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0:43:46

존 타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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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10대 대통령
존 타일러
John Tyler
파일:존 타일러.jpg
<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본명 존 타일러 주니어
John Tyler Jr.
출생 1790년 3월 29일
미국 버지니아 주 찰스 시티 카운티
사망 1862년 1월 18일 (향년 71세)
미연합국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재임기간 제10대 부통령
1841년 3월 4일 ~ 1841년 4월 4일
제10대 대통령
1841년 4월 4일 ~ 1845년 3월 4일
서명 파일:존 타일러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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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부모 아버지 존 타일러 1세
어머니 메리 마로 아미스테드 타일러
배우자 레티티아 크리스찬 타일러(사별)
줄리아 가디너 타일러 (재혼)
자녀 라이언 가디너 타일러
앨리스 타일러 포함 7명
학력 윌리엄 & 메리 대학교
종교 성공회
신장183cm
소속 정당 [[휘그당(미국)|
휘그당
]][*

→ [[휘그당(미국)|
휘그당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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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HOportTyler.jpg
백악관 공식 초상화

1. 개요2. 생애
2.1. 대통령이 되기 전2.2. 최초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2.3. 대통령직 수행2.4. 대통령 퇴임 이후
3. 기타4.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제10대 부통령이자 제10대 대통령.

2. 생애

2.1. 대통령이 되기 전

버지니아 주 찰스 시티 카운티에서 거대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정계의 거물들과 친분이 있었고, 그 덕에 타일러도 정계에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1811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버지니아 주 의회의원에 당선된 후 순탄하게 거물급 정치인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1824년 민주공화당의 분당 당시 존 퀸시 애덤스를 싫어했던 그는 잭슨 진영에 합류해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앤드루 잭슨의 독선적인 성격으로 인해 반감을 가지고 민주당을 탈당해 휘그당에 입당했다. 1836년 윌리엄 해리슨과 함께 부통령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1840년 선거에서야 비로소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2. 최초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

그런데 대통령인 월리엄 해리슨이 취임 후 단 한 달 만에 폐렴으로 급사해버리는 바람에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10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유고로 인한 승계로 대통령이 된 것이기 때문에 존 타일러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전임자의 사망/유고로 대통령직을 승계받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부통령 당선은 선거였지만,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출마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달리 보면 선거로 당선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셈. 전임자가 최단기간 임기 대통령인 탓에 가장 빨리 대통령직을 승계받은 부통령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기록적으로는 미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통령.

'부통령' 타일러가 한 일은 부통령으로 있던 기간이 한 달쯤밖에 안 되는 걸 감안하더라도 손에 꼽는다. 대통령 취임식날 상원에서 연설 한 번, 해리슨 대통령 취임식 참석, 다음날 상원의 내각 인준 본회의 주재, 이게 끝나고 곧장 타일러는 고향으로 내려가 쭉 있었다. 정치활동이라곤 잘 쳐줘야 해리슨 대통령이 인사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편지에 답장해준 정도다. 임기 초기 일은 웬만하면 대통령 주도하에 이루어지기를 바래서 그랬다고는 한다.[1]

해리슨이 사망하자 고향에서 워싱턴 D.C.로 돌아왔다. 해리슨의 건강이 악화된 건 딱히 비밀도 아니었지만, 타일러는 일찍 돌아왔다간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는 뜻에서 공식적으로 사망 소식을 접하고서야 고향을 나섰다.

해리슨이 죽고 나서 1시간 뒤 소집된 내각 구성원들은 회의를 거쳐 아직 워싱턴 D.C.에 도착하지 않은 타일러를 '대통령 권한대행[2] 부통령'으로서 대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타일러는 백악관에 들어가고는 이런 일갈을 내뱉으면서 자신의 대통령 승계를 분명히 했다.
"오늘부로 '대통령 권한대행 타일러'나 '부통령 타일러'라는 이름으로 내게 온 문서는 절대 열어보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이 일화가 이 사람이 미국 역사에서 가지는 가장 큰 업적(?)이다. 미국 헌법에는 원래 '대통령의 유고 시 대통령의 권한은 부통령에게 똑같이 이양된다'(the same shall devolve on the Vice President)라고 적혀져 있었는데,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대통령 직위를 이어받아서 "대통령이 되는 것"인지,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만 물려받은 "대통령 권한대행 부통령"으로 남는지에 대한 해석이 애매하고 불분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존 타일러는 상술한 것처럼 "당연히 직위까지 부통령 것이다" 라고 완강하게 주장했고 이게 인정되면서 "대통령의 유고 시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라는 규정이 명확하게 확립되었다.[3]

취임 선서는 타일러가 워싱턴 D.C.로 와 머물던 호텔 방에서 이루어졌다.[4] 첫 국무회의 자리에서, 내각에서는 자기들이 냈던 '대통령 권한대행 타일러' 의견을 묵살한 타일러를 언짢게 보고 있었는데, 이때 국무장관 웹스터는 타일러에게 "해리슨 대통령께서는 중요한 정책을 다수결로 결정하시는 관례가 있었죠"라는 다소 의심스러운[5]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타일러는 다시 한번 명언을 남기는데...
I beg your pardon, gentlemen; I am very glad to have in my Cabinet such able statesmen as you have proved yourselves to be. And I shall be pleased to avail myself of your counsel and advice. But I can never consent to being dictated to as to what I shall or shall not do. I, as president, shall be responsible for my administration. I hope to have your hearty co-operation in carrying out its measures. So long as you see fit to do this, I shall be glad to have you with me. When you think otherwise, your resignations will be accepted.
죄송합니다만 여러분, 저는 스스로 공히 능력을 증명하신 여러분 같은 정치인들이 내각에 계셔서 기쁘고, 또 기꺼이 여러분의 조언과 충고를 듣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무엇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지시받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행정부를 통솔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조치들을 이행하는 데 있어 여러분의 적극적 협조를 바랍니다. 이러한 점에 여러분이 동의하시는 한, 저는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과 일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사직서를 수리하는 바입니다.

요약하자면 "나 이제부터 100%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 대접 안해주면 모가지 날아갈 줄 알아라." 라고 말한 셈이다. 이렇게 타일러는 자신의 지위가 대통령임을 명백히 해놓았다.

2.3. 대통령직 수행

그러나 대통령직을 승계할 때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제2미합중국 은행 설립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은 끝에 휘그당이 그를 당에서 내쫒아 버렸고, 내각은 국무장관 웹스터를 제외한 전원이 사퇴했다. 이 모든 일이 그가 대통령이 된 지 5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로 인해 얻은 별명이 고립된 대통령. 사실 민주당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게 전술했듯이 타일러가 앤드루 잭슨 대통령 시절에 잭슨과 대립하던 끝에 민주당에서 휘그당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통령 임기의 대부분을 무소속으로 보내게 되었다.[6]

그래서 의회와 매우 사이가 나빴으며, 심지어 휘그당에서 그를 탄핵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에 편승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청나라와의 외교통상을 목적으로 한 왕샤조약(望廈條約)을 1844년 체결했으나 정작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에 밀려 청나라에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소속당 없는 대통령이라는 배경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권한도 유명무실했으며, 이 때문에 임기 내내 별다른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시피한 지경이 되었다. 이 때문에 존 타일러는 업적으로 기억되는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처음으로 대통령을 승계받은 부통령으로서 기록되고 있다. 1845년 2월 백악관에서 이임 기념파티를 열었는데 손님 중 한 사람이 "오늘 파티는 참 멋지네요"라고 타일러에게 인사를 건네자 이때 타일러의 대답이 다시 명대사로 남았다.
"Yes, they cannot say now that I am a 'President without a Party!'"
그렇소, 그들[7]도 이제는 나보고 '파티(소속당) 없는 대통령'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
보면 알겠지만 이 말은 Party라는 단어가 '연회'와 '정당'이라는 의미를 둘 다 가진 것을 이용한 타일러의 말장난이다.[8]

또한 영부인이 백악관에서 사망한 첫 사례. 그리고 1844년 백악관에서 재혼하게 되었는데, 나이차가 무려 30세 차이가 나는 데다가 과도한 결혼비용으로 인해 정적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2.4. 대통령 퇴임 이후

퇴임 이후 민주당에 재가입했다. 그는 노예제 찬성론자였고,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의 의견을 전달했지만, 링컨의 단호한 거부 의사를 확인하고서는 남부의 분리를 지지했다. 타일러는 당시 생존해있던 전직 대통령들 중 유일하게 남부를 지지했다. 그리고 남북 전쟁 당시까지 살아남아 남부동맹의 하원의장으로 선출되었지만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묘에는 남부동맹의 깃발이 함께 매장되었다고 한다. 반면 링컨은 그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북부의 신문들은 그에게 비판적인 부고 기사를 올렸다.

3. 기타

[9]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제일 많은 자녀를 둔 대통령이다.[10] 첫 번째 영부인과의 사이에서 여덟 명, 재혼한 젊은 영부인과의 사이에서 일곱 명. 총 15명의 자녀를 두었다. 늘그막에도 자식을 둔 덕인지, 그의 막내딸은 2차대전 종전 후까지 살았고, 여전히 생존해 있는 손자[11][12] 즉 21세기에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조부가 18세기에 태어난 것이다. 이 손자들 중 영상에 나오는 해리슨 러핀 타일러는 존 타일러보다 138살[13]이나 어리다.[14] 부부간 나이 차도 거의 부녀 수준으로 넓은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나이차는 30세,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차는 36세라고 한다. #

대통령 인기 순위는 거의 항상 뒤에서 6~8위 정도에 위치하는 편이다. 하딩, 뷰캐넌, 앤드루 존슨, 피어스가 최하위권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이라면 타일러는 윌리엄 해리슨, 필모어, 테일러, 후버[15]와 함께 바로 위의 최하위권인 셈.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당선 여부 비고
1816 미국 연방하원의원 보궐선거 버지니아 제23구 [[민주공화당(미국)|
민주공화당
]]
무투표 단독후보 초선
1817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746 (53.71%) 당선 (1위) 재선
1819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무투표 단독후보 3선
1825 미국 주지사 선거 버지니아 131 (61.79%) 당선 (1위) 초선
1826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잭슨 민주주의 무투표 단독후보
1832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재선
1836 미국 부통령 선거[A] 미합중국
550,816 (36.64%, 73명) 낙선 (2위)
1840 미국 부통령 선거[A] 1,275,390 (52.88%, 234명) 당선 (1위) 초선[18]
1861 미국 남부연합 하원의원 선거 버지니아 P구

[[무소속(정치)|
무소속
]]
무투표 단독후보 초선
버지니아 3구 재선


[1] 미국 부통령이 제대로 업무를 하게 된건 1977년 이후. 타일러 시절의 미국은 부통령이 국정을 분담할 정도로의 강대국은 아니었다.[2] 영어로는 Acting president. 대통령 권한대행일 경우에만 이 단어가 쓰인다. 존 타일러처럼 전임자 유고로 잔여 임기를 승계한 보궐 대통령은 Accidental president라 한다.[3] 이후 1932년 수정헌법 20조에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면 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이 된다'라는 조항이 들어가는 중간단계를 거쳐 1965년 수정헌법 25조에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the Vice President shall become President)는 조항이 추가되면서 불분명성이 해소되었다.[4] 타일러는 부통령으로서 벌써 선서를 한 번 했으니 대통령 선서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했다가, 확실하게 대통령직을 승계했음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5] 의심할 만한 게 일단 국무회의도 며칠 한 적 없고, 해리슨의 성격도 오히려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는 불도저형에 가까웠다.[6]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무소속으로 직무를 수행한 사례는 1789년 이래 45명의 대통령, 59번의 임기 중 오직 두 번밖에 없었다. 다른 한 명이 초대 대통령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양당 정치가 확립된 뒤로는 사실상 유일한 사례.[7] 타일러의 반대자들을 말한다.[8]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타일러의 임기가 끝나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 군중들이 그를 보고 환호하자 "내게 정당이 없다고 이제 누가 말할 수 있나?" 라는 농담을 했다고 각색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국민들이 내 편이라는 의미 라고 했다. 즉 국민들 자체가 정당이니 "내 정당은 국민들"이라고 말한 셈이라고 한 것.[9] 영상에 출연하는 사람은 존 타일러 대통령의 손자인 '해리슨 러핀'과 해리슨 러핀의 아들 윌리엄.[10] 두번째로 자녀를 많이 둔 대통령은 바로 전임 대통령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이다. 슬하 6남 4녀 10자녀.[11] 63살이던 1853년 아들인 라이언 가디너 타일러를 낳았다. 라이언은 1935년 82살로 사망했는데 71살이던 1925년 '라이언 가디너 타일러 주니어'를 낳았고(2020년 10월 타계) 75살이던 1928년 '해리슨 러핀 타일러'를 낳았다. 그리고 해리슨은 2023년 11월 현재 95세의 나이로 생존해 있다.[12] 더 가관인 것은 해리슨은 큰형 줄리아 타일러 윌슨(1881~1965)과 만으로 46세 차이가 나고, 조카이자 줄리아의 딸인 낸시 터커 윌슨(1912~1995)보다 16살이나 어리다. 거기다 큰고모 마리 타일러(1815~1848)와의 나이차는 113세로, 이 정도면 고조할머니 뻘 된다.[13] 평균적으로 이 정도 나이 차이면 5대조-5세손 정도의 나이 차이가 된다.[14] 즉,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 차이가 70세나 된다는 것이다.[15] 테일러와 후버는 조사에 따라 중하위권 수준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꽤 있다.[A] 대통령 후보는 윌리엄 헨리 해리슨.[A] 대통령 후보는 윌리엄 헨리 해리슨.[18] 1841.4.4. 대통령직 승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