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8 17:19:05

미국 대통령 선거

1. 개요2. 세부 규정
2.1. 선거일2.2. 투표시간2.3. 선거권 / 피선거권2.4. 후보자 등록2.5. 선거인단 배분
2.5.1. 역사
2.6. 선거인단의 2차 투표2.7. Contingent election
3. 선거인단 방식이 유지되는 이유4. 직접 득표율과의 차이5. 논쟁
5.1. 옹호5.2. 비판
6. 역대 대통령 선거
6.1. 이야깃거리6.2. 현대 미국 대선 역사

1. 개요

Presidential election of United States

미국에서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이다. 선거인단제를 사용하는 간선제 대통령 선거를 시행한다. 4년 중임제이다.

대통령을 간접 선거로 뽑는 나라 가운데 제일 유명한 나라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의원내각제에서 총선을 치러서 국회 구성하고 거기서 총리를 뽑는 시스템과 유사하다고 할 수도 있다. 총선 승리 후 의회로서 입법부의 비중에 영향을 미치는 총선과 달리 대선에서의 선거인단은 오로지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공화당민주당이 사실상의 양당제를 이루고 있고 (이전에는 휘그당이 공화당의 위치를 대신했고, 사실상 계보도 이어진다.) 녹색당이나 자유당, 이따금 제3후보도 돌풍을 일으키나(ex.1992년 대선의 로스 페로) 2등을 거둔 경우는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퇴임 이후 재출마한 진보당의 돌풍을 제외하고는 없다.[1]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미국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미국의 우방국가들은 물론 한때 적대적 관계였던 옛 공산국가들과 중동, 제3세계 국가들 모두에게 전세계의 초미의 관심사다. 전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의 특성상 대통령에 따라 세계가 휘청일 수도, 세계가 안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세부 규정

미국은 대통령을 어떻게 뽑나…첩첩산중 미국 대선 제도

2.1. 선거일

  • 선거인단 선출
    선거가 벌어지는 해의 11월 첫째 월요일 다음의 화요일이라는 규정을 따른다. 바꿔 말하면 11월 2-8일 중에서 화요일인 날이 선거인단을 결정하는 날이다.
  • 대통령 선출
    12월 13-19일 중 수요일. 선거인단들이 찍을 후보는 이미 알려진 상태라 형식적이다. 선거인단이 확정되었을 때 이미 대통령이 확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전국 선거인단의 표 집계와 당선자 발표는 이듬해 1월 6일에 한다.

2.2. 투표시간

  • 각 주별로 개별적으로 정하며, 가장 짧은 주가 12시간의 투표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가장 긴 투표시간을 보장해주는 주는 뉴욕 주로, AM 6:00 ~ PM 9:00으로 15시간의 투표시간을 보장한다.
  • 미국의 모든 주 지역 중 가장 먼저 투표를 시작하는 곳은 뉴햄프셔 주, 그중에서도 딕스빌노치이다. 이곳은 투표 당일 0시부터 시작한다.

2.3. 선거권 / 피선거권

  • 선거권: 18세 이상의 유권자 등록을 마친 미국 시민으로서 거주하는 주, 카운티 또는 시의 투표 기준에 적합한 사람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
    • , 푸에르토리코 등 미국 속령의 시민은 선거권이 없으며, 미국 시민권자라도 속령으로 주거지를 옮기면 선거권이 사라진다. 다만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런 속령들에서도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속령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 피선거권: 35세 이상의 출생을 통해 자연적으로 미국 시민이 된 최소 14년 이상 미국 내에서 거주한 사람이 피선거권을 갖는다.
    • 이는 거의 미국 50개 주 내에서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역시 괌 등의 속령 출생자는 피선거권이 없다. 그러나 속지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속인주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미국 국적법 상 몇몇 조차지 및 군 주둔지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도 자연적인 미국 시민의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출마한 사례도 있다. 당시 미국의 조차지였던 파나마 운하 지대에 주둔 중이던 군인 가족의 아들인 존 매케인이 그 예. 반대로 선거권은 귀화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거나, 미국 시민권과 다른 국가 국적을 모두 갖고 있는 경우에도 행사할 수 있다.[2]
    • 후보 중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도 있을 수 있는데, 이 때 출마 자격은 중임 1회로 한정한다. 즉 4년 임기를 1회 마친 상태일 때만 재선에 도전할 수 있다. 전임 대통령이 사망, 사임 등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서 승계했을 경우 전임 대통령의 잔여 임기가 2년 이상 남아서 이 임기를 보내면 4년 임기를 1회 마친 것으로 간주한다. 한번 재선에 실패했다고 해서 중임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사례로 22대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1884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고 1888년 재선에 실패한 뒤, 4년 뒤인 1892년에 다시 출마해서 재선에 성공했다. 즉 이렇게 임기를 건너 뛰어서 당선되는게 법적으로 가능하다.

2.4. 후보자 등록

2.5. 선거인단 배분

각 주별로 인구비례[3]에 맞추어 선거인단을 배분한다. 선거인단은 상원(각 주마다 2명씩 뽑으니까 총 100명) + 하원(총 435명) + 워싱턴 DC에 배정된 선거인단(현재는 3명[4])의 인원수에 맞추며, 2020년 대선까지는 538명이다.

미국에 속해 있는 50개의 주와 1개의 특별구 중 메인 주네브래스카 주를 제외한 48개 주와 1개의 특별구가 승자독식제를 사용하며, 각 주별로 선거 결과를 별도로 취합하여 해당 주에서 승리한 후보에게 선거인단을 전부 몰아주는데 이것이 승자독식제이다. 주마다 투표용지의 형식이 다른데 어떤 주에서는 선거인단 후보 이름과 그 후보가 지지하는 대통령/부통령 후보를 같이 명시하고, 어떤 주는 선거인이 누구든 대통령/부통령이 중요하다 생각했는지, 선거인단 후보 이름은 생략하고 대통령/부통령 후보만 나타내기도 한다.

앞서 제외한 메인 주와 네브래스카 주는 선거인단 일부를 하원 의원 선거구 결과대로 나눈다. 주 전체의 승자가 상원에 해당하는 2명, 각 선거구마다 승자가 하원에 해당하는 1명씩 가져가는 시스템.

거대 정당인 공화당이나 민주당 후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인 경우 그 주의 선거 규정에 따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여 자신을 지지하는 선거인단 후보를 내지 못하는 주도 있다. 그 주의 유권자들은 표를 버릴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인단 후보가 없으니.

2.5.1. 역사

원래 건국 초기에는 직접투표가 아니라 주 의회에서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주가 더 많았다. 그 외에 지역구를 나눠 구역별로 선거인단을 1명씩 뽑거나, 아니면 카운티 선거인단을 뽑아 카운티 선거인단이 주 선거인단을 뽑는 등 주마다 다양한 선출 방식을 시도했다. 현재처럼 승자독식제가 과반 이상의 주에서 실시된 건 1828년 대선이 처음이었고, 1864년부터는 모든 주가 승자독식을 채택했으나, 1972년 메인 주가, 1992년 네브래스카 주가 다시 선거구별로 선거인단을 뽑게 되었다.

1962년 이전까지는 연방 직할령인 워싱턴 D.C. 주민들에게 대통령 선거 투표권이 없었다.(...) 그 이전에 있었던 준주들도 주가 아니기 때문에 준주 주민들은 대통령 선거 투표권이 없었다.

2.6. 선거인단의 2차 투표

선거인단이 2차 투표를 한다. 자기가 출마한 그 주에서 투표한다. 그리고 투표 결과만 워싱턴으로 보낸다. 모든 선거인이 모이는 일은 없다. 여기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최종적으로 당선된다. 선거인은 당초 지지하기로 한 후보를 의무적으로 찍도록 규정한 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주도 있다 (보통 의무적으로 찍도록 규정한 주는 위반 시 주에 따라 다르지만 벌금을 내거나 그 표를 무효로 하고 다른 선거인이 대신 투표하도록 한다). 승자독식인 주의 투표결과에 선거인단 개인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의도되었다. 29개의 주가 법적으로 금지하지만 처벌하는 경우는 드물며 몇몇 주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효표로 남는다.

각 주의 선거인단은 대통령 선거를 먼저 하고, 다음에 부통령 선거를 한다. 그래서 미국 대선은 사실상은 러닝메이트 제도지만 명목상으로는 아니다. 정, 부통령 짝을 한꺼번에 뽑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따로 부통령 따로 뽑는 것이므로.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겠으나 이론상은 대통령 당선자는 공화당 후보, 부통령 당선자는 민주당 후보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다만 아마도 특정 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인은 역시 그 당의 부통령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한 선거인은 대통령 선거 때 부통령 후보를 찍고, 부통령 선거 때 대통령 후보를 찍은 사례도 있다. 오히려 일반 유권자들의 선거인단 선거 때가 러닝메이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이 4명이라고 했을 때 이쪽 4명과 저쪽 4명 중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가의 문제니까.

선거인은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 모두 자기 주 출신을 찍을 수는 없다. 바꿔 이야기하면 대통령 후보로 자기 주 출신을 찍었다면 부통령 후보는 다른 주 출신을 찍어야 한다는 말. 아예 자기 당 선거인이 자기 당 부통령 후보를 못 찍을 수도 있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각 정당은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의 출신 주를 다르게 한다.

2.6.1. 불충실한 선거인단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불충실한 선거인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주 유권자의 투표 결과와 반대되는 배신 투표를 하거나 기권하는 선거인단을 "불충실한 선거인단"(Faithless elector)이라고 부르며 45번의 대선 중 22번에서 불충실한 선거인단이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대선 결과가 뒤집힌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1912년을 제외한 20세기는 1명 이하의 선거인단만 배신 투표를 해서 큰 이변은 없었다.

18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공화당[5]의 호레이스 그릴리가 공화당의 율리시스 S. 그랜트에게 투표에서 참패하고(선거인단으로는 286 그랜트 vs. 66 그릴리, 투표에서는 그랜트 55.6 vs. 그릴리 43.8)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바람에 선거인단 투표에서 그릴리를 찍은 선거인단은 단 3명에 불과했다. 42명은 후보로 출마하지도 않은(...) 민주당의 토마스 헨드릭스를 찍었고 18명은 자유공화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벤자민 그라츠 브라운에게 투표한 적이 있다. 또한 2000년 선거 당시엔 워싱턴 D.C. 소속 선거인단 중 한 명이 워싱턴 D.C.의 제한된 투표권 문제를 항의하기 위해 기권하기도 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 10명이나 군소 후보나 이미 탈락한 버니 샌더스에 배신 투표를 던졌고 이 중 역사상 최다인 7표가 유효표로 남게 되었다.[6] 이로 힐러리 클린턴은 선거인단을 5명, 도널드 트럼프는 2명을 잃게 됐으며 득표수, 확보 선거인단 수, 실제 선거인단 득표수 셋 다 크게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7. Contingent election

선거인단 중 과반수를 확보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에는 최상위 득표자 2명에 대해 하원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각 주별로 1표씩 행사한다. 정확히는 주별 하원의원들이 투표하여 이 중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지지 후보가 되는 것이다. 하원의원 수가 53명인 캘리포니아에서 A후보에 투표한 사람이 27명이고 B후보에 투표한 사람이 26명이면 캘리포니아 전체로는 A후보에 1표를 투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선거를 미국에서는 Contingent election이라 한다. 이렇게 주별로 행사된 표에서 과반 이상의 득표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부통령의 경우에도 과반 후보가 없으면 대통령과 같은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되, 각 주의 상원의원 2명이 한 표씩 행사해 부통령을 결정한다.

이것이 일어난 경우는 역사상 단 두 번으로, 1800년 미국 대통령 선거1824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전자의 경우 토머스 제퍼슨에런 버가 선거인단에게서 정확히 동수(73표)의 표를 얻어 1801년에 하원 투표로 넘어간 것인데, 35번이나 투표를 치르고도 대통령이 결정되지 않았다가 36번째 투표에서 메릴랜드, 버몬트, 델라웨어, 사우스 캐롤라이나가 입장을 바꿈으로써 제퍼슨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후자의 경우 앤드루 잭슨이 득표 1위였지만 과반이 아니어서 2위였던 존 퀸시 애덤스와 하원 투표에서 겨루게 되었는데 존 퀸시 애덤스가 4위였던 헨리 클레이와 타협했고, 이에 따라 클레이가 애덤스를 지지함으로써 그에게 갔던 표가 애덤스에게로 가서 1번의 투표만을 거쳐 애덤스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183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버지니아 주 선거인단이 선거 결과에 따라 마틴 밴뷰런을 대통령으로 찍고도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인 리처드 멘터 존슨(Richard Mentor Johnson)을 찍지 않아 부통령 선거가 상원으로 넘어간 적이 있는데, 상원에서는 리처드 멘터 존슨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3. 선거인단 방식이 유지되는 이유

미국에서 대통령 간선제를 운용하는 이유는 제일 크게는 연방제로서의 미국의 정체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미국인은 미국인이기 전에 텍사스, 뉴욕, 애리조나 같은 주의 주민인 것이다. 명목상 각 주마다 법이 따로 있고, 군대도 전부 가지고 있으며, 독자적인 입법/사법/행정 기관이 있다. (주 의회, 주 법원, 주 정부) 미국 대선에서 선거인단은 개별적인 시민의 의지가 아닌 소속된 주의 전반적인 의지를 대표하며, 이는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주의 권한이 강한 이유는, 미국의 건국 자체가 여러 주의 대표들이 모여서 한 독립 선언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표 역시 '주'가 대통령을 뽑는 것과 같이 운용되고 있다. 미국 국민들이 투표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고 내가 속한 주가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를 투표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A후보를 70%만큼 지지하고 B후보를 30% 지지한다고 해서 A에게 0.7표, B에게 0.3표를 줄 수 없고 무조건 A 한명에게 1표를 줘야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주'는 '한 명의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미국 국민들은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선거인단을 뽑는 것이다.

다만 이는 의원 투표와 비교해보면 허점이 금세 드러나는 주장이다. 각 주는 하원과 상원에 자신의 '주'를 대표할 사람을 뽑는데 왜 민주당 1명 공화당 2명 같이 보내는 게 허용되는가? 실제로 승자독식제를 포기한 메인 주와 네브라스카 주는 선거인단 역시 의원투표와 마찬가지로 배정하고 있다. 그리고 A에게 0.7표, B에게 0.3표를 줄 수 없다는 것도 유럽에서 시행되는 선호 투표제를 고려하면 꼭 불가능 한 것도 아니다.

선거인단은 모든 주마다 2명씩 배정되는 상원의원과 인구수에 비례한 1명 이상의 하원의원의 머릿수의 합으로, 이는 상원은 지역간의 평등한 의사 결정을, 하원은 미국 여론에 부합하는 의사 결정을 위해 정해진 숫자로, 인구수에 어느 정도 비례하게 하되 여전히 각 주의 자치권을 존중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무리 인구수가 적어도 법적으로 3인의 선거인단은 무조건 확보가 가능하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숫자다. 따라서 완전한 무시나 배제를 섣불리 할 수 없다. 하지만 직선제로 가게되면 이런 작은 주들은 완전히 묻히게 될 것이다. 간선제 시스템은 작은 주들이 어떤 경우에도 시스템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현행 간선제에서도 인구가 적은 주는 상대적으로 소외를 당하고 있으나 직선제만큼은 아니다.

또 하나의 이유로 간선제 자체가 미국의 건국 이래 유지된 전통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공화당이 선거인단 제도로 혜택을 보았던 적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에 선거인단 제도의 변화를 딱히 바라지 않는다. 선거인단 제도로 4번씩이나 득표에서 밀리고도 당선되었는데 굳이 당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바꿀 메리트가 없다.

1892년부터 1996년 대통령 선거때까지는 선거인단 순위와 득표 순위가 같았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제도 개혁동력이 힘을 못 얻었다. 사실 그 기간 중에도 선거인단 획득 결과와 실제 득표 결과가 다르게 나올 뻔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지만 어쨌거나 실제로 죄다 불발되었다. 덕분에 이 주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지'라며 호사가들의 얘기거리로만 여겨지게 되었고,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가릴 거 없이 선거인단 제도의 개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한 선거인단 제도를 개혁할 경우에는 탈당후보나 제3당이 힘을 얻을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개헌선을 확보했던 적도 여러번 있었으니 만큼 선거제도의 개혁이 진행될 수도 있었겠지만 개혁이 무산된 것은 이러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게임 이론적 해석에 의하면 승자독식 제도가 유지되는 것은 민주당이 유리한 주든 공화당이 유리한 주든 경합주든 승자독식이 득표율에 의한 선거인단 배분보다 주의 발언권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처럼 민주당이 언제나 60% 이상의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기록하는 주의 경우 현행 승자독식 제도에서는 선거인단의 100%를 가져갈 수 있지만 득표율 배분으로 바꾸면 최대 40%의 선거인단을 손해보게 된다. 문제는 주의 여론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이상 자신들이 손해를 볼 개혁을 수행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공화당 우세 주에서도 승자독식 제도를 선호하게 된다. 경합주의 경우 승자독식 제도의 최대 수혜자로, 약간의 차이로 선거인단 수십 명이 갈리다 보니 승부가 일찌감치 결정되어 있는 주들에 비해 훨씬 높은 정치적 관심을 받으며 대통령 후보를 배출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등 유무형의 이익을 보니 제도를 바꿀 이유가 없다. 선거인단 선출 방법을 각 주에서 결정하는 이상 피하기 어려운, 죄수의 딜레마와 어느 정도 유사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승자독식 제도를 고치고자 한다면 연방정부 차원의 강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미국 헌법은 연방에서 헌법 조항을 만들어도 각 주에서 비준동의를 해야하는데, 전체 2/3 이상인 38개 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13개 이상의 주가 반대하면 헌법을 고칠 수가 없다. 미국 헌법 초기와 달리 21세기에는 일반적으로 미국 헌법을 개정하는 데에 '시한'을 정해놓고 있다. 최대 3년 안에 38개 주 이상의 찬성(주 하원 과반수, 주 상원 2/3 찬성 후 주지사 서명. 일부 주에서는 주민투표까지 시행한다.)을 받아야 한다. 현행 선거인단 제도를 변경하는 것을, 각 주 정치권이 받아들일까? 13개만 반대하면 깨지는 개정안인데? 그래서 사실 쉽지 않은 것.

4. 직접 득표율과의 차이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사실상 '주'가 선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국민 전체를 기준으로는 더 많은 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 투표에서 밀려 떨어진 후보들이 적지 않게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기준으로 당해 힐러리 클린턴(vs. 트럼프)과 2000년 대선의 앨 고어(vs. 부시)를 포함하여 5번이나 있었다. 저 둘의 차이점이라면 앨 고어는 선거인단 숫자에서 딱 4명이 모자라 아쉽게 패배했지만 힐러리는 선거인단 숫자에서 꽤 큰 차이를 보이며 패배했다는 점.

1960년 존 F. 케네디의 초선(vs. 닉슨), 1968년 리처드 닉슨의 초선(vs. 험프리) 선거의 경우 당선된 쪽이 전체 득표수에서도 박빙으로 이기긴 했지만 의외로 선거인단에서는 큰 차이로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비록 결과가 뒤바뀌진 않았지만, 1916년 대선의 경우 민주당 우드로 윌슨 49.2% vs. 공화당 찰스 에반스 휴스 46.1%로 3.1%p나 득표율 차이가 났으나 선거인단 확보수는 윌슨 277 vs. 휴스 254 였다. 당시 경합주였던 선거인단 12명의 캘리포니아는 윌슨 46.65% vs. 휴스 46.27%, 표차이는 3773표로 초박빙이었다. 만약 이 당시 휴스가 캘리포니아에서 2000표(당시 전국의 0.01%) 정도만 윌슨에게 뺏어와서 이겼으면 선거인단은 윌슨 265 vs. 휴스 266 으로, 득표율에서 3.1%p가 더 적은 휴스가 당선되는 일이 가능할 뻔하기도 했다. 2004년 대선에서도 전국 득표율은 조지 W. 부시 50.7% vs. 존 케리 48.3%로 2.4%p 차이였지만 선거인단은 부시 286 vs. 케리 252 이었다. 이 당시에 선거인단 20명인 오하이오에서 11만8775표 차이로 부시가 이겼는데(부시 50.8%, 케리 48.7%, 군소후보 0.4%) 만약 케리가 6만표(전국 0.05%)만 더 부시에게서 빼앗아와서 오하이오를 먹었으면 선거인단 총합은 부시 266 vs. 케리 272 로 뒤바뀌어 전국 득표율에서 2.3%p 정도 더 적게 얻은 케리가 당선되는 것도 가능할 뻔하기도 했다.

5. 논쟁

5.1. 옹호

선거인 제도를 사용함을 통해 후보들은 중도 유권자 공략에 열을 올리게 된다. 선거인단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주보다 경합주에 승부를 걸게 되기 때문이다. 즉 선거인 제도는 일견 상당히 편향적 제도로 보이나, 사실 가장 수혜를 입게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중도 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이다. 후보들은 어차피 이길 확률이 높은 곳에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격전지에서 통할 확실한 로드맵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 A, B, C 3개의 주가 있다. 인구수는 순서대로 9, 6, 3이라고 하자. 유권자 수와 선거인 수는 같다고 가정한다. 18명이 선거에 참가했고, 10명은 공화당에 8명은 민주당에 투표했다고 하자.
    • A주는 6명이 민주당을, 3명이 공화당을 지지했다. 민주당이 9표를 얻고 승리한다.
    • B주는 6명 모두가 공화당을 지지했다. 공화당이 6표를 얻고 승리한다.
    • C주는 2명이 민주당을, 1명이 공화당을 지지했다. 민주당이 3표를 얻고 승리한다.
    • 따라서 민주당이 총 12표를 얻어 승리한다.

    직선제였다면 민주당이 공화당에 10 대 8로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승리는 B주의 몰표로 인해 얻어낸 승리로, 주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A와 C주의 의지에 반하는 결과였을 것이다.[7] 이렇듯 미국식 간선제는 비교적 여러 주에서 다양한 계층에게 골고루 지지를 받은 후보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시스템이다.[8]
  • 미국식 간선제는 간선제 중에서도 시민들의 참여할 여건이 상당한 편이다. 특히 오픈 프라이머리는 전적으로 시민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 제도가 정해지던 당시 기술의 한계
    지금의 기술력을 생각할 때, 여성과 비백인종이 투표권을 획득해 선거인단이 막 증가하던 1900년대에 뭔가 시도를 했다면 바뀔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5.2. 비판


주별 승자 독식 선거인 제도의 문제점을 주장하는 영상이다.

가장 큰 비판은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주 선거인단 투표에서 승자가 독식하는 시스템의 경우 득표율에 비례하게 선거인단을 나누는게 어떻냐는 제안이 있다. 사실 그렇게 나눌 정도로 선거인단 수가 많은 주가 많지는 않기는 하다. 보통 10명을 넘나드는 수준에, 버몬트처럼 선거인단이 3명인 지역도 꽤 있다. 33.33% 단위로 선거인단을 나눌경우 항상 공정성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 때문에 승자독식제를 포기한 메인 주(4명)와 네브라스카 주(5명)도 득표율 비례는 아니고 의원선거에 준하는 방식[9]을 채택중이다. 아울러 메인 주와 네브래스카 주만이 선거인단의 배분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전국적인 투표 규정에 예외가 있다는 면에서 비판받을 요소이다.

경합주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 역시 특정 정당의 텃밭 지역인 낙후지역은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전당대회에서 앞서 말한 인구 많은 텃밭 지역이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됨에 따라, 결국 일부 운좋은 경합주만 이득을 보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인구가 많은 상위 11개 주(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플로리다, 일리노이,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뉴저지)에서만 이겨도 선거인단의 과반수인 270이므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이 11개 주만 석권하면 나머지는 다 져도 당선되므로 나머지 39개 주의 결과는 다 필요없다. 그래서 미국 대선 주자들의 유세도 이 상위 11개 주 중 경합주 위주로 진행한다. 캘리포니아(55), 뉴욕주(29), 일리노이(20), 뉴저지(14)는 민주당의 아성이며, 텍사스(38), 조지아(16)[10]는 공화당의 아성이다. 나머지는 경합지.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도 오하이오(18), 플로리다(29), 노스캐롤라이나(15)에 더해 펜실베이니아(20), 미시간(16)의 싹쓸이였다.

이 외에도, 인구는 이것보다 작지만 중요 경합주로 분류되는 주들은 위스콘신(10)[11], 뉴햄프셔(4), 버지니아(13), 아이오와(6), 미네소타(10), 콜로라도(9), 네바다(6), 애리조나(11) 등이 있다.

선거인단이 주의 의견을 반영하는지조차 논란이 있다. 대부분의 선거인단은 소속 주의 투표결과를 반영하서 표를 던지지만 불충실한 선거인단 또한 분명히 존재하며, 200년 넘게 연방대법원은 불충실한 선거인단의 위헌 여부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불충실한 선거인단에 대해서 역시 모든 주에서 처벌하거나 모든 주에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주에서만 금지한다는 것이 불공정하게 보일 수 있다. 사실 이는 불충실한 선거인단에게 벌금을 물리거나, 교체를 강제하는 법률을 주 의회에서 제정하지 않은 탓이다. 이렇게 위법한 행위에 대하여 제재 수단이 없는 상황을 전문 용어로는 입법불비, 불완전법규라고 한다. 입법부의 일종의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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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대 대통령 선거


1789년 초대 대통령 선거부터 2016년 선거까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정리해 놓은 동영상.

※ 당선자는 노란색으로 표시.
※ 득표수에서는 이겼으나 선거인단에서 뒤진 경우, 기울임체를 적용해 주십시오.[12]
연도 후보 비고
1789년 조지 워싱턴 [13]
1792년 조지 워싱턴 [14]

조지 워싱턴이 출마할 때는 13개 주 모두가 워싱턴에게 투표했다. 만장일치로 당선된 사례는 최초이자 마지막. 이후 당(Party)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는데, 강력한 중앙정부를 추구했던 연방주의자당과, 각 주의 자치권과 자유를 중시한 민주공화당이 대결하게 되었다.
연도 민주공화당 연방주의자당 비고
1796년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15]
1800년 토머스 제퍼슨 존 애덤스 [16]
1804년 토머스 제퍼슨 찰스 C. 핑크니 -
1808년 제임스 매디슨 찰스 C. 핑크니 -
1812년 제임스 매디슨 드위트 클린턴 -
1816년 제임스 먼로 루퍼스 킹 -
1820년 제임스 먼로 -[17] [18]

1824년 연방주의자당이 소멸되고, 민주공화당에서만 후보를 등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과반수 득표는 불가능한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선거가 치뤄졌다.
연도 후보 후보 후보 후보 비고
1824년 앤드루 잭슨 존 퀸시 애덤스 윌리엄 크로포드 헨리 클레이 [19]
선거인단 99 84(+37) 42 37(-37) [20]

앤드루 잭슨은 이에 반발해 자신의 지지자와 함께 민주당을 창당했고, 오늘날 미국 민주당의 아버지가 된다. JQA도 이에 대응하여 국민공화당을 만들었다. 이로써 토마스 제퍼슨이 만든 민주공화당은 24년만에 해체가 된다.
연도 민주당 국민공화당[21] 비고
1828년 앤드루 잭슨 존 퀸시 애덤스 -
1832년 앤드루 잭슨 헨리 클레이 -

잭슨과 민주당의 지지는 끝도 없이 올랐고 위기감을 느낀 국민공화당은 휘그당으로 개명하고 변화를 노린다. 휘그당은 오늘날의 공화당의 전신.
연도 민주당 휘그당 비고
1836년 마틴 밴 뷰런 윌리엄 해리슨 -
1840년 마틴 밴 뷰런 윌리엄 해리슨 -
1844년 제임스 포크 헨리 클레이 -
1848년 루이스 카스 재커리 테일러 [22]
1852년 프랭클린 피어스 윈필드 스콧 -
1856년 제임스 뷰캐넌 밀러드 필모어 [23]

테일러 이후 대통령들이 당적과는 상관없이 남부의 눈치를 보면서 노예제를 옹호하자, 휘그당 개혁파들은 이에 반발해 공화당을 창설하고, 정식 후보로 그 링컨을 내세웠다. 남은 휘그당은 소멸하면서 이로써 민주당 vs. 공화당의 양당구조는 이때부터 확립되었다.
연도 민주당 공화당 비고
1860년 스티븐 A. 더글러스 에이브러햄 링컨 [24]
1864년 조지 B. 맥클라렌 에이브러햄 링컨 [25]
1868년 호라시오 시모어 율리시스 S. 그랜트 [26]
1872년 호레이스 그릴리 율리시스 S. 그랜트 [27]
1876년 새뮤얼 틸던 러더퍼드 B. 헤이스 [28]
1880년 윈필드 S. 핸콕 제임스 가필드 [29]
1884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제임스 G. 블레인 -
1888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 [30]
1892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 [31]
1896년 윌리엄 J. 브라이언 윌리엄 매킨리 -
1900년 윌리엄 J. 브라이언 윌리엄 매킨리 -
1904년 앨턴 B. 파커 시어도어 루스벨트 -
1908년 윌리엄 J. 브라이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
1912년 우드로 윌슨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32][33]
1916년 우드로 윌슨 찰스 에반스 휴스 -
1920년 제임스 M. 콕스 워런 G. 하딩 [34]
1924년 존 W. 데이비스 캘빈 쿨리지 -
1928년 앨버트 스미스 허버트 후버 -
1932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허버트 후버 -
1936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알프레드 랜든 [35]
1940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웬델 윌키 [36]
1944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토머스 E. 듀이 [37]
1948년 해리 S. 트루먼 토머스 E. 듀이 -
1952년 애들라이 E. 스티븐슨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1956년 애들라이 E. 스티븐슨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1960년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
1964년 린든 B. 존슨 베리 골드워터 -
1968년 허버트 험프리 리처드 닉슨 -
1972년 조지 S. 맥거번 리처드 닉슨 -
1976년 지미 카터 제럴드 포드 -
1980년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38]
1984년 월터 먼데일 로널드 레이건 [39][40]
1988년 마이클 듀카키스 조지 H. W. 부시 [41]
1992년 빌 클린턴 조지 H. W. 부시 [42]
1996년 빌 클린턴 밥 돌 -
2000년 앨 고어 조지 W. 부시 [43]
2004년 존 케리 조지 W. 부시 -
2008년 버락 오바마 존 매케인 -
2012년 버락 오바마 밋 롬니 -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44]

6.1. 이야깃거리

  • 오하이오 징크스 - 오하이오 주의 승리자가 대통령이 된다는 전통. 사실 20세기에 들어와서 생긴 전통으로, 50여 년 전 존 F. 케네디에 의해 한 번 깨진 적이 있으나 그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실이 되었다. 2016년 대선때도 오하이오를 차지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 오하이오 출신 대통령은 율리시스 S. 그랜트부터 워런 G. 하딩까지 7명이나 되는데, 남북전쟁이래 선거로 당선된 공화당 대통령은 모두 오하이오 출신인 시절이 있었다(...) 정계에서 오하이오주 출신의 정치인들이 실세이다 보니까 이들을 오하이오 갱단이라고 불렀다. 다만 워런 하딩 때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말아 먹은 후에 사실상 몰락했다.
  • 하필이면 하계 올림픽과 같은 해에 미 대선을 치른다. 그러니 올림픽 덕후들에게는 올림픽 후광 잡아먹는 철천지 원수로 보이기도 한다.
  • 앞서 언급했듯 미국의 속령들은 대선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없지만, 괌은 대통령 선거날에 자체적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물론 이 선거는 아무런 효력도 없지만 괌 주민들의 여론을 알려준다. 이 선거는 1980년부터 시행해오고 있으며 그동안 모든 선거 결과를 맞췄지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틀렸다. 2016년에 괌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71%, 도널드 트럼프가 25%의 득표를 얻었다.

6.2. 현대 미국 대선 역사

남북전쟁 이래 미국 대선은 상대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다수인 북부(+중부)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소수인 남부의 강력한 지지 차이가 두드러졌다.[45] 뉴욕의 지지를 받은 그로버 클리블랜드나 후보 분열로 승리한 우드로 윌슨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은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46]

이것을 모두 바꾼 것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였다. 그는 자그만치 4선을 달성했으며, 의회도 압도적으로 다수당으로 차지했다. (해리 S. 트루먼까지 합치면 같은 당이 20년간 집권) 이로써 1933년 이후 정국은 민주당의 기존의 텃밭인 남부 지지 + 북부의 서민 중산층 + 흑인 등 소수민족을 바탕으로 하는 "뉴딜 동맹"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였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역시 뉴딜 정책 자체는 거의 계승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과 인종문제(민권운동)가 불거진 60년대 이후 민주당 텃밭이던 남부(딕시크랫)는 점차 이탈하여 독자 출마나 팀킬 행위를 벌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극우 + 백인 우월주의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 남방 전략"을 펼치게 된다. 즉 민주당의 텃밭이지만 보수성이 두드러졌고 이 때문에 동부, 리버럴이 주류인 민주당에서 이탈하려는 남부를 품에 안겠다는 텃밭 맞바꾸기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 여러 징후는 이미 1948년부터 드러났다. 남부는 여러 차례(1960년, 1968년) 독자 출마나 선거인단 이탈 등으로 제3세력화를 꾀했으며, 기어이 1968년 대선 패배에 혁혁한(?) 공로를 남겼다. 당장 남부의 강경 보수파(리버러테리언)인 골드워터에 대한 존슨의 대승으로 끝난 1964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여섯 주에서만 승리했는데, 모두 남부였다. 존슨이 텍사스 출신이었는데도 말이다.

이후 닉슨을 거치면서 공화당은 남부에서 상당한 지지를 뽑아내게 되며, 1980년대1990년대를 거치며 남부는 명실 상부한 공화당의 텃밭이 되었다. 닉슨 이래로 레이건, 부시 부자는 남부(이념적 친밀성) + 서부(지리적 우위)[47] + 기독교 근본주의(낙태 이슈 등) + 백인 중심 + 신자유주의로 연달아 대승을 거두었으며, 끝내 남부를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1994년에는 60여 년 만에 하원 다수당을 차지했다. 공화당은 이 전략으로 2000년대까지 미국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민주당이 이 시대에 대선에서 승리를 간간히 거두긴 했지만, 케네디 이후로 남부 출신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린든 존슨은 텍사스 출신, 지미 카터 역시 남부의 조지아 출신 독실한 개신교도였으며, 빌 클린턴 역시 남부 아칸소 출신이었다. 반면 낙선한 마이클 듀카키스는 매사추세츠에 그리스계 이민 2세 출신이었고, 앨 고어의 경우 2000년 대선에서 자신의 선거구인 테네시(남부)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민주당은 캘리포니아 등 서부 해안지대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결국 부시의 실정크리와 함께 오바마는 케네디 이후 최초의 북부(일리노이)에 지역구를 둔 대통령이 되며 공화당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또한 인구 3위의 플로리다에서도 두 번 모두 승리하면서 고어 vs. 부시 때의 설욕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2016년 대선 때는 민주당이 너무 자만한 나머지 한때 자신들의 지지기반이었 러스트 벨트를 공화당에 모조리 뺏기는 대참사를 맛보게 되었다. 덧붙여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는 본진(?)은 일단 뉴욕 시티의 퀸즈 구와 트럼프 타워가 있는 맨하탄이지만 공직 경력이 하나도 없는 아웃사이더여서 그가 어느 주 출신인지는 구별의 실익이 사실상 없다.


[1] 1955년 추가된 수정헌법 22조 3선금지 조항이 들어가기 전이라 3선 시도가 가능했다. 그래서 재임한 루스벨트가 1912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2] 자연적으로 미국 시민이 된 사람이라는 것이 "Natural American" 이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이것이 명확하게 미국 출생자를 지칭하지 않는다. 공화당 티파티의 유력한 대선 주자들 중 한 명인 테드 크루즈의 출생지가 캐나다라는 것이 밝혀져서 2016년 대선 당시 논란이 되었고 앞으로 테드 크루즈가 대통령에 나올 때마다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3] 70만명당 1명씩.[4] 미국 헌법에 의해 가장 선거인단이 적은 주(상원 2명 + 하원 1명)와 같도록 되어 있다.[5] 이때 미국 민주당이 당내 내분사태로 후보를 못 내는 참사가 발생한다(...). 나중에 자유공화당은 공화당으로 재흡수.[6] 무효표는 선거인단 3명이 교체되어 힐러리 클린턴으로 갔다.[7] 대한민국 선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선거.[8] 배구에서 25-0, 25-0, 23-25, 23-25, 13-15로 진 팀이 자기 팀이 점수는 더 많이 얻었다고 항의해 봐야 소용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9] 상원(2명) 승자독식 + 하원 소선구제, 선거인단 수가 상원의원+하원의원 숫자로 배분된 걸 고려하면 단순 득표율비례보단 미국의 연방제 특성과 더 어울리긴 하다.[10] 하지만 둘 다 요즘 민주당 성향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11] 이 곳의 승리로 트럼프가 대선 승리를 확정지었다![12] 특이하게도 이 5번의 사례 모두 민주당이 패배했다. 1824년 앤드루 잭슨(떨어진 앤드루 잭슨과 당선된 존 퀸시 애덤스 모두 선거 당시엔 민주공화당이었지만 선거 직후 잭슨 지지파인 민주당과 애덤스 지지파인 휘그당으로 분열), 1876년 새뮤얼 틸던, 1888년 그로버 클리블랜드(이쪽은 당시 클리블랜드의 방어전이기도 했다), 2000년 앨 고어, 2016년 힐러리 클린턴.[13] 만장일치로 조지 워싱턴 당선.[14] 만장일치로 조지 워싱턴 당선.[15] 2등이 부통령으로 선출되는 법에 따라 토머스 제퍼슨이 부통령이 되었다.[16] 이때부터 각 당에서 부통령 후보를 선출.[17] 이 시기 연방주의는 거의 사라졌고, 연방주의자당 자체도 1824년에 완전히 소멸한다.[18] 선거인단 만장일치로 당선될 뻔하지만, 뉴햄프셔 주에서 존 퀸시 애덤스에 투표하는 반란표 1표 때문에 무산되었다.[19] 존 퀸시 애덤스 문서를 참조. 정당 표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후보 전원이 민주공화당 소속이라서.[20] JQA와 헨리 클레이와 연합으로 인해 최종 승자는 JQA.[21] 휘그당의 전신.[22] 마틴 밴 뷰런의 자유토지당 설립으로 민주당 분열.[23] 휘그당 일부가 공화당으로 빠지면서 분열. 후보는 존 C. 프레몬트.[24] 남부민주당에서 더글러스를 반대하면서 존 C. 브레킨리지를 따로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면서 분열. 링컨은 역대 최소 득표율(39.8%)로 당선이 되었다.[25] 당시 남북전쟁 중이라 남부 11개 주에서는 투표가 실시되지 않았다.[26] 군정으로 인해 텍사스, 미시시피, 버지니아 주에서는 투표가 실시되지 않았다.[27] 그릴리가 갑자기 사망해버리면서 그릴리한테 가야할 표가 나눠져 버렸다.[28] 선거인단이 단 1표 차이로 당선인이 갈렸다! 선거인단 결과는 185:184. 그러나 이 선거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선거였는데, 러더퍼드 B. 헤이스 문서 참조.[29]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선거. 득표차는 1,898. 다만 선거인단 수는 꽤 차이났는데, 이는 승자독식제와 공화당이 쥐고 있던 북부의 선거인단이 많았기 때문.[30] 클리블랜드가 9만표 가까이 더 받았으나, 북부를 해리슨이 독식하면서 선거인단은 65명 차이로 떨어졌다. 가필드 때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31] 연임하지 않고 2선을 한 유일한 사례.[32]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진보당을 조직. 88명의 선거인단을 받으며 태프트를 이겼지만 민주당에게 20년만에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하지만 3당이 양당 중 한 당이라도 이긴 사례는 TR이 유일.[33] 유진 뎁스라는 후보가 계속 출마했다. 유진 뎁스는 5번 대선에 도전했다. (1900년 0.63%, 1904년 2.98%, 1908년 2.83%, 1912년 5.99%, 1920년 3.41%. 마지막 1920년 선거는 옥중출마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력 후보가 난립한 것에 도움을 받은 것도 보태서 처음으로 5%를 넘었다. 득표수도 90만 표가 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미국의 사회주의 계열 정당이나 후보가 얻은 가장 많은 득표수다. 2016년에 버니 샌더스가 나왔으면 기록을 깼을 것이다.[34] 48개 주 전체에서 여성 유권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최초의 선거. 그래서 투표자수가 직전 선거의 1854만에서 2677만으로 급증했다. 1916년에는 30개 주만 여성 유권자의 참여가 가능했다.[35] 선거인단 격차수가 가장 큰 선거. 523 vs. 8, 버몬트와 메인 주만 랜든에게 투표했다.[36] 최초로 3선 연임 성공.[37] 최초로 4선 연임 성공.[38] 여성 유권자의 투표율이 남성 유권자를 따라 잡은 최초의 선거.[39] 역대 최다 선거인단 수를 받았다. 525 vs. 13.[40] 민주당 후보 월터 먼데일은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인 제럴딘 페라로와 런닝메이트였다.[41] 역사상 유례가 없는 네거티브 선거이기도 했다. 조지 H. W. 부시 문서 참조.[42] 로스 페로(무소속)라는 후보가 19%나 표를 얻는 돌풍을 보여준다. 그래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3자 TV 토론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마지막 3자 TV 토론이다.[43] 일반 득표율과 선거인단 득표율의 차이가 또 발생했다. 이 과정은 양 후보 문서 참조.[44] 2백만 표 넘게 더 받은 힐러리가 떨어졌는데,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서부, 동북부는 이겼지만, 그 외 다른 곳에서는 모두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45] 사실 이런 지지 차이는 미국 건국 이후부터 늘 전통이었다.[46] 서부의 경우는 농민이 많아 인민당 등이 세력을 떨치고 이들이 민주당과 결합하기도 했으나 역시 뉴욕 없이 공화당을 이길 수는 없었다.[47] 흥미롭게도 닉슨과 레이건 모두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닉슨은 아예 고향이 캘리포니아, 레이건은 주지사를 지냈다.) 부시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것이 1992년 대선의 패배 원인이 아니냐... 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