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15:41:50

댄 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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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퀘일
제101~10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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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44대 부통령
제임스 댄포스 퀘일
James Danforth Quayle
<colbgcolor=#ececec,#fff><colcolor=#0d1635> 출생 1947년 2월 4일 ([age(1947-02-04)]세)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재임기간 제44대 부통령
1989년 1월 20일 ~ 1993년 1월 20일
서명
파일:댄 퀘일.svg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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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ecec,#fff><colcolor=#0d1635> 부모 아버지 제임스 C. 퀘일
어머니 마사 풀리엄 퀘일
배우자 마릴린 터커
자녀 벤 퀘일[2] 포함 3명
학력 헌팅턴 노스 고등학교 (졸업)
드퍼 대학교 (정치학 / B.A.)
인디애나 대학교 법학대학원 (법학 / J.D.)
종교 개신교 (장로교회)
신체 183cm
의원 선수 2 (상원)
2 (하원)
의원 대수 95, 96 (하원)
97, 98, 99, 100[3] (상원)
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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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약력3. 생애
3.1. 청년기3.2. 정치 초년기3.3. 부통령 후보3.4. 부통령 재직
3.4.1. 끝 없는 실언의 향연
3.4.1.1. "Potatoe" 사건
3.4.2. 의외의 면모3.4.3. 재선 도전과 실패
3.5. 부통령 퇴임 이후
4. 선거 이력5.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제44대 부통령.

2. 약력

  • 1977. 제95대 하원의원 (인디애나 제4구 / 공화당)
  • 1979. 제96대 하원의원 (인디애나 제4구 / 공화당)
  • 1981. 제97대 상원의원 (인디애나 클래스 3 / 공화당)
  • 1983. 제98대 상원의원 (인디애나 클래스 3 / 공화당)
  • 1985. 제99대 상원의원 (인디애나 클래스 3 / 공화당)
  • 1987. 제100대 상원의원 (인디애나 클래스 3 / 공화당)
  • 1989.1. 제44대 미국 부통령 (1989.1.20.~1993.1.20.)
  • 1993. 싱크탱크 허드슨 재단 이사 (1993.~현재)
  • 2000.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 경선 예비 후보[4]

3. 생애

3.1. 청년기

1947년 2월 4일 인디애나인디애나폴리스 출생. 인디애나 출생이라고 하지만 성장지이자 사실상의 고향은 애리조나 주이다. 그의 부모님은 출판업을 했고 지방 신문사를 했는데 크게 성공해서 퀘일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고등학생 때 다시 인디애나 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대학교로 진학했다. 드퍼 대학교 정치학 학사를 받은 후 인디애나 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했는데 공부를 엄청나게 못해서 거의 특수반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법학 박사(JD) 학위를 벼락치기로 받았다는 루머도 있다. 물론 어느정도 머리가 되니까 로스쿨에 진학한 것이고 부통령 재직 중 의외의 헌법 전문가적인 면모도 보였기 때문에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1969년, 미군에 입대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복무하지 않고 인디애나 주방위군에서 복무했는데 이때 주 방위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빠지기 위해 고위층 자제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역 기피 루트였다. 대표적으로 조지 W. 부시도 텍사스 주 방위군으로 복무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출판업계의 거물이었던 댄 퀘일의 아버지가 빽을 써줘서 군대를 뺀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아무튼 퀘일은 주 방위군으로 복무하며 로스쿨 야간반에 다니는 방식으로 학업을 병행하다가, 1972년 같은 반의 메릴린 터커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

3.2. 정치 초년기

1971년부터 인디애나 검찰청 소비자 보호과에서 조사관으로 근무했는데 딱히 눈에 띄는 커리어는 아니었다. 대신 정치에 눈독을 들여, 공화당에 입당하고 보좌진으로 활동하면서 커리어를 쌓았다. 1976년, 인디애나 제4구를 대표하는 하원의원으로 공천을 받았는데, 8선 하원의원 J. 에드워드 로쉬(J. Edward Roush)를 55% 대 45%라는 엄청난 표차로 꺾고 당선되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후 한번 더 당선되었다. 하원의원으로서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을 조사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이때 레오 라이언을 대신해 존스타운에 갈 수도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일행에 동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레오 라이언 하원의원이 이때 존스타운에서 살해당했기 때문에, 댄 퀘일은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한 셈이 되었다.

댄 퀘일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80년 상원의원 선거 때의 일이었다. 당시 인디애나 주의 상원의원은 버치 베이(Birch Bayh)로, 대선 출마도 점쳐지고 1980년에는 4선에 도전하는 중진 상원의원이었는데 댄 퀘일은 그런 베이를 1,182,414표 대 1,015,922표, 53.8% 대 46.2%로 꺾는 이변이 일어났다. 불과 재선의 무명 하원의원이 3선 중진 상원의원을 꺾으면서 퀘일은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고 인디애나 주 역사상 가장 어린 33세의 나이로 상원의원에 취임하게 되었다.

1986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60%에 달하는 득표율로 재선한 댄 퀘일은 인디애나 주의 정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고, 공화당의 차세대 주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3.3. 부통령 후보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직 부통령 조지 H. W. 부시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었다. 부시는 당시 64세로 노령기의 초입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레이건에 이어 다시 늙은 대통령 후보를 맞이하게 된 공화당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5] 게다가 당내 온건파 출신이었던 부시가 공화당 보수파에 구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런 배경 하에 조지 부시는 당초 가장 유력한 부통령 후보군이었던 밥 돌잭 켐프를 내치고,[6] 상대적으로 신선하고 젊은 인물이었던 댄 퀘일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파격적인 수를 뒀다. 레이건 역시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댄 퀘일을 "에너지와 열정을 가진 젊은이"라며 칭찬했다.

그러나 댄 퀘일의 지명은 그 즉시 논란이 되었다. 첫번째로 군 복무가 논란이 되었다. 상술했듯 징병제가 유지되고 있던 시기 주방위군 복무는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애용되었는데 댄 퀘일이 인디애나 주 방위군으로 복무하면서 베트남 징병을 피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두번째로 로비스트 폴라 파킨슨(Paula Parkinson)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같이 골프도 쳤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비리 의혹이 제기되었다. 마지막으로 재선 하원의원에 재선 상원의원, 전국적으로 알려진 국회의원도 아니라는 그의 경력 자체가 부족한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댄 퀘일은 마지막 비판에 대응한답시고 "존 F. 케네디도 정치에 입문한지 10 몇년만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나라고 문제가 되겠느냐"라고 끊임 없이 주장했다. 리 애트워터를 비롯한 조지 H. W. 부시의 선거 고문들은 이런 퀘일의 억지 비교가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퀘일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부통령 토론회가 열렸다.

(사회자: 이 선거는 단순히 부통령을 뽑는 선거가 아닙니다. 만약 퀘일 후보자님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거나 추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그에 마땅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확답을 내릴 수 있습니까?)

Quayle: ... The question you're asking is, "What kind of qualifications does Dan Quayle have to be president," "What kind of qualifications do I have," and "What would I do in this kind of a situation?" And what would I do in this situation? ... I have far more experience than many others that sought the office of vice president of this country. I have as much experience in the Congress as Jack Kennedy did when he sought the presidency. I will be prepared to deal with the people in the Bush administration, if that unfortunate event would ever occur.
퀘일: 사회자님이 묻는 질문은 "댄 퀘일이 대통령이 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하고, 퀘일은 어떤 자격을 갖고 있고, 그때 퀘일은 어떻게 답해야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할까요? (...) 저는 이 나라의 부통령에 출마한 그 어떤 사람보다도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출마했을때 그랬던 것처럼 의회 경력도 풍부하고요. 만약 대통령직을 승계해야한다는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기존 부시 행정부의 요인과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해나갈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회자: 벤슨 후보님, 답변하세요.)

Bentsen: Senator, I served with Jack Kennedy. I knew Jack Kennedy. Jack Kennedy was a friend of mine. Senator, you're no Jack Kennedy.
벤슨: 퀘일 상원의원님, 저는 존 F. 케네디와 함께 일했습니다. 저는 케네디를 압니다. 케네디는 저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상원의원님, 당신은 케네디가 아닙니다. (긴 함성과 박수 소리)

Quayle: That was really uncalled for, Senator. (Shouts and applause.)
퀘일: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벤슨 상원의원님. (함성과 박수 소리)

Bentsen: You are the one who make the comparrison, senator.
벤슨: 지나친 비유를 든건 오히려 상원의원님이시죠.
부통령 토론회에서 퀘일의 자격 불충분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에 퀘일은 계속 자신이 케네디와 같이 경력이 풍부하다고 강조했다. 보다 못한 로이드 벤슨 민주당 부통령 후보는 "전 케네디를 압니다. 당신은 케네디가 아닙니다!"라는 돌직구를 날렸다. 벙찐 퀘일은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라고 되받아쳤지만, 벤슨은 "지나친 비유를 한 것은 결국 당신"이라고 받았고, 퀘일도 마지못해 이를 인정하며 결국 본전도 못 건졌다. 벤슨의 돌직구는 그대로 유행어가 되었고 현재까지 엄청나게 많이 패러디되는 말이 되었다.

이 외에도 댄 퀘일은 부통령 후보 유세 중 각종 실언으로 논란을 빚었으며, 부시 캠프 측은 퀘일을 일단 캠페인에서 떨어트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댄 퀘일은 재앙과 같은 부통령 후보 유세를 펼쳤으나, 상대 후보 마이클 두카키스가 심각할정도로 네거티브에 부적절하게 대응했고,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경제 지표가 호전됨에 따라 부시의 지지율이 급등했다. 선거 결과 부시는 압도적인 격차로 민주당 두카키스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댄 퀘일도 어쨌든 로이드 벤슨 부통령 후보를 꺾고 부통령으로 당선된다.

3.4. 부통령 재직

댄 퀘일은 부통령으로 어찌 되었든 당선이 되긴 했으나 예상대로 경력 부족 때문에 조지 H. W. 부시, 월터 먼데일 등 "실세 부통령" 들과 달리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다. 조지 H. W. 부시는 포드 행정부 때부터 알고 지냈던 자신의 측근들을 정책 파트너로서 더 신뢰했으며[7], 댄 퀘일은 눈에 띌만한 일을 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4년을 보냈다. 심지어 상원 의장으로서 법안 표결 동수가 나오면 표를 행사하는 "타이 브레이킹" 역할[8]도 단 한번도 하지 못하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댄 퀘일이 미국 부통령으로서 한 업적을 기억하지 못했다.

3.4.1. 끝 없는 실언의 향연

"I stand by all the misstatements that I've made."
"저는 제가 한 모든 실언을 있는 그대로 지지합니다."
댄 퀘일
"When you make as many speeches and you talk as much as I do and you get away from the text, it's always a possibility to get a few words tangled here and there."
"저처럼 많이 연설을 하고 말을 많이 하고 글을 적게 읽다보면 사소한 단어가 엉키는건 당연한 일입니다."
대신 댄 퀘일은 법학 박사 학위를 딴 엘리트에다 인디애나 주 정계의 역사를 바꾼 젊은 보수파 의원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무식함에서 나오는 기행실언으로 더 잘 기억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자기 모순형
"I have made good judgments in the past. I have made good judgments in the future"
"저는 과거에 좋은 판결을 내렸고 미래에서도 좋은 판결을 내렸니다."
아마도 I will make good judgements in the future(미래에도 좋은 판결을 내릴 겁니다.)를 잘못 말한 걸로 추정. 하지만 시제를 틀려서 미래를 과거형처럼 말했다.
"I believe we are on an irreversible trend toward more freedom and democracy, but that could change."
"우리는 현재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돌이킬 수 없는 추세에 올라 타있습니다. 하지만 그 추세는 변할 수 있습니다."
1989년 5월 22일
탈냉전 시대에 대한 말로, "돌이킬 수 없는" 추세라면서 "변할 수 있다"라는 자기모순적 문장이다.
"We are ready for any unforeseen event that may or may not occur."
"우리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돌발 상황에 언제나 대비하고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돌발 상황"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문명 6에서 최하점을 받으면 이 대사가 출력된다.
"We don't want to go back to tomorrow, we want to go forward."
"우리는 내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합니다."
미래와 과거를 햇갈려서 말한 모양. 졸지에 내일을 과거로 만들어버렸다. 타임머신이라도 나온다면야 뭐 틀린 말은 아니게 될 수도 있지만
(흑인대학기금(United Negro College Fund)에 가서 연설했을 때 UNCF의 슬로건인 '정신이란 낭비하기엔 끔찍한 것(A mind is a terrible thing to waste)'이란 표현을 두고서)
"You take the UNCF model that what a waste it is to lose one's mind or not to have a mind is being very wasteful. How true that is."
"누군가가 낭비하는 정신을 갖지 않는게 얼마나 낭비인지 UNCF 모델을 생각해보세요. 참 맞는 말이네요.
'정신을 낭비하지 말라'는 표어가 '낭비하는 정신을 갖자'는 말로 둔갑했다.
  • 순환논법 형
"If we do not succeed, then we run the risk of failure."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고이즈미 신지로의 실언과 유사한 구조. 문명 5에서 최하 랭크를 받으면 이 대사가 뜬다.
"The future will be better tomorrow."
"미래는 내일 더 나아질 것입니다."
실제영상
미래가 이미 내일이라는 개념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문법 오류다.
"A low voter turnout is an indication of fewer people going to the polls."
"낮은 투표율은 투표장에 가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For NASA, space is still a high priority."
"미항공우주국에 있어, 우주는 아직도 그들의 최우선 목표입니다."
1990년 9월 5일
"The best thing about rain forests is they never suffer from drought."
"열대우림에서 가장 좋은 것은 열대우림이 가뭄에 시달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The cause of the riots were the rioters."
"폭동이 일어난 이유는 폭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2년 LA 폭동 당시
  • 상식 부재형
부시 대통령이 우주탐사계획(Space Exploration Initiative)을 발표했을 때 화성에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계획을 포함했는데 퀘일은 이에 대한 코멘트를 요구받았다. 그러자 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Mars is essentially in the same orbit (as Earth)....Mars is somewhat the same distance from the Sun, which is very important. We have seen pictures where there are canals, we believe, and water. If there is water, that means there is oxygen. If oxygen, that means we can breathe."
"화성은 본질적으로 (지구와) 같은 궤도입니다... 화성은 태양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고 이건 매우 중요하죠. 우리는 거기에 운하가 있다는 걸 봤고, 운하와 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9] 물이 있다면 산소가 있죠. 산소가 있다면 우리는 숨을 쉴 수 있단 뜻입니다."
1989년 8월 11일
댄 퀘일은 이 발언 덕분에 '과학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워 줬다'는 이유로 1991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하였다.
"It's time for the human race to enter the solar system."
"이제 인류가 태양계로 발을 내딛을 시기입니다."
당연하지만 지구도 태양계에 속한다.
"The Holocaust was an obscene period in our nation's history. ... No, not our nation's, but in World War II. I mean, we all lived in this century. I didn't live in this century, but in this century's history"
"홀로코스트는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가당찮은 시절입니다. ... 아뇨, 우리 나라가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때요. 제 말은 우리는 모두 그 세기에 살았고. 저는 그 세기에 살진 않지만 이 세기의 역사에 사니까요."
1988년 9월 15일
나치 독일의 역사인 홀로코스트를 "미국"의 역사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말을 주워담는 과정에서 홀로코스트와 2차 대전이 일어난 20세기에 자기가 살지 않았다고 말하는 헛소리도 했다. 미국 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법 파괴 문장의 예시로 인용된다.
"We have a firm commitment to NATO, we are a part of NATO. We have a firm commitment to Europe. We are a part of Europe."
"우리는 나토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토의 일부입니다. 유럽에 대해서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럽의 일부입니다."
미국이 유럽에 있다고 착각을 한 모양.
"It isn't pollution that's harming the environment. It's the impurities in our air and water that are doing it."
"환경을 파괴하는건 오염 물질이 아닙니다. 공기와 물 속에 있는 불순물이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공기와 물 속의 불순물"을 "오염물질"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다.
"I love California, I practically grew up in Phoenix."
"저는 캘리포니아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피닉스는 사실상 제 고향이거든요."
피닉스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애리조나의 주도이다. 자기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는 셈(...).
"I was recently on a tour of Latin America, and the only regret I have was that I didn’t study Latin harder in school so I could converse with those people."
"나는 최근에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했는데, 유일한 후회는 이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을만큼 학교 다닐 때 라틴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라틴이 그 라틴 맞긴 하지만 라틴아메리카는 라틴어를 쓰지 않는다. 라틴어는 바티칸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이미 사어가 된 학술적 언어이고 라틴아메리카는 보통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를 쓴다.[10]
"Hawaii has always been a very pivotal role in the Pacific. It is in the Pacific. It is a part of the United States that is an island that is right here."
"하와이는 언제나 태평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하와이는 태평양에 있습니다... 하와이는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미국의 부속 도서 중 하나니까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횡설수설. 하와이가 태평양에 있는지 대서양에 있는지, 미국의 부속도서인지 독립국가인지 순간 햇갈린 것으로 추정된다.
"It's wonderful to be here in the great state of Chicago."
"제가 위대한 인 시카고에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카고는 주가 아니라 일리노이라는 주에 있는 최대 도시이다. 주도도 아니다.
"Who would have predicted... that Dubcek, who brought the tanks in in Czechoslovakia in 1968 is now being proclaimed a hero in Czechoslovakia. Unbelievable."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탱크를 몰고 왔던 그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이제는 체코의 영웅으로 칭찬받는다는 것을 누가 예측했겠습니까? 놀랍습니다."
탱크를 몰고온건 소련이고 둡체크는 민주화 지도자였는데, 사실체크도 안해서 알렉산데르 둡체크를 공산주의 독재자로 만들어버렸다.

실언형
"What you guys want, I'm for."
"귀하가 뭘 원하든 전 그것을 지지합니다."
"Unfortunately, the people of Louisiana are not racists."
"불행히도, 루이지애나의 주민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닙니다."
1991년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 당시 결선투표에 진출한 네오나치 정치가 데이비드 듀크에 반대하면서 한 발언이다. 그러나 "Unfortunately"는 긍정적인 상황이 부정되었을 때 사용되는 어휘이기 때문에 마치 루이지애나 주민들이 인종주의자들이 아닌 것이 안타까운 것 같은 어조가 되었다.
"I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bondage between parent and child."
"저는 부모와 자식의 특별한 속박적 관계를 이해합니다."
bondage를 "유대감"과 같은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나, 이 경우에는 'bond'가 더 정확한 표현인데다 bondage는 SM플레이에서나 많이 쓰이는 용어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가학적 성관계를 이해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놀림감이 되었다.
"Congress should definitely consider decriminalizing possession of marijuana."
"의회는 마리화나 소지를 합법화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합니다."
말의 요지는 강간범과 절도범의 형량을 늘려야한다는 것이었지만, 마약 소지의 형량을 늘린 것은 레이건-부시 행정부였다.
"My friends, no matter how rough the road may be, we can and we will, never, never surrender to what is right."
"친구들, 저는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던간에 정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고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wrong을 right이라고 잘못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의로운 것, 옳은 것에 결코 굴복해서는 안된다는 이뭐병 연설이 되었다.
"And this is the best chance to begin to establish the New World Order."
"지금은 신 세계 질서를 세우기에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Us men are tired of losing our women."
"우리 남자들은 여자들을 잃는 것에 지쳤습니다."
반페미니즘적인 의도로 한 발언이지만 이 역시 문맥이 꼬여서 다소 이상한 말이 되었다.
"This is where the Continental Congress met over two hundred years ago during the American Revolution. So, Lancaster was actually the capital of our nation for one day in 1977."
"200년 전 미국 혁명 때 대륙 의회가 모였던 곳이 이곳입니다. 그러니까, 1977년에 이곳 랭캐스터는 하루동안 우리나라의 수도였던 셈입니다."
"I want to be Robin to Bush's Batman."
"저는 부시라는 배트맨로빈이 되고 싶습니다."
"I was known as the chief grave robber of my state."
"저는 인디애나 주 최고의 도굴꾼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출처
1988년 경력 부족에 대한 비판을 받자 이에 응수하며. 도대체 왜 도굴꾼이라는 워딩을 썼는지는 불명.
"I couldn't help but be impressed by the magnitude of the earthquake."
"지진의 규모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Impress"라는건 긍정적인 놀라움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이다. 1989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당시 한 실언이다.
3.4.1.1. "Potatoe" 사건
ABC NEWS에서 방송 했기 때문에 전 미국민이 이걸 지켜봤다
"If Al Gore invented the Internet, I invented spell check."
"만약 앨 고어가 인터넷을 발명했다면, 난 맞춤법 검사를 발명했겠다."
후일 민주당 대선 후보 앨 고어가 자신이 인터넷을 발명했다는 식으로 말하자 응수한 말. 자신의 유명한 맞춤법 실수를 언급하며 셀프디스 한 것이다.
댄 퀘일이 전국적으로 멍청이 이미지가 된건 "Potatoe" 사건 때문이다. 1992년 6월 15일, 퀘일은 뉴저지주의 트렌턴에 위치한 무뇨스 리베러 초등학교에 찾아가 윌리엄 피거로어[11]란 12세 학생이[12] 감자의 철자를 potato라 적어주자 potatoe라고 수정해줬다. 20세기 초~중반까지는 potatoe가 가끔씩 사용되기도 했지만 90년대에는 일상 생활에서 이미 고어 취급을 받는 철자법이었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potato의 복수형인 potatoes에서 s만 빼버린 것.[13]미국의 부통령이라는 작자가 일상 단어 수준도 아니고 유치원 수준의 단어 철자법도 모르는 멍청이라는게 생중계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영어도 못하는 부통령'이라는 비웃음을 받았다. 다만 이는 퀘일에게 다소 억울한 면이 큰데, 당시 학교에서 퀘일에게 배부한 단어 카드를 만들 때 선생님이 'potatoe'라는 오타를 낸 것이었고, 퀘일은 자신이 받은 카드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자신의 판단보다는 학교가 준 '잘못된' 카드를 신뢰하겠다고 결정해서 이렇게 된 것이었다. 퀘일은 온갖 조롱을 받으면서도 한번도 이 일로 교사를 비난하거나 변명한 적이 없이 의리를 지켰으나 그런 뒷사정과는 별개로 이 사건으로 퀘일은 전국적으로 멍청이로 낙인찍히고 다시는 이미지 회복의 기회가 없었다.

3.4.2. 의외의 면모

이렇듯 영어도 못하고 말만 하면 말실수를 하는 멍청이로 이미지가 굳어진 퀘일이었지만, 의외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재평가도 있다. 물론 주류적인 견해는 아니지만 댄 퀘일이 마냥 무시될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댄 퀘일은 매주 점심 식사 시간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아침 회의로 매일 조지 H. W. 부시와 회의를 가졌다. 첫번째 아침 회의에서는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국가안보보좌관과 국제 정치에 관해 토의했고 두번째 아침 회의에서는 존 서누누 비서실장과 함께 국내 정치에 대해 토의하는 형식이었다. 부시는 때때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나 딕 체니 국방장관, 존 서누누 비서실장,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국가안보보좌관과 독대를 하기도 했지만 주로 댄 퀘일 부통령을 동석시켜 회의를 진행했다. 그런 이유로 댄 퀘일은 백악관에 있는 모든 각료 중 가장 많이 부시와 회의를 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회의를 청강했을 뿐 아니라,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자신의 경력을 살려 부시의 "개인 법률 고문"처럼 활동하기도 했다. 걸프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의회의 승인을 받아 정통성을 얻자는 조언을 한 것도 댄 퀘일이었고, 부시의 정책이 좌초될 때 상하원에서의 친분을 이용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도운 것도 댄 퀘일이었다. 댄 퀘일은 특히 외교 문제에서 국내 법과 헌법에 어떤 부분이 저촉될 수 있고 어떻게 풀어 해쳐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부시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공화당 보수파와 부시 대통령의 관계를 중재한 것도 퀘일의 업적이라고 볼만 하다. 이런 이유로, 부시는 스코크로프트나 콜린 파월 만큼 퀘일을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그를 "유능한 법 기술자"로 충분히 활용했다.

또한, 그는 헌법 전문가로서의 면모도 있었다. 영화 <바이스>에 보면 딕 체니가 "부통령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도 속하지 않고 대통령이 권한을 정하므로 대통령 재량 하에서 황제와 같은 권력을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하는 명장면이 있는데, 사실 이 발언을 먼저 해 딕 체니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 댄 퀘일이다. 원문은 "부통령은 참으로 어색한 직책이다. 부통령은 상원 의장인데, 행정부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입법부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행정부가 아니라 상원에서 급여을 받는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명령에 따르지 자율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거나 정책을 추진하지도 않는다. 대통령에 항상 충성하지는 않겠지만 대게로 경의를 표하고 최선을 다해 공직을 수행할 것이다."[14]

이런 면모 때문에 같은 인디애나 출신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도 댄 퀘일에게 좋은 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개인적으로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또한 마이크 펜스가 도널드 트럼프2020년 대선 음모론에 동조해 대선 결과를 뒤집지 않고 조 바이든의 당선을 인증하도록 강하게 설득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점을 보면 댄 퀘일을 그저 "멍청이"라고만 보는건 오해이고, 의외로 예리한 면모가 있었으며 그래서 부시가 그를 계속 신뢰하고 92년도에도 부통령 후보로 재지명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정책을 짜는 면모에서는 부각되지 않지만 대통령을 보좌하고 의회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데에는 능력이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는 것.

3.4.3. 재선 도전과 실패

그러나 걸프 전쟁이 일어나자, 유능한 관료라는 타이틀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국가안보보좌관과 콜린 파월 참모총장이 쓸어가버렸고, 퀘일은 재선 직전 "potatoe" 사건으로 국민 바보 이미지만 남았다. 심지어 제임스 베이커 등 일부 부시의 측근은 댄 퀘일을 계속 부통령 후보로 데리고 있으면 승리할 수 없다며 부통령 후보를 교체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거의 성공할뻔했다. 하지만 부시가 딱히 부통령 후보를 바꿀 마음이 없었기에 댄 퀘일은 92년 대선에서도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다.

그해 5월 12일 커먼웰스 클럽 오브 캘리포니아[15]에 찾아가 LA 폭동을 주제로 연설을 하면서, 바로 이런 폭력 때문에 미국의 가정과 가치가 붕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시트콤 머피 브라운(Murphy Brown)을 예로 들었다. 퀘일은 시즌 1에서 유명한 앵커인 여주인공 머피 브라운이 아버지도 없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결말을 비난하면서 편모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런데 전설의 potatoe 사건이 일어나자, 머피 브라운 제작진들은 이를 활용해 9월 21일 방영된 시즌 5 1화 "You Say Potatoe, I Say Potato"에서 퀘일을 대놓고 풍자하는 장면을 넣었다. 극중에서 주인공 머피 브라운은 퀘일을 비판하는 뉴스 특별편을 내보내고, 퀘일의 자택 앞에는 항의성 의미로 감자가 한 트럭 배달된다. 그해 에미상을 받은 주인공 역의 배우 캔디스 버건[16]은 수상소감에서 이게 다 퀘일 덕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퀘일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그나마 선거를 1달 앞두고 치러진 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앨 고어를 상대로 의외의 선방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제임스 스톡데일이 엄청난 횡설수설과 실언으로 씬스틸러가 되어서 퀘일의 선방은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결국 부시와 퀘일은 판세를 뒤집지 못하고 빌 클린턴-앨 고어 조에 크게 패배하고 만다.

3.5. 부통령 퇴임 이후

부통령 퇴임 이후에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와 기업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4년에는 회고록을 출판했는데 이걸로 때돈을 벌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경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8위를 하자 경선 시작도 전에 후보직을 사퇴한다.[17] 게다가 이 과정에서 조지 W. 부시를 불필요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아버지 부시와 사이가 나빠졌다.

이후 애리조나 주지사 후보로도 고려되고, 대통령 재출마설도 나왔지만 모두 자신이 거절. 2016년 대선에서는 젭 부시를 지지했으며 조용히 살고 있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당선 여부 비고
1976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 인디애나 제4구

107,762 (54.37%) 당선 (1위) 초선
1978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 80,527 (64.36%) 재선
1980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 인디애나 1,182,414 (53.79%) 초선
1986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 936,143 (60.57%) 재선
1988 미국 부통령 선거[A] 미합중국 48,886,588 (53.37%, 426명) 초선
1992 미국 부통령 선거[A] 39,104,545 (37.45%, 168명) 낙선(2위)

5. 대중매체

딜버트에서 독버트가 멍청한 공룡 친구에게 "이봐, 너 댄 퀘일 알지? 미국 부통령이던 사람. 넌 공룡계의 댄 퀘일이라고." 이러자 멍청한 공룡은 "와!? 내가 부통령? 신난다!"라고 기뻐한다. 그리고 한국어 정발판에서는 번역자 각주로 위에 서술한 "감자의 철자를 potato라 맞게 적었는데 potatoe라고 수정한 일" 때문에 영어도 못하면서 부통령이 되었다는 미국 국민들의 비웃음이 반영된 거라고 설명됐다.

게임 문명 1, 3, 4, 5, 6에서는 게임을 마치면 플레이어의 점수에 따라 역사상의 유명 지도자 중 누구와 비견할 만한지 보여주는데[20], 4, 5, 6 모두 최하위 랭크가 바로 이 사람이다. 네로, 메리 1세 등 최악의 폭군 소리를 듣는 지도자들보다도 밑...[21]

문명 4의 최종 테크인 미래 기술에 이 사람의 명언(?)이 들어가있다. 상술한 "The future will be better tomorrow."이다.

일루미나티 카드 게임에서도 감자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멍청하다고 대놓고 깐다.#

[1] 전임자 버치 베이 사임(부통령 임명)으로 인디애나 주지사에 의해 대체 상원의원으로 임명.[2] 애리조나 주 제3구 연방 하원의원(2011~2013)[3] 제100대 의회 임기 도중 사임(부통령 취임)[4] 경선 시작 전 사퇴[5] 아닌게 아니라 레이건은 회의 도중에 꾸벅 꾸벅 졸고, 평소와 달리 연설 도중 횡설수설을 하는 등 임기 2기에 들어 건강이 우려되는 여러 모습을 보여왔다. 일부는 이를 토대로 이미 레이건이 임기 말년에 치매 초기 증세를 보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이 보다 젊은 사람을 원했던건 당연한 일.[6] 이 당시 접촉이 있던 인물 중 도널드 트럼프(...)도 있었다. 이에대해 의견이 엇갈리는데 아버지 부시는 트럼프가 먼저 자신의 참모에게 접근했다고 말하였고 트럼프는 자신의 친구인 애트워터가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주장했다.[7] 댄 퀘일과 대조되게, 조지 H. W. 부시의 외교안보 팀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관료 집단으로 평가받는다. 제임스 베이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콜린 파월 등 엄청난 라인업이다.[8] 시어도어 루스벨트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찰스 W. 페어뱅크스 이후 부통령이 타이브레이킹 역할을 임기 내내 한번도 못해본건 퀘일이 처음이었다고 한다.[9] 참고로 화성에 운하와 물은 없다는 사실은 NASA1965년에 마리너 4호를 화성 표면에 착륙시키면서 밝혀졌다.[10] 여행가 한비야도 "라틴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라틴 아메리카를 도보 여행했다"라는 헛소리를 해 욕을 먹은 적이 있는걸 보면 의외로 널리 퍼져있는 오해인듯.[11] William Figueroa. 1980-.[12] 1997년 소식에 따르면 피거로어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쇼룸에서 저임금 일을 했으며, 아이도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2019년 9월 버즈피드가 행방을 추적한 결과 현재는 월마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13] 고연령자들이 가끔 습니다를 읍니다로 적는 실수를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퀘일은 그런 변명도 안되는게, 1940년대 후반 생으로, patatoe라는 철자법이 쓰였던 적에 살았던 바가 없었다. 그냥 스펠링을 몰랐던것.[14] "Vice presidency is an awkward office. You're president of the Senate. You're not even officially part of the executive branch—you're part of the legislative branch. You're paid by the Senate, not by the executive branch. And it's the president's agenda. It's not your agenda. You're going to disagree from time to time, but you salute and carry out the orders the best you can"[15] Commonwealth Club of California.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무당파적인 비영리 사회문제 포럼.[16] Candice Bergen. 1946-.[17] 여담으로 해당 캠페인에 오픈도어의 설립바이자 페이팔 마피아 일원인 키스 라보이스가 정책 디렉터로 참여했다.[A] 대통령 후보는 조지 H. W. 부시[A] [20] 예를들면 최상위 랭크는 솔로몬 왕, 아우구스투스, 함무라비, 샤를마뉴 등.[21] 다만 메리 1세와 네로는 프로파간다로 인해 억울하게 폭군의 누명을 쓴 거지 실제로는 괜찮은 인물들이었거나 나름의 업적도 남겼다는 학설도 있다, 네로는 폭군이고 암군이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로마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거나 암군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업적을 남긴 게 있기는 있으며 네로 사후 비텔리우스 등 자격 미달의 황제들이 계속 즉위해 로마가 더욱 심한 혼란에 빠지자 시민들과 의원들이 네로를 탄핵한 걸 후회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네로는 내치를 말아먹은 거지 외치는 훌륭하게 했다. 그리고 메리 1세가 암군이었다는 학설은 아예 학계에서 폐기처분된 학설으로, 엘리자베스 1세가 메리 1세를 깎아내리기 위해 조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장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엘리자베스가 승리하게 만들어준 왕립해군은 메리 1세 이전까지 자금 부족으로 몰락해가고 있었는데 이걸 스페인과 전쟁이 성립할 수 있을 수준으로 재건한 것도 메리 1세였으며, 즉위 기간 내내 민중의 지지를 받았고, 되려 민중은 엘리자베스보다도 메리 1세를 더 좋아했다는 게 오늘날의 정설이다. 정통성이 부족했던 엘리자베스의 프로파간다 때문에 억울하게 폭군으로 몰렸을 뿐 외교에서 실수를 좀 저지른 것만 빼면 명군 겸 성군 축에 들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인데 네로랑 같이 묶이는 것 자체가 메리 1세에게는 굴욕이다.