은 마이클 데산티(Michael DeSantis)[255]
제노비스 패밀리1963년 이전 명칭은 루치아노 패밀리. (2004년 기준 추정치) 정규 조직원: 250~300명, 준 구성원: 1000명 이상. 주 구역: 맨해튼, 브롱스, 브루클린, 뉴저지 주[256] 1890년대에 미국 최초의 마피아 두목이라는 안토니오 모렐로와 그 형제들의 조직에 악명 높은 검은 손 갈취자 이그나지오 루포가 합세해 패밀리의 모태가 되는 조직을 결성했다. 이후 주세페 마세리아찰스 루치아노프랭크 코스텔로비토 제노비스필립 롬바르도빈센트 지간테 등 미국 마피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계보를 이어온다. 이들은 5대 패밀리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겨난 조직이며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하나로 지명된 찰스 루치아노의 계보를 잇는 조직으로, 오메르타로 대표되는 마피아 패밀리의 규율과 원형을 현재까지 가장 잘 지켜온 까닭에 조직범죄계의 아이비리그(Ivy League of Organized Crime)라고 불리며 21세기에도 여전히 미국의 라 코사 노스트라 패밀리 가운데 최고의 조직으로 남아있다.[257][258][259][260] 알려진 주요 사업으로 맨해튼의 노동조합과 도박사업의 지배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몇몇 카지노에 주식을 갖고 있고, 뉴욕 전역의 노점상을 관리하며 거대한 고리대금 사업도 운영한다. 또 5대 패밀리 중에서 주도적으로 성 젠나로 축제[261]와 풀턴 어시장[262]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 지도부는 11대 두목 리보리오 벨로모(Liborio Bellomo)[263][264][265]
보난노 패밀리1963년 이전 명칭은 마란자노 패밀리. 주 구역: 브루클린, 퀸스, 스태튼 아일랜드, 롱아일랜드[266] 1890년대에 시칠리아 카스텔람마레 델 골포를 떠나 뉴욕으로 온 기존의 마피아 조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패밀리의 모태가 되는 조직이 결성됐다.[267] 1912년에는 초창기 패밀리 두목 세바스티아노 디가에타노가 실종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 마피아를 통일하라는 지시를 받고 시칠리아에서 건너온 살바토레 마란자노가 디가에타노의 뒤를 이은 니콜로 스키로에게 조직을 넘겨받은 후 약 50명이 사망한 카스텔람마레 항쟁에서 승리하지만 곧 찰스 루치아노에게 살해당한다. 마란자노에게 패밀리를 물려받은 조셉 보난노는 4개 패밀리가 맞물려 있는 뉴욕에서 더 이상 사업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도시 밖으로 눈을 많이 돌렸는데, 캐나다아이티, 애리조나 주에도 진출했고 현재까지도 캐나다의 이탈리아계 마피아와 가장 관계가 깊은 패밀리다.[268] 1960년대에는 보난노가 카를로 감비노, 토마스 루케시 두 마피아 두목의 암살을 모의하다 적발되어 조직이 둘로 쪼개졌고 보난노가 버팔로 패밀리에 의해 납치되어 2년간 실종되기도 했다. 보난노는 다시 돌아와 위원회를 상대로 바나나 항쟁을 일으키지만 패배하고 은퇴한다. 1970년대에는 FBI 요원이 조직에 잠입했던 도니 브래스코 작전이 있었고[269] 1981년에는 도니 브래스코 사건에 대한 징계로 위원회에서 조직이 제명되기도 했으며[270] 2004년에는 두목 조셉 마시노가 변절해 정부 증인이 되는 등 이런저런 고난을 겪었다. 현 지도부는 10대 두목 마이클 맨쿠소(Michael Mancuso)[271]
콜롬보 패밀리1963년 이전 명칭은 프로파치 패밀리. (2004년 기준 추정치) 정규 조직원: 112명, 준 구성원: 500명 이상. 주 구역: 브루클린, 퀸스, 롱아일랜드[272] 1928년에 조셉 프로파치가 처음 조직을 결성했다. 5대 패밀리 중 가장 늦게 생겨났고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조직이었지만 1931년에 라 코사 노스트라가 정식으로 창설될 때 당당히 한 축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패밀리는 프로파치가 군림하는 34년간 강력한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273] 후에 조셉 콜롬보가 두목이 되고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인권 운동을 벌이는 등 눈에 띄는 정치적 활동을 했다. 동료들은 이를 염려했고 결국 콜롬보는 카를로 감비노가 주축이 된 위원회의 사주를 받은 히트맨에게 저격당해 1971년에 식물인간이 됐다.[274] 총 3차례에 걸친 내부 투쟁을 거친 조직으로써 마피아들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이들이 벌인 항쟁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위험천만했다.[275] 특히 1990년대(1991~1995년)의 3차 콜롬보 항쟁은 1987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었던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의 지시를 따르는 파벌과 따르지 않는 파벌 간의 갈등이 폭발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2019년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벌어진 뉴욕 마피아의 전면전이다.[276] 현재 패밀리는 항쟁으로 입은 피해를 추스르고 회복 중이다.[277] 알려진 주요 사업으로 마약 밀매, 포르노그래피, 담배 밀매, 파산 및 주가 조작 사기 등이 있다. 현재 앤드루 루소(Andrew Russo)가 두목으로 추정됨.[278]

9.2. 뉴욕 마피아 주요 인물

주세페 마세리아찰스 루치아노를 부두목으로 두고 있던 뉴욕 마피아의 원조 두목.[279] 시칠리아 마피아 세력과의 카스텔람마레 항쟁 중인 1931년에 루치아노의 배신으로 살해당한다.[280] 암살자가 포커 카드 중 죽음을 상징하는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를 시체의 손가락에 꽂아두고 사라져서 범죄 현장 사진이 유명. 사후 그의 패밀리는 루치아노가 장악함.
살바토레 마란자노일명 리틀 시저. 주세페 마세리아와의 카스텔람마레 항쟁에서 승리하여 역사상 유일한 미국 마피아의 두목 중의 두목(Capo Di Tutti i Capi)이 된 인물. 일개 갱스터 집단이던 뉴욕의 다섯 마피아 패밀리를 재편하고 전국의 마피아 패밀리와 연계한 뒤, 고대 로마 제국의 체계를 본떠서 미국 마피아 라 코사 노스트라를 창설한 인물이다.[281] 마란자노는 라 코사 노스트라의 행동 강령을 제정하고, 패밀리의 체계를 설정했으며 마피아들 간 분쟁 해결을 위한 절차를 제정해 조직의 토대를 쌓지만 1931년에 찰스 루치아노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한다.[282]
찰스 루치아노본명은 살바토레 루카니아로 별명인 '러키'가 유명해서 일반적으로 '러키 루치아노'라고도 불린다. 네 명의 행동 대원들을 8만 달러를 들이면서 수개월간 몰래 훈련하여 살바토레 마란자노를 살해했다. 그 이후 미국에서 두목 중의 두목이라는 직책을 폐지한다. 라 코사 노스트라의 실질적 수장으로 현대 미국 마피아를 사실상 창조한 인물이면서 마피아 위원회와 전미 범죄신디케이트를 만들고[283] 최초로 시칠리아 마피아와 미국 마피아의 회동을 주선한 마피아 업계의 전설.[284][285]
프랭크 코스텔로본명은 프란체스코 카스탈리아. 찰스 루치아노의 뒤를 이어 루치아노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 되었고 20년간 미국 암흑가의 수상이라 불렸던 인물.[286] 대부비토 콜레오네의 모티브가 된 사람.[287] 1951년 키포버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키포버 청문회는 당대 미국 내 조직범죄에 대한 국회 차원의 청문회로, 대부 2편 케스타트 청문회의 모티브가 된다.[288][289] 후에 코스텔로도 비토 제노비스의 지시를 받은 빈센트 지간테에게 저격당해 은퇴한다.[290] 코스텔로의 은퇴 이후에도 카를로 감비노, 토마스 루케시 같은 후배 마피아 두목들은 종종 그를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코스텔로는 1973년에 사망했고 장례식엔 50여 명의 친척과 지인들, 연방 수사관들만 모여 간단히 치러졌다.
앨버트 아나스타시아본명은 움베르토 아나스타시오. 일명 최고 사형집행인.[291] 주세페 마세리아를 직접 살해한 4명의 암살자 중 하나. 마피아 역사상 가장 잔혹한 암살자로 꼽히는 인물로, 자신의 두목 빈센트 망가노를 제거하고 망가노 패밀리(현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이 됨. 살인 회사(Murder, Inc.)의 창립자. 이 '회사'의 사장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292] 정작 자신은 마피아 사업에 관계없는 민간인을 죽인 죄로 위원회에서 처형이 의결되어 1957년에 자신의 부하 지부장 중 한 명이었던 카를로 감비노에게 이발소에서 살해되었다.[293] 아나스타시아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한다.
조 프로파치본인의 패밀리를 이끌며 마란자노에 의해 뉴욕 5대 패밀리의 한 축으로 인정받은 인물. 대부비토 콜레오네의 모티브가 된 사람 중 하나로써 비토 콜레오네 처럼 올리브기름 사업을 했다. 1962년에 사망.
비토 제노비스찰스 루치아노의 부두목이었던 인물. 주세페 마세리아를 직접 살해한 4명의 암살자 중 하나. 1937년에 살인을 저지르고 이탈리아로 도피했다가 핵심 증인이 독살되어 기소가 취하되자 미국으로 돌아온 후 1957년에 루치아노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던 프랭크 코스텔로의 저격을 지시하여 은퇴시키고 두목이 된다. 이러한 돌발행동에 얼마 안 있어 찰스 루치아노, 마이어 랜스키, 프랭크 코스텔로의 계략에 빠져 15년 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다.[294] 그러나 루치아노는 추방되어 이탈리아에 있었고, 랜스키는 이탈리아 혈통이 아니며 코스텔로는 은퇴한 인물이었기에 여전히 그가 감옥에서 자신의 대행 두목(Acting Boss)들을 통해[295] 패밀리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권을 행사했으며[296] 1969년에 복역 중 사망한 이후에도 제노비스 계보가 현재까지 패밀리의 주도권을 쥐고있다.[297]
카를로 감비노일명 대부. 자신의 두목이었던 아나스타시아를 다른 2명의 암살자들과 함께 직접 제거하고[298] 망가노 패밀리(현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이 됨. 대부비토 콜레오네의 모티브가 된 사람. 겉으로는 전혀 폭력배 같지 않은 인상과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성격 또한 평정심을 잃는 법이 없었고 일처리가 상당히 치밀했다고 알려져 있다.[299] 역대 미국 마피아 두목 중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다.[300] 본인이 두목이 될 때만 해도 이류 조직이던 자신의 조직을 제노비스 패밀리를 뛰어넘는 최대 파벌로 만든 인물.[301] 감비노는 1976년에 사망했다. 유튜브에 성대한 장례식 영상이 올라와 있다.
토마스 루케시젊은 시절 기계공장에서 일하는 중 산재를 입어 오른손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잃어서 ‘세 손가락 토미’라 불린 루케시 패밀리 두목. 당대 뉴욕 시장 빈센트 임펠리테리의 막강한 후원자로써 뉴욕 경찰 국장 토머스 머피와도 가까운 사이를 자랑했다. 자신의 딸을 카를로 감비노의 아들과 결혼시켜 사돈을 맺었다. 루케시는 1967년에 사망한다. 그의 장례식엔 1000명이 넘는 정치인, 판사, 경찰관, 갈취자, 마약상, 포주 그리고 카를로 감비노가 참석했다.
조셉 보난노일명 열광적인 조(Joe Bananas)라 불린 인물. 살바토레 마란자노에게 패밀리를 물려받았다. 1960년대에는 경쟁 조직에 납치되어 약 2년간 실종되기도 했다.[302] 후에 카를로 감비노, 토마스 루케시 두 뉴욕 마피아 두목의 암살을 모의하다 적발되자 ‘바나나 항쟁’을 일으킴. 항쟁에 패배하고 은퇴한 후 애리조나로 가서 자서전을 집필하여 출간하고 여생을 보냄.[303] 2002년에 사망.
조셉 콜롬보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인권단체를 이끌며 정치적인 야심을 드러냈던 콜롬보 패밀리 두목. 미국 내 최초의 이탈리아계 인권단체를 설립했다. 영화 대부의 제작진을 협박해 '마피아'라는 단어와 '코사 노스트라'라는 단어를 대본에서 삭제하게 만들었다. 1971년에 총격을 당해 식물인간이 되고 7년 후에 사망한다. 콜롬보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한다.
조셉 발라키1963년 매클러런 상원 위원회에 출석하여 "마피아는 존재합니다."라고 최초로 밝힌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헤로인 밀매 혐의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상부로부터 살인 지시를 받아 교도소 마당에서 동료 수감자를 쇠 파이프로 때려죽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을 오인했다. 즉, 원래 목표물인 마피아 조직원이 아닌 민간인을 살해한 것. 이에 수감 중이었던 패밀리 두목 비토 제노비스는 분노해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발라키의 목에 걸었다. 발라키는 자신이 살해당할 위험에 직면하자 정부 증인이 되어 비밀 입단식과 위원회, 두목부터 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구성 등 라 코사 노스트라의 자세한 조직 체계에 대해 최초로 폭로하는 인물이 된다.
필립 롬바르도일명 '사팔뜨기 베니'라 불린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수감 중인 비토 제노비스를 대신해 1965년부터 패밀리의 대행 두목을 맡다가 제노비스가 사망한 1969년에 공식적으로 패밀리의 두목이 됨. 그는 토마스 에볼리(Thomas Eboli)[304] 프랭크 티에리(Frank Tieri)[305], 앤서니 살레르노(Anthony Salerno)[306] 등 여러 일선 두목(Front Boss)들을 내세워 동료 마피아 두목들과 수사기관을 속이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1980년에 벌어진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 안젤로 브루노 암살 사건의 배후 중에서도 제일 윗선으로 추정되지만 수사망을 빠져나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307] 1981년에 빈센트 지간테로 후계자를 명확히 하고 은퇴한 뒤 플로리다 주에서 여생을 보내다 1987년에 사망함. 영화 아이리시맨에 필립 롬바르도 휘하에서 패밀리의 지부장으로 노조 관련 사업을 담당하던 앤서니 프로벤자노가 등장한다.[308]
카마인 갈란테항상 시가를 피운 탓에 일명 The 시가로 불린 보난노 패밀리 대행 두목. 조셉 보난노의 부두목을 약 7년간 맡기도 했다. 위원회에서 지정한 보난노 패밀리 두목 필립 라스텔리가 수감된 탓에 1974년에 실질적인 조직의 주도권을 잡았다.[309] 마약 사업에 유독 집착한 갈란테는 정규 조직원들까지도 직접 거리에서 마약 거래를 하는 것을 허용하며 1970년대에 마약과 관련한 분쟁의 결과로 최소 8명의 이상의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들의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갈란테는 1979년에 위원회의 결정으로 부하들에게 제거된다.[310] 영화 도니 브래스코 초반부에 잠깐 나오는 조직의 두목이 바로 갈란테다. 갈란테의 사망 사진을 보면 총격당해 죽는 순간까지 시가를 물고 사망했다.
아니엘로 델라크로체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후에 감비노 패밀리 두목이 되는 존 고티의 멘토로써 약 20년간 부두목이었다.[311] 암살을 수행할 때 가톨릭 신부 의상을 입고 대상 가까이에 손쉽게 접근해 살해하는 교활함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카를로 감비노의 후계자로 여겨졌지만 감비노는 폴 카스텔라노를 후계자로 지명한다. 이에 델라크로체를 따르던 부하들이 격분했지만 정작 델라크로체 본인은 1985년에 간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카스텔라노에게 충성을 바쳤다. 재판 중이었던 카스텔라노는 델라크로체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이는 존 고티 등 다른 조직원들을 자극해 쿠데타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폴 카스텔라노일명 빅 폴(Big Paul)로 189cm, 120kg의 거구였다.[312] 조직의 두목 카를로 감비노의 매제로 1964년에 조직의 대행 두목이 됨. 1976년에 감비노가 사망하자 공식적으로 조직의 두목이 된다. 1975년 대행 두목 시절의 카스텔라노는 자신을 미국의 식품 대기업인 퍼듀 팜(Perdue Farms)의 회장[313] 프랭크 퍼듀(Frank Perdue)와 비교했다는 이유로 딸의 남자친구 비토 보렐리(Vito Borelli)의 살해를 지시했다고 알려져있다.[314] 1985년에 부하 지부장 중 하나인 존 고티의 지시를 받은 암살자들에 의해 맨해튼 한복판에서 신임 부두목 토마스 빌로티(Thomas Bilotti)와 함께 암살당함.[315] 카스텔라노의 집은 뉴욕 토트 힐(Todt Hill)에 소재한 흰색 저택이었는데 당대의 암흑가에선 일명 백악관(White House)으로 불렸다.
빈센트 지간테일명 턱주가리(Chin)라 불린[316] 라이트헤비급 프로 복서 출신의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317] 프로 복서를 그만두고 마피아 세계로 뛰어든 그는 비토 제노비스의 경호원 겸 운전수로 있다가 1957년에 암흑가의 수상 프랭크 코스텔로를 저격하여 은퇴시키며 떠오르는 별이 된다. 1981년에 필립 롬바르도(Philip Lombardo)가 은퇴하여 새로이 패밀리 두목이 된 지간테는 자신을 수사하는 FBI 요원들을 기만하기 위해 매일같이 정신병자 행세를 하여 16년 동안이나 법망을 피해 갔다.[318][319][320][321] 길에서 지간테를 마주치는 시민들은 목욕 가운을 입고 수행원의 부축을 받거나 지팡이를 짚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리를 배회하는 이 정신병자가 뉴욕 시 암흑가의 제왕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322] 지간테는 두목으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의 조직을 감비노 패밀리를 뛰어넘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피아 파벌로 만들었다. 그는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의 암살을 지시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323] 또한 창문 사업권을 두고 마찰을 빚은 루케시 패밀리 두목 빅터 아무소를 상대로 직접 담판에 나서 굴복시키기도 했다.[324] 지간테는 FBI의 끈질긴 수사로 1997년에 12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지만[325][326] 수감 중에도 아들 앤드루 지간테와 여러 대행 두목들을 통해 실질적으로 패밀리를 운영하며 아주 뛰어난 재정 상태의 조직을 남겼다.[327][328] 2002년에 공갈 및 사법방해 혐의로 추가 기소되어 3년의 형량을 추가한 지간테는 2005년에 스프링필드 연방 수형자 병원에서 사망했다.[329] 생전 빈센트 지간테는 세 집 살림을 했는데 본처와는 뉴저지 주에 위치한 교외 주택에서 살았고, 애인과는 뉴욕 시에 위치한 1200만 달러(약 140억 원) 가치의 연립 주택에서 거주했다.[330] 또 어머니가 거주하는 맨해튼 리틀 이탈리아 멀베리 스트리트의 아파트에서도 자주 머물렀다. 그의 자손들은 선친의 영향력으로 여전히 뉴저지 항구의 여러 회사들에 근무하며 합법적으로 억대 연봉들을 받고 있는데 도합 200만 달러(약 23억 원)에 달한다.[331] 애인에게서 난 사생아 빈센트 에스포지토(Vincent Esposito)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관련자로 파악되며 2018년에 노조 갈취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332]
존 고티알 카포네 이후 가장 유명한 미국 마피아 두목. 자신의 두목이던 폴 카스텔라노를 제거하고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이 된 인물. 일명 말쑥한 대부(Dapper Don)라 불리며 마피아 두목으로서 앤디 워홀이 그려준 초상화가 타임지 표지에 올라갔다.[333][334]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 악평으로는 위원회의 허가를 받지 않고 두목을 제거했으며[335]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등 눈에 띄는 활동으로 1980~1990년대 수사기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조직을 약화시켰다는 평과[336] 잔혹함과 냉혹함, 리더십만큼은 정통 마피아 두목이었다는 호의적인 평이 공존한다.[337] 실제로 존 고티는 말단 조직원에서 두목이 되기까지 피와 총알과 승부하는 진창을 걸어왔다. 두목이 된 방법도 옛날식의 잔혹한 쿠데타였는데, 명분 없는 쿠데타가 아닌 이미 신망을 잃어버린 두목 폴 카스텔라노를 마피아 식으로 과감하게 제거하여 당시 조직 내에서는 큰 잡음이 없었다.
조셉 마시노2004년에 뉴욕 마피아 두목 중 최초로 정부 증인이 되어 미국 주요 메이저 신문의 1면을 장식한 보난노 패밀리 두목.[338] 1981년에 위원회에서 제명된 보난노 패밀리를 본인이 1990년대에 재진입시켰다.[339] 은퇴 후 자서전을 내서 많은 마피아들의 빈축을 샀던 조셉 보난노의 흔적을 지우고자 조직 이름을 마시노 패밀리로 바꾸려 했지만 한번 굳어진 이름 탓에 뜻대로 되진 않았다. 2003년에 자신의 부두목 살바토레 비탈레(Salvatore Vitale)의 배신으로 본인이 사형구형을 받고[340]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그 뒤 연방 정부에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조직의 대행 두목을 맡고 있던 빈센트 바시아노(Vincent Basciano)가 포함된 여러 부하들을 팔아넘기고 자신이 은닉해 두고 있던 자산 중 현금 700만 달러(약 80억 원)와 500개의 금괴, 자신이 소유한 10채의 부동산 중 5채를 제공하고 감형 받는다.[341] 당시 보난노 패밀리는 마시노 재판의 담당이던 연방 검사 그렉 안드레스(Greg Andres)의 암살을 모의하고 있었는데 마시노는 바시아노와 면회를 하면서 도청기를 몸에 달고 대화를 녹음해 암살 모의의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하고 그 밖의 여러 혐의로 결국 바시아노를 종신형에 처하게 만든다.[342] 현직 두목이 오메르타를 깬, 도니 브래스코 작전 이후 보난노 패밀리에 핵폭탄 급 충격을 준 사건.[343]
도미닉 시릴로일명 과묵한 수도사(Quiet Dom)라 불리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344] 젊은 시절 미들급 프로 복서 생활을 하다 마피아 세계에 입문했다.[345] 말단 시절인 1953년에 하루에 약 2만 달러를 벌어들인 헤로인 밀매 사업의 총책으로 인정되어 약 4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이후 20여 년간 단 한차례도 수감되지 않은 시릴로는 1981년부터 패밀리의 두목이 된 빈센트 지간테의 최측근 인사로 활동했다.[346] 1997년에 지간테가 수감되자 시릴로가 한동안 지간테의 대리인이 되어 패밀리의 대행 두목을 맡았다.[347] 시릴로는 수십 년간 자그마한 집에 검소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이웃 주민들에게 자신을 '젊은 시절 프로 복서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 건설업에 종사하다 은퇴했고 월 510달러의 사회 보장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으로 소개했다.[348] 시릴로는 1998년에 심각한 심장마비를 겪고 대행 두목에서 물러나지만 회복 이후 조직의 지도부로 다시 복귀한다.[349] 시릴로가 한창 지도부로 재직 중인 2004년에 뉴욕 시 펠햄 베이에 위치한 부동산 사무실에서 그의 아들인 41세의 니콜라스 시릴로가 코카인에 취한 상태로 현장에 있던 보난노 패밀리 지부장 도미닉 시칼라, 보난노 패밀리 준 구성원 빈센트 바시아노 주니어와 언쟁을 벌인 일화가 있다.[350] 당시 부두목이 밀고자가 되어 두목이 체포된 보난노 패밀리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노리고 니콜라스가 보난노 조직원들을 상대로 이래라저래라 겁박을 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인데 니콜라스는 그 일이 있고 2주일 후 실종되어 차량은 발견했지만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351] 니콜라스 실종 직후 매정한 아버지는 아들을 찾는데 협조하라는 경찰의 요청도 거부했고 보난노 측에 대한 제노비스 측의 보복도 없었다.[352] 니콜라스 실종으로부터 7개월 뒤 보난노 패밀리 준 구성원 랜돌프 피졸로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353] 피졸로는 살해되기 전 니콜라스를 본인이 제거했다는 비밀을 여기저기 누설한 뒤라고 알려져 있다. 피졸로 암살로부터 1년 3개월 뒤에는 보난노 패밀리 대행 두목 마이클 맨쿠소가 피졸로 살해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유죄판결을 받는다.[354] 한 정부 당국자는 "피졸로 암살은 다른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입을 닫으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2005년에 연방 정부는 시릴로를 대상으로 수년간 수사 중이었던 공갈죄와 공갈 공모죄로 기소해 유죄판결을 이끌어낸다.[355] 약 3년간 복역하고 2008년에 출소한 그는 패밀리의 콘실리에리가 되어 조직의 원로 역할을 맡았다. 한편 2011년에는 정부 증인이 된 보난노 패밀리 두목 조셉 마시노가 "2004년 어머니의 날(5월 둘째 주 일요일)에 도미닉 시릴로가 아들의 살해를 지시했다."라고 증언했다.[356] 연방 정부는 대대적인 재수사에 들어갔지만 시릴로의 살인교사 혐의는 끝내 입증할 수 없었다. 시릴로 부자의 일화는 2013년에 제작된 미국 드라마 바디 오브 프루프 시즌 3 4화 각본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357]
매튜 이아니엘로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 이아니엘로가 어린 시절 야구를 할 때 얼굴을 향해 고의 사구를 던진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덩치가 큰 상대편 투수를 때려눕혔다. 이후로 "저 아이는 말처럼 힘이 세다."라고 해서 평생 그를 따라다닌 별명이 바로 '말(Matty the Horse)'이다. 그는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제2차 세계 대전에 미 육군으로 참전해 퍼플 하트 훈장과 청동 성장(Bronze Star) 훈장을 수여받았다. 귀국 이후 마피아 조직원이 된 그는 1960년대에 제노비스 패밀리의 정규 조직원으로 입단했고 후에 패밀리의 일선 두목이 되는 프랭크 티에리의 수하에서 활동했다. 요리사였던 이아니엘로의 아버지는 1972년에 콜롬보 패밀리 행동대원 조 갈로의 암살이 벌어진 맨해튼 리틀 이탈리아의 레스토랑 움베르토 클램 하우스(Umberto's Clam House)의 사장이었다. 이아니엘로는 마피아 조직원이라는 신분에다 사건 당일 레스토랑에 있었기 때문에 조사를 받았는데, 자신은 일이 벌어질 때 주방에 있어 모든 상황을 놓쳤고 암살이 이루어진다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고 진술해 기소되지 않았다.[358] 이아니엘로는 1970년대 초에 지부장으로 승격되었고 공식적으로는 번듯한 노조일을 하면서 타임스 스퀘어 일대 80개가 넘는 레스토랑과 성인 클럽들을 관리했다.[359] 1986년에는 레스토랑과 술집, 운송 업체를 대상으로 한 수백만 달러 규모의 갈취 정황이 드러나 6년 형을 선고받는다.[360] 1988년에는 추가 기소된 건설 부정 입찰죄로 별도로 13년 형을 선고받는다. 도합 19년 형을 선고받은 이아니엘로는 약 9년간 복역한 후 1995년에 가석방되는데, 1997년에는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가 수감된다. 이후 복역 중인 지간테의 대리인 역할을 하던 도미닉 시릴로의 건강 문제로 1998년부터는 이아니엘로가 대리인이 된다. 패밀리의 대행 두목이 된 그는 전반적인 조직 운영을 도맡아 했는데, 특히 이 시기에 미 동부 최대의 버스 운전사 조합인 ATU(Amalgamated Transit Union)에 깊이 관여한다.[361] 이아니엘로는 2005년 7월에 뉴욕 주에서 자행된 갈취•고리대금이 포함된 공갈 혐의로 기소되고[362] 2006년 6월에는 코네티컷 주의 폐기물 처리 업계를 공갈한 혐의로 추가 기소된다.[363] 2005년에 이아니엘로 체포에 참여한 수사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체포 직전까지 자택에서 영화 대부 3편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364] 보석으로 풀려난 이아니엘로는 법정 공방을 거친 뒤 2007년에 2건 모두 유죄를 인정했고 변호인은 재판장에게 피고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관대한 판결을 요구했다. 최종적으로 2년 형을 선고받은 그는 형의 대부분을 수형자 병원에서 복역하고 2009년에 출소했다. 일선에서 물러나 패밀리의 원로가 된 이아니엘로는 출소 3년 후인 2012년에 92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사망한다.[365] 매튜 이아니엘로의 조카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유력 간부 코라도 이아니엘로다.
존 프란지스 일명 ‘소니 프란지스’로 불린 콜롬보 패밀리 부두목. 1917년에 태어나서 103세로 사망한 전설적인 마피아다. 일생 동안 30년이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단 한 번도 밀고하지 않은 그 업계의 전설적인 갱스터였다. 아들 마이클에 의하면 존 프란지스는 찰스 루치아노알 카포네직접 만나본 적이 있는 진짜 OG(Original Gangster)라고 한다. 과거에 마이클이 마피아 세계를 떠나려 했을 때 아들을 살해하려 했지만 현재는 부자관계가 회복된 걸로 보인다. 마이클은 마피아 세계에서의 궁극적인 성공이란 바로 돈과 지위가 결합된 권력인데, 말단 조직원에서 출발해 부두목이 되었고 적지 않은 재산을 모아 이제 콜롬보 패밀리가 존경하는 원로 마피아 중 하나가 된 아버지는 스스로를 가장 성공한 마피아라고 여길 것이라고 했지만, 아들인 자신이 보기에 그가 조금만 덜 성공한 마피아여서 아버지의 삶 속에 자리하는 30년 넘는 수감 생활 중 자유인으로 살았던 날들이 더 많았더라면 하고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존 프란지스는 유독 징역복이 많은 마피아 인사 중 하나인데, 2011년에 만 93세의 나이로 12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복역 중 사망하리라 여겨졌지만 2017년에 만 100세의 나이로 끝내 사회에 돌아왔다. 마이클의 동생 존 프란지스 주니어는 정규 조직원은 아니었지만 미국 마피아 변절자 중에서도 자신의 아버지를 상대로 증언한 최초의 인물이다. 존 프란지스는 인생의 황혼기인 2019년에 과거의 배신을 용서하고 작은 아들과 화해했고 아들도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프란지스 주니어는 그 해에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존 프란지스는 이듬해인 2020년 2월에 사망했다.
마이클 프란지스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이자 현 강연가 겸 작가로[366][367] 현재 각종 마피아 관련 다큐멘터리나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가 행동대원이던 시절에 직속 지부장이 2010년대 콜롬보 패밀리의 대행 두목이 되는 앤드루 루소다. 프란지스는 1980년에 지부장이 되는데, 그가 유명한 것은 마피아 중에서도 가장 사업 수완이 뛰어난 인물 중 하나로써 지부장 시절의 그는 자신의 주력사업이었던 휘발유 밀매업 외에도 노동조합과 건설, 엔터터인먼트, 스포츠, 도박과 마권, 고리대금업에 관여했고 자동차 대리점과 정비 공장을 운영했으며 나이트클럽과 연회장 사업에 기웃거리는 한편, 은행원과 회계사를 관리하며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했고 주식에도 직접 손을 댔다고 한다. 전성기 시절에는 한 달 최고 수입이 약 3000만 달러(약 357억 원)였다고 한다.[368][369] 일전에 루돌프 줄리아니의 기소가 포함된 4번의 재판에서 모조리 승소한 그였지만 1985년에는 14개 정부기관이 연합된 연방검사 에드 맥도널드의 ‘마이클 프란지스 특별반’의 기소를 받았다. 프란지스가 28가지 혐의로 구성된 98페이지 짜리 방대한 공소장을 받았을 때, 그의 변호사는 줄리아니도 이긴 우리가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며 결의를 다졌지만 정작 프란지스 본인은 재판에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며 대신 마피아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국 10년형 선고를 받고 1991년 12월에 가석방되지만, 가석방 규정 위반으로 남은 형량을 마저 복역했다.[370] 그는 수감 중 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었고 몇 차례 죽음의 위협이 따른 끝에 마피아 세계를 완전히 떠났다.[371] 1994년에 만기 출소한 그는 조직 세계를 떠났지만 재판 당시 오메르타를 지키면서 동료들을 밀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피아들 사이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고 공개적인 활동에도 큰 지장이 없는 상태다.[372] 프란지스는 영화 좋은 친구들에 1차례 등장한다.[373] 현재는 강연을 병행하며 꽤나 성공한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모했다.[374] 유튜브에 인터뷰 영상이 있다. 마이클 프란지스의 아버지는 위의 콜롬보 패밀리 부두목 존 프란지스다. 마이클은 자신의 저서에서 마피아 두목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설정의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비현실성에 대한 논평을 한 바 있다.[논평내용]
프랭크 칼리감비노 패밀리의 부두목. 패밀리 두목 도메니코 체팔루의 노쇠화로 2015년에 조직의 대행 두목(Acting Boss)이 된 인물.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 세력과 큰 연줄을 가졌고, 그림자 속에 숨어 마피아 사업을 총괄하며 교묘히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정통 마피아라는 평을 받아왔다.[376] 칼리는 1985년에 살해된 폴 카스텔라노 이후 2019년에 본인의 자택 앞에서 살해되어 34년 만에 타인에게 암살당한 뉴욕 마피아의 두목급 인물로, 미국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한 인물이다.[377] 살해 용의자는 조직범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젊은 정치 음모론 신봉자로, 최초에는 뉴욕 시장을 범행 대상으로 하려 했으나 실패한 뒤, 대신 마피아 두목을 대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몰두하여 범행을 했다고 한다.[378]

9.3. 다른 도시의 마피아

시카고 아웃핏시카고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2007년 기준 추정치) 정규 조직원: 28명, 준 구성원: 100명 이상.#[379] 1910년에 빈첸조 콜로시모가 조직을 결성된 후 뒤를 이은 자니 토리오와 그 후계자 알 카포네가 아일랜드 갱단과의 항쟁 끝에 승리를 쟁취하고 시카고를 장악했다. 이후 조직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할리우드 등지로 진출한다. 뉴욕 패밀리들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위원회가 창립된 1931년부터 현재까지 의석을 지키고 있는 조직. 영화 카지노 속 주요 등장인물들의 소속 조직이다. 2005년에 14명의 정규 조직원과 준 구성원들이 기소된 패밀리 시크릿 작전(Operation Family Secrets)이 있었다.[380] 2015년 시카고 대학 정치학과는 시카고가 미국 부패의 수도라고 천명했다.[381] 이러한 부패의 구심점이 바로 시카고 아웃핏이라고 여겨진다.[382] 1996년부터 약 18년간 두목으로 재직한 존 디프론조가 2014년에 은퇴하고[383] 뒤를 살바토레 드로렌티스가 이었다.[384]
필라델피아 패밀리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과거에는 브루노 패밀리 혹은 스카르포 패밀리라고 불렸다. 안젤로 브루노가 두목으로 재직하던 1961년부터 1980년까지는 위원회에 표결권이 있었다. 1980년에 제노비스 패밀리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에 의해 21년간 패밀리를 이끌던 안젤로 브루노가 살해된 뒤[385] 1980~1990년대에 패밀리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항쟁이 벌어졌다. 혼란기가 계속되던 중, 니키 스카르포(Nicky Scarfo) 같은 두목은 시카고 아웃핏의 예를 좇아서 필라델피아애틀랜틱 시티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활동에 대해 세금을 매기기로 하는 등 전에 없던 정책을 고수하기도 했다.[386] 20년 가까이 패밀리가 안정되지 못하고 권력을 잡은 두목들이 조직 내 알력 다툼으로 암살 당하거나[387], 무분별한 살인으로 덜미를 잡혀 종신형에 처해지거나[388], 오메르타를 깨고 정부 증인이 되는 등[389] 혼란의 시기를 거치고 1998년에 조셉 멀리노(Joseph Merlino)가 패밀리의 패권을 쥐고 그동안의 항쟁에 대한 대가로 1999년에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390] 멀리노 수감 이후 베테랑 조셉 리감비(Joseph Ligambi)가 대행 두목을 맡아 지역 내의 여타 범죄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패밀리를 다시 한번 전성기로 이끈다.[391] 조셉 멀리노는 2011년에 출소했다.[392]
디트로이트 파트너십디트로이트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2016년 기준 추정치) 정규 조직원: 약 50명# 금주법 시기엔 도시 내 범죄조직 중 2등 조직으로 있다가 유대계 갱단 '퍼플 갱'이 해체된 후 1933년에 도시를 장악한다. 조셉 제릴리(Joseph Zerilli)가 두목으로 재직하던 1961년부터 1977년까지는 위원회에 표결권이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 사건 중 하나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에 제노비스 패밀리와 함께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디트로이트 파트너십은 비록 전성기에 비해서 그 규모가 감소했을지언정 큰 풍파를 겪지 않은 상당히 안정된 마피아 패밀리로써 여전히 미시간 주의 모든 범죄조직을 통틀어 최고의 집단으로 여겨진다. 디트로이트 마피아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영화로 트루 로맨스가 있다. 1979년부터 약 35년간 두목으로 재직한 잭 토코(Jack Tocco)가 2014년에 사망하고 그 뒤를 잭 지아칼로네(Jack Giacalone)가 이었다.[393]
페트리아카 패밀리뉴잉글랜드 지역을 기반으로, 보스턴 파벌과 프로비던스 파벌로 나뉘어 활동하는 마피아 조직. 패밀리 이름은 1954년부터 1991년까지 두목이었던 페트리아카(Patriarca) 부자의 이름을 땄다.[394] 보스턴 파벌은 1970~1990년대에 아일랜드계 범죄조직 윈터 힐 갱단과 대립했다.[395] 무고한 살인죄로 33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보스턴 파벌의 피터 리모네(Peter Limone)가 2009년에 패밀리의 두목이 되어 조직을 이끌다 2017년에 사망했다.[396] 리모네의 후임은 보스턴 파벌의 카르멘 디넌지오(Carmen Dinunzio)[397]
버팔로 패밀리뉴욕 주에 속한 캐나다 국경지대 도시 버팔로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일명 장의사(The Undertaker)로 불린 초창기 두목 스테파노 마가디노(Stefano Magaddino)의 지도력과 밀주 유통에 유리한 지리적 이점 아래 금주법 시대에 큰 성장을 했다. 이를 발판 삼아 1931년 위원회 창립 당시, 마가디노는 표결권을 가진 7개 패밀리의 두목 중 하나로 속해 있었다. 1974년 마가디노의 사망 이후 두목 자리를 두고 10여 년간 내부 항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로 인해 패밀리는 위원회에서 표결권을 잃었다. 2006년에 아버지 조셉 토다로의 뒤를 이은 조셉 토다로 주니어(Joseph Todaro Jr.)가 조직의 주도권을 잡았다.
데카발칸테 패밀리뉴저지 주뉴어크 시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패밀리 이름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두목이었던 샘 데카발칸테(Sam DeCavalcante)의 이름을 땄다. 인접한 뉴욕 5대 패밀리와 깊은 유대가 있으며 미드 소프라노스의 모티브를 제공한 조직. 1990년부터 2012년까지 약 22년간 수감된 두목 지오바니 리지(Giovanni Riggi)[398]의 공백기를 효과적으로 메꾼 대행 두목 프란시스코 과라치(Francesco Guarraci)가 2016년에 61세로 급사하면서 찰스 마주리(Charles Majuri)가 조직의 주도권을 잡았다.
클리블랜드 패밀리클리블랜드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1970년대 도시 내 노조 지배권을 두고 대니 그린(Danny Greene)이란 아일랜드 혈통의 폭력배와 항쟁을 벌였다.[399] 결국 대니 그린의 폭사로 항쟁은 끝이 나지만, 1980~1990년대에는 동시기 다른 도시의 마피아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FBI의 집중적인 수사로 큰 피해를 입게 된다.[400] FBI에 의하면 약 12년간 두목으로 재직하다 은퇴하고 피츠버그로 간 조셉 이아코바치(Joseph Iacobacci)의 뒤를 이어 2005년에 패밀리를 장악한 러셀 파팔라도(Russell Papalardo)의 지도력하에 조직 재건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트리피칸테 패밀리플로리다 주 템파 시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401] 플로리다 주의 유일한 라 코사 노스트라 패밀리로 템파 마피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패밀리 이름은 1940년부터 약 50년간 두목이었던 트리피칸테 부자의 이름을 땄다.[402] 트리피칸테 주니어의 뒤를 이어 1987년에 빈센트 로스칼조(Vincent LoScalzo)가 패밀리를 이어받지만, 현재는 플로리다 주로 진출한 뉴욕 마피아 세력의 영향력에 서서히 잠식되고 있다.[403]
로스앤젤레스 패밀리서부 최대의 도시이자 미국 제2의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도시의 규모와 경제력을 생각했을 때 마피아 패밀리가 번성했을 만도 하지만, 과거부터 캘리포니아 지역의 마피아는 힘이 약해 미키 마우스 마피아로 불리던 조직이다.[404] 이들은 과거 할리우드가 자신들의 구역임에도 시카고 아웃핏이 허가 없이 영화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아무런 제동도 걸지 못했다. LA 마피아가 이러한 것은 LA에 이탈리아계 시민의 비율이 낮아 지역 커뮤니티 내에 영향력이 적고, 초기 패밀리 두목이었던 잭 드라냐(Jack Dragna)가 다른 패밀리들의 영역 침범을 방치하고 충돌을 피해서 얕보였다는 게 정설이다.[405] 오늘날 LA 마피아는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지역의 매춘, 도박, 나이트클럽, 마약 거래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 오히려 현재의 LA는 다양한 스트리트 갱단의 활동이 아주 활발하다.[406] 2012년에 LA 패밀리 두목 피터 밀라노(Peter Milano)가 사망했다.[407]
캔자스시티 패밀리미주리 주캔자스시티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암암리에 패밀리 계보를 이어오며 도시 내 불법 도박 사업과 고리대금 사업, 마약상과 스트립 클럽을 대상으로 한 보호세 갈취 사업 등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피츠버그 패밀리철강 도시 피츠버그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2010년대에 피츠버그 패밀리의 동업자가 연루된 불법 도박 사업 혐의가 적발된 사례에서 여전히 저자세를 유지해온 채로 암암리에 패밀리 계보를 이어오며 지역 내 불법 사업에 관여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세인트루이스 패밀리미주리 주세인트루이스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최근 드러난 정보는 많지 않지만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드러나게 폭력을 행사하는 도시 내 다른 범죄조직들에 수사기관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 아래서 암암리에 패밀리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밀워키 패밀리밀워키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초창기부터 시카고 아웃핏에서 뻣어나온 가지로 평가되던 패밀리다. 1960년대~1990년대 초까지 패밀리 두목이었던 프랭크 발리스트리에리(Frank Balistrieri)는 영화 카지노에서 묘사된 것처럼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횡령을 하다 적발되어 8년간 수감되기도 했다. 현재는 독자적인 조직의 계보가 끊긴 것으로 추정되며 남아있는 세력은 시카고 측에 흡수되었고 시카고 아웃핏이 밀워키 불법 사업의 지배권을 쥐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뉴올리언스 패밀리남부 지방 뉴올리언스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미국 마피아가 최초로 생겨난 곳은 뉴욕이 아닌 뉴올리언스로써, 최초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미국으로 들어온 도시다.[408] 1947년에 패밀리의 두목이 된 카를로스 마셀로는 거대한 범죄 제국을 꾸려나갔고, 훗날 미 의회에 의해 케네디 대통령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배후로 지목되어 고발되기도 했다. 1993년 그의 죽음 이후 다른 마피아 패밀리들과 비 마피아 범죄조직 양쪽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눈에 띄게 세력이 약화되었고, 현재는 조직 계보가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중반에 조직원 앤서니 카롤라(Anthony Carolla), 프랭크 갈리아노(Frank Gagliano), 필립 리주토(Philip Rizzuto)가 사망하는데 FBI에서는 이들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피아 조직이 숨을 거뒀다고 평가한다.
댈러스 패밀리텍사스 주 댈러스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미 서부 못지않게 마피아 패밀리의 불모지인 텍사스 지역을 연고로 한 만큼 세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 암살이 실행된 장소가 댈러스이며, 대통령 암살범 리 하비 오스왈드를 암살한 지역 나이트클럽 사장 잭 루비가 당대 댈러스 패밀리 두목 조셉 시벨로(Joseph Civello)와 사적인 친분이 있었다고 미 하원 암살 특별위원회(HSCA)가 밝히기도 했다. 그 후로도 패밀리가 이어지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는 조직 계보가 끊어졌다고 판단된다.[409]
버팔리노 패밀리펜실베이니아 주 북동부에 위치한 피츠턴, 스크랜턴, 윌크스-배러를 기반으로 한 마피아 조직. 패밀리 이름은 1950년대부터 1994년까지 두목이었던 러셀 버팔리노의 이름을 땄다. 지리적으로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중간에 위치해있고 중소규모의 조직이었기에 이 패밀리의 두목들이 마피아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버팔리노의 후계자 윌리엄 디엘리아는 2006년에 본인 재판의 목격자 살해를 시도하다 적발된 뒤 9년 형을 선고받자 2008년에 오메르타를 깨고 정부 증인이 되어 포코노스의 한 카지노 소유주를 상대로 증언한다. 2012년에 전 펜실베이니아 조직범죄 수사관 제임스 카나비는 버팔리노 패밀리의 잔당은 뉴욕 패밀리들에 흡수되었고, 펜실베이니아 주 북동부의 독립된 마피아 패밀리는 독자적인 조직 계보가 끊겨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정했다.

9.4. 다른 도시의 마피아 주요 인물

빈첸조 콜로시모시카고 아웃핏의 초대 두목으로 칼라브리아 출신의 이민자다. 미국식 이름으로 제임스 콜로시모라 불리기도 했으며 덩치가 커서 빅짐(Big Jim) 콜로시모란 별명으로도 불렸다. 시카고에서 거대한 성매매 산업과 도박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뉴욕의 자니 토리오를 데려와서 부두목으로 삼았으나 금주법 시기가 오자 밀주산업에 뛰어들자는 젊은 조직원들의 요청을 거부해 불만을 샀다. 이는 성매매와 도박업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정부와 옥신각신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구식 마인드를 싫어했던 자니 토리오와 그의 사주를 받은 프랭키 예일에게 암살당했다. 비록 허망하게 죽었으나 인망이 좋고 평판이 나쁘지 않아 장례식은 성대하게 열렸다.
자니 토리오여우란 별명을 가진 인물로 시카고 아웃핏 초대 두목 빈첸조 콜로시모의 암살을 교사하고 자신이 두목이 되었다.[410] 아일랜드 갱단과의 항쟁에서 저격을 받고 카포네에 조직을 물려준 뒤 은퇴하였다. 그 후 최고 고문 비슷한 지위에 있다가 1957년에 사망한다.
알 카포네별명 스카페이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젠나 형제들 시칠리아 마르살라 출신의 6형제로 안젤로,안토니오,마이크,피터,샘,빈첸조의 형제들이 뭉쳐서 만들었다. 금주법 시기 밀주 조직으로 위세를 떨쳤다. 재미시칠리아 향우회인 우니온 시칠리아나를 장악하고 위스키를 대량 밀조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 시카고를 3분하는 세력으로 등장했다. 처음엔 시카고 아웃핏(사우스 사이드 갱)하고도 사이가 안좋았으나 이내 아일랜드 갱단인 노스사이드갱과의 사이가 험악해지자 아웃핏과 손잡고 노스사이드갱 두목인 딘 오배니언 암살에 일조했다. 그러나 이에 격분한 아일랜드 갱단의 후계자인 하이미 와이스,조지 모랜, 빈센트 드루치에게 계속 공격당해 안젤로가 살해당하고 그들의 백업을 받아 우니온 시칠리아나 회장으로 있던 사무조 아마투나도 살해 된다. 이후 마이크가 빈센트 드루치를 암살할려고 하나 실패하고 오히려 주변에 있던 경찰들의 총격을 받고 살해당한다. 이후 안토니오도 아일랜드 갱단의 습격을 받고 사망했다. 아일랜드 갱단은 딘 오배니언 암살에 젠나 형제들이 관련 된 것으로 확신하고 형제들을 모조리 죽이려 했기 때문에 나머지 삼형제는 공포에 질려 시카고를 떠나 이탈리아로 달아났다. 이후 젠나 형제와 친했던 조셉 아이엘로가 두목에 올라 아일랜드 갱단과 화해하고 조직을 추스렸다. 그러나 이후 우니온 시칠리아나에 간섭하려는 카포네와 사이가 안좋아저 서로 험악한 관계가 됐고 카포네를 독살-암살 할려다가 실패하고 뉴욕으로 도피했다. 이후 그의 부하들이 카포네측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한편 뉴욕에서 조 아이엘로는 카스텔람마레세 전쟁에 휘말렸고 이후에도 카포네를 제거할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는 1930년 시카고에 돌아왔다가 카포네의 지시를 받은 히트맨에게 총알세례를 받고 암살당한다. 사후 젠나 조직은 시카고 아웃핏에 흡수 된다.
프랭크 니티카포네의 오른팔인 동시에 공식적인 후계자. 카포네가 등장하는 영화인 언터처블에 동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실제 인물과 큰 연관성은 없고 이름만 따온 캐릭터다. 1943년에 마피아 두목으로써는 특이하게(아마 유일하게)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폴 리카프랭크 니티의 뒤를 이어 시카고 아웃핏의 두목이 된다. 갈취죄로 수감되기도 했다. 훗날 후계자 앤서니 아카르도와 그림자 집행부(Shadow executive)를 이룬다. 1972년에 사망.
앤서니 아카르도폴 리카의 뒤를 이어 10년간 시카고 아웃핏의 두목으로 재직하다 1957년에 샘 지앙카나에게 조직을 물려주고 원로가 된다. 전대 두목 폴 리카와 함께 지앙카나보다 더 상부인 그림자 집행부(Shadow executive)를 이루며 1992년에 사망할 때까지 약 70년의 마피아 인생을 통틀어 단 한차례도 수감되지 않았다.
샘 지앙카나앤서니 아카르도의 후계자. CIA와 손을 잡고 피델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하던 적이 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도 깊이 관여했다는 추측이 있다.[411] 지앙카나는 1974년 미국 상원의회에서 카스트로에 관한 CIA의 음모와 관련된 증거 제출을 요구받은 후 그것을 무시하고 피해 다니던 중 멕시코에서 체포되어 미국으로 호송되었는데, 마피아와 CIA 모두 지앙카나의 의중을 종잡을 수 없었기에 그의 입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결국 지앙카나는 1975년 의회 출석을 앞두고 괴한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의 시카고 아웃핏 두목 조셉 아이우파(Joseph Aiuppa)의 측근과 CIA 국장 윌리엄 콜비(William Colby) 둘 다 "우리는 그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했다. 지앙카나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한다.
조셉 아이우파영화 카지노에 등장하는 시카고 아웃핏 두목 리모 가지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 영화 속 내용처럼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전대미문의 월권을 행사하다 1986년에 적발되어 28년 6개월 형을 선고받은 후 약 10년간 복역하고 1996년에 가석방된다. 이듬해 사망.
조셉 페리올라1986년에 조셉 아이우파가 수감되자 앤서니 아카르도는 아웃핏 두목 자리를 조셉 페리올라로 대체했다. 건강 문제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기도 했다. 1989년에 사망.
사무엘 칼리시조셉 아이우파의 운전기사로 범죄 경력을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마피아 전령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녀 '날개'라는 별명을 얻는다. 1986년에는 시카고 아웃핏 행동대원 앤서니 스필로트로 살인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9년에 조셉 페리올라가 사망하자 두목이 된다. 1996년에 13년 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복역 중 사망한다. 칼리시의 뒤는 존 디프론조가 이었다.[412]
카를로스 마셀로뉴올리언스 마피아 두목.
러셀 버팔리노자신의 이름이 붙은 버팔리노 패밀리를 약 35년간 이끌었던 인물. 청문회에 출석한 버팔리노가 프랭크 시런과 지미 호파에 관한 질문을 받는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버팔리노는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조 페시가 연기한다.[스포일러]

9.5. 미국 마피아의 동업자들

아널드 로스스틴유대계 폭력배의 대부 격으로 주세페 마세리아와 같이 사업을 했다. 찰스 루치아노와 마이어 랜스키의 멘토였다. 블랙 삭스 스캔들에도 관여하여 월드 시리즈를 조작한 거물 도박사이기도 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 마이어 울프스하임의 모티브가 된 인물. 1928년에 총에 맞아 살해당한다.[414]
마이어 랜스키마피아의 회계사(Mob's Accountant)라 불린 암흑가의 아인슈타인. 유대계 폭력배 수장이자 찰스 루치아노의 측근으로[415] 독자적인 조직을 거느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초창기 미국 마피아를 포함한 전미 범죄신디케이트의 계획을 짠 사람. 최초로 폭력배들 중 스위스 은행 계좌를 생각해냈으며, 쿠바 진출 계획(비록 실패했지만), 전시 체제하에 미국 정부와 협력을 꾀하는 등 범죄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였다고 한다. 랜스키는 일생동안 딱 한번 1972년에 세금 포탈 혐의로 기소를 당하는데 연방 정부에서는 이마저도 혐의 입증에 실패한다.[416] 1983년에 사망.
벅시 시겔본명은 벤자민 시겔. 주세페 마세리아를 직접 살해한 4명의 암살자 중 하나. 유대인 혈통의 폭력배로, 뉴욕에서 LA로 건너가 유대계와 이탈리아계로 이루어진 독자적인 범죄조직을 거느렸다.[417] 라스베이거스를 사실상 만든 인물. 1947년에 카지노에서 수익이 안 나오자 성급한 동료들이 그 책임으로 총을 쏴서 살해했다(총알이 눈을 뚫고 지나갔다).[418][419]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라스베이거스가 활발하게 돌아갔다고. 시겔은 영화 대부모 그린 캐릭터에 모티브를 제공했다. 이 인물을 다룬 벅시라는 제목의 영화가 1992년에 제작되었다.
이노크 존슨애틀랜틱 시티의 인물로 독자 조직을 이끌었던 아일랜드 혈통의 인물.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주인공인 너키 톰슨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1968년에 사망.
범피 존슨찰스 루치아노의 측근으로, 할렘의 흑인 조직폭력배 두목이다. 미드 더 와이어에서 언급되기도 함.[420] 수많은 대중매체에 영향을 준 전설적인 흑인 폭력배.[421] 1968년에 사망.
프랭크 루카스범피 존슨의 뒤를 이은 할렘 인물. 마찬가지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와 동업했다. 2007년에 제작된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로도 잘 알려진 인물. 2차례에 걸쳐 약 12년을 복역한 바 있다. 2019년에 사망.
프랭크 시런아일랜드 혈통의 인물로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다. 평범한 트럭 운전수였지만 버팔리노 패밀리와 관련을 맺어 조직 구성원이 되었고 전미 트럭운송조합 간부 직책을 맡았다. 이후 미국 조직범죄사의 여러 굵직한 사건에 관여했다. 미국 정부는 시런을 이탈리아 혈통이 아님에도 라 코사 노스트라 위원회와 범죄를 공모할 수 있는 단 2명뿐인 인물로 파악했다. 노조 갈취 혐의로 32년형을 선고받지만 13년을 복역한 뒤 1993년에 가석방되고 2003년에 사망한다. 시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아이리시맨이 2019년에 제작되었고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다.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에 의하면 영화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아이리시맨 문서 참고.
지미 호파미국의 거물급 노동운동가로 전미 트럭운송조합 위원장이었다.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다.[노조에관해]
제임스 버크좋은 친구들 속 지미 콘웨이의 실존 모델.[423] 아일랜드 혈통의 인물로 루케시 패밀리 고위간부 폴 바라오의 휘하에 있었다.[424]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 강탈 사건인 1978년 루프트한자 강탈 사건에 가담했다.[425] 복역 중 1996년에 사망했다.
프랭크 로젠탈영화 카지노 속 에이스 로스스틴의 실존 모델.[426] 유대인 혈통의 시카고 아웃핏 구성원으로써 전설적인 도박꾼으로 통했다.[427] 시카고 아웃핏 두목 조셉 아이우파는 로젠탈의 명석한 두뇌를 신뢰해 그에게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운영을 맡기고 행동대원 앤서니 스필로트로로 하여금 로젠탈을 보호, 감독하게 했다.[428] 말년까지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다 2008년에 사망.
예베시 아그론미국 러시아계 레드 마피아의 대부로 불린 뉴욕의 1세대 보르 브 자코녜(Thief in law) 두목.[429] 1970~1980년대에 동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브루클린 브라이튼 비치를 거점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 총에 맞아 살해된다.[430]
마랏 바라굴라예베시 아그론의 후계자. 미국 활동 초기에 콜롬보 패밀리가 바라굴라의 가솔린 사업을 공격하자 바라굴라는 루케시 패밀리 콘실리에리 크리스토퍼 퍼나리에게 담판을 요청했고, 갤런당 2%의 마피아 세금(Family tax)을 내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431] 1986년에는 러시아 이민자 폭력배 블라디미르 레즈니코프(Vladimir Reznikov)라는 인물이 바라굴라의 사무실에 AK-47을 난사하여 1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후에는 레즈니코프가 직접 찾아와 권총을 바라굴라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조건으로 60만 달러와 앞으로 본인을 범죄 사업에 포함시키라는 협박을 한다. 레즈니코프가 떠난 후 바라굴라는 충격과 공포로 심장마비를 겪고 쓰러진다. 바라굴라는 루케시 패밀리에 도움을 요청했고 레즈니코프는 루케시 패밀리 암살자들에 의해 제거된다.[432] 이후 바라굴라는 기소를 피해 3년간 도망 다니다 독일에서 체포되고 신용카드 사기와 가솔린 밀매 혐의로 15년을 복역한 후 2004년에 출소한다.
보리스 녜필드마랏 바라굴라의 후계자. 예베시 아그론의 경호원이었다. 중국-싱가포르-폴란드를 경유하는 헤로인 밀수 루트를 통해 일부는 5대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패밀리에, 또 일부는 히스패닉계 스트리트 갱단에 팔며 큰돈을 벌었다. 일찍이 녜필드를 지원했던 라 코사 노스트라는 그가 두목이 되자 협력을 그만뒀다. 후에도 범죄 경력을 이어갔지만 잘 풀리지 않았는지 2016년 재판 때 변호사 선임비용이 없어 국선 변호를 받는 와중에 정부 증인이 되어 동업자들을 밀고했다. 2019년에 고국으로 돌아갔다.[미국의레드마피아에관해]

10. 마피아 형태를 한 다른 나라의 이탈리아계 범죄조직

리주토 패밀리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한 캐나다 최대 규모의 마피아 조직. 뉴욕의 보난노 패밀리와 매우 가깝다고 알려져 있으며 헬스 엔젤스, 아일랜드계 갱단과 손을 잡고 3두 위원회를 만들어 몬트리올의 뒷세계를 지배 중이었다. 그러나 현재 조직 반대파와 치열하게 항쟁 중이다.
니콜로 리주토리주토 패밀리의 두목, 1924년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1954년 몬트리올로 이민왔으며 당시 몬트리올을 지배하고 있던 칼라브리아 계열 코트로니 패밀리의 협력자로 마피아 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대 그가 속해있던 시칠리아 계열과 칼라브리아 계열이 전쟁을 일으킨걸 틈타 리주토 패밀리를 세우고 80년대에는 몬트리올을 장악했다. 이후 뉴욕의 조직들과 협력하면서 몬트리올 뒷세계의 갱들을 중재해 암흑가의 거물로 존경 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리주토 패밀리가 전쟁에 휘말리자 은퇴 상태였던 그도 저격을 당해 사망했다.
비토 리주토리주토 패밀리의 두목. 니콜로 리주토의 아들이다. 1981년 보난노 패밀리 내부 항쟁 과정에서 조셉 마시노가 주축이 된 3명의 지부장 암살에 직접 참여함.[434] 비토 리주토는 2004년에 정부 증인이 된 보난노 패밀리 두목 조셉 마시노의 증언으로 생애 처음 기소되어 2006년 미국으로 송환된 후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리주토 패밀리는 항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비토 리주토의 아들과 아버지가 각각 2009년과 2010년에 살해당한다. 비토 리주토는 2012년에 가석방되고 2013년에 간암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2017년 배드 블러드라는 캐나다 드라마가 비토 리주토와 몬트리올 마피아의 항쟁, 그리고 캐나다 측과 가까운 뉴욕 보난노 패밀리의 이야기를 다뤘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하며 실화를 기반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로 창작한 내용이다.
오노라타 소치에타호주에서 마피아 활동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멜버른이다.[435] 그 중 오노라타 소치에타(영어로 Honoured Society)라는 은드랑게타 계열의 집단이 호주의 모든 범죄조직을 통틀어 단연 선두에 있다.[436] 1960년대 중반 미국과 호주를 통하는 항공노선이 생기자 미국 마피아와 관계를 맺어(특히 시카고 마피아) 1970년대 중반까지 두 대륙 사이의 효과적인 마약, 불법 야생동물 밀수 루트를 개발했다.[437] 호주 드라마 Underbelly가[438] 바로 이 조직의 항쟁을 다뤘다. 2000년에는 아버지 리보리오 벤베누토(Liborio Benvenuto)의 뒤를 이은 조직의 지도자 프랭크 벤베누토(Frank Benvenuto)가 살해되어 한동안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1. 파생

최근 서로 비슷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간의 인맥을 통해 조직적으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편의를 봐준다는 것이 공공연히 드러나자, 이들의 행태가 범죄조직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이다. 러시아와 구 소련권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아래의 엘비스 프레슬리의 '멤피스 마피아'처럼 범죄와 관련이 없는 중립적인 의미의 인적 커넥션, 즉 구성원 간의 관계가 매우 끈끈한 특수 집단을 마피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로 지칭하는 사례가 많다.

대부분은 관피아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와 관련되어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고.
  • 모피아: 재정기획부(Ministry Of Finance) 약칭 MOF 에 ia를 붙여 MOFia라고 함.
  • 세피아: 세금과 마피아의 합성어.
  • 소피아: 소방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 관피아: 정부기관와 마피아의 합성어.
  • 법피아: 사법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 축피아: 축구협회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 칼피아: 대한항공 (KAL, KE) 고위급 인사와 마피아의 합성어. 다른 관피아와는 달리 대한항공이 민영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플래그 캐리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데다 대한항공 출신 고위급 인사들 중 몇몇이 국토교통부에 재취업하여 유착이 심해졌다.
  • 해피아: 해경, 해양수산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 핵피아, 원피아: 원자력 발전소 관련 관료(한국수력원자력)와 마피아의 합성어.
  • 철피아: 철도, 정확히는 철도공단과 마피아의 합성어. 철도계는 그 특성상 철도공단도 민간 철도기업도 경영진이 모두 철도고나 철도대 출신이라 철도 건설 때마다 학연에 의한 부정입찰이 성행했다. 철피아의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바로 경부고속철 2단계 구간의 부실공사이다. 2014년에 철도공단의 어마어마한 비리 실태가 감사원에 의해 밝혀졌으며, 책임자 처벌을 위한 검찰 조사 도중 전직 철도공단 이사장이 한강에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 청피아: 레진코믹스 집단 환불 및 탈퇴 사태로 인해 드러난 청강대(출신의 중견이상 웹툰작가)와 마피아 합성어. 이미 위키계에는 청피아로 청위병이 있었다 하드라!

이 아래로는 범죄와는 큰 관련이 없다.

12.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물론 픽션이니만큼 미화된 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 범죄는 절대 매력적이지 않다. 마피아 영화의 걸작 대부만 봐도 마피아를 품위 있게 묘사한 이유가 생명에 위협을 느껴서였음을 생각해 보자. 이 점을 부각하여 마피아의 냉혈함과 무자비함을 소재로 삼은 것 또한 많다. 헝가리에서는 미스 마피아 대회까지 열리고 있다(...). 우승소감이 가관. 그 외에는 마피아를 모티브로 한 포켓몬스터니로우와 그 진화형 돈크로우가 있다.

주요 이미지 아이템은 중절모+목도리+정장+코트, 그리고 톰슨 기관단총(특히 포어그립과 드럼 탄창이 붙은 M1928 모델)과 루파라(소드 오프 샷건). 대체로 마피아의 전성기인 금주법 시기의 이미지. 다만 조직별로 선호하는 무기가 달라 코사 노스트라는 루파라, 카모라는 단검을 선호했다고 한다.[440] 이는 현대화된 코스 노스트라와 전통을 유지한 카모라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암살할 때는 암살 대상자를 죽이기 전에 "(암살 지시자 이름)가 안부를 전했다, ~ sends his regards 혹은 간단하게 ~ Say Hello"라고 한다. 대부 등의 마피아를 다룬 창작물들은 물론 영화 인터내셔널에서도 만악의 근원인 거대 은행 총재를 암살하는 장면에서 이탈리아 킬러가 이 말을 남겼다. lannister sends his regards

오죽하면 잡졸도 마피아를 모티브로 한다.

12.1. 마피아를 비중 있게 다룬 작품

  • Who Killed Captain Alex - 아프리카의 마피아 문제를 유머스럽게 표현했다. 우간다의 첫 액션영화로 유명하다.
  • Milano calibro 9
  • 91Days
  •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
  • 갬비노 패밀리 - 하워드 블럼의 논픽션 소설. FBI의 정예 구성원들과 뉴욕 5대 패밀리 중 가장 강력하다는 감비노 패밀리의 대결을 그렸다. 미드나 만화처럼 멋진 이미지 없이 여론, 내부 배신자, 끝없는 추적에 시달리는 FBI 요원들의 행보와 그들의 활약이 포인트.
  • 건그레이브
  • 건슬링거 걸 - 5공화국파로 대표되는 마피아아 테러세력과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작중 큰 떡밥인 클루체 사건 또한 마피아가 이탈리아 검사를 살해한 팔코네 사건에서 따왔다.
  • 건즈 고어 카놀리 - 좀비 사태가 터진 금주법 시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 고르고 13
  • 고모라 -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논픽션 르포 소설이자 소설을 바탕으로 마테오 가로네가 만든 영화로 나폴리 출신의 사비아노가 목숨을 걸고 나폴리 범죄조직인 카모라를 파헤쳤다. 마피아 두목들이 실명으로 나오고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였고 때문에 사비아노는 카모라에 의해 척살령이 내려져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약간은 낭만 및 사나이다움으로 포장된 마피아의 거품을 싹 걷어내고 철저하게 마피아의 현실을 보여준다. 마테오 가로네에 의해 2007년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으로 나폴리에서 카모라때문에 도둑촬영하고 그 지역출신의 비전문 배우들을 적극 기용하면서 2차대전 이 후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을 계승하는 영화라는 평이다. 전혀 드라마틱한 구성이 아니라 대부같은 기대를 하고 보면 자칫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기용된 비전문 배우중 일부가 카모라와 실제 연관되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 대부(소설), 마지막 대부, 오메르타 - 마리오 푸조의 마피아 관련 소설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리오 푸조의 유작이지만 그의 딸 등이 완성한 '패밀리'의 경우 중세 시대가 바탕이라 마피아 관련 작품에 넣기는 좀 애매하다. 중세판 파쿠르 게임에 넣어야 될지도?
  • 더 보스 : 라 코사 노스트라 - 국산 게임이다.
  • 로드 투 퍼디션 - 1920년 대공황 시대 시카고에 위치한 아일랜드 마피아에 다루고 있다.
  • 레퀴엠 포 더 팬텀
  • 마피아(비디오 게임), 마피아 2, 마피아 3 - 2K 체코(전. 일루전 소프트웍스)가 만든 1930~50년대 당시 마피아들의 삶을 소재로 한 3인칭 액션 게임.
  • 마피아-미국 조직범죄의 100년 역사 - 안혁(우리나라 사람이다!) 씨가 정리하여 쓴 마피아 역사책. 주로 미국 마피아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또한 "1957 애팔러친 회합", "카스텔람마레 항쟁"같이 유명하고 규모가 큰 사건들은 따로 분류해서 써놓았다.
  • 미드나잇 크루
  • 밀러스 크로싱
  • 배트맨: 롱 할로윈
  • 보드워크 엠파이어
  • 사형집행인(킬러) 시리즈 (원제 "The Executioner") - 돈 펜들턴이 쓴 먼치킨 주인공의 활약 이야기. 원래 펜들턴이 쓴 것은 마피아와의 항쟁을 다룬 33권 분량밖에 없지만, 그의 사후 유지를 이어받은(혹은 저작권을 돈 주고 산) 다른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이후 시리즈(용병작전이라든지)가 계속 나온다. 여기서는 '마피아 항쟁' 관련 책들만 추천한다. 마피아에게 걸려들어 집안이 풍비박산난 주인공이 월남전 참전 경험을 살려서 마피아를 쳐바른다는 내용. 액션씬과 마피아들의 사업 구조 및 마피아로서의 인물 됨됨이는 볼 만 하다. 하지만 마피아들이 너무 '항쟁' 에만 골몰하는 것이 무슨 용병집단처럼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인물 됨됨이의 경우, 해당 에피소드에서 마피아의 피해자나 관계자들이 손을 씻고 각자 정리를 하는 대목에서 마피아도 인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미화는 하지 않는다.)
  • 소프라노스
  • 스카페이스[441]
  • 시티헌터
  • 아르카나 파밀리아
  • 언터처블
  • 오메르타: 시티 오브 갱스터즈
  • 이터널시티: 적 몬스터로 마피아가 등장한다. 종류는 마르티노 家, 모데나 家, 04년 카페촌 마피아가 있다.
  • 조폭연대기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사우스웰의 자료조사집. 제목처럼 마피아 외에 야쿠자, 삼합회, 기타 해외의 범죄조직들도 다루기 때문에 분량이 살짝 적은 건 사실이지만, 핵심 부분들은 다 짚고 있다. 또한 위의 책들과 달리 사진들이 많이 추가되어 있으며 여러 일화들과 음모론적 설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가 음모론 등을 조사하다 보니 자료가 꽤 많이 모인 덕분인 듯. 단 이 작가는 음모론 관련 저서를 많이 발간하고 음모론에 심취한 것으로 보이기에 세부적인 내용에선 오류나 과장이 있을 수 있다. 대학도서관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 존 윅: 리로드 - 카모라가 등장하며, 두목이던 아버지에게 조직을 물려받아 평의회의 12인에 속하게 된 누나 지아나에게서 조직을 뺏기 위해 동생인 산티노 디안토니오[442]가 존 윅에게 암살의뢰를 시키는 것과 그 후에 발생한 사건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다. 참고로 1편은 레드 마피아와의 대결이었다.
  • 좋은 친구들
  • 카지노
  • 도니 브래스코
  • 아이리시맨
  •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 황금의 바람
  • 카 2[443]
  • 카우보이 비밥
  • 클릭! 마피아 -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이다.
  • 팀 포트리스 2 - 헤비의 마피아 장식 세트: 토미슬라프, 가족 사업, 퇴거 통보, 두목의 뚜껑/스파이의 마피아 장식 세트 : 집행자 고인, 재력가 상향, 코사 노스트라의 모자, 정식 일원이 있다. 스카웃은 삼합회 세트가 있다.
  • 팬텀 오브 인페르노(레퀴엠 포 더 팬텀의 원작 게임)
  •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 칼 일라이어스: 시즌 1 때까지만 해도 5대 패밀리가 있었으나 에피소드 19에서 가을 낙엽 쓸듯 쓸려나갔다…
  • 펠트(Homestuck)
  • 프렌치 커넥션 - 마피아의 마약 밀수루트인 프렌치 커넥션을 이름으로한 영화. 진 해크먼 주연.
  • GTA 시리즈
    • GTA 3 - 게임 초반에 주인공 클로드와 엮이는 레온 패밀리(Leone Family)가 이탈리아계 마피아다. 이후 주인공에 의해 두목 살바토레 레온은 살해되고 조직은 주인공을 적대한다. 후속작인 산 안드레아스, 리버티 시티 스토리즈 등에도 등장.
    • GTA 리버티 시티 스토리즈 - 애초에 주인공 토니 시프리아니부터 마피아 조직원이다. 3에서 나온 레온 패밀리 외에도 포렐리 패밀리(Forelli Family), 신다코 패밀리(Sindacco Family)가 등장한다.
    • GTA 4 - 리버티 시티가 뉴욕을 패러디한 만큼 5대 패밀리가 이름을 바꿔서 등장한다. 각각 감베티 패밀리(Gambetti Family, 감비노), 파바노 패밀리(Pavano Family, 제노비스), 메시나 패밀리(Messina Family, 보난노), 루피셀라 패밀리(Lupisella Family, 루케시), 안첼로티 패밀리(Ancelotti Family, 콜롬보)가 있으며 협의기관인 평의회(Commission)가 있는 것도 똑같다. 여담이지만 이 다섯 패밀리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패밀리는 단연 안첼로티 패밀리. 수많은 카포레짐부터 부두목까지 전원 다 니코 벨릭의 손에 끔살당했다.
  • My Little Pony: Friendship is Magic - 애플 카르텔
  • Mafia City - That's how mafia works
  • -마피아- 스타크래프트 2 유즈맵, 특이하게 삼합회, 이교도 등 여러 세력이 존재한다.

12.2.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마피아 조직

12.3. 마피아 관련 설정의 캐릭터


[1] 시칠리아 마피아를 '코사 노스트라' 미국 마피아를 '라 코사 노스트라'라고 구분해서 지칭하는 것이 명확하게 규정된 건 아니고 실생활에서는 혼용되는 게 사실이지만, 미국 수사기관 FBI에서 둘의 용어정리를 명확히 하고 있기에 나무위키의 마피아 문서에서도 둘을 구분했다.[2] 이를 피조(pizzo)라 하는데 시칠리아에서만 연 16억 유로에 달할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요즘은 피조 안내기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3] 예컨대 어떤 돼지고기 도매업자가 상인들에게 돼지고기를 팔고 싶은데 그는 소비세를 비롯해서 각종 세금과 비용을 아끼고 싶다. 그래서 소매상인들에게 밀매를 하고 싶으나 상인들 중에 어떤 이상한 놈이 있을 지도 모르고 또 상인들 입장에서도 돼지고기가 상했거나 나쁜 물건을 주고 사기를 칠 수도 있다. 이런 입장에서 중간에 마피아에게 피조를 주고 중재를 구한다. 마피아는 서로의 신용을 보증하고 어떠한 놈이 사기를 치면 즉각 찾아가 폭력으로 응징한다. 그러니 돼지고기 도매업자와 소매상인 모두 안심하고 안전하게 밀매거래를 진행한다. 비록 피조는 좀 주지만 그보다 더 큰 세금을 아낄 수 있으니 모두가 만족한다. 이러한 마피아의 어둠의 서비스는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를 뿌리뽑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됐다.[4] 영화 대부의 주요 공간적 배경도 미국과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후속작에 쿠바와 바티칸이 등장한다.[5]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다. FBI 공식 홈페이지에도 간략하게 카모라 조직을 나폴리 마피아, 은드랑게타 조직을 칼라브리아 마피아라고 서술해놓았다. 물론 그 말을 듣는 본인들은 싫어하겠지만. 시칠리아 출신이 아닌 이탈리아 조직폭력배들은 자신들이 어느 지방의 '마피아'라고 불리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6] 이 점은 김두한 같은 우리나라 조폭들이 항일 영웅 취급받은 것과 상통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돈만 되면 일본인 한국인 가리지 않았고 폭력을 일삼았다고 하지만.[7] 원래 코르시카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번갈아가며 점령당해 민족, 언어, 문화 등 정체성 면에서 프랑스 본토와 상당히 구별되었고, (코르시카 출신의) 나폴레옹 황제 이전까지 오랫동안 차별받고 학대당한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8] 호주의 이탈리아계 범죄조직은 '오노라타 소치에타(L'Onorata Societa, "The Honoured Society", "명예로운 사회")'라고 부른다.[9] 이는 마피아가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암흑가를 제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 세계로 배급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역할이 컸다. 다만, 마피아 영화의 바이블인 대부 1편의 경우 모종의 사정으로 마피아, 라 코사 노스트라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2편과 3편에는 등장한다.[10] 아일랜드계 마피아나 유대계 마피아는 하나의 조직이 아니고 특정 혈통으로 이루어진 범죄조직을 전반적으로 일컫는 단어이다. 반면 '멕시칸 마피아'는 고도화된 하나의 범죄조직 이름이다. 이 조직은 1957년 교도소에서 결성되어 350~450명의 정규 조직원과 990명가량의 준 구성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캘리포니아 교도소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갱단으로 평가받고 있다.[11] 국산 게임인 더 보스 : 라 코사 노스트라가 이 사실을 제대로 고증했다.[12] 대부 2편의 등장인물 파누치가 설정상 검은 손 조직의 일원이며 실존 마피아 두목 살바토레 마란자노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마란잘라의 부하이다. 참고로 마란잘라는 작중 언급만 되고 등장은 하지 않는다.[13] 검은 손 갈취 사업은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암살 집단인 다크 브라더후드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크 브라더후드도 암살 대상자에게 검은 손이 그려져있고 아래에 '우리는 알고 있다(We know)'라고 쓰여진 종이를 배달하기 때문.[14] 마피아는 같은 이탈리아계 조직폭력배끼리도 항쟁을 했다. 특히 뉴욕 시에서는 시칠리아 출신의 모렐로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의 전신)이 나폴리 출신의 카모라와 세력 다툼을 벌이는 마피아-카모라 항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약 3년간 이어진 항쟁의 결과로 카모라가 사법당국의 집중적인 수사를 받은 뒤 잔존 조직원들은 시칠리아 마피아(모렐로 패밀리)에 들어가면서 미국의 카모라 세력은 자연스레 소멸된다. 만약 이 항쟁에서 카모라가 승리했다면 미국 암흑가의 주도권은 나폴리 출신이 주축이 된 카모라가 잡았을 것이고 훗날 전 세계로 배급되는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마피아'가 아닌 '카모라'라는 단어가 범죄조직을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15] 루치아노는 마세리아와의 식사 자리에서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사이 비토 제노비스, 앨버트 아나스타시아, 조 아도니스(Joe Adonis), 벅시 시겔이 들어와 마세리아를 살해했다. 이 사건은 대부 1편의 식당 화장실 암살 장면의 영감을 제공했다.[16]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마세리아의 최후.[17]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라 코사 노스트라 창설 장면. 상석에 앉은 이가 마란자노, 칼을 들고 구성원들의 손을 따며 의식을 치르는 이가 찰스 루치아노.[18] 이때는 암살자들이 마란자노의 경호원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세무사찰 공무원으로 위장해서 접근했다.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마란자노의 최후.[19] 단, 정규 조직원은 이탈리아 혈통만 가능.[20] 초창기 위원회의 표결권은 뉴욕 5대 패밀리와 시카고 아웃핏, 버팔로 패밀리의 두목들이 가지고 있었고, 다른 도시의 패밀리들은 이들의 결정을 따랐다. 미국 마피아의 위원회는 역으로 시칠리아 마피아에 수출되어 그들이 '큐폴라(Cupola)'라는 기구를 만드는데 영향을 준다.[21] 뉴욕의 5개 패밀리, 시카고,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버팔로, 뉴잉글랜드 지역, 뉴저지 주, 뉴올리언스, 플로리다 주 템파 시, 클리블랜드,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로스앤젤레스, 덴버, 펜실베이니아 주 북부,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밀워키, 뉴욕 주 로체스터 시, 산호세. 21세기에는 6~7개 패밀리가 다른 지역 패밀리에 흡수되었거나 계보가 끊겼다고 평가받는다.[22] 쿠바를 개척한 이유는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이어지는 프렌치 커넥션이 점차 노출되기 시작한지라 이것을 감추기 위해 쿠바를 경유지로 택한 것이다. 게다가 당시 쿠바는 미국의 기업들이 상당수 진출해 있었고, 그 상황은 마피아들에게 있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았다. 실제로 1950년 경에 도박사업은 연 1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마이어 랜스키가 30여 년에 걸쳐 계획한 작전의 일부이기도 했다.[23] 대부 2편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24] 한 순경에 의해 우연히 알려진 게 아니라 당시 비토 제노비스에 의해 밀려나고 은퇴한 루치아노 패밀리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가 앙심을 품고 회합의 정보를 당국에 흘렸다는 설이 있다. 이 당시 코스텔로는 참석자 명단에 있었지만 동료들에게 통보도 없이 불참했다.[25] 사실 마피아나 야쿠자같은 거대 범죄조직들이 자기들은 마약 거래는 안 한다고 주장하는 건 다 똑같다. 자기들 스스로는 '우리는 역사와 전통과 품격이 있는 협객(또는 자경조직)이라서 사회를 좀먹는 마약 거래같은 짓은 안 합니다' 라고 주장하지만 당연히 거짓말이고, 단순한 이권이나 갈취, 자기들끼리의 분쟁 정도는 해당 국가와 지역의 상황에 따라 적당한 선에서 방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국가의 근간을 위협할수도 있는 마약 거래는 정상적인 국가라면 절대로 방치하거나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 범죄조직일수록 공권력이나 사회의 시선에 노출되는 부분도 많은 만큼 직접 마약을 거래하는 것이 드러나면 노출된 부분 부터 차근차근 박살나게 되는 것. 결국 거대 범죄조직이 자기들은 마약거래는 안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열에 아홉은 '공권력의 집중적인 제제를 받게 되는 것이 무서워서 못 합니다' 라는 의미라는 것.(나머지 열에 하나는 '이웃 조직과 항쟁에서 져서 마약 거래의 이권을 뺐겼습니다. 우리 사업 영역이 아니라서 못 합니다' 라는 듯이다. 범죄 사회의 영역분쟁은 대단히 치열하다.) 미국 마피아의 공식 규율에서 조직원이 마약을 직접 거래하다 발각되면 처형까지 한다는 것 역시, 마약 사범에 대한 처벌이 철저하고 엄격한 미국 사회에서 정식 조직원이 마약 거래에 관여했다 적발될 경우 조직 자체가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말 마약으로 돈 벌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경찰등의 주목을 덜 받는 잔챙이 동네 양아치들에게 직접적인 딜러 역할을 떠넘기고 2차 수익을 얻는 것. 이와 반대로 거대 범죄조직 자체가 마약을 취급하는 남미나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들을 생각해 보자. 마약 관련 범죄를 제대로 엄단하지 못할만큼 공권력이 취약한 경우에만 거대 범죄조직이 직접 마약을 취급할 수 있고, 역으로 공권력이 취약한 상태라면 거대 범죄조직은 절대로 마약과 같이 엄청난 이익이 남는 영역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26] 후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루비가 시카고 두목 샘 잔카나의 하수인이었다는, 전 뉴욕 마피아 두목 조셉 보난노 아들의 아주 신뢰성 있는 증언이 있다.[27] 마피아 이외에 FBI, CIA, 닉슨, 존 에드거 후버등이 후보에 있었다. 모두가 대통령 암살에 가담한 정황증거가 있고 암살로 이득을 본 집단이나 개인들이다.[28] 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사학자 데이빗 E. 카이저(David E. Kaiser)는 본인의 저서 Road to Dallas에서 암살 배후로 마피아 개입설을 채택했다.[29] 케네디 암살을 어느 한 집단에서 독자적으로 진행했다기 보다는 마피아와 케네디에 불만있던 연방기관이(주로 국가안보 담당 부서) 합세해서 암살 했다는 추측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30] 소프라노스에서 치매에 걸린 원로 마피아 코라도 소프라노가 사고를 치고 체포되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샘 잔카나를 거론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수사관이 주인공 토니의 집에 찾아와서 케네디 암살과 관련 있는지 조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토니의 부인이 남편은 1963년에 3살이었다고 나가라고 한다.[31] 샘 잔카나는 케네디와 얽힌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사적으로 마릴린 먼로라는 애인을 공유하던 사이였고 이것을 불쾌해했다고 한다. 케네디와 잔카나가 한 여자를 사귀었다는 얘기는 영화 아이리시맨에서도 언급된다.[32] 카를로스 마셀로는 1961년 당시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동생이자 법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F. 케네디가 FBI 요원을 동원해 자택 근처를 산책하고 있던 자신을 납치하여 과테말라로 강제 추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용기를 이용해 미국에 재입국했다. 마셀로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던 날 불법 입국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끝내 무죄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도 후에 암살당하는데 이 또한 마피아의 소행이라는 음모론이 있다.[33] 수감 중이던 산토를 잭 루비가 면회했었다. 말단 조직원이 패밀리의 두목을 면회하는 것이 평범한 사례는 아니다. 또한 트리피칸테가 사망하기 직전 본인이 대통령 암살에 관여했다는 고백을 한 바 있다.[34] 자세한 건 문서 하단 '마피아 조직 특징 및 기타 사항' 항목의 '그레고리 스카르파' 참고.[35] 다른 두 다리는 당연히 경영진과 자금이다.[36] 물론 폭력배와 징역은 한 몸이라는 전 야마구치구미 두목 다케나카 마사히사의 말처럼, 찰스 루치아노알 카포네같은 전성기 시절의 마피아 두목들도 시대적 요구, 정치 상황의 급변 등에 따라 아예 수감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카를로 감비노, 앤서니 아카르도 같이 말단 조직원에서 시작해서 두목으로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수감되지 않은 특별한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37] 미국의 사법체계는 주 정부의 법과 사법체계가 있고, 연방 정부의 법이 따로 있다. 마피아 정도되는 중대한 범죄조직의 경우 연방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는데, 때문에 NYPD같은 지역 경찰이나 지방 법정은 매수하기 쉬울지 몰라도 연방정부 차원에서의 대응은 마피아도 대응하기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38] 페르시코와 고티는 다른 3개 패밀리의 두목들을 설득하고자 애를 썼지만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39] 사설을 덧붙이자면 당시 줄리아니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엄중한 경호를 받고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마피아의 조직력으로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면 암살 자체는 성공했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문제는 그다음의 일인데 당시 줄리아니는 언론에 의해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마피아 재판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집중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대 흐름을 읽어보면 연방 검사 암살은 너무 무모한 작전이었다. 미국 마피아는 이미 1930년대 찰스 루치아노의 혜안으로 보다 원활한 사업을 위해서 정부와의 강경 투쟁 노선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혜를 얻은 바 있다. 후배 마피아 조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당시 결정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한 것. 훗날 줄리아니는 단 한 표 차이로 자신이 살게 되었다는 농담을 했다.[40] 유튜브에 청문회 영상이 있다. 과거에도 마피아 두목급 간부가 미국 상원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사례는 몇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적극적인 방어를 한 반면, 제대로 된 내부 증언을 하러 나온 건 1993년이 처음이다.[41] 이탈리아는 최고사법회의(Consiglio Superiore della Magistratura) 아래에 법원과 검찰이 병립되어 있는 구조이며, 양측에서 법조 인력을 교류하기 때문에 판사가 검사(수사 판사)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 경우도 흔히 있다.[42] 1994년에 정부 증인이 된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 마우리지오 아볼라는 1992년에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가 시칠리아로 파견한 미국 마피아 조직원을 "나이는 40대쯤 되어 보였고, 갈색 머리에 검은 눈을 가졌으며 건장한 체격에 우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그 사람과의 만남 직후 주위 동료들이 아볼라에게 "오늘 너는 정말 중요한 사람을 만났다."라는 말을 했었다고 밝혔다. 그 이름 모를 미국 마피아가 바로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폭탄과 원격 조종 기폭장치를 가지고 암살 훈련을 시켰으며 최종적으로 팔코네 암살에도 직접 관여했다고 한다.[43] 이후 체포된 범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풀리지 신부는 피살되기 직전 자기 앞에 나타난 범인들에게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소"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44] 참고로 발두치오 디마지오는 이후 다른 내부고발자들과 합세하여 개인적인 벤데타를 하려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발두치오 디마지오에 따르면 살바토레 리나가 명확히 "정치인은 마피아가 될 수 없으며 마피아는 정치를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줄리오 안드레오티가 밀접한 커넥션 관계였지만 마피아의 조직원이었다는 과장된 주장을 부인하는 명확한 증거이다.[45] 살바토레 리마는 '안드레오티의 시칠리아 총독'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기독교민주당의 핵심 인물이다.[46] 위원회 자체는 1963년부터 열렸다.1994년에 열린 4차 위원회는 줄리오 안드레오티를 조사하는데도 큰 기여를 한다.[47] 단 그는 코를레오네시가 아니라 그들의 동맹이었던 다른 유명한 마피아 가문인 데나로 패밀리 출신이다.[48] 이탈리아 최대의 범죄조직 자리는 나폴리 카모라에 내줬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이지만, 여전히 코사 노스트라가 이탈리아의 모든 범죄조직을 통틀어 2번째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추정하는 전문가들도 있다.(칼라브리아의 은드랑게타를 2번째로 보는 시각도 있다.)[49] 실제로 본토 세력들은 시칠리아 마피아에 비해 세력이 약했고, 정부 인사를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일에도 소극적이었다.[50] 마피아 수입에 대한 보도들은 대부분 제대로 조사가 힘든 이런 출처 불분명한 조사에 의거해 보도된다. 이는 지나치게 마피아의 위력을 과대포장한다는 위험성을 불러일으킨다.[51] 밀라노의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 대학교에서 설립한 범죄연구단체[52] 바다 건너 일본 야쿠자 조직의 주요 인사들이 대체로 이런 경향을 보인다.[53] 비교적 최근인 2008년 ‘America's Most Wanted’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지명수배가 된 미국 마피아 조직원으로 감비노 패밀리 소속 니콜라스 코로조가 있다. 그는 4개월간 도피생활을 이어가다 물밑에서 연방정부와 협상을 거친 끝에 자수하였고 2019년에 출소했다.[54] 중남미 마약 카르텔 조직의 주요 인사들이 대체로 이런 경향을 보인다.[55] 단, 2015년 미 경제 전문지 포춘지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의 1년 수익을 66억 달러로 조사했는데 일본에선 이마저도 과장이라는 의견이 있기도 했다. 어쨌든 이 수치는 러시아 마피아 솔른쳅스카야 브라트바의 85억 달러에 이어 2위에 해당하며 이탈리아의 카모라는 49억 달러, 은드랑게타는 45억 달러였다. 오히려 코사 노스트라와 라 코사 노스트라는 순위권에 없었다. 즉, 이러한 음지의 사업은 일일이 통계를 내기 어렵고 어림잡아 추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통계 작성 주체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참고.(수사기관인 FBI와 경제 전문지인 포춘은 당연히 시각이 다를 것이기 때문.)[56] 본래 링크 속 FBI 홈페이지에서 미국인 조직원 3000명에 이탈리아 출신 조직원 25000명, 총 28000명이 미국에서 활동한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이탈리아 출신을 집계한 서술은 어느 순간 삭제되었다. 영문 위키를 비롯해서 여러 자료에서는 미국 조직원의 숫자에 대해 정규 조직원 수십~수백 명 준 구성원 수백~수천 명 규모로 보고 있다. 2만 5천이란 수치는 미국 조직원이 아닌 이탈리아 본토 마피아까지 포함된 수치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57] FBI 조직범죄 전담 요원 리처드 프랜켈(Richard Frankel)은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 조직 얘기를 하지만 그들은 이탈리아 마피아에 견줄 수 없다. 물론 러시아 조직은 그들의 조국에서 강력하다, 하지만 마피아도 (이탈리아에서) 강력하지 않은가?(Sure the Russians are powerful in their home country, but what mob isn’t?)”라고 재치 있게 답하기도 했다.[58] 2007년 배경의 소프라노스 마지막 시즌을 보면, 시리즈 내내 주인공을 따라붙던 FBI의 마피아 전담 요원이 대테러 부서로 발령받아 파키스탄에 다녀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 요원은 주인공에게 부서 변경을 알리고 안부 인사를 하는데, 테러 용의점이 있는 수상한 인물을 신고해주면 혹시 있을지 모를 미래의 재판에 유리한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한다. 후에 주인공은 자신이 관리하는 클럽에 드나들며 불법 신용 카드 복제를 하던 중동 출신 남자들을 신고하는데 그들은 알 카에다의 자금책으로 드러난다.[59] 더 와이어의 한 에피소드를 보면 볼티모어 경찰청 소속 형사가 친구인 FBI 요원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후 FBI 내 마약 전담팀이 모조리 대테러 부서로 이동했다는 요원의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또한 친구인 FBI 요원이 마약 사건 협조를 구하는 볼티모어 시경 측에 말하길, 9.11 테러 이후 내부 규정이 바뀌어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나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더 넓게 봐주어 레드 마피아 같은 특급 조직범죄단(Priority Organized Crime)이 연루된 경우가 아닌 이상, FBI에서는 마약 사건을 맡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한마디로 FBI는 테러에 집중하기 위해서 거물급 아니면 조폭 수사를 하지 말라는 방침.) 이에 볼티모어 형사는 우리 도시엔 콜롬비아 조직도, 마피아도 없다며 당황해한다. 실제로 볼티모어에는 1920년대부터 항구를 기반으로 활동한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지부가 있었지만, 구성원들의 사망과 은퇴로 인해 1990년대를 끝으로 계보가 끊겼다. 2000년대 배경의 더 와이어에서 묘사하기를, 라 코사 노스트라 패밀리가 아닌 어느 동유럽계 범죄조직이 볼티모어 항을 장악하고 있다는 설정인데, 제작진이 이러한 현실을 알고 연출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고증이 꽤 잘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60] 물론 창작물이긴 하지만 더 와이어볼티모어의 동유럽계 범죄조직이 본인들의 영향력으로 미국으로 가는 화물 밀수품 중 테러와 연관될만한 물건의 정보를 FBI 내 대테러 요원에게 주고, 그 대가로 요원은 FBI 내부 수사 정보를 범죄조직에 흘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애국심에 기반한 국가 안보를 위해서나 부패한 수사관이 관료제 사회에서 승진하기 위한 높은 실적을 쌓기 위해서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피아 수사가 한창이었던 1980~1990년대와 달리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더 높아진 21세기에는 연방 정부에서 공식적이든 수사관 개인의 일탈이든 범죄조직과 손잡는 일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말.[61] 21세기의 마피아들은 일반 시민들과 최대한 비슷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평상복을 선호한다. 물론 재판•결혼식•장례식 등의 행사같이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는 당연히 정장을 입고 나타난다. 파일:Joey1.jpg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 조셉 멀리노의 평상시 옷차림(위)과 재판 출석 시 옷차림.(아래)[62] 과거 미국의 주요 도시 중에 대외적으로 사교 클럽(Social Club)으로 위장한 마피아 아지트가 자리 잡은 동네는 그곳을 드나드는 마피아 조직원들이 떠들썩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편이었다. 21세기 마피아 아지트의 분위기는 대체로 소란을 자제하는 편.[63] 수사기관이 조직 수뇌부를 파악하는 건 전 세계 모든 범죄조직의 공통된 사실이다. 미국 마피아에 비하면 영향력이 아주 적은 한국의 범죄조직도 수사기관에서 관리하는 리스트가 있으며 변화 동향을 파악한다. 이건 마피아의 전성기인 금주법 시대 때도 다를 바 없던 사실이다. 당시의 공공의 적 리스트를 봐도 찰스 루치아노, 알 카포네, 프랭크 코스텔로가 등재돼 있고 대부 1편이 1947년 배경인데 비토 콜레오네가 버젓이 범죄조직 두목이라고 신문에 나온다. 한국과의 차이가 있다면 미국 마피아는 수뇌부의 동향 같은 게 일간 신문에 오르내린다. 언론 입장에서 흥미로운 소재이고 돈이 되기 때문에 기사화하고 수사기관에서 정보를 준다, 심지어 실제 마피아와의 친분을 앞세워서 취재를 하고 웹사이트를 꾸미는 개인 언론인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제리 카피시(Jerry Capeci)다. 카피시는 소프라노스에도 본인 역으로 출연해서 TV 뉴스 쇼에서 뉴욕 마피아 패밀리의 현황 분석을 하는 장면의 패널로 나온다.[64] 이는 불법 거래액만 추정한 수치로, 제노비스 패밀리의 연간 전체 사업 규모가 5억 달러라는 얘기는 아니다. 범죄조직 사업 특성상 베일에 싸여있어 추정이 불가능한 사업 규모가 크고, 마피아쯤 되는 범죄조직은 합법 사업 비율이 아주 높기 때문.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1980년대 대통령 자문위원회에 제출된 조직범죄 보고서 같은 문서에 마피아의 전통적인 수입원인 고리대금이나 불법 도박, 매춘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언급되어 있지만, 마피아들이 합법적인 사업을 통해 수십억 달러(수조원)를 벌어들인다는 사실은 보고서 어디에도 없다고 꼬집었다. 미국 마피아의 합법 사업으로는 폐기물 처리업과 노조를 끼고 하는 건설업•운송업, 엔터테인먼트•흥행업, 식품•주류 도매업에 단순 자영업인 음식점•유흥업소•보석상•카페•미용실 같은 분야에 많이 진출해 있다. 또 주가 조작이나 기업의 인수•합병 관여, 횡령•배임•탈세 등 화이트칼라 범죄도 많이 관여한다.[65] 사실 마피아의 사업은 이렇다 할 게 없어서, 20세기 금주법 시대의 주류 밀매에서부터 2010년대의 인터넷 스포츠 도박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맞춰 적응해왔다. 전 감비노 패밀리 준 구성원 루이스 페란테가 밝히기를,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했을 때 자신이 만난 어느 마피아 조직원이 뉴욕 시의 한 카페에 앉아 노트북 한 대를 가지고 중남미 국가에서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를 직접 관리하는 자신의 부하들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주고받으며 그 사업체를 통해 웬만한 오프라인 불법 카지노 보다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고 한다. 미국 마피아들이 본격적으로 사이버 범죄에 가담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시점으로 확인된다.(대한민국의 조직폭력배들도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에 뛰어든 바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에 맞춰 돈 되는 건 다한다. 포르노 회사를 운영하며 AV를 제작하기도 하고, 뉴욕 마피아의 경우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 가에도 진작에 진출했다. FBI에서는 마피아의 금융 범죄를 마피아(Mob)와 주식(Stock)을 합쳐서 만든 ‘Mobstock’ 이란 용어로 부른다.[66] 준 구성원 까지 포함한 제노비스 패밀리의 역대 정부 증인 숫자는 9명인데, 감비노 패밀리의 경우 정규 조직원만 세면 9명이지만 준 구성원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19명이 증인이 되었다.[67]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가 밝힌 자신이 정부 측 증인이 된 이유는 두목 존 고티가 자신이 조언한 것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언론의 관심을 즐기고, 좁혀오는 수사기관의 수사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고티가 자신에게 혐의를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19건의 살인 사건을 증언하며 존 고티를 포함한 여러 미국 마피아 간부들을 투옥시키는데 기여했지만, 본인의 직속 부하들에 대해서는 증언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라바노는 재판이 끝난 후 짧은 수감생활을 끝으로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성형수술도 했지만, 1년도 안 돼 본인 스스로 박차고 나온다. 정부에 의해 영웅이 된 그는 그 후 각종 언론과 TV에 출연한다. 성형수술을 했음에도 얼굴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고, 공개적인 활동을 하는 것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냐는 질문에 "만약 마피아 측에서 암살조를 보내면 내가 모두 죽일 것이다. 그들은 실수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나를 찾는다면 뉴욕으로 갈 시체 가방이 줄지어 있을 것이다. 전혀 두렵지 않다.(They send a hit team down, I'll kill them. They better not miss, because even if they get me, there will still be a lot of body bags going back to New York. I'm not afraid.)"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2003년경에는 감비노 패밀리 측에서 새미 그라바노가 거주하는 애리조나 주로 2명의 암살조를 파견했었던 것을 FBI가 관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획이 실행되기 전인 2000년에 그라바노가 대규모 마약 사업 혐의로 재투옥되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는 17년을 복역하고 2017년에 출소했다. 출소 이후 인터뷰를 보면 자신은 마피아를 저버린 게 아니고 라 코사 노스트라를 망치며 자신을 배신한 존 고티를 저버린 것이라며 마피아는 자신의 유산이며 지금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했다.[68] 앤서니 카소는 새미 그라바노와는 달리 증언으로 인한 감형을 인정받지 못해, 마피아 세계에서도 제명당하고 지금까지도 종신형 복역 중이다.[69] 폭대법과 그 밖의 여러 요인으로 현대 일본 야쿠자한구레 조직들에 자신들의 일부 범죄 활동을 맡기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70] 1983년에 기밀이 해제된 한 보고서를 보면 두 집단은 윈-윈 구조로써 마피아들이 교도소 내에서 아리안 형제단의 보호를 받는 대신, 사회에 있는 아리안 형제단 조직원들에게 돈과 마약, 원조를 제공한다. 1990년대에는 양 집단의 최고 지도자들이 관계를 맺었다. 마피아 측에서 아리안 형제단에게 교도소 내 암살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으며, 교도소 내에서는 마피아 정규 조직원조차 아리안 형제단 지도자에게 존중을 표한다. 다만 교도소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다. 문서 하단 '마피아 조직 특징 및 기타 사항' 항목의 세스 페란티가 증언한 부분을 보면 아리안 형제단은 일절 등장하지 않기 때문. 아마 형제단의 본거지인 캘리포니아 쪽 교도소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한 듯하다.[71] 루소는 단기 자유형을 선고받은 후 2013년에 출소했다.[72] 물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마피아가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금주법 시기~1970년대까지다.[73] 형기를 채우고 석방된 뉴잉글랜드 지방의 거물급 마피아 조직원을 다룬 뉴스(영상)[74] 미 서부의 경우 문서 하단 ‘다른 도시의 마피아’ 문단의 로스앤젤레스 마피아 설명 참조. 텍사스 주로 대표되는 남부 지방도 마피아 불모지다. 문서 하단 댈러스 패밀리 설명 참조.[75] 알 파치노가 출연한 갱스터 영화 중 라 코사 노스트라를 다룬 영화와 다른 영화들을 비교하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76] 마피아 조직에서 두목(Official Boss)과 대행 두목(Acting Boss) 그리고 일선 두목(Front Boss•Street Boss)은 구분되는 개념이고 권한도 다르다. 이러한 구분 개념이 희박한 대다수 언론에서는 주로 셋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두목(Boss)이라고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보다 정확한 정보 제공자인 미국 연방 검사의 말을 전한 기사를 보면 프랭크 칼리의 신원을 '감비노 조직 부두목(Underboss of the Gambino organization.)'으로 특정한 걸 알 수 있다.[77] 프랭크 칼리는 시칠리아의 악명높은 마피아 가문인 인제렐로 가문의 여인과 혼인한, 미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대서양을 잇는 국제 범죄조직의 중심축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2008년 미국 연방 검사 조이 립톤(Joey Lipton)에 따르면 마피아 수사 중 한 이탈리아 본토 마피아 조직원의 대화를 도청했는데 그 조직원은 당시 감비노 지부장(Capo)을 맡고있던 프랭크 칼리를 묘사하기를, “그는 우리 친구다. 바다건너 저 쪽(뉴욕 시)에서 그는 절대적이다.” {"A friend of ours, he is everything over there. (in New York City")}라고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지하세계의 로열 패밀리.파일:119AF972-9A0A-482F-B502-67AC687FD7A9.jpg 뉴욕에서 회합을 가지는 프랭크 칼리(제일 왼쪽)와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들인 니콜로 만다라(Nicolo Mandala), 지아니 니치(Gianni Nicchi). 지아니 니치는 마테오 메시나 디네로의 뒤를 잇는 시칠리아 코사 노스트라의 2인자로 간주되는 인물 중 하나다.[78] 프랭크 칼리는 과거의 알 카포네, 존 고티로 대표되는, 화려하며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마피아 스타일과 다르게 조용히 몸을 낮추고 지하세계에서 암약하는 정통 마피아 단원이라는 평판이었다. 교도소 수감 경력도 2008년 FBI의 Operation Old Bridge 작전 때 감비노 카포레짐(지부장) 신분으로 선고받은 공갈, 갈취, 공모죄의 10개월이 전부였을정도.[79] 셀윈 랍(Selwyn Raab)이라는 마피아 전문가는 프랭크 칼리 피살 이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칼리는 평소에 눈에 띄는걸 경계해 “경호원을 두지않았고, 여행을 갈 때에도 폭력배 수행원들을 거느리지 않았던 인물이었다.”고 했다.(“he had no bodyguards around him, he didn’t travel with a retinue of goons,”) 또한 “역설적이게도 칼리는 마피아로부터는 안전했지만 괴짜로부터 안전하지는 못했다”고도 덧붙였다.(“That’s the irony here,” Raab said. “Cali was safe from the Mafia, but not safe from a screwball.”)[80] 토트 힐은 뉴욕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인데, 영화 대부의 촬영 장소로 쓰인 실제 비토 콜레오네의 저택이 소재한 지역으로, 칼리를 제외하고도 몇몇 유명 마피아들의 집이 소재했다. 알려진 경우만 전 감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칼리의 집과 0.5마일 거리다.), 전 보난노 패밀리 콘실리에리 앤서니 그라지아노의 집이 있다. 토트 힐 주민 퀴리토리(Curitore) 부부는 프랭크 칼리 피살 직후 인터뷰에서 "우리 동네에 마피아의 존재가 있어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러하기에) 상대적으로 스태튼 아일랜드의 다른 지역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단, 본인이 마피아에 속해 있지만 않다면."라고 얘기했다. ("We know there used to be a mob presence here, We thought this was one of the safer neighbourhoods on Staten Island. "I guess unless you're in the mafia,")[81] 악수를 하고 서로 안면이 있어보이는 이 대목때문에 사건초기 수사기관은 마피아 조직의 처형으로 보았다.[82] 전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있는 집 앞에서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건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했다.[83] Make America Great Again Forever[84] 흥미롭게도 셀윈 랍이라는 마피아 전문가는 자신이 직접 대화해본 몇몇 하급 마피아 조직원들은 대부분 공화당을 지지하며 마피아들은 세금과 이민자들을 싫어한다고도 밝혔다.(My only experience, when I spoke to a few low-level Mafia guys, is that they’re pretty conservative and vote Republican,” he said. But their political leanings have little in common with Comello’s apparent radical views: “You ask ’em why (they vote Republican), they don’t want taxes and they don’t like immigrants,” Raab says.)[85] 코멜로의 입장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어도 생각해야될것이 마피아들은 마피아대로 복수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나설 가능성이 매우 크다. 칼리의 경우 암흑가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었다는 평판이고, 미국 전국의 수감자중에는 마피아 정규 조직원들과 그에 관련된 준 구성원들이 매우 많다. 그들 중엔 어차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받은 자들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는 과거 마피아 측에서 교도소 갱단인 아리안 형제단에게 금액을 지불하고 교도소 내에서의 여러건의 살인계약을 맺은것을 수사기관에서 인지했다는 FBI 보고서도 기사화 된적 있었기 때문에 1급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면 평생을 교도소에서 경계하며 살거나, 아예 연방정부 차원에서 타인과 접촉이 불가능한 완전격리 교도소에 수감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벤데타가 무산 될 시 마피아 측에서 코멜로의 부모 등 가족을 벤데타의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족의 신변안전을 걱정하는 반응이 많다.[86] 2018년 10월 30일 미국 교도소에서 영화 디파티드 속 프랭크 코스텔로 캐릭터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1970~1990년대에 보스턴의 아일랜드계 갱단 ‘윈터 힐 갱’을 이끌며 지역 내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조직인 페트리아카 패밀리와 대립했던 전설적인 두목 제임스 벌저가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준 조직원 출신 포티오스 프레디 게아스에게 피살되었다. 과거 벌저는 마피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자신의 조직력에 대한 해결책으로 스스로 FBI의 정보원이 되어 마피아 측을 밀고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가해자 게아스는 그리스 혈통의 인물이라 마피아 정규 조직원(made member)은 되지 못하였지만 평소 밀고자를 극도로 혐오했고 감형을 조건으로 협력 증언을 하라는 연방정부의 제안도 거절하고(당시 게아스는 검사들에게 “밀고를 할 바에야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2003년에 제노비스 패밀리 상부의 지시를 받고 패밀리 간부였던 아돌프 브루노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복역중인 인물이다. 코멜로가 일반 교도소에 수용된다면 이런 일을 안당하리란 법이 없다.#[87] 전 감비노 패밀리 준 구성원 존 앨라이트는 2019년 GQ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프랭크 칼리 암살범이 유죄 선고를 받아 교도소에 수감되면 살해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앨라이트는 “그가 일반 교도소에 수용되면 사람들은 잠자는 거인(그동안 눈에 띄는 살인 등 폭력행위를 자제해온 미국 마피아)가 깨어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미국에 여전히 마피아가 존재한다는 것도 잘 알게 될 것이고.”라고 말했다. 같은 기사에서 만약 교도소 내 제임스 벌저 살해 사건이 명령되었다면 그 지시는 필시 뉴욕에서 왔을 것이며, 이 사건을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피아 관례(Mafia Code)가 잘 작동하고 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들의 정의는 언제나 희생자를 찾아올 것이라고 전했다.[88] 자세한 사항은 아래 뉴욕 5대 패밀리 문단 속 감비노 패밀리 항목 참조[89] 피고인은 본인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택받은 자경단원이라고 여겼다.[90] 원문에서 쓰인 표현인 'cabal'이란 단어는 단순한 집단이나 무리가 아니고 사전적으로 '정권 쟁탈 음모에 연루된 비밀결사'이라는 의미다.[91] 상단의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부두목이었다.[92] 앞선 보도에 의하면 총을 꺼내는 등의 방어태세를 취하지 않고 그저 악수를 하고 뒤돌아 가는 칼리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보도되었지만, 현재로서는 언론에 CCTV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아마 증거를 직접 접하고 변론을 하는 변호인의 말이 허무맹랑할리는 없으니 칼리가 총을 꺼내려고 했다고 보는 게 맞을 듯. 한밤중에 예고 없는 방문객이 찾아오면 마피아 부두목으로서는 당연히 총을 챙겼을 것이고.[93] 공교롭게도 빌 드 블라시오 시장은 사건 발생 직후, 살인의 원인을 마피아 간의 항쟁으로 추측하고 “(마피아 간의 싸움이 빈발한) 그러한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매우 놀랐다(We thought those days were over, very surprising)"라고 평한 바 있다.[94]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은 마피아 두목이 아닌 한낱 거리의 포주를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는 차이가 있다. 범행 동기의 결은 조금 다르지만 과거 존 힝클리 주니어라는 정신병자가 택시 드라이버 영화를 보고 실제로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암살을 시도한 사례가 있다.[95] 체포된 인물 중에는 팔레르모 인근 마을의 시장인 살바토레 감비노가 포함되어 있다.[96] 감비노 패밀리 두목 도메니코 체팔루의 별명도 18번가의 수도사(Dom from 18th Avenue)이다. 브루클린에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동네인 벤슨허스트도 18번가와 인접해있다.[97] 사실 그 시점에는 '이탈리아'부터가 전에는 존재한 적도 없는 신생국가였다.[98] 의외로 마피아들도 자기들이 다른 조폭들을 직접 지배하고 이런 게 별로없다. 마피아들은 정식 조직원 숫자는 매우 적은데 로마와 비슷한 통치 방식으로 세력은 매우 크다. 심지어 내부 주도 세력이 교체되는 방식도 완전 로마식이다.[99] 정확하게 말하면 가톨릭(천주교) 세례식에 관련된 단어다.[100] 재미있게도 동양에서도 삼국지 같은 고전문학에서 근현대에는 중국의 지식인이자 전한의 브레인 역할이었던 장량에 빗대 'A는 나의 장자방이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101] 국산 게임 "더 보스 : 라 코사 노스트라"에서는 하나의 유닛으로 "솔다티"라는 명칭을 썼는데, 이는 복수형이므로 맞지 않다.[102] 영화 좋은 친구들(원제: Goodfellas)은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103] 당연히 조직에 방해가 되는 인물 혹은 변절자가 해당된다.[104] 참고로 made는 형용사로 '성공한'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굳이 표현하자면 '출세자' 내지 '성공자'라고 쓸 수 있겠다.[105] 존 고티 주니어가 공개 인터뷰에서 가입요건으로 살인을 인정해버리면 스스로 살인자임을 자인하는 게 되니 돌려 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106] 제노비스 패밀리 출신 앤서니 아릴로타(Anthony Arillotta)가 밝히길, 오늘날 정식 입단에 있어 반드시 살인을 할 필요는 없지만 폭력은 필수사항이라고 한다. 예컨대 자신이 ‘뼈를 만든’ 사건은 2003년 5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시멘트 노조 위원장인 프랭크 다다보(Frank Dadabo)를 저격한 일이라고 밝혔다. 당시 아릴로타는 2명의 그리스계 동료와 함께 훔친 번호판을 부착한 자동차를 탄 채 다다보의 집 앞에서 그를 향해 권총 9발을 발사했다. 피해자는 여러 발의 총알에 명중해 죽은 게 확실해 보였지만 결국 살아남았고 수사기관에서는 사건을 알바니아인들의 소행으로 의심하며 아릴로타 일당을 검거하지 못했다. 아릴로타는 피해자가 죽지 않았던 탓에 결국 살인은 하지 않은 게 되었고 상부로부터 “헤드샷 연습을 더 해라.”는 충고를 들었음에도 그 일을 계기로 정규 조직원에 입단하게 되었다고 밝혔다.[107] 미국 드라마 더 듀스를 보면 동네 건달들에게 수모를 당한 주인공이 토미라는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원에게 그 건달들의 신분을 묻는데, 그놈들은 그저 사탕가게 깡패(Candy store gangsters)들이지 마피아(Wise guy)가 아니라고 보증을 해주자마자 주인공이 찾아가서 당구 큐대로 보복 폭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108] 세계 어느 나라나 생각하는 게 같은지, 야쿠자도 문서에 나오듯이 가입 직전의 후보에게 준고세이인(준 구성원)이란 명칭을 쓴다.[109] 본래 commission이란 단어가 위원회, 평의회 등을 모두 가리키는지라 본 문서나 다른 문서 및 매체에서도 명칭이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이것이 서로 죽고 죽이며 자멸하기보다 '암묵적 합의'를 통해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논의할 수 있는 '자격'을 강조하는 위원회보다는 평의회가 더 적절한 번역이라 볼 수 있다.[110] 2017년 수사기관의 도청으로 인해 밝혀진 내용으로, 미국-캐나다 국경지대에 위치한 버팔로 패밀리의 두목 조셉 토다로 주니어(Joseph Todaro Jr.)가 캐나다 해밀턴에 기반을 둔 루피노 패밀리 소속 마피아 조직원 도미니크 비올리(Dominic Violi)를 본인 패밀리의 부두목으로 지명하기 위해 위원회와 상의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마피아 위원회가 비밀리에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11] 추정컨대 수익이 굉장히 큰 마약을 취급하는 마약 카르텔과 협력하려니 마약을 거래하선 안 된다는 내부 방침과 모순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물론 마피아는 마약을 직접 거래하지 않을 뿐이지 '유통' 자체는 얼마든지 도와주고 수수료를 뗀다.[112]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워낙 유명한 감쪽 같은 '사라짐'이라, 짐 캐리가 나오는 코믹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하느님의 능력으로 지미 호파의 사체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113] 정규 조직원의 조건은 이탈리아 혈통의 인물이고, 입단 대상자가 패밀리를 위해서라면 어떤일이라도 감수할 수 있는 충성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조직 수뇌부에 인정되어야 한다.(예컨대 살인) 본인의 아버지나 삼촌이 패밀리의 두목급이나 간부급인 경우 남들보다 입단이 빠를 수 있지만, 그런 특수 상황이 아닐 경우 정규 조직원으로 인정받아 입단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표적으로 2013년에 뉴욕 루케시 패밀리에 입단한 존 페니시(John Pennisi)는 43세에 입단했다.[114] 2013년에 루케시 패밀리에 입단한 뒤, 2018년에 정부 측 증인이 된 존 페니시(John Pennisi)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패밀리의 대행 두목(Acting Boss)이었던 매튜 마돈나(Matthew Madonna)가 직접 의식에 쓸 큰 사냥칼(Hunting knife)을 가져왔고, 감명을 받은 페니시가 그 칼을 기념품으로 가졌다고 한다.[115] 성화로는 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성모 마리아의 사진을 이용한다.[116] 잠입수사의 전설로 여겨지는 "도니 브래스코 작전"이라는 실화를 다룬 영화 도니 브래스코에서는 이를 '(지인들의) 모임'이라고 표현하며, 보통 조직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호출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작중 인물들이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움찔하는 것을 볼 수 있다.[입단식에관해] 상단에 서술된 입단식 세부사항은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출신 앤서니 아릴로타(Anthony Arillotta)의 증언을 기반으로 했다. 사소한 디테일은 조직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시칠리아와 미국의 모든 마피아 입단식은 이와 비슷한 절차대로 진행된다.[118] 미국에서 ‘이탈리아 혈통’의 기준은 처음에는 순수 시칠리아 혈통이었다가 후에 출신 불문 이탈리아 혈통으로 확장되었고, 더 나중에는 아버지만 이탈리아 혈통이면 조건에 충족한다고 보았다. 즉, 영화 좋은 친구들의 헨리 힐은 아버지가 아일랜드계, 어머니가 이탈리아계라 입단할 수 없었던 것. 보난노 패밀리 부두목 출신 살바토레 비탈레(Salvatore Vitale)의 증언에 의하면, 2000년 마피아 위원회 회의에서 다시금 ‘순수 이탈리아 혈통만 정규 조직원으로 입단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결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세대가 내려오며 순수 이탈리아 혈통의 사람들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기에 실무에서 완전히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부계 쪽이 이탈리아 혈통이기만 하면 입단 자격이 충족된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실제로 오늘날의 미국 마피아가 본토 출신들을 대거 차출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2000년 결의 내용이 준수되고 있을지도 모른다.[119] 18살 때 리먼 브라더스에 취직한 은행원 살 로마노(Sal Romano)는 감비노 패밀리와 결탁해 각종 부패 사업을 도맡았고, 동시에 마피아의 자금 관리를 해오다 2003년에 1억 달러 규모의 주식 사기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된다. 2009년에 출소한 그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일반적인 마피아 조직의 상납 체계는 준 구성원이었던 자신이 수익의 20%를 지부장에게 전달하면 그 지부장은 부두목에게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부두목이 당시 패밀리의 두목이자 교도소 수감 중이었던 존 고티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로마노는 마피아 패밀리에 300명의 행동대원이 있다고 가정하면 각 대원들은 인당 20~30명의 민간인들과 함께 사업을 하거나 그들에게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어 그 수익의 일부를 자신의 지부장에게 상납하고 그 지부장들은 다시 두목에게 상납하는, 즉 엄청난 규모의 돈을 굴리는 사업체(It’s a mega, mega million-dollar enterprise)이며 두목이 되면 많은 돈을 가질 수 있다.(There’s a lot of money in being the boss.)라고 얘기했다. 단, 20%는 일반적인 기본값이지 고정 값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두목에게 80%를 상납할 수도 있다. 예컨대 두목이 마약상들이 마약 대금을 보관하는 창고의 존재를 인지하여 일선 조직원들로 하여금 그곳을 강탈하라고 지시한 경우 두목에게 대부분의 수입을 상납해야 하는 건 상식적인 이야기다. 특히, 감비노 패밀리 준 구성원 출신 존 앨라이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부에 상납하는 금액의 비율은 고정된 경우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경우가 더 많다.’라고 얘기했다.[120] 상술했던 영화 "도니 브래스코"에서는 이 때문에 주인공 간부 레프티(알 파치노 분)가 도니 브래스코(조니 뎁 분)에게 콧수염을 깎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간혹 간부급 중에는 수염을 기른 예외 사례도 보인다.[121]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출신 마이클 프란지스는 마피아 조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허가받지 않은 마약 거래를 하다 적발되는 것에 관한 두려움을 소개하기 위해 한 일화를 소개했다. 과거 자신의 부하 중 토니 고크(Tony Gock)라는 별명을 가진 정규 조직원 하나가 마약을 거래하다 경찰에 적발되었는데 고크는 상관인 프란지스를 찾아와 그 사실을 알렸다. 프란지스는 자신이 해결해보겠다는 취지로 일단 그를 진정시켰지만 고크는 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가 할 바에야 스스로 한다는 취지로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서 권총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란지스는 자신이 현역이던 시절에 시칠리아 출신 마피아는 마약 거래에 깊숙이 관여했지만 미국 출신들은 그러지 않았다고 얘기했다.[122] 현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이 대륙 간 밀수의 중심지로 유명하다.[123] 소프라노스에서 뉴저지 마피아 지부장(카포레짐)인 비토가 뉴욕의 게이클럽에서 놀다가 수금하러 온 뉴욕 측 조직원들에게 발각되는 에피소드가 여기서 유래한 듯.[124]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 안젤로 브루노를 살해한 필라델피아 콘실리에리 안토니오 카포니그로(Antonio Caponigro). 제노비스 패밀리의 허가를 받고 일을 진행했지만 후에 위원회에서 만난 제노비스 측에서 안면몰수하고 모르는 척하는 바람에 살해되었다.[125] FBI 요원 도니 브래스코를 조직에 들인 뉴욕 보난노 패밀리의 카포레지메 도미니크 나폴리타노, 일명 "소니 블랙"(Dominick "Sonny Black" Napolitano).[126] 뉴욕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원 브루노 페시올로(Bruno Facciolo).[127] 느슨한 연합 구조의 레드 마피아와 다른 점이다.[128] 대다수의 다른 범죄조직의 경우 비록 자신이 암흑가에서 성공했어도 자식 세대는 자신이 몸 담았던 세계와 멀리하기를 바란다. 이 점이 이탈리아계 마피아와 다른 범죄조직의 차이점이다.[129] 대부에서 비토가 아들인 마이클에게 조직을 물려주고 마이클은 조카인 빈센트에게 물려주듯, 현실에서 감비노 패밀리의 예시를 봤을 때, 최근까지 패밀리의 대행 두목을 맡은 '프랭크 칼리'의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그는 2017년에 사망한 조직의 원로 '존 감비노'의 조카사위였는데, 존 감비노는 조직의 이름을 명명한 전설적인 두목 '카를로 감비노'와 사촌 지간이다. 결국 21세기의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도 카를로 감비노와 연관되어 있었다. 카를로 감비노 또한 후계자로 부두목이었던 '아니엘로 델라크로체'가 아닌 자신의 매제 '폴 카스텔라노'에게 조직을 맡기기도 했다. 물론 이태리 마피아 조직에서 반드시 혈연관계가 있어야만 출세한다는 건 아니고 아닌 예시도 상당히 많다. 그저 혈연이 출세에 유리하다는 말.[130] 악명높은 신세대 마피아를 대표하는 사례로 1973년생의 감비노 패밀리 준 조직원인 존 미칼리(John Micali)가 등에 새긴 문신을 보면 정장을 입은 남자가 손발이 묶여있는 남자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처형하는 모습을 새겨놓았는데, 그림 주위에 시칠리아어로 모든 경찰관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죽여라.(kill all cops with a bullet in their head.)라고 새겨놓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탈리아 이민 1세대 마피아 단원들과 비교해서도 잔인성과 배타성이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또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 조셉 멀리노의 뉴욕 재판 당시 그를 수행해 눈길을 끌었던 1993년생의 젊은 감비노 패밀리 준 조직원인 피터 투치오(Peter Tuccio)는 막강한 루케시 패밀리 지부장 조셉 데세나(Joseph DeSena)의 조카로, 역시 마피아 집안 내력을 가졌고 본인도 암흑가의 길을 걷고 있다.[131] 다만 마피아는 일반적으로 공무원이나 군인들을 법을 준수하고 박봉을 받아가며 생활하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는 바보라고 생각한다.[132] 이들이 생각하는 지옥행 대상이란 이교도, 소아 대상 성범죄자, 명분 없는 살인자(예컨대 단순 강도 살인),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테러리스트 등이다.[133] 대표적인 축제로 대부에도 두 차례 나온 바 있는, 뉴욕 시 리틀 이탈리아에서 매년 개최하는 성 젠나로 축제(Feast of San Gennaro)가 있다. 좋게 말하면 축제를 도와주고 나쁘게 말하면 이권에 개입하는 것.[134] 어디까지나 입증된 근거가 없는 음모론이다. 이러한 종류의 음모론은 너무나 많고 마피아 지부장인 마이클 프란지스 같은 인물들이 자신의 생각으로 마피아가 케네디를 암살했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이런식의 깡패들의 주장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게 너무 많아서 믿기 어렵다.[135] 소프라노스에서 토니 소프라노가 내부 권력투쟁 중인 다른 패밀리에 집단지도체제를 권유하며 로마의 삼두정치를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일본 야쿠자의 경우 두목이 수감되거나 하면 부두목(와카가시라)정도 되는 인물이 대행 두목을 맡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서열을 따져서 대개는 거의 1명의 지도자를 세운다. 마피아는 그런 면에서 야쿠자에 비해 유연한 편.[136] 볼레로의 사업 파트너였던 감비노 행동대원 조셉 스피나토 역시 단 1년 만에 석방되었다.[137] 코로조가 도주한 이유를 추측하면 공갈•갈취•살인 미수 등의 혐의를 받던 다른 조직원들과 달리 자신은 기업 부패죄와 더불어 2건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어서 장기 징역형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138] 도피 기간 중 미국 지상파 방송에서 전국 지명수배까지 되었다.[139] 79세의 코로조는 2019년 11월에 출소했다. 침묵의 계율을 지킨 그가 조직에 복귀하기를 원한다면 충분히 패밀리의 지부장으로 한 축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칠리아 파벌이 이끄는 현 감비노 패밀리 지도부가 지부장 보다 더 높은 직책을 부여할지는 알 수 없다.[140] 특히 루치아노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 부두목 윌리 모레티가 시나트라에게 첫 데뷔 무대를 제공하고 본인의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게 해주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현대 호사가들은 모레티가 아니었다면 전과자에다 당시에 많은 차별을 받은 이탈리아계 후손인 시나트라는 할리우드에 입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후에 인기가 상승한 시나트라가 밴드 리더 토미 도시와의 전속 계약을 깨고 밴드를 떠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이 소식을 들은 모레티가 밴드 리더를 찾아가 입에 총구를 박아 넣고 1달러만 받고 계약서를 양도하는데 서명하게 했다. (대부에 나오는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실화다.) 시나트라는 그 밖에도 쿠바에서 열린 마피아 위원회 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찰스 루치아노에게 금제 라이터를 선물하고, 시카고 마피아 두목 샘 잔카나에게 우정의 사파이어 반지를 선물하고, 감비노 패밀리 두목 카를로 감비노•폴 카스텔라노와 함께 사진을 찍는 등 당대 대부분의 마피아들과 친분을 과시했다.[141] 시카고 마피아 두목 샘 잔카나의 연인.[142] 1999년에 드 니로가 마피아 두목을 연기한 영화 애널라이즈 디스 촬영에 앞서 감비노 패밀리 고위 간부 앤서니 루지아노(Anthony Ruggiano)에게 연기 자문을 구했다.[143] 보난노 패밀리와 관계가 있다고 추정. 특히 베넷은 1970년대에 시카고 마피아 조직원 앤서니 스필로트로(Anthony Spilotro)의 여자친구와 노닥거리다가 전화번호부로 호되게 두드려 맞았다고 알려져 있다.[144] 영화 대부에서 산티노 콜레오네를 연기한 제임스 칸은 콜롬보 패밀리와 관계가 깊은데, 제임스 칸 아들의 대부가(가톨릭 대부-대자) 바로 콜롬보 패밀리 대행 두목 앤드루 루소이다. 2011년에는 칸이 앤드루 루소의 보석금을 대신 지불하고 탄원서를 제출한 사례가 있다.[145] 영화 대부에서 카를로 리치를 연기한 지아니 루소는 특히 감비노 패밀리와 관계가 있다. 루소는 2019년 감비노 패밀리 대행 두목 프랭크 칼리 암살 직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칼리와 가깝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직접 만난 적 있고 '좋은 젊은이'(Good Kid)였다."라고 얘기하는 인터뷰 영상이 있다.75세의 루소에게 53세는 젊은이다[146]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와 고티의 아들이자 한때의 후계자였던 존 고티 주니어와 관계가 있다. 루크는 직접 존 고티의 재판을 방청하기도 했다.[147] 2차례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 수상자. 여러 영화에 마피아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존 고티의 재판을 방청하기도 했으며 고티를 배신한 새미 그라바노를 신랄히 비판하기도 함.[148] 헐리의 전 남편인 부동산 재벌 겸 영화제작자 스티브 빙은 콜롬보 패밀리의 대행 부두목을 맡기도 했던 고위 간부 도미니크 몬테마라노(Dominic Montemarano)의 동업자로 일하던 사람이다.[149] 2000년에 감비노 패밀리 두목 피터 고티와 지부장 앤서니 시코네에게 살해 협박과 갈취 협박을 받음.[150] 2018년에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를 다룬 영화에 존 고티 역으로 출연하면서 고티의 아들이자 한때의 후계자였던 존 고티 주니어와 함께 영화 홍보 차 여러 미디어에 얼굴을 비침.[151] 과거 맨해튼 시내에서 '이혼남들(Bachelors III)' 이라는 술집을 운영하면서 감비노•루케시 패밀리와 관계를 맺었다고 알려져 있음.[152] LA에서 활동한 감비노•루케시 패밀리 수하의 마약상 귀도 페노시(Guido Penosi)를 사적으로 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153] 감비노 패밀리 두목 폴 카스텔라노의 조카. 대부에서 피터 클레멘자 역을 맡음.[154] 감비노 패밀리 조직원 앤드루 캄포스와 고등학교 동창 겸 친구. 학창 시절 같은 미식축구 팀에서 캄포스는 쿼터 백, 퍼프 대디는 수비수였다. 둘 다 돈으로 유명한데 퍼프 대디는 모든 래퍼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고 캄포스는 2000년대에 사이버 범죄를 통해 패밀리로 하여금 1조 원 상당의 수익을 올린 경력이 있다.[155] 여러 갱스터 래퍼를 표방하는 가수 중에서도 독보적인 악명을 자랑하는 우탱 클랜은 음악의 길을 걷기전에는 아예 르자, 즈자, 올 더티 바스타드 등 그 외 멤버들이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지역에서 불법 무기와 마약 거래를 담당하던 감비노 패밀리 소속의 준 구성원들이었다. Wu-Gambinos라는 노래도 있음.[156] 필라델피아 마피아 두목 조셉 멀리노와 관계가 있다. 함께 찍은 사진이 있음.[157] 존 고티 주니어와 사진을 찍는 등 친분을 과시함.[158] 영화 대부에서 쟈니 폰테인 역을 맡은 가수 겸 배우. 감비노 패밀리의 로렌조 만니노가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라스베이거스에서 마르티노의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했다.[159] 그의 아들 레니 몬타나 주니어는 1990년대에 LA 마피아의 정규 조직원이 되었다.[160] 대로우는 좋은 친구들에서 조 페시한테 병으로 얻어맞는 레스토랑 주인으로도 출연했다. 아마 당시에는 마피아 활동을 하지 않았을 듯.[161] Never prayed to God, I prayed to Gotti, That's right it's wicked, that's life I live it/ 신 대신 존 고티에게 기도했지. 그래 미친 짓이지, 그게 내가 사는 삶. (D'Evils 中), A cut from the cloth of the Kennedy's Frank Sinatra having dinner with the Genovese/ 케네디 대통령의 옷에서 잘려나온 천, 비토 제노비스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프랭크 시나트라. (Pray 中), Lucky Luciano is what that call me, paisano/ 날 러키 루치아노라고 부르지, 동료라고. (FuckWithMeYouKnowIGotIt 中)[162] and lamp like Capone, with drug scripts sewn/ 마약은 마무리 하고, 알 카포네 처럼 지내는 꿈을 꾸지. (N.Y. State Of Mind 中)[163] I’m calm as a Don is supposed to be, Cosa Nostra/ 난 두목답게 차분해, 코사 노스트라 같이. (Hit 'Em Up 中)[164] That's why I move like the Mob, I'm watchin' movies too much/ 그래서 내가 마피아처럼 움직이는 거야, 영화를 너무 많이 봤지. (Really Be 中)[165] Mob ties, Genovese/ 마피아 연줄, 제노비스 패밀리. (Quintessential 中) + 릭 로스의 앨범 중 하나인 'Teflon Don'은 존 고티의 별명이기도 하다.[166] Crime family like the Genovese/ 제노비스 패밀리 같은 범죄자 가족. (Sandra's Rose 中)[167] TDE family the Genovese/ TDE 가족이 바로 제노비스 패밀리지. (03 X 中, TDE는 스쿨보이 큐의 소속사다.)[168] 이렇게 되면 법적으로 가지는 경찰관에게 총을 맞은 게 아닌 게 된다.[169] 이들은 마피아의 지시를 받고 직접 대상을 살해하기도 했다.[170] 은퇴 이후 에폴리토는 영화 좋은 친구들에 마피아 '뚱보 앤디'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1992년에는 책을 한 권 썼는데 제목이 '마피아 경찰:가족이 마피아인 한 정직한 경찰의 이야기'이다.[171] 물론 마피아 소속이 아닌 군소 갱단이나 단독 잡범죄자들에 대한 정보[172] 에폴리토의 삼촌과 사촌이 감비노 패밀리 조직생활 도중 처형당했다.(위의 앤서니 가지 설명에 나오는 그 인물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들은 루케시 패밀리의 지시를 받아 감비노 측을 살해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173] 확정된 혐의만 갈취, 노조 갈취, 마약, 불법 도박 사업, 사법 방해, 살인, 살인 공모죄가 있다.[174] http://www.radiokorea.com/news/article.php?uid=165217[175] 한국명 고티 가족 길들이기[176] 제니퍼 그라지아노는 할리우드의 프로그램 제작사 사장이다.[177] 8년 복역 후 2011년에 출소한 앤서니 그라지아노는 자신의 딸들이 마피아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걸 보고 2년간 딸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3년에 보난노 패밀리의 3인자였던 앤서니는 당시 뉴욕 마피아 사상 초유로 패밀리의 두목이 오메르타를 어기는 와중에도 자신은 끝내 오메르타를 어기지 않은 인물인데, 그런 골수 마피아의 입장에서 마피아를 소재로 한 내용 자체도 불만이겠지만 특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여러 전•현직 마피아의 아내, 딸, 손녀들 중 과거 마피아를 배신한 전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의 딸도 있기 때문에 본인의 딸들에게 더욱 실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의 르네의 인터뷰에 의하면 아버지와 조금씩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앤서니는 2019년에 사망했다.[178] 일행은 프랭크 콜레타(Frank Colletta)란 인물.[179] 그녀는 막내아들 루이스 지간테(Louis Gigante)와 함께였는데 루이스는 마피아인 형들과 달리 가톨릭 신부(종교)다. 장남 마리오 지간테(Mario Gigante)도 제노비스 패밀리 간부다. 현재 생존.[180] 한낱 길거리 강도가 하필이면 국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피아 두목 어머니의 지갑을 훔친 것도 모자라 몇 구역도 못가 경찰에 붙잡혔으니 그럴만하다.[181] 대표적으로 좋은 친구들, 레이징 불, 아이리시맨[182] 실존 인물 발레롱가는 후에 코파카바나의 총 지배인까지 올라간다.[183] 존경을 받는 진짜 마피아와 달리 그런 가짜들은 뒤에서 조롱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184] 마피아의 영향력이 적은 캘리포니아 출신이라 직업이 마약상이었음에도 교도소에 오기 전에는 마피아와 마주칠 일이 크게 없었다고 한다.[185] 왓츠는 독일 혈통이라 마피아 정규 조직원은 아니었다.[186] 코로조는 2004년에 출소한다.[187] 페르나는 2015년에 출소한다.[188] 지아코모 디노르시오는 2002년에 출소한 후 2004년에 사망한다. 1980년대에 배심원을 매수해 재판에서 승소한 디노르시오를 다룬 영화 'FInd Me Guilty'라는 영화가 빈 디젤 주연으로 2006년에 제작되기도 했다. 페란티는 디노르시오를 만나볼 수 없었던 게 참 아쉽다고.[189] 감비노 패밀리에 국한되는 얘기로써 다른 패밀리는 20년간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190] 전 WBA 크루저급, IBF 라이트 헤비급 세계 챔피언.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191] 전 WBC 웰터급, IBF 라이트 웰터급 세계 챔피언. 그라바노는 맥거트의 공동 매니저인 스튜어트 와이너, 알 크레토와 동업관계를 맺어 웰터급 복싱계의 지분을 공유했다고 증언함.[192] 헤비급 세계 챔피언 도전자. 평소 복싱을 수련했던 새미 그라바노와 함께 같은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알려짐. 그라바노는 스나입스의 커리어를 위해 부정한 청탁으로 랭킹을 올려주는 등 손을 써주기도 했다고 증언함.[193] 이탈리아의 WBO 헤비급 세계 챔피언. 그라바노에 의하면 다미아니의 두 형제가 모두 이탈리아 마피아의 정규 조직원이었다고 한다. 그라바노는 그 마피아 형제들과 함께 사업 구상을 하기도 했었다고 증언함.[194] 전 WBA•IBF 슈퍼 미들급, WBC 미들급 세계 챔피언.[195] 말이 필요 없는 전설의 미들급 복서.[196] 전 WBA•WBC 미들급 세계 챔피언. 뉴욕에서 자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현역 시절 마빈 해글러와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영화 대부 3편 속 마피아 두목 조이 자자의 오른팔로 출연하기도 했다.[197] 클리블랜드의 흑인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무하마드 알리, 마이크 타이슨, 조지 포먼, 에반더 홀리필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앤드루 골로타, 펠릭스 트리니다드, 로이 존스 주니어, 래리 홈즈,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의 프로모터였음.[198] 에반더 홀리필드, 퍼넬 휘태커 등을 키워낸 트레이너로 제노비스 패밀리와 가깝다는 증언이 나왔다.[199] 조셉 코로조는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인 니콜라스 코로조의 동생으로, 조직 내에서 1992년부터 약 19년간 콘실리에리를 맡기도 했다. 조셉 코로조는 2008년에 기소되어 약 8년의 복역을 마치고 2016년에 출소했다.[200] 첫 번째 살인은 돈 킹의 도박장을 습격한 무장 강도를 사살한 정당 살인으로 인정되었지만, 두 번째 살인으로 돈 킹은 4년 5개월의 수감생활을 한 바 있다. 여담으로 타이슨은 돈 킹을 "1달러 때문에 어머니도 죽일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201] 2019년 기준 프랭크 퍼티타 3세의 순자산은 19억 달러(약 2조 2,810억 원)이다.[202] 갤버스턴이란 도시가 정식 마피아 패밀리가 있을 만큼 큰 규모의 도시가 아니기 때문.[203] 이 당시 뉴올리언스 마피아는 뉴욕이나 시카고에도 뒤지지 않는 거대 조직이었다.[204] UFC와 마피아, 퍼티타 형제와 마피아의 연관설은 구글 검색창에도 자동완성이 될 만큼 잘 알려진 주제인데, 해외 네티즌들 중에는 단순한 루머로 치부하는 사람도 존재하지만, 꽤나 관심을 가지고 퍼티타 가문의 뿌리를 찾아본 사람들은 대체로, 가문의 선조라 할 수 있는 마세오 가문에 직접적인 마피아 두목이 있는 데다가 마피아가 세운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여전히 가문 대대로 카지노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도 마피아 조직과 여러 사업상 관계를 맺고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추측을 하거나, 라스베이거스의 조리사 노조(Culinary Workers Union)와 UFC의 관계 등을 거론하며(현대 마피아의 핵심사업은 노조 장악이다.)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추론하는 사람도 있는 등 다양하다.[205]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혈통으로 구성된 윈터 힐 갱단은 지역 내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조직인 페트리아카 패밀리와 대립하다 지금은 사라진 거대 범죄조직이다.[206] 하단의 폴 카스텔라노 항목 설명 참조.[207] 테디 아틀라스는 1956년생으로 그라바노보다 11살 어리다.[208] 아지트에 들어가는 마피아 조직원들은 비무장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는 규칙 탓.[209] 2020년 1월 출소 예정. 살인 혐의가 인정되었다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예정이었다.[210] 위장 요원이 마피아 정규 조직원으로 고려된 경우는 조셉 피스톤과 호아킨 가르시아가 유일한 경우.[211] 1993년부터 이어진 루다이 조직은 2000년대 중반에 두목과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체포되어 기소되면서 조직 계보가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212] FBI에서는 입증하지 못했을 뿐 스카르파가 총 살해한 사람의 수를 100~120명 사이로 추산하고 있다.[213] 데베키오와 스카르파의 관계는 대중들에 알려진 사례 중에는 유일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와 FBI 요원의 우정이다.[214] 스카르파 주니어는 함께 수감돼 있던 유세프에게 접근해 "사실 마피아도 알 카에다와 생각이 같다."라고 거짓말을 치며 정보를 빼냈다고 한다.[215] 보통 40년 형을 받은 경우 20~30년 넘게 복역하면 가석방된다.[216] 카리니 형제가 왜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점이 많다. 즉, 원래 살해 대상이 조지 아론왈드 판사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조지 아론왈드는 마피아와 전혀 상관없는 불법 주차 관련 재판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 동기가 모자라다. 애초에 윌리엄 아론왈드의 아버지를 살해해 그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려는 의도였다면 살해 동기가 충족되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임무를 깔끔하게 수행한 카리니 형제들이 살해된 이유가 불명확하기에 오인 사격이 제일 합리적인 추측이다. 카카스는 재판 과정에서 상부로부터의 지시를 자신이 어딘가로 전달했다는 사실까지만 인정하고 입을 닫았기 때문에 이런 의문점이 남았다. 당시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윌리엄 아론왈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카카스의 모습을 보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217] 1986년에 드 브리스는 자연사했다.[218] 메이도프의 장남은 아버지의 범죄로 인한 수치심에 자살했고, 둘째 아들도 암 투병을 하는 등 상황이 안 좋았다.[219] 기사가 없어서 언제 민간병원으로 이송되었는지 알 수 없다. 100년형을 선고받은 마피아 두목의 형 집행을 정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교정당국이 세간의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보도자료를 안 낸 것으로 보인다.[220] 푸스코는 진행된 재판에서 25년 형을 선고받았다.[221] 오바마는 달변가이자 유머감각으로 유명하다.[222] 당연히 선택권은 없었다고 한다.[223] 수감된 패밀리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의 대리인으로, 당시 콜롬보 패밀리의 대행 두목. 후에 콘실리에리를 맡는다. 1983년에 은퇴.[224] 이 일화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20년 기준 콜롬보 패밀리의 최고위 인사.[225] 차길진 씨가 자세히 밝히지 않았기에 뉴욕의 다섯 마피아 패밀리 중 어느 조직의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지부장(Capo)을 두목으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226] 취재 과정에서 뉴욕 시를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중 마피아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기 때문에 기자도 그 마피아의 인적 사항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227] 한국뿐 아니라 영문 웹사이트에서도 관련 서술이 심심찮게 보인다.[228] 두목 중의 두목으로 묘사되기도 했으나, 당시 느슨해진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 체계에는 총 두목 직책이 없었다고 한다.[229] 사진사는 호되게 두드려 맞았지만 값비싼 새 카메라와 현금을 받은 뒤 당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230] 피고인 475명 중 338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231] 그 말을 듣고 격분한 부셰타는 "당신 같은 살인자가 도덕성을 운운하다니, 이제 마피아는 끝났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체로 부셰타를 잘 쳐다보지도 않던 리나는 마피아가 끝났다는 말에 특히 반응하며 그를 쳐다보고 이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부셰타의 가족들에 의하면 그가 마피아계의 최고 책임자를 만나 면전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돌아와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자기 아들들을 살해한 자를 대면하자 그날부터 눈에 띄게 말수가 적어지고 매우 우울해했다고 한다.[232] 프로벤자노의 유죄판결 내용 중에는 1980년에 정치인 피에르산티 마타렐라를 살해한 혐의도 포함되어 있다. 피에르산티 마타렐라는 제 12대 이탈리아 대통령 세르지오 마타렐라의 형이다. 즉 리나에 비해 덜할 뿐이지 그도 호전적인 성향임은 틀림없다.[233] 이탈리아 교정당국은 프로벤자노의 원활한 형 집행을 위해 전담인력 700명을 배정했고 그가 거실에 있을 때조차 24시간 전자감시장비 계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234]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만약 자살 소동이 형 집행정지를 위한 연극이었다면 끝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참회나 뉘우침을 하지 않고 온 세상을 기만한 셈이다.[235] 데나로와 함께 프로벤자노의 공동 후계자로 여겨지던 살바토레 로 피콜로는 2007년에 체포되었다.[236] 2014년에 뉴욕 마피아와 연계해 500kg의 액체 코카인을 파인애플이나 코코넛 통에 숨긴 뒤 중남미에서 이탈리아에 들여오려고 시도하다 적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측은 말단 조직원들만 엮여들어갔지만 은드랑게타 측에서는 우르시노 일족의 두목인 프란체스코 우르시노가 검거되기도 했다.[237] 19세기에 은드랑게타 패밀리, 곧 은드리나는 주로 혈족으로 구성되어 규모가 큰 조직이라도 30명을 좀처럼 넘지 않았다.[238] 사실 이러한 발언만으로 교회법에 의해 파문하는 정식 칙령이 되지는 않는다고 하나, 이들에게는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평소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지역의 신뢰를 얻기 위해 신실한 가톨릭 신도로서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교황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239] 대행 두목은 제외하고 공식 두목만 카운트해서, 각 패밀리 별로 적게는 4대 많게는 14대 이런 식으로 차이가 난다.[240] 뉴욕 각 패밀리의 조직원 숫자에 대한 출처: "The Changing Face of Organized Crime in New Jersey – A Status Report State of New Jersey Commission of Investigation. May 2004."라는 보고서.(보난노 패밀리는 조직원 현황이 나와있지 않다.)[표기에관해] 이탈리아 식으로 써서 'Genovese'를 제노베세, 'Lucchese'를 루케세로 써야 하지 않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으나, 이들이 이탈리아계 미국인이고 미국의 마피아인걸 감안하면 영어식인 제노비스, 루케시가 맞다. 만약 축구선수 티에리 앙리(Thierry Henry)가 영국인이었으면 티에리 헨리로 발음하겠지만, 프랑스인이기에 티에리 앙리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참고] 주요 언론이나 수사기관에서 공표한 각 패밀리 지도부의 현황을 서술해놓았는데, 베일에 싸여진 범죄조직의 그 특성상 알려진 수괴와 실제 수괴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 속 등장하는 검은 조직의 두목처럼 실제로 십수 년간 자신을 대외적으로 철저히 숨겨온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의 사례도 있기 때문.[243] 그 외 구역: 브롱스, 뉴저지 주,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라스베이거스, 코네티컷 주, 그랜드래피즈 시, 미시간 주, 플로리다 주, 로스앤젤레스.[244] 실화 기반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주인공 헨리 힐이 감비노 패밀리를 ‘손대어서는 안되는(Untouchable)’ 조직이라고 묘사한다.[245] 존 고티가 직업 범죄인의 치명적인 약점인 허세 섞인 부주의한 행동 양식을 보여준 건 맞지만,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조직범죄 전담반이 축소되고 대테러 부서 쪽으로 FBI의 포커스가 옮겨가기 전인, 1980~1990년대는 미국 마피아가 연방 차원의 본격적인 수사 및 여러 변절한 부두목급 간부들의 정부 측 ‘증언’으로 인해 파벌을 막론하고 피해를 많이 본 시대다.[246] 시칠리아의 코를레오네시 패밀리(Corleonesi Family)가 1992년에 자행한 이탈리아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인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 판사 암살 당시, 존 고티의 지시로 감비노 측에서 폭파 전문가를 시칠리아로 보내 사건에 관여한 사실이 2019년에 드러났다. 실제로 팔코네 판사 부부와 3명의 경찰관은 폭탄에 의해 사망했다. 그간 감비노 패밀리는 코를레오네시 패밀리의 라이벌 파벌들과 가깝다고 알려져 왔기에 의외의 사실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파벌을 막론하고 모든 시칠리아와 미국의 마피아 조직은 사촌 조직들이기에 이상할게 전혀 없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시칠리아 출신 혹은 시칠리아와 많은 연관을 갖고 있는 자들로 구성된 감비노 패밀리 내 시칠리아 파벌은 2002년에 사망한 존 고티 이후 2010년대에 이르러 감비노 패밀리의 주도권을 쥐었다.[247] 감비노 패밀리는 지부장 살바토레 로카시오(Salvatore Locascio)와 휘하 행동대원 앤드루 캄포스(Andrew Campos), 리처드 마르티노(Richard Martino)가 주축이 되어 1996년~2003년 사이 약 7년간 총 피해 금액이 7억 5천만 달러(약 8,767억 원)에 달하는 사이버 범죄망을 운영한 사이버 범죄의 선구자다. 이 당시 이들의 범죄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소비자 사기’로 남았고 이들은 다른 마피아 패밀리들을 새로운 범죄 수법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2005년에 이 사건으로 로카시오는 2년 형에 470만 달러 몰수, 캄포스는 2년 3개월 형에 170만 달러 몰수, 마르티노는 9년 형에 910만 달러 몰수를 선고받았다. 시간이 흐른 2019년에 캄포스와 마르티노는 다른 11명의 조직원 및 관련자들과 여러 가지 마피아 활동 혐의로 기소되는데, 검찰 측 공소장에 의하면 캄포스는 승진하여 패밀리의 지부장이 되었고, 마르티노가 여전히 캄포스 휘하에서 함께 일한다고 한다. 공소장엔 전직 프로복서 2명이 징수원으로 가담한 고리대금 같은 단순한 마피아 사업부터 세계적으로 100억 달러 이상의 개발을 담당하는 HFZ 캐피탈 그룹의 전무이사 존 시몬카라즈가 연루된 고도로 발달한 지능범죄까지 다양한 혐의가 적시되어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점으로, 14년 전 마르티노가 선고받은 910만 달러 몰수 판결에 대한 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알려졌다. 마르티노는 자신이 범죄활동으로 얻은 자산들을 대부분 은닉했고 2014년 출소 이후 건설•식음료 등 각각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여러 회사들을 본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해 오면서도 자신의 수입이 한정되어 있다고 거짓 신고하는 등, 편법과 탈법을 이용해 법 집행을 피해왔다. 이는 정부에 대한 일체의 협조를 기피하는 오메르타 정신을 기반으로 단 1달러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마피아와 끝까지 받아내려는 정부기관의 지리한 싸움으로 보인다.[248] 감비노 패밀리는 자신이 심판을 보는 경기에 스스로 배팅 하여 논란이 된 부패한 전 NBA 심판 팀 도나히(Tim Donaghy)와 함께 2005년 6월부터 2006년 7월까지 진행된 여러 NBA 경기를 조작하는데 가담했다고 알려져 있다. 도나히는 2007년에 유죄 판결을 받았고 15개월의 수감생활 중 교도소에서 어느 뉴욕 마피아 조직원 출신 수감자에게 수술이 필요할 만큼 공구로 폭행 당했다고 한다. 도나히는 출소 후에 감비노 패밀리 측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소재로 협박했고, 마피아들이 개입한 이래 그들은 수백만 달러를 벌었지만 자신에게는 사례비로 한 건당 2000달러 밖에 주지 않았다고 한다. 도나히는 마피아는 항상 프로 스포츠의 일부였고, 도박에서 이점을 얻기 위해 심판, 선수, 지도자, 그 외의 내부 정보를 갖고 있는 어느 누구든 이용한다며, 조직범죄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건 도박 합법화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04년에는 MLB 뉴욕 메츠 소속 투수 존 프랑코와 보난노 패밀리 간의 유착설이 불거졌고, 2010년에는 메츠의 홈구장 시티 필드마피아 관련 기업에서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불거지는 등 21세기에도 여전히 프로 스포츠계와 마피아 간의 여러 의혹이 있다.[249] 1980년에 조반니 팔코네 판사는 1970년대 후반까지 인제릴로-감비노-스파톨라 네트워크가 매년 6억 달러(약 7308억 원) 상당의 헤로인을 미국으로 밀반입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2014년에는 감비노 측이 은드랑게타, 보난노 패밀리와 공모해 500kg의 코카인을 남미 가이아나에서 이탈리아로 들여오다 FBI와 이탈리아 경찰의 합동 작전으로 적발되었다.(국내 기준 코카인 1kg은 시가 30억원이다. 500kg은 1조 5000억원 규모. 물론 외국은 시가가 다르다.)[250] 기사 속 인터뷰에 응한 지오바니 감비노(Giovanni Gambino)는 마피아 조직원이 아니지만 감비노 패밀리의 핵심 간부 존 감비노(John Gambino)의 아들이다. 과거 15년의 수감생활을 겪은 존 감비노는 시칠리아 출생으로, 조직 내 시칠리아 파벌의 지도자였다. 2017년에 자택에서 사망.[251] 감비노 내 시칠리아 파벌의 대표적인 인물인 도메니코 체팔루는 고향 시칠리아를 떠나와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준 구성원으로서 마약을 수입하는 일로 범죄 경력을 시작했다. 1982년에 헤로인 밀수와 은행법 위반 혐의로 6년을 복역한 그는 1990년 11월에 감비노 패밀리의 정규 조직원으로 입단했는데, 이는 당시 두목 존 고티가 수감 전 마지막으로 직접 주관한 입단식이었다. 그 이후 총 세 차례에 걸쳐 공갈죄, 갈취죄, 법정 모독죄(오메르타를 지키기 위한 법정 증언 거부)로 도합 6년 3개월의 수감 경력이 있다. 제빵 재료 회사의 영업 사원이라는 합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는(소프라노스의 토니 소프라노가 작중 폐기물 처리 회사의 자문 위원으로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거물급 범죄자들이 돈 세탁과 그 밖에 사회적인 입지를 위해 갖는 표면적인 직업이다. 체팔루의 경우, 당연히 영업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하진 않을 것이다.) 마침내 2011년에 두목이 되어 감비노 패밀리를 시칠리아 전통의(Old-fashioned) 마피아 조직으로 돌려놓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2015년부터 대행 두목을 내세우고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상태. 마찬가지 시칠리아 파벌 소속이자 부두목 프랭크 칼리 사망 이후 칼리의 직책을 꿰찬 인물로 보고 있는 로렌조 만니노(Lorenzo Mannino)는 살인 공모죄와 마약 밀수죄로 15년의 수감 경력(1989-2004)이 있고 현 조직 수뇌부 중에는 비교적 어린 60대다. 현시점에서 수사기관은 만니노가 대행 두목으로서 패밀리의 실세로 보고 있다. 미국의 한 기사를 보면 수사기관 관계자의 입을 빌려 "체팔루가 여전히 두목이지만 만니노가 진짜 지도자다.(Cefalu is still the boss, but Mannino is the real leader)"라고 전했다.(출처) 콘실리에리를 맡고 있는 최연장자 마이클 파라디소(Michael Paradiso)는 1980년대 루케시 패밀리 부두목 앤서니 카소 저격사건의 배후이며, 총 25년의 수감 경력이 있는 베테랑 마피아다. 파라디소는 2016년에 불법 도박 사업 혐의 및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을 가로지르는 1500만 달러(약 177억 원) 규모의 대마초와 옥시코돈(마약성 진통제) 사업 혐의로 20명의 다른 감비노•제노비스•보난노의 정규 조직원 및 준 구성원들과 함께 기소되었다. 그 이후로 후속 보도는 없고, 파라디소 또한 현재 수감된 상태는 아니다. 아마 공소가 취하된 듯.[252] 그 외 구역: 퀸스, 롱아일랜드, 스태튼 아일랜드,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 주.[253] 교정시설에 수감되어도 대리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패밀리에 관여하는 다른 마피아 두목들과 달리, 코랄로는 자신이 기소되자 수뇌부 회의를 열어 빅터 아무소를 패밀리의 대행 두목으로 삼은 뒤 자신의 유죄가 확정되자 아무소에게 두목 자리를 승계하고 전권을 위임했다. 철권통치로 유명한 마피아 두목에 어울리지 않는 결정.[254] 이들이 지도부로 재직 중일 때의 패밀리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일화로, 앤서니 카소가 "죽어라, 죽어라,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녀석은(kill, kill, get what you can, even if you didn't earn it)"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실제로 패밀리 지부장 피터 치오도는 당시 조직 내 처형 대상이 되어 12발의 총격을 받고도 살아남는다. 그 후 조직 수뇌부로부터 그의 아내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는데, 치오도는 그들이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마피아 세계의 금기를 어겼다고 주장하며 조직을 배신하고 정부 측 증인이 된다. 그 뒤 치오도의 삼촌이 살해되고 여동생이 총격을 당하는 비극이 발생한다.[255] 최근 보도에 의하면 조직의 대행 두목을 맡고 있던 매튜 마돈나(Matthew Madonna)가 2007년과 2009년에 기소되고 2015년부터 재판이 확정되어 수감되면서, 2017년 즈음 두목 빅터 아무소는 부두목 스티븐 크레아(Steven Crea)에게 마이클 데산티를 새 대행 두목으로 삼을 것을 명하는 암호화된 서신을 교도소에서 보냈고 만약 마돈나 측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시 실행에 옮길 암살 리스트도 함께 작성하여 보내왔다고 한다. 결국 유혈사태 없이 마돈나는 두목의 뜻에 따라 일선에서 물러났고 데산티가 대행 두목을 맡아 루케시 패밀리의 실권을 쥐고 있다. 데산티는 1980년대 젊은 시절에 두목 아무소를 위해 2건의 암살을 수행해 18년의 수감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한편 2000년~2015년대에 매튜 마돈나, 조셉 디나폴리(Joseph DiNapoli)와 함께 집단지도체제로 루케시 패밀리를 이끌던 구성원 중 유일하게 아니엘로 밀리오레(Aniello Migliore)만 기소되지 않았고 평화롭게 은퇴했다.[256] 그 외 구역: 퀸스, 스태튼 아일랜드, 롱아일랜드,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뉴욕 주 로클랜드 카운티, 라스베이거스, 코네티컷 주, 매사추세츠 주, 플로리다 주.[257] 미국의 모든 범죄조직을 통틀어서 FBI 공식 홈페이지에 조직의 역사가 따로 정리되어 있는 집단은 제노비스 패밀리뿐이다.[258] 마피아 전문가 프레드릭 마르텐스는 뉴욕 타임스와의 1997년 인터뷰에서 "제노비스 패밀리는 오랫동안 마피아 위원회의 지배세력으로서 마피아들 간의 주요 분쟁을 해결하는 기관이다."라고 얘기했다.[259] 제노비스 패밀리의 강력한 내부 규율을 알 수 있는 일화로 조직의 두목급 간부인 도미닉 시릴로(Dominick Cirillo)2004년에 단지 마피아 조직의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친아들 니콜라스 시릴로(Nicholas Cirillo)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지만 끝내 법망을 피해 갔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의 도미닉 시릴로 항목 설명 참조.[260] 전 FBI 조직범죄 전담팀장 데이브 셰퍼(Dave Shafer)는 "제노비스 패밀리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다. 그들은 아주 비밀스럽고 조직 내부인조차 서로를 모르며, 누가 책임자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범죄 음모에 고도로 단련되어 있고, 작은 규모의 암살조를 운영한다. 법 집행기관의 내부 침투가 상당히 힘들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261] 1926년부터 개최된 맨해튼 리틀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축제로, 매년 9월이면 수많은 뉴요커들과 관광객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리틀 이탈리아를 찾는다. 영화 대부 2편과 3편에 등장하는 바로 그 축제. 한 전직 마피아는 성 젠나로 축제를 마피아 조직원의 가을 소풍에 비유하며 축제에 개입해 이권을 추구하는 걸 넘어서 마피아 간의 사적인 친교를 다지는 장소로 설명했다. 부패 척결에 앞장선 루돌프 줄리아니는 뉴욕시장 재직 시절인 1996년에 축제가 비로소 마피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선언했지만, 2014년 시점에도 여전히 제노비스 패밀리가 축제에 개입하고 있다.[262] 연간 10억 달러(약 1조 2천억 원) 가치인 91000톤의 생선을 취급하는 뉴욕 시의 초대형 어시장이다. 과거 신임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가 본격적으로 어시장에 개입하기 전인 1994년까지 풀턴 어시장을 통제해왔던 인물로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카마인 로마노(Carmine Romano)가 유명하다. 로마노는 어시장에서의 불법활동으로 약 5년간 복역하고 1999년에 출소한다. 2001년부터는 시 위원회에서 어시장을 관리하게 되면서 조직범죄의 영향력을 줄이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피아가 존재한다는 의혹이 있고, 1995년부터 법령이 바뀌어 어시장 내에서 사업하는 사람이 물고기를 하역하는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게 바뀌면서 마피아가 개입할 여지가 오히려 더 무궁무진해졌기 때문에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263] 리보리오 벨로모는 1989년부터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 밑에서 대행 두목(Acting Boss)과 일선 두목(Front Boss)을 두루 거치며 진작부터 후계자로 점 찍혔던 인물이다. 그는 1996년에 기소되는데, 여러 건의 갈취 혐의와 더불어 1988년에 본인의 집 뒷마당에서 총상을 입은 시신으로 발견된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안토니오 디로렌조(Antonio DiLorenzo)와 1991년에 차량 트렁크에서 5발의 총상을 입은 시신으로 발견된 마약상 랠프 드시모네(Ralph DeSimone)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결국 갈취 혐의만 인정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2건의 살인은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2001년에는 교도소 수감 중에도 국제 항만 노동자 조합(ILA)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1년의 형량이 추가되었고, 2006년에는 정부 증인이 된 마피아 전문 변호사 피터 펠루소(Peter Peluso)가 자신이 1998년에 수감 중인 벨로모를 접견하였고, 조직 내 지부장 대행을 맡고 있던 랠프 코폴라(Ralph Coppola)를 암살하라는 벨로모의 메시지를 조직에 전달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코폴라는 현재까지 실종된 상태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코폴라의 처형 사유는 벨로모에 대한 무례한 태도라는 설과 패밀리의 돈을 횡령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이 역시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벨로모의 살인 혐의 입증에는 실패하였다. 다만 함께 진행한 우편 사기 혐의는 인정되어 1년의 형량이 추가되었다. 한편 제노비스 패밀리는 2005년에 두목 빈센트 지간테가 수형자 병원에서 사망한 뒤에도 벨로모가 출소하는 2008년까지 3년간은 일명 숫사자(Danny the Lion)라 불리는 이스트 할렘 퍼플 갱 출신의 패밀리 원로 다니엘 레오(Daniel Leo)가 이끄는 대행 두목 체제로 운영되었다. 벨로모는 석방 이후 집단지도체제(Ruling panel)로 운영되던 패밀리에서 한 축을 담당하다가, 2010년 즈음 공식적으로 패밀리의 두목으로 추대된다. 동시기 제노비스 패밀리의 또 다른 실력자로,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의 의붓 삼촌으로 막강한 정치적 후광을 안고 있던 티노 피우마라(Tino Fiumara)가 있다. (피우마라는 2010년에 암으로 사망한다.) 2016년에 이르러 한 익명의 수사기관 관계자는 벨로모를 가리켜 "지금의 우리로써는 그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입증할 수 없지만, 그가 패밀리의 두목인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바로 지난 몇 년간 브루클린브롱스의 주요 인사들이 맨해튼 남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다.(I'm not saying we can prove he's committed a crime, but there's no doubt that he's the boss of the crime family. He's the reason why people from Brooklyn and the Bronx have been showing up in lower Manhattan in the last few years.)"라고 언론에 확인해줬다. 현재 벨로모는 마피아 패밀리의 전통적인 불법 사업을 총괄하면서, 뉴욕 시 브롱스와 교외 지역에 자신이 합법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수백만 달러 가치의 수많은 아파트들로부터 매달 상당한 임대료를 받고 있다. (벨로모 자신의 거주지도 저 아파트 중 한 곳이다.) 그 밖에도 마이애미 해변가(Collins Avenue)에 위치한 맨션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여러 건설회사와 사업•투자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전해진다.[264] 리보리오 벨로모의 딸인 사브리나 벨로모(Sabrina Bellomo)는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자신의 아버지를 변호하기도 했다. 벨로모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약 12년의 수감 생활을 겪으며 딸의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식을 놓쳤다. 딸은 2007년 아버지의 재판 때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하며 눈물을 흘리며 변호했는데, 딸에게 한마디 하라는 판사의 권유에 벨로모는 답변을 거부했고 그저 피고인의 최후 진술 때 "저는 공개 연설가 같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I'm not a public speaker or anything.)"라고 한 문장으로 짤막하게 얘기했다. 두 부녀의 관계는 2007년에 제작된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마지막 시즌에서 마피아 두목 토니 소프라노의 딸이 아버지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대에 진학하는 설정에 모티브를 제공했다고 보인다.[265] 2018년에는 8년간 벨로모의 일선 두목(Street Boss•Front Boss)이었던 피터 디키아라(Peter DiChiara)가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디키아라는 2016년 언론에 의해 패밀리의 일선 두목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일반 대중들에게는 다소 베일에 싸여있던 인물로, 과거 공갈죄로 5년 복역 후 2007년에 출소했다. 그간 두목 벨로모와 조직 내 지부장 및 주요 행동대원들 사이를 오가며 지시사항과 정보를 전달하는 중개인의 역할을 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디키아라의 후임은 1965년생인 마이클 라구사(Michael Ragusa)로 밝혀졌다. 그는 2001년 제노비스 패밀리의 국제 항만 노동자 조합(ILA) 갈취 재판의 피고인 명단에서 이름이 확인된다. 당시 직책은 행동대원이었다. 라구사는 2005년에 출소했고 한동안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나, 현시점에서 벨로모의 유력한 후계자로 점쳐지는 인물이다.[266] 그 외 구역: 맨해튼, 브롱스,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뉴저지 주, 라스베이거스, 캘리포니아 주, 플로리다 주, 캐나다 몬트리올.[267] 즉, 제노비스 패밀리 다음으로 오래된 조직이다. 1915년~1920년 사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이 패밀리의 구성원이 된 인물 중에는 후에 버팔로 패밀리의 두목이 되는 스테파노 마가디노도 있었다.[268]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보난노 패밀리의 대행 두목을 맡았던 살바토레 몬타냐(Salvatore Montagna)는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이었고, 2011년 캐나다에서 살해당했다. 몬타냐는 캐나다의 리주토 패밀리와 가까웠고, 살해된 것도 리주토 측의 항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게 정설이다. 몬타냐는 2017년 캐나다의 마피아 드라마 배드 블러드에 조연으로 등장한다.[269] 보난노 패밀리는 영화 도니 브래스코의 무대가 된 조직이다.[270] 보난노 패밀리는 1990년대에 다시 위원회에 진입한다.[271] 마이클 맨쿠소는 패밀리의 대행 두목을 맡던 시기인 2004년에 무용담을 여기저기 누설하고 다닌 입이 가벼운 히트맨의 암살을 지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살인교사 죄로 2006년에 수감되었다. 그는 복역 중인 2013년에 공석이던 두목 자리에 추대되었고 2019년 3월 12일에 약 13년의 긴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다. 다음 날인 3월 13일에는 맨쿠소 부재중에 패밀리의 대행 두목을 맡아오던 조셉 캄마라노 주니어(Joseph Cammarano Jr.)와 콘실리에리 존 젠코키호(John Zancocchio)의 공갈•갈취죄 재판이 열렸다. 캄마라노의 변호인은 공판정에서 ‘제 고객이 마피아처럼 생겼다고 유죄판결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Don’t convict my client for looking like a mobster)라고 변호했고 둘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272] 그 외 구역: 스태튼 아일랜드, 맨해튼, 브롱스, 뉴저지 주,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 주.[273]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인터뷰에서 “1980년대에는 감비노 패밀리가 가장 강한 조직이었나?”라고 묻는 질문에 감비노•제노비스 측이 조직원 수가 가장 많은 패밀리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만, 가장 강하다는 표현은 주관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특히 자신이 기억하는 한 패밀리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는 ‘우리가 가장 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즉, 조직원 수는 적을지언정 콜롬보 패밀리 역시 뉴욕 내 다른 4개 조직들과 대등한 입장에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274] 콜롬보를 저격한 인물은 제롬 존슨이라는 흑인이었는데, 사건 직후 콜롬보의 경호원에 의해 즉각 사살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콜롬보를 노린 저격의 주체가 위원회가 아닌 조셉 갈로의 쿠데타라는 설도 있다. 갈로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쿠데타 설을 차용했다. 당시 위원회에서 골칫거리였던 갈로를 제거하기 위해 콜롬보 저격의 책임을 갈로에게 전가했을 수도 있다. 영화가 실화이고 노동조합의 거물인 프랭크 시런의 회고를 기반으로 했지만, 시런이 버팔리노 패밀리에서는 말단 조직원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의 시각으론 당시 마피아 최고위급의 내막을 알 수는 없다. 그 점을 감안해야 함.[275] 콜롬보 패밀리는 1980~1990년대에 알려진 것만 판사 1명, 경찰관 2명을 살해했다고 추정된다.[276] 당초 콜롬보 패밀리의 부두목인 빅터 오레나는 수감 중인 카마인 페르시코의 대행 두목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카마인 페르시코의 아들 알폰세 페르시코가 석방되면 조직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부두목으로 돌아와야 했다. 정작 내려놓을 때가 오자 오레나가 거부했고 양측은 서로를 척살 대상으로 인식해 전면전이 발발한 것. 그 결과 민간인 3명 포함, 12명이 사망하고 18명의 관련자가 실종되었다. 항쟁은 페르시코 파벌이 승리했다. 항쟁이 끝난 뒤 후유증으로 약 20여 년간 70여 명의 조직원들이 크고 작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는다. 항쟁의 두 주역인 오레나는 1992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알폰세 페르시코는 2001년에 연방 공갈, 대출 상거래 및 돈세탁 혐의로 수감되는데 후에 여러 살인 혐의가 입증되어 2009년에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후에 콜롬보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1980년대 후반에 교도소에서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가 자신에게 “내가 멀리 있는 동안 오레나를 대리인으로 삼아야겠어.”라고 얘기했고 “그건 안 좋은 생각 같지만 당신이 보스니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회상했다. 오레나는 누구나 야심가로 판단한 인물이었고 페르시코는 그런 오레나를 통제할 자신이 있다고 단언했지만 그 결과 전면전을 불러왔다.[277] 콜롬보 패밀리는 항쟁 기간 중 위원회에서 제명되었으나, 종결 이후 2000년대에 다시 진입했다.[278] 종신형 복역 중에도 패밀리를 관리해온 4대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Carmine Persico)가 2019년에 듀크 대학 병원에서 사망하여, 페르시코의 사촌이자 대리인으로서 패밀리의 대행 두목을 맡아온 앤드루 루소가 조직의 5대 두목으로 추대되었을 수도 있으나, 카마인 페르시코의 조카인 시어도어 페르시코 주니어(Theodore Persico Jr)가 2020년 8월 출소 예정이기 때문에 두목 자리는 페르시코 가문을 위한 공석으로 남겨 두고, 패밀리는 계속 대행 두목이 이끄는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현시점에서 패밀리 내 최고위급 인사로 알려진 인물은 루소가 맞다.[279] 마세리아 이전에 모렐로 형제나 빈센조 테라노바가 있긴 했다.[280]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마세리아의 최후.[281]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라 코사 노스트라 창설 장면. 상석에 앉은 이가 마란자노, 칼을 들고 구성원들의 손을 따며 의식을 치르는 이가 찰스 루치아노.[282]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마란자노의 최후.[283]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위원회와 전미 범죄신디케이트 창설 장면. 루치아노의 오른쪽에 앉은이가 유대계 범죄조직 두목 마이어 랜스키.[284] 루치아노의 마피아 위원회는 시칠리아 마피아들이 '큐폴라'라는 기구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줬다.[285] 루치아노는 178cm의 키에 결코 건장한 체격은 아니었지만 밑바닥 깡패부터 시작해 세계구 범죄조직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개인 격투 능력도 보통내기가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는데, 1946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위원회 회의에서 비토 제노비스가 루치아노를 향해 '나이도 들고 예전 같지 않으니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 즉시 제노비스에게 달려들어 심한 구타 끝에 갈비뼈 3대를 부러뜨렸다.[286]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일화로 당대 암흑가에서 "코스텔로의 승인 없이는 뉴욕 시의 어느 누구도 판사가 될 수 없다.(Nobody in New York City can be made a judge without Costello's consent.)"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코스텔로는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와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는 관계였다고 전해진다.[287] 대부 1편의 시간적 배경인 1947년은 프랭크 코스텔로의 시대고, 소설 대부가 출간된 1969년은 카를로 감비노의 시대였다. 양측 모두 캐릭터 창조에 영감을 줬다고 평가받고 있다. 영화 속 비토 콜레오네처럼 프랭크 코스텔로 또한 마약 사업에다 더러운 사업(dirty business)이란 딱지를 붙였고, 말론 브란도가 대부 촬영 당시 프랭크 코스텔로의 육성을 들으며 연기에 참고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288] 프랭크 코스텔로의 출석은 청문회의 하이라이트로, 그는 언론에 의해 ‘미국 제1의 조직폭력배(America's #1 gangster)’이자 ‘태머니 홀(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뉴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부정한 정치 조직)의 실질적 지도자(de facto leader of Tammany Hall)’로 광고되며 그야말로 전미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코스텔로 측의 반발로 TV 생중계에 얼굴은 방송되지 않았고 손과 목소리만 전파되었다. 그는 청문회에 출석했던 다른 마피아 두목들처럼 묵비권을 행사하지도 않고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했지만 신경질적인 태도와 목소리를 유지했다. 한 의원이 "코스텔로 씨가 국가를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What have you done for your country, Mr. Costello?)"라고 묻자 "세금을 냈소!(Paid my tax!)"라고 대답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는 청문회 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국회 모독 죄로 14개월을 복역했다. 당시 청문회장을 찍은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289] 어릴 적 프랭크 코스텔로에게는 윌리 모레티라는 친구이자 사촌이 있었는데, 1937년에 코스텔로가 루치아노 패밀리의 대행 두목이 되면서 모레티가 패밀리의 부두목이 된다. (모레티는 불세출의 연예인 프랭크 시나트라를 사실상 만들어낸 인물이다. 자세한 사항은 상단의 마피아 조직의 특징 및 기타 사항 항목 참조.) 그러나 매독 후유증으로 뇌에 이상이 생긴 모레티는 전국에 생중계되는 키포버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협조하는, 말하자면 오메르타를 공개적으로 어기는 실수를 하는데 (다른 두목들은 대체로 중요한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돌려 말하는데 비해, 모레티는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당대의 유명 코미디언 흉내를 내며 농담 따먹기를 했다.) 그동안 모레티를 두둔해왔던 코스텔로마저 이 건은 덮어줄 수가 없었고 결국 위원회의 결정으로 살해된다. 암살자들은 모레티를 뒤가 아닌 정면에서, 또 얼굴이 아닌 가슴을 쐈는데 이는 마피아 세계에서 존경과 애정의 표시다. 생전에 모레티는 모든 마피아를 통틀어서 가장 유머감각을 보유한 인물로 손꼽혔고 그로 인해 모든 폭력배들이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살해를 계획하고 실행했던 마피아들도 눈물을 흘렸고 진심 어린 후회를 했다고 한다.[290] 지간테가 발사한 총알이 코스텔로의 머리에 명중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지간테는 24년 후에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이 된다.[291] 또 다른 별명으로 매드 해터(Mad Hatter)가 있는데 모자를 떨어뜨리는 순간 사람을 죽이는 기벽 때문이라고 한다.[292] 살인 회사는 400~1000명의 사람을 제거했다고 알려져 있다.[293] 처형의 직접적인 명분은 민간인 살해지만, 거국적으로 봤을 때 프랭크 코스텔로와 비토 제노비스의 권력 다툼 사이에서 희생된 것이 진실에 더 가깝다.[294] 1957년에 제노비스는 그 찰스 루치아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다 역으로 마약 사범으로 몰려 감옥에 간다. 미국 최대 마피아 조직의 두목이 길거리에서 마약 거래를 했다는 말도 안되는 혐의로.[295] 1959년~1962년: 앤서니 스트롤로(Anthony Strollo)->1962년~1965년: 토마스 에볼리(Thomas Eboli)->1965년~: 필립 롬바르도(Philip Lombardo)[296] 비토 제노비스는 수감 중에 자신의 대행 두목을 맡고 있던 앤서니 스트롤로의 암살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유는 자신을 감옥에 보내는 루치아노의 계획에 동참한 것으로 의심했기 때문에. 스트롤로의 시신은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297] 필립 롬바르도(Philip Lombardo)->빈센트 지간테(Vincent Gigante)->리보리오 벨로모(Liborio Bellomo)로 이어지는 계보[298] 마피아계의 최고 사형집행인 아나스타시아를 직접 사형 집행함.[299] 단적인 예로 1974년 10월의 어느 날, 감비노는 코니 아일랜드의 제왕이라 불린 악명 높은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도미닉 시알로(Dominick Scialo)와 한 레스토랑에서 마주쳤는데 시알로는 술을 마시면 아주 거만해지고 무례해지는 타입이었다. 이는 마피아 패밀리의 두목인 카를로 감비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감비노를 타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하였다. 풍월에 따르면 "당신은 XX 늙은이야", "네가 XX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You fucking old man", "who the fuck do you think you are?")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이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제지하여 레스토랑 밖으로 쫓아냈지만 정작 그 상황에서도 감비노 본인은 침착했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 거리에는 '시알로가 사라졌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 콘크리트 더미에 처박힌 시체로 발견되었다.[300] 평생을 폭력배로 살면서 단 하루도 수감되지 않았다. 단, 감비노 인생 최대의 오점으로 꼽히는 사건은 아일랜드계 조직폭력배 제임스 맥브래트니에 의해 조카가 납치되어 살해된 사건이다. 맥브래트니는 루케시 패밀리 지부장을 납치해 당시 루케시 패밀리 두목 카마인 트라몬티에게 성공적으로 몸값을 받아낸 후 자신감이 생겨 감비노의 조카를 납치했다. 원했던 몸값의 절반의 절반도 채 받지 못한 맥브래트니는 인질을 살해했다. 격분한 감비노는 수뇌부 회의를 연 후 행동대원 존 고티와 랄프 갈리온, 준 구성원 안젤로 루지에로에게 맥브래트니 암살을 지시했고 그들은 1년 만에 스태튼 아일랜드의 한 술집에서 목표물을 발견했다. 갈리온이 방아쇠를 당겨 3발의 총격을 가해 맥브래트니를 살해했다.[301] 1960년대 전성기 시절 감비노 패밀리는 정규 조직원만 500~800명에 준 구성원이 1000명 이상이었다. 감비노는 1972년에 자신에게 400백만 달러를 빌리고 갚지 않은 제노비스 패밀리 일선 두목 토마스 에볼리(Thomas Eboli)의 암살을 지시하기도 했다.[302]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이 일화가 언급된다.[303] 대부 2편부터 마이클이 서부 네바다로 이주하는 설정의 모티브 제공[304] 에볼리는 롬바르도 보다 앞서서 비토 제노비스의 대행 두목이었던 인물이지만 내부 세력 다툼에서 밀려났다. 그는 카를로 감비노와의 불화로 살해되었다.[305] 마피아를 겨냥해 제정된 RICO 법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최초의 피고인으로 기록된 인물. 1981년에 10년 형을 선고받지만 지나친 고령과 나쁜 건강 상태로 수형생활은 무리였다. 그는 선고 2개월 뒤 뉴욕 시의 한 민간 병원에서 사망한다.[306] 부두목 신분의 앤서니 살레르노가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한다. 그는 일명 뚱보 토니(Fat Tony)라고 불렸는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속 마피아 두목 팻 토니 캐릭터의 작명에 영향을 줬다. 살레르노는 지미 호파가 실종되고 11년이 지난 1986년에 마피아 위원회 재판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후 1992년에 스프링필드 연방 수형자 병원에서 사망한다. 살레르노는 사업 수완이 뛰어나고 자산 관리에 능했는지, 역대 미국 마피아의 주요 인사 중에서도 특히 재력으로 유명한데, 암흑가 인물의 특성상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어 크게 신빙성은 없지만 6억 달러($600 million, 약 7100억 원)에서부터 10억 달러($1 billion, 약 1조 2천억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추정치가 웹상에 존재한다.[307] 안젤로 브루노 암살 사건은 1978년에 애틀랜틱 시티에 도박이 합법화되면서 카지노가 들어서게 되는 것과 관련 있는데, 당연히 뉴욕 마피아 패밀리들도 카지노 사업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지만 애틀랜틱 시티의 대부분은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구역이었다. 특히 안젤로 브루노는 당대 위원회에도 표결권을 가진 명망 있는 두목으로 자신의 구역 내에서 뉴욕 패밀리들의 사업 전개를 허용하지 않던 중에 살해당한 것. 브루노의 사망 이후 뉴욕 마피아 세력은 본격적으로 애틀랜틱 시티에 진출했다.[308] 작중에선 주로 별명인 토니 프로라고 불린다. 한글 자막판에서는 카포레짐을 뜻하는 'Capo'를 두목으로 번역해 뉴저지의 두목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는 제노비스 패밀리 뉴저지 지부의 수장이었다.[309] 라스텔리는 징역복이 많았던 탓에 두목 재직 기간 중 2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수감된 상태에서 조직을 이끌었다. 그는 1991년에 가석방되고 그해에 사망했다.[310] 이후 살바토레 파루지아가 위원회에 의해 지명되어 한동안 대행 두목을 맡는다.[311] 고티와 함께있는 델라크로체. 두목 카스텔라노를 우습게 보던 존 고티가 델라크로체만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두려워했기에 고티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한다.[312] 마이크 타이슨이 15살 때 테디 아틀라스(Teddy Atlas)라는 권투 트레이너의 12살 먹은 처제 엉덩이를 만졌다가 총을 들고 찾아온 아틀라스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는 일화가 있다. 아틀라스는 경고의 말을 한 뒤 타이슨의 머리를 잡고 귀 옆쪽으로 총을 발사했다고 한다. 후에 타이슨이 아틀라스를 묘사하기를, 갱스터처럼 껄렁거리며 "내 삼촌이, 즉 우리 엄마의 남동생이 폴 카스텔라노의 인공 항문 주머니를 씻었어"라며 으스대는 타입(큰 연줄도 없는 사람이 암흑가 거물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걸 풍자한 표현)이었다고 본인의 공개 코미디에서 발언했다. 실제로 아틀라스는 얼굴에 400바늘을 꿰맨 거대한 칼자국이 있는데 수감 경력도 있는 등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암흑가의 폭력배가 되었을 인물이다. 그는 권총 발사 사건으로 커스 다마토의 체육관을 떠나야 했지만, 훗날 마이클 무어러라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을 키워낸다. 그는 현재 유명 권투 해설가로 활약중이다. 테디 아틀라스는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와도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이는 상단의 마피아 조직의 특징 및 기타 사항 항목 참조.[313] 퍼듀 팜의 2016년 연 매출은 8조 원 정도 된다.[314] 퍼듀 팜의 메인 사업은 닭고기고, 카스텔라노 역시 마피아 두목이면서 합법적인 사업에도 관여한 닭고기 유통계의 거물이었다. 보렐리는 카스텔라노를 치킨맨(Chicken Man)이라고 묘사했다고 하는데, 정황상 마피아 두목의 딸과 연애하는 게 위험하지 않냐는 주위의 질문에 "카스텔라노는 그저 닭고기 사업하는 치킨맨이다." 라고 한걸로 보인다. 치킨은 닭고기란 뜻과 겁쟁이란 두 가지 뜻이 혼재하기 때문에 카스텔라노가 굉장한 모욕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315] 암살된 카스텔라노와 빌로티. 아니엘로 델라크로체(Aniello Dellacroce)가 사망한지 14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카스텔라노는 폭력배라기보다는 사업가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뒷골목 출신의 젊은 조직원들은 이점에 불만이 많았다. 그간 델라크로체가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의 사망 이후 불만이 폭발했고 그 선두에 서서 항명한 이가 존 고티다. 토마스 빌로티는 카스텔라노의 최측근 인사로 카스텔라노의 경호원과 운전수를 겸하던 인물이었는데 부두목이 된 지 11일 만에 살해당했다.[316] 빈센트 지간테는 FBI의 도청을 경계하는 탓에 본인이 직접 소리 내어 말하는 걸 꺼렸다. 반드시 말할 필요가 있을 때조차 귓속말을 사용했고 각종 지시는 최측근들을 통해서만 하달되었다. 지간테는 자신의 이름을 소리 내어 발음하는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은 그 즉시 살해될 것이고, 다른 패밀리 조직원들 역시 가혹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실제로 다른 패밀리 조직원들의 경우, 정규 조직원으로 입단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제노비스 패밀리의 진짜 두목이 빈센트 지간테라는 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마피아 조직원들은 지간테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손가락으로 그들의 턱을 가리키거나 엄지손가락과 검지로 ‘Chin’의 머리글자인 알파벳 'C'를 만들었다.[317] 프로 전적: 25전 21승 4패 13KO. 1944년~1947년까지 약 3년간 활동.[318] 기록에 의하면 지간테는 두목이 되기전인 1969년에도 정신적 결함을 주장하며 기소를 물리쳤다. 이때부터 계산하면 약 28년간 심신상실로 법망을 피한 셈이다. 연방정부는 하버드 대학의 토마스 구틸, 컬럼비아 대학의 도널드 클라인, 텍사스 대학의 윌리엄 리드, 코넬 대학의 윌포드 반 고프, 뉴욕 대학의 스탠리 포트노어, 그리고 뉴욕 의과대학의 아브라함 할퍼른을 포함한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지간테를 검사하게 했다. (아마 매수된) 이 의사들은 지간테가 재판을 받거나 형을 받을 능력이 없다고 보증해 주었다.[319] 이 극적인 소재는 영화 애널라이즈 댓에서 치매환자 연기로 가석방되는 마피아 두목 '폴 비티' 캐릭터와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치매 걸린 마피아 두목 '코라도 소프라노' 캐릭터 등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 영향을 줬다. 단, 코라도 소프라노는 연기를 한 지간테와 달리 실제 치매를 앓는 점이 차이.[320] 세기의 재판(Case of Cases)이라 불린 1985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에서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으로 지명되어 실제 두목인 지간테를 대신해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당시 일선 두목을 맡고 있던 앤서니 살레르노(Anthony Salerno)였다. 사실 FBI는 수사 과정에서 앤서니 살레르노와 패밀리 지부장 매튜 이아니엘로 간 대화를 도청했는데 살레르노가 다른 마피아 패밀리의 신입 정규 조직원 후보자 명단에 제노비스 측이 추천한 인물이 누락되어 있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며 “이 일은 두목에게 맡겨야겠다.(I'll leave this up to the boss.)"라고 말하는 게 포착됐다. 즉, 연방정부는 앤서니 살레르노가 제노비스 패밀리의 실제 수괴가 아님을 파악하고 있긴 했다.[321] 갈취죄로 수감 중이던 제노비스 패밀리 부두목 베네로 망가노(Venero Mangano)는 1997년에 지간테를 상대로 증언하면 감형을 해주겠다는 정부의 제안에 죄수복 윗옷 단추를 풀며 지금 당장 총으로 쏘아도 증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한 일화가 있다. 망가노가 약 15년의 복역을 마치고 2006년에 석방될 당시 패밀리의 새로운 두목이 되지 않을까란 예상이 있었지만, 지나친 고령과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건강 문제로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원로가 된 망가노는 11년을 더 살다 2017년에 95세로 사망했다.[322] 57초부터 거리를 배회하는 지간테.(영상)[323]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프랭크 디치코(Frank DeCicco)가 대신 폭사했다.(사진) 이후 양측이 합의해 항쟁은 이어지지 않았다.[324] 지간테가 아무소에게 “살아서 떠나는 게 행운일거요.(lucky to leave this wake alive)”라고 압박했다.[325] 지간테가 유죄판결을 받는데 결정적인 증언을 한 인물이 존 고티 재판에도 증언한 바 있는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출신 새미 그라바노였다.[326] 지간테는 당연히 FBI와 교도관들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교도소에서 여러 일화가 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가끔씩 정신병자 연기를 그만두고 70대 고령의 나이에도 섀도복싱을 했고, 동료 수감자들을 지시하는 입장에 있었으며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한 교도관이 "만약 다른 수감자가 당신을 괴롭히면 어떡합니까?"라고 묻자 지간테는 "누구도 나를 엿 먹일 수 없소.(Nobody fucks with me.)"라고 대답했다고 한다.[327] 지간테의 대리인들: 1997년~1998년: 도미닉 시릴로(Dominick Cirillo)->1998년~2005년: 매튜 이아니엘로(Matthew Ianniello)->2005년~: 다니엘 레오(Daniel Leo)[328] 2001년 FBI의 수사 과정에서 수집된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 앨런 롱고(Alan Longo)의 녹취된 음성 중에는 이런 부분도 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가 끝났다고 얘기하게 놔두지 마라,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비토 제노비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빈센트 지간테는 존재한다. 우리가 여기 있음으로써.(Don't let anyone tell you we're dead, We're not. Because Vito Genovese ain't here no more, Vincent Gigante is. We're here.)" 또한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원 폴 제라시(Paul Geraci)는 조직원으로 위장한 FBI 측 정보원에게 "여전히 서피코씨(2002년에 사망한 제노비스 패밀리 고위 간부)가 자리에 있긴 하지만 두목은 아니야, (턱을 만지며) 이 사람이 두목이지.”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한편 지간테가 건강 악화로 사망하기 불과 2달 전에 차량 트렁크 속 시신으로 발견된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로렌스 리치(Lawrence Ricci)의 암살 역시 지간테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리치는 재판을 앞두고 있었고 조직에서는 그를 정보원으로 의심하고 있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329] 사망하기 전에 민간 진료가 허가되어 약 1달간 형 집행을 정지하고 민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서 빈센트 지간테의 장례식을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330] 한국인들이 미국의 부촌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캘리포니아베벌리힐스 보다 땅값이 더 비싼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이 하얀 벽돌 주택은, 1989년에 음반 기획사 사장 모리스 레비가 당시 시가인 49만 달러(약 6억 원)를 주고 구입한 후, 이유는 불명이나 지간테의 정부에게 단 돈 1만 6천 달러(약 1900만 원)에 기증했다.[331] 빈센트 지간테는 아들이 마피아 정규 조직원이 되는 걸 반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장남 앤드루 지간테는 마피아 정규 조직원이 아니지만 2003년에 마피아 갈취와 연루된 혐의로 약 2년간 복역하고 출소하기도 했다. 딸 리타 지간테는 2012년에 '대부의 딸(The Godfather's Daughter)'이란 책을 펴냈다. 리타에 의하면 아버지는 결코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고 심지어 타인이 전화기를 사용할 때에도 멀찍이 떨어졌다고 한다. 또 집안의 커튼은 항상 드리워져있었고 대화를 할 때는 녹음을 방지하기 위해 TV와 라디오의 음량을 크게 키웠다고 한다. 2015년에는 빈센트 지간테의 손자 필립 지간테가 뉴욕 주의 소도시 에어몬트의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지간테 가문의 내력을 알았음에도 당선되었다.)[332] 수사 당시 에스포지토의 자택(어머니가 소유한 1200만 달러짜리 연립 주택)을 압수수색할 때 집안 곳곳에서 미등록 불법 권총 2정과 현금 380만 달러(약 45억 원), 결정적으로 수기로 쓴 라 코사 노스트라 정규 조직원 명부를 발견했다고 한다. 재판 끝에 에스포지토는 앞서 압수된 380만 달러가 범죄활동으로 얻은 재화임을 인정하고 몰수에 동의한 뒤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333] 타임지 표지에 오른 마피아 두목으로서는 알 카포네, 프랭크 코스텔로에 이어 3번째.[334]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는 자신의 저서 ‘Underboss’ 452 페이지에서 두목 재직 시절 존 고티의 연간 수입(연봉)을 밝혔다. 최소한 500만 달러(약 60억 원)은 넘었고 대략 1000만 달러(약 120억 원)~1200만 달러(약 143억 원) 사이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썼다. 이를 2010년대로 환산하면 미국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저 수치의 3배인 연간 3000만 달러(약 360억 원)~3600만 달러(약 430억 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335] 그래서 두목이 된 뒤에 제노비스 패밀리와 루케시 패밀리에 의한 암살 위험을 넘겼다. 부두목 프랭크 디치코(Frank DeCicco)가 존 고티 대신 차량 폭탄으로 폭사하기도 했다.(사진)[336] 존 고티가 유죄 판결을 받는데 결정적인 증언을 한 부두목 새미 그라바노는 자신은 충성을 다했는데도 고티가 본인을 배신했고, 그의 허영심과 자만이 당시 조직을 위험에 빠지게 했다고 하며, 본인은 오메르타를 깼지만 여전히 마피아는 자신의 유산이며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337] 존 고티의 아들이자 한때의 후계자였던 존 고티 주니어는 조직원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빈센트 지간테에 비해 현장에서 조직원들과 동고동락한 자신의 아버지가 진짜 지도자라고 주장했다.[338] 대행 두목까지 포함하면 마시노 이전인 1991년에 정부 증인이 된 루케시 패밀리 소속의 알폰스 디아코(Alphonse D'Arco)가 있다.[339] 제노비스 패밀리 조직원들이 두목 빈센트 지간테로부터 내려온 지시라는 사실을 알릴 때 손가락으로 턱을 가리키는 수신호를 사용한 처럼, 보난노 패밀리 조직원들은 마시노를 언급할 때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켰다.[340] 사형이 구형 된 이유는 7건의 살인, 사기, 방화, 갈취와 그 밖의 혐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341] 부동산 중에는 보난노 패밀리의 본부격이었던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의 자신이 운영하던 레스토랑도 있다. 마시노는 현재 협조에 대한 공로로 석방되었다. 정부에 제공되지 않은 나머지 5채의 부동산은 마시노의 어머니와 아내의 집 등이다.[342] 바시아노는 마시노와 달리 감형을 조건으로 오메르타를 깨는 증언을 하라는 정부의 제안을 거부하고 수감을 받아들였다. 최근 전해지는 사진을 보면 교도소에서도 아주 행복해 보인다. 그의 변호사는 바시아노가 자신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터프하고 굉장한 사람이라고 전했다.[343] 2004년 마시노의 변절 이후 2007년까지 연달아 4명의 보난노 패밀리 정규 조직원들이 사법거래를 위해 오메르타를 깨고 정부에 협조한다.[344] 암흑가 인사들이 시릴로를 언급할 때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는 수화를 사용했다.[345] 5전 1승 3패 1무 1KO. 1949년에 데뷔해 약 1년간 활동.[346] 지간테와 함께 걷는 시릴로.[347] FBI 간부 존 프리처드는 뉴욕 타임스와의 1997년 인터뷰에서 제노비스 패밀리의 대행 두목이 된 도미닉 시릴로를 가리켜 '모든 패밀리를 감독하는 마피아 위원회의 지도자로써, 사실상 미국에서 가장 중대한 마피아 두목'으로 설명했다.[348] 도미닉 시릴로의 아들 니콜라스 시릴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74년에 4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평범한 집에 거주하는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마피아 두목이냐고 반문하며 자기 아버지는 전혀 범죄조직과 관련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연히 시릴로에겐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금괴나 보석 같은 실물 자산에 막대한 현금과 차명 부동산 등 수많은 은닉 자산이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시릴로의 처세는 과거 20년 가까이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으로 모든 사업을 총괄했던 카를로 감비노가 정작 본인은 자그마한 집에 거주하며 소박한 생활을 한 것과 비슷하다. 감비노는 엄청난 재산을 축적해 후대에 물려준 사람이고 자신의 여름 별장이 따로 있었다. 대외적인 눈속임을 한 것.[349] 수사관들은 시릴로가 병원에서 갓 퇴원했을 무렵인 1998년 여름에도 노조 자문 위원 마이클 크리미, 사업가 앤서니 네그리가 교외의 한 레스토랑에서 시릴로와 3차례나 회동을 가지며 건설 마감 시한과 노조 비용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포착했다. 네그리는 사설탐정, 경호원, 장갑 자동차를 제공하는 익스플로러라는 경호업체의 사장인데, 그 회사는 1996년에 미국 재무부 사무실을 경비하는 6년간 750만 달러짜리 국가 계약을 체결했다. 당초 범죄조직과의 연계가 의심되어 네그리를 미행하던 수사관들은 극도로 조심한데다 사람을 가려만나는 걸로 유명한 마피아계의 거물인 시릴로가 회동에 나타나자 전율에 휩싸였다고 한다. 레스토랑의 다른 손님도 시릴로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그가 자리를 뜨자 "저 사람이 혼자 걷고 있는데 누군가 총을 쏘지 않는 게 다행이야."라고 일행에게 말하는 게 수사관의 귀에 들렸다고 한다. 다만 수사는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2003년의 기소 명단에는 셋 중 누구도 없었다. 시릴로의 심장마비는 드라마 소프라노스에서 뉴욕 마피아 패밀리의 대행 두목인 필 레오타도가 심장 질환을 겪은 후 잠시 물러나는 에피소드의 모티브로 추정된다.[350] 니콜라스 시릴로는 마피아 정규 조직원이 아니다. 도미닉 시칼라는 훗날 2007년에 정부 증인이 되어 역대 보난노 패밀리 지부장 중에서 4번째로 밀고자가 되는 인물이다. 빈센트 바시아노 주니어는 당대 보난노 패밀리 대행 두목의 아들이다.[351] 일반인이 마피아 정규 조직원을 모욕하거나 폭행하면 처형될 수 있다는 원칙이 있고, 평소 도미닉 시릴로는 니콜라스가 마약 중독자라는 점을 한심하게 생각해 부자관계가 썩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352] 마피아의 아들이 사전협의 없이 살해될 경우에는 반드시 조직 간 항쟁이 일어난다. 보난노 패밀리 지부장 겔란도 샤샤가 캐나다 마피아 정규 조직원의 아들을 살해한 이유로 1999년에 처형된 사례가 있다고 후에 증인이 된 조셉 마시노가 밝히기도 했다. (사실 아들 살해는 처형의 대의명분에 가깝고 보난노 패밀리와 리주토 패밀리 간의 알력 다툼 속에서 리주토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샤샤가 보난노 패밀리에 의해 제거당한 게 진실에 더 가깝긴 하다.)[353] 살해된 피졸로.[354] 맨쿠소는 13년을 복역하고 2019년에 출소했다. 그는 2013년에 보난노 패밀리로부터 대행이 아닌 공식 두목으로 추대된다.[355] 당시 체포에 참여한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그는 말수가 정말 적은 옛날 마피아다. 모든 체포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단 2마디도 안 했다."라고 했다. 수사관들은 시릴로 딸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부엌 식탁에 올려진 손으로 쓴 '입단 명부'를 발견했는데, 그 종이에는 이미 사망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정규 조직원들의 이름 옆에 그 사망자들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이 정규 조직원으로 지도부에 추천된 인물들의 이름이 짝을 맞춰 쓰여있었다고 한다.[356] 기사 내용을 보면, 니콜라스 시릴로 암살에 보난노 패밀리가 관여한 부분은 없고 모든 지시를 제노비스 패밀리(도미닉 시릴로) 측에서 일선 암살자(랜돌프 피졸로로 추정)에 하달한 걸 알 수 있다.[357] 작중 자신의 마약 사업을 위해 뉴욕 최대 마피아 조직의 두목인 아버지에 대항하다 살해당하는 아들의 이름이 니콜라스 루소다.[358] 이 레스토랑은 1996년에 폐업하지만, 2000년에 원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재오픈하여 지금도 영업 중이다. 현 주인 로버트 이아니엘로(Robert Ianniello)는 매튜 이아니엘로의 동생. 실질적인 영업은 로버트의 아들이 맡고 있다. 영화 아이리시맨에 이 레스토랑이 나온다.[359] 1970년대 뉴욕 시의 매춘 산업을 다룬 2017년에 제작된 HBO 드라마 더 듀스에 지부장 신분의 매튜 이아니엘로가 등장한다. 작중에선 주로 별명인 '매티 더 호스'로 불린다.[360] 양키 스타디움에 핫도그를 공급하는 식품업체에서도 뒤를 봐주는 대신 보호세를 받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양키 스타디움에서 먹은 핫도그는 모두 마피아의 관할이었다는 이야기.[361] 수사기관에서 2004년에 찍은 이아니엘로의 감시 사진. 가운데의 선글라스를 쓴 인물이 이아니엘로.[362] 이아니엘로가 기소되고 5개월 후 지간테가 수형자 병원에서 사망하여 제노비스 패밀리의 대행 두목 체제는 끝이 난다. 그 후 다니엘 레오가 이끄는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던 제노비스 패밀리는 2010년에 이르러 새 두목을 선출한다.[363] 재판 과정에서 총 1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25개의 폐기물 처리 업체를 보유한 코네티컷 주의 사업가 제임스 갈란테가 이아니엘로에게 4년간 80만 달러 이상의 보호세를 상납한 사실이 밝혀졌다. 갈란테 역시 선량한 피해자가 아닌 이탈리아 혈통의 제노비스 패밀리 동업자였다. 사업을 하면서 마피아의 덕을 많이 본 인물로서 자발적인 상납을 한 것.[364] 85세의 노회한 마피아 두목이 가상의 마피아 두목 마이클 콜레오네의 말년을 그려낸 대부 3편을 보다 체포되었다는 사실이 묘한 느낌을 준다.[365] 이아니엘로의 자택은 뉴욕 주 올드 웨스트베리(Old Westbury)에 있는데 이 마을은 2011년 블룸버그지에 의하면 미국 전체에서 2번째로 부유한 마을이다.[366] 마이클 프란지스는 400개가 넘는 NCAA 대학에서 대학생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강연했고 MLB, NBA, NFL에서 뛰는 프로 운동선수들에게 강의를 해왔다.[367] 그가 쓴 책이 한국에 번역돼서 출판되기도 했다.[368] 2010년대 가치로 환산하면 저 금액의 3배를 하면 된다. 프란지스는 두목에게 “지금껏 본적도 없을 만큼의 큰돈을 벌어다 주겠다고 얘기하면서 휘발유 밀매 사업건을 허가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수입의 20%만 두목에게 상납하고 나머지는 본인 몫으로 가지는 마피아 조직의 특성상 프란지스는 당대 가장 부유한 마피아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시기에 그는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빈센트 지간테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369] 한 연방 보고서는 알 카포네 이후 미국 마피아를 위해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인물로 마이클 프란지스를 꼽았다. 단, 사업 수완과는 별개로 프란지스는 당시 감비노 패밀리 지부장이던 존 고티와 중고품 시장 사업건으로 마찰을 빚은 적이 있는데 담판 끝에 자신이 굴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란지스에 의하면 고티는 절대 굴복시킬 수 없는 남자라고.[370] 특별반은 복잡한 프란지스 사업의 수익원을 정확하게 분류하는데 형광펜 색깔이 20가지나 들었고 조직을 파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고 한다.[371] 프란지스의 탈퇴 소식을 접한 패밀리 두목 카마인 페르시코는 격분했고 1989년에는 암살 계획을 진행시킨다는 이야기가 돌자 프란지스를 기소했던 에드 맥도널드 연방검사가 교도소로 찾아와 정부 증인이 되기를 권했지만 프란지스가 거절했다. 실제로 FBI 특별 수사관 버니 웰시가 청문회에서 “그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했고 에드 맥도널드 연방검사는 “저는 마이클 프란지스의 입장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암살 계획은 진행되지 않았다.[372] 현역 시절 프란지스의 주 수입원이었던 브루클린 레드 마피아와 함께하는 휘발유 밀매는 프란지스 수감 이후 제노비스 패밀리 지부장 다니엘 파가노가 이어받았다. 그는 3개 뉴욕 마피아 패밀리가 참여한 협회의 주축이 되었고, 이를 통해 브루클린 레드 마피아의 불법 휘발유 사업을 약 12년간 갈취하여 큰돈을 벌었다. 1999년 연방 정부는 재판을 통해 파가노가 7700만 달러(약 914억 원)에 달하는 자동차 연료세를 탈루한 혐의를 입증했다. 그로 인해 파가노는 2007년까지 약 8년간 복역했다. 파가노는 프란지스와 달리 계속 마피아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고 2015년에는 공갈 혐의로 2년 3개월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373] 본인은 아니고 본인 역을 맡은 배우가 1컷 나온다. 정작 프란지스는 스콜세지 감독이 마피아가 하나씩 소개되는 롱테이크 신에 본인을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자신은 다른 조직이었기에 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374] 사실 프란지스는 유죄판결과 동시에 마피아 생활 청산을 선언했기 때문에 다른 고위급 마피아와 달리 복역 중에 사업을 관장할 수도 없었고, 조직으로부터 지원은커녕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가계 수입이 0에 가까운 상황에서 그간 모아놓은 재산만으로 총 7년의 수감 기간 동안 여섯 식구를 부양했다. 여기에 더해 유죄판결에 따른 벌금과 1400만 달러의 손해 배상액, 재판에서 탈세 혐의가 인정됨에 따라 국세청으로부터 청구 받은 5000만 달러가 넘는 세금까지 성실하게 납부했고, 출소 후에는 새로 시작한 사업이 연달아 3차례나 실패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자가용 비행기, 전용 헬리콥터, 뉴욕과 캘리포니아, 플로리다에 위치한 저택 등 마피아 생활을 통해 얻은 재산들을 하나씩 잃었다. 제일 어려웠던 시기에는 다시 범죄 사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오른 적도 많았지만 끝내 잘 이겨내어 합법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논평내용] 조직범죄는 뭐고, 연 매출 500억 달러의 산업은 또 무슨 소리인가. 미국 철강산업보다 높은 수익률? 컨설턴트, 변호사, 노동법 전문가? 대기업과 흡사한 비즈니스 구조라니, 우리의 토니 소프라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 물론 현실 속 마피아와 '토니 소프라노'는 전혀 다른 존재다. 대통령 자문위원회에 제출한 조직범죄 보고서에 등장하는 '마피아 비즈니스'와 토니와 그 수하들이 대표하는 마피아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바로 뉴욕 5대 마피아 중 하나인 콜롬보 패밀리의 지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토니 소프라노와 그의 조직 이야기가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마피아의 광범위하고도 복잡한 비즈니스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과 여의사에게 조직 이야기는 물론이고 속내까지 털어놓다 걸린 마피아 두목이 있다면 십중팔구 자동차 트렁크에서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376] 53년 평생 마피아로 살면서 단 10개월만 수감된 바 있다.[377] 21세기 들어 미국 마피아 패밀리는 의도적으로 저자세를 유지해 메인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해오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 마피아 패밀리의 역사와 현황 등이 재조명되었다.[378] 자세한 사항은 페이지 상단 역사 단락의 현재의 미국 마피아 항목 참고[379] FBI 요원 로버트 그랜트에 의하면 "할리우드에 의해 여러 차례 미화된 시카고 아웃핏의 정규 조직원 숫자가 얼마나 적은가와는 상관없이, 그 작은 지도자 집단은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라고 얘기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시카고 아웃핏은 주요 이권을 쥐고 있는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조직 구성을 가진 걸로 보인다. 애초에 마피아 형태의 범죄조직은 그 특성상 자기네들이 다른 조폭들을 직접 지배하는 숫자는 매우 적고, 패밀리의 정규 조직원 숫자 또한 적은 편인데, 고대 로마 시대 대가문을 연상시키는 암묵적 합의나 독점의 방식을 이용해 그 영향력과 세력은 규모에 비해서는 상당히 큰 편이다.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암흑가의 패러다임이 바뀐 영향도 있다. (비록 동유럽계 범죄조직이긴 하지만) 드라마 더 와이어 속 마피아 형태의 범죄조직을 이끌고 있는 '더 그릭'의 사업 방식을 보면, 범죄 신디케이트와 스트리트 갱단이 각각 어떻게 다른 느낌인지 잘 알 수 있다. 유독 뉴욕의 마피아 패밀리들은 다른 도시의 라 코사 노스트라 패밀리나 주로 20여 명 안팎의 혈족으로 구성되는 은드랑게타의 은드리나와 비교했을 때 몸집이 큰 편이다.[380] 패밀리 시크릿 작전 1년 후에 아웃핏 부두목 앤서니 지조(Anthony Zizzo)가 실종되었다. 아내에게 점심 식사를 하러 간다고 얘기한 후 그대로 실종된 지조는 조직 내부를 정화하는 차원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FBI에서 지조의 행방을 아는 신고자에게 1만 달러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법 집행기관에서는 지조의 뒤를 이어 아웃핏 신디케이트의 부두목이 된 조셉 안드리아키(Joseph Andriacchi)를 유력한 용의자로 꼽고 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할 수 없었다. 여담으로 안드리아키가 400만 달러 대출금에 대한 담보로 잡아놓은 자신 소유 20개 부동산에 대한 압류 소송에 휘말렸다가 이내 대출기관과 합의한 후 압류 사건을 취하했다는 내용이 2014년에 기사화되기도 했다.[381] 1976년부터 38년 동안 도합 1642명의 시카고 공무원이 부패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13년에만도 45명의 공무원이 유죄로 판결됐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과거 이 대학 정치학과의 교수이자 알 카포네 시대를 직접 목도한 찰스 미리엄은 시카고를 위부터 아래까지 완벽히 부패한 미국 유일의 도시라고 했다.[382] 아웃핏은 시카고에서 시작한 전미 규모 노조인 LIUNA 로컬 1번, 5번, 8번 노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고, 1번 로컬 회장 빈센트 솔라노와 5번 로컬 회장 알프레드 필로토는 아예 아웃핏의 정규 조직원들이었다. 노조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역임했던 인물들도 아웃핏과 가까웠다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또한 아웃핏 두목 존 디프론조 남동생의 아내인 조세핀 디프론조라는 인물이 소유주로 있는 D&P 건설회사는 2015년까지 시카고의 공립학교 건축을 독점으로 맡고 있었다.[383] 그는 일명 '코가 없는(No Nose) 디프론조'라고 불렸는데, 21세 때 옷 가게에서 절도를 하고 유리창을 뛰어넘다 코의 일부가 베여졌기 때문이다. 아웃핏 조직원들이 디프론조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 때, 이름을 얘기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키는 수화로 대체했다. 그는 1952년에 발생한 후 현재까지 미제로 남은 '정치인 찰스 그로스 살인사건'의 용의자였다. 1996년에 수감된 사무엘 칼리시의 뒤를 이어 조직을 장악한 그는 1994년 이후로 단 한차례도 수감되지 않았으며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자동차 영업소를 운영했다. 2018년에 디프론조가 사망했을 때 미국 방송국 뉴스에 나온 바 있다.(영상)[384] 불법 도박 사업과 공갈죄로 복역했다가 2006년에 석방된 드로렌티스는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카펫 세탁업체를 운영하고 있다.[385] 안젤로 브루노는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하비 카이텔연기한다.[386] 마피아가 아닌 일반 범죄자들이 불법행위로 수입을 올릴 경우에도 마피아에게 수입의 일부를 바치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많은 범법자들이 반항했으나 스카르포는 항의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했다.[387] 필립 테스타가 해당. 테스타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1컷 등장한다.[388] 니키 스카르포존 스탠파가 해당.[389] 랄프 나탈레가 해당. 나탈레는 미국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두목 중 최초로 정부 증인이 된 인물이다. 1995년에 조셉 멀리노가 자신은 부두목을 맡고 나탈레를 두목으로 추대한다. 나탈레가 1998년에 가석방 규정 위반 혐의로 재수감되었을 때 멀리노가 패밀리의 전권을 장악하고 수감된 나탈레에게는 일체의 지원을 끊는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낀 후 오메르타를 깬다. 나탈레는 멀리노의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한 건 물론이고, 뉴저지 주 캠든 시의 시장이었던 정치인 밀튼 밀란과 마피아의 관계를 폭로해 현직 시장으로 하여금 유죄 판결을 받게 만든다.[390] 감비노 패밀리의 후원을 받아 1991년에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두목이 된 존 스탠파와 스탠파를 인정하지 않은 조셉 멀리노 사이의 필라델피아 마피아 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참고삼아 봐보자.[391] 젊은 시절 10년의 수감생활을 겪은 리감비는 두목 대행 기간 내내 자신에게 가해진 기소를 물리치고 무죄로 풀려났다.(영상) 리감비는 아주 안정되게 필라델피아 마피아를 이끈 인물로써 과거의 안젤로 브루노와 비견된다. 리감비의 젊은 시절 멘토가 패밀리의 부두목이었던 처키 멀리노였는데, 처키의 아들이자 패밀리의 두목이 된 조셉 멀리노를 위해 리감비는 조셉의 콘실리에리를 맡았다. 리감비는 2019년에 자신의 80번째 생일파티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392] 멀리노는 화려한 옷차림에 롤스로이스 컨버터블을 몰고 다니며, 언론과도 거리낌 없이 인터뷰하는 등 과거 시카고의 알 카포네나 뉴욕의 존 고티처럼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다. 수감 중에도 패밀리 사업 수익이 리감비를 거쳐 멀리노에게 상납됐다는 증거로, 2011년 출소 직후 곧바로 플로리다 주의 호화 저택으로 이사를 갔다. 그는 자신은 더 이상 마피아 조직원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마피아들이 법망을 피하는 기본 방식은 조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조직원임을 부정하는 게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사법 당국에서는 여전히 그를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두목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근 뉴욕의 제노비스•루케시 패밀리와 공동으로 진행한 공갈과 불법 도박 사업 혐의로 단기 자유형 선고를 받고(영상) 재수감되어 2020년에 출소할 예정이다.[393] 잭 지아칼로네는 지미 호파 실종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디트로이트 마피아의 전 일선 두목(Front Boss) 겸 지부장 앤서니 지아칼로네의 조카다. 앤서니 지아칼로네는 영화 아이리시맨에 등장한다. 작중 앤서니 지아칼로네의 별명인 토니 잭으로 불릴 때가 많다.[394] 프로비던스 파벌 출신. 각각 레이먼드 시니어, 레이먼드 주니어라고 불렸다.[395] 영화 디파티드와 블랙매스로 잘 알려진 윈터 힐 갱단은 1955년에 보스턴에서 결성된 아일랜드 혈통과 이탈리아 혈통으로 구성된 범죄조직이었는데, 활동 지역이 겹치는 페트리아카 패밀리의 보스턴 파벌과는 적대했지만 프로비던스 파벌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3대 두목 제임스 벌저의 카리스마와 부패한 FBI 요원과의 연계로 한때는 라 코사 노스트라를 제치고 보스턴 제일의 범죄조직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정부에 협력한 마지막 두목 케빈 윅스를 끝으로, 1999년 즈음에 조직 계보가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95년부터 도피 행각을 이어가다 2011년에 체포된 제임스 벌저는 2018년에 교도소에서 마피아(제노비스 패밀리) 출신 수형자에게 살해되었다. 벌저에 협력했던 FBI 요원 존 코널리도 2002년에 10년, 2008년에 40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396] 1968년~2001년까지 복역한 그는 후에 마피아 행동대원이라는 신분 탓에 FBI의 표적 수사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그는 정부로부터 2600만 달러(약 311억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리모네는 두목으로 있는 내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대행 두목들을 내세웠고, 한차례 불법 도박 사업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영상)[397] 피터 리모네의 대행 두목이기도 했던 디넌지오는 현존하는 마피아 중 가장 뚱뚱한 사람으로 꼽힌다. 현 부두목과 콘실리에리는 프로비던스 파벌 출신.[398] 2015년에 사망.[399] 대니 그린은 마피아와 동업관계에 있었지만 결국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전면전이 진행됨에 따라 클리블랜드에서 40여 개의 폭탄이 터져 당대 언론은 클리블랜드를 미국의 폭탄 도시(Bomb City U.S.A.)라고 불렀다. 대니 그린과 클리블랜드 마피아의 항쟁을 다룬 영화로 2011년에 제작된 킬 더 아이리쉬맨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2019년에 제작된 아이리시맨 과는 다른 영화다.[400] 뉴욕 5대 패밀리의 두목과 부두목들을 겨냥한 1985년 위원회 재판으로 가는 본격적인 수사의 시작이 클리블랜드 마피아 수사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측의 결정적인 증인이 된 마피아 변절자로 로스앤젤레스 패밀리 행동대원 레이 페리토(Ray Ferritto)가 있다. 페리토는 대니 그린을 직접 암살한 인물이다.[401] 템파 시는 야구팀 템파베이 레이스의 그 도시다. 홈구장은 템파의 위성도시인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위치.[402] 산토 트리피칸테 시니어, 산토 트리피칸테 주니어라고 불렸다. 특히 트리피칸테 주니어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마피아가 맡은 부분이 있다면 가장 깊이 관여했던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는 영화 도니 브래스코에도 잠깐 등장한다.[403] FBI에 의하면 전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의 아들 존 고티 주니어가 감비노 지부장 신분으로 2005년부터 템파 시의 조직범죄를 총괄했다고 하며, 2008년에 공갈, 납치, 살인 공모, 마약 밀매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존 고티 주니어가 재판에서 승소했다. 존 고티 주니어 본인은 2001년을 끝으로 마피아를 은퇴했다고 주장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믿지 않는 상황. 여담으로 2017년에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가 존 고티 주니어의 무죄를 이끌어낸 변호사 제프리 리치만(Jeffrey Lichtman)을 선임했지만, 종신형을 피할 순 없었다.[404] 영화 갱스터 스쿼드로 유명한 1940~1960년대 LA 암흑가를 지배한 미키 코헨(Mickey Cohen)은 찰스 루치아노의 측근 중 하나인 거물 유대계 폭력배 벅시 시겔의 죽음 이후 그의 조직을 장악했던 인물이며, 유대계와 이탈리아계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범죄조직을 이끌었다. 그는 마피아 위원회와도 가까운 사이였지만, 엄연히 라 코사 노스트라 LA 패밀리의 두목은 아니었다. LA 패밀리는 그런 독립적인 코헨 조직과의 싸움에서도 무능함을 보였다.[405] 한 마피아는 LA 마피아가 한일이라고는 슈퍼맨을 죽인 것 밖에 없다고 했는데, 1950년대 TV 시리즈에서 슈퍼맨을 연기했던 조지 리브스의 사망 사건을 빗댄 농담이다. 당시에는 자살로 알려졌지만 여러 법의학자들은 타살을 의심했고 암흑가에서는 리브스와 정을 나누던 정부의 남편이 LA 마피아에게 청부 살인을 요청해 암살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406] 크립스블러즈 갱단에 마약을 공급했던 LA의 흑인 마약왕으로 ‘프리웨이’ 릭 로스가 있다. 그는 활동 시기는 다르지만 2007년에 제작된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로 유명한 뉴욕 할렘의 흑인 폭력배 두목 프랭크 루카스와 비견된다.[407] 밀라노의 부두목 토마소 감비노(Tommaso Gambino)는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원 로사리오 감비노(Rosario Gambino)의 아들이다. 또한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들인 존 감비노, 프랭크 칼리와 사촌지간이기도 하다.(존 감비노는 로사리오 감비노의 형이다.) 토마소 감비노는 2001년에 아버지 로사리오 감비노의 가석방을 위해 당시 대통령 빌 클린턴의 이복형제인 로저 클린턴 주니어에게 현금 5만 달러와 롤렉스 시계를 뇌물로 준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결국 로사리오의 가석방은 무산되고 5년 후인 2006년에 가석방되어 이탈리아로 추방되었고 2019년에 시칠리아-미국 양대륙 간 마피아 불법 공조에 다시 한번 연루되었다.[408] 뉴올리언스의 이탈리아인 게토는 미국에서 가장 빈곤하고 큰 규모를 자랑했다. 뉴올리언스는 게임 마피아 3의 배경이기도 하다.[40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피아 전성시대인 금주법 기간을 전후해서는 지역 내에서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했을 것이다.[410]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묘사하는 콜로시모의 최후.(2분 48초부터.)[411] 전 콜롬보 패밀리 지부장 마이클 프란지스는 "이런 얘기를 하면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앙카나가 대통령 암살에 관여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영상)[412] 디프론조에 대해서는 상단의 시카고 아웃핏 항목 참고.[스포일러] 영화에서는 버팔리노가 수형자 병원에서 사망하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1989년에 석방되었고 5년 후 민간 병원에서 사망했다. 대행 두목을 내세웠지만 공식적으로는 사망할 때까지 패밀리의 두목이었다.[414] 조지 맥마누스라는 도박꾼이 용의자로 검거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살해 동기는 로스스틴이 암살자에게 진 도박빚을 갚지 않아서라는 게 정설.[415] 미국 조직범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둘의 첫 만남은 이렇다. 어린 랜스키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량배였던 루치아노가 랜스키의 돈을 갈취하려고 했다. 이에 랜스키는 격렬하게 반항했는데,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덩치도 작았지만 그 배짱을 높이산 루치아노는 랜스키를 존중했고 그 뒤 평생 동안 지속되는 우정을 쌓는다.[416] 한 FBI 요원은 랜스키가 합법적인 길을 걸었으면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이라도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417] 이 조직은 유대계인 시겔이 수장인 조직으로써 당연히 라 코사 노스트라 LA 패밀리와는 별개의 조직이었지만, 시겔의 영향력으로 전미 범죄신디케이트에도 참여하고 뉴욕의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 패밀리들과 아주 가까웠으며 1961년에 조직이 해산되기 전까지 줄곧 LA 패밀리를 압도해왔다.[418] 찰스 루치아노가 1946년 아바나 회합에서 시겔의 삶이 종결되어야(conclusion) 한다고 주장했고, 마이어 랜스키가 동의했다고 한다. 암살은 루케시 패밀리 행동대원 프랭키 카보가 수행했다.[419] 시겔 사후 그의 조직은 같은 유대인 혈통의 '로스앤젤레스의 왕(King of Los Angeles)'이라고 불린 미키 코헨(Mickey Cohen)에게 넘어갔다.[420] 우리나라 기준으로 야인시대를 본 이들이 이성순이 최고냐 김두한이 최고냐라며 논쟁하듯이 더 와이어에서 볼티모어의 한 흑인 마약상이 "뉴욕의 범피라는 인물이 경찰도 두려워할 정도로 흑인 조직폭력배 중 최고였다."라고 언급한다.[421] 2019년에 범피 존슨을 주인공으로 한 ‘갓파더 오브 할렘’이란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작중 실존 마피아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와 조셉 보난노가 등장하고, 행동대원 시절의 젊은 빈센트 지간테가 등장한다. 특히 지간테는 사사건건 주인공 존슨과 마찰을 빚는 악역이다. (작중 묘사와 달리 둘 사이가 나빴다는 기록은 없는 것 같다.)[노조에관해] 지미 호파의 전미 트럭운송조합 외에도 국제 항만 노동자 조합, 지붕 수리공 조합 등 셀 수 없이 많은 미국의 노동조합들이 여러 이유로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와 결탁 관계에 있었거나, 결탁 관계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마피아의 수지맞는 핵심 사업이 바로 노조 장악이기 때문.[423] 지미 콘웨이는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다.[424] 바라오는 단순한 지부장이 아니라 약 6년간 루케시 패밀리의 콘실리에리 대행 직책까지 맡은 인물이다. 바라오의 영화 속 이름은 폴 시스로.[425]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600만 달러어치의 현금과 보석이 강탈된 사건으로, 2013년 가치로 환산할 경우 1790만 달러(약 214억 원)에 달한다. 이 사건을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가 배후조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건 대부분의 관련자가 검거되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600만 달러 강탈 기록은 2019년까지 깨지지 않았다.[426] 에이스 로스스틴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다.[427] 로젠탈이 배팅하면 미국 지하 도박판의 판도가 바뀔 정도였다고 한다.[428] 앤서니 스필로트로를 모델로 한 캐릭터 니키 산토로는 영화에서 조 페시가 연기한다. 스필로트로는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유독 폭력성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상대방이 주먹으로 때리면 자신은 야구 방망이를 들었고, 상대방이 칼을 휘두르면 자신은 총을 꺼냈으며 상대방이 총을 겨누기라도 하는 날에는 끝까지 쫓아가 살해했다고 한다.[429] 보르 브 자코녜는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430] 아그론 암살의 배후로 감비노 패밀리가 경유세 사기를 일으킨 보복의 일환으로 살해한 것이라는 설과, 1989년에 RICO 법으로 기소되는 보리스 골드버그라는 레드 마피아 두목이 배후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431] 바라굴라는 후에 루케시 패밀리 부두목 앤서니 카소와 호흡이 잘 맞아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도 함께 했다.[432] 2명의 레즈니코프 암살자들은 1989년에 10건의 살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이 사건의 자세한 인과 관계는 시간이 흐르고 1994년에 루케시 패밀리 부두목 앤서니 카소가 정부 측 증인이 된 이후 언론에 사건을 회고하기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여담으로 크리스토퍼 퍼나리는 1986년에 보난노 패밀리 대행 두목 카마인 갈란테 살인 혐의가 포함된 여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8년 복역 후 2014년에 출소했고, 앤서니 카소는 증언을 했음에도 다른 마피아 출신 증인들과 달리 감형이 인정되지 않아 1994년에 36건의 살인이 포함된 여러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미국의레드마피아에관해] 이탈리아계 라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와 직접적인 연관이 드러나지 않아서 표를 작성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레드 마피아의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자면 첫째로, 드러난 정보가 워낙 적지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러시아계 폭력배라는 보리스 카민(Boris Komin)이 있고, 미국 교도소에서 9년을 복역하고 2004년에 러시아로 추방된 뱌체슬라프 이반코프(Vyacheslav Ivankov), 2010년에 연방 의료 보험 사기로 3년형을 선고받은 아르멘 가자리아란(Armen Ghazaryan), 2017년에 기소된 라즈덴 피테르스키(Razhden Pitersky) 등이 있다.[434] 내부 권력투쟁 중 조셉 마시노 파벌이 반대파의 유력 지부장 3명을 일시에 제거한 사건으로, 마시노 본인이 직접 암살 계획이 실패할 것에 대비해 부하들과 무기를 들고 살해 현장 근처의 차량에서 대기했다고 전해진다. 영화 도니 브래스코에서 이 사건이 묘사되지만 실제와는 아주 다르게 묘사되었다.[435] 멜버른에서 성장한 샘 해밍턴은 어릴 적 마피아 아버지를 둔 이탈리아 혈통의 친구가 있었다고 방송에서 고백한 일이 있는데, 그 친구는 동네 마트에 들어가서 계산도 하지 않고 물건을 들고 나왔다고 회상했다.[436] 멜버른 보다 큰 호주 제1의 도시 시드니의 경우, 카브라마타 지역에서 드러나게 폭력을 자행하는 아시아계 갱단(특히 베트남 혈통)의 활동이 많은데, 특기할만한 거대하고 세련된 기업형 범죄조직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437] 그들은 미국 마피아와 연대로 삼합회의 호주 내 마약시장 진출을 저지했다.[438] 한국 이름: 마피아 10년 전쟁[439] 국내 울트라 시리즈 팬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 비하적이기보다는 자조적인 내용으로 애정을 담아 까는 의미로 사용한다.[440] '고르고 13' 단행본 후기에서 언급.[441] 알 파치노 주연의 작품은 엄밀히 말하면 플로리다 주의 쿠바계 마약 카르텔 조직 이야기지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아니다. 물론 마피아란 단어의 해석을 넓게보아 서구권에서 범죄조직을 부르는 일반명사의 뜻으로 사용하면 마피아 영화이긴 하다.[442] 뉴욕에 있는 미술관을 물려받았다.[443] 카 2의 빌런집단인 레몬은 원래 마피아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여러 조직폭력배들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444] 마피아가 모티브인 듯하다. 7세대에서는 NPC들에게 '포켓몬 마피아 조직'이라 불리기도 한다.[445]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처럼 원피스 세계관 속 웨스트 블루에도 5대 마피아 패밀리가 있는데, 파이어탱크 해적단도 그중 하나였으나, 해적이 되어 바다로 나온 것이다.[446] 1차 각성명은 두목을 뜻하는 빅 보스, 2차 각성명은 대부를 뜻하는 갓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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