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6 12:33:05

존 타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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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HOportTyler.jpg
공식 초상화
풀네임 John Tyler Jr
출신정당 [[민주당(미국)|
민주당
]] →
[[휘그당|
휘그당
]](대통령 취임 당시) →
[[무소속|
무소속
]] →
[[민주당(미국)|
민주당
]](대통령 퇴임 이후)
생몰년 1790년 3월 29일 ~ 1862년 1월 18일(71년 9개월 20일)
전대의 해리슨보단 3년이라도 더 산 듯.
재임기간 1841년 4월 4일 ~ 1845년 3월 4일 (3년 11개월)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72px-John_Tyler_Signature.svg.png
183cm
종교 개신교(성공회)

파일:존 타일러.png

미국의 10대 부통령이자 10대 대통령. 버지니아주 찰스 시티 카운티에서 거대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정계의 거물들과 친분이 있었고 그 덕에 그도 정계에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1811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버지니아주 의회의원에 당선된 후 순탄하게 거물급 정치인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1824년 민주공화당의 분당 당시 존 퀸시 애덤스를 싫어했던 그는 잭슨 진영에 합류해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앤드루 잭슨의 독선적인 성격으로 인해 반감을 가지고 민주당을 탈당해 휘그당에 입당했다. 1836년 윌리엄 해리슨과 함께 부통령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1840년 선거에서야 비로소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인 월리엄 해리슨이 취임 후 단 한 달 만에 병으로 급사해버리는 바람에 대통령직을 승계받았고, 10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유고로 인한 승계로 대통령이 된 것이기 때문에 존 타일러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받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부통령 당선은 선거였지만,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출마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달리보면 선거로 당선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셈. 전임자가 최단기간 임기 대통령인 탓에 가장 빨리 대통령직을 승계받은 부통령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기록적으로는 미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통령.

존 타일러는 해리슨 사망 시 고향에 있다가 귀경했는데, 이때 이런 일갈을 내뱉으면서 자신의 대통령 승계를 분명히 했다.
"오늘부로 '대통령 권한대행 타일러'나 '부통령 타일러'라는 이름으로 내게 온 문서는 절대 열어보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이 일화가 이 사람이 미국 역사에서 가지는 가장 큰 업적(?)이다. 원래 '대통령의 유고 시 대통령의 권한은 부통령에게 '똑같이' 이양된다.'라고 적혀져 있었는데,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대통령 직위를 이어받아서 "대통령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만 물려받은 "대통령 권한대행 부통령"으로 남는지에 대한 해석이 애매하고 불분명했던 것이다.[1] 그러나 존 타일러는 상술한 것처럼 "닥치고 직위까지 부통령 것이다" 라고 완강하게 주장했고 이게 인정되면서 부통령이 대통령을 승계한다는 규정이 명확하게 확립된 것이다.[2]

그러나 대통령직을 승계할 때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제2미합중국 은행 설립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은 끝에 휘그당이 그를 당에서 내쫒아 버렸고, 내각은 국무장관 웹스터를 제외한 전원이 사퇴하게 되었다. 망했어요 이 모든 일이 그가 대통령이 된 지 5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로 인해 얻은 별명이 고립된 대통령. 사실 민주당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게 전술했듯이 타일러가 앤드루 잭슨 대통령 시절에 잭슨과 대립하던 끝에 민주당에서 휘그당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통령 임기의 대부분을 정당이 없는 채로 보내게 되었다.[3]

그래서 의회와 매우 사이가 나빴으며, 심지어 휘그당에서 그를 탄핵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비록 하원에서 부결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에 편승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중국과의 외교통상을 목적으로 한 왕샤조약(望廈條約)을 1844년 체결했으나 정작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에 밀려 청나라에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소속당 없는 대통령이라는 배경때문에 대통령으로써의 권한 자체도 유명무실했으며 이 때문에 임기 내내 별다른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시피한 지경이 되었고, 이 때문에 존 타일러는 업적으로 기억되는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대통령을 승계받은 부통령으로써 유명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1845년 2월 백악관에서 이임 기념파티를 열었는데 손님 중 한 사람이 "오늘 파티는 참 멋지네요"라고 타일러에게 인사를 건네자 이때 타일러의 대답이 명대사로 남았다.
"Yes, they cannot say now that I am a 'President without a Party!'"
그렇소. 그들[4]도 이제는 나보고 '파티{소속당} 없는 대통령'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
보면 알겠지만 이 말은 Party라는 단어가 '연회'와 '정당'이라는 의미를 둘 다 가진 것을 이용한 타일러의 말장난이다.[5]

또한 영부인이 백악관에서 사망한 첫 사례. 그리고 1844년 백악관에서 재혼하게 되었는데 나이차가 무려 30세 차이가 나는 데다가 과도한 결혼비용으로 인해 정적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퇴임 이후 민주당에 재가입했다. 그는 노예제에 찬성하고 있었던지라 남북전쟁 당시까지 살아남아 남부동맹의 하원의장으로 선출되었지만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6]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묘에는 남부동맹의 깃발이 함께 매장되었다고 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제일 많은 자녀를 둔 대통령이다. 첫 번째 영부인과의 사이에서 여덣 명, 재혼한 젊은 영부인과의 사이에서 일곱 명. 총 15명의 자녀를 두었다. 늘그막에도 자식을 둔 덕인지, 그의 막내딸은 2차대전 종전 후까지(!)살았고, 여전히 생존해 있는 손자[7]도 있다고 한다.

[1] 실제로 이 때문에 대통령인 해리스 사망 후 타일러에게 다들 부통령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타일러는 저 말과 함께 "나를 대통령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여러분(내각 관료들)의 사직서는 즉각 수리될 것이다."(=날 대통령으로 안 부르면 모가지 날아갈 줄 알아라) 라는 말을 함으로서 자신의 지위가 대통령임을 명백히 그어놨다.[2] 물론 이는 부통령이란 지위가 대통령과는 달리 별로 할 일이 없는 자리라 가능했을 수도 있다. 부통령은 부통령으로서의 권한은 사실상 없고 그나마 겸직하는 미국 상원 의장직은 상원에서 동수의 찬반으로 나뉠때 결정권을 갖는거 하나뿐이다. 즉 부통령이 없다고 나라가 안 돌아갈 일이 없기에 타일러가 스스로 대통령이라 선을 그어 부통령 자리가 공석이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8][3]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고 직무를 수행한 사례는 1789년 이래 44명의 대통령, 58번의 임기 중 오직 두 번밖에 없었다. 다른 한 명이 초대 대통령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양당 정치가 확립된 뒤로는 사실상 최초이자 최후의 사례.[4] 타일러의 반대자들을 말한다.[5]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타일러의 임기가 끝나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 군중들이 그를 보고 환호하자 "내게 정당이 없다고 이제 누가 말할 수 있나?" 라는 농담을 했다고 각색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국민들이 내 편이라는 의미 라고 했다. 즉 국민들 자체가 정당이니 "내 정당은 국민들" 이라고 말한 셈이라고 한 것[6] 링컨에게 남부의 의견을 전달했지만 링컨이 단호히 거부해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지는데에 지지했다고[7] 63살이던 1853년에 아들인 라이언 가디너 타일러를 낳았다. 라이언은 1935년 82살로 사망했는데 71살이던 1924년에 '라이언 가디너 타일러 주니어'를 낳았고 75살이던 1928년에 '해리슨 러핀 타일러'를 낳았다. 그리고 라이언 주니어와 해리슨은 2018년 8월 현재 각각 94세, 90세의 나이로 생존해 있다. 즉 21세기에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조부가 18세기에 태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